<한국일보> 2010/07/18 17:15:16
http://news.hankooki.com/lpage/society/201007/h2010071817151621950.htm
농민 희생 강요하는 농협, 누구를 위해 존재하나
쌀 판매 떠안기고 중국산 수산물 팔고 농약 값 인하 막고
김창훈기자 chkim@hk.co.kr
경기 이천시에서 벼농사를 짓는 김모(55)씨는 요즘 ‘쌀을 어디에 내다 팔까’ 고민에 빠졌다. 농민의 본업은 농사지만 김씨 지역 단위농협이 얼마 전 농지 넓이에 따라 재고쌀 판매를 할당했기 때문이다. 논 한 마지기(약 661㎡) 당 20㎏짜리 쌀 1포대씩이라 김씨에게 떨어진 몫은 무려 200포대를 넘는다. 형제와 친인척 등을 통해 겨우 서너 포대를 팔았지만 앞으로 그 많은 쌀을 어떻게 처분할 지 앞이 캄캄하다. 김씨는 “강제성이 없다고 해도 자기 몫을 소화하지 못하면 올해 수매량에서 그 만큼을 뺀다고 했다”며 “농민 둘 만 모이면 농사는 뒷전이고 쌀 팔 생각에 한숨만 쉬고 있다. 스트레스가 이만 저만이 아니다”고 말했다.
여주군이나 안성시 등 다른 농촌에서도 이미 수매한 쌀을 농민들에게 직접 팔도록 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일부 농협들은 할당량을 완수하지 못하면 수매량을 줄이겠다고 으름장을 놓아 쌀값 하락에 신음하는 농민들을 더욱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장사에 서툰 일부 농민들은 쌀 판매가 여의치 않자 아예 포기해버렸고, 심지어 당초 수매가보다 훨씬 싼 가격에 쌀을 넘기고 차액을 자기 돈으로 메워서 농협에 판매금을 입금하는 경우도 생기고 있다. 농민들은 "우리도 조합원이라 심각한 재고쌀 문제는 이해하지만 농민이 직접 파는 방법밖에 없는 것인지 안타깝다”고 하소연한다.
쌀 판매를 떠안기는 것만이 아니다. 농민을 위해 설립된 농협이 오히려 농민을 옥죄는 아이러니가 전국 곳곳에서 벌어지며 농협의 존재 이유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농협이 운영하는 하나로클럽이나 하나로마트에는 국내산이 아닌 수입산 상품이 넘친다. 심지어 바다를 끼고 있어 수산물이 풍부한 지역의 하나로마트에서도 외국산 수산물을 판매하는 어이없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몸집 불리기에 급급해온 하나로클럽과 마트는 이제 지역상권을 거머쥐며 대형마트나 SSM에 필적할만한 ‘공룡’으로 성장, 지역 소상공인들을 위협하고 있다.
농협중앙회가 사료공급 시 신용카드 결제를 외면하는 행태도 축산농가들의 불만을 사고 있다. 매월 180억원 상당의 조사료, 배합사료 등 50만t을 전국 142개 회원축협에게 공급하는 농협중앙회가 현금결제를 고집하자 축협들도 손해를 입지 않기 위해 현금결제를 요구하는 악순환이 생겼다. 결제 때마다 일일이 현금을 준비해야 하는 축산농가들은 볼멘소리를 내고 있다.
농협중앙회는 농약제조업체들과 일괄구매계약을 체결하며 농약을 저가에 판매하지 못하도록 업체들을 압박한 사실이 공정거래위원회에 의해 드러나기도 했다. 보다 싼 값에 농약을 구매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한 농민들은 울화통을 터뜨리고 있다.
농민들을 상대로 높은 대출금리를 유지하며 거둬들인 돈으로 진행한 사업들은 곳곳에서 삐걱거리고, 목우촌 등 자회사들은 적자에서 허덕이고 있다. 그런데도 쇄신은 쉽게 목격되지 않고 있다. 중앙회는 여전히 제왕적인 권위를 누리며, 단위조합 조합장들은 고급승용차를 굴리며 지역유지로 행세하기 바쁘다. 잊을만 하면 대출비리가 터져 나오고, 조합장 선거만 치렀다 하면 선거비리가 봇물처럼 쏟아진다. 농협의 사정이 이렇다 보니 농민들 입에서는 “농협이 뭐하는 곳이냐”는 탄식이 끊이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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