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149호] 2010.07.27 10:2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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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조 빚 폭탄, 서울시도 터지는가
지자체 부채 규모가 사상 최대다. 더욱이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서 100조원이 넘는 지방 부채를 탕감할 길은 더욱 막막해졌다. 지방재정 건전성을 빌미로 ‘관치’가 도래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박형숙 기자 | phs@sisain.co.kr
재정자립도가 90%(올해 85%)가 넘는 전국 유일의 자치단체로서 가용재원이 충분했던 서울시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내년도 예산안을 짜고 있는 서울시 한 공무원은 “답이 안 나온다”라고 한숨을 쉬었다. 이제까지는 확대재정을 했지만 빚을 갚아야 할 상황에 왔고 그 때문에 내년도 예산안은 늘리지 못하고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으로 맞춰야 할 것 같다는 얘기였다. 하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민주당이 과반을 점한 서울시의회는 자신들이 공약으로 내세운 무상급식 등 복지비 확대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시장 불신임’까지 갈 수 있다며 으름장을 놓는 상황이다.
서울시 재정은 좋지 않다. 민간 연구소인 ‘좋은예산센터’(소장 김태일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가 <시사IN>에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서울시 부채는 23조6000억원(2009년 결산 기준)에 달한다. 서울시민 1인당 225만원에 달하는 액수다. 서울시 산하 SH공사의 부채가 16조원으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 재임 말기에 착공해 오세훈 시장이 떠안은 ‘가든파이브’(1조3000억원)와 같은 개발사업이 주원인이었다. ‘부채 덩어리’로 지목되어온 지하철공사 부채는 도리어 약간 줄었다. 2005년 1조원 수준이던 서울시 본청의 부채도 2009년 기준 3배 이상 늘었는데 그 역시 ‘한강 르네상스’와 같은 대규모 건설사업이나 사회간접자본(SOC) 확충 등 토목사업이 40%를 차지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세수가 줄어드는 초유의 사태도 발생했다. 대개 세수 추계는 보수적으로 하기 때문에 10% 정도가 남기 마련인데 지난해 결산서에 따르면 2000억∼3000억원 정도가 덜 걷힌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시 재정이 이처럼 ‘펑크’가 난 것은 외환위기(약 250억원) 이후 처음이다.
ⓒ시사IN 윤무영 인천시의 송도국제도시. |
지자체 빚 100조원 돌파, 공기업만 72조원
성남시의 지불유예 선언 이후, 지방 부채 이슈가 전국을 강타했다. 사실 6·2 지방선거 과정에서 일차 논란이 되었지만 이달 들어 민선 5기가 본격 출범하면서 ‘숨겨진 빚’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특히 인천시의 경우 송영길 시장은 선거 전 자신이 제기했던 7조원에서 추가로 2조원이 넘는 부채가 새롭게 확인되자 대책 마련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역시 원인은 서울시와 마찬가지로 인천시도시개발공사다. 인천시 부채(9조4000억원)에서 6조6000억원을 차지했다. 인천시는 부채이자(4500억원)로만 매일 12억원을 날리는 셈이다.
성남·인천시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회 예산정책처가 발표한 ‘지방자치단체 재정난 현황’에 따르면, 지방정부 수입에서 지출을 뺀 통합재정수지도 7조1000억원 적자로 돌아섰다(2009년 말 기준). 지난해에 비해 32.9% 증가했다. “2010년 들어서는 일부 자치단체에서는 가용재원이 부족하고 당초 예산에 인건비를 미반영하는 문제가 발생하는 등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라고 보고서는 설명했다. 실제로 광역단체 중에서 인천(-13.1%), 전남(6.5%), 충북(7.2%), 전북(8.5%), 강원(9.1%), 충남(9.4%) 등은 가용재원이 10%가 채 안 되었다. 이들 단체장에게는 성남시장의 “당장 갚을 빚(5200억원)이 2년치 가용예산에 해당한다. 아무 일도 하지 말란 말이냐”라는 울분이 남 일이 아니게 생겼다.
ⓒ뉴시스 성남시가 지불유예를 선언한 판교신도시. |
그렇다면 전국 지자체의 부채는 어느 정도일까? 좋은예산센터가 추산한 바에 따르면, 102조원이다. 사상 처음 100조원을 넘어섰다. 특히 지난 4년 동안 빚이 두 배로 폭증했다.
‘20조원 흑자’ 1년 만에 상황 돌변, 왜?
불과 2년 전만 해도 사정은 좋았다. 2008년 통합재정수지는 33조원 흑자. 정창수 좋은예산센터 부소장은 정부 수립 이후 최대치라며 ‘재정의 봄날’이라고 표현했다. 이 중 지방재정도 20조원 흑자를 거뒀다. 그런데 어쩌다 1년 만에 상황이 돌변했을까? 자주 거론되는 이유는 경제위기다. 경제난으로 인해 세수는 감소했지만 위기관리용 대응지출이 늘었기 때문이라는 것. 하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지방정부의 예산은 이명박 정부 들어 오히려 늘어났다. 2007년 128조원으로 참여정부 4년간 지자체 예산 증가율은 평균 7.87%였지만,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2009년에는 137조원으로 평균 수치(10.06%)가 대폭 늘었다. 또한 부동산 경기의 영향을 받는 취득세·등록세가 당초 예상과 달리 많이 걷히는 등 지방세 징수 호조로 목표액을 7.6% 초과 달성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핵심은 이명박 정부의 ‘부자감세’ 정책이다. 단적으로 지방 격차 해소를 위한 재원이었던 종합부동산세가 사실상 무력화되면서 지방에 주던 교부금이 4조7000억원이나 줄었다. 예산정책처는 2008년부터 2012년까지 감세로 인한 지방재정 축소규모가 18조5000억원에 달할 것이라고 예상한 바 있다.
ⓒ뉴시스 서울시의 뉴타운은 수도권 지자체들의 대표 개발사업이다. |
중앙정부가 강력하게 추진한 지방재정 ‘조기 집행’도 지자체의 형편을 어렵게 했다. 그에 따라 자체 예치금이 줄면서 이자수입도 크게 줄었다. <시사IN>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서울시의 평잔(시 금고의 평균 잔액)은 2008년 3조2000억원에서 2009년 7000억원으로 뚝 떨어졌다. 따라서 같은 기간 이자수입도 1500억원에서 180억원으로 줄어들었다. 수도권보다 곳간 형편이 더 안 좋은 지자체들은 앞다퉈 은행에 손을 내밀었다. 그 규모가 지난해 상반기에만 2조3000억원대(일시차입금)에 달했다.
아울러 지방채로 인한 부채도 크게 늘었다. 좋은예산센터는 2010년 지방채 잔액 수준이 28조원에 이를 것이라고 추산했다. 지방채 발행은 원래 중앙정부의 승인이 필요했지만 노무현 정부 때 지자체의 지출재량권 확대 차원에서 폐지했다. 이명박 정부는 경기부양을 위해 지방채 발행을 독려했다. 이에 편승해 재선을 노리던 단체장들이 지방선거를 앞두고 마구잡이로 선심성 사업들을 집행해 올 하반기 지방재정에 비상이 걸린 지자체가 한두 군데가 아니다.
지방정부에 ‘이중 고통’을 초래한 것은 사회복지비 지출의 증가였다. 경제난으로 인한 복지 수요의 증가와 OECD 국가 중에서 만년 꼴찌인 복지비를 생각하면 지출을 늘리는 게 당연해 보이지만 문제는 그 방식이었다. ‘분권’을 내세운 노무현 정부가 사회복지 업무를 대폭 지방에 이관한 데다, 국가보조금을 받는 복지사업은 대부분 중앙정부가 내놓는 돈에 지자체가 예산을 보태는 방식(매칭 펀드)이어서 지방 재정을 압박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실제로 올해 전국 지자체 사회복지비(26조5000억원) 중에서 국가보조금 사업에 들인 예산이 거의 대부분(23조원)을 차지했다.
공기업을 통한 지자체의 ‘분식회계’
정창수 부소장은 “지자체의 부채는 공기업에 숨어 있다”라고 말했다. 72조원에 달하는 지방 공기업의 부채 구조는 ‘이명박식 분식회계’를 닮았다고 할 만하다. 2007년 대선을 앞두고 한나라당 당내 경선에서 박근혜 후보 측은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SH공사의 2006년 말 부채 6조5770억원을 서울시 부채에 포함시키지 않는 ‘분식회계’를 했다는 주장을 제기했는데, 이러한 채무 악순환은 이명박 정부가 집권한 뒤에도 이어졌다. 정부가 22조원의 4대강 사업을 하면서 수자원공사에 8조원을 떠넘기는 식이다.
문제는 앞으로다. 부동산 거품에 편승해 공기업이 개발이익을 내고 지자체가 거둬들이는 구조가 더 이상 지탱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중앙정부가 지방재정 건전성을 빌미로 재정규율을 강화하면서 ‘관치’가 살아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제기된다. 당장 주민들은 ‘납세자 소송제도’라도 도입하자고 목청을 돋운다. 빚 100만원을 갚지 못해 채권추심사의 협박에 시달리다가 자살하는 사람들이 생겨나는 마당에 수조원 빚을 진 단체장들을 처벌할 조항은 그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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