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8년 8월 21일 마리선녀 씀 -
빈공간 또는 여백
지역문화축제와 관련하여 한 달여 동안 바쁜 시간을 보냈다.
오늘 아침 마지막 납품을 마치며 돌아오는 중, 거리 여기저기서 축제를 알리는 깃발이 눈에 들어온다. 고추를 상징하는 붉은 색이 주를 이루며 잎을 상징하는 초록색들이 강열하게 나부긴다. 그 외 하늘색 등 다양한 색상들이 서로 엉켜 축제를 알린다. 여러 그림들이 앞다투어 빽빽히 들어 있다. 문구과 숫자는 어느덧 겨우 한 자리를 차지한 듯 보일듯 잘 보이지 않는다. 차를 타고 스치듯 보이는 축제 깃발에는 여백/빈공간이 없다. 빡빡하게 들어가 있는 가상의 그림들이 정작 알려할 축제의 안내글을 삼켜버린 것 같다. 보기에 갑갑하고 답답하다. 여백/빈공간이 없기 때문이다.
나의 삶을 돌아본다.
하루 24시간 중 잠자는 시간을 뺀 나머지 시간엔 무엇을 할까.
아침 9시를 시작으로 일에 파뭍혀 지내고 다시 밤 12시에 잠자리에 들고 , 낮시간 거의 컴퓨터 앞에서 창조와 모방을 일삼아 보내고 있다. 나 역시 어디에도 여백/빈공간이 없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어디서 무엇을 하든 여백/빈공간을 그냥 두지 않으려 한다. 아니 낭비하는 것 같은 느낌을 같는다. 손해보는 듯 한 느낌도 든다. 한심하게 느끼기도 한다.
정말 그럴까?
쉼, 또는 휴식이야말로, 또는 여백/빈공간이야말로 보이는 것을 보게 하고, 있는 것을 있게 하는 것, 그것이다. 그것은 존재의 지속가능함의 동력인 것이다. 정작 사유할 수 없고 느낄 수 없다면, 그것은 인간의 근원적 존재이유가 사라지는 것이리라.
여백없는 깃발들을 보면서 갑갑함을 느낀 것처럼, 여백없는 나의 삶 역시 갑갑한 삶인 것을. 쉴 틈, 여유, 허술함 등이 나에게도 필요하다.
완벽한 깃발을 만들기 위하여 이것저것 온갖 그림으로 가득 채워 답답하게 한 것 처럼, 나 역시 완벽한 인간이고자 하여 빡빡하게 시간을 계획한 것이 깃발의 경우와 다를게 없다. 스스로 억압하고 구속하는 삶인 것이다.
혼자 빈 공간을 갖고 싶다. 여백을 갖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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