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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환경연대> 2004-07-06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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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양구에서 2004년 7월 1일~3일까지 진행된 2004 전국 환경활동가 워크샵에서 여성환경연대가 진행한 6번째 집중마당 1부입니다.
"여성환경인의 비전"이라는 주제로 1부에서는 이영숙선생님의 생명여성주의에 대한 발제와, 이미영선생님의 한국여성환경운동의 역사, 과제, 전망에 대한 발제가 이루어졌습니다.

생태여성주의와 생명여성주의 - 2004전국환경활동가워크샵

 



생명여성주의 서설



 

이영숙(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원 연구교수)



이 글은 한국 여성의 삶(경험, 인식, 문화 등)을 반영하면서 생명이 중심이 되는 여성주의적 통찰력은 어떤 것인지 생명여성주의적 패러다임의 모색을 간략히 소개하는 데 목적이 있다.


생명여성주의에서 사용하는 ‘생명’이란 용어는 생물학적인 의미에 국한하지 않는다. 생명이란 생물학적 실체이면서 동시에 사회적 힘의 관계가 일어나는 지점이다. 이는 생명의 조건이 자연에 의해서 만이 아니고 사회적 구성에 의해 형성됨을 말하는 것으로서 생명에는 생물학, 역사, 경제, 문화, 사회 구조 등이 직간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다.

 

가부장적 사회에서는 이러한 생명의 일반적인 특성에 더하여, 성별관계가 생명의 조건에 주요인의 하나가 된다. 가사노동과 양육, 가정폭력, 생명공학 기술의 여성 몸에 대한 자본화, 성폭력, 성매매,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등은 재생산과 생산 영역을 포함한 총체적 삶에서 여성의 생명을 억압하고 있다. 이로 말미암아 사회 속에서 생명의 현실은 성중립적이 아니라 남녀사이에서 체계적인 성별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생명여성주의는 ‘생명이 사회구조에 의해 젠더화 되어 있다‘ 라는 명제에 토대를 두고 있다.



I. 생태여성주의의 지역화로서 생명여성주의

생명에 대한 여성주의적 시각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자연과 여성 사이의 유사한 억압적 상황을 논하는 생태여성주의1)를 우선 소개할 필요가 있다.

각주1) 생태여성주의는 1990년대 초부터 한국에 소개되기 시작하였다.

  생태여성주의는 서구에서 최근까지 남성이 주류가 되어 진행시켜온 역사의 행보가 어떤 방식으로 자연을 비롯한 지구를 파괴시켜 왔는가에 대한 성찰적인 저항운동으로 지구를 구하려는 여성들의 노력과, 여성과 자연에 대한 새로운 관점의 여성주의적 시각이 맞물려 형성되고 있다.


에코페미니즘2) 이라고 칭하는 생태여성주의의 핵심은 남성이 여성을 억압하는 가부장제적 성차별주의와 인간의 무차별 개발에 의한 자연파괴 사이에 연관성이 있다는 체계적 논의에 있다. 서구 생태여성주의자들과 인도의 쉬바와 같은 학자들은 서구 과학이 “모든 제도적 폭력을 정당화시키는 궁극적인 원천으로서, 그리고 오늘날의 지배-피지배 관계의 기본적인 모델”이라고 지적하면서 적극적으로 피지배 여성들의 자연과의 관계 방식에 특별한 관심을 보여 왔다(브라이도티 외, 1995: 186-187).

각주2) 에코페미니즘이라는 단어 자체는 1974년에 프랑스의 한 작가에 의해 고안된 것으로 여성에게서 생태학적 변혁의 잠재적 능력이 있음을 의미하는 용어다(머천트, 1996: 161).

생태여성주의 이론의 형성은 대부분의 거시이론이 고도의 지적 추상성으로 이론의 틀을 짜는 것과는 달리 지역의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사례들의 상황을 반영하여 이루어진다. 자연혐오와 여성혐오에 대한 상호 연관된 사회적 지배의 뿌리를 밝히는 구체적 분석 없이는 생태학은 추상성으로 남게 된다(King, 1989: 23-24). 구체성을 지닌 사회적 지배의 뿌리란 두말할 것 없이 여성의 경험이 맥락 지어진 그 지역 사회의 역사, 문화, 사회적 배경을 의미하는 것이다.


워렌(Warren, 1994)은 생태여성주의의 이론형성 과정을 퀼트(조각보)만들기에 비유하여 설명하고 있다. 그 조각 하나 하나는 퀼트 조각을 만드는 여성의 개인적인 삶의 자리와 삶의 여정에 대해 말해주는 데, 이와 마찬가지로 각 생태여성주의자는 각자의 문화적, 사회적, 역사적, 지역적, 인종적, 국가적 배경에 따라 각자의 독특한 입장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까, 커다란 조각보 퀼트를 일반명사인 '소문자 생태여성주의'라고 지칭할 때, 이 조각보는 지역 여성의 경험에서 만든 고유명사 퀼트 조각하나인 '대문자 생태여성주의'들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조각보는 많은 조각이 모여 차츰 새로운 모양의 조각보를 만들어 갈 수 있다. 이것이 개별 조각 퀼트 하나하나 사이의 동질성, 차별화, 보편성이 형성되는 맥락이다.


생명여성주의의 모색은 생태여성주의와의 관계에서 서로 대립된다기 보다는 상호보완하면서 발전되어야 할 것으로 접근하면서 동시에 생태여성주의와 일정 부분 차별화 전략으로 이루어진다. 차별화 전략은 사실상 기존 생태여성학의 주요 전제들을 수용하면서도 여성사이의 차이점에 착안하여 한국여성의 경험과 현실, 문화의 생명적 가치들과 의미를 재조명하고 반영하는 것이다. 3)

각주3) 김정희(1998)는 필자가 접근하는 생명여성주의에 대한 논의와 다른 각도에서 여성의 존재문제를 중심 주제로 서구의 생태여성주의가 영성의 탐구에 가지는 한계성과 여신(그것도 서구적 여신을)을 종교로 살리고자하는 전략의 한계성을 논하면서 생명여성주의를 제안하고 있다.
  

II. 생태여성주의와 생명여성주의가 분리되고, 차별화 되는 지점

생명여성주의적 시각에서 논의의 중심 틀은 생명의 일반적 조건과 관련된 생명적 원리와 양성평등의 원리의 두 개의 축으로 구성된다. 이 두 축이 만나는 교차점에서 반생명적 사회의 조건의 여성 억압에 대한 이해, 그리고 ‘성별관계로 층화된 생명’의 이해를 통해 생명의 ‘젠더화'라는 관점이 이루어진다.


생명여성주의의 시각에서 여성의 생명 자체에 대한 개념은 두 가지 층위에서 논의될 수 있다. 그 하나는 `사회 속에서 성별화된 생명’ (사회적 구성물: 패션, 순결 이데올로기, 저임금, 무임금 가사노동 등)에 대한 이해의 층위이며, 다른 하나는 ‘억압의 장소로서 성별화된 여성의 생명과 몸’ (사회적 구성물이 생물학적 생명, 몸에 구현된 현상: 생식기술의 여성의 몸 자본화, 성형수술, 성폭력, 성매매, 구타)에 대한 이해의 층위들이다. ‘생명’은 ‘몸’보다 더 광범위한 차원의 포괄적인 개념이면서 생물학적 생명까지도 포함하는 개념이다. 전자(`사회 속에서 성별화된 생명')의 경우는 메타포 차원에서 생명이 논의되는 부분으로 왜 생명이 차별받고, 억압되고 있는가와 같은 생명이 위치한 사회적 맥락과 구조를, 그리고 그 구조가 성별화 된 점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후자(`억압의 장소로서 성별화된 여성의 생명과 몸')의 경우는 여성 몸의 현실을 생물학적으로만 분석하기보다는 생명의 구체적 실현으로서 몸을 보는 것이며, 따라서 우리의 사회문화 안에서 억압의 장소로서 몸을 보는 것이다. 이때 몸의 실체는 생물학적 몸과 문화가 실현되는 장으로서의 몸으로 이루어져 있다.


(1) 생명여성주의의 인식론적 전제

생명여성주의적 접근법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은 생명여성주의적 인식에 대한 논의를 통해서 부분적으로 찾아 볼 수 있다.  
참고로 생태여성주의자들의 주요 인식체계를 먼저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4)

각주4) 머천트(1996), 미tm(1996), 브라이도티 외(1995), 스프레트낙(1996), 워렌(Warren, 1994), 그리고 킹(King, 1995, 1996)과 같은 생태여성주의자들에게서 나타나는 인식체계의 핵심을 요약한다.

1. 생태여성주의에서 말하는 자연과 여성의 관계는 두 가지 다른 입장으로 나뉘어진다. 하나는 여성이 본래적으로 자연에 더 가깝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사회역사적 구성물로서 체화된 여성을 말한다.
2. 전자에서는 보살핌과 같은 여성적 가치에 의미를 부여한다.
3. 모든 생명의 상호연관성을 강조한다.
4. 모든 억압적 이념들이 가부장제에 의해 유지․강화되는 지배의 논리를 말하고 있다.
5. 생태계의 다양성 유지의 중요성과 그에 따른 힘의 분산을 생태여성주의에서 추구하면서, 소비산업을 통해 유사한 욕구와 욕망이 전지구적으로 통용되는 문화의 단순획일화의 문제를 지적한다.
6. 자연, 문화, 인간 사이의 이분법적 인식체계의 철폐를 강조한다.

생명여성주의는 생태여성주의와 동류의 전제들도 공유하므로 동류의 전제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어떻게 생명여성주의에서 다른 특질을 가지는지 그 차이를 밝히는데 중점을 두면서, 생명여성주의의 주요 인식체계 및 그에 따른 특성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가)생명여성주의에서 생명은 주체다:

동양에서 생명이라고 할 때 생명은 실체, 근원적 에너지, 사회적 장, 역사성과 운명까지를 포함하는 다차원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 그 자체로서 주체다.
생명이 주체라는 전제의 여성주의적 의미와 중요성이 무엇인지 짚어 보자.


생명은 주체라는 전제는 생명이 인간의 대상이 아니다라는 의미도 가진다. 이 의미는 양성평등 사회의 구현을 위한 운동 차원에서, 그리고 연구의 방법론 차원에서 중요한 함의를 가진다. 생태여성주의는 자연과 여성이 서로 다른 특질로서, 그러나 유사한 상황에 있는 것으로 상정한다. 그러나 생태여성주의는 자연과 여성 사이의 생명의 성격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생명여성주의에서는 자연이 주체, 여성도 주체, 즉, 생명이 그 자체로서 주체다. 때문에, 인간 행위의 대상인 목적격으로서 자연과 여성의 관계가 논의되는 것이 아니다. 생명은 자연, 인간 등 모든 살아있는 유기체의 특질인데 사회적 구성물로서 사회 속에서 왜곡되어 있기도 하다. 따라서, 여성이 자연을 살린다는 말은 여성이 주체가 되고 자연이 대상이 되는 목적격이 아니라, 자연 자체에도 내재하는 생명의 주체성을 복원하는데 지원한다는 즉, 자연 자체가 가지고 있는 생명의 자생성, 자기해방적, 자율적 힘을 스스로 복원하는데 여성이 아픔을 함께 하는 존재로서 지원한다는 의미가 되어야 한다.


생명이 주체라는 전제에 의해 생명여성주의는 자연과 여성이 닮았느냐, 아니냐라는 본질주의 논쟁을 근원적으로 극복하고, 여성의 생명과 남성의 생명이 보편적으로 만날 수 있는 양성 해방운동의 이론적 장치가 될 수 있다. 자연과 여성 주체 사이의 관계 논의는 여성이 자연을 닮았는가 아닌가를 가지고 여성주의자들 사이에서 분화되고 있다. 생명여성주의에서는 남성의 생명도 주체므로 남녀 사이의 보편적 생명이 전제되고, 더 나아가서 생명의 젠더화 문제를 제기하게 된다.


(나)생명여성주의는 상호영향성을 중시한다:

생명은 에너지이기도 하므로 상호영향을 주고 상호작용한다. 따라서 생명여성주의에서는 생명을 상호관계적으로 인식한다. 생태여성주의에서도 인간과 자연, 인간과 인간 사이의 상호연관성을 중시한다. 그러나, 생태여성주의의 '상호연관성'에 비해 생명여성주의에서 의미하는 ‘상호영향성’은 적극적으로 에너지를 주고받는 관계를 말한다.


'생태'는 다른 종들 사이의,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에서 물리적 현상이거나 순환적 현상을 중심으로 말할 수 있는 틀이다. 그러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같은 종 내의 힘의 관계를 분석하기보다는 자연 환경과 여성의 관계를 자연현상을 축으로 해서 분석하기에 용이한 개념이다. "생명" 개념은 다른 존재와의 관계뿐만 아니라 한 종 내의 성별, 인종, 힘, 계층, 계급 등 모든 관계의 역학을 경제, 사회, 정치학적으로 접근 가능한 동적 개념이다. 생태여성주의에서도 남녀관계에서 힘의 관계를 기술하지만, 일반적으로 이것은 분석에서 인간과 자연사이의 관계 논의 다음에 부차적으로 다루어진다. 이로써, 생태여성주의에서 ‘상호연관성’ 강조는 생명여성주의의 상호영향성 성격에 비해 그 내용이 존재와 존재 사이의 순환적인 것으로 보인다.

(다)시간의 구조를 곡선적으로 이해한다:

삶의 곡선적, 동시적 흐름을 시계가 조형하는 일직선상의 시간의 틀에 넣어 왜곡시키지 않겠다는 의지의 전제다. 시간을 일직선상으로 놓을 때 (전제할 때) 이항대립적 사고가 시작된다. 미개/발전, 과거/현재, 나/너 등으로. 시간에 대한 우리의 분절적, 직선적 인식을 전환할 때 직선적 시간에 의해 과거/현재로 내면에서 분열된 자기 자신과 화해가 가능하게 되고, 개체 생명의 시작과 끝을 분리하지 않고 그 생명의 현재, 과거, 미래의 모든 시간이 함께 만나는 지금 이 순간이 생명에 추동력을 붙이는 ‘공생의 큰 생명의 시간대’로 들어갈 수 있으리라 생명여성주의는 상정한다.5)

각주5)  ‘공생의 큰 생명의 시간대’는 장회익(1998)의 “온 생명”과 만날 수 있는 개념이다.



(2) 통합적 방법론의 가능성

각 사회의 산업화 정도, 사회․경제구조, 문화에 따라 환경운동의 내용과 저항방식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생태여성주의자들의 제 3 세계 여성에 대한 논의는 주로 개도국 여성들이 직면하는 개발, 자연문제, 일상생활(연료, 식수, 식품 등)과의 연관성에서 여성의 주변화와 억압을 말하고 있다. 서구여성에 대한 생태여성주의자들의 연구는 자연과 여성의 관계를 기초로 생태계 파괴, 핵문제와 군사화, 화학약품, 유전자 조작 식품, 생명공학의 복제 문제 등을 주제로 다루고 있다. 이 서구 여성의 경험에 대한 생태여성주의자들의 이해는 주로 기술적 접근(descriptive approach)의 성격을 가진다. 그 원인은 생태여성주의 이론의 분석력이 생명의 사회적 측면과 젠더화된 측면을 직접적으로 다루도록 개념적 장치를 갖추지 않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생태여성주의가 남성의 여성에 대한 억압과 인간의 자연억압의 동형구조를 부각시키면서 자연을 매개로 여성문제를 논의하는 접근법과 달리, 생명여성주의는 반생명적 사회가 어떻게 여성 억압적인지, 여성문제 자체에서 직접적으로 젠더화된 생명의 현실을 보고자 한다. 이러한 접근은 자연문제에 대한 분석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자연에서도 생명이 주체이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한국의 산업화된 도시에서 여성의 생명이 고통받는 상황을 논의할 경우를 예로 들어보면, 다음과 같이 적용할 수 있다.


생명이 젠더화된 현상을 “생명적 원리와 양성평등 원리가 만나는 교차점에서, 생명의 젠더화로서 여성 몸의 자본화”와 같이 개념화하고, 그에 따라 구체적 한국여성의 경험에서 “반생명적 성형수술의 유행은 여성의 몸에 ‘재현된’ 남성중심 노동 시장의 조건과 상관관계를 가진다”라는 식으로 조작적 정의를 내릴 수 있다.


생명여성주의적으로 접근해서 제 3세계 여성의 문제를 개념화 할 경우는 다음과 같이 풀어 쓸 수 있다:


제 3세계는 농업사회에서 산업화로 이행하는 자본주의의 팽창 과정에서 한편으로는 여성의 생계부양 활동과 직결된 농업에 주는 문제와 개발이 여성의 역할과 지위를 박탈하거나 악화시켜 여성의 공적 경제활동과 사회적 재생산 관련 노동을 ‘젠더화 하는’ 문제, 즉, ‘사회 속에서 성별화 된 생명‘의 문제가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환경 악화가 여성의 생물학적 생식 기능 등 관련 건강에 주는 ’억압의 장소로서 성별화 된 여성의 몸‘의 문제가 있다.

이러한 접근은 여성문제의 실체와 문제의 사회적 지형, 그리고 성별관계가 접합하여 하나의 통합적 차원에서 여성의 삶을 조망할 수 있는 개념화와 분석력을 가진다. 그런데, 이러한 개념화와 조작적 정의는 우선, 기존의 여성주의적 접근과 유사함에도 불구하고 인식상의 전제에서, 연구의 방법론, 분석에서, 그리고 정책적 대안에서 차별화 된다. 또한, 이와 같은 접근은 사회주의 생태여성주의의가 사회적 구성물로서의 여성이라는 점에 착안한 접근과 유사성을 가지고 있다.6)

각주6) 쉬바(1998)의 경우를 예로 들어 볼 때, 사회주의 생태여성주의자 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가부장제분석/ 기술, 과학문제 분석/ 생명유지 경제 분석/ 지구화의 문제(식민지)를 분석한다. 그러나, 쉬바는 전통의 생명유지 경제를 자연을 살리기 위해 복원되어야 할 대안으로 제안하면서 카스트 제도의 문제를 짚고 넘어 가지 않았고, 최근 자본주의의 진전 단계에 따른 여성문제에 대한 사회적 분석을 소홀히 하는 측면이 있다. 쉬바는 자연과 여성의 문제의 연관성을 분석하지만 생명의 사회구조적 맥락은 눈을 감고 넘어가기도 해서 여성의 억압의 상황의 뿌리를 이루는 카스트제도에 대해서 눈을 감아 주었다.

그러나 생명여성주의는 사회주의적 생태여성주의와 문제의식이 유사함에도 불구하고 가부장제를 공격하고자 하는 방식이 다르다. 생명여성주의는 첫째, 자연을 매개로 하지 않으므로 현대사회의 중층적인 젠더화 현상을 분석하기에 용이하고, 둘째, 생명을 주체로 전제하기에 여성과 생명이 생태여성주의의 ‘여성과 자연‘의 관계처럼 동등한 차원의 "다른 범주"로 분리시킬 수 있는 특질이 아니므로 ’젠더화 된 생명‘과 관련된 여성과 생명의 조건, 여성과 자연의 관계 등에 통합적 접근이 가능한 틀이 된다.


III. 생명적 감수성

생명여성주의는 여성에 대한 생명의 젠더화를 생명 원래의 모습으로 복원시킬 주요 기제로서 어떤 장치를 가지고 있는가? 즉, 양성관계와 생명관계를 연결하는 고리가 무엇일까? 생명여성주의는 "성인지적" 생명 감수성이 그 답이라고 제안한다.


생명적 감수성은 자기의 생명, 그리고 다른 생명의 욕구와 필요, 고통을 느끼고, 생명이 가진 자생력을 펼치도록 판을 벌려주고, 지켜주고, 도와 주기 위해 성찰적으로, 그리고 연민을 가지고 사물과 관계를 맺는 심리적 조건을 의미한다. 이 감수성은 감각적인 것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고 사유적, 행동적인 것을 포함하여 거의 인성의 차원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생명여성주의는 ‘생명적 감수성’을 여성주의의 윤리로서 제안한다. 생명적 감수성이 길리건(1997)과 같은 학자가 말하는 여성주의적 윤리의 주요한 특성인 '여성적 원리'와 유사한 면은 생명적 감수성이 배려, 보살핌의 성격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명적 감수성의 지평이 논리적으로 여성적 원리보다 훨씬 더 넓다. 생명적 감수성은 몰성적으로 양성에 모두 쓰일 수 있는 보편성을 가진 용어이며, 개념이기 때문이다.


‘생명적 감수성’의 제안은 본질주의에 대한 여성주의자들의 거부감과 어긋나지 않는다. 일반 여성주의자들 가운데, 그리고 생태여성주의자들 가운데 여성적 원리(feminine principle)를 여성주의의 윤리로서 중시하는 이들이 있는 반면, 일반 여성주의자의 일부와 생태여성주의자의 일부 가운데는 여성적 원리가 가부장제로부터 양성이 모두 해방되기 위한 가장 의미있는 가치관이라는 주장에 반대하고 있다. 이 반대는 ‘재생산하는 자연의 성격과 닮은 여성이 양육하고, 살림하는 “성 특유의 보살핌과 배려의 본질”이 있다’ 라는 본질주의(essentialism)에 대한 맹렬한 비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여성적 원리를 본질화 시키는 것에 거부감을 가지는 여성주의자들은 여성이 자연과 닮았다거나, 여성이 여성적 원리라는 선험적 특성을 지니고 있다는 식의 접근에 반대하는 것이다.


“여성적 원리”(배려 등)는 본질주의 논쟁 때문만이 아니라, 용어의 외연적 틀에 의하면 여성에게만 있는 것으로 상정하는 이분법적 문제도 있다. 남성이 가사노동, 양육, 살림에 참여하려고 해도 할 수 없도록 성분리적으로 개념화되어, 남녀의 성역할에 넘을 수 없는 분할 경계선을 그은 결과가 된다.


이렇게 되면, 남성이 “배려” 역할에 동참하려면 여성적 역할로 젠더(사회적 성별)의 변화가 와야 하는 것으로 전제되어 있다. 그러니, 남성이 생물학적으로 여성이 될 수 없는, “배려”할 수 없는 논리적 상황과, 남성성/여성성 이분법의 함정에 빠지게 된다.


생명여성주의는 전략적으로 여성주의적 원리(양성평등 원리)와 생명적 감수성을 서로 접목시킨다. 생명적 감수성이 양성평등을 원칙으로 하는 여성주의적 원리에 의해 거듭나 "성인지적 생명감수성"이 될 때, 양성관계와 생명의 관계가 바로 서도록 촉매 역할을 할 수 있다. 이때 성인지적 생명적 감수성은 성차별을 철폐하는데, 또한 남성의 성역할에도 동일하게 해당되는 보편성을 가진 것으로서 변화의 촉매가 될 것이다.


IV. 맺는 말

생명여성주의는 생태여성주의에 대한 지역적 재구성의 성격을 가진다. 생명여성주의의 얼개의 모색은 이제부터 한국여성의 경험을 담는 그릇으로서 개념화 작업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이를 위해 한국 여성의 문화와 지역, 그리고 여성의 경험에 대해 한층 더 깊이 있는 논의를 필자가 제시해야 할 것으로 스스로 다짐해 본다.


참고로, 생명여성주의의 적용 및 실천 가능 영역은 환경운동, 여성 몸 연구, 생명공동체 운동, 생명여성적 문화 운동, 생명여성주의적 상담, 생명적 감수성 훈련 등에서 가능하다.


끝으로, 생명여성주의가 보다 입체적인 상을 가지기 위해서는 핵심 개념들의 여성학적, 생명적, 한국적 성격을 적절히 채용해야 할 것이다. 현재 생명여성주의는 개념화하면서 재개념화 하는 시론적 단계에 있다. 생명여성주의는 ‘구성물’이므로, 이것이 여성에 대한 성찰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앞으로 관련 학문 영역과의 대화를 통해, 그리고 구체적으로 연구 주제들에 적용해본 후 결과물들을 통해 논의를 수정 보완하면서 현상과 이해 사이의 간극을 바로 잡아갈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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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희(1998), "생명여성주의의 존재론적 탐구: 반야 불교와 노자의 '마음' 개념에 기초한 신인간형의 모색" 이화여대 여성학과 박사학위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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