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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선녀 이야기/마리선녀 철학

아리스토텔레스

by 마리산인1324 2010. 10. 5.

<출처불명>

 

 

 

아리스토텔레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전의 모든 학문을 집대성한 지적 거인으로서 플라톤과 더불어 근대가 도래하기 이전 시대의 최고 학자라고 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스스로가 자신이 고대 학문의 정점(頂點)을 이룬다고 생각했고, 그런 관점에서 최초로 ‘철학사’를 썼다. 또 그는 처음으로 학문을 체계적으로 분류했으며, 오늘날 우리가 쓰는 학문 이름들도 모두 그에게서 유래한다. Physica=자연학, Meteorologica=기상학, Politica=정치학, Poetica=시학, ... 등.

아리스토텔레스는 소크라테스나 플라톤에 비해서는 이론 학문에 더 관심이 많았고, 특히 자연철학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 중에서도 생물학(특히 동물학)의 그의 주된 분야라 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전의 철학자들이 대개 경험에 근거하지 않는 사변을 일삼았다고 보았으며, 그 자신은 철저하게 경험에 입각한 구체적인 학문을 세웠다. 그러나 그는 플라톤의 영향으로 학문이란 엄밀하게 연역적인 것이어야 하고 필연적이고 보편타당한 것이어야 한다는 것을 잊지 않았다. 때문에 그는 한편으로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을 잇는 ‘형상(形相)’을 철학을 세웠으나, 동시에 그 사유를 철저하게 경험적인 차원에서 세웠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이르러 경험적 구체성과 합리적 연역체계라는 두 측면이 조화를 이루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마케도니아 근방의 스타게이라에서 태어났다. 의사 가문에서 태어났기에 어릴 때부터 경험적 탐구의 분위기에 젖어 살았다. 그리고 18세 때에 플라톤의 아카데메이아에 유학 오게 된다. 이 두 가지 요소가 그의 학문을 결정하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아카데메이아에서 20년 동안 머물면서 학문을 연마했다. 플라톤의 이데아론이 늘 토론의 대상이 되었으며, 플라톤에 충실했던 크세노크라테스와 비판적이었던 아리스토텔레스가 늘 충돌했다.


플라톤 사후(347년) 아리스토텔레스는 편력(遍歷) 생활에 들어가 소아시아의 앗소스, 레스보스 섬의 뮤틸레네 등을 떠돌아다녔다. 342년에 알렉산드로스의 가정교사로 초빙 받아 필리포스의 궁정에 들어가게 된다. 알렉산드로스는 장성해서 대왕(大王)이 되었을 때 옛 스승을 위해 정복지(征服地)의 동식물들을 채집해 그에게 보내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둘은 반란(反亂) 문제 때문에 멀어지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편력 시대에 많은 동물들을 관찰하게 되며, 그러한 관찰들이 그의 철학의 초석이 된다. 당시만 해도 동물 연구는 꺼림직한 것으로서 받아들여졌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하등 동물들에서도 형상들을 발견할 수 있다고 믿었으며 이 점에서 플라톤과 전혀 다른 정향(定向)을 가지게 된다.


335년 아테네로 돌아온 그는 크세노크라테스가 이끌던 아카데메이아에 맞서 뤼케이온(Lykeion)에 학원을 세우게 된다. 이 학파는 ‘소요학파(逍遙學派)’라 불리기도 했다. 여기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광범위한 사회과학적 자료들을 수집하게 된다.


323년 알렉산드로스 대왕 사후 아테네가 마케도니아에 반격을 시도할 때 대왕의 스승이었던 아리스토텔레스도 숙청의 표적이 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아테네 시민들이 철학에 두 번 죄를 짓지 않게 하기 위해” 에우보이아의 칼키스로 피신했다가 62세에 그곳에서 영면(永眠)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방대한 저작들은 뤼케이온의 마지막 지도자인 안드로니코스 아프로디시아스에 의해 편집되었다. 이 저작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著作)’이 아니라 강의록들이다. 저작들은 대화편들로 쓰여졌다고 하나 전해지지 않았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들은 여러 가지로 수난을 겪기도 하면서 현대에 전해졌다. 그의 강의록들은 매우 난삽해 정돈이 어려웠으나 베르너 예거를 비롯한 현대 문헌학자들에 의해 어느 정도 그 연대기가 정돈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학문을 크게 이론 학문과 실천 학문으로 나누었다. 여기에 경우에 따라서는 제작에 관한 학문이 추가되고, 또 예비 학문으로서 논리학이 추가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논리학(logic)이라는 학문을 처음으로 체계화해서 제시했다. 논리학은 개념, 판단/명제, 추론으로 이루어진 사유 체계이다. 논리학을 제시함으로써 아리스토텔레스는 학문의 탄탄한 기초를 쌓았다.


『범주론』은 범주/개념, 『명제론』은 판단, 『분석론』 전후서(前後書)는 추론을 다루고 있으며, 『소피스테스 논박』은 오류추리를, 『변증론』은 변증법을 다루고 있다. 모두를 합해 ‘오르가논(Organon)’이라 부른다. 범주론(範疇論)은 ‘범주(kategoria)’를 다루고 있으며,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존재론)의 실마리를 담고 있다. 이 말은 본래 법정용어이며 ‘홍범구주(洪範九疇)’에 입각해 ‘범주’로 번역되었다. 내용상 논리학일 뿐만 아니라 존재론이기도 하다.


범주론은 세계 대한 총체적 분류로서 한편으로 흥미진진하기도 하고 한편으로 지나치게 구성적이기도 하다. 판단이란 개념과 개념을 종합하는 것이다. 종합을 매개하는 것은 계사로서의 ‘is’이다.(이 점에서 판단론의 논리적 구조는 서구어의 구조와 뗄 수 없이 연결되어 있다) ‘소크라테스’와 ‘하얗다’를 연결/종합하면 “소크라테스 is 하얗다”가 된다.(“S is P”의 구조) 추론은 판단들이 논리적 필연(logical necessity)에 따라 연역(演繹)되는 형식적 구조를 다룬다. 유명한 ‘삼단논법(syllogism)’이 대표적이다. 오류추리론은 잘못된 추론들에 대한 논의이며, 변증론은 서로 대립하는 의견들을 다루는 것으로서 소크라테스-플라톤의 변증법/문답법의 전통을 잇고 있다. 그러나 변증법에 대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은 다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10가지 범주를 제시했으며, 이것은 곧 ‘ousia’(존재=being)에 대한 이론이기도 하다. 존재에 있어 “그 자체로서 존재하는 것(on kath'auto)”과 이것에 “부대해서 존재하는 것(on kata symbebekos)”이 구분된다. “자체로서(per se)” 존재하는 것과 “우연히(per accidens)” 존재하는 것의 이 구분은 그 후 서구 철학사에 기나긴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때로 ‘ousia’라는 말은 전자만을 가리키기도 해 주의를 요한다. 즉 전자는 “진정으로” 존재하는 것이고, 후자는 이차적인 의미에서 존재하는 것이다. 전자는 實在이고 후자는 그 실재에 부대하는 질, 양, 관계, ... 등의 9가지 범주이다.


“그 자체로서 존재하는 것”은 곧 그리스 존재론의 전통을 이어받고 있는 것이다. 파르메니데스와 플라톤을 이어 아리스토텔레스도 “무엇이 實在인가?”라는 물음에 답한 것이다. 그 구체적 답은 바로 개체들(tode ti)이다. 이것은 가장 상식적인 답이지만, 그리스 존재론사에서는 가장 충격적인 답이기도 했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는 일단 명사로 표현되는 모든 것이 실재들이다.


“부대해서 존재하는 것들”은 특정한 개체라는 실재를 전제할 때 그 실재가 변해 가는 양태(樣態)들이다. 소크라테스의 질들, 양들, 관계들, ...이다. 이 범주들이 “우연적”이라는 것은 오늘날의 자연과학적 뉘앙스에서의 ‘우연’이 아니라 논리학-존재론적 뉘앙스에서의 “우발적(contingent)”이라는 뜻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개체들은 형상들(그는 ‘idea’라는 말보다 ‘eidos’라는 말을 더 선호한다)을 함축하고 있기에 성립한다. 즉 고정된 어떤 동일성(identity)을 함축하고 있기에 개체로서 성립한다. 반면 개체들의 우발적 부대물들은 그 형상/동일성이 구현(具顯)되어 있는 질료에서 유래한다. 이것이 아리스토텔레스 사유의 전체 구도를 잘 보여준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운동과 변화를 설명한다는 것은 곧 실재들=개체들과 그 부대물들을 설명한다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운동과 변화를 명확하게 분류했다. 변화(metabolê)는 실재 자체의 생성과 소멸을 뜻한다. 운동(kinêsis)은 질적 변화와 양의 증감, 그리고 공간 이동으로 나뉜다. 오늘날 ‘movement’는 운동에 ‘motion’은 공간 이동에 해당한다.(근대 기계론의 사유는 모든 운동을 공간 이동으로 환원시키고자 한 시도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질적 변화로서의 운동을 설명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그의 자연철학의 주된 관심사를 형성한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는 플라톤에게서 이어받은 형상들에 대한 관심과 운동을 적극적으로 설명하려는 과학자적 관심이 혼재되어 있다.


형상들의 존재는 중요하다. 형상들이 존재하기에 이 세계는 단순한 물질의 흐름, 카오스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일정한 동일성들이 존재하게 된다. 뽀삐는 다른 강아지들과도 땅과도 또 다른 모든 것들과도 구분되는 특정한 하나의 동일성을 갖추고 있으며, 그것이 바로 뽀삐의 형상이다. 우리가 ‘뽀삐’라는 이름=명사로 지시하는(refer) 것, 그것은 바로 뽀삐의 이 동일성이다.


그러나 뽀삐의 동일성은 예컨대 수학적 동일성(예컨대 반지름 3cm의 원)과 같은 추상적이고 영원한 동일성이 아니다. 뽀삐는 움직이고 짖으며, 자식을 낳는다. 나이가 들면서 털색깔이 변하기도 하고 이빨이 빠지기도 한다. 어떤 사람을 보면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좋아하지 않는다. 좋은 주인을 만나 잘 살 수도 있고, 야박한 주인을 만나 보신탕집에 팔려갈 수도 있다. 즉 뽀삐는 그저 추상적이고 영원한 어떤 동일성이 아니라 무수한 질적 차이들을 띤 존재, 시간 속에서 변해 가는 존재, 무수한 관계 속에서 달라지는 존재이다. 요컨대 뽀삐는 분명 동일성을 가진 존재이지만, 그 동일성은 동시에 시간과 운동/변화의 흐름 속에 들어 있는 동일성이다. 바로 이것이 플라톤의 형상과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상의 핵심적인 차이이다.


뽀삐의 이런 측면은 곧 뽀삐의 질료(hylê)에서 유래한다. 즉 뽀삐의 형상을 질료를 벗어난, 물질의 세계를 초월한 형상이 아니라 질료에 구현되어 있는, 질료와 분리될 수 없는 형상이다. 때문에 동일성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변해 가는 것이다.


이로부터 아리스토텔레스 자연철학의 전체 구도가 잡히는데, 그것은 바로 모든 사물들을 형상과 질료로 분석해서 다루는 것이다.(‘질료형상설’) 구체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개체들에 초점을 맞추되 그것들을 형상적 측면과 질료적 측면으로 나누어 설명하는 것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철학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아리스토텔레스는 생명체들에 유독 애정을 쏟았다. 수학적 형상들처럼 추상적이고 영원한 동일성을 갖춘 존재들, 그리고 그와 반대로 형상들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은 흙, 공기, ... 같은 질료적 존재들보다는 형상의 동일성과 질료의 운동을 함께 파악하면서 지적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생물학이야말로 그의 주된 분야였으며, 그 중에서도 특히 형상이 질료 속에서 조금씩 현실화되면서 마침내 하나의 개체가 태어나게 되는 과정의 연구 즉 발생학(embryology)이 그의 핵심 분야였다. 영원한 형상을 탐구하는 수학을 애호한 플라톤과 시간 속에 구현된 형상과 그것의 구체적 경험에 몰두한 아리스토텔레스, 여기에 이들의 중요한 차이가 있다.

이로부터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또 하나의 핵심적인 개념쌍이 등장하게 되는데 그것은 가능태(dynamis)와 현실태(energeia)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상은 시간을 머금는다. 변화의 와중에 잠겨 있는 형상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어떤 부분이 본질적인 부분이고(그 사물을 바로 그것으로 만들어 주는 것. ‘to ti ên einai=essentia’) 어떤 부분이 비본질적 부분인지(우발적 측면들)를 칼로 끊듯이 이야기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뽀삐의 동일성은 시간을 배제하는 동일성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하나의 형상은 단적으로, 순간적으로=영원히 존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질료와의 관계를 통해서 서서히 구현된다. 질료는 가능태이다. 즉 그것은 특정한 형상을 띨 수 있는 가능성을 갖추고 있다. 형상이 거기에 부여될 경우(‘부여’라는 말에 조심) 질료는 단순한 물질적 터에서 조금씩 특정한 동일성을 현실화해 간다. 바로 그렇게 질료를 단순히 질료 자체로서 머물게 하지 않고 특정하게 조직해 나가는(‘내부’에서) 것, 즉 가능태로서의 질료를 어떤 특정한 방향으로 움직이게 만드는 것이 형상이다. 이 때 형상은 현실태로서 기능한다. 즉 질료가 특정한 방향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그 운동의 내적 원인으로서 존재한다. 그리고 그 운동이 일정한 단계에 도달해 그 형상=동일성의 현실적 모습이 완성될 때 그 형상은 완성태(entelecheia)에 도달한다. 즉 말 자체가 시사해 주듯이 그 목적(telos)에 도달한다.


때문에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은 현실과 거리를 둔 영원한 무엇이라기보다는 현실이 변해 가는 어떤 귀결점이다. 즉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 개념에는 당위나 이상의 뉘앙스 이전에 자연법칙의 뉘앙스가 깃들어 있다. 이것 또한 플라톤과의 중요한 차이를 보여준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이런 형상, 즉 질료에 구현되어 자체의 목적으로 서서히 나아가면서 그 부대적 존재들을 통해서 그 온전한 모습을 드러내는 형상은 곧 ‘영혼(psychê)’이기도 하다. 따라서 영혼은 신체와 분리해서는 결코 생각될 수 없는 그 무엇이다.


지금까지 설명 과정에서 이미 형상, 질료, 목적 개념이 등장했거니와, 아리스토텔레스의 유명한 ‘네 가지 원인’에는 마지막으로 운동인이 포함된다. 지금까지의 설명은 모두 한 개체에 대한 내재적 설명이었거니와, 현실세계를 살아가는 모든 존재들은 타자들과의 관계를 통해서 변해 간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는 이런 운동과 변화를 설명하는 것 또한 하나의 핵심적인 작업을 이루는 것이다.





우여곡절을 겪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전집은 로도스의 안드로니코스 아프로디시아스에 의해 편집되었다. 그 중 제목이 없는 저작에 ‘ta meta ta physica’라는 제목을 붙였다. 이로부터 ‘metaphysics’가 유래했고, “形而上者謂之道 形而下者謂之器”라는 구절에 입각해 ‘形而上學’으로 번역했다. 일관된 저작이 아니라 여러 논문들이 산만하게 편집되어 있다. 중세의 용어로 존재론(ontologia)과 신학(theologia)이 다루어져 있다. 중세에는 존재론을 ‘일반 존재론’으로, 신학과 자연(철)학(physica) 그리고 영혼론(psychologia)을 합해 ‘특수 존재론’으로 정리했다.


존재론은 광범위한 주제들을 다루거니와 아리스토텔레스에게 그 기본 주제는 ‘실재’의 문제이다. 논리학(범주론)과 자연철학(특히 Physica와 De Anima)에서 이미 실재 문제의 윤곽이 드러났거니와 Metaphysica에서는 보다 광범위하고 본격적인 논의가 이루어진다. 실재라는 말을 넓게 쓸 경우 10개의 범주에 들어가는 모든 것이 실재이다. 소크라테스의 키도, 저 장미꽃의 색깔도, ... 모두 실재하는 것들이다. 이럴 경우 실재에 들어가지 않는 것은 환상, 공상, 착각, ...등의 산물들 뿐이다. 그러나 실재 탐구의 핵심은 “진짜” 실재가 무엇이냐는 데에 있다. 즉 탈레스 이래 추구되어 온 ‘퓌지스’, ‘아르케’로서의 실재 탐구인 것이다. 이에 대해 아리스토텔레스는 개체라고 답했다. 그러나 그의 사유가 성숙해 가면서 논의가 좀더 복잡해진다. 실재, 즉 근본 실재는 분할 불가능해야 한다.(여기에서 ‘분할’이라는 물리적 의미가 아니라 논리적 의미로 쓰였다) 더 이상 분할 불가능한 것이야말로 근본 실재의 자격이 있다. 그런데 개체는 분할된다. 개체는 복합체로서 질료와 형상으로 분할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 1차적인 근본 실재는 개체이거니와 개체에게서도 어떤 부분이 보다 더 실재인가 라는 물음이 제기된다. 얼핏 일차적인 후보는 질료인 듯이 보인다. 어떤 개체를 규정(規定)하고(determine) 있는 것들(언어상으로는 술어들)을 모두 제거했을 때 남는 것은 그 밑에-깔려-있는-것(hypokeimenon) 즉 질료일 것이기에 말이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질료를 기각시킨다. 질료는 말하자면 허여멀건 바탕, 터에 불과하며 뚜렷하게 인식할 수 없는 무엇이기 때문이다. 인식한다면 이미 질료가 어떤 층위에서든 규정성들을 띠게 되었을 때이고, 이미 형상이 개입했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어떤 하나, 무엇이 아닌, 아무런 얼굴도 없는 터가 근본 실재일 수는 없다는 것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이다. 훗날 라이프니츠는 “하나의 존재가 아닌 것은 하나의 존재가 아니다”라는 말로 유사한 생각을 표현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런 생각 아래에는 진정한 존재, 근본 실재는 영원하고 자기동일적이고 순수한 무엇이어야 한다는 플라톤 사유의 그림자가 깔려 있다. 그렇다면 질료는 기각되어야 하는 것이다.


(*한 가지 혼동스러운 것은 ‘substance’라는 현대어이다. ‘실체’로 번역되는 이 말은 때때로 근본 실재 즉 강한 의미에서의 ‘우시아’의 번역어로서 받아들여지기도 하고 또 때때로는 ‘hypokeimenon’의 번역어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번역어로서는 우시아의 번역어이지만, 후대의 유물론자들의 번역어로서는 ‘hypokeimenon’의 번역어인 것이다. 이것은 후대의 유물론자들이 근본 실재를 ‘hypokeimenon’ 즉 질료→물질로 보고 이것을 ‘substantia’로 번역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substance’라는 말은 거의 물질의 뜻으로 사용된다. 예컨대 ‘chemical substance’. 그러나 철학사적 문헌들에서 이 말은 우시아를 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하고, 또 우리말 번역어 ‘실체’라는 말은 물질보다 큰 외연을 가진다는 것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결국 개체에 있어서도 진짜 실재라 할 수 있는 것은 형상이다.(그러나 질료의 역할을 폄하해서는 안 된다. 질료는 가능태로서 기능하며, 질료 없는 형상 역시 무의미한 것이기 때문이다) 형상은 때로 본질과 혼동되는데, 본질(essentia)이라는 말은 자주 등장하는 ‘to ti ên einai’의 번역어이다.


형상이든 본질이든 그것은 어떤 동일성을 함축하는 개념이며 파르메니데스에게서 이어져 내려온, 헬라스 철학의 기본 성격이기도 하다. 구분이 매우 미묘하지만, 형상은 좀더 개체 내재적이고 본질은 보편자에 좀더 가깝다.


“하얗다”, “콧구멍이 넓다”, ... 등은 소크라테스에게 서술된다. “소크라테스는 하얗다” 같은 식으로. 그렇다면 소크라테스의 형상은 어디에 서술될까? 그것은 그의 질료에 서술된다. ‘소크라테스’라는 하나의 형상은 그의 질료에 서술되며, 그래서 개체로서의 소크라테스가 성립한다. 바로 이 형상이 소크라테스의 형상이다. 이 점에서 형상은 본질 및 보편자와 밀접히 관련되지만 좀더 개체에 밀접하다.


반면 본질은 어디에 서술될까? 본질은 분명 소크라테스라는 개체에 서술된다. “소크라테스는 인간이다.” 그러나 이 술어는 다른 것들과 다르다. 술어들은 일반적으로 대립자들의 구조를 가진다. “소크라테스는 하얗다”도 성립하고 “소크라테스는 까많다”도 성립한다. 그래서 9개의 범주들은 “대립적인(contrary)”관계를 형성한다. 반면 소크라테스는 “인간이다”는 대립항을 가지지 않는다. 만일 소크라테스는 “인간이 아니다”(가치 평가가 아니라 존재론적 판단임)라고 말한다면, 주어 자체가 아예 부정되는 것이다. 이 경우는 “모순적인(contradictory)” 경우이다. 존재와 무는 절대 모순을 이루며, 따라서 소크라테스는 “인간이다”와 “인간이 아니다”라는 두 명제는 절대 모순을 이룬다. 하나는 성립하지 못한다. 이런 성격을 띠는 술어가 본질이다. 그런데 “인간이다”라는 술어는 소크라테스에게만 붙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본질 개념이 형상 개념보다 보편자에 더 가깝다는 것은 이런 의미에서이다.


그렇다면 보편자는 근본 실재인가? 개체, 질료, 형상/본질과 더불어 보편자 역시 근본 실재의 후보에 든다.(‘eidos’라는 말이 ‘종’의 뜻도 가진다는 점은 시사적이다) 그러나 최종 당선자는 아니다. ‘인간’이 소크라테스, 나아가 소크라테스의 형상/본질보다 더 실재한다고는 할 수 없다. 무엇보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는 현실을 구성하면서 운동하고 구체적으로 인식되는 것이 더 실재적인 것이기에 말이다.(그러나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는 죽어도 인간은 지속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보편자야말로 더 실재가 아닐까? 개체의 실재가 아니라 종의 실재가 더 실재적이지 않은가? 이것이 중세의 보편자 실재론의 입장이다. 이것은 좀 더 플라톤적인 생각이기도 하다)

모든 사물들이 각각의 본질을 가지고 있다고 본 점에서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플라톤처럼 본질주의자이다. 그러나 플라톤에게서도 그랬듯이, 이 본질들은 논리적-추상적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시간 속에서 활동(ergon)을 통해서 주어진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점을 좀 더 이론적으로 개진시켰는데, 바로 가능태와 현실태(energeia) 개념이 그것이다. 각 존재의 본질은 시간 속에서 발현되며 질료의 가능태가 형상의 현실태를 점차 갖추게 됨으로써 마침내 완성태(entelecheia)에 도달하게 된다.


여기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은 운동인보다 목적인을 더 중시한다. 운동인의 역할도 중요하다. 운동인은 외적 원인으로서 우연과도 연관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근대적 결정론과는 다른 사유를 구사하며 우연 등을 유연하게 인정한다.


그러나 목적인은 더 근본적이다. 어떤 사물(특히 생명체)의 본질은 처음부터 주어져 있다. 따라서 운동인이 뒤에서 밀어서가 아니라(근대적 사유) 차라리 목적인이 앞에서 끌어서 현실태의 진행이 이루어진다. 이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유가 미래의 사유라는 점을 함축한다. 이런 특성은 그의 우주론 및 신학으로 이어진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천철학(대표적으로는 윤리학과 정치학)은 이상의 존재론적 토대 위에 서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도 사물의 본질과 그 실현/활동, 그에 따른 ‘~다움’, ... 같은 소크라테스, 플라톤을 이어 내려온 사유 전통에 서 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던지는 물음들 중 하나는 “최선의 삶이란 어떤 것인가?”라는 것이다. 이것은 ‘eudaimonia’의 문제인데, 이 말은 ‘행복’으로 번역된다. 그러나 ‘최선의 삶’과 ‘행복’ 사이에는 뉘앙스의 차이가 있다 해야 하겠다. 후자가 결과론적인 뉘앙스가 강하다면, 전자는 당위의 뉘앙스를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eudaimonia’를 (소크라테스적 뉘앙스에서의) “진정한” 행복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ergon’을 실마리로 이야기한다. 모든 사물들에게 아레테가 있듯이, 심지어는 사물들의 부분에게도 아레테가 있듯이(예컨대 눈의 아레테는 잘 보는 것이다), 인간 자체의 아레테도 있지 않겠는가? 어떤 부분들, 특정한 직업들, ... 에서의 아레테가 아니라 인간 자체, 인간의 삶 자체의 아레테. 이것은 역시 소크라테스적인 생각이다.


문제의 실마리는 역시 본질이다. 식물도 생명을 가지고 있으며 영양섭취를 한다. 따라서 단순히 성징하는 것이 인간의 행복일 수는 없다. 나아가 동물도 운동하고 감각한다. 따라서 운동하고 감각하는 것으로는 충분한 인간적 행복이 될 수 없다. 그렇다면 오로지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본질이 최선의 삶의 요건이 될 것이다. 그것은 곧 이성(logos)이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성을 충분히 실현하는 삶이야말로 인간적 삶이라는, 인간으로서의 아레테를 실현하고 행복을 누리는 삶이라고 결론 내린다.


인간적 삶이란 “이성과 합치하는(또는 이성과 함께 하는) 영혼의 활동”이다. 그러나 여기에 “전 생애에 걸쳐서”라는 조건이 추가되어야 한다. “한 마리의 제비가 봄을 만드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실천적 지혜(sophrosynê)와 이론적 지혜(sophia)를 구분했으며, 둘 사이의 차이를 정교화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무엇이든 지나치지 않게”라는 델포이(델피) 신전의 격언을 다듬어 중용(中庸) 사상을 전개했다. 예컨대 용기는 비겁과 만용의 중용이다. 중용은 중간이 아니다. 따라서 그것은 합리적 계산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을 걸쳐 조금씩 형성되는 지혜에 가깝다 할 수 있다.


정치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이상국가론을 비판했다. 국가의 본질은 다양성에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정체에는 전제정치, 귀족정치, 민주정치가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어떤 한 정체가 낫다고 하기보다는 어떤 정체든 그 잘된 형태가 있고 못된 형태가 있다고 보았다.


당대의 문화를 존재론/인식론적 차원과 윤리적 차원에서 비판했던 플라톤과 달리, 아리스토텔레스는 두 차원 모두에서 문화를 좀 더 긍정적으로 봄으로써 비평의 새로운 차원을 마련했다. 이 모든 차이들이 형상을 내재적으로 보고, 세계를 좀 더 현실적으로 봄으로써 생겨난 차이들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을 잇고 있으면서도 여러 면에서 차이를 내포하는 체계를 만들었다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