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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선녀 이야기/마리선녀 철학

마르크스 사상의 발전맥락에서 본 '경제-철학 초고' /안상헌

by 마리산인1324 2010. 10. 6.

<안상헌교수 홈피>

http://web.chungbuk.ac.kr/~ahnsah/tnboard/main.cgi?board=open_board

 

 

이 글은 91년 계간지 '사상문예운동'에서 마르크스의 원전을 설명하고 풀이하는 시리즈 하나로 발표된 논문입니다. 이 글은 본래 저의 학위논문의 작은 일부인데, 이를 대폭 고쳐서 일반인들이 읽기 쉽도록 개작한 것입니다. 마르크스의 '경제철학 초고'에 관심이 있으신 분은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안상헌

 

 

 

1844년 '경제-철학 초고' 해제(사상문예운동)

 

마르크스 사상의 발전맥락에서 본 '경제-철학 초고'

 

안 상 헌 (충북대 철학과 교수)

 

1. 들어가는 말

 

마르크스의 저술 중 '경제-철학 초고'만큼 사상적, 문헌학적 논쟁을 불러일으킨 저술도 드물다. 이 저술을 어떻게 해석하고 평가하는가에 따라 마르크스 사상과 마르크스주의의 본질을 이해하는 방식이 달라진 것이 사실이다. 1844년 4월부터 8월 사이에 저술된 '초고'가 공개적으로 처음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그 후 90여 년이나 지난 1932년이었다. 이 시기는 이미 마르크스의 후기 저술과 엥겔스 및 레닌의 저술에 토대를 둔 마르크스-레닌주의가 정립되고, 러시아에서는 10월 혁명에 의해 사회주의체제가 성립했던 시기였다. 그러나 소련에서와는 달리 노동자계급에 의한 사회주의혁명의 실현가능성이 희박했던 서구에서는 마르크스주의의 기원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었으며, 특히 마르크스 사상의 헤겔 철학적 기원에 대한 연구와 함께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정초가 요구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요구와 함께 마르크스의 초기저술의 대부분이 출간되었으며, 특히 '초고'는 서구의 이른바 네오 마르크스주의자들에 의해 스탈린 체제의 점증하는 권위주의와 관료주의에 대항하는 무기로서 각별한 주목을 받았다.

 

이에 반해 해방이후 우리나라에서는 마르크스의 저술 중에서 '초고'가 가장 먼저 주목을 받았으며, 이 과정은 우리의 특수한 역사적 현실을 반영하는 것으로 매우 특이하다. ‘반공'을 국시로 하는 우리 현실에서 마르크스의 사상은 오랫동안 금단의 열매였다. 그러나 60년대 이후 공업화 정책과 함께 노동자들의 삶의 소외가 날로 심화되면서 노동의 소외를 다룬 서구의 저술들이 서서히 관심의 대상이 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노동의 소외를 다룬 마르크스의 저술에 직접적인 접근이 어려웠던 당시 소외론은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사회비판이론을 통해 간접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60년대 중반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한 사람인 마르쿠제의 '이성과 혁명'이 번역, 소개되면서, 호르크하이머, 아도르노, 하버마스, 프롬과 같은 프랑크푸르트 학파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었으며, 이 학파에 의해 소개된 소외론은 마르크스의 '초고'를 일면적으로 해석한 이른바 네오마르크스주의적 해석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외론은 비판적 지식인들은 물론 일반대중에게도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으며, 그러자 정부는 ‘이데올로기비판'을 강화하고, 소외론에 대한 저술들을 ‘이념 서적'으로 분류하여 출판과 판매금지는 물론, 대학도서관에서의 대출을 금지하였다. 이와 같은 시기에 헤겔의 노동을 매개로 하는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이 주목을 받았으며, '정신현상학'을 비롯한 헤겔 철학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헤겔 철학에 대한 관심은 헤겔 철학 전반에 대한 관심이라기보다는 마르크스의 노동철학에 접근하기 위한 수단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노동의 소외에 대한 이해의 수준은 ?초고?의 ‘소외된 노동'에 대한 해설서들을 통해 개인의 주관적, 실존적, 심리적 소외감이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노동의 소외의 객관적인 성격을 파악하는데 이르게 되었다. 그러나 마르크스사상에 대한 전체적인 이해가 결여되어 있던 당시 '초고'는 ‘소외론'의 관점에서만 편협하게 이해되었다.

 

이러한 경향은 사회변혁이론의 급속한 성장을 가져온 80년대 후반에 들면서 마르크스의 사상을 비롯한 다양한 변혁이론은 물론, 마르크스-레닌주의와 주체사상에 이르는 광범한 실천적 변혁이론이 소개되면서 실천운동의 사상적 기반을 구축하기 위한 논쟁이 고조되었으며, 그에 따라 마르크스 사상과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이해의 수준도 상당히 높아졌다. 이와 함께 정통 마르크스주의에 의한 마르크스 해석이 본격적으로 소개되면서 서구의 마르크스 연구가와 마르크스주의자의 마르크스 해석에 일방적으로 의존한 일면적 이해가 비판적으로 검토되기 시작했다. 특히 '초고'와 관련하여 본다면, 초기 마르크스와 후기 마르크스의 연속성과 단절성에 관한 논쟁이 소개되면서, 마르크스의 초기 저술과 후기 저술의 ‘인식론적 단절'을 주장하는 알뛰세의 저술에서 비롯된 이데올로기와 과학, 휴머니즘과 반휴머니즘, 철학과 과학의 대립 등에 대한 논의가 주목을 받고 있다. 그러나 아직 이에 대한 깊은 토론은 없지만, 단절성과 연속성에 대한 논의는 '초고'를 비롯한 마르크스의 초기 저술을 올바로 이해하는데 있어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2. '초고'의 배경과 실천적 문제의식

 

'초고'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초고' 저술 당시의 마르크스의 실천적 문제의식을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초고'는 마르크스의 순수이론적 관심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그 이전부터 견지하고 있었던 일관된 실천적 문제의식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주시하다시피 마르크스는 1818년 트리어에서 태어나 그 곳에서 김나지움을 졸업한 후 본대학을 거쳐, 1836년 이후 베를린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했으며, 여기에서 청년헤겔학파에 가담하였다. 이 시기에 그는 헤겔 철학에 깊이 몰두하였다. 1841년 예나 대학에서 학위를 받은 후 대학에 취직하려 했으나 여의치 않자, ‘라인신문'의 편집을 맡으면서 당시의 현실문제와 관련하여 정부에 대해 강력한 비판을 수행했다. 그 결과 정부는 ‘라인신문'의 폐간시켰다. 1943년 3월 ‘라인신문'을 떠난 그는 '독불 연보'를 발간하기 위해 파리에 오기까지 크로이즈나하에서 프랑스혁명사와 유물론 및 사회주의를 연구했으며, 이전부터 준비해 왔던 헤겔 ‘국가론’에 대한 비판에 착수했다. 그는 한 차례의 발간으로 끝난 '독불 연보'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사상발전의 중요한 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프롤레타리아의 발견'이었다. 그는 독일혁명을 과제로 설정한 논문 ‘헤겔 법철학 비판'과 ‘유대인 문제'를 통해 독일대중들에 의한 독일혁명의 역사적 불가피성을 깨닫게 되면서 독일대중에게 독일혁명의 ‘이론적 무기'를 제공하는 것을 일차적 과제로 삼았다. 특히 그는 헤겔 법철학 비판을 통해, 국가와 법에 대한 비판을 위해서는 먼저 그 물질적 토대인 시민사회에 대한 경제학적 해부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얻었다. 이러한 결론을 얻은 그는 1844년부터 정치경제학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에 착수하는 한 편 '초고'의 집필에 들어갔다. '초고'를 집필하는 동안 그는 파리에 체류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초고'는 일명 ‘파리 초고'라 부른다.

 

'초고'의 실천적 문제의식은 1859년 그의 회고에서도 잘 나타나 있듯이 1842년 ‘라인신문’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라인신문’ 편집장을 하면서 그는 자신의 오랜 이념적 동료들이었던 청년 헤겔학도들이 프랑스의 사회주의이론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여 독일현실과는 동떨어진 모험적 개혁론을 집요하게 주장하는 기고에 진저리를 내면서도, 프랑스 현실에서 사회주의가 어떠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를 잘 알지 못하여 이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라인신문'이 폐간되자 그는 프랑스역사와 유물론 및 사회주의에 대한 연구에 착수했으며, 그 결과 그는 사회주의 사상을 수용하는 동시에 그 문제점도 간파할 수 있었다.

 

'독불 연보'를 발간하면서 그는 바우어 일파와 공식적인 결별을 하게 된다. 그 이유는 당시의 독일현실에서 혁명이 불가피하다는 사실에는 모두가 공감하면서도, 그 방법론에 있어서는 상반된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마르크스는 독일혁명의 역사적 불가피성을 강조하고 독일혁명에서 대중이 유일한 변혁의 주체라고 생각한 반면에, 바우어 일파는 자의식조차 결여된 무지몽매한 대중들이 독일혁명의 주체가 될 수는 없으며, 독일에서는 비판적 지식인의 비판적 비판에 의한 의식혁명을 통해서만 개혁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생각은 포이어바하와 루게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독일혁명에 있어 대중의 주체적 역량에 대한 이러한 상이한 판단은 이들을 완전히 갈라놓았다. 마르크스는 이 시기 이후부터 자신의 가장 중요한 이론적 실천적 과제로서 대중들에 의한 독일혁명의 가능성을 당시 독일의 구체적인 현실에서 구명하여 독일대중에게 독일혁명의 ‘이론적 무기'를 제공하는 것으로 설정했다.

 

3. '초고'의 형태 및 구성

 

'초고'는 본래 매우 복잡한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 인쇄전지의 가운데를 접어 두 장, 즉 네 면으로 만들고 각 면을 두세 칸으로 나누거나 통째로 사용하고 있으며, 면의 순서도 매우 번잡하게 이루어져 있다. 발견된 '초고'는 각각 별도의 쪽수가 매겨진 네 종류가 있는데 그 중 분량이 비교적 많은 제1초고와 제3초고는 공책의 형태로 매어져 있었고 제2초고는 낱장(두 장 네 쪽)으로 제4초고는 제3초고에 따로 끼어져 있었다. '초고'의 각 부분은 내용에 있어서도 서로 다른 주제를 다루고 있어 단편의 성격이 강하고 전체적인 통일성이나 유기적 연관을 발견하기가 매우 어렵게 되어 있다.

 

27면을 사용한 제1초고는 노동임금, 자본의 이윤, 지대, 소외된 노동을 다루고 있으며 소외된 노동을 다룬 부분을 제외하면 슐츠, 뷰레, 세이, 스미스 뻬께르 등의 고전경제학적 저술을 인용하여 임금, 자본, 지대를 새로운 방식으로 해명하는 내용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제2초고는 대부분이 없어지고 남아있는 40-43면에는 ‘사적소유의 상태'를 해명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그리고 총 41면을 사용한 제3초고는 사적소유와 노동, 사적소유와 공산주의, 욕망, 생산, 노동분업, 화폐, 헤겔 법철학과 철학 일반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으며, 이 가운데 ‘초고의 서문'으로 알려져 있는 서문이 들어있다. 그리고 마지막 4면으로 된 제4초고는 헤겔의 ‘정신현상학'의 마지막 장인 ‘절대지'의 내용을 거의 그대로 옮긴 발췌문이다.

 

이와 같이 '초고'는 내용에 있어 전체적인 통일성이나 유기적 연관을 발견하기 매우 어려운 말 그대로 '초고'이기 때문에 출판과정에서 편집자의 편집 의도에 따라 처음부터 각기 다른 모습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1932년 아도라츠키(V.Adoratskiej)가 편집하여 출판한 '마르크스-엥겔스 전집(구MEGA)'은 같은 해에 란드슈트(Landchut)와 메이어(J.P.Mayer)가 편집한 '초기 저술(Die Frühschriften)'과 편집순서가 다소 다르며, 우리에게 주로 알려져 있는 동독판 '마르크스-엥겔스 전집(MEW)'은 전자(구MEGA)의 편집 방법을 따르고 있다. 이 두 가지의 두드러진 차이는, 전자의 경우 제4초고를 제외한 나머지 제1, 제2, 제3초고를 차례로 싣고 있는데 비해, 후자의 경우는 제1초고를 제외한 제3, 제2, 제4초고를 차례로 싣고 있다는 점이다. 헤겔의 저작을 그대로 옮긴 제4초고를 제외한 전자가 마르크스에 대한 헤겔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약화하고 있다면, 이에 반해 정치경제학에 관한 내용을 담고있는 제1초고를 제외한 후자는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비판을 약화시키는 한 편 마르크스에 미친 헤겔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강조하려는 의도가 깔려있다.

 

그 후 서구에서 출판된 '초고'의 경우에는 편자의 과도한 주관적인 편집의도에 따라 발췌와 생략이 심하며 '초고' 본래의 모습을 가늠하기 어려운 판본이 적지 않다. 과도한 발췌와 생략은 '초고'에 나타나는 마르크스의 사상을 개별적인 부분으로 해체하여 재구성함으로써 '초고'를 마르크스 자신의 사상발전의 맥락과는 무관하게 왜곡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러한 왜곡은 특히 ?초고?를 고전경제학 비판을 중심으로 하는 경제학적 내용과 헤겔과 마르크스의 사상적 연관을 중심으로 하는 철학적 내용을 분리하려는 시도에서 잘 나타난다. ?초고?는 엄격히 말해 고전적 의미에서의 경제학적 저술도 철학적 저술도 아니며, 마르크스 자신의 실천적 문제의식을 반영하고 있는 실천적 저술이다. 따라서 이 저술은 마르크스의 실천적 문제의식의 측면에서 해석되고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4. '초고'의 주요내용

 

앞서 언급하였듯이 '초고'는 여러 단편적인 내용이 복잡하게 서술되어 있어 전체적인 내용을 간추려 소개하기가 매우 어렵다. 그러므로 마르크스 사상의 발전맥락에서 '초고'가 차지하는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발췌나 생략이 없는 '초고'의 원전을 침착하게 읽어 나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러나 선이해를 돕기 위해 '초고'의 내용을 크게 나눈다면, 제1초고와 제2초고 그리고 제3초고 전반부의 정치경제학적 내용과 소외된 노동, 사적소유와 공산주의를 논증하고 있는 부분과, 제3초고의 헤겔 철학과 철학일반에 대한 비판을 다루는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그러나 정치경제학적 내용과 철학적 내용은 '독불 연보'에서 강조한 바 있는 노동자에게 변혁의 ‘이론적 무기', 즉 현실변혁에 있어 노동자의 역사적 역할의 필연성을 해명하기 위한 일관된 실천적 문제의식의 양면을 이루고 있다. 즉 정치경제학적인 내용을 다루는 부분이 국민경제학의 연구성과를 출발점으로 하여 결국은 부르주아 사회에서의 자본과 노동의 적대적인 대립의 원인이 되는 사적소유와 소외된 노동의 필연적인 내적 연관을 논증함으로써 자본과 노동과 대립의 현실적 지양의 역사적 필연성을 해명하기 위한 것이라면, 헤겔 철학과 철학일반에 대한 비판을 다루는 후자는, 노동자 대중의 물리적인 힘을 매개로 하는 현실적 변혁이론을 거부하면서 오로지 지식인이 주체가 되는 ‘비판적 비판'을 매개로 하여 현실을 변혁하려는 바우어 일파의 관념론적 변혁이론의 실천적 한계를 비판하기 위해 포이어바하의 인간학적 유물론을 매개로 헤겔 철학의 전제를 비판적으로 검토하여 그 한계를 폭로하기 위한 것이다.

 

1) '초고'의 ‘서문'

 

마르크스는 제3초고에 끼어있는 ‘서문'에서 '초고'의 저술동기와 서술방법 및 다른 사상가와의 영향관계를 언급하고 있는데, 이 부분은 '초고'의 전체적인 성격은 물론 그의 문제의식을 이해하는데 매우 유익한 자료이다. 여기에서 우선 주목되는 바는 저술동기와 서술방법에 대한 것이다. 그는 서두에서, “나는 '독불 연보'에서 헤겔의 법철학을 비판하는 형식으로 전개될 법학 및 국가론에 대한 비판을 예고한 바 있다. 그러나 출판을 위한 퇴고과정에서, 오로지 사변만을 겨냥한 비판이 다양한 자료들에 대한 비판과 뒤섞여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나는 이것이 부적절할 뿐만 아니라 논의의 전개를 가로막고 이해를 곤란하게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더구나 다루고자 하는 대상들이 많고 또 다양하기 때문에 오직 경구형태를 취할 경우에나 이것들을 하나의 문서로 압축할 수 있을 것인데, 경구적 서술방법은 자의적인 체계화라는 ‘가상'을 불러일으킬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법 비판, 도덕 비판, 정치학비판 등을 별개의 독립적인 팜플렛으로 잇달아 내고, 나중에 가서 별도의 작업을 통해 전체를 종합하여 각 부분의 관계를 구명하고, 마지막으로 각 대상영역에 대한 사변적 입론들을 비판하고자 한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이 문서에서는 국가, 법, 도덕, 부르주아적 생활 등에 대한 국민경제학의 연관관계는 국민경제학 자체가 이 대상들과 분명하게 관련되는 범위 안에서만 다루어진다."고 말하고 있다.

 

그의 헤겔 법철학 비판의 본래 목적은 현존하는 프로이센의 입헌군주제를 비판하기 위한 것이었다. ‘라인신문'시절 그는, 빈곤층이 땔감으로 고사목을 채취하는 것조차 법률로서 금지하고 모젤 지방의 포도재배농민들이 날로 도탄에 빠지는 비참한 현실을 우연지사로만 간주하는 정부의 태도와 이를 비판하는 언론활동을 탄압하는 현실을 지켜보면서, 이러한 문제들은 모두 현존 국가의 비이성적 성격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그는 ‘라인신문'의 편집장을 물러나자마자 헤겔의 법철학을 비판자료로 삼아, 현존하는 프로이센국가가 특권층의 사적이익에 봉사하는 정치적 도구에 불과함에도 불구하고, 국가를 국가구성원의 보편적 이익을 실현하기 위한 이성적 정치체제로 정당화하고 있는 헤겔 법철학에 대한 비판적 작업에 착수했었다. 그러나 이 저술은 헤겔의 ‘텍스트'에 대한 주석형태를 취하고 있어, 그 안에는 프로이센체제 비판, 헤겔의 국가론 비판, 헤겔 철학의 사변적 방법비판이 혼재되어 있었다. 그는 이를 출판하기 위해 여러 번 수정에 착수했지만 결국은 출판을 포기하고 말았다. 그러나 그는 헤겔 법철학에 대한 비판적 연구를 통해 국가나 법에 대한 진정한 비판은 그것이 뿌리박고 있는 삶의 물질적 조건 즉 ‘시민사회'에 대한 경제학적 해부가 선행하여야 한다는 결론을 얻었다. 이러한 결론에 따라 그는 대중에 의한 독일혁명의 역사적 불가피성을 간략하게 논증했던 '독불 연보' 이후, 대중들의 물질적 삶의 조건에 대한 경제학적 분석을 시도하였으며, 그 첫 작업이 바로 이 '초고'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초고'는 자체로서 독립적인 것이 아니라 정치, 법, 도덕 등과 같은 상부구조에 대한 비판적 분석을 위한 전초작업이라고 할 수 있으며, 전체적인 작업이 일련의 프로그램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마르크스는 노동자의 물질적 삶의 조건을 비판적으로 분석함에 있어, 국민경제학을 비판적으로 천착해 들어간 프랑스와 영국의 사회주의자들, 독일의 사회주의자 바이틀링의 저술, '21개의 활'에 수록된 헤쓰의 논문과 '독불 연보'에 실린 엥겔스의 “국민경제학비판 요강"의 연구성과를 두루 이용했으며, 그 중에서도 특히 헤쓰와 엥겔스의 저술의 연구성과를 이용하였다. 그러나 그는 헤쓰와 엥겔스의 저술을 통해 처음 정치경제학인 관심을 가진 것이 아니라 '독불 연보'에 실린 자신의 논문에서 초보적인 원리를 어느 정도 개진하였다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언급은 '독불 연보'에서 대중의 역사적 역할과 필연성에 대한 자신의 문제의식이 '초고'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는 포이어바하의 인간학적 유물론에 대해, “국민경제학을 비판적으로 천착했던" 엥겔스와 헤쓰의 저술을 제외하면 “포이어바하의 폭로가 독일에서 국민경제학에 대한 실증적 비판과 그 비판의 근거설정을 가능케 한" 유일한 인물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는 포이어바하의 유물론을 ‘실증적 비판'의 철학적 근거설정으로 파악하고 이것을 헤겔의 ‘정신현상학'과 ‘논리학’ 이후 최대의 걸작이라고 평가한다.

 

‘서문'에 나타난 이러한 언급들은 '초고'의 정치경제학적 작업의 방법론적 성격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으며 이는 그의 비판적 방법의 명료화 과정에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그 이전에는 토대에 대한 비판과 상부구조에 대한 비판의 이중적 과제를 체계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비판적 방법을 정립하지 못했기 때문에, ‘현존하는 국가에 대한 비판은 그 물질적 토대에 대한 비판적 분석에 근거한다'는 유물론적 전회에도 불구하고, ‘삶의 물질적 조건'에 대한 본격적인 비판적 분석에는 이르지 못했다. 그는 '초고'에 이르러 처음으로 대중들의 물질적 삶의 조건에 대한 정치경제학적인 본격적인 비판적 분석에 착수할 수 있었다.

 

(2) 국민경제학비판

 

‘서문'에서 초고'의 연구결과가 “국민경제학에 대한 양심적인 비판적 연구에 기초한 전적으로 경험적인 분석에 의해 획득되었다"고 말하고 있듯이, 그의 연구는 ‘국민경제학'의 연구성과인 경제학적 사실에서 출발하고 있다. 이러한 방법론적 원칙을 강조하는 이유는 자신의 현실분석에는 ‘비판적 비판'에 나타나는 어떠한 사변적 요소도 없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그는 비판적 비판가들이 ‘유토피아적 문구'와 ‘오로지 순수한, 전적으로 결단적인, 전적인 비판적 비판’ 혹은 ‘대중다운 대중을 옹호하는 대변자'라고 자처하면서 실증적인 비판가들을 비난하는데 대항하여 자신은 국민경제학이 도출한 결론에 입각한 실증적이고 경험적인 분석을 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초고'의 ‘분석적 방법'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초고'는 프롤레타리아의 현실에 대한 경험적이고 실증적인 분석을 통해 그들에게 ‘이론적 무기'를 제공하려는 실천적 문제의식의 산물이다. 이러한 ‘이론적 무기'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그 전제가 되는 구체적인 현실에 대한 분석이 선행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그는 경제적 현실에 대한 국민경제학의 성과에서 출발했다.

 

우리는 국민경제학의 전제들을 출발점으로 삼았다. 우리는 국민경제학의 언어와 법칙을 받아들였다. 우리는 사적소유를 전제하였으며 노동과 자본과 토지의 구별, 노동임금과 이윤과 지대의 구별을, 노동분업과 경쟁과 교환가치의 개념을 전제로 하였다. 우리는 국민경제학으로부터 그들의 고유한 개념으로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밝힐 수 있었다.

 

그는 국민경제학의 연구성과를 객관적 사실로서 받아들이고, 이로부터 1) 노동자는 상품으로 그것도 가장 값싼 상품으로 전락한다, 2) 노동자에 의한 생산력의 규모와 노동자의 궁핍은 반비례한다, 3) 경쟁은 필연적으로 소수의 수중에 자본의 집중을 가져오고 독점을 낳는다, 4) 자본가와 지주의 구별, 농부와 공장노동자의 구분이 사라지고 모든 사회는 소유자와 무산노동자 두 계급으로 분화된다는 사실을 도출해 내었다. 이러한 국민경제학적 사실은 모두 경험적으로 실증되는 객관적인 사실들이다.

그러나 그의 목적은 국민경제학적 사실의 확인이 아니라 국민경제학의 한계를 넘어서 새로운 사실을 해명하는데 있었다. “국민경제학은 사적소유라는 사실을 출발점으로 삼는다. 그렇지만 국민경제학은 우리에게 그 사실을 설명하지 않는다. 국민경제학은 사적소유가 현실적으로 경과하는 물질적 과정을 보편적이고 추상적인 형식으로 파악하여 그것을 법칙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국민경제학은 그 법칙들이 어떻게 하여 사적소유의 본질로부터 나오는 것인지를 제시하지 못한다는 의미에서 개념적 이해에 도달하지 못한다. 즉 국민경제학은 노동과 자본, 자본과 토지의 분화에 대한 근거를 전혀 설명하지 못한다."

 

마르크스에 의하면, 국민경제학은 자본과 노동, 자본과 토지의 분리, 경쟁과 독점, 자본집중, 무산자와 유산자의 계급분화의 내적 연관에 대한 ‘개념적 이해'에 도달하지 못하고, 단지 주어진 개별적인 ‘우연적 사건'들의 집합에 대한 ‘현상적 이해'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비판은 헤겔의 변증법적 인식론의 영향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헤겔의 변증법적 인식은 개별적 사실에 대한 오성적 인식 단계를 넘어서 이성적 진리에 도달하는 것이다. 즉 개념적 지식은 사태의 총체성, 즉 사태의 역사적 발전의 전 과정에 대한 총체적 이해이다. 헤겔은 사태의 변증법적 발전과 지양과정에 대한 변증법적 총체적 인식을 ‘개념적(begreifendes)’ 인식이라 하고 이를 오성적 단계의 인식인 ‘표상적(vorstellendes)’ 지식과 구별하였다. 마르크스는 이러한 변증법적 인식에 의한 사태의 인식을 사태의 총체적인 발전과정에 대한 ‘개념적’ 파악으로 간주했다.

 

그런데 국민경제학은 개별현상에 대한 표상적 인식에 기초한 비역사적 원자론적 방법에 의거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국민경제학은 주어진 개별적 경제적 현상들인 자본, 노동, 지대, 경쟁, 독점, 무산자, 유산자를 ‘경험적 소여'로 간주하고 이들을 현실적인 관계로부터 추상하여 형식적 법칙을 만들 뿐, 이러한 현상들의 본질연관을 개념적으로 파악하지 못했다. 국민경제학은 개별적 사태들을 존재로, 그리고 그들간의 관계 또한 우연적인 외적 관계로 파악함으로써, ‘사적소유'를 전제로 하는 개별적 사태들이 변증법적인 연관 하에 발생하고 발전한다는 사실을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이 마르크스의 국민경제학비판의 출발점이다. '초고'의 정치경제학에 대한 변증법적 접근은 특히 후기의 정치경제학적 저술들의 더욱 발전된 방법으로 나타난다.

 

마르크스의 비판적 결론은 한 마디로 국민경제학은 “운동의 맥락"을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국민경제학은 경쟁이론과 독점이론을 대등한 독립적인 학설로서, 그리고 토지분화이론과 대토지 소유 이론을 각각 대립되는 학설로 공존하는 것을 허용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경쟁은 독점과 무관한 우연적 사건이 아니라 독점자본의 형성의 필연적 매개과정이고 소규모의 토지소유가 대토지 소유제로 나아가는 것도 필연적인 과정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 마르크스의 주장이다. '초고' 해석에 있어 국민경제학에 대한 이러한 방법론적인 비판은 ‘소외된 노동'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루어져 왔다. 그러나 국민경제학에 대한 이러한 방법론적 비판은 '초고'가 ‘전적으로 경험적인 분석'에 입각한 경험론적인 방법론을 택하고 있다고 보는 해석에 대한 반론적 의의가 크다고 할 것이다.

 

(3) 사적소유의 비밀로서의 ‘소외된 노동'

 

'초고'에서 마르크스가 목표로 하는 것은 국민경제학적 사실로부터 ‘소외된 노동'을 해명하고 나아가 소외된 노동의 폐지의 역사적 필연성을 논증하는 것이다. 과연 그는 '초고'에서 이러한 목표에 도달하고 있는지를 살펴보자. 그는 제1초고의 대부분을 국민경제학적 사실, 즉 “노동자가 부를 많이 생산하면 할수록, 그는 더욱 더 궁핍해진다. 노동자가 상품을 많이 생산하면 할수록 그 자신은 더욱 싼 상품으로 전락한다. 인간의 값어치가 떨어지는 것과 사물의 값어치가 높아지는 것은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 노동은 상품을 생산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신과 노동자를 하나의 상품으로 만들어 버린다".는 사실을 밝혀내는데 주력했다.^

 

(1) 이러한 사실로부터 그는 노동자가 그의 생산물로부터 소외된다는 것을 먼저 논증해 낸다. “이러한 사실은 결국 노동이 그가 생산하는 대상 곧 노동의 생산물이 ‘낯선 존재'로서 생산자와는 독립된 힘으로써 노동에 맞서게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노동의 생산물은 하나의 대상으로 고정되고 사물화된 노동이 된다. 즉 노동의 생산물은 노동의 대상화이다. 노동의 실현은 곧 노동의 대상화이다. 국민경제학적 상황에서는 이러한 노동의 현실화가 노동자의 탈현실화(Entwirklichung)로, 대상화가 대상의 상실과 노예성으로, 획득이 소외 곧 외화로 나타난다".

 

인간의 본질이 실현되는 노동의 대상화가 ‘사적소유'를 전제로 하는 부르주아 사회에서는 노동의 탈현실화로 나타난다. 노동은 본래 인간의 삶을 실현하는 방식으로서, 인간은 사용가치를 생산하여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노동한다. 그런데 ‘사적소유'가 지배하는 부르주아 사회에서는 노동자의 노동생산물이 그들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는 낯선 독립적인 힘으로서 노동자를 지배한다. 노동자는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고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자연적 노동대상에 자신의 생명을 집어넣게 되는데, 이렇게 노동대상에 투여된 노동자의 생명이 노동자로부터 떨어져 나가 그에게 낯선 적대적인 힘이 된다. 그러면 국민경제학은 노동자와 노동생산물의 관계를 이렇게 파악하지 못하는가?

 

그에 의하면 “국민경제학은 노동자와 생산물의 직접적인 관계를 고찰하지 않음으로써 노동의 본질 속에 깃들어있는 노동의 소외를 은폐"하며 “노동은 부자들을 위해서는 기적을 생산하지만, 노동자를 위해서는 궁핍을 생산한다. 노동은 궁전을 생산하지만 노동자를 위해서는 지옥을 생산한다. 노동은 아름다움을 생산하지만 노동자를 위해서는 기형적인 모습을 생산한다. 노동은 기계를 통해 노동을 보충하지만, 그 반면에 다른 일부의 노동자들을 야만적인 노동으로 몰고 가고, 또 다른 노동자들을 기계로 만든다. 노동은 정신을 생산하지만, 노동자를 위해서는 우둔함과 백치상태를 생산한다".

 

여기에서 그가 ‘국민경제학은 노동자와 생산물의 직접적인 관계를 고려하지 않는다'는 비판은 국민경제학이 노동자와 생산물의 관계를 개념적으로 파악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르크스는 “노동의 본질적 상태가 어떤 것인가를 묻는 것은 노동자와 생산물의 관계를 묻는 것과 같은 말"로서, 노동은 ‘노동’ 자체로 독립적으로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한다.

 

2) 다음으로 그는 노동자의 생산물로부터의 소외에서 노동자의 생산활동의 소외로 나아간다. 여기서 분명히 해 둘 것은 후자를 전자에서 논리적으로 연역한 것으로 파악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노동활동의 소외는 논리적인 산물이 아니라 객관적인 사실이다. “소외는 생산결과에서만 나타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생산행위와 생산활동에도 나타난다. 노동자가 노동행위에서 소외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자기행위의 산물로부터 낯설게 되겠는가? 사실 생산물은 활동 곧 생산의 총괄적 결과에 불과한 것이다. 노동생산물이 소외라고 한다면 생산 그 자체는 활동적인 외화, 활동의 외화, 외화된 활동일 수밖에 없다. 노동대상의 소외로 총괄되는 것은 오로지 소외, 곧 노동활동 자체 안에서 이루어지는 외화일 뿐이다." 그러면 이러한 ‘노동의 외화'는 경험적으로는 어떻게 나타나는가?

 

“그러면 노동의 외화는 어떤 것인가? 첫째 노동은 노동자에 대해 외부적 존재로 나타난다. 다시 말하면 노동은 노동자의 본질에 속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을 통해 자신을 긍정이 아니라 부정하며, 행복이 아니라 불행을 느끼며 자유로운 육체적 정신적 에너지를 발산하지 못하고 자신의 육체를 채찍질하고 자신의 정신을 황폐화시킨다. 따라서 노동자는 노동 바깥에서 자신을 느끼며 노동 안에서는 자신의 외부에 있음을 느낀다. 그는 노동을 하지 않을 때에 편안함을 느끼고 노동을 할 때에는 편안하지 않다. 따라서 노동은 자발적인 것이 아니라 강제된 강제노동이다. 따라서 노동은 욕구의 충족이 아니라 노동이 아닌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이렇듯 ‘노동의 소외'는 경험적 사실로서 확인된다. 노동이 인간의 생존방식이자 고유한 활동임에도 불구하고 노동이 아닌 먹고 마시고 성행위를 하는 속에서 즐거움을 느끼고 노동하는 동안에는 고통과 강제를 느끼는 것은 노동자라면 누구나 일상적으로 느끼는 객관적인 경험이다. 노동이 자체로서 즐거운 활동일 수는 없는가? 왜 노동은 고통일 수밖에 없는가? 이를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은 그러한 사회를 만드는 길 밖에 없다는 것이 마르크스의 주장이다. 이 사회는 노동이 해방된 사회이고 인간이 해방된 사회이다.

 

3) 다음으로 그는 소외된 노동을 인간의 유적본질의 소외로 파악한다. “소외된 노동은 인간의 ‘유적 생활(Gattungsleben)’을 개인적 생활의 수단으로 만든다. 첫째 소외된 노동은 유적생활과 개인적 생활을 소외시키며, 둘째 개인적 생활을 추상화함으로써 그것을 유적생활의 목적으로, 그것도 추상적이고 소외된 형식의 목적으로 만든다."

 

포이어바하로부터 차용한 ‘유적 본질(Gattungswesen)'이라는 개념은, '초고'의 전체 맥락에서 볼 때, 인간과 자연, 그리고 인간과 인간이 맺고있는 유기적 관계를 총괄하는 개념으로 인간의 대자연적, 대사회적 본질, 즉 노동하는 인간본질을 염두에 둔 것이다. 마르크스는 육체를 가진 자연적 인간이 노동을 통해 자연과 관계하는 방식과 동시에 인간이 다른 인간들과 맺는 사회적 관계의 총체성을 언급하면서 동물의 존재방식과 이를 대비시킨다.

 

“인간은 대상세계의 가공을 통해 비로소 자기 자신을 유적존재로서 현실에서 실증한다. 이러한 생산이 곧 유적생활이다. 자연은 이러한 생산을 통하여 인간의 작품과 현실로 등장한다. 따라서 노동의 대상은 인간의 유적생활의 대상이다. 인간은 지성을 통해 자기를 이중화하여 자신이 창조한 세계 안에서 자신을 직관할 뿐만 아니라, 활동적으로 또는 현실적으로 자기를 이중화하여 자기 자신에 의해 창조된 세계 속에서 자신을 직관하기도 한다. 따라서 인간으로부터 소외된 노동, 즉 생산대상을 탈취함으로써 인간으로부터 인간의 유적생활, 즉 인간의 현실적인 유적 대상성을 탈취하며 동물에 대한 인간의 우위를 인간의 약점으로 바꾸어 버린다. 그리하여 비유기체인 육체인 자연이 인간으로부터 탈취되어 버리는 것이다.

 

이러한 언급에서 우리는 ‘유적본질'이 자연적 존재이자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보편적 존재방식이자, 노동과 노동생산물을 통해 확인되고 실현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유적존재는 개인의 개별적 존재방식이 아니라 자연적, 사회적 존재로서의 총체적인 인간의 존재방식이다. 포이어바하의 ‘유적존재'가 종교분석을 통해 도출한 사랑과 연대감으로 완성되는 유적존재라면, 마르크스의 ‘유적존재'는 육체를 가진 자연적 인간이 노동을 통해 대상 안에 실현하고 확인할 수 있는 인간의 존재방식이다. 그런데 노동의 대상이 탈취되어 버리면 인간은 자신의 유적존재를 탈취 당하는 결과가 된다는 것이다.

 

마르크스가 유적존재의 소외를 통해 강조하는 바는 소외된 노동은 “자연 뿐만 아니라 인간의 정신적 유적능력까지도 인간과는 낯선 존재, 곧 인간의 개인적 생존수단으로 만들어 버리고, 인간으로부터 자신의 육체를 자신의 외부에 존재하는 자연인 것처럼 만들어 버린다"는 것이다. 유적존재가 육체와 정신으로 분리되면 육체도 정신도 모두 노동도구로 전락하게 된다.

 

4) 최종적인 소외는 ‘인간의 인간으로부터의 소외'이다. 마르크스는 이러한 소외를 인간이 자신의 생산물로부터, 자신의 생존활동으로부터, 자신의 유적본질로부터의 소외에서 초래되는 직접적인 결과라고 말한다. “인간이 자기 자신에 맞서게 되면 다른 사람과도 맞서게 된다. (...) 인간이 자신의 유적존재로부터 소외되어 있다는 것은 한 인간이 다른 사람으로부터 그리고 양자가 모두 인간의 본질로부터 소외되어 있음을 말한다."

 

이상에서 간단히 살펴 보았듯이 마르크스는 국민경제학적 사실로부터 국민경제학이 전제하고 있을 뿐 해명하지 못하고 있는 사적소유의 비밀이 ‘소외된 노동'이라는 것을 개념적 분석을 통해 밝혀내었다. ‘소외된 노동'은 사적소유의 감추어진 비밀로서, 사적소유와 소외된 노동은 우연적인 관계가 아니라 필연적인 관계로 파악된다. 마르크스는 사적소유와 소외된 노동의 내적 연관을 밝혀 냄으로써 사적소유의 폐지를 ‘소외된 노동'의 폐지로 심화시킨다. 이러한 해명은 이전의 사회주의자와 공산주의자가 ‘사적소유'를 절도와 같은 도덕적 윤리적인 해악으로 해석함으로써 사적소유의 폐지를 주장한데 반해, 마르크스는 사적소유의 폐지를 소외된 노동의 폐지, 나아가 인간본질의 회복으로 치환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분석이 ‘사적소유'의 비밀인 ‘소외된 노동'의 정체를 해명하여 사적소유의 폐지에서 소외된 노동의 폐지로, 소외된 노동의 폐지에서 인간의 유적본질인 노동해방으로 심화하였다 하더라도, 이로부터 소외된 노동의 폐지의 역사적 필연성이 과학적으로 해명되는 것은 아니다. '독불 연보' 이후 대중이 주체가 되는 독일혁명의 역사적 필연성을 논증함으로써 대중에게 변혁의 ‘이론적 무기'를 제공하고자 토대분석에 착수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본질의 회복을 통한 소외된 노동의 폐지는 철학적 당위이지 객관적 필연성은 아니었다. 다시 말하면, '초고'에서의 그의 결론은 ‘소외된 노동은 노동하는 인간의 유적본질을 소외시키고 있기 때문에 폐지되어야 한다'는 당위적 주장에 머물러 있어, 아직 ‘소외된 노동의 폐지가 역사적으로 불가피하다'는 논거는 되지 못했다. 한마디로 말해 사적소유를 기반으로 하는 사회에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소외된 노동'은 개념적으로 파악되었지만, 아직 ‘사적소유'의 역사적 기원과 전개과정은 아직 해명되지 못했다. 그 결과 그는 슈티르너가 ‘유일자와 소유'에서 ‘보편적 당위에 근거하는 변혁이론'의 허구성을 통렬하게 비판하면서 실존적 이기주의를 주장하는 것을 보고 매우 당황하였으며, 다음해에 엥겔스와 함께 저술한 ‘독일이데올로기'에서 유물론적 역사이해의 방법을 정립하는 동시에, 그 책의 1/2 이상을 자신은 ‘사변적, 철학적, 도덕적 당위'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인 현실'에 대한 실증적인 분석에서 출발하고 있음을 강조하게 되는 것을 보게 된다. 이러한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초고'는 ‘구체적인 현실에 대한 실증적 분석'을 일관하여 주장하면서도 아직은 포이어바하적인 인간학적 유물론의 영향권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과도기적인 저술임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초고'에서 마르크스는 국민경제학적 사실을 토대로 사적소유의 비밀을 해명하면서, 헤겔의 변증법의 관념론적 성격은 물론 종교분석을 통해 인간의 유적본질을 연역적으로 도출하는 포이어바하의 인간학적 유물론을 상당한 정도 극복하고 있었다.

 

4) 헤겔변증법과 철학일반에 대한 비판

 

마르크스는 이전에 ‘헤겔법철학 비판'에서 프로이센국가의 비이성적 계급 이기적 성격을 비판할 목적으로 헤겔 철학을 비판했던 것과는 달리, '초고'에서 처음으로 헤겔의 변증법과 철학일반에 대한 본격적인 비판에 착수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의 직접적인 계기는 헤겔 철학 자체에 대한 비판 보다는 헤겔 철학을 전제로 하는 청년헤겔학도의 ‘비판적 비판'의 실천적 한계를 비판하기 위한 것이었다. 마르크스는 ‘서문'에서 “헤겔변증법과 철학일반에 대해 논박하는 '초고'의 마지막 장은 우리 시대의 비판적 신학자들과 대항하기 위해 필요한 부분"임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비판이 없었다고 말하면서, 헤겔의 논리학에 사로 잡혀 있는 청년헤겔학도를 비판하기 위해서는 헤겔 철학에 대한 비판이 불가피하다고 말한다. 제3초고의 비판서두에서도 “최근의 비판운동의 정세를 이해하고 이를 정당하게 평가하기 위해" 헤겔의 변증법, 특히 ‘정신현상학'과 ‘논리학'에 전개되어 있는 변증법의 문제를 몇 가지 해명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언급을 통해 우리는 헤겔변증법과 철학일반에 대한 비판의 의도와 목적이 최근의 비 판운동, 즉 청년헤겔학도의 ‘비판적 비판'에 대한 비판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근대독일의 비판은 낡은 세계의 내용에 대한 집착이 너무나 압도적이어서 비판의 전개는 이에 완전히 사로 잡힌 채 전개되고 있다. 따라서 그들은 자신들의 비판방법에 대해서는 완전히 무비판적인 태도를 취하며, 얼핏 보면 형식적이지만 실제적으로는 본질적인 질문인, 즉 ‘우리는 헤겔변증법과 어떠한 관련이 있는가’ 하는 질문에 대해서는 전혀 의식조차 없다. 근대의 비판은 그들과 헤겔 철학 일반, 특히 변증법과의 관계에 대해 전혀 의식이 없기 때문에, 슈트라우쓰와 바우어 같은 비판가들은 (...) 완전히 헤겔의 논리학에 사로잡혀 있다.

 

특히 그는 슈트라우쓰는 차치하고라도 바우어는 ‘비판적 비판'을 자신의 철학적 핵심과제로 삼으면서도 헤겔의 변증법과 자신의 관계에 대해 전혀 비판적 의식이 없었다고 개탄하면서, 바우어가 얼마나 헤겔적 사유방식에 무비판적인지를 보여주고자 했다. “포이어바하가 ('아넥도타'에 실린 두 저술에서) 낡은 변증법과 철학을 철저하게 전복시킨 연후에도, 바우어는 (...) 여전히 정신주의적 교만에 빠져 (...) 대중의 무정신성(Geistlosigkeit)을 빌미로 삼아 항상 자신의 탁월성이나 논증하고 (...) 비판적인 최후의 심판이나 선포하며 (...) 인간의 감각을 초월한 고상한 고독에 빠져 세계 위에 군림하는 (...) 온갖 우스꽝스러운 몸짓을 보이면서, 다른 사람들이 청년헤겔학도의 모태인 헤겔변증법과 비판적으로 대결해 왔다는 것을 전혀 자각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포이어바하의 변증법에 대한 비판적 입장에 대해 아무런 언급이 없었다는 것을 깨닫지도 못했다. 이것은 자신에 대해 완전히 무비판적 태도를 단적으로 보여 준 것이다".

 

바우어류의 ‘비판적 비판'에 대한 마르크스의 비판의도는 ‘비판적 비판'의 철학적 전제인 헤겔 철학에 “완전히 무비판적 태도"를 취했다는 사실 그 자체 보다는, 헤겔 철학에 안주하는 ‘비판적 비판'이 독일의 정치적 사회적 개혁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비판하기 위한 실천적인 것이었다. 마르크스는 한 때 자신의 스승이자 동료이기도 했던 바우어와 그 일파가 실천운동에 미치는 영향에 몹시 민감했다. 앞에서 살펴 보았듯이 바우어류의 급진적 비판활동은 ‘라인신문'이후 줄곧 그의 가장 큰 골치거리의 하나였으며, 이들의 관념적 실천운동노선에 대한 비판은 ‘신성가족'을 거쳐 ‘독일이데올로기'에서 최종적인 비판에 이르기까지 계속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작업이 무의미한 시간낭비는 아니었다. 왜냐하면 이들과의 비판적 논쟁은 마르크스가 자신의 비판적 방법을 보다 명료화하고 유물론적인 역사이해의 방법을 체계화하는데 촉발의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비판적 비판'에 대한 비판의 어려움은 단순히 그에 대응하는 입장에서 부정적 반론을 제기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비판적 비판'에 대한 비판은 그 전제를 뿌리부터 비판하지 않는 한 계속 “'비판적 비판'에 대한 비판"에 대한 비판으로 무한논쟁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비판적 비판'에 대한 최종적 비판의 유일한 대안은 ‘비판적 비판'의 전제를 근본적으로 비판하는 것이었고, 마르크스는 이러한 비판적 전략에서 ‘비판적 비판'의 전제가 되는 헤겔 철학 일반에 대한 비판을 시도하게 되었던 것이다.

 

“비판적 신학자들은 그들이 신학자로 남아있는 한, 권위로 인정된 특정한 철학적 전제에서 출발할 수 밖에 없으며, 비판과정에서 발견되는 이질적인 요소로 말미암아 철학적 전제가 의심의 대상이 되면 비굴하게도 이 전제를 팽개치고 그로 부터 추상함으로써 자신의 불변하는 노예상태와 이에 대한 분노만을 단지 부정적이고 무의식적으로 그리고 궤변적으로 드러낸다.

 

비판적 신학자들에 대한 가장 강력한 비판은 포이어바하의 유물론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인도주의적이고 자연주의적인 실증적 비판"은 포이어바하로부터 비로소 시작되었으며, 포이어바하의 저작들은 실제적인 이론적 혁명을 함축하고 있는 헤겔의 ‘정신현상학'과 ‘논리학'이래 가장 훌륭한 저작으로 평가하면서, 포이어바하가 기여한 업적을 높이 평가했다. “포이어바하는 헤겔의 변증법에 대하여 올바른 비판적 관계를 설정하여 이 분야에서 진정한 발견을 이룩한 유일한 인물이었다. 그는 낡은 철학의 진정한 극복자이다. (...) 포이어바하의 위대한 업적은 1. 철학이 사유 안에 주어지고 사유에 의해 표현되는 종교, 즉 인간본질의 소외의 또 다른 존재방식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한 점, 2. ‘인간의 인간에 대한’ 사회적 관계를 이론의 근본원리로 삼음으로써 진정한 유물론과 실질적인 과학을 수립한 점, 3. 절대긍정을 주장하는 부정의 부정을, 그 자체로서 긍정적으로 존재하며 그 자체에 근거하는 긍정적인 것과 대비시킴으로써 진정한 유물론과 실질적인 과학을 수립한 점"라고 주장했다.

포이어바하에 대한 이러한 평가는 포이어바하의 유물론과 헤겔 철학의 출발점, 즉 그들의 철학의 전제가 다르다는 점을 지적하기 위한 것이다. 포이어바하는 실증적인 것, 감각적인 것, 확실한 것을 철학의 출발점으로 삼는데 반해, 헤겔은 “실체, 절대화되고 고정화된 추상물(논리적으로는 무한자, 추상적 보편자)의 소외", 세속적으로 말하면 종교와 신학을 그의 철학적 전제로서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포이어바하를 ‘진정한 유물론과 실질적인 과학'을 수립했다고 말했다 해서 마르크스가 포이어바하의 철학적 입장을 전적으로 수용한 것으로 파악해서는 안된다. 많은 현대적 해석의 경우 이 점을 지적하면서 ?초고?를 포이어바하주의적 저술이라고 과장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출발점의 차이를 지적하는 한편, 그는 헤겔의 변증법이 지닌 긍정적인 측면인 -- 비록 사변적이고 추상적인 방식으로 표현되고 있기는 하지만 -- ‘역사의 운동방식'을 적극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는 소년기의 낭만적인 비판적 충동을 자제하고 ‘현실 안에서 이념을 발견'하리라고 결심한 이후 헤겔의 변증법적 방법을 적극적으로 원용하였다. 왜냐하면 현실세계의 외부에서 초월적인 방식으로 주어지는 것을 부정하고 오직 주어진 현실 안에서 진리를 끌어내며 문제해결의 방법을 발견하겠다는 그의 현실지향적 사유방식이 변증법적 방법을 요청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헤겔의 변증법이 현실의 ‘변증법적 운동'을 사변적이고 추상적으로 표현하는 사변적 설명체계이기 때문에 포이어바하의 자연주의적 인간주의적 유물론이 헤겔의 사변적 철학체계에 대한 강력한 비판수단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마르크스는 헤겔 철학을 비판하기 위해 ‘헤겔 철학의 참된 출발점이요 비밀'인 ‘정신현상학'의 비판적으로 검토했다. “첫번째 오류는 헤겔 철학의 출생지인 ‘정신현상학'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예를 들면, 헤겔이 부와 권력 등을 인간적 본질에서 소외된 본질로 파악하였을 경우, 이것은 오직 사유형식 안에서만 드러난다. 그것들은 사유존재이며 따라서 한낱 순수한 즉 추상적인 철학적 사유의 소외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전체운동은 절대지에서 끝난다. (...) 그러므로 외화의 전체적인 역사와 외화의 전체적인 지양은 추상적인, 즉 절대적인 사유의 역사, 논리적인 사변적 사유의 생산의 역사에 지나지 않는다. (...) ‘정신현상학'이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외양을 갖추고 있고 그 속에 후대의 사상을 훨씬 앞지르는 비판이 실제로 내포되어 있을지라도, 그 안에는 후기헤겔의 저작들이 안고있는 무비판적인 실증주의와 무비판적인 관념론 즉 현존하는 경험의 철학적 해체와 그 회복이 맹아로서, 잠재성으로서, 비밀로서 존재하고 있다."

 

마르크스는 ‘정신현상학'이 ‘오직 정신만이 인간의 참된 본질이며 정신의 참된 형식은 사유하는 정신, 즉 논리적이고 사변적인 정신'이라고 주장하며 ‘감각, 종교, 국가권력'등을 정신적 존재의 표상이라고 한 점에 대해서는 비판하면서도, ‘정신현상학'이 지닌 비판적 본질은 적극적으로 평가했다. “헤겔의 ‘정신현상학’ -- 운동하고 생산하는 원리로서의 부정성의 변증법 -- 의 위대함과 궁극적인 결과는 이러하다. 헤겔은 인간의 자기생산을 하나의 과정으로서, 대상화를 대립화로서, 외화로서, 외화의 지양으로서 파악한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헤겔은 노동의 본질을 파악하고 있었고 대상적 인간 즉 현실적 인간을 자신의 노동의 결과로 파악하고 있었다. ‘유적존재'로서 자신에 대한 현실적이고 활동적인 관계, 혹은 현실적인 유적존재 곧 인간적 존재로서의 자기확인은, 인간이 자기의 모든 유적능력을 -- 이것 또한 인간활동 전체에 의해서만 오직 역사의 결과로서만 가능한 것이지만 -- 현실적으로 형성하고 대상으로 정립된 그 능력들과 스스로 관계를 맺는 경우에만 가능해진다. 이것은 무엇보다도 소외의 형식으로만 가능하다."

 

여기에서 주장하는 바는 헤겔이 ‘노동의 본질', 즉 현실적 인간이 자기노동의 산물이라는 점을 파악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마르크스가 이를 특히 높이 평가한 것은 헤겔의 이러한 관점이 근대경제학자들의 관점과 일치하기 때문이었다. 비록 헤겔의 ‘노동'개념이 사변적인 설명체계로 말미암아 ‘추상적이고 정신적인 노동'으로 표현되기는 했지만, ‘노동하는 인간'을 본질적 내용으로 삼아 독자적인 철학체계를 수립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마르크스는 헤겔의 전도된 ‘노동'철학을 유물론적으로 전도시켜 재해석하면 근대경제학의 노동경제학을 보완할 수 있는 인간노동에 대한 ‘과학적’ 이해에 도달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리하여 그는 헤겔의 자의적 노동철학을 유물론적으로 재해석하기 시작했다. 즉 그는 인간이 현실에서 노동하는 유적존재라는 사실을 밝히기 위해, 인간은 생명을 가진 자연적 존재라는 사실적 전제에서 출발한다. “인간은 자연적 존재이다. 인간은 한편으로는 자연물, 즉 생명을 가진 자연물로서 자연력인 생명력을 가지고 있으며 활동적인 자연물로 존재한다. 이 생명력은 인간의 소질과 능력 그리고 본능으로 존재한다. 다른 한편으로 인간은 자연적인 육체를 지닌 감각적 대상적 존재로서 동물이나 식물과 마찬가지로 조건지어지고 제약된 존재이다."

 

개인들의 사회적 존재방식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자연적 존재에서 출발하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상식적이고 당연한 전제를 거듭 강조한 것은, 인간을 일정한 사회적 조건하에서 일정한 방식으로 생산함으로써만 생존하는 ‘노동하는 존재'로 파악하지 못하고, 아직도 인간을 오로지 ‘의식하는 정신적 존재'로만 간주하여 인간의 현실문제를 오로지 의식혁명, 의식비판, 계몽, 즉 ‘비판적 비판'을 통해 해결하려는 관념적 개혁론이 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마르크스사상의 발전맥락에 비추어 ?초고?의 실천적 문제의식과 비판적 방법의 의미를 개략적으로 살펴 보았다. 이를 간단히 요약하면, '초고'에서 마르크스는 노동자들의 현실적인 삶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국민경제학적 사실을 토대로 ‘사적소유'의 비밀인 ‘소외된 노동'에 대한 개념적 분석을 시도했으며, 이로부터 부르주아 사회에서 소외된 노동은 필연적이라는 사실을 구명하였다. 다른 한편으로 그는 이러한 관점에서 ‘비판적 비판'의 철학적 전제였던 헤겔 철학 일반에 대한 비판적 분석을 통해 의식적 계몽을 통해 현실문제를 해결하려는 관념론적 개혁론의 허구성을 폭로했다. 이러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는 포이어바하의 유물론을 ‘실증적 비판'의 방법적 출발점이라고 높이 평가하고 이를 헤겔 철학의 관념론적 성격을 비판하는데 원용하였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그는 ‘노동의 소외'를 ‘정신적 자기소외'가 아니라 노동자들의 ‘현실적 소외'로 파악하고 ‘소외된 노동'의 지양을 노동자가 주체가 되는 인간해방운동, 즉 공산주의운동의 목표로 삼았다. 그에게 있어 “인간의 자기소외로서의 사적소유의 실증적 지양으로서의 공산주의,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인간의 본질의 획득으로서의 공산주의"는 인간과 자연, 그리고 인간과 인간 사이에 존재하는 모순의 완전한 극복"으로서의 “완전한 자연주의=휴머니즘, 완전한 휴머니즘=자연주의"이었다.

 

4. 맺음말을 대신하여

 

오이저만이 지적하고 있듯이, '초고'의 출판과 더불어 전개된 청년마르크스에 대한 논의는 학문적인 토론이라기 보다는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와 부르주아 이데올로기 투쟁의 한 특수한 형태로 전개되어 왔던 것이 사실이다.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초고'가 이러한 이데올로기 투쟁의 중요한 수단으로 이용될 수 있었던 것은 마르크스 사상 발전에 있어 '초고'가 지닌 과도기적 성격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초고'의 중심내용을 이루는 ‘소외된 노동'에 대한 분석의 방법은 비록 국민경제학적 사실에 기초하여 자본과 노동의 대립을 구명하였을 뿐만 아니라 사회주의자들이 부르주아 사회의 사회적 모순의 근원이라고 생각했던 사적소유의 정체를 소외된 노동에서 객관적으로 고찰하였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의 소외된 노동에 대한 분석은 인간본질론에 입각한 인간학적 철학적 접근으로 말미암아 고의 아니게 ‘철학적 당위'에 이르게 되었다.

 

마르크스는 물론 '초고'가 지닌 이러한 문제점을 자각하게 되면서 유물론적 역사이해의 방법을 정립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그 계기는 앞에서 언급한대로 슈티르너의 강력한 비판에 직면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슈티르너는 환상적인 이상세계를 갈망하는 자들의 ‘당위명제'는 독단에 지나지 않는다고 마르크스를 몰아붙였다. 이에 대해 마르크스는 자신은 결코 ‘독단'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현실적 전제'에 기초하고 있음을 해명하고, 무전제에서 출발한다고 주장하는 슈티르너에게 무전제야말로 가장 독단적인 전제이며 우리는 ‘현실적 전제'를 결코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구체적인 현실'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반론을 제기했다. 이러한 반론이 발전된 것이 바로 ‘유물론적 역사이해의 방법'이다. 다른 한편으로 '초고' 이후 얼마간 중단되었던 정치경제학비판에 있어서도 1850년대 이후 본격적인 정치경제학에 대한 연구에 착수함으로써 ‘자본'에 이르는 엄청난 발전을 가져왔다. 이러한 의미에서 '초고'는 '독불연보'와 ‘독일이데올로기’ 사이에 위치하는 과도기적인 저술이다.

 

그러나 '초고'가 출판된 1930년대 이후 '초고'에 대한 서구 마르크스주의자들의 해석은 과학적 사회주의를 표방한 스탈린 체제의 권위주의적이고 관료주의적인 성격에 대한 비판적 대안으로서 '초고'의 인간학적 철학적 성격을 부각시켰다. 란트슈트와 메이어는 '초고'를 전적으로 헤겔의 소외개념의 영향 하에서 저술된 것으로 해석함으로써 헤겔 철학과의 철학사적인 연관관계를 강조하고 나아가 인간역사를 ‘계급투쟁의 역사'가 아니라 ‘인간소외의 역사'로 파악하였으며, 마르쿠제는 '초고'를 ‘사적유물론의 새로운 근거설정'을 가능케 하는 마르크스의 핵심적인 철학적 저술로 간주했다. 이와는 반대로 '초고'가 아무리 마르크스 사상의 중요한 내용을 함축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는 ‘유물론적 역사이해'와 자본의 운동법칙을 체계적으로 분석하는 ‘자본'에 이르는 과도기적인 저술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는 정통 마르크스주의적인 입장이 존재한다. 이러한 논쟁은 그 후 초기 마르크스와 후기 마르크스의 사상적 연속성과 단절성 논쟁으로 이어졌으며, 이러한 논쟁은 극단적인 ‘과학주의적 객관주의'와 ‘실천주의적 주관주의'이라는 도식적인 대립을 낳았다.

 

30년대에 '초고'의 출간과 더불어 불붙기 시작한 이러한 논쟁은 2차대전이 끝난 후에 더욱 고조되어 60년대에 이르러 절정에 달했으며, 논쟁점 또한 매우 다양하게 나타났으며, 아직도 마르크스주의와 사적유물론의 본질문제로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알뛰세의 주장처럼 ?초고?의 포이어바하적인 헤겔 비판이 아직 헤겔 철학의 범위를 넘어서지 못한 비판인가? 그렇다면 마르크스주의적인 헤겔비 판은 포이어바하적인 비판과 어떻게 구별되는가? 이러한 논쟁점에 대한 대안적 논의를 위해서는 ?초고?를 비롯한 그의 초기 저술뿐만 아니라 그의 후기저술을 마르크스 자신의 실천적 문제의식의 발전맥락에서 치밀하게 읽어나가는 긴 여정이 필요하며, 이 과정에서 그의 사상의 전체적인 통일성과 차별성을 변증법적으로 파악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긴 여정을 통해 마르크스의 사상적 통일성과 차별성을 전체적으로 파악하지 않고 '초고'를 마르크스 자신의 문제의식의 맥락에서 분리하거나 추상하여 오로지 헤겔 철학 및 포이어바하의 철학과의 관계 또는 정치경제학과의 관계에서 일면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초고'에 내재하고 있는 마르크스의 실천적 문제의식인 ‘이론과 실천의 통일'을 간과하고 마르크스의 사상을 철학이론 혹은 경제학이론과 같은 이론적 수준으로 끌어내리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특히 '초고'의 중심주제인 ‘소외된 노동의 폐지', 즉 인간 해방만을 강조함으로써 마르크스가 변혁을 위한 ‘이론적 무기'를 제공하고 있다는 단순한 사실에 매몰될 경우 마르크스가 일생을 바쳐 구명하고자 했던 ‘이론적 무기'의 과학적 성격을 간과하게 된다. 이러한 해석은 노동자들을 설득할 수 있다면 어떠한 사변적 이론도 좋다는 극히 주관적인 해석으로서, 마르크스의 의도와는 전혀 다르다. 마르크스가 의도하는 이론적 무기의 성격은 이미 ?독불 연보?에서 명확하게 설정되어 있으며, 그가 정치경제학비판에 착수한 직접적인 이유도 사변적 ‘이론적 무기'가 아니라 보다 과학적인 ‘이론적 무기'를 제공하기 위한 것이었다.

 

대부분의 철학적 저술들과 마찬가지로 '초고'의 경우도 재해석되고 비판되면서 그 핵심이 간직되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초고'의 핵심으로 간주될 수 있는 것은 어떠한 것인가?

 

첫째는 사적소유를 전제로 하는 사회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소외된 노동'의 극복의 방법과 의미이다. 마르크스에 있어 소외된 노동의 극복은 단순한 사적소유의 폐지 이상의 것이다. 그에 의하면 프루동이 말하는 임금의 균등화는 사적소유의 보편화에 지나지 않으며, 이러한 사적소유의 보편화는 사적소유로 환원될 수 없는 개인의 재능과 소질을 도외시하고 이는 마치 부부관계를 사적소유로 간주하여 부인공동체를 만들려고 하는 동물적 방식으로 여기서는 인간의 인격이 완전히 무시된다. 그러므로 소외된 노동의 폐지는 사적소유의 극단적인 완성이 아니라, 인간과 자연의 물질대사과정이자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창조하는 노동을 인간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노동의 인간화를 지향하는 인간해방은 관념을 통해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현실 안에서 실천적 변혁을 통해 실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해방을 현실적으로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현실의 주관적, 객관적 조건에 대한 철저한 과학적 탐구가 필요하다. 그리고 현실적 조건에 대한 과학적 탐구는 실천을 전제로 한 탐구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노동의 소외의 극복은 궁극적으로는 이론적 과제가 아니라 실천적 과제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초고'는 관념론적 변혁이론의 난점을 명확히 지적하고 있다. 즉 그는 지식인이 주체가 되는 윤리적 의식적 계몽운동의 한계를 비판함으로써 현실에 대한 실증적 탐구에 기초한 과학적 실천을 강조하고 있다. 마르크스 자신은 아직 '초고'에서 현실 역사에 대한 과학적인 탐구의 방법론인 유물론적 역사이해의 방법을 구체화하고 있지 않으며 인간의 ‘유적본질'의 회복을 강조함으로써 인간학적인 -- 알뛰세의 어법을 밀린다면 아직도 ‘과학'이 아니라 ‘이데올로기적인 휴머니즘적인 철학'에 의존하고 있지만 -- 해결책을 제시하는데 그치고 있지만, 실천적 문제의식에 있어서는 이미 과학적 태도를 지향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초고'의 인간 본질론과 인간 해방론을 전적으로 인간학적, 철학적, 윤리적, 이데올로기적 인간 해방론으로 환원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리고 '초고'는 국민경제학의 방법론적 비판을 통해 주어진 것을 반성 없이 전제함으로써 결과적으로는 현존하는 현실의 모순을 은폐하거나 결과적으로 옹호하는 실증주의적 태도를 비판하고 있다. 이러한 비판에는 과학이 어떤 것을 목적으로 삼아야 하는가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이 깃들어 있다. 즉 과학은 주어진 전제로부터 나타나는 제 현상을 서술하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전제를 해명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마르크스는 국민경제학의 전제인 ‘사적소유'를 해명함으로써 노동자의 궁핍, 소외, 비인간화의 원인을 해명하였다. 이러한 분석은 나중에 가서 사적소유의 생성과 소멸에 관한 역사적 분석으로 발전되며, 사적소유의 역사는 노동분업의 역사로 파악되고 노동분업의 역사는 다시 계급투쟁의 역사로 파악된다. 이러한 해명은 철저하게 실천적인 문제의식의 소산이다. 즉 사적소유에 대한 해명이 계급투쟁의 역사에 대한 해명으로 대치된 것은 노동자들에 의한 변혁, 즉 노동계급에 의한 현실변혁의 역사적 필연성의 해명과정이며, 이는 그가 '독불 연보'에서 논증한 바 있는 노동자들에게 변혁의 ‘이론적 무기'를 제공하려는 일관된 실천적 문제의식의 소산이다. 마르크스에 의하면 노동자에게 변혁의 ‘이론적 무기'를 제공하는 과정은 노동자들이 자신의 처지를 객관적으로 파악함으로써 자신들이 주체가 되는 현실변혁이 왜 역사적으로 불가피한가를 논증해내는 과정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초고'의 ‘노동의 소외'에 대한 집중적인 분석은 노동자들에게 자신들의 처지를 개념적으로 파악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한 방편이었다. 그에 의하면 노동자들은 스스로 ‘이론적 무기'를 갖출 시간적 여유가 없기 때문에 이를 대신할 지식인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즉 철학자는 이론적 무기를 제공하고 노동자는 이를 토대로 물리적인 힘을 발휘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노동자에게 제공할 ‘이론적 무기'는 쉽게 찾아지지 않았다. '초고'에서 제시한 무기는 아직도 설득력이 약했다. 왜냐하면 '초고'는 노동자의 현실을 서술하고 있을 뿐 이를 합법칙적으로 해명하고 있지는 못하며, 이러한 서술은 인간현실의 역사적 발전과정에 대한 과학적 해명이 아니라 인간의 유적본질에 대한 철학적 해명에 기초하고 있어 유적본질의 회복이라는 ‘당위'에 머물 뿐 ‘변혁의 필연성'을 해명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