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쟈의 저공비행>(2010-04-12 19:47)에서 퍼왔습니다
http://blog.aladin.co.kr/mramor/3625514
가라타니 고진 다시읽기
격주간 기획회의(269호)에 실은 인문분야 전문가 리뷰를 옮겨놓는다. 가라타니 고진의 대담집 <정치를 말하다>(도서출판b, 2010)를 다루고 있다.
기획회의(10. 04. 05) 가라타니 고진 다시 읽기
“일본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비평가이자 사상가”, 가라타니 고진을 소개하는 문구이다. <정치를 말하다>는 이 걸출한 비평가이자 사상가의 궤적을 한 눈에 일별하도록 해주는 대담집이다. 대담이라는 형식의 성격상 ‘대중적’이지만 그렇다고 얄팍하지는 않다. 가라타니를 전문적으로 소개해온 역자에 따르면, 고등학생까지 독자로 염두에 두고 쓰인 <세계공화국으로>(도서출판b, 2007)의 자매편으로 읽어도 무방하다. 나는 가라타니 고진 ‘다시 읽기’의 매뉴얼로 삼아도 좋겠다는 생각이다. 사실 국내에 처음 소개된 <일본근대문학의 기원>(민음사, 1997)이 얼마전 개정 정본판의 새 번역으로 다시 출간됐기에 ‘다시 읽기’의 명분은 충분하다. 가라타니 고진 수용에도 하나의 ‘사이클’이 생긴 것이기 때문이다. 가라타니를 다시 읽기 위한 몇 가지 포인트를 짚어본다.
개인적으로 나는 <일본근대문학의 기원>이 아니라 <탐구>(새물결, 1998) 연작을 통해서 가라타니 고진에 ‘입문’했다. 1980년대 중반의 저작이며 대략 그 이후 <트랜스크리틱>(한길사, 2005)에 이르는 ‘중년 가라타니’의 행적과 이론적 모색에 대해서는 어림하는 편이다. 그래서 <정치를 말하다>를 읽으면서 나의 관심은 우선 ‘청년 가라타니’를 향했다. 이 대담은 ‘청년 가라타니’에게서 핵심적인 사항이 ‘1960년과 1968년의 차이’라고 말해준다. 이것이 첫 번째 포인트다.
1960년대에 대학에 입학한 가라타니는 자신을 ‘안보세대’라고 부른다. 안보투쟁 세대라는 뜻인데, 안보투쟁은 1960년 일본이 미국주도의 냉전에 가담하는 미일상호방위조약 개정을 강행하자 이에 반대하여 일어난 대학생․시민주도의 대규모 평화운동을 가리킨다. 일본에서는 1968년에도 전공투(전학공통회의) 중심의 대규모 학생운동이 일어나게 되는데, 이를 주도한 세대는 ‘전공투세대’라고 한다. 넓게 보아 두 세대를 모두 ‘1960년대인’이라고 지칭할 수 있겠지만, 가라타니 자신은 ‘전공투세대’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왜 그런가? 두 세대 간에는 차이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가라타니의 분석에 따르면, 유럽, 특히 프랑스의 ‘68혁명’에서 학생운동은 노동조합이나 공산당과 대등한 형태로 존재하고 있었지만, 일본의 경우에 68년 시점에서 이미 공산당은 권위가 없었고 노동운동, 농민운동은 쇠퇴해 있었다. 가라타니도 참여한 1960년 안보투쟁에는 모든 계층과 세대가 참가했지만, 1968년의 전공투는 학생 중심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유럽의 ‘68년’과 닮은 것은 오히려 일본의 ‘60년’이라는 것이다. 물론 제도권 공산당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면서 신좌익운동이 등장하는 것은 전세계적 추세였지만, 일본의 경우엔 일본 공산당이 형편없었기 때문에 유럽보다도 일찍 그런 일이 벌어졌다.
흥미로운 건 1960년에 한국에서는 4.19혁명이 일어났다는 사실이다. 물론 4.19는 신좌익운동과는 무관하게 한국사적 맥락에 기초한 것이지만, 일본에서는 당시 한국의 학생운동을 강하게 의식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일본의 1960년은 말하자면 서양과 한국의 중간에 있습니다”는 것이 가라타니의 분석이다. 그가 보기에, 구미 선진국의 첨단적 문제와 함께 후진국이나 아시아가 갖고 있던 고유한 문제를 공유하고 있었던 것이 1960년의 일본이었다. 가라타니는 이러한 특수성 때문에 ‘60년’에서 생각하는 쪽이 ‘68년’에서 출발하는 것보다 좀더 글로벌한 문제를 사고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한다. 세대론과 국지적 관점에 안주하지 않고 항상 보편적 관점을 지향해온 그의 사상 편력 자체가 바로 ‘60년’ 시점의 강점을 입증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가라타니가 강조하는 것은 세대론이 아니라 인식론이며, 역설적이지만 그 인식론의 배경에는 그가 ‘60년’의 인간이라는 사실이 놓여 있다. 그리고 이 점이 그가 특권적인 입각점에서 사고하는 것을 가능하게 했다. 1968년에서 70년 사이에 벌어진 일들이 전공투세대 사람들에게는 처음 겪는 것이었지만, 1960-61년에 그러한 일을 이미 겪은 가라타니에겐 두 번째 경험이었고 그는 이후에 다른 경로를 선택한다. 경제학을 전공하던 그가 문학으로 관심을 옮기고, 동시에 마르크스가 ‘엉터리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 업신여기게 된 시점에서 진지하게 마르크스를 읽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은 마르크스를 읽는 것, 그것도 <자본론>을 읽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문학비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말하자면, 이런 비평관이 오늘날의 가라타니를 만든 독자적인 관점이다.
가라타니를 읽기 위한 두 번째 포인트는 그의 도미(渡美) 체험이다. 1975년에 그는 미국 예일대학의 객원교수로서 일본근대문학을 가르치는 일을 한다. <일본근대문학의 기원>을 쓰게 되는 직접적인 계기이기도 하지만, 그가 더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벨기에 출신의 저명한 문학비평가로서 예일대학 비교문학과에 재직하고 있던 폴 드 만 과의 만남이다. “드 만과 만나서 좋았던 것은 그로부터 뭔가를 배워서가 아닙니다. 내가 하고 있는 것, 그리고 하고 싶은 것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과 처음으로 만났던 것입니다.”라고 가라타니는 고백한다. 가라타니의 <자본론> 독해인 <마르크스 그 가능성의 중심>에 대해 칭찬하고 격려해준 인물이 바로 드 만이었다. 이를 계기로 가라타니는 화폐 및 자본의 문제를 언어학이론과 수학기초론을 도입하여 사고하고자 시도하며 이러한 작업을 그는 “드 만에게 보이기 위해” 썼다. 일본의 한 ‘문예비평가’가 ‘이론가’로서 재탄생하게 된 시점이 그래서 1975년이다.
그리고 세 번째 포인트는 이론적 교착상태에 있던 가라타니가 마침내 ‘돌파’를 이루게 되는 1998년이다. 칸트에 대한 다시 읽기를 통해서 ‘구성적 이념’과 ‘규제적 이념’의 차이를 도입한 그는 코뮤니즘에 대한 포스트모더니즘의 비판이 유행이 된 시기에 코뮤니즘의 형이상학을 재건하고자 시도한다. 그러한 과정에서 그는 생산양식이 아닌 교환양식의 관점에서 문제를 재구성하며 ‘자본=네이션=국가’라는 관점을 획득하게 된다. 국가나 네이션을 상품교환과는 다른 교환양식에서 파생된 것으로 보는 것이 요점이다. 마르크스가 생산양식의 관점에서 사회구성체의 역사를 사고했다면, 가라타니는 마르크스의 역사유물론을 교환양식의 관점에서 재고한다. 그리고 그러한 관점의 연장선상에서 노동자가 가장 약한 입장인 생산지점만이 아니라 소비자의 입장에서도 싸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소비자 운동과 협동조합, 지역통화 운동 등이 가라타니만의 고유한 착상은 아니다. 하지만 그의 자부대로 거기에 이론적 의미를 부여한 것은 가라타니의 독창적인 기여다. 그러한 맥락을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정치를 말하다>는 가라타니 고진 입문서로 최적이다.
10. 04. 12
---------------------
가라타니 고진(일본어:
필명은 일반적으로는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의 소설《행인(行人(こうじん) 고진[*])》과 관계가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되고 있으나, 본인은 그 설을 부정하고 화장실에서 「kojin」이라는 어감과 울림에서 우연히 떠올린 것이라고 말했다.[1]
최근에는 「국가」「자본」「네이션(nation)」과는 구별되는 것으로 「어소시에이션(アソシエーション, association)」이라는 말을 강조하고 있다. 그 개념에 기초하여 2000년 6월에는 NAM(New Associationist Movement)의 활동을 시작한다.(2003년 1월 해산)
2003년, MIT출판에서『Transcritique on Kant and Marx』[1]를 발행하였다.
2004년, 이와나미 쇼텐(岩波書店)에서 정본 가라타니 고진집(定本柄谷行人集, 전 5권) [2]을 발행하였다. 영어와 그 외의 언어로 번역된 저작・논문만을 선정하여 지금까지의 작업을 「정본」으로서 모아내었다.
2006년, 이와나미 신서(岩波新書)에서 《세계 공화국으로(世界共和国へ)》[3]를 출판했다. 세계 공화국이라는 말은 칸트의 《영원한 평화를 위하여(Zum Ewigen Frieden)》(1795)에서 따오고 있다.
2007년 10월 미국 스탠포드 대학에서의 강연을 유튜브[4]에서 볼 수 있다.
'마리선녀 이야기 > 마리선녀 철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감벤의 잠재성 개념과 그것의 정치적 함의 /양창렬 (0) | 2010.10.12 |
---|---|
지오르지오 아감벤, '삶-의-형태' (0) | 2010.10.12 |
조르조 아감벤의 『호모 사케르: 통치 권력과 벌거숭이 삶』/김태환 (0) | 2010.10.12 |
스피노자, 욕망과 능력에 대하여 (0) | 2010.10.12 |
조르조 아감벤 <목적없는 수단> (0) | 2010.10.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