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오늘> 2010년 10월 15일 (금) 13:12:31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91315
경향신문의 '진보' 사설에 대한 반론
북한 비판에 미국의 부정적 역할 등 역사적 과정 고려해야
고승우 전문위원 ( konews80@hanmail.net)
경향신문의 15일자 사설 ‘북한 3대 세습과 진보정치의 과제’는 충격적이다. 북한 문제, 남북문제, 남남갈등 등의 구조적 측면을 외면한 채 진보를 논한 것은 부적절하기 때문이다. 북한 문제, 남북문제는 반세기 이상 지속되는 동북아 문제이며 미국이라는 주요 변수를 빼놓고 생각할 수 없다. 남측 정부가 한미공조를 통해 대북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이 대세였다면 북한문제, 남북문제는 북미 문제로 좁혀지게 된다.
정전협정이후 미국의 대북정책으로 인한 북한 체제 변화라는 측면도 당연히 반영되어야 한다. 남북관계에서도 이명박 정권의 ‘비핵개방3000’과 천안함 사고를 빌미로 한 대북 공세가 북측에 미친 영향을 고려해야 한다. 경향신문의 이날 사설은 이런 점을 전혀 반영치 않았다.
▲ 경향신문 10월15일자 사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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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주한미군이 중국, 러시아와의 군사적 대치에서 중대한 비중을 차지하는 점을 감안해 한반도를 사활적 이해가 걸린 지역으로 지정해 관리했다. 미국의 이런 전략은 소련 해체가 미국의 지속적인 군비경쟁과 봉쇄정책의 결과이며, 북한에 대해서도 같은 전략을 추진해 비슷한 결과를 얻고자 한 포석의 성격을 지닌다.
이른바 북한 핵문제의 대두는 이런 역사적 배경을 지니고 있는 것 아닌가? 지난 1994년의 북미 제네바 협정, 2005년의 9.11공동성명에 의해 북한의 비핵화 로드맵이 제시되었지만 미국의 약속 위반이나 협상 내용 외면과 부당한 추가 요구 등으로 결국 지금과 같은 상황이 초래된 사실을 분명히 살펴야 한다. 최근 미국과 한국이 천안함 등을 이유로 6자회담의 재개에 소극적 태도를 취하면서 평화협정은 절대 불가라고 외치는 속내도 눈여겨보아야 한다.
천안함 사고는 그 발생 원인에 대해 지속적인 의혹이 제기되는 상황인데도 미국과 이명박 정부는 대북 제재의 압박 강도를 늦추지 않고 있다. 지난 수개월 동안 한미 군사훈련이 지속적으로 실시되고 있고 지금 이 시점에서도 한미 군사훈련이 전개되고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천안함 사고 직후 미국은 북한의 개입 가능성을 부인했다가 슬그머니 북한 책임론으로 돌아섰으며 지금까지 그런 태도 변화에 대해 일언반구도 하지 않는 점이다. 천안함 사고의 의혹과 그 사고를 빌미로 한 한미 군사동맹에 대해 60년대 베트남에서의 통킹만 사건의 재연이라는 비난이 일고 있는 것 아닌가? 경향신문은 이런 점을 살피면서 북한과 진보에 대한 비판을 거론해야 했다.
남북문제와 관련해 이명박 정권이 집권 직후부터 과거 정권과 북한의 공동 성과물인 6.15공동선언, 10.4선언을 외면하고 북한 핵문제와 남북문제를 연계시키는 지극히 비합리적인 대북 정책으로 남북 대립을 격화시키고 있다. 이명박 정권은 미국의 북한 목조르기 정책에 적극 기여하면서 기존의 남북교류협력 관계를 중지시키고 심지어 인도적 지원인 문제에도 냉혈한적인 태도를 고집했다. 남측은 지금도 여전히 천안함 사고에 대한 북한의 인정과 사과를 요구하면서 남북 당국 간 접촉도 극소화하고 있다. 이상과 같은 한반도와 남북 간 구조적인 상황을 전제로 삼아 경향신문의 이날 사설 논조에 대한 타당성을 고민해보고자 한다.
경향신문은 “북한에 비판적이라는 것만으로는 이념적, 정치적 정체성을 구별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북한 체제의 한계와 모순으로 이념에 따른 북한 문제 인식의 차이가 크게 좁혀진 결과이다.”라고 썼다. 북한 체제 비판에 보수 진보 차이가 없다는 말인데 비판의 질적인 차이를 배제한 이런 언급은 비현실적이다. 북한체제가 비판받아 당연한 존재라고 규정한다면 동시적으로 미국과 남측 일부 정권에 대한 비판도 가해져야 하는 것 아닌가?
이 신문은 “북한은 오직 생존이 유일한 목적인 체제로 변했다. 북한은 식량을 주고 경제적 지원을 해서 정상화할 수 있게 도와주어야 할 존재로 변했다. 말하자면, 북한은 해결책이 아니라 문제가 된 것이다.”라고 했다. 이는 북한에 대한 지나친 폄훼 아닌가? 북한이 70년대 초까지 남한보다 경제적으로 앞섰다는 점, 그리고 6.15 공동선언, 10.4선언이 남북 경제공동체를 목표로 한 것으로 유무상통, 공존공영 할 수 있다는 것에 합의한 것은 어떻게 할 것인가?
경향신문은 “(북한 문제가)3대 세습 공식화를 통해 확인되듯 더욱 악화하고 있다. 세습 지도자는 불가피하게 선대 수령의 정책을 철저히 계승해야 한다는 점에서 변화의 가능성을 제약한다.... 북한이 이렇게 잘못되고 있다는 것에 대해 진보와 보수간 큰 이견은 없다.... 과거처럼 북한의 이념과 제도의 독특함에 대한 존중이 진보적 관점이라는 것은 그 유효성이 끝났다.”라고 썼다.
그러나 추정컨대 미국과 한국 등이 현재와 같은 대북 봉쇄, 압살 정책을 지속한다면 북한의 정책 변화 가능성은 그리 많지 않다. 3대 세습은 현재 그 초기 단계로써 앞으로 그 추이를 지켜보아야 할 사안이고 특히 남북이 대치 상태에서 서로의 내정에 직접적인 영향을 행사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점 등을 고려할 때 북의 정치에 대한 정도 이상의 왈가왈부는 현실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 것 아닌가? 진보가 과거의 북한의 이념과 제도를 존중한다는 식으로 언급했으나 인정과 존중은 다른 것이다. 남북이 전쟁이 아닌 평화적인 방법으로 평화와 안정을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이른바 ‘내재적 방법론에 의한 북한 이해’가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이 신문은 “인권과 민주주의, 생존권, 인간해방은 진보의 가치이다. 남한의 기득권 수호자인 보수 세력이 북한을 향해서만 이런 가치를 내세우는 것은 비정상적인 일이다.”라고 썼다. 그러나 보수가 인권을 궁극적인 한반도 평화통일 등을 목표로 삼기보다 북한 체제 비판의 수단으로 휘두르고 있다는데 문제가 심각하다. 보수 세력이 인류 보편적 가치를 앞세우지만 이는 단기적으로 북한 주민의 인권 개선 이라가 보다 남북 대립의 격화를 불러온다는 측면이 강하지 않나? 진보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이상향을 북한에서도 실현하기 위한 방안에 고민하는 모습을 놓고 왜 침묵하느냐고 윽박지르는 것은 부적절하다.
경향신문은 “자격 없는 보수의 인권 수호자 역할은 더 방치하면 안 된다. 이는 진보가 경각심을 잃고 나태한 결과이다. 북한의 실패를 지적하고 바로잡는 일에 진보가 나서야 한다. 그것이 본래적 의미로서 진보의 과제이다.”라고 썼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북한의 실패와 문제점에 대한 접근에서 미국과 남측 일부 정권의 치명적인 과오가 발견되는 것을 외면할 수는 없다. 진보가 경각심을 잃고 나태한 것이라기보다 한미 보수 세력과의 힘겨루기에서 패했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이 신문은 “진보세력 일부는 여전히 북한의 기득권 체제를 변호해야 한다는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라고 썼다. 이런 주장에는 신중해야 한다. 정확한 파악이 전제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6자회담 전개과정에서 미국이 얼마나 억지를 부렸는지, 그리고 국내외 언론이 얼마나 미국의 목소리를 앵무새처럼 반복하는데 익숙한지를 파악해야 한다. 최근 이른바 진보 언론조차 미국의 비합리성에 눈을 감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이런 것들에 대한 정확한 이해 없이 현상을 함부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
▲ 고승우 전문위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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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먼저 미국의 제국주의적 대북 정책, 사상의 자유를 억압하는 국가보안법이 춤을 추는 지극히 후진적인 현실, 정치적 실책을 공안정국 조성을 통한 빨갱이 사냥으로 모면하려는 정치적 술수, 보수 언론의 목소리는 강한데 비해 진보 언론이 미약하다는 현실 등을 고려해야 한다. 이런 현실적 제약에 대해 어느 보수논객은 한국의 보수를 바위로 비유하면서 진보가 처한 현실적 제약을 지적한 바 있다.
이 신문은 “진보가 새롭고 역동적인 모습으로 부활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유산에 집착하지 말고, 대중과 소통할 줄 아는 열린 자세로 나아가야 한다.”라고 썼다. 옳은 말이다. 그러나 북한의 권력체계 변동과정과 그 구조적 측면, 외세의 위협과 봉쇄정책 등에 대한 객관적 접근과 대중 전달 노력 등이 필요하다. 현상 분석 내지 대응 방식에 차이가 있다 해서 바로 날을 세우고 말 폭탄을 날리는 방식으로는 대중과의 올바른 소통에 동참키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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