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평론> 28호(2009-06-01)
http://jayul.net/view_article.php?a_no=1383&p_no=1&key=p_no
후기 알뛰세 사상의 진화에 관한 단상들
안또니오 네그리 / 역자 : 성철,승준
- 저자·영역자 : Antonio Negri, trans. Olga Vasile
- 원본 출처 : Negri, ‘Pour Althusser : notes sur l’évolution de la pensée du dernier Althusser’, 1993년 12월, http://multitudes.samizdat.net/spip.php?article1151
- 영어본 : ‘Notes on the Evolution of the Thought of the Later Althusser’, Postmodern Materialism and the Future of Marxist Theory: Essays in the Althusserian Tradition, Edit. Antonio Callari and David F. Ruccio, Hanover and London: Wesleyan University Press, 1996.
* 네그리의 감사의 말 : 이 논문은 Louis Althusser. Une biographie, volume 1, Grasset, Paris, 1992의 저자 얀 물리에-부땅의 우정어린 도움과, 알튀세의 글들이 총망라되어 있는 IMEC(Institut Mémoires de l’Édition Contemporaine) 문서보관소의 협조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IMEC의 관리자인 얀 물리에-부땅과 올리비에 코르페(Olivier Corpet)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뭔가가 부러졌다(Quelque chose s’est brisé)”
《마니페스토(Il Manifesto)》가 1977년 베니스에서 개최한 토론회에서 알뛰세는 다음과 같은 관찰로 자신의 연설을 시작했다. “뭔가가 부러졌다.”1) 그는 이러한 파열이 30년대 이래 국제노동운동에 악영향을 끼친 스탈린주의의 증대에 대한 분석으로 간단히 귀착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실제로 그는 그 가능성을 배제했다.) 스탈린주의가 낳은 것은 자명하고, 비극적이며, 또한 엄청나다. 1986년에 알뛰세는 스탈린주의를, 사회주의권 주민들을 착취하기 위해 제국주의에 의해 “발견된”(미리 숙고된 것이 아닌) 형태로 정의했다.2) 1986년의 이러한 파산선고를 이끌었을 긴장[감]은 1977년 연설에 이미 내재해 있었다.3) 그러나 정확히 바로 이런 이유로 “현재의 위기”, “부러짐”을 간단히 스탈린주의로 환원할 수는 없다. 노동운동의 위기가 반복되는 문제는 훨씬 더 뿌리깊다. 그것은 투쟁, 모순, 위기들로 “이루어진” 노동운동 자체의 본성과 관계가 있다. 문제는 위기가 아니라 파열이다. 즉 이 위기가 건설적인 효과들을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파괴적인 효과들을 생산한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이론적인 분석은, 스탈린주의에 대한 고발을 넘어서서 코뮤니즘 사상의 형성적 과정과 그 사상내부에서 나타난 위기의 창조적이고 건설적인 기능을 담아내야 한다.
이 문제를 논하기 위해, 맑스 담론의 몇 가지 핵심 지점을 특히 [첫째로] 잉여가치론과 착취론을, 둘째로 국가론과, 경제투쟁과 정치투쟁 간의 변증법적 관계에 대한 이론을 살펴보도록 하자. 알뛰세는 전자의 경우 맑스는 본질적으로 “양적인” 잉여가치론을 구축했으며, 그로 인해 착취, 이데올로기의 기능, 사회에 대한 자본주의적 포섭의 복잡성 등에 대한 이해 및 비판에 있어 완전히 부적실한 정치적 결론을 도출한다고 말한다. 나아가 그는 맑스의 이론(나아가 레닌의 이론 역시)에는 후자가 심각하게 결여되어 있다고 말한다. 물론 이것이 당시의 유로코뮤니스트들과 여러 보비오주의자들이 말하던, 부르주아 국가에 대한 비판의 요소들을 사회민주주의 국가의 구축으로 향하게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와는 반대로 알뛰세는 국가에 대한 맑스와 레닌의 교의가 겪는 위기가 다음과 같은 사실에 놓여있다고 주장한다. 즉 권력을 대중들의 실천으로 재구축하려는 관점에 의해서는, 또 프롤레타리아 독재[노선]의 이탈에 대한 예방적 비판에 의해서는, 그리고 국가의 파괴와 새로운 사회질서의 건설 사이에서 성장한 대중의 구성적 실천들에 기초한 창조적 가설에 의해서는 부르주아 국가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이 수행되지 않는다는 사실 말이다. 따라서 맑스주의의 고전들 내의 이러한 지점들과 관련할 때, 위기는 분명하다.([비판은 열려있다]la critique est ouverte.)
하지만 심지어 이러한 순간에도 위기는 개념상 유용하다. 양적인 착취관은 엄청난 대중들을 임금을 둘러싼 혁명적 투쟁에 집결하게 만든다. 파괴적 국가관은 반란과정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하지만] 이건 더 이상 사실이 아니다. 이제 “뭔가가 부러졌다”거나 위기를 긍정적으로 사용할 가능성은 사라지고 없다. 왜일까? 다르고 우발적인 요소, 즉 “외부”, “배후”, “예상하지 못한 어떤 것” 등이 대규모로 개입됐기 때문이다. 사회적 실천에 대한 맑스주의 철학은 이러한 실재의 경험적 영역에 대한 침투를 겪어야만 한다.4) 이제 맑스주의 철학은 다시 한번 투쟁에 기여하기 위해서 자신의 도구들을 쇄신해야 한다.
하지만 철학적 실천의 연속성을 깨뜨리는, 우발적이지만 절대적으로 실재하는 이 새로운 요소라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는 지금 당장 그것에 이름을 부여할 수 없다. 우리는 위기의 방향이 전도되었다는 것만을 알 뿐이다. 혁명에 복무했던 바의 것은 이제 그 가능성의 부정이 되었다. 어떻게? 왜? 철학자는 스스로 실재를 대신할 수 없다. 실재가 말하고 철학자는 실천들을 분석함으로써 그 실재를 해석한다. 그렇다면 왜 위기의 방향의 전도인가? 그 당시 알뛰세는 이러한 근본적인 질문에 어떠한 대답도 제시하지 않았다. 대답은 오로지 조직된 노동운동 내부로부터만 나올 수 있기 때문에, 이것은 어쩌면 정치적 기회[호기]의 질문이지 않았을까? 아니다. 알뛰세는 이미 1977년에 이 질문에 답할 수 없는 여러 공산당들에 대해 알고 있었다. 이는 프랑스 공산당의 정치학과, 스스로를 다시 실재에 대한 비판에 열어놓을 수 없었던 그것의 구조적 무능력에 관하여 쓴 1978년《르몽드》기사에 이미 암시되어 있다.5) 알뛰세가 좌파운동에 관한 환상을 키운 것은 아니다. 그것은 전복적이고 근본적으로 혁신적인 운동이 되는데 너무 오랫동안 실패해왔[기 때문이]다. 1968년 직후 좌파운동은 강력한 힘을 가진 것도, 프랑스 공산당에 의해 조직된 노동자 조직의 협박에 저항하기에 충분할 정도의 분명한 이데올로기를 가진 것도 아니었다.6) 이제는 너무 늦었다.
따라서 뭔가가 부러졌다는 문제가 제기되어야 하는 곳은 바로 실천의 공백의, 그리고 그 결과 이론적 공백의 상황 속에서였다. 그러므로 파열에 대한 해법과 그것을 생산했던 우발적 요소에 대한 정의는 지극히 새로운 철학적 문제의 붉은 실을 구성한다. 그 문제의 이러한 극단적 근본주의와 관련된 최근의 한 언급[을 보자]. 여기에서 알뛰세 사상은 다시 한번 자신의 본질적 성격을 징후적 사유로, 때 맞지 않는(intempestive) 분석으로, 질적 도약을 통한 발전으로 드러낸다. 위기가 실재를 발전시키는 열쇠이듯, 불연속과 때 맞지 않음은 이론적 실천의 영혼이다. 우리가 현재까지도 이 제기된 문제에 대한 실질적인 해답을 결여하고 있다 할지라도, 방법론은 실재적―그리고 따라서 이론적― 변형의 근본주의로 향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알뛰세는 얼마나 벤야민주의적인가!
마키아벨리의 고독
따라서 위기가 세계혁명의 실재성을 위태롭게 한다는 사실이 이론적 실천의 필요성을 제거하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위기는 항상 다시 한번 혁명 운동의 동력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그것은 비판적 사유의 전제로 남아있다. 그러나 실재에서뿐 아니라 우리 내부, 우리가 실천과 개념 사이에서 수행하고 조직하는 활동으로서의 철학에서도 “뭔가가 부러졌다.” 바로 이러한 고독 속에서 이제 우리는 이론과 실천의 기획을 계속해서 생산해야만 할 것이다. 1978년 초 알뛰세는 스스로[의 작업]를 반복하면서, 분석들 및 개념들을 다시 한번 다듬으면서, 마키아벨리에 대한 작업을 다시 시작했다.7) 정치가이자 철학자이며 항상 고독한 사람인 마키아벨리. 알뛰세는 먼저 마키아벨리를 정치가로 간주하지만, 이후의 분석은 그의 철학적 면모를 부각시키는 경향이 있다. 이 새로운 연구의 단계는 1978년 《프랑스정치학회》에서 발표한 “마키아벨리의 고독”8)에서 시작되었다. 이 분석을 지지하는 원리는 다음과 같은 역설의 발견이다. 즉 “자신의 조건들에 대한 완전한(toutes) 부재 속에서 새로운 것을 생각하기.” 바로 그것이 마키아벨리이다. 즉 그의 정치적 선택은 영역에 대한 선택이다. 그것은 때 맞지 않은 특이성이며, 국가의 정치적 삶에 자신이 참여함으로써 생기는 문제들을 그것이 실천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한에서 불가해한 것이 되는 권력에 대한 사유이다. 데 상티(De Santis)와 그람시로 거슬러 올라가는 마키아벨리의 사상에 대한 전통적 분석들을 계승함으로써, 알뛰세는 그를 이탈리아 통일에 대한 사상가로 최초로 묘사했으며(ante litteram), 군주제나 공화제의 낡은 구조들을 특징짓는 봉건적 족쇄로부터 해방된 새로운 통일 국가, 즉 지속하면서도 팽창할 수 있는 국가에 대한 이론가로 제시한다.
하지만 이것이 본질적인 지점은 아니다. 실제로 알뛰세는 마키아벨리에 대한 전통적 해석을 복원한 뒤에는 그것을 전복시킨다. 중요한 것은 더 이상 기획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오히려 그 기획의 실현불가능성과 충돌할 때의 마키아벨리의 사유에 의해 표현되는 발본주의, 즉 따라서 모든 조건들의 부재 가운데 새로운 것의 사유이다. 아니 더 옳게는 가능성의 모든 조건들의 부재 가운데 새로운 것의 사유이다. 왜냐하면 통일국가와 새로운 군주에 대한 욕망이 존재론적으로 대중들 속에 현존하며, 또한 혁명적 구상과 조직화적 축적의 실천의 구성적인 과정이 사유 속에서 지속적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것이 실재하는 역사적 조건들을 부수지 않는다. 그것은 국제적 상황이 후기 르네상스기의 이탈리아에 부과했던 난점들을 넘어서는 구성적 기획을 열어놓지 않는다. 따라서 더할 나위 없는 구성적 역능에 의해 생명력을 지닌 마키아벨리의 과학적 사유는 여기에서 스스로를 분리 속에서 규정하도록 강제된다. 하지만 분리와 고독은 완전히 비목적론적인 지평 위에서 생성과 역사성이라는 우발적 특질에의 사유에 의해 제공된 최대한의 급진주의를 구성할 것이다.
그렇다면 마키아벨리의 사유, 즉 힘에 대한 그의 리얼리즘[현실주의]적인 숭배를 특징짓는 것은 “사자”의 형상이 아니라 “여우”의 형상이다. 그것은 자신의 모든 조건들의 부재 속에서 혁명을 일으킬 듯한 태도를 취하는 스캔들이며, 주어진 조건에서는 받아들여질 수 없는 혁명적 진리를 항상 이야기하는 도발(provocation)이다. “여우”는 금지되고 제한된 진리이다. 다시 말해 그것은 불가능성의 위반이자, 동시에 가능한 것의 계속적인 이론적 규정이다. 따라서 역사적 연속성을 파괴하는 가운데, 고독은 창조적인 때 맞지 않음이 된다. 알뛰세의 이전의 구조적인 이론적 분석틀은 완전히 전도된다. 즉 이론은 구조적이고 체계적인 방식으로 수렴과 결론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분열들, 역설들, 공백들, 위기의 지점들을 제시한다. [그의] 마키아벨리에 대한 독해는 그 자신을 그람시의 경전적 해석과 분리시키면서, 즉 독해의 첫 번째 단계를 이루었던 해석과 분리시키면서 시작한다. 그람시와 마키아벨리는 더 이상 한 당파의 창시자로서가 아니라 우발적 특질의 가설, 해방의 기획의 급진주의와 조건들의 부재의 공백 사이의 때 맞지 않는 관계의 가설의 발견자들로 제시된다. 1978년 토론회의 미간행 원고에서9), 알뛰세는 이러한 마키아벨리에 대한 독해가 새로워지고 나서 가능했던 “놀라움”과 “불가능한 마주침”에 대해 언급했다. 그것은 마키아벨리의 이미지를 “모든 시대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사람”으로, 즉 스피노자와 하이데거, 프로이드와 데리다, 그리고 곧이어 추가될 니체와 들뢰즈를 미리 예견하고 그들의 전조가 되는 철학자로 세우는 문제였을 것이다.
왜일까? 왜냐하면 여기서는 혁명적 사상의 역사에서 처음으로, 역사성이 패배의 절망으로 가득차 있고, 욕망하지 않은 어떤 선형상화도 비어있는 구성적 관점, 즉 우발적 욕망의 보편성으로 묘사되기 때문이다. 몇년 후,『미래는 오래 지속된다』를 쓰면서 알뛰세는 마키아벨리로 돌아갔다. 마치 스피노자에 대한 다른 글이 그렇듯, 이 글은 그의 자서전에 실리지 않았다. 알뛰세는 이 두 저자들에 대해 바치는 독립된 “작은 책”을 의도했었다.10) 이 미간행 원고에는 앞에서 예상했던 그람시의 마키아벨리 해석과의 분리가 글 전체에 걸쳐 수행된다. “놀라움”과 “불가능한 마주침”이 성취되는 것이다. 그람시의 “유치한 유토피아”와의 분리가 완성되는 것이다. 다른 한편 “여우”에 대한 사유는 새로운 일관성(consistance)을 획득한다. 왜냐하면 “사자”가 되는 조건으로서 “여우 되기”는 이제 권력(pouvoir)과 “정치적인 것” 보다는 신체의 역능(puissance), 신체들의 역능, 즉 다중의 역능과 관련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권력”과 “정치적인 것”은 폭력에 기초하지 않는 모든 결정들의 공백으로, 따라서 인민 속에, 사회적인 것 속에, 신체들과 저항들의 미시물리적 마디결합들 속에 거주하는 어떤 역능의 대립자로 나타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푸코와 들뢰즈에 대한 언급은 존재론적으로 상이한 장에서 전개된다. 알뛰세는 사회적 역능의 때 맞지 않음과 불연속성에만 관심을 둔다거나, 저항들의 미시물리적이거나 리좀적인 확산(diffusion)에만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는 이러한 다양성을 다양한 존재론적 궤적들의 표지로, 코뮤니즘적 경향의 안정성에 기초한 주체성들의 표지로 드러내는데 관심을 둔다. 마키아벨리의 때 맞지 않음, 즉 욕망이 스스로를 대면하는 조건들의 공백, 그리고 긍정적 결정들의 부재, 이 모든 것은 어제는 욕망에 대한 존재론적 정의의 불가역성에 의존했지만, 오늘은[후기 알뛰세에게는] 억제될 수 없는 코뮤니즘의 정의에 의거한다. 코뮤니스트 마키아벨리? 그럴리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마키아벨리는 역능의 욕망을 긍정적 존재론의 충만함에, 그리고 역사적 조건들의 무(無)에 기초하게 하는 실천의 사상가이다. 분명한 것은 현재의 위기에 대한 문제틀의 본성이 자신의 기초에서, 코뮤니즘에 대한 새로운 정의의 필요성을 인간 행위 및 이론적 실천의 불가역적인 지평으로 발견한다는 점이다.
주변들, 틈새들(Marges, Interstices)
“모든 가능성들의 부재 속에서” 혁명적 실천을 전개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일체의 조건이 비어있는 가운데 새로운 것을 생각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첫째, 그것은 철학의 전통적인 관점, 즉 실재를 생각한다는 식의 가정을 역전시키는 것을 의미한다.11) 이 점에서, 알뛰세의 인식론 거부는 “이론적 실천”의 기초에 있는 어떤 태도의 회복과 재확립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인식론 거부, 그리고 모든 관념론적 인식이론들에 대한 거부는 여기에서 더욱 깊어지고, 새로운 강도를 획득한다. 왜냐하면 이제 요구되는 것은 “신체와 사유(reason with body)”하기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제는 관념론을 거부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지표와 초상(Index et sigillum sui)으로서 “진리”에의 집착의 물체성(corporeality)과 마찬가지로, 엄밀하게 명목론적 관점을 취하지 않는 모든 형태의 유물론을 거부하는 것이다.
둘째, 일체의 조건의 공백 속에서 새로운 것을 생각하는 과제를 떠맡는 것은 신체로 생각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그것은 그 안에서 육체와 정신(corpus et mens)이 하나이자 동일한 어떤 이론적 실천을 긍정하는 것이며, 또한 일체의 사변적 실천에 맞서는 매개없는 보루(bulwark[rempart])를 긍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유물론의 “왕도”(voie royale), 즉 맑스 자신 역시 걸었던 길이 바로 마키아벨리와 스피노자 사이에서 드러난다. 우리는 이미 마키아벨리와 그의 정치학의 개념, 모든 정세의 우발적 사실성에 대한 그의 근본적 숙고를 이미 앞에서 다뤘다. 이 지점에서,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도울 수 있는 사람은 바로 스피노자이다.12) 그의 신학에 대한 탈신비화(이것은 그를 근대 이데올로기론의 창시자로 만들어준다)나, 명목론에 대한 그의 회복과 재확립(따라서 이것은 인식론을 철학의 중요부분을 이루는 모든 주장으로부터 박탈한다)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그의 특수한 신체에 대한 이론과 매개없이 체험된 세계를 가지고서 말이다. 알뛰세의 이전의 저작들에서 스피노자는 무엇보다도 구조주의적인 물질적 지평의 창립자로, “주체없는 과정”13) 이론의 주된 해설자로 나타났다. 여기에서 스피노자에 대한 해석은 더욱 깊어지고, 스피노자의 사상을 밀접히 따르면서 알뛰세의 반인간주의는 더욱 강해지며 역동적이 된다. 왜냐하면 스피노자의 신체에 대한 이론 속에서 알뛰세는 신체와 영혼의 기획의 통일을, 조건없는 역능을,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개체성과 보편성간의 관계가 이론적 실천 내부에 제시되는 세계를 택하게 하는 긍정적 리비도(libido)에 대한 놀라운 예견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 의존해, 알뛰세는 스피노자의 “3종 인식”에 대한 광범위한 논의를 제시한다. 이 해석은 아주 개연적으로 스피노자 철학의 관점에서 의문시될 수 있고, 또한 어쨌든 상당히 신비로운 저 개념에 충분한 빛을 제공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해석은 알뛰세의 “신체를 통해 생각하기”라는 개념을 크게 조명해 준다. 즉 실재를 파악하는 가운데, 가장 최고도의 주체성의 역능을 명목론적이긴 하지만 경향적으로 실재하는 보편성의 지평에서 펼쳐내며, 따라서 항상 새롭게 재구축되는 근사치 속에서 실재적이고 구체적인 존재와 추상적인 비존재가 서로 대면하는 어떤 극한을 창조하는 사유방식을 말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행위 속에서, 스피노자의 “3종 인식” 속에서 발견하는 것은 다시금 “여우의 방법론”이다. 알뛰세에게 스피노자의 “사랑”은 실천이 되고, 신의 지성은 욕망의 극한적인 전위(déplacement liminaire), 즉 우리가 실천 속에서 파악하고 또 경향적으로 실현하는 보편성이 된다.
그러나 실재적인 것에로, 즉 맑스에게로 되돌아가보자. 어떻게 추상적-구체적 동력에 대한 이러한 새로운 독해가 혁명적 기획에 대한 이론적 분석과 결합하는가? 맑스가 서술한 (그리고 『자본을 읽자』의 알뛰세에 의해, 무엇보다도 그의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AIE)에 의해 계승된), 산 노동의 특이성과 추상적 자본에 대한 지배 및 국가 간의 관계에 어떤 일이 발생했는가? 다른 시대에는 상호작용적으로 사고되는 이 관계가 오늘날에는 그렇게 사고될 수 없다. “오늘날 사태는 엄청나게 변화했다!”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났던가? 일어난 일은 이데올로기가 모든 실재적인 것에 대한 자신의 지배를 거대하게 확장시켰다는 것이다. 엄청난 정도로, 실재적인 것은 대부분 이데올로기와 뒤섞인다. 만일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가 상이한 제도들을 통해 그것[실재적인 것]을 기계론적으로 특이하게 만듦으로써 지배를 낳았다면, 오늘날 이러한 지배는 전체의 사회적 과정과 섞이게 된다. 말하자면 세계는 자본에 포섭되었다. 그다지 명시적으로 말한 적은 없지만, 알뛰세는 이 경우 그의 제자이자 친구인 푸코의 사유를 따른다. 그러나 푸코의 경우처럼 알뛰세에게도 이러한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 권력의 탈근대적 확장은, 그리고 그 장치들의 통합작용이 야기한 이러한 지배의 가일층한 과잉결정은 저항이 없이는, 즉 육체 및 육체들의 저항이 없이는 통과되지 않는다(se passer). 하지만 자본에 의한 사회의 총체적 포섭의 논리 속에서, 어디에, 어떻게? 모든 일반적인 대안이 산산조각난(“사회주의는 똥이다.”) 직조 내부에서, 어디에? 스피노자에서처럼 사유는 바로 신체들로, 매개없이 체험된 것으로, 신체들이 자본주의적 지배의 틈새에서 스스로를 조직하는 곳으로, 공동체 관계가 (과거, 자본의 시초 축적의 시기에서와 같이) 살아 있는 곳으로, 저항이 “시장관계가 지배하지 않는” 지대들을 생산하는 곳으로 가야만 한다.14) 다시 지배의 총체성에 맞서, 스스로 가다듬고, 저항하고, 재구축하는 것은 코뮤니즘의 존재론적 직조이다.
오늘날 코뮤니즘은 스스로를 기획이 아니라 저항으로서, 대항-권력으로서, 특이성으로서 나타난다. 코뮤니즘이 그렇게 나타나는 것은 체계의 중심에서(즉 “코뮤니즘의 블록들”, “틈새들”, 저항적 그룹들의 편에서의 에피쿠로스의 “클리나멘”에 대한 특이한 해석), 혹은 체계의 주변에서이다. 이 곳에서는 자본주의적 사회포섭이라는 총체주의가 아직 완전히 실현되지 않았다. 국가와 자본, 정당들에 맞서서, 코뮤니즘은 대중운동들에, 그것들이 스스로를 전진시키는 창조적인 방식에 (위계적 지배가 없는 협력에) 의존하는 것은 필연적이다. 그것들만이 해방을 생산할 수 있으며, 지배논리에 저항하는 고립된 저항들과 강력한 주변성들(puissantes marginalités)을 통일할 수 있다. 여기에서 알뛰세는 다시금 자신을 그람시와, 그[그람시]의 이론의 제 3인터내셔널적 잔재들과 분리시킨다. 알뛰세가 말하듯, 우리는 이 지형에서 행동을 취하기 위해, “이성의 비관주의”나 “의지의 낙관주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와는 반대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이성의 낙관주의, 즉 이 “숲 길의 숲 길(Holzweg der Holzwege” 위에서, 이 “어느 곳으로도 이끌지 않는 길들의 길” 위에서 다시 일어날 필연적 저항과 불가결한 적대의,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로그램 없이 이어지고, “움직이는 열차를 잡고”, 항상 알 수 없는 존재의 지형에서 출발하면서 우리가 끝까지 주장하는 저 저항과 적대의 지성으로서 이성의 낙관주의를 필요로 한다.
알뛰세의 전회(Kehre)
그를 상대적인 고립으로 이끌었던 결정적인 위기에 앞서, 후기 알뛰세에게는 그의 사유에 어떤 전환이 일어나는 한 순간이 있다. 여타의 철학적 전회에서처럼, 연속성과 혁신의 요소들이 상호작용하지만 후자 즉 혁신의 요소가 헤게모니를 쥔다. 비록 그의 사유가 변화중이라 해도, 무엇보다 우리는 그의 방법론을 고찰함으로써 그의 사유의 연속성을 입증할 수 있다. 실상 그는 실재적인 것에 대한 (텍스트들과 사건들에 대한) 징후적 독해15)를 계속해서 발전시켜나가는데, 징후적 독해란 개념 혹은 사건을 논리적으로 구성하는 요소만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그것들의 질서를 해체하고 약화시키는 요소들에 중점을 두는 독해이다. 『자본을 읽자(Reading Capital)』에서 맑스에게 적용된 징후적 방법은, 맑스주의의 위기에 대한 분석과 현실 사회주의의 파국에 대한 분석,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회의 자본에의 실제적 포섭으로부터의 이행 속에서 이데올로기적 통제의 총체성으로서 자신을 재긍정하는 자본주의적 지배의 유기성(coherence)에 대한 분석에까지 확장된다(그리고 여기에 알뛰쎄르의 연구의 새로움이 놓여있다). 혁신은 매우 강하다. 이것의 의미를 요약하기위해서 다음과 같은 것을 말해두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여기서 유물론의 정의 자체가 변형되었다고. 그의 관심은 “생산 관계”에 대한 비판에서 다음과 같은 중요한 결정적인 결론들과 함께 새로운 “생산력”의 구성적 과정들로 이동하였다. 첫째, “생산력들”과 “생산관계들” 사이에서 확장하는 관계에 대한 열려진, 그래서 (의심할 바 없이) 더 이상은 구조적이지도 해석학적이지도 않은 고찰. 둘째, 객관적 과정들의 파편화의 “분열증적” 논리에 따라 고려되는, 역사 발전의 주체적 요인들에 대한 항증하는 강조. 셋째, 주체성의 구성적 개입을 위한 열려진 가능성으로 보이는 “우발성”, 우연, 사건을 고찰하는 것에 대한 더한 강조.
조금 거슬리는 감이 있더라도 다음과 같은 것 즉, (그의 자서전이 밝히는 바에 따르면 언제나 총애받는 학생이었던) 랑시에르가 1970년대 초부터 그에게 제안해왔던 것을 그가 받아들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는 것(그리고 아마도 그는 그것을 받아들일 몇몇 결정적인 역사적 기회들을 놓쳤을 것이다)을 강조할 필요는 없다.16) 오히려 이행의 깊이를 강조하는 편이 더 낫다. 즉 날카로운 이론(“징후적 독해”)의 방법론적이고 해석학적인 인식틀(conception)에서, 역사적 과정의 이해를 위한 열쇠로서 위기의, 그리고 실재적인 것의 변형의 동력으로서 힘의, 존재론적 인식틀로의 이행의 깊이 말이다. 힘, 마끼아벨리의 “정치적인 것”과 같은, 스피노자의 역능(potentia)과 같은, 니체의 힘에의 의지와 같은 힘. 여기에는 더 이상 이론에서의 계급투쟁 같은 것이란 없다. 여기에는 더 이상 이데올로기에서의 이론적 실천 같은 것이란 없다. 아니 이 모든 것들은 여전히 있지만,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론과 투쟁을 함께 구축할 열린 주체성, 말하자면 그 안에서 철학을 와해시켜버릴 실천의 개념을 위한 탐구가 있다. 이제 전쟁터(Kampfplatz)로서의 철학은 여기서 완전하게 인식된다.
이러한 이행의 중요성에 관해 좀 더 머무를 필요가 있겠는데, 이는 이 이행이 어둠으로 뛰어드는 것 혹은 임의적인 선택의 문제가 아님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비록 새로운 것이 방법론적 작업틀을 압도한다해도, 연속성은 불연속성만큼이나 중요하다. 실제로 방법을 넘어서, 그러나 (동시에) 방법에 관한 결정적인 귀결들과 함께, 개념적인 변형은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들(ISAs)의 주제라고 어딘가에서 언급된 그 주제들을 계속해서 심화해나가는 것에 기초하고 있다. 알뛰세는 이것을 맑스주의 이론에 대해 자신이 행한 근본적인 기여들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사실 “구조와 상부구조(structure-superstructure)”간의 관계는 여기서 결정적으로 전복됐다. 그러나 복구된 작업틀 내부에서 새로운 역사적 상황의 공고화가 파악되지 않는 한, 그 복구된 작업틀의 통일성은 충분하게 확보되지 못한다. 그의 용어법을 빌면, 그가 따르는 괴물스러운 발전들을 갖는 과정의 지성 안에서, 알뛰세는 “탈근대”를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들의 전체주의적 작동의 연속적 팽창과 점증적으로 강렬해지는 근접(contiguity)으로 정의한다. 따라서 이 연속과 이 근접 너머로 하나의 질적 도약이 일어난다. 그리고 만약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에 대한 오래된 정의가 계급투쟁을 이론 안에 한정하는 것을 허용하였다면, 이제 계급투쟁 ―말하자면 민주주의를 향한 그리고 대중들의 힘의 표현을 향한 정치적 투쟁―은 새로운 적, 그것의 이데올로기적 힘에 조응하는 그것의 현실적 바탕을 직면하는 것에 의해 이끌어진다. 그렇다면 주체성에 호소하는 것은 교묘한 술책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자본주의적 재구조화에 적대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없어서는 안 될 영역을 확인하는 것이다. 여기서 이 논의는 명백하게 새로운 주체성에 대한 알뛰세의 정의와 완벽하게 조화롭게 생산력의 새로운 성격으로 즉 사회적 노동의 비물질적이고 추상적이며 협력적인 성격으로 옮겨 갈 수 있다. 실로 새로운 주체성이 자신의 모습을 그려내고, 혁명적 욕망을 다시 꺼내들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곳이 바로 여기이다. 그러나 이 논의의 이러한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층위들에 관해서, 알뛰세는 오직 드물게 다룰 뿐이다.17)
결국 우리가 알뛰세적 사유의 총체적 위기가 시작됐던, “무언가 툭하고 부러짐”이란 생각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곳은 바로 여기이다. 다음과 같은 이유들 때문에 툭하고 부러진 것은 직접적 투쟁의 가능성이다. 즉, 자본주의가 국가와 사회 간의 관계의 지반을 그것을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다져버렸기 때문에 (이것은 그람시에 대한 참조를 더 이상 불가능하게 하는 나아간 지점이다), 그 결과 국가는 텅 빈 지점이 되었고 오로지 사회만이 완전히 권력에 재흡수된 영역이자 우발성의 폭발이 완전히 가능한 영역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이 지점에서 착취가 계급 노선들, 모든 사회적 행위자들의 의식과 주체적 차원들을 관통하는 것 이상으로 그것들을 가로질러 이루어지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사회주의적 “이행”을 말하는 것은 더 이상 의미 없기 때문에. 아마도 다른 어떤 지점보다, 이 사회주의적 이행에 관한 비판이 전회한 알뛰세 사유의 연속성과 차이점을 분명히 밝혀줄 것이다. 사실상 사회주의적 “이행”의 개념에 대한 비판에 또한 요약되어있는 것은 일체의 목적론적 관점에 대한 거부인데 이것은 그의 철학적 작업의 처음부터 그의 사유에 전형적인 것이다. 다른 한편 알뛰세 사유에서 새로운 것은, 말하자면 코뮤니즘으로의 우발적―급작스러운 동시에 실제적인―이행으로서의 “무언가 다른 것으로의 이행”의, 혁명적 과정의 인식틀이 나타났다는 점이다. 잔존하는 어떤 목적론에도 반대하는 이론적 실천이 부과한 백지(tabula rasa)는 자본주의적 발전이 우리를 가두어둔 이데올로기의 전체주의적이고 사회적인 지배의 새로운 상황에 적절하게 조응한다. 이것이 알뛰세의 이론적 실천에서 전회의 내용이다.
우발적 유물론
따라서 철학적 사유의 역사에서 거대한 두 전통들은 철학에 다름 아닌 저 전쟁터를 구축하면서 충돌한다. 그러나 이들 두 적대적 전통은 관념론과 유물론의 전통이 아니다. 그것들은 “우발적 유물론”의 전통과 나머지 모든 것들이다.18) 스탈린주의에 의해 신성시된 것과 같은, 철학적 사유 가운데 “축복받은” 전통 즉, 권력을 정당화하고 국가를 찬양하는 전통의 요소를 완전하게 구성하는 유물론의 형식들이 있다. 다른 한편으로 철학적 사유 가운데 “저주받은” 전통 즉, 역능에 기초하고 역능과 이데올로기의 실천적 비판을 표현할 수 있는 전통에 거의 닿아있는 이상주의적(idealistic) 혹은 정신주의적(spiritualistic) 철학들이 있다. 이 두 전통들, 우발적 유물론과 권력에 대한 관념적(idealist) 정당화는 종종 변화되고 신비화된 형태로 서구 사유의 전체 역사에 거쳐 충돌하였다. 여기서 알뛰세는 맑스주의적 철학자로서의 그의 첫 경험의 시기동안, 공식적인 노동자 운동 내부에 남아있는 와중에 「변증법적 유물론과 역사적 유물론」(DiaMat)에 의해 재현된 사회주의 사상의 재난과 맞서 싸우기 위해 이상주의적 편향(이론주의)에 굴복했었음을 시인한다. 그러나 이제 시대는 바뀌었다. 그러한 이론적 전략들은 더 이상 쓸모가 없다.
여하튼, 에피쿠로스로부터 시작하는, 이단(異端) 및 투쟁을 배태해왔던 기나긴 전통이 숨김없이 드러나는 것은 바로 마끼아벨리와 함께이다. 이러한 기초위에서 철학, 과학, 그리고 인간 과학에서의 이데올로기적 충돌이 열려지게 된다. 마끼아벨리에게서, 우발적 유물론은 근대성을 위하여 정립된다. 스피노자에게서 우발적 유물론은 자연, “인간” 그리고 역사와 관련된 총체적 관점으로서 명시적으로 드러난다. 우발적 유물론의 근본적 특징은 모든 목적론적 지평의 해체, 따라서 사건의 논리의 긍정적 단언이다. 이 논리는 마끼아벨리에게서 나타나는데, 그에게서 사건과 역사성의 인식틀은 “만약~하다면, 그렇다면~하다”의 도식에 따라 주어진다. 인과성은 표면의 우발적 성격에 종속된다. 스피노자에게서, 인과성은 표면위에서 완전히 실현되며 그것의 모든 내적 필연성과 합목적성은 제거되고 무시되는데, 이것은 오로지 결과(effect)만이 원인(cause)에 성질을 부여한다(qualify)는 단순한 이유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발적 유물론이 무엇이며, 그것의 주된 특성은 무엇인지 알뛰세가 직접 이야기하도록 해보자.19) 만약 우리가 데모크리토스와 에피쿠로스의 은유를 넘어서, 진공의, 원자의 그리고 “편위(clinamen)”의 형이상학들을 상기한다면, 근대성 속의 철학적 실천의 의미―그럼에도 이것은 저 은유로부터 영감을 얻는다―는 변증법, 알뛰세가 말해주듯이, 인간주의(humanism), 역사주의에 대한 가장 급진적인 비판을 통해 정의된다. 이것이 유물론의 철학이며, 맑스가 자신의 작업을 비판에 복속시킴으로써 영감을 주려 했던 그 것이다. 따라서 스스로를 이론적 실천으로서 조직하는 유물론적 철학은 철학이 표현하는 이데올로기들간의 싸움터에서, 반(反)변증법적, 반(反)인간주의적, 그리고 반(反)역사주의적 관점을 고수하며 그러한 관점을 그곳에 부과한다. 사실상 변증법은 관념론을 위한 그림 외에 무엇도 아니며, 역사주의는 상대주의를 위한 가면에 불과하다. 인간주의에 대해 말하자면, 그것은 부르주아 문화의 산물 자체이며, 따라서 이런 이유로 그것은 파괴되어야만 한다.
이 모든 것들과의 싸움을 통해, 우발적 유물론은 구체적 역사성으로서의 역사를 보여주며 또한 “인간”자신을 역사의 주체로서가 아니라 역사 속 주체로서 새롭게 제시한다. 따라서 우발적 유물론은 먼저, “완전히 벌거벗은(completely naked)” 유물론이다. 즉 이 유물론은 더 이상“최종 심급”으로서가 아니라 현재의 지평으로서의 그 무엇이며, 구조적으로 지배적인 요소들의 질서나 전치가 무엇이든간에 언제나 존재하는 그 무엇이다. 둘째로, 우발적 유물론은 역사성 즉, 히스토리[서사로서의 역사―역자]에 반대하는 것으로서 게쉬히테[사건으로서의 역사―역자]에 대한 주장으로 나타난다. 곧 업적으로서의 역사(historia rerum gestarum)에 반대하는 것으로서 업(res gestae)이다. 셋째로, 따라서, 여기서 작업틀은 목적이나 필연성 없이 모든 우발적 사건을 다룰 수 있게 완전히 열려진다. “인간”, 역사 속 “인간”은, 역사 속 주체로서, 이러한 기초 위에서 적실한 실천을 수립한다. 곧 철학에서, 어떤 “입장”(“테제”)을 세우기. 실천에서, 스스로를 계속 다시 열어젖히는 길들과 끊임없이 분기되는 경향을 따르기. 우발적 유물론에서 모든 것은 결정되지만, 사실을 뒤쫓아(apres coup) 결정된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하나의 비범한 철학적 정의에 도달하게 되는데, 이 정의는 위기, 코뮤니즘의 존재론적 내용, 그리고 표면의 절대적 비결정론(indeterminism) 사이의 연결을 설명하는 지점으로 우리를 되돌려 데려간다. 우발적 유물론에서 “진행 중의 모든 결정은 존재하는 경향적으로 불변적인 것의 우발적 변이 가능성으로서 나타난다”20) 알뛰세의 이러한 주장이 완벽히 이해될 수 있는 것은 다음과 같은 때이다. 즉 내려지는 결정이 이론적 실천 즉 한 테제의 입장으로서 생각될 때, 표면의 열려진 자유 속에서 우발적 변이가능성이 이 주장의 역사적 행동으로 보일 때, 그리고 경향적으로 불변적인 것이 역사 속 주체들의 자유에 자양분을 제공했던 코뮤니즘의 존재론적 내용으로서 이해될 때이다. 우리가, ―우발적 유물론의, 그것의 방법론들의, 그리고 그것의 개시들의 편에 서서― 변증법, 매개의 개념, 이행의 전망, 따라서 사회주의에 대한 인식틀 (너무나 많은 정당치 못하고 위해한 개념들)에 대한 통렬한 갱신을 수행한 후에, 철학과 정치학의 우월성(supremacy)을 재긍정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여기, 이 이론적 직조(intertwining) 내부에서이다. 또한 틈새들 그리고/혹은 가장자리에 위치된 대중들의 이데올로기적이고 정치적인 운동의 중요성을 고려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완전히 반(反)이데올로기적이고 우발적인 우리의 이러한 선택의 내부에서이다.
신화에서, 모든 이행에 관한 직선적 인식틀로부터 우리를 해방시키자. 그리고 존재하는 것의 우월성―그것이 실천으로서 존재하기에 코뮤니즘의 우월성이기도 하다―을 끌어내자. 이론적 실천의 이 길은, 혁명적 과정의 연속성의 파열이 다음과 같은 근본적 사실, 즉 경제와 정치학에서 이데올로기로 향하는 계급투쟁의 변동, 이 궁극적 변동을 둘러싸고 일어난다는 것을 이해해야 가능해진다. 계급투쟁 일반, 착취에 대항하는 계급투쟁이 결정되려하는 지점은 바로 이데올로기에서의 계급투쟁 내부이다. 철학이 비트겐슈타인과 그의 후기 사상―데리다와 들뢰즈를 제외하면 프랑스 철학자들은 이를 이해하지 못했다―을 구분하며 제안했던 “언어적 선회”는 역사적 선회이다. 이것은 물질적 생산에서 비물질적 생산―이곳은 투쟁이 발생하는 곳이다―으로의, 생산 구조에서 지배적 영역의 이행을 보여준다. 여기에 가장자리들을 중심으로 되가져올 수 있는 가능성이 놓여있다.21) 맑스가 그랬듯이 말이다.
부정적인 것의 힘
우발적 유물론의 이론을 전개해가는 가운데, 알뛰세는 실재하는 존재(real being)의 조직화 속에서 “가장자리들”과 “틈새들”의 기능에 관한 이전의 산발적인 직관들 이상으로 나아간다. 그는 또한 자유의 일반적 관점의 혹은 차라리 적합한 실천을 위한 조건의 정의를 시도한다. 점차 그의 관심은, 마끼아벨리에 관한 그의 연구가 예전에 지적해냈으며 여기서는 훨씬 더 중심적이게 된 주제 즉, 부정적인 것의 힘이라는 주제에 집중된다. 부정적인 것의 힘 즉, 실재하는 존재에 관한 현재의 현상학 속에서 그리고 이에 따르는 실천적 결정들 속에서 부정적인 것, 진공이 차지하는 장소 이자 층위이다. 확실히 역능의 탈근대적 총체화(totalization)는 우리가 살펴봤듯이, 변증법의 모든 가능성을 제거한다. 그 결과 권력의 절정은 순수한, 숭고한 부정성으로서, 진공의 단순한 상부구조로서 드러난다. 경제적, 사회적 그리고 정치적 합리성의 유일한 근거로서의 이데올로기의 실재화는 무의미성(meaninglessness)의 총체성을 자신에 집중시키며, 어떠한 저항의 경험도 비합리성 속으로 밀어넣는다. 이것은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발견하는 그리고 우발적 유물론 스스로가 시험을 겪는 상황이다. 즉 이론적 실천, 저항, 역능이 오로지 존재의 벼랑 위에서만, 진공의 한계 위에서만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상황이다.
이제 이론적 실천 자신이 전복의 지형을 구축해야만 하는 곳은 더 이상 가장자리들 혹은 틈새들이 아니라, 텅 빈 총체성의 극단성, 한계이다. 위대한 신비주의에서와 같이, 세계와의, 권력과의 모든 접촉 나아가 모든 타협은 변증법, 매개, 사회주의와 함께 완전히 제거되어야만 한다. 언어 자체는 실재적인 것을 되풀이하고자 하는 유혹으로부터 자신을 멀리 떼어놓아야 한다. 이러한 전복의 신비주의와 새로운 언어는 유물론적이며 우발적일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의 무의미함을 던져버리고 스스로를 유물론적이며 실천적인 방식으로 표현하는 진공의 인식틀의 역설을 해소하는 것은 어떻게 가능할까? 저 부정성에 기초한 실천의 명확한 유물론적 사유를 작동시키는 것은 어떻게 가능할까? 그 부정성의 내부에서 계급 투쟁의 결합력(valence)을 재구축하는 것은 어떻게 가능한가? 실천적으로 부정성으로부터 역능이 어떻게 생겨날 수 있는가? 알뛰세가 철학적 작업을 수행했었던 상황―혁명적 사유와 실천에서 가장 거대한 후퇴가 있었던 시기인 1980년대― 에서 이들 문제에 대한 답은 오로지 이론적일 수 있을 뿐이다.22) 나는 이것을 아래에서, 이론적 수준에서 규명하려 시도할 것이다. 그러나 이 시기의 알뛰세는 우리가 정식화한 일련의 문제에 실천적인 대답 또한 주기 위해, 혹은 적어도 몇 몇 암시라도 주기 위해 최상의 노력을 기울였다. 이런 목적에서 그는 유일하고도 특권적인 예를 재분류하면서 남미의 해방 신학을 연구했다.23) 그리고 그가 부정적인 것의 힘이라는 관점에 알맞은 다수의 이론적 전제를 실천적으로 발견한 곳이 바로 정확히 해방 신학이다. 이 예에서 실천적이며 이론적인 전제들을 이루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들은 내가 여기서 요약하고자하는 어떤 지점들을 둘러싸고 있다.
먼저 알뛰세는 해방 신학에서 직접적 유물론, “완전히 벌거벗은 유물론”을 얻는데, 이것은 맑스주의와 “최후의 심판”의 언어에 공히 특유한 여러 동사들 (먹다, 마시다, 입다, 거주하다)을 둘러싸고 절합된다. 유물론적 신학 이상의, 기독교적 기원의 유물론, 종교적 우위의 유물론적 실천 (후자[최후의 심판―역자]는 전자[맑스주의―역자]의 변증법적 유물론과 마찬가지로, 개념상으로, 누군가가 “노란 대수(yellow logarithm)”에 관하여 말하려 들 때와 동일한 우스운 인상을 표현한다.) 이것은 내용에 관한 한에서이다. 둘째로, 실천적 전제들은 가난을 행동의 긴급성을 드러내는 주체로서 정의하는 것을 둘러싸고 절합된다. “형언할 수 없는 참상의 충격은 이 신학의 제1 운동인(primum movens)이다. 해방신학자들은 가장 긴급한 것을 돌보고 보살폈다. 예수 자신 또한 그러했다.” 이것은 주체에 관한 한에서인데, 따라서 알뛰세적 관점에서는 비형이상학적 입장이다. 혹은 그보다도 이것은 탈형이상학적(postmetaphysical)인데 왜냐하면 이것이 부르주아적 합리성이 만들어낸 주체에 대한 형이상학적 인식틀 외부에 있기 때문에, 즉 탈부르주아적(postbourgeois)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주체는, 대신에, 자신의 필요와 실천의 비합리적인 평면에 의해 정의된다. 마지막으로, 그 방법에 관한 것으로, 가난한 자들의 실천은 더 이상 구원의 신학 내부에서 정의될 수 없으며, (그리고 이것이 핵심인데) 해방의 실천적 관점에서, 비판적이며 구체적이고 혁명적인 실천 속에서 정의될 수 있다. 알뛰세가 강조하듯이, 이론적 실천이 ―돈이라는 우상에 반대하여 혹은 사회 질서를 세우고 보장하는 신이라는 미신에 반대하여― 모든 우상숭배적 인식틀로부터 “분리된 것의 진공”(void of a detachment)의 입장과 전개로서 자신을 다시 한번 표현할 수 있는 지점이 바로 이 곳, 가능성의 새로운 조건들의 내부이다. 후기 알뛰세의 다른 글에서 나타나는 것처럼24), 진공, 모든 변증법적인 따라서 관념적인 인식들로부터 “분리된 것의 진공”에서, 진공의 느낌은 부정적인 것과 신비적인 존재관의 모든 특징(알뛰세는 에크하르트(Eckhart)로부터 질레지우스(Silesius)까지를, 또 니체로부터 하이데거까지를 참조한다)을 갖는 한편, 그러나 “분리된 것”은 정확히 가장 위대한 가능성들의 장소를, 역능의 장소를 극단적으로 드러낸다.
여기서 알뛰세가 한편으로, 투시하고 창조하는 잠재력으로서의 힘의 아리스토텔레스적 개념의 (아우구스티누스적인 혹은 프란체스코적인) 기도교적 해석의 흐름들을, 다른 한편으로, 실증론을 거세게 비판하면서 그것의 과학적 장식물을 부수고, 우연과 사건의 이미지를 통해 필연성의 지평을 묘사하는 생기론적 입장들을 다루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제 우발적 유물론은 새로운 관점에서 설명되는데, 더 이상 단순히 이론적 대안의 입장으로서가 아니라, 전복된 총체성의 실천적 입장으로서, 단지 역설적으로 뿐만 아니라, 또한 실재의 삶 속에서 강력한 행동의 유일한 원천인 거리(distance)와 가난의 극단적 긴장으로서 설명된다.
마끼아벨리, 철학자 혹은 존재 던지기(le Jet de l'Etre)
포이에르바하는 모든 새로운 철학은 새로운 단어로 자신을 표명할 것이라고 썼다. 그 자신에게는 “인간”의 관념이 그것이었으며, 알뛰세에게 새로운 단어는 우연(aléa)이다. 이 지점에서 마끼아벨리의 철학적 층위―새로운 정치적인 것을 창조하고, 그것을 존재의 형상으로서 일반적인 방식으로 조직하는 철학적 층위―가 나타날 수 있다. 우연, 따라서 어떤 주사위 던지기(coup de dés)도 그것을 제거하는 데 결코 성공하지 못할 우연.(주사위 던지기는 결코 우연을 없앨 수 없다.) 말라르메(Mallarmé)는 주사위를 던지면서, 여전히 그것이 존재를 결정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 그것은 변증법적 작업이었다. 변증법을 넘어서, 주사위 던지기는 오로지 자신을 부정적인 존재, 텅 빔으로서 발견하는 한에서만 존재를 결정한다. 이 놀이에서 처음에 오는 것은 결정이 아니라 주사위를 던지는 것(jet du dé)이다. 던지기(le jet)는 우연이다. 결정은 변증법적이지 않고 우발적이며, 던지기가 존재를 결정한다면, 그것은 오로지 선결정(predetermination)도, 목적성도, 고정성도 텅 비어버린 한에서만 그러하다. 결정은 비결정적인 것이다. 즉 “던지기”는 하이데거의 존재나 진공의 열림과 관계된다. 진공 속에서 열리는 것은 실재의 그리고 지배적 이데올로기의 고정성에 대한 해체적 개입의 무한한 가능성이며, 동시에, 에피쿠로스의 정의(definition)에서 “영구 혁명”과 마오주의에 이르는 혁명적 실천의 무한한 가능성이다. 철학은 항상, 순수하고 단순하게, 정치학이다. 유물론의 모든 다른 아류적 형식들과 마찬가지로 변증법적 유물론 또한, 전쟁터로서의 철학, 입장들의 다양한 우발적 성격들이 각축하는 지형으로서의 철학의 정의에 천착할 때에만 극복될 수 있다. 그러나 유일하게 진실로 철학적인 입장은 삶(Being)의 던지기, 존재 속으로 던지기를 배타적인 것으로서 주장하는 것이다. 우발적 유물론의 철학자는 달리는 열차에 뛰어 올라, 그것이 가는 어디로든 실려가는 서부 영화의 미국 영웅들과 닮았다. 이 철학적 영웅은 관료적으로 열차시각표를 점검하고 열차의 목적지를 결정하는 식의 유물론자들과 아무런 공통점도 없다. 우발적 유물론의 철학자들은 새로운 세계산업노동자(IWW)의 운동가들인데, 이들은 삶의 열차가 그들을 이끄는 곳으로 혁명을 데려간다. 만약 우리가 마끼아벨리와 맑스의 방식에 따라 메타포에서 철학적 이미지로 되돌아간다면, 우리는 더 이상 실재를 높음에서 낮음으로, 정상에서 바닥으로, 국가 및 자본주의적 중심에서 사회 및 재생산의 회로들로 줄 세우는 수직성으로가 아니라, 중심과 조밀한 주변부가 갖는, 그리고 결국 스스로를 주변부의 한계 너머로 확장시키는 가장자리들이 갖는 표면으로 묘사할 수 있다. 만약 우리가 중심을 분석한다면, 우리는 그것이 빈 공간과 같다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국가, 정당들, 그리고 삶의 이데올로기적 생산자들은 모두 중심에 열중한다. 그것의 모든 일관성이 사라져버렸는데도 말이다. 단지 이데올로기가 가능하게 할 수 있는 것은 빈 구멍이다. 만약 우리가 이 빈 중심을 에워싸고 있는 주변부를 분석한다면, 우리는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들의 계속적이고 근사적인 통합작용이 생산했던 탈근대적 사회의 실존을 그것에 기입하게 될 것이다. 이 원환은 전체이다. 전체 즉 변증법의 전체, 객관정신의 헤겔주의 철학의 승리― 코제브(kojéve)가 잘 이해했던 바의, 정신의 절대적 실현, “역사의 종말”. 여기서 역사는 관리(administration)로 변해버렸다. 이것 안에서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의 작업의 효과적 실현이 질서, 규칙성, 실재의 무의미한 두께로 나타난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공간이 존재한다. 실재적인 것 너머에 있는 공간, 관료주의적인 것이 자신의 한계를 부과하는 곳에서 열려지는 공간이 존재한다. 크노(Queneau)가 파리의 지하철에 관해 즐겨 말한 것처럼 “이 경계를 넘는 순간, 차표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이것이 가장자리이며, 유일하게 생기있는 장소인데, 이곳은 “삶의 던짐”에 의해 구성되기 때문이다. 이 가장자리는 전체성의 원환을 압박하며 또 저항의 틈새와 코뮤니즘의 섬을 통해 그것에 스며든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가장자리로부터 문화적 재구조화의 자유로운 운동들은 착취와 정치적 억압을 넘어서 집단적이며 코뮤니즘적인 실존의 순간들을 열어젖힌다. 철학은 인민들에게로 돌아가고, 새로운 주체들을 구축하며, 중심부와 그것의 원환의 텅 빔―첫째는 진공이요, 둘째는 이데올로기적인 것인데, 둘 다 본질적이지 않다―에 대항하여 공격적으로 다시 펼쳐진다.
여기에 철학자로서의 마끼아벨리의 가르침이 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알뛰세 사유의 마지막 국면에서 직조된 모든 실들이, 마끼아벨리의 철학에서 정의된 바와 같이 정치적인 것을 다시 근거지우는 것의 이미지의 주위에서 어떻게 스스로를 재직조하는가를 알 수 있다.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의 작용이 조밀하게 이데올로기적인 사회로 구축해버린 포스트모던 사회에서는, 더 이상 변증법의 허구를 위한 공간조차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은 우리가 지금껏 견디고 참아온 파열이며, 사회주의적 운동이 근본적으로(organically) 극복하지 못했던 부러짐(snapping)이다. 그러나 이 탈근대적 사회, 조밀하고 이데올로기적으로 조직된, 역사의 종말의 사회는 텅 비고, 의미없으며 그리고 완전히 부정적이다. 이 사회를 유지하고 만드는 전체주의는 깨지기 쉽다. 이 구조의 존재론적 특징은 우발적이다. 그것의 한계들 너머에, 그것의 경계들 위에, 오직 거기에서만 저항과 역능의 새로운 존재론이 전개된다. 이 들 가장자리들 내부에 중심의 총체성의 완벽한 전복이 주어진다. 혹은 그러한 전복은 권력 구조의 우발적 성격의, 중심의 텅 빔의 지속적 재발견으로서 건설된다. 코뮤니즘을 향한 저항과 탐구는 이데올로기의 바탕 위에서 전개되며, 이 지점에서 그것은 완전히 긍정되고 삶의 층위를 스스로 안에 요약해낸다. 알뛰세의 가르침은 여기서 끝난다. 그의 가르침은 1960년대에 맑스의 사유에 대한 분석이 그것으로부터 운동했던 바의 비판적 원리들을 궁극적 결론들로 이끈다. 동시에, 이데올로기에 대한 투쟁이 또한 생산에서의 착취에 대한 투쟁이기도 한 자본주의 사회 내부에서 실질적 포섭에 관한 저 분석의 확장의 관점을 열어젖혔다. 미래에 대한, 그리고 다가올 코뮤니즘적 투쟁에 대한 이러한 직관을 묻어버리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1)L. Althusser, Intervention au Colloque de Venise sur la crise du marxisme, 1977년 11월의 수고(Archives IMEC). 또한 다음을 참고하라. L. Althusser, Enfin la crise du marxisme, in : Il Manifesto, Pouvoir et opposition dans les sociétés post-révolutionnaires, Le Seuil, Paris, 1978, p. 242-253. [알뛰세, ?마침내 맑스주의의 위기가?, 김경민 역, 백의, 1992, 25~39쪽.]
2)L. Althusser, Thèses de juin 1986 (타자기로 친 원고, Archives IMEC).
3)L. Althusser, L’avenir dure longtemps, Stock-IMEC, Paris, 1992, p. 217.[알뛰세,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 권은미 역, 돌베개, 1993, 254쪽.]
4)L. Althusser, Sur la philosophie marxiste (수고, Archives IMEC)
5)L. Althusser, Ce qui ne peut durer dans le PCF, Maspéro, paris, 1978.[『당내에 더 이상 지속되어선 안될 것』, 이진경 옮김, 새길, 1992.]
6)L. Althusser, L’avenir dure longtemps, cit., p. 231[『미래는 오래 지속된다』, 권은미 역, 돌베개, 1993, 266~267쪽.] et p. 233[『미래는 오래 지속된다』, 269~270쪽] ; Thèses de juin, cit. ; Postface à l’interview de F. Navarro (타자기로 친 원고, Archives IMEC).
7)Cahiers Machiavelli, 1962-1963 (Archives IMEC)
8)L. Althusser, La solitude de Machiavel, in « Futur antérieur », Paris, L’Harmattan, n° 1, p. 26-49, printemps 1990.[『마키아벨리의 고독』, 김석민 옮김, 새길, 1992, 221~242쪽.]
9)L. Althusser, La solitude de Machiavel (수고, Archives IM EC)
10)L. Althusser, L’avenir dure longtemps, cit., p. 233.[『미래는 오래 지속된다』, 270쪽.]
11)Ibid., p. 207 ss.[『미래는 오래 지속된다』, 243~244쪽.]
12)이에 대해서는 자서전(l’Autobiographie), 1986(타자로 친 문서, Archives IMEC)을 위해 준비했던 원고인 Spinoza를 참고하라.[『철학과 맑스주의: 우발적 유물론을 위하여』, 서관모·백승욱 옮김, 새길, 1996, 149~178쪽.]
13)L. Althusser, Lire le Capital, Maspero, Paris, 1965, volume II, p. 50 et p. 171.
15)J.M Vincent,
16)Althusser, 『L'avenir dure longtemps, suivi de Les faits(미래는 오래 지속된다)』1992, 227면 이하 ; Ranciere,
17)알뛰세는 특히 「페르난다 나바로와의 인터뷰 후기」에서 “소통 사회(communication society)”의 개념을 제시한다.
18)Althusser, 『Filosofía y Marxismo:Entrevista por Fermanda Navarro』, 1988
19)Althusser 1988, ;
20)Althusser,
21)여기서도 여전히 나는 알뛰세를 따르고 있다. (1986c 그리고 「페르난다 나바로와의 인터뷰 후기」)
22)Althusser 1986c, Thesis 2
23)Althusser,
24)Althusser,
'마리선녀 이야기 > 마리선녀 철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파시즘(론)의 현재적 의미 /조정환(자율평론27호 20090302) (0) | 2010.10.23 |
---|---|
안또니오 네그리 : 정치의 새로운 문법을 위하여 /정남영 (0) | 2010.10.23 |
지젝의 '공산주의'와 반역사적 주의주의 비판 /조정환(자율평론33호 20100926) (0) | 2010.10.23 |
공동선과 커뮤니티의 주체 /안또니오 네그리(자율평론33호 20100926) (0) | 2010.10.23 |
왜 ‘노마드 논쟁’이 뜨거운가? /선샤인뉴스20090925 (0) | 2010.10.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