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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평론> 27호(2009-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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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시즘(론)의 현재적 의미

조정환

 

 

이명박 정부의 등장 이후 한국에서는 두 개의 차원의 파시즘론이 등장하고 있다. 하나는 권위주의적 억압정책들로의 회귀를 보이는 정권을 파시즘으로 비판하는 것이다. 이것은 민주당을 비롯한 자유주의 세력과 좌파 일부의 시각이다. 이것은 파시즘은 자유주의나 사회주의와는 달리 권위주의적이고 전체주의적인 것이라는 관점에 입각하고 있다. 또 하나는, 역설적이지만, 권위주의화하는 이명박 정부에 대항하는 운동, 즉 지난 해에 수백만을 동원하면서 한국 사회를 휩쓴 촛불시위를 파시즘의 대두로 우려하는 것이다. 이것은 일부의 좌파 지식인들의 시각인데 이것은 파시즘이 대중운동에 기초한 전체주의였다는 시각에 기초하고 있다. 특히 이 시각은 촛불시위에서 강하게 나타나고 있는 애국주의와 민족주의를 겨냥한다.

 

그래서 한국에서 파시즘이라는 용어는 권력 비판으로서뿐만 아니라 대항운동과 저항을 비판하는 용어로도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지적인 영역까지 고려하면 파시즘이라는 말의 적용범위는 한층 더 넓어진다. 1990년대 이후 정통적 맑스레닌주의 흐름에 대한 비판적 대안으로 떠올랐으며 그 자신 파시즘에 대한 예리한 비판을 제시한 질 들뢰즈와 가타리조차도 일부의 지식인들에 의해서는 파시스트로 비판되기까지 했다.2) 이토록 폭넓은 정치세력이나 정치사유를 표적으로 만드는 말이 파시즘이라면 그래서 모든 것을 비판할 수 있는 것이 파시즘이라면 그것이 어떤 유효한 함의를 갖는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것은 우파들이 자신과 경향이 다른 모든 정치세력을 일컬어 빨갱이라고 하듯, 좌파나 자유주의 세력들이 파시즘에 얽힌 나쁜 기억들을 환기시킴으로써 자신과 경향이 다른 모든 정치세력을 싸잡아 비판하기 위해 사용하는 마타도어(matador) 이상인가? 파시즘이라는 용어의 이 혼탁한 용법들은 이 용어의 사용을 기피하고 싶은 마음을 불러일으키지만 그럴수록 그것의 고유성을 역사적 진화의 맥락 속에서 좀더 엄밀하고 실제적으로 규정하려는 노력은 소중해진다. '빨갱이'라는 말을 통한 좌파의 악마화가 전후 반사회주의적 맥카시즘 선풍과 냉전체제 속에서 형성되었듯이 '파시즘'이라 말의 악마화도 제2차 세계대전이 미국과 소 련을 주축으로 하는 반파시즘 연합군의 승리로 귀결되고 세계질서가 자유주의 대 사회주의라는 냉전 축을 따라 재편되는 과정에서 이루어졌다. 특히 미국 정부는 유대계 자본과 손잡고 홀로코스트 산업을 육성하여 '파시즘'의 악마화를 정치적으로뿐만 아니라 산업적 수단을 통해 추진했다. 특히 헐리우드는 파시즘 악마와 자유주의 천사를 생산하는 이미지 공장으로 기능했다. 이런 역사를 고려할 때, 파시즘에 대한 악마화라는 선동정치를 벗어나 스탈린주의, 파시즘, 케인즈주의라는 20세기 세계의 3대 정치체제에 대한 좀더 냉정한 접근이 절실해 진다.


파시즘은 무엇이었는가?-근대적 전체주의와 수용소 파시즘


역사적으로 파시즘은 1924년 선거를 통해 집권한 무쏠리니 주도의 이탈리아 파시스트당, 1933년 역시 선거를 통해 집권한 독일 히틀러의 나찌당, 그리고 1936년 내전을 치르고 집권한 스페인 프랑코의 팔랑헤당의 정치를 지칭한다. 파시즘에 대한 전통적 관점들은 주로 파시즘 외부에서 제시되었다.

 

그 중 하나는 스탈린주의의 정의이다. 파시즘에 대한 스탈린주의의 정의는 두 시기에 각기 다르게 내려졌다. 첫째는 1928년 코민테른6차대회의 코민테른 강령에서이다. 그것은 “제국주의 모순이 증대하고 계급투쟁이 격화하는 지금 상황에서 파시즘은 갈수록 부르주아 지배의 지배적인 방식이 되어 가고 있다. 강력한 사회민주당들이 존재하는 나라들에서 파시즘은 사회파시즘이라는 특수한 형태를 취한다. 사회파시즘은 파시스트독재 체제에 대항하는 투쟁에서 대중을 마비시키는 도구로서 갈수록 부르주아지에 봉사한다”고 규정한다. 이것은 사회민주주의와 파시즘을 부르주아 지배로 동일시하면서 사회민주주의와의 협력을 거부하고 볼셰비키 독재를 추구하는 사회파시즘 전술을 가져왔다. 둘째의 정의는 1935년 디미트로프 테제에 의해 제시되었다. 그것은 파시즘을 "가장 반동적인 동시에 가장 배타적인, 또 가장 제국주의적인 금융자본 제요소의 노골적인 테러적 독재"로 규정하는 것이다. 강조되는 것은 금융자본과 반동적 테러독재이다. 이러한 정의에 따라 "현재 많은 자본주의나라들의 근로대중은 프롤레타리아독재인가 부르조아민주주의인가 아니라, 부르조아민주주의인가 파시즘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고 보면서 반파시즘 인민전선 전술로의 전환이 이루어진다. 이러한 방침에 따라 프롤레타리아 독재(실제로는 볼셰비키 독재)라는 목표는 유예된다. 파시즘을 부르주아 지배의 지배적 방식으로 보는가 금융자본의 테러독재로 보는가는 중요한 차이이다. 전자에 따르면 파시즘은 부르주아민주주의와 질적으로 구분되지 않는다. 그래서 반파시즘 투쟁 자체가 부르주아민주주의와의 투쟁이다. 후자에 따르면 파시즘은 부르주아민주주의와 질적으로 구분될 뿐만 아니라 파시즘의 타파 없이는 부르주아민주주의와의 투쟁 자체가 당면한 과제로 제시되지 못한다. 그래서 반파시즘 투쟁은 부르주아민주주의와의 투쟁을 가능하게 하는 정치적 조건을 만들기 위한 민주주의 투쟁에 속한다. 이것은 모두 스탈린주의를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요소로 보는 관점에서 이루어진 것으로서 전자는 당면한 혁명을 프롤레타리아 혁명으로 규정하는 것이며 후자는 부르주아민주주의 혁명으로 규정하는 것이다.

 

서구에서의 파시즘에 대한 정의는 파시즘이 점차 강화해간 반유태주의적 인종주의와 추방, 그리고 강제수용소를 강조한다. 이 강조를 통해 파시즘은 민주주의와 대립하는 반민주적 잔혹정치로, 학살정치로 규정된다. 이것은 인민전선 전술에서 스탈린주의가 내린 정의와 접근한다. 그것은 민주주의와 파시즘을 식별하는 공동의 선을 확인하는 것이다. 이것은 제2차세계대전 말기 소련과 미국의 연합의 근거로 작용한다. 스탈린주의가 파시즘과 서구자유주의의 공통근거를 부르주아 지배에서 읽고 있었듯이, 서구 자유주의는 인종주의와 배제, 그리고 수용소를 수단으로 하는 전체주의라는 점에서 파시즘과 스탈린주의의 공통근거를 읽고 있었다. 그런데 스탈린주의 자체가 프롤레타리아 지배가 아니라 부르주아 지배의 특수한 방식으로 규정되고 있는 지금의 상황에서 파시즘과 자유주의의 구별뿐만 아니라 부르주아 지배와 볼세비키 지배의 변별이 의미를 상실하듯이, 서구 자유주의에 내재된 인종주의와 추방이 확인되고 있는 지금 전체주의와 자유주의의 구별도 의미를 상실한다. 이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스탈린주의와 자유주의적 케인즈주의, 그리고 파시즘이라는 부르주아 지배의 3대 형식 사이의 본원적 일치와 차이점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파시즘에 대한 새로운 규정의 노력들이 지속되어 왔다. 그 중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은 파시즘을 부르주아 지배의 형식으로 파악한 위로부터의 규정을 넘어서 아래로부터 규정하려는 라이히의 시도([파시즘의 대중심리])이다. 그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패배라는 조건 속에서 대중 내부에 자율에 대한 공포가 확산되고 이것이 분열에 대한 억제로서의 편집증을 초래했는바 이것이 파시즘이라고 본다. 이러한 시각은 하나의 정치형태를 자본중심적으로 정의하던 관례를 벗어나 대중중심으로 정의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가타리는 라이히의 정의를 계승하고 또 급진화시킨다. 그는 분열에 대한 억제로서의 편집증은 스탈린주의, 자유주의적 케인즈주의, 파시즘에 공통되는 전체주의 기계의 작동을 확인하면서 자유주의 전체주의와 스탈린주의 전체주의가 동맹하여 파시즘 전체주의를 파괴하게 된 이유를 규명한다. 그것은 파시즘 전체주의 속에 커다란 불안정성이, 분자화가 작동하고 있었고 그것이 대중을 격렬하게 선동하여 부르주아 지배 자체를 내부로부터 폭발시킬 위험이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전체주의 기계는 그 어느 것이건 분자화를 작동시키면서 그것을 자동조절할 수 있는 체제를 요구하는데 이 점에서 3대 지배양식은 차이를 갖는다. 우선 점점 관료지배체제로 된 스탈린주의는 생산력의 발전과 노동력의 분자화를 자동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 취약하여 억압 이외의 다른 방식으로는 분자화와 관계 맺기 어려웠다. 그 결과 자율적인 혁명투쟁과 욕망투쟁의 탈주운동이 억압적 체제 자체로부터 이반하여 그것을 붕괴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즉 분자화를 자극할 수도 조절할 수도 없는 체제의 경직성이 스탈린주의 지배의 결정적 약점이었다는 것이다. 둘째 자유주의 및 자유주의적 케인즈주의의 사회계약은 적어도 1968년까지는 어느 정도 분자화 운동을 작동시키면서도 그것을 전체주의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힘을 발휘했다. 셋째 파시즘은 이 두 개의 체제에 비해 가장 큰 분자화를 작동시켰지만 그것을 조절할 수 있는 확인된 능력을 갖고 있지 않았다. 군대, 정치당파, 경찰분파, 경제권력 등 수많은 상이한 권력집단들 사이의 타협을 이룰 장치를 갖고 있지도 않았고 대중의 혁명적 열정을 봉쇄할 장치를 갖고 있지도 않았다. 반유태주의적 인종주의는 이 격화된 분자화를 전체주의적으로 조절하기 위해 동원된 방법이었고 그것은 파시즘 체제를 거대한 수용소 전체주의로 역전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러므로 파시즘이 남긴 문제는 분자화를 격렬하게 자극하면서도3) 어떻게 전체주의적 지배가 가능한가라는 역설적 질문이었고 그것의 실험은 제2차세계대전에서 파시즘의 패배와 파시즘=악마 공식의 정착으로 인해 봉쇄되었다.

 

이후 파시즘에 대한 주목할 만한 연구는 조르조 아감벤에 의해 제시되었다.4) 그는 전체주의와 민주주의 사이의 변별이라는 서구 파시즘 연구의 주된 경향을 반비판하면서 전체주의와 민주주의의 본원적 일치, 양자의 공통성을 밝힌다. 주권은 생명을 정치의 대상으로 삼으면서 그 중의 일부를 벌거벗은 생명으로 만들어 추방하고 배제하는 것을 원리로 삼는데 이것은 전체주의에서나 민주주의에서나 동일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20세기 정치 전체의 본원적 전체주의성을 규명하여 "파시즘, 스탈린주의, 부르주아민주주의 등의 모든 구조들을 횡단하여 자신의 길을 추구하는 하나의 동일한 전체주의 기계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한 가타리의 정의와 합치한다. 하지만 그는 이 세 형태들 사이의 차이를 규명하는 문제를 덮게 되었고 그 결과 억압에 놓인 생명, 계약에 참여하는 생명, 분자화하는 생명 등 생명의 능동성과 힘의 다양태를 밝히는 작업을 미뤄놓는다.

 

이런 점에서 보면 파시즘이 이탈리아 산업의 당대적 요구에 부합하는 것이었고 단기간에 이탈리아의 생산력을 자유주의 서구와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향상시켰다는 세브리오 볼로냐의 생각이 주목되어야 한다. 볼로냐에 따르면 파시즘을 자본주의의 생산력의 만개(滿開)를 방해했던 “강제된 경제”(economia forzata)의 시기로 보는 관점은 반(反)파시즘적 부르주아지의 이데올로기 속에서 양성된 관점에 지나지 않는다.5) 오히려 파시즘 하에서 발생한 자주관리위원회들은 생산력의 거대한 발전을 가져올 수 있는 힘이었고 파시스트 경영자들은 그것이 갖는 체제파괴적 위험을 주시하면서 그것을 어떻게 자본주의 발전의 동력으로 배치할까를 고민하는 어중간한 태도를 취했다. 파시즘 하에서 프롤레타리아가 실제로 어떻게 움직였는가의 문제는 중요한 연구과제로 남아 있다.

 

파시즘은 무엇인가?-탈근대적 전체주의와 삶권력의 파시즘


그렇다면 파시즘을 악마적 정치로 등치시키는 사회주의/자유주의의 반파시즘 동맹 및 홀로코스트 산업의 발전에 의해 파시즘은 부르주아 지배로부터 버림받았고 또 영원히 매장되었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20세기 정치 전체의 보편적 파시즘화를 생명정치라는 이름으로 요약하는 아감벤의 연구는 오히려 파시즘의 복귀와 일반화를 암시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는 정치사적 진단에서 아감벤에 어느 정도 동의할 수 있다. 하지만 파시즘의 복귀는 주권의 본질이론을 통해 설명되기보다 역사적 변화를 통해 설명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 역사적 설명은 아감벤이 '호모 사케르'라는 희생자적 이름 속에 묻어버리고 있는 능동성과 주체성의 지점을 좀더 세심하게 읽어내지 않고는 곤란하다.

 

1968년 혁명은, 사회주의(스탈린주의)와 사회민주주의(케인즈주의)로 대표되는 전후의 부르주아 전체주의 기계들이 억압했던 것들의 회귀였다. 체코슬로바키아 봉기에서 시작되어 프랑스 5월 혁명으로, 이어 전 지구적 혁명으로 발전된 68혁명은 보장받지 못하는 모든 계급, 계층, 사회집단들의 미시적 운동들이 폭발되어 나온 것이다. 68혁명은 제2차 세계대전의 승자들인 사회주의와 사회민주주의가 위기에 직면하고 균열과 붕괴를 경험하면서 새로운 지배체제의 도입을 강구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을 강제했다. 이런 의미에서 1989년의 베를린장벽의 붕괴는 1968년에 시작된 체제위기의 완성이라는 월러스틴의 지적은 설득력이 있다. 더 이상 스탈린주의와 케인즈주의가 가능하지 않은 상황은 이처럼 거대한 분자적 운동의 출현에 의해 조성되었다. 아래로부터의 이 분자적 운동은 스탈린주의나 자유주의에 비해 파시즘 하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출현했고 또 자극되었던 것이다. 68혁명에 대한 대응으로 개시된 신자유주의적 전환은 이 분자적 대중운동을 스탈린주의적으로 억압봉쇄하는 것도 아니었으며, 일국수준에서의 사회민주주의적 계약에 의해 조절하는 것도 아니다. 생산의 정보화와 자본의 금융화, 소유의 사유화, 정치의 시뮬레이션화는 대중수준에서 솟아나오는 이 분자적 운동에 적응하면서 그것을 통제하기 위해 취해진 변화들이었다.

 

훈육사회에서 통제사회로의 변화를 정식화한 들뢰즈의 통제사회론, 국민국가 주권에서 전 지구적 네트워크 주권으로의 변화를 기술한 네그리의 제국론은 새로운 지배방식의 특징을 포착하기 위한 이론적 시도들이다. 탈근대적 전체주의 기계는 삶의 수준에서 진행되는 대중의 활발한 분자화와 혼종화, 즉 다중화를, 그 역시 분자화된 자본의 네트워크화와 그에 입각한 전 지구적 통제를 통해 통합하려 한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세계부르주아지는 대중의 분자화 운동의 대두에 직면하여 나타난 사회주의/사회민주주의의 위기 상황에서 그 어떤 통치형태보다 더 대중의 분자화를 자극했던 파시즘에 다시 호소하는 길을 선택한다. 탈근대의 자본 지배는 대중의 분자화를 기정 사실로 받아들이면서 그것에 일면적 억압으로 대응하거나 혹은 대의적 사회계약으로 대응하지 않으면서 자본 자신의 분자화와 미시화를 통해 이에 대응하려 한다. 자본은 삶으로부터 노동을 분리시키고 그것을 집중시켜 착취하는 방법으로부터 삶의 수준으로 내려가 그것의 분자적 미시적 운동 자체를 활성화하면서 그것을 수탈하는 방법으로 전술을 전환한다. 이것이 탈근대 파시즘으로서의 삶권력의 대두이다.

 

삶권력의 정치적 계급적 토대와 그 전략


탈근대 파시즘은 근대 파시즘의 단순한 복구가 아니다. 근대 파시즘은 분자화하는 흐름들을 장려하면서도 그것들이 서로 수평적으로 연결접속되도록 와ㅓ~!하기보다 노동, 인종, 국가, 전쟁의 끈으로 묶었고 주권 아래에 종속시켰다. 근대 파시즘은 이 때문에 한편에서는 격렬한 분자화, 그리고 다른 한편에서는 잔혹한 전체주의화의 이중과정으로 나타났다. 파시즘 권력은 분자화하는 삶을 자극하고 그것에 의해 힘을 얻으면서도 궁극적으로는 그 과정에 외부적인 것으로 남아 있었다. 하지만 탈근대적 파시즘의 삶권력은 더욱 격렬하게 분자화하는 삶과 삶시간에 직접 대면하며 그 내부에서 기능한다. 근대의 노동시간은 시작과 끝이 있는 시간이었으며 필요노동시간과 잉여노동시간으로의 분절이 가능한 시간이었다. 그것은 측정 가능했고 또 측정되어야 하는 시간이었다. 그러나 삶시간은 모든 존재들이 탄생하고 생산하고 교통하기를 반복하는 영원의 시간이고 측정 불가능한 시간, 척도 외부의 시간이다. 나아가 그것은 권력(pouvoir)의 척도 너머로 움직이는 창조적 능력(puissance)으로서의 활력의 시간이다. 근대의 파시즘은 노동시간에 대한 가치화의 체제(가치법칙)를 확립함으로써 삶활력(Lebenstätigkeit)으로부터 노동력(Arbeitskräfte)을 분절했다. 이 점은 스탈린주의나 케인즈주의도 다르지 않다. 요컨대 근대의 자본과 권력은 이처럼 삶에서 노동을 분절하는 것에 의존했다.

 

파시즘의 탈근대적 부흥과 삶권력화는 이제 삶시간 전체의 자본에로의 포섭을 시도한다. 그것은 한편에서는 자본의 권력의 증대이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자본이 자신의 척도권력(가치법칙)을 잃고 늪으로 빠져듦을 의미한다. 그래서 탈근대적 삶권력은 직접적으로 삶활력을 자신의 축적기반으로 확보할 수 있는가 없는가에 사활을 걸게 된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금융화, 사유화, 정보화, 요컨대 자본 자체의 분자화와 미시화는 삶을 직접적인 축적기반으로 확보하기 위한 자본의 유연화 전술들이다.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시도들 속에서 권력의 삶에 대한 의존성은 좀더 선명히 드러난다.

 

척도 너머의 삶능력을 지배하기 위해 권력이 선택하는 길은 두 가지 벡터로 구성된 하나의 길이다. 하나의 벡터는 노동하는 대중의 일부에게 잉여가치의 일부를 분배하여 이들이 자본주의의 생존에 이해가 걸린 그것의 적극적 구성부분으로 기능하도록 만드는 것이다(임금의 지대화). 또 하나의 벡터는 노동하는 일부에게 임금 이하의 몫을 지불하고 이들을 부단히 외부화하고 배제하여 인위적인 제4세계를 창출하는 것이다(비정규직화 및 불안정화). 이것은 삶권력이 시도하는 대중의 분할이라는 단일한 과정의 양면이다. 전자는 통합의 벡터이며 후자는 전쟁의 벡터이다. 이처럼 삶권력이 대중의 일부를 살게 하려는 노력은 대중의 다른 일부를 죽이는 과정으로 나타난다. 그래서 제국의 삶권력은 살게 하기 위해 죽이기를 반복한다. 이런 의미에서 삶권력은 살게 해야만 하나 죽게 하기 외에는 할 수 없는 살아 있는 모순이다.

 

삶권력의 시대가 예외권력에 기초한 보편적 전쟁과 죽임의 상태, 비상적 예외의 시대(아감벤)로 나타나는 것은 이 때문이다. ‘테러에 대한 전쟁’은 이 보편전쟁을 알리는 암구호이다. 명령으로 삶시간과 대면하는 삶권력은 삶능력 앞에서 공포 이외의 다른 것을 느낄 수 없다. 삶권력은 척도 바깥에서 척도 너머로 움직이는 창조와 약동의 삶시간을 테러로 받아들인다. 군사적 전쟁, 정치적 치안, 경제적 박탈, 정보적 감시 등은 삶능력에 대한 전쟁이 수행되는 폭력적 방식들이다. 삶권력은 삶능력을 배태하고 출산할 산모가 아니라 삶능력의 피를 빠는 흡혈귀이다. 영구전쟁을 가져오는 제국이 드러내는 안보불안은 삶권력이 삶능력에 과잉면역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면역결핍 상태에 있음을 보여준다.


탈근대 파시즘 속에서 삶정치의 가능성: 분자화의 활성화와 공통화


삶능력은 오늘날 다중의 능력으로 나타난다. 다중의 삶능력은 자신이 제국과 대칭적인 강력한 폭력을 소유하고 있음을 주장하는 데 있는 것도 아니며 비폭력주의를 통해 제국의 폭력독점을 (고발하되 실천적으로는) 묵인하는 데 있는 것도 아니다. 삶능력은 무엇보다 창조력이며 삶을 생산하고 재생산하는 구성력이다. 이 힘은 권력과 삶이 아니라 특이한 다중들이 서로 반려종(해러웨이)으로서 협력할 수 있을 것을 요구한다. 상보적 면역체계의 패러다임(에스포시또)도 삶과 권력의 타협의 관계를 파악하기 위해서보다는 특이한 다중들의 협력적 상호관계를 파악하기 위해 사용될 필요가 있다. 이럴 때 면역패러다임은 민주주의적 구성의 과학(매디슨)을 혁신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삶능력의 이 민주주의적 구성과정은 살게 하기 위해서 죽이기를 반복하는 삶권력의 폭력기관들을 무력화하거나 해체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레닌). 그러나 이것을 위해 삶능력이 민중의 권력을 위해 행사되었던 대항폭력과 같은 것으로 될 필요는 없다. 대항폭력은 주권이 행사하는 폭력과 마찬가지로 누군가를 예속시킬 다른 주권을 생산할 것이기 때문이다. 다중의 삶능력이 행사하는 폭력은 삶권력의 폭력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고 다중의 탈주를 용이하게 하며 특이한 존재들 사이의 소통을 확장함으로써 궁극적으로 '협력을 생산하는 힘'이어야 할 것이다. 이렇게 기존의 권력을 파괴하면서 새로운 협력을 생산하는 삶능력의 이 두 측면을 함축하는 것이 ‘제헌권력’(pouvoir constituant)이다.

 

한국에서의 파시즘의 운명: 이명박 대 촛불


이제 이명박 정부의 등장 이후 확산되고 있는 파시즘 담론의 이중적 차원으로 돌아가보자. 역사적 파시즘은 분자적 운동을 활성화하면서도 그것들의 공통화를 꾀하기보다 궁극적으로는 전체주의적 집단화로 귀착하는 체제였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이것을 블랙홀로 빠지는 탈영토화 운동이라는 말로 정식화했다..7)그런데 우리는 파시즘에서 근대적 파시즘과 탈근대적 파시즘이라는 두가지 유형이 구분됨을 확인했다. 스탈린주의와 케인즈주의의 위기에 직면하여 자본이 의존하기 시작한 것은 이 두 체제가 악마로 치부하여 폐기했던 파시즘이었지만 그것은 근대 파시즘의 단순한 복제가 아니라 새로운 변형으로 나타났다. 신자유주의의 형태로 재구성된 탈근대적 파시즘은 생산에서의 강렬한 분자적 운동을 자극하면서 그것의 카오스적 에너지를 흡수하기 위해 주권 자신이 분자적으로 되어 생산의 현장인 삶 속으로 침투하는 삶권력으로 나타났다. 그것은 아래에서 비정부기구, 언론, 민족국가를 매개로 한 민주주의적 재현과정을 가동시키고 그것을 지역적 블록의 힘으로 절합하여 귀족적 지배를 구축하고 그것을 다시 미국을 정점으로 하는 군주제 아래로 통합하는 제국적 주권의 형상을 갖는다. 제국은 근대 파시즘이 구축했던 수용소를 다시 구축하지만 특정한 장소에 제약된 수용소로서보다는 어떤 외부도 없는 전 지구적 수용소의 형태로 재구축한다.

 

그런데 이명박 정권은 과연 대중의 분자화를 자극하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오히려 이명박 정권은 강한 분자운동을 보여준 대중에게 족쇄를 씌우고 컨테이너 장벽, 전경 장벽, 정보 장막, 거짓말 장막을 설치한다. 물리력에 대한 의존이 급증하고 언론을 자신의 것으로 장악하려는 욕망이 고조되며 무수한 금지들을 법제화하려 한다. 그 결과 대중은 그램분자화되어 다시 무거운 유형의 계급집단으로 집계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므로 대중의 분자화는 이명박 정부의 등장 이전에, 특히 노무현 정부에서 더 강하게 자극되었다고 하는 편이 타당할 것이다. 이명박 정권에 의해 강하게 추진되는 것은 분자화가 아니라 전체주의화이다. 파시즘이라는 용어를 이데올로기적으로, 특히 승전국 미국의 입장에서 실용정치적으로 사용하게 되면 그것은 가장 전형적인 전체주의 정치이다. 이런 의미로 파시즘을 이해한다면 이명박 정부는 파시즘의 이미지에 접근한다. 하지만 가타리와 들뢰즈, 세르지오 볼로냐의 연구는, 파시즘이 스탈린주의나 케인즈주의에 비해 덜 전체주의적이었거나 전체주의화에 실패한 정치이고 그 원인은 그것이 자극한 강렬한 분자운동에 있었음을 보여준다..8) 바이마르 공화국 하에서 독일 사회민주당은 래테를 기축으로 하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무력으로 파괴했고 선거에 의한 파시즘의 집권은 그것에 대한 대중의 공포의 표현이자 반발로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파시즘 전기에 대중 차원에서 강렬한 분자운동이 자극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날이 갈수록 통제하기 어려운 것으로 되었고 그 때문에 후기의 히틀러는 전체주의적 결속의 수단으로 그만큼 강렬하고 또 잔혹한 인종주의와 강제수용소에 의지하지 않을 수 없었다. 노무현 정부에서 이명박 정부로의 이행은 파시즘 발전의 이 두 역사적 단계를 압축적 방식으로 재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분자화 중심에서 전체주의화 중심으로 초점의 이동! 파시즘의 활성국면에서 쇠퇴국면으로의 이동!

 

그렇다면 무엇이 이명박 정부 하에서의 전체주의화를 가동시키는 힘인가? 우리는 이 힘이 이명박 정부 하에서 구축되기 시작했다기보다 오히려 노무현 정부 하에서 구축되었다고 볼 필요가 있다. 노무현의 신자유주의는 김대중 정부에 뒤이어 정보화, 지구화, 민영화, 금융화라는 방식으로 자본의 분자화, 삶권력화를 가속시켰다. 이것이 가져온 것은 주지하다시피 정리해고와 노동법 개악을 통한 실업자, 비정규직 불안정노동자의 급상승이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앞서 언급한 것처럼, 정보화된 생산과 비물질노동의 확대라는 상황에서 실업자와 불안정노동자는 임금 이하를 받는 계급으로서 존엄한 삶은커녕 생존 그 자체가 위기에 처하게 된 계급이다. 반면 정규직 노동자의 성격도 이에 따라 변화한다. 점점 소수화되는 정규직 노동자는 임금 이상의 소득을 얻게 되며 임금 사다리의 높은 곳으로 올라가면 갈수록 그가 분배받는 임금 이외 소득(지대)의 몫은 더 커지게 된다. 연금과 보험, 주식보유, 부동산투기 등은 정규직 노동자에게 국가지원금, 배담금, 지대의 형태로 잉여가치의 일부를 받을 수 있도록 허용한다. 자본과 노동 사이의 동종간 격차보다 자본 사이의 격차, 노동 사이의 격차 등 이종간 격차가 더 커지는 상황도 발생한다. 예컨대 소규모 자본을 경영하는 자영업자의 소득이 잉여가치의 일부를 분배받는 정규직 노동자들의 소득보다도 훨씬 낮게 되는 상황이 발생한다. 이처럼 노동계급의 일부가 자본주의의 재생산에 큰 이해관계를 갖게 된 상황은 신자유주의의 활성국면에서, 즉 탈근대 파시즘의 전기에 구축되었다. 촛불을 든 사람들이 의아해 하는 바, 선거에 의한 이명박 정권의 등장은 다양한 경향들에 기초한다. 그것은 축적에 대한 자본가들의 탐욕 뿐만 아니라 잉여가치의 더 큰 몫을 배분받으려는 정규직 노동자의 욕망에 입각하며 그 자신도 정규직 노동자가 되어 임금 및 혜택.9)의 수령자가 되려는 비정규직 노동자들, 실업 노동자들, 혹은 예비 노동자들의 환상에도 기초하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이 모든 벡터들의 합산은 분자화를 저지하고 전체주의화를 가속시키는 과정을 작동시킨다. 그리하여 이명박 정부는 탈근대 파시즘이 급속히 쇠퇴의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신자유주의의 종말이 예견되고 또 경험되는 시대의 말기 파시즘적 징후들을 보인다. 그것은 점점 더 사법, 감옥, 폭력, 전쟁, 인종주의, 여론조작, 거짓말 등에 더 많이 의존하면서 자신의 기반을 침식하고 붕괴를 향해 질주한다. 정규직 노동자에게 주어졌던 혜택들의 침식, 요컨대 주식시장의 붕괴로 인한 배당금의 실종, 부동산 가격의 폭락으로 인한 지대 수입의 소멸, 연금들의 부후(腐朽)로 인한 임금지대의 위기 등은 결국에는 파시즘 그 자체의 기반을 송두리째 허무는 것으로 작용할 것이다.

 

이 과정이 자동붕괴의 과정인 것은 물론 아니다. 자신의 기반에 대한 침식이 분자적 운동의 재활성화를 수반하지 않는다면 새로운 사회의 가능성은 있을 수 없다. 히틀러 체제의 결정적 붕괴를 가져온 것은, 무엇보다도 무기생산 공장들에서의 사보타지와 대중파업이었다. 전체주의화가 강화되면서 노동자들은 파시즘 체제에의 협력을 거부했고 그것이 전선에 무기공급을 어렵게 만들면서 히틀러 체제의 패배가 결정되었다. 2008년에 불붙은 촛불은 쇠퇴하는 탈근대 파시즘 체제로부터 대중의 이탈을 보여주는 징후이다. 그것은 전체주의화를 거부하는 분자화에 대한 열망의 분출이다. 미국/소련 중심으로 형성된 전통적 파시즘론과 달리 유럽적 시각의 영향을 받아 파시즘을 대중운동으로 파악할 수 있는 시선을 가진 신좌파 지식인들 일부가 촛불을 다시 파시즘으로 명명함으로써 파시즘 담론이 이중화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촛불이 다양성의 바다임을 망각함으로써만 가능한 진단이다. 탈근대 파시즘은 근대 파시즘과는 달리 단일하게 결속시키기 어려운 복잡하고 혼종적인 다중을 창출했다. 이 혼종성은 사회집단적 다양성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단일 개체 내에서의 다양성도 지칭한다. 우리는 촛불 속에 '분자화를 활성화하는 전체주의화'라는 파시즘적인 모순적 욕망이 잠재해 있음을 부인하지 않는다. 노무현식 신자유주의에 대한 애착, 황우석주의를 비롯한 다양한 유형의 애국주의들 등이 그러하다. 그러나 잠재력은 이보다 훨씬 다양하고 다층적이다. 촛불 속에는 탈근대 파시즘보다 더 전체주의적일 수도 있는 스탈린주의적 경향들, 반일 또는 반미 민족주의적 경향들, 케인즈주의적 경향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또 이와 달리 절대적 분자화를 추구하는 아나키즘의 경향들도 존재한다. 문제는 탈근대 파시즘의 이 전체주의적 쇠퇴 국면에서 인종주의적 전체주의, 노동주의적 전체주의, 자유주의적 전체주의로 귀결되지 않으면서도 그렇다고 절대적 분자화로 귀결되지도 않을 정치적 가능성을 발견하고 구축하는 일이다. 그것은 분자적 특이화들의 연결접속, 즉 공통화의 가능성에 다름아니다. 연결접속은 결속과 다르다. 결속은 전체주의적 기계장치로서의 위계적 국가 혹은 다른 형태의 주권을 필요로 하지만 연결접속은 코뮤니즘적 소통기관들을 필요로 한다. 이것이 삶권력의 쇠퇴 국면에서 가능한 삶정치의 실재적 가능성이다. 분자화와 특이화를 저지하면서 이루어지는 현재의 급속한 전체주의화가 탈근대 파시즘 하에서 형성된 금융자본과 지대/이윤을 향유하는 임노동자를 진앙지로 삼고 있는 만큼 코뮤니즘적 소통관계의 형성은 이러한 자본 및 노동 형태의 사적 성격을 해체하는 것을 수반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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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타리의 파시즘 비판은 『분자혁명』(윤수종 옮김, 푸른숲, 1998), 들뢰즈와 가타리의 파시즘 비판은 『천개의 고원』(김재인 옮김, 새물결, 2001) 참조
2) 이종영, 「파시스트 들뢰즈와 가타리가 반(反)파시즘을 말하다」,『문학과사회』 2002년 여름호 참조.
3) 이것은 파시즘 초기 기간의 도약적인 생산력 발전에 의해 증명된다.
4)조르조 아감벤,『호모 사케르』, (박진우 옮김, 새물결, 2008) 참조.
5) 이원영 편역,『이탈리아 자율주의 정치철학.1』, (갈무리, 1998) 참조.
6) 같은 책
7) 들뢰즈와 가타리, 앞의 책.
8) 들뢰즈와 가타리는 파시즘이 전체주의가 아니었다는 연구들을 중시한다.(『천개의 고원』참조) 볼로냐는 이탈리아에서 대중노동자의 이론과 역사에서 파시즘에 대한 반파시즘 부르주아지의 견해들을 비판해온 이탈리아 내부 연구들의 역사를 정리한다(『이탈리아자율주의 정치철학.1』참조). 강제수용소가 파시즘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바이바르공화국 시대에 사회민주당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아감벤의 연구도 이와 보조를 같이 한다: "독일 최초의 수용소는 나치 체제가 아니라 사회민주주의정부에 의해 세워졌다는 것을 잊지 않는 일은 대단히 중요하다. 사회민주주의 정부는 1923년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나서 '예비검속'에 근거해 수천명의 공산당 활동가들을 검거했으며 또한 코트부스-질로프에 '외국인집단수용소'를 세워 주로 동유럽의 피난민들을 수용했는데 따라서 이것이 20세기 최초의 유대인수용소(물론 학살수용소는 절대로 아니었다)로 간주될 수 있을 것이다.(조르지오 아감벤, 앞의 책, 317쪽.)
9) 여기서 '혜택'은 사회적 정치적 임금의 수령뿐만 아니라 이윤과 지대 몫에의 참여까지 포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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