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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선녀 이야기/마리선녀 철학

인권을 넘어 /지오르지오 아감벤(자율평론20050707)

by 마리산인1324 2010. 10. 24.

<자율평론> (2005-07-07)

http://jayul.net/view_article.php?a_no=779&p_no=1

 

 

 

인권을 넘어


 

지오르지오 아감벤/ 역자 : 양창렬 · 김상운


* 글쓴이 : 지오르지오 아감벤(Giorgio Agamben)
* 옮긴이 : 양창렬(nomade02@hotmail.com) / 김상운(sanggels@freechal.com)

* 출 처 : 이 글은 Means without end에 수록된 “Beyond Human Rights”를 원본으로 하여 옮긴 것이지만, 원래 이 글이 프랑스어로 「리베라시옹」에 실렸다는 점을 감안하여 양창렬이 불어판으로 다시 교정을 봤다. 그리고 김상운은 영역본 및 인터넷 판본과의 차이를 설명하기 위해 현격한 차이가 날 경우에 한해 이를 주석에서 설명해 놓았다. 한편 영역본을 기준으로 초벌 번역을 하는 과정에서 대조해 본 결과 영역본보다는 인터넷에서 구할 수 있는 자료인 “We Refugees”1)라는 글의 번역이, 불어판에는 미치지 못하나 그나마 훨씬 적합하다고 판단하게 되었다. 어쨌든 지금 여기에서는 잠정적으로 영어판본 2개를 기준으로 옮기고 불어판으로 재교정을 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역의 책임은 김상운에게 있다. (본문의 [ ] 안에 있는 글귀는 옮긴이가 이해의 편의를 도모하기 위해 집어넣은 것이며, 번역어 다음에 ( ) 안에 있는 이탈리아어나 여타의 외국어는 원본에서 [ ] 안에 들어가 있는 것이다. 또 다의적인 의미로 사용되는 people는 주로 인민으로, nation은 국민으로 옮겼고 다르게 옮긴 경우에는 원어를 병기해 두었다. nation-state는 국민-국가로 옮겼고 단 한번 나오는 표현이기는 하지만, ‘national state’는 민족국가로 옮겼다.) ■역자




1) http://www.egs.edu/faculty/agamben/agamben-we-refugees.html

한나 아렌트는 1943년, 영어로 발간되는 소규모 유대인 정기간행물인 The Menorah Journal에 「난민인 우리(We Refugees)」라는 글을 수록했다. 짧지만 아주 중요한 이 글에서 아렌트는 150%는 독일인이고 150%는 오스트리아 빈 사람이며, 150%는 프랑스인이었던, 하지만 결국에는 “우리는 두 번 도래할 수 없다(on ne parvient pas deux fois)”는 것을 쓰라리게 깨달은 동화된 유태인인 Mr. Cohn에 관해 신랄하게 묘사한 다음에, 그녀가 바로 그 속에서 살아가기도 했던 난민과 무국적자의 조건을 새로운 역사의식의 패러다임으로 제시하기 위해, 이 조건을 뒤집어 버렸다. 모든 권리를 상실했지만 그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새로운 민족적 정체성(신분)에 동화되길 원치 않고 오히려 자신들이 처한 조건을 명석하게 관조하기를 원한 난민들은 비민족성unpopularity을 확실하게 한 것을 대가로 아주 귀중한 이점을 누리게 된다. “이들에게 역사는 더 이상 덮여진 책이 아니게 되며, 정치도 더 이상 비유태인들Gentiles의 특권이 아니게 된다. 유럽의 유태인들이 추방된 뒤 곧바로 많은 유럽민들European nations의 추방이 이어졌다는 이들은 안다. 이 나라에서 저 나라로 쫓겨난 난민들은 자신들이 속한 민족people의 전위를 대표한다.”2)

2) Hannah Arendt, “We Refugees”, Menorah Journal, no. 1 (1943) : 77.

우리는 5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그 현실성을 전혀 상실하지 않은 이 분석이 갖는 의미에 관해 숙고해 보아야 한다. 이 문제는 그 당시만큼이나 [오늘날] 훨씬 긴급하게 유럽의 안팎에서 제기되고 있는 사례일 뿐만 아니라, 또한 작금에 있어서 국민국가의 멈출 수 없는 쇠퇴와 전통적인 법적-정치적 범주들의 거대한 쇠퇴를 볼 때, 난민은 어쩌면 우리 시대의 인민에 대해 유일하게 사고가능한 형상figure이며, 유일한 정치적 범주이기도 하는 바, 우리는 이 속에서, 적어도 국민-국가 및 이것이 지닌 주권의 와해 과정이 완전히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오늘날 도래하는 정치적 공동체의 형태와 그 한계를 알 수 있다. 우리가 절대적으로 새로운 과제를 미리 정식화하길 원한다면, 우리는 지금까지 정치적인 것의 주체를 재현해 왔던 근본 개념들(인간Man, 시민Citizen과 그 권리들, 또한 주권적 인민, 노동자 등등)을, 아무런 유보도 없이 즉각, 분명하게 포기해야만 하며, 난민이라는 하나이자 유일한 형상으로부터 출발하여 우리의 정치철학을 새롭게 구축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대규모 현상으로서의 난민이 최초로 출현한 것은 1차 세계 대전의 막바지로, 러시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오토만 제국의 붕괴, 그리고 평화조약에 의해 창출된 새로운 질서가 중부 및 동부 유럽의 인구통계학적 구조와 영토적 구조를 심대하게 뒤흔들었던 때이다. 아주 짧은 시간에 약 150만 명의 백러시아인, 70만 명 정도의 아르메니아인, 50만 명의 불가리아인, 1백만의 그리스인, 수만 명의 독일인, 헝가리인, 루마니아인들이 조국을 떠나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이와 같이 이동 중이던 무리들에 다음과 같은 상황, 즉 국민-국가 모델을 토대로 하여 평화조약에 의해 창출된 새로운 국가들(예를 들어 유고슬라비아와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인구의 30% 정도가, 대부분 사문화된 채로 있었던 일련의 국제 조약들(이를테면 「소수자 조약Minority Treaties」)을 통해 보호를 받아야만 하는 소수자를 이루었다는 사실이 결정했던 폭발적인 상황을 덧붙여야 한다. 불과 몇 년 후에, 독일의 인종차별법과 스페인 내전은 새롭고 중요하며 우발적으로 생겨난 난민들이 유럽 전역으로 흩어지도록 만들었다.

 

우리는 무국적자들과 난민을 구별하곤 했지만, 얼핏 보기에도 이러한 구별은 간단하지 않았고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엄밀히 말해technically 무국적자가 아니었던 많은 난민들은, 처음부터 자기네 조국으로 돌아가기보다는 오히려 무국적자가 되기를 선호했다. (전쟁이 끝날 무렵에 프랑스나 독일에서 살던 폴란드계 유대인과 루마니아계 유대인의 경우가 그러했다. 또 오늘날 자기네 조국으로 돌아가는 것은 그들 자신의 생존을 위험에 빠뜨린다는 것을 의미하는 사람들이나 정치적으로 박해를 받은 사람들의 경우도 그러하다.) 다른 한편, 러시아, 아르메니아, 헝가리 출신의 난민들은 새로운 소비에트나 터키 정부 등에 의해 국적을 즉각 박탈당했다. 여기에서 중요하게 지적해야 하는 것은, 제1차 대전이 시작되면서 많은 유럽 국가들이 자국의 시민들의 귀화취소denaturalization와 국적박탈denationalization을 허용하는 법을 도입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처음 일어난 것은 1915년의 프랑스였는데, 이것은 ‘적국’ 출신의 귀화한 시민들과 관련된 것이다. 이후 1922년, 벨기에는 프랑스의 예를 따라서, 전쟁 기간 동안 ‘반민족적’ 행위를 저지른 시민들의 귀화naturalization를 철회했다. 1926년 이탈리아의 파시스트 정권은 ‘이탈리아 시민권citizenship에 걸맞지 않는’다고 간주된 시민들과 관련하여 유사한 법을 통과시켰다. 1933년에는 오스트리아의 차례였다. 이것은 1935년 뉘렌베르크법Nuremberg Laws이 독일 시민들을 모든 권리를 지닌 시민과 정치적 권리가 없는 시민으로 나눌 때까지 이어졌다. 이러한 법들은 ― 그리고 이 결과로 생겨난 대규모 무국적 사태는―근대 국민국가의 삶에서 결정적인 전환점을 나타내는 것이자 ‘인민’과 ‘시민’이라는 소박한 개념으로부터의 명확한 해방을 나타낸다.

이 글은 러시아와 아르메니아 난민을 위한 난민 사무국( 1921)3)에서부터 독일 난민을 위한 고등 판무관(1936),4) 난민을 위한 정부간 위원회(1936),5) 국제 연합의 국제 난민 조직(1946),6) 현재의 난민을 위한 고등 판무관 (1951)7)에 이르는 다양한 국제 위원회―사실, 국가, 국제 연맹, 이후 국제 연합은 난민 문제에 맞서, 바로 이러한 위원회라는 간접적인 수단으로만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의 역사를 다시 쓰는 자리가 아니다. 이 위원회들의 활동은 법규상 정치적 성격이 아니라 ‘휴머니즘적이고 사회적인’ 성격을 띠고 있을 뿐이다. 중요한 것은 난민이 더 이상 개별적인 사례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양차 대전 사이에 일어났던 것처럼, 그리고 지금 또 다시 일어나고 있는 것처럼) 대규모 현상을 재현할 때마다 매번 항상, 개별 국가들과 이러한 조직들은, 양도할 수 없는 인권을 충심으로 주창함에도 불구하고, 문제를 절대로 해결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또한 그것을 적합하게 다룰 수 없다는 것이 입증되었다는 점이다. 바로 이런 방식으로, 물음 전체는 경찰의 수중으로, 그리고 휴머니즘적인 조직의 수중으로 넘겨졌다.

3) Nansen Bureau for Russian and Armenian refugees

4) High Commission for Refugees from Germany

5) Intergovernmental Committee for Refugees

6) International Refugee Organization of the United Nations

7) High Commission for Refugees


이러한 무능의 이유는 관료 기구들의 이기심과 맹목성 때문만이 아니라 국민국가의 법적 질서에서 본토인the native의 (즉 삶의) 등록inscription을 규제하는 기본적 개념들이 지닌 모호성 때문이기도 하다. 한나 아렌트는 난민 문제를 다루고 있는 『제국주의』라는 책의 제5장에 「국민국가의 쇠퇴와 인권의 종말」8)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우리는 이 정식화를 진지하게 받아들여야만 하는데, 이것은 근대 국민국가의 종말은 인권의 위축을 필연적으로 내포한다는 식으로, 인권과 근대 국민국가의 운명을 불가분하게 연결시킨다. 여기에서 역설은 어떤 다른 것―즉 난민―보다 더 인권을 구현했던 형상이 오히려 이 개념의 근본적 위기를 표식했다는 것이다. 인간 존재 그 자체에 가정된 실존에 기초한 인권이라는 개념은, 이 개념을 가르쳐주었던 사람들이 인간이라는 순수한 사실을 제외하면, 이 개념이 진정 여타의 모든 성질과 모든 특정한 관계를 상실했던 사람들과 처음 대면하자마자, 지지될 수 없는 것임이 입증된다고 아렌트는 말한다.9) 국민-국가 체계에서 소위 신성하고 양도할 수 없는 인권은 이를 국가의 시민들이 지닌 제반 권리로 간주할 수 없게 되는 바로 그 순간에 전혀 보호될 수 없다는 것이 입증된다. 이것은 결국, 1789년 선언의 바로 그 제목, 즉 「인간과 시민의 제반 권리에 관한 선언」이 지니고 있는 양의성에 함축되어 있는데, 이 선언에서는 두 용어들이 두 개의 실재가 지닌 이름인지, 아니면 오히려 이 용어들이 중언법(hendiadys)을 형성하고 있는 것인지―여기에서 첫 번째 용어는 항상 두 번째 용어 속에 이미 포함되어 있다―여부는 명확하지 않다.

8) Hannah Arendt, 『전체주의의 기원』The Origins of Totalitarianism 중 제2부 ‘제국주의’Imperialism (New York: Harcourt, Brace, 1951), pp. 266-98.

9) Ibid., pp. 290-95.

 

국민-국가의 정치적 질서에서는 순수한 인간 자체와 같은 어떤 것에게는 자율적인 공간이 없다고 하는 것은, 적어도 바로 다음의 사실에서도 분명하다. 즉 심지어 최선의 사례에서도, 난민의 지위는 항상 귀화로 나아가거나 본국 송환repatriation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일시적인 조건으로 여겨져 왔다는 것이다. 인간 그 자체에게 안정적인 법규는 국민-국가의 법 안에서는 인식될 수 없다.

이제, 1789년에서 오늘날에 이르는 권리 선언들을 마치 초법적인(metajuridical) 영원한 가치들의 선포인 양 읽는 것을 그만둘 때이다. [이전까지] 그 가치의 목적은 입법자가 그 선언들을 존중하는 양 강제하는데 있었다. 따라서 오히려 이 가치들을 근대 국가에서 이것들이 하는 실질적인 기능에 따라 이해해야 할 때이다. 사실 무엇보다 인권은 헐벗고 자연적인 삶이 국민국가의 정치-법적 질서에 등록inscription되었다는 원초적인 형상을 대표하는 것이다. 구체제ancien regime10)에는 신에 속했고 고전 시대에는 정치적 삶(비오스)으로부터 명확히 구별된 것(조에)이었던 헐벗은 삶(인간 존재)이 [이제] 국가의 관리에서는 전면에 나서게 되며, 소위 이 관리의 현세적인 기반이 된다. 국민국가란 출생이나 탄생(nascita)(즉 헐벗은 인간의 삶)을 그 자신의 주권의 기반으로 만드는 국가를 뜻한다. 이것이 1789년 프랑스 혁명선언의 첫 번째 3개 항이 가지고 있는 의미이다. (그리고 이것은 심지어 감춰져 있지도 않다.) 그것은 이 선언이 모든 정치조직의 중심에 토착민native이라는 요소를 등록시켰기 때문에(1항과 2항), 이것은 주권의 원리를 국민nation(이 단어의 원형인 natío는 원래 단순히 ‘출생’nascita만을 의미한다는 것에 일치하여)과 단단하게 묶는다. 따라서 권리 선언은 신적인 기원을 가진 왕의 주권에서 국민 주권으로의 이행이 실현되는 장소로 간주되어야 한다. 선언은 구체제의 몰락에 뒤이어 나타난 새로운 국가 질서에 삶이 편입되도록 보장해주었다. 선언을 통해 ‘주체’가 ‘시민’으로 전환된다는 사실은 출생, 즉 자연적인 헐벗은 삶 그 자체가 여기에서 처음으로 주권의 직접적인 담지자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바로 이러한 전환의 삶정치적 결론을 우리는 이제야 가늠하기 시작할 수 있다.) 출생의 원리와 주권의 원리는, 구체제로부터 분리되었으며(구체제에서 출생이란 주체를 야기할 뿐이었다), 이제 새로운 국민-국가의 토대를 세우기 위해 ‘주권적 주체’의 신체 안에서 결정적으로 결합된다.11) 이러한 허구에는, 출생(nascita)이 즉각적으로 국민이 된다(이 두 계기 사이에는 어떤 간극도 없다)는 관념이 함축되어 있다. 이처럼 권리란 인간이 시민의 전제―인간 그 자체는 곧 사라져버린다―인 한에서만 인간에게 귀속된다.(심지어 인간은 단순히 인간으로서만 나타난 적도 없다.)12)

10) [옮긴이] 영역본에는 이 단어를 antiquity로 해 놓았다.

11) [옮긴이] 두 개의 영역본에는 “따라서 권리 선언은 신적인 기원을 가진 왕의 주권에서... 이제 새로운 국민-국가의 토대를 세우기 위해 ‘주권적 주체’의 신체 안에서 결정적으로 결합된다.”라는 문장이 통째로 생략되어 있다.

12) [옮긴이] 이 문장은 인터넷 판본을 적용하여 옮겼다. 기준 판본에 따르면 이 문장은 다음과 같이 옮겨지는데 의미가 애매하다. “다시 말해서 권리는 그/녀가 시민의 즉각 사라지는 전제(그리고 사실상 그 자체로는 결코 명확하게 되지 않았던 전제)라는 정도에서만 인간에게 귀속된다.”


난민이 국민국가의 질서에서 이처럼 불안하게 만드는 요소를 재현한다면, 이는 일차적으로, 난민이 인간과 시민 사이의 동일성, 출생지와 국적nationality 사이의 동일성을 깨뜨림으로써, 주권이 지닌 원래의 허구에 위기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이 원리에 대한 한 가지 예외는 물론, 항상 존재했었다. 국민-국가의 바로 그 기반을 위협하는 우리 시대의 새로움은 점점 더 많은 부분의 인류가 더 이상 국민-국가 안에서 재현될 수 없다고 하는 것이다.13) 국가-국민-영토라는 낡은 삼위일체를 파괴한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겉으로 보기엔 주변적인 형상인 이 난민은 반대로 우리의 정치사의 중심적인 형상으로 간주될만한 가치가 있다. 우리는 유럽에서 최초의 수용소가 난민들을 통제하기 위한 공간으로서 건축되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포로수용소internment camp―집중수용소concentration camp―몰살수용소extermination camp로의 계승이 완벽한 진짜 족보filiation를 재현한다는 점도 잊어서는 안 된다. 나치가 ‘궁극적인 해결책’에서도 끊임없이 준수했던 드문 규칙들 중 한 가지는, 유태인과 집시들로부터 국적을 완전히 박탈한 다음에 (심지어 뉘렌베르크법에 따라 이들에게 속해 있던 2등 시민권조차 박탈한 다음에) 이들을 몰살수용소로 보낸다는 규칙이었다. 인권이 더 이상 시민권이 아닐 때, 인간은 진정으로 성스럽다. 이 용어가 고대 로마법에서 가지고 있었던 의미, 즉 ‘죽을 운명’이라는 의미에서 말이다.

13) [옮긴이] 위의 번역은 인터넷 판본에 의거한 것이며, 영역본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 “우리 시대에 새로운 것은 인류의 점증하는 많은 부분들sections이 국민-국가 내부에서는 더 이상 재현될 수 없다는 것이다.―그리고 이러한 새로움은 국민-국가의 바로 그 기반을 위협한다.”

난민 개념을 ‘인권’ 개념으로부터 결단코 분리시켜야 하며, 피보호권the right of asylum(이것은 오늘날 어쨌든 유럽 국가들의 입법에서 지극히 제한되는 과정에 있다)은 난민 현상을 그 안에 깊이 새길 수 있는 개념적 범주로 더 이상 간주되어서는 안 된다. (최근 아그네스 헬러가 쓴 『피보호권에 관한 테제』Theses on the Right of Asylum ; Test sul diritto d'asilo를 얼핏 보더라도, 오늘날 이것이 만만찮은 혼동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점만 보게 된다.) 난민은 존재하는 그대로 고려되어야 한다. 즉 난민은 국민국가의 원리를 근본적으로 위기에 빠뜨리는 동시에 더 이상 지체될 수 없는 범주들의 갱신을 위한 방식을 분명하게 해 주는 한계 개념에 다름 아니다.

 

사실 그러는 동안에, 소위 유럽연합 소속 국가들로의 불법 이민 현상은 관점의 이러한 전복을 완전히 정당화할 정도의 특성과 규모proportions에 이르게 되었다. (그리고 중앙유럽 나라들로부터 약 2천여만명의 이민자들이 올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는 점을 볼 때, 이것은 앞으로 계속 증가할 것이다.) 오늘날 산업화된 나라들이 직면하고 있는 것은 대량의 비시민들의 영구거주민들로, 이들은 국적 취득도 본국 송환도 원하지 않는다. 가끔 이 비시민들이 출신국의 국적을 갖기도 하지만, 이들이 자국의 보호를 이용하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 한, 이들은 마치 난민처럼 ‘사실상 무국적’ 상태에 놓이게 된다. 이 비시민 거주민들에 대해 토마스 해머Thomas Hammar는 ‘데니즌’denizens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었는데, 이 신조어는 ‘시민’ 개념이 어찌하여 근대 국가의 사회-정치적 현실을 서술하는데 적합하지 않게 되었는가를 보여주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14) 다른 한편 선진산업국가들의 시민들은 (유럽만이 아니라 미국에서도) 정치적 참여의 법제화된 심급instances을 점점 더 버림으로써, 스스로를 데니즌denizens으로, 비시민 영구거주민으로 변형시키고 있다는 분명한 경향을 보여준다. 그리하여 시민citizens과 데니즌은―적어도 어떤 사회계층에서는―잠재적 비구별의 영역으로 들어가고 있다. 마찬가지 방식으로, 형식적 차이의 현존에서는 실질적인 동화substantial assimilation가 증오와 비관용intolerance을 더욱 격화시킨다고 하는 잘 알려진 원리에 일치하듯이, 외국인 혐오증적인 반발과 방어적 동원mobilization이 증가한다.

14) Tomas Hammar, Democarcy and the Nation State―Aliens, Denizens, and Citizens in a World of International Migration (Brookfield, Vt.: Gower, 1990).

유럽에서 몰살수용소가 다시 문을 열기 전에 (이것은 이미 일어나기 시작하고 있다), 국민국가는 출생의 등록inscription이라고 하는 바로 그 원리만이 아니라, 이 원리 위에 정초되어 있는 국가-국민-영토라는 삼위일체를 의문시할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만 할 것이다. 이 모든 것이 구체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방식을 지금 당장 적시하는 것은 쉽지 않다. 여기에서는 하나의 가능한 방향을 제시하는 것으로 충분하다.15) 잘 알려져 있듯이, 예루살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려된 선택지 중의 한 가지는 예루살렘을 두 개의 다른 국가의 수도로―동시적으로, 그리고 어떤 영토적 분할도 없이―삼는 것이었다. 이것이 내포하고 있는 상호적인 역외관할권extraterritoriality(혹은 오히려 비영토성)이라는 역설적 조건은 새로운 국제관계의 모델로서 일반화될 수 있었다. 두 개의 국민국가가 불확실하고 위협적인 경계선으로 분리되는 대신, 두 개의 정치공동체가 똑같은 지역에 거주하는 것을 상상할 수 있으며, 일련의 상호적인 역외관할권에 의해 서로 분리된 두 개가 각기 다른 것으로부터 엑소더스를 하는 것에 의존하는 것을 상상할 수 있다. 이러한 역외관할권에서 주도적 개념은 더 이상 시민의 ius(권리)가 아니라 오히려 개인the singular의 refugium(피난)이다. 똑같은 의미에서 우리는 유럽을 ‘민족들nations의’ 불가능한 ‘유럽’으로 인식할 수 없고,―이것이 갖고 있는 파국적 결과는 이미 단기간에 예측될 수 있다―오히려 비영토적 공간 또는 역외관할권의 공간으로 인식할 수 있다.―이 공간에서 유럽국가의 모든 (시민과 비시민) 거주민들은 엑소더스나 피난refuge의 위치에 있다. 그리고 유럽인의 지위란 시민의 엑소더스하고 있는(분명, 이는 부동의 상태로 머무르는 것이기도 한) 존재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유럽의 공간은 출생(nascita)과 국민nation 사이의 환원불가능한 차이를 재현한다. 그리고 이 속에서 과거의old 인민 개념(잘 알려져 있다시피 인민은 항상 소수자이다)은, (지금까지 인민 개념을 부당한 방식으로 침해해 왔던) 국민 개념에 결정적으로 반대하면서, 자신의 정치적 의미를 발견하게 될 수도 있다.

15) [옮긴이] 이 구절은 불어판과 인터넷판에는 있지만 영역본에는 생략되어 있다.

이 공간은 어떠한 동질적인 국민적 영토와도, 이것의 지형학적 총합과도 일치하지 않으며, 오히려 외부와 내부를 결정할 수 없는 클라인병이나 뫼비우스의 띠에서처럼 이 영토들에 구멍을 뚫고 이 영토들을 위상학적으로 분할함으로써16) 이 영토들에 대해 작용할 것이다. 이 새로운 공간에서 유럽의 도시들은 상호간의 역외관할권의 관계로 들어섬으로써 세계의 도시라는 이 고대적 소명vocation을 재발견할 것이다.

16) [옮긴이] 영역판―“영토들을 위상학적으로 접합articulate하고 구멍을 뚫음perforate으로써”

레바논과 이스라엘 사이의 일종의 무인지대no-man’s-land에는 오늘날 헤브루 국가[이스라엘]에 의해 추방된 425명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있다.17) 이 사람들은 한나 아렌트의 설명에 따르면 분명 ‘그네들의 민족의 전위’를 구성한다. 하지만 그네들이 필연적으로 (이스라엘이 유대인 문제를 해결했던 방식만큼이나 불충분한 방식으로 팔레스타인 문제를 해결하게 될) 미래의 민족 국가의 원초적 중핵이 된다는 것을 필연적으로 의미하는 것도 아니고, 꼭 그것만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무인지대―여기에서 이들은 난민이다―는, 에레쯔 이스라엘Eretz Israel의 다른 어느 지역보다 더 눈 덮인 산의 이미지가 그 지역의 내적 일부로 되어 버린 것과 같은 방식으로, 이스라엘에 구멍을 뚫고 이스라엘을 바꿈으로서 이스라엘 국가의 영토에 대해, 바로 이때부터 역작용하기 시작했다. 국가들의 공간들이 구멍이 뚫리고 위상학적으로 모양이 바뀌게 되는 세계에서만, 그리고 그/녀가 난민이라는 점을 시민이 인식할 수 있게 되는 세계에서만, 바로 그러한 세계에서만 오늘날 인류의 정치적 생존을 사고할 수 있다.

17) [옮긴이] 영역판―“내가 이 글을 쓸 때, 425명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일종의 무인지대로 이스라엘 국가에 의해 추방당했다.” 이 번역은 상당히 자의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