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경향> 897호(2010 10/26)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artid=201010201457211&code=115&s_code=n0002
[커버스토리]여주에서 ‘고향의 강’ 미래를 보다
ㆍ졸속 진행 하천정비사업 집중호우로 곳곳에 피해
이번 집중호우로 제방이 무너진 간매천. 수해 상습지 개선사업을 완공한 지 10일 만에 집중호우로 제방이 무너졌다.
남한강 사업이 시작되자 여주군은 지방하천 공사에 들어갔다. ‘자연형 소양천 정비사업’과 ‘수해 상습지 개선사업’을 진행했다. 여주 사람들은 “남한강 사업이 시작되자 여주 곳곳에서 하천 사업이 동시에 진행됐다”고 말한다. 전문가들이 “여주의 하천 사업이 수해 예방이나 친환경적인 지방하천 정비사업이 아니다. 오히려 4대강 사업을 위한 지류 보강 사업”이라고 비판을 하는 이유다.
‘자연형 하천 조성사업’으로 진행되고 있는 소양천을 찾았다. 국토해양부가 신규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는 ‘고향의 강’ 사업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향의 강 사업은 ▲홍수 예방 ▲생태하천 ▲테마가 있는 하천을 내세우고 있다. 소양천 공사도 이런 취지를 내세우고 있다.
소양천 빠른 물살 콘크리트 블록 쓸어가
소양천은 여주읍 연라리에서 발원해 여주 시가지를 가로질러 남한강까지 이어지고 있다. 소양천 사업은 2008년 말부터 시작됐고, 총 95억원의 사업비가 투입된다. 여주읍 하동교에서 소양천교까지 총 2㎞ 구간에 자연형 하천을 만들 계획이다. 고수부지와 제방도로에 3㎞의 산책로가 만들어지고, 정자와 운동시설 등이 갖춰진 소공원 2개가 들어설 예정이었다. 올해 말 공사가 완료될 예정이다.
하지만 9월 집중호우로 소양천은 큰 피해를 입었다. 소양천의 빠른 물살이 둑 안쪽 콘크리트 블록을 쓸어간 것이다. 소양천 곳곳에서 수해 피해를 복구하는 작업이 한창이다. 철저한 준비가 안된 상태에서 진행된 사업이기 때문에 벌어진 사고다.
이항진 여주환경운동연합 집행위원장은 “생활공간과 밀접한 지역의 하천을 친수공간으로 만드는 것은 필요하다. 축구장 같은 시설물도 있어야 하고, 산책길 같은 친환경적인 모습의 공원도 필요하다”면서 “다만 친수공간을 만드는 데는 철저한 연구와 목표가 있어야 한다. 친수공간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고, 친수공간이 정말 필요한 것인지에 대한 철저한 조사가 필요하다. 이런 준비가 없이 진행되는 하천 사업들은 정치적인 목적이 있거나, 졸속행정이라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높이 올린 제방 주변 풍경 변화시켜
소양천의 또 다른 문제는 생태하천을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공원하천으로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8월 30일 국토해양부는 ▲여주군 소양천 ▲구미시 금오천·구미천 ▲광주시 광주천 ▲논산시 중교천 4곳을 시범지구로 선정해 ‘물 순환형 수변도시 조성사업’을 한다고 발표했다. 4곳은 모두 4대강 사업 지역과 인접한 하천들이다. 국토해양부는 이 사업을 통해 4대강 사업으로 확보한 물을 지류로 흘려보낼 계획이다. 인공적으로 하천에 물을 흐르게 하는 것이다. ‘제2의 청계천’ 사업 아니냐는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다.
집중호우로 큰 피해를 입은 소양천은 요즘 복구공사가 한창이다. 남한강 공사 이후 소양천의 물은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남한강 준설작업으로 소양천의 물은 많이 줄어든 상태다. 부족한 소양천의 물을 남한강에서 끌어와 인공적으로 흐르게 하는 것이 생태하천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항진 집행위원장은 “자연형 하천 조성사업을 내걸었지만, 소양천 공사는 전시성 행정이다. 90억원 이상을 들였는데, 어떻게 폭우로 이렇게 부서질 수가 있나”라면서 “소양천 공사는 4대강 사업의 비판을 희석하려는 사업일 뿐”이라고 질타했다.
여주군의 ‘수해 상습지 개선사업’을 통해 바뀐 하천의 모습을 보기 위해 여주군 간매리의 간매천을 찾았다.
“예전에는 차를 타고 가면 논과 밭이 보였다. 그런데 제방이 높아지면서 논과 밭이 잘 보이지 않는다. 하천 정비사업이 여주의 풍경도 바꿔놓았다.”
40여년 동안 여주에서 살고 있는 토박이 간은희씨의 말이다. 박현주 여주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과 함께 동행한 간은희씨가 차 바깥 풍경을 보면서 토해낸 말이다. 하천 공사를 하기 전에는 논과 밭이 눈을 즐겁게 했지만, 하천 정비사업 이후에는 시멘트 구조물이 시야를 가로막고 있다. 시야를 가로막는 시멘트 구조물은 ‘수해 상습지 개선사업’의 결과물인 제방이다.
지난 9월 총 공사비 100억원을 들여 2년 만에 완공된 간매천을 찾았다. 간매천 수해 개선사업은 추석을 앞두고 완공됐다. 완공된 후 10일 만에 집중호우로 간매천 곳곳이 유실되어 흉물스런 모습으로 남아있다. 수해 예방을 위해 제방을 높게 쌓았는데, 수해로 제방이 유실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그것도 완공된 지 10일 만에 벌어진 일이다.
간매천으로 가기 위해 제방길로 차를 몰았다. 차를 타고 가면서 두려움을 느꼈다. 제방길은 차 한 대 겨우 지나갈 수 있는 폭이므로 실수하면 하천으로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제방의 경사도도 심해서 자칫 하천으로 떨어졌을 경우 걸어서 올라오기 힘들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제방을 높이 올리는 바람에 이곳 주민들은 농기계를 운전할 때는 더욱 조심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왼쪽 _ 하천의 모습은 사라지고 수로처럼 변해버린 간매천. 간매천 곳곳에는 물고기의 통로라는 ‘어로’가 보인다. 오른쪽 _ 간매천 상류지역의 제방. 콘크리트 대신 돌무더기로 제방을 만들었지만 주변환경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간매천은 높이 3m, 폭 1.5m의 제방으로 둘러싸여 있다. 굽이굽이 돌아나가던 간매천은 제방 덕분에 직선의 형태로 변했다. 제방 중간에 물이 흐르는 조그마한 콘크리트 구조물을 찾을 수 있는데, 어로라고 한다. 고기가 다니는 길이다. 물도 흐르지 않는 하천에 어로만 덩그러니 있는 셈이다. 조금 더 올라가니 보기 흉한 제방이 보인다. 콘크리트 대신 돌무더기로 높여 놓은 제방이다. 콘크리트 대신 돌을 사용했으니 생태적이라고 우겨볼 만하겠지만, 돌무더기 제방은 주변 환경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주변과 어울리지 않는 돌무더기 제방
공사를 끝낸 간매천을 처음 본 간은희씨는 “지금쯤이면 아이들이 송사리를 잡으면서 간매천에서 놀 때인데, 공사 후 간매천을 보니 기가 막힌다. 하천을 이런 높은 제방으로 막아놨으니 사람들이 접근하기도 힘들어졌다”면서 “이곳은 물이 많이 넘쳤던 곳도 아닌데, 시멘트 제방을 왜 이렇게 높이 쌓았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간매천은 이제 하천이라기보다 수로에 가까웠다.
함께 현장을 둘러본 박현주 사무국장은 “하천에 물이 없는 이유는 남한강 공사 때문이다. 남한강을 준설하니까 지류의 유속이 빨라져서 물이 급격하게 줄어들었다”면서 “하천 정비가 오로지 콘크리트로 길을 내고, 제방을 높이 쌓은 것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여주군은 무계획적인 하천 공사로 인해 많은 피해를 입었다. 9월 28일 국회 국토해양위원회 소속 백재현 의원(민주당)은 여주군 일대의 소하천 피해 현황을 현장 조사한 후 “준공을 3개월 앞두고 70% 이상 진행된 (소양천) 공사가 집중호우로 유실돼 원상복구를 해야 하는 상태로 되돌아갔다”면서 “생태 파괴는 물론 사업의 우선순위도 따지지 않는 제2의 청계천 식 공사는 예산낭비 사례가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여주군청 재난안전과 관계자는 “소양천 공사가 많은 피해를 본 것이 아니다. 현장을 나가서 봤지만, 물이 빠져나가지 않아서 일부 구간의 구조물을 철거한 것뿐”이라며 “소양천은 문제없다. 도심지에 있는 하천이기 때문에 공원하천으로 만드는 것이 당연하다”고 반박했다.
철저한 준비와 조사 없이 진행된 하천 정비사업은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음을 여주군의 하천들이 보여주고 있다.
<글·사진 최영진 기자 c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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