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욱식의 뚜벅뚜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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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는 이해한다. 그러나 전쟁은 안 된다
남북관계 2010/11/24 01:05 뚜벅이
온 국민이 충격과 분노에 빠진 가운데, 남북한 당국이 보복·응징을 천명하고 있어 한반도 정세가 전쟁 위기까지 잉태한 벼랑끝으로 치닫고 있다. 북한군은 23일 오후 7시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 보도’를 통해 “우리 조국의 영해를 0.001mm라도 침범한다면 주저하지 않고 무자비한 군사적 대응타격을 계속 가하게 될 것”이라고 위협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몇 배로 응징하라”며 군에게 강경 대응을 주문했다. 이에 따라 추가적인 교전 사태 발생 및 확전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러한 우려는 북한군이 밝힌 연평도 공격 이유를 고려하면 더욱 증폭된다. 북한군은 남한군이 “연평도 일대의 우리측 영해에 포사격을 가하는 군사적 도발을 감행”한 것과 남한군 함정들이 “우리측 영해에 빈번히 침범하면서 날강도적인 북방한계선을 고수”하려고 한 것에 대해 “즉시적이고 강력한 물리적 타격으로 대응하는 단호한 군사적 조치를 취하였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조선서해에는 오직 우리가 설정한 해상군사분계선만이 존재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북한이 북방한계선(NLL)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자신이 선포한 해상분계선을 사수할 것이라고 주장한 것은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이번처럼 연평도 인근 수역은 물론이고 남한 영토에 대해 포사격을 실시한 것은 유례가 없는 일이다. 이는 곧 북한이 주장하는 해상경계선에 남한군이 진입하거나 포사격을 실시하면 북한이 군사적 대응조치를 취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북한이 선포한 해상분계선은 남한이 영해선으로 간주하는 NLL보다 훨씬 이남에 있다. 이에 따라 NLL를 사수하려는 남한군과 새로운 해상분계선을 관철하려는 북한군 사이의 군사적 충돌 위험은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게 되었다. 남한군은 NLL ‘이남’과 북한이 주장하는 해상분계선 ‘이북’ 사이에서 수시로 포사격 훈련을 비롯한 군사훈련을 실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안도의 한숨이 두려운 탄식으로
북한군이 어떤 주장을 펴더라도 이번 연평도 공격은 명백한 도발이다. 북한은 남한의 호국훈련을 문제삼고 있지만, 이는 연례적인 훈련이라는 점에서 도발의 사유가 되기 어렵다. 북한은 또한 남한군이 북한의 영해를 침범하고 포사격까지 강행했다며 교전의 책임을 남한에게 전가하고 있지만, 북한이 주장하는 해상분계선은 일방적으로 선포한 것이라는 점에서 이 역시 도발의 사유가 될 수 없다.
특히 북한이 한국전쟁 이후 처음으로 남한의 영토에, 그것도 민간인 거주지에 포격을 가한 것은 어떠한 명분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반평화적 행위이다. 이명박 정부가 북한에 강력한 분노를 표하면서 단호한 대처를 천명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상황 초기 남북한의 포격전이 계속되면서 확전의 우려는 커졌다. 다행히 이명박 대통령이 “단호히 대응하되, 상황이 악화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하라”고 지시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조금이나마 불안감을 덜 수 있었다. 그러나 안도의 한숨은 오래가지 못했다. 청와대는 이 대통령이 이와 같은 발언을 한 적이 없다며 “와전이 있었다”고 해명하고 나섰다. 그리고 이 대통령의 초강경 발언이 줄줄이 흘러나왔다.
청와대 김희정 대변인은 이 대통령이 23일 저녁 합동참모본부를 방문한 자리에서 “몇 배로 응징하라”며, 북한의 해안포 기지 인근 미사일 기지에 대해서도 “경우에 따라 타격하라”고 지시했다고 전했다. 또한 “다시는 도발할 수 없을 정도로 막대한 응징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교전수칙은 물론 지켜야 하지만 민간에 대해 무차별 포격을 가하는 상대에게는 이를 뛰어넘는 대응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백번의 성명보다 행동으로 대응하는 것이 군의 의무이다” 등의 발언을 했다고 홍상표 청와대 홍보수석이 전했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은 “연평도와 백령도 일대에 군사시설이나 화력을 대폭 보강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이러한 이 대통령의 초강경 대응 지시는 북한의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도발적 자세와 맞물려 추가적인 교전 및 확전의 우려를 증폭시키고 있다.
강력한 보복 의지가 북한의 도발 의지를 꺾고 있는가?
이명박 대통령의 초강경 발언을 접하면서 근본적인 의문을 떠올리게 된다. ‘과연 강력한 보복 의지가 북한의 도발 의지를 꺾고 있는가?’
이명박 정부는 북한의 위협적인 언행이 있을 때마다 강력한 억제와 보복 의지의 과시를 통해 북한의 도발을 막겠다는 입장을 천명해왔다. 천안함 침몰 이후 이러한 기조는 더욱 강경해졌고, 이를 반영하듯 미군과 함께 수시로 대규모의 무력시위에 나서기도 했다. 그 명분은 “북한의 도발 의지를 꺾는 데 있다”고 말해왔다.
그러나 북한군의 연평도 공격에서도 알 수 있듯이 결과는 그렇지 못했다. 11월 23일 북한군의 도발 이외에도 최근의 사례로 두 가지를 더 들 수 있다. 하나는 북한군이 8월 초에 110여발의 해안포를 발사했는데 이 가운데 10여발이 NLL 남쪽 1∼2km 백령도 인근 해상에 떨어졌다는 것이다. 북한군의 해안포가 NLL 이남 수역에 떨어진 것은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한미연합군이 “북한의 도발 의지를 꺾겠다”며 핵항모 조지워싱턴호까지 동원해 동해에서 실시한 ‘불굴의 의지’ 종료 직후였다.
또 하나는 북한이 최근 공개한 우라늄 농축 시설을 들 수 있다. 한미 양국은 강도 높은 대북 제재를 통해 북한의 추가적인 핵 개발을 막고, 핵우산를 비롯한 ‘확장 억제’를 강화해 대북 억제력을 강화해왔다. 그러나 대북 제재도 확장 억제도 북한의 추가적인 핵 개발을 막지는 못했다.
이는 결국 강력한 대북 응징 및 보복 의지와 이를 뒷받침하는 무력시위로는 북한의 도발을 억제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의 안보를 강화하기 위한 조치가 상대방의 반작용을 야기하고 여기에 또 강경하게 대응하다보면 오히려 나의 안보를 위태롭게 한다는 ‘안보딜레마’의 전형적이고도 위험한 속성이 한반도 군사안보 관계에 똬리를 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러한 안보딜레마는 남한은 물론이고 북한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그러나 무력충돌을 대하는 남북한의 태도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선군정치를 앞세운 북한의 독재체제에서는 자국 병사의 생명도 정치의 수단으로 삼는 경향이 강하다. 남한의 대응 공격 및 이에 따른 북한군의 희생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전례없는 도발을 강행한 것에도 이러한 북한 체제의 근본적 결함은 잘 드러난다.
반면 사람의 생명을 최고의 가치로 여겨야 하는 남한의 민주주의 체제에서는 북한처럼 사람의 생명을 정치의 도구로 삼을 수도 없고 또한 그래서도 안 된다. 이 점이야말로 남한이 북한보다 우월한 체제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 것이자, 우리가 소중히 가꾸어야 할 가치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전쟁불사론’에 가까운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은 대단히 유감스러운 것이다. 이 대통령의 분노는 십분 이해할 수 있지만, 분노의 크기가 커질수록 이성과 냉정함을 갖춰야 할 자리가 바로 대통령의 자리이기 때문이다. 또한 전쟁 발발은 물론이고 전쟁 위기 자체만으로도 가장 손해는 보는 당사자는 바로 대한민국이라는 것은 이번 교전사태를 포함한 수차례의 한반도 전쟁 위기를 통해 입증되었다는 점도 잊어서는 안 된다.
끝으로 필자가 8월 12일자 <한겨레>에 기고한 글의 마지막 단락을 소개하는 것으로 이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상대방의 차와 정면충돌을 향해 질주하는 운전사를 두고 ‘용기 있다’고 칭찬하지 않는다. 살기 위해 핸들을 꺾는다고 ‘비겁하다’고 욕하지도 않는다. 더구나 그 차안에 무고한 사람들이 타고 있다면, 운전사가 택해야 할 선택은 자명하지 않겠는가?”
* 정욱식 평화네트워크(www.peacekorea.org)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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