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사상> 2012년 3월호
퀘이커리즘에서 배운다(10) |
공동체 영성 |
‘집단 신비주의’(Group Mysticism)
퀘이커들은 개인의 직접 하나님 체험을 추구한다. 그렇다면 왜 퀘이커들은 공동체로 함께 모여서 예배드리는가? 개인적으로 하나님을 체험하는 신앙을 추구한다면 구태여 집단적으로 모여서 예배드릴 이유가 없지 않은가. 홀로 집에서 예배드리든지 아니면 고요한 곳을 찾아 예배드리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그런데 퀘이커들은 매주일 오전 11시가 되면 다른 일반 교회들처럼 ‘모임 집’(Meeting House)에 모여 예배드린다. 이유가 무엇인가?
교회는 왜 필요한가. 내 안에 계신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라면 산과 들판 어디서나 할 수 있는 것인데 공동의 예배 처소가 꼭 필요한가. 퀘이커들은 교회라는 말 대신 ‘예배 모임’(meeting for worship), 또는 ‘모임 집’이란 말을 사용한다. 미국과 아프리카 퀘이커들은 퀘이커 교회(Quaker church)라는 말을 사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퀘이커들은 교회라는 신학적인 용어를 피하고 그냥 단순하게 ‘모임’이란 말을 좋아한다. 이것은 퀘이커들의 단순 명료한 체험 신앙의 면모를 잘 보여준다. 퀘이커들은 성직자, 성례전, 교회제도나 형식 같은 것들을 중시하지 않는다. 오직 필요한 것은 하나님을 만나려고 하는 진실한 갈망, 그리고 내 안의 빛과 소리에 집중하는 영적인 구도심이다. 세계 퀘이커 안에는 다양한 입장이 있어서 미국의 복음주의 퀘이커들처럼 퀘이커 목사가 있는 곳도 있지만, 초기 이래 퀘이커 전통은 단순한 침묵 예배 형식을 취한다. 그들은 예배 모임의 집을 마련하여 매 주일 공동체로 예배를 드린다.
퀘이커들이 개인적으로 정해진 장소 없이 예배드리기보다는 모임의 집에 모여 공동체 예배를 드리는 것은 그들의 공동체 영성 체험 때문이다. ‘홀로 있을 때 보다 함께 모일 때 영적 체험은 더욱 풍요로워진다.’ 이것이 퀘이커 공동체 영성이다. 그러면 왜 공동체로 모이는 곳에 영적 체험이 더 풍요로운가? 이것은 논리적 설명이 필요 없다. 퀘이커들은 체험으로 그것을 알고 있다. 공동체적 영성 체험이 풍요롭고 특별하다는 것은 초기 퀘이커 운동이래 현재까지 체험으로 증명되어왔다. 퀘이커 학자들은 이 공동체적 체험 신앙을 ‘집단 신비주의’(Group Mysticism)라고 부른다. 이 말은 무엇이라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지만 공동체로 모이는 자리에서 체험되는 영적 운동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영적 체험을 위해 퀘이커들은 공동체로 모여 예배를 드린다.
내 영적 체험은 과연 진실한 체험인가?
퀘이커들은 개개인의 영적 체험의 진실성을 공동체 영성 체험에서 확인한다. 퀘이커는 개인적으로 침묵 가운데 직접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체험을 ‘듣기 체험’(listening experience)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정말 그것이 하나님의 음성인지 아닌지 누가 확신할 수 있는가? 이것은 퀘이커만의 문제가 아니라 신앙 체험을 하는 사람들이 모두 직면하는 문제이고, 사실상 신앙의 본질에 속하는 문제이다. 자신이 체험한 것이 정녕 하나님의 무언가를 체험한 것인가 아니면 자기도취인가라는 문제는 누구도 판단하기 어렵고 결정하기 쉽지 않은 문제이다. 체험하는 개인에게 달린 문제라고 할 수 있지만, 정녕 그런가? 개인 스스로도 이것이 하나님 체험인가 아닌가 확신이 안 설 수 있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퀘이커들은 공동체 영성 체험에서 이 문제를 해결한다.
퀘이커 예배 모임은 개인의 영적 체험을 스스로의 분별 과정을 거친 다음 공동체 앞에서 표현하도록 한다. 이것을 퀘이커들은 테스티모니(Testimony)한다고 한다. 내적으로 체험된 신앙 진리를 말하는 것(speaking)이다. 퀘이커 예배 모임에 가면 침묵하는 중에 사람들이 일어나 무언가를 말하고 앉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테스티모니이다. 침묵 예배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기다리는 중에 ‘듣기 체험’을 한 사람은 공동체를 향해 그것을 증언한다. 공동체 사람들은 그의 증언을 들으면서 자신 속에 들어있는 음성과 일치하는 경험, 즉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그가 한다는 것을 확인한다. 영적 일치의 경험이다. 펜들힐 아침 침묵 예배에서 나는 종종 이것을 체험하곤 했다. 내가 미처 의식적으로 깨닫지 못하고 있었지만, 증언을 들으면서 그것이 내 속에 있는 말이란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마도 이런 체험은 교회에서 설교를 들을 때 체험하는 것과 유사한 것이리라. 설교를 들으면서 ‘아멘’하고 응답하는 것은 ‘바로 그 말이 내가 진정 하고 싶은 말입니다’ 하는 체험이다. 퀘이커는 이것을 공동체 영성의 일치 체험이라 부르며, 퀘이커리즘의 핵심영성 체험으로 여긴다.
테스티모니가 자신의 생각과 다른 경우도 있다. 특히 정치적으로 민감한 문제, 도덕적 윤리적인 문제의 증언일 경우, 이런 불일치는 퀘이커 공동체 예배 모임에서도 종종 일어나는 경우이다. 이런 경우에도 퀘이커들은 즉각적으로 일어나 반박하는 증언을 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자신의 생각과 다른 그 증언을 통해 새로운 생각을 얻는 기회로 삼는다. 이것이 퀘이커 공동체 영성이다. 퀘이커 공동체 영성은 공동체 안에서 다름과 차이를 통해서 상호이해와 배려, 존중과 배움의 공동체 문화와 품성을 기른다. 그러므로 개인의 영적 체험의 진리성은 공동체 안에서 일치 체험과 담금질 과정을 통해 확인되고 형성된다고 말할 수 있다. 개인의 영적 체험은 개인 스스로에게 진리이면서 동시에 공동체 안에서 진리화 되어가는 것이다. 나는 퀘이커들이 침묵 예배 후에 사람들이 증언자에게 다가가 ‘고맙다’고 말하는 것을 종종 보곤 했는데, 아마도 자신 안에 있는 진리의 소리를 확인시켜 준 것에 대한 감사의 인사를 표현한 것이라 생각한다.
다른 한편 공동체는 공동의 실천을 통해 개인 증언의 진실성을 수렴하고 혹은 걸러낸다. 공동체 안에서 개인의 진리 증언은 공동체의 변화를 일으키며, 공동체적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그것은 공동체의 실천으로 표현된다. 나는 영국 퀘이커 모임에서 개인 증언이 공동체적 실천으로 전개되는 것을 보았다. 주일 침묵 예배 중에 한 사람이 일어나서 ‘미국과 영국 정부의 이라크 침공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는 확신을 증언했다. 예배 후 몇몇 사람들이 모여 상의하더니 다음 주 토요일 정오에 교회 정문에서 모이기로 결정했다. 영적 체험의 진리를 공동체적으로 표현하는 행동을 하기로 한 것이다. 약속한 시간이 되자 퀘이커들은 모였고 자동차 트렁크에서 팻말을 꺼내들고 교회 문 앞에서 섰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향해, 그리고 자기 자신을 향해 평화 파수꾼(Peace Vigil) 행동을 한 것이다. 이와 같은 공동체적 행동은 예배의 증언을 역사적 진리로 만든다. 이것이 퀘이커 공동체 영성이요 진리이다. 퀘이커들은 공동체의 믿음을 실천함으로서 자신들의 믿음을 진리로 증거한다. 나는 퀘이커 공동체 영성이 오늘날 우리 한국교회가 처한 위기 현상들에 무언가 대안적 성찰 자료를 줄 수 있다고 믿는다. 오늘 한국교회의 설교의 위기는 목사의 설교가 자신의 생각과 다르면 비난하고, 목사의 설교에 아무런 실천적 응답이 없는 신앙공동체의 무기력에서 나타난다. 이 점에서 우리는 퀘이커 공동체 영성으로부터 무언가 배울 점이 있으리라 기대한다. 또한 요즘 폭발적으로 일어나는 교회 공동체 안의 심각한 갈등 문제 역시 퀘이커 공동체 영성, 영적인 일치 체험과 차이를 존중하는 공동체 영성으로부터 성찰의 자료를 얻을 수 있으리라 본다.
영성 충전소로서 공동체
퀘이커는 함께 하나님을 추구할 때 영적으로 유익함을 경험상 터득하고 있다. 퀘이커 운동의 선구자인 조지 폭스(George Fox)는 홀로 조용히 예배드리는 것보다 공동체로 모여서 예배할 것을 권고했다. 퀘이커 공동체 영성의 유익한 점은 공동체의 자리에서 개개인의 영적 체험을 공유함으로서 보다 풍요롭고 다채로운 영적 체험을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지루하고 무덤덤한 상태가 되고, 습관화된 신앙생활을 할 때가 많다. 일상화된 신앙이 주는 필연적인 위기증상이라 하겠다. 매일같이 특별한 영적 체험이 일어나는 것도 아니고, 목사의 설교에서 신앙적 깨달음이 늘 감동적으로 일어나는 것도 아니다. 성만찬을 할 때마다 영적 체험을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 까닭에 신앙의 위기는 일상적이 된다. 이것은 신앙 본질적인 문제이며, 형식적인 것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앙의 위기를 외적 형식에서 해결하려는데 오늘 우리 교회의 근본적 위기가 있다. 이런 점에서 신앙의 내면성을 강조하는 퀘이커 공동체 영성은 우리 한국교회에게 성찰의 자료를 제시한다.
퀘이커들은 언제 어디서든지 즉각적으로 만나고 듣는 영적 체험을 추구한다. 오늘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계속 일어나고 있는 하나님의 계시(continuing revelation)는 우리의 영적 체험을 매일 새롭게 하는 영적 근원이다. 그러나 퀘이커들이 매번 이런 영적 체험을 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퀘이커 침묵 예배가 쉽지 않은 것임을 경험하곤 했다. 침묵 가운데 보통 1시간을 앉아있으면 수없이 많은 잡념들이 밑도 끝도 없이 일어나고 사라지곤 한다. 심지어 수년 전 겪은 분노가 기억 속에 되살아나 힘든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이런 경우에는 어떻게 하라는 경험자들의 조언들이 있지만 결국 자신이 감당해야 하는 몫이다. 공동체로 모여서 예배를 드리면, 비록 잡념 속에서 방황할지라도 다른 사람의 증언을 들으면서 영적 체험을 공유할 수 있다.
나는 펜들힐에서 매일 아침 침묵 예배를 드리면서 참 다양한 영적 체험을 했다. 홀로 조용하게 앉아있는 것보다 함께 앉아 있으면 무언가 전체 공동체를 흐르는 영성을 체험한다. 소용돌이처럼 전체의 고요 속에 빠져들면서 나 자신의 고요함에 들어간다. 침묵 속에서는 종종 많은 생각들이 지나간다. 한 가지 생각에 골몰하는 경우도 있다. 홀로 있으면 이렇게 긴 시간 침묵 가운데 있기가 쉽지 않다. 어쩔 수 없어서 혼자 조용하게 있는 것과는 다르다. 이것은 예배라는 목적을 가진 침묵이다. 단순한 침묵과는 다르다. 그래서 종종 사람들은 질문하곤 한다. 퀘이커의 침묵과 불교의 선 명상은 어떻게 다르냐고. 함석헌은 퀘이커 침묵과 불교 선 명상을 형식은 비슷해 보이지만 내용에서 차이가 있다고 설명하는데, 퀘이커는 침묵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를 구하고 공동체적 일치를 추구한다면 불교의 선 명상은 비움을 통하여 개인의 각성에 이른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고 설명한다. 퀘이커 공동체 예배는 침묵 속에서 각각 개인적으로 침묵하면서 동시에 전체 공동체로서 침묵한다. 개인적 경험이면서 전체 공동체 안에서 일어나는 영적 체험을 한다. 공동체의 영성을 체험하면서 개인들은 서로 격려하고 영적 체험을 나눈다. 퀘이커 공동체는 영적 충전소이다.
돌봄의 영성
퀘이커 공동체 영성은 도와주고 격려하며 평등을 지향하는 영성이다. 퀘이커들은 영적으로, 물질적으로 격려하고 도와주는 공동체를 추구한다. 우리나라 사람으로 퀘이커가 되었던 함석헌은 퀘이커들이 곤경에 빠지면 서로 발 벗고 도와주고 보살핀다는 이야기를 듣고 깊이 감동했다. 초기 퀘이커들은 신앙문제로 억압당하고 감옥에 갇히곤 했다. 동료가 감옥에 갇히면 남아있는 퀘이커들이 그의 가족들을 책임지고 보살폈다. 신앙 양심을 지키다가 감옥에 갇힌 동료를 지원하고, 그의 가족을 책임지고 돌봐주는 퀘이커들의 이야기를 듣고 함석헌은 이것이야말로 신앙공동체의 진정한 형제애요,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의리있는 신앙 공동체’라고 하면서 감동했다. 이렇게 뒤가 든든하니까 퀘이커들은 자신의 신앙 양심에 따라 소신껏 행동하고, 세상 권력의 불의에 맞서 저항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함석헌은 부러워했다. 실제로 퀘이커들은 용기 있는 신앙인들로 살았고, 비록 소수지만 세상 권력과 타협하지 않는 기독교 신앙을 고수했다. 바로 이 점에서 함석헌은 퀘이커를 다시 보았고, 신앙인들이 홀로 믿지 않고 공동체로 모여 믿는 이유가 있다고 강조했다. 용기 있는 신앙을 뒷받침하는 공동체의 돌봄의 영성은 오늘날도 교회가 참된 교회가 되는 일에 매우 긴요하다.
퀘이커 공동체 안에서는 세상에서의 차별과 배타, 폭력과 공격이 없으며 비난하거나 멸시하거나 무관심하지 않는다. 도움을 줄 때에도 도움받는 이가 자존감을 상처받지 않도록, 부담감을 느끼지 않도록 관심을 기울인다. 퀘이커 공동체 영성은 매우 높은 수준의 인권 의식과 문화적 감수성이 삶의 바탕이 되어있다.
공동체는 개인들이 모여 살면서 개인의 개성과 인권, 삶의 영역을 존중하면서, 동시에 서로 간에 협력하고 보살피며 돌보는 상호 양육과 돌봄이 일어나는 곳이다. 함께 모여 살게 되면 의도치 않게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고 불평불만이 일어나게 된다.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가의 경계가 모호할 때도 많이 있다. 그러므로 공동체의 생활 규칙이 생기게 된다. 개인을 우선으로 존중하지만 공동체적 개인이 되어야 할 때가 있다. 서로 이해하고 격려하며, 개인적인 문제들을 함께 상의하면서 해결해가려는 공동체적 인격이 형성되어야 한다. 이것을 양육하는 영성이 공동체 영성이다.
펜들힐에는 존(John)과 아냐(Anya)라는 부부가 학생으로 와 있었다. 아냐는 러시아 여인이고 존은 미국 사람이다. 그들은 10년 전 펜들힐에 학생으로 와서 만나 결혼했다. 이번에 다시 와서 만나보니 두 아들의 부모가 되어 있다. 존은 기타를 치고 노래 부르고 책 읽기를 즐겨하는 가치 지향의 삶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아냐는 아들을 남부럽지 않게 교육시키고자 하는 열망을 가진 엄마이다. 겉으로 보기에 둘 사이에 큰 문제가 없는 것 같았지만 경제 문제로 매우 심각한 갈등을 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자신들의 문제를 잘 해결하고자 공동체의 도움을 구했다. 퀘이커 공동체는 개인의 요청이 있을 경우 이를 해결하는 모임(클리어니스 커미티)을 구성한다. 모임 구성 방법은 공동체가 스스로 하는 경우도 있지만, 문제 당사자들이 자신들의 문제 해결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판단되는 사람들을 개별적으로 만나 구성하기도 한다. 존과 아냐는 직접 자신들의 문제에 좋은 조언을 해 줄 수 있는 사람들을 선택해 클리어니스 커미티를 몇 차례 가졌다. 모임에 참석한 사람들은 주로 문제 당사자들의 주장을 듣는데 시간을 할애하며, 필요한 경우 적절한 조언을 준다. 그들은 재판관이 아니라 문제 당사자들이 겪는 어려움을 함께 나누는 ‘공감적 경청자’(sympathetic listener)이다. 그들은 문제 당사자들이 겪는 어려움과 고통을 들어주고 기도하면서 좋은 해결의 길을 찾도록 격려한다. 문제가 심각한 경우에는 클리어니스 커미티가 공동체 전체에게 문제 해결을 위한 기도를 부탁하는 경우도 있다. 나는 언제나 겉으로 보기에 명랑하고 낙천적인 존과 아냐가 그런 부부 갈등을 겪고 있는 줄은 몰랐다. 같은 울타리 안에서 함께 지내면서도 내면의 갈등이나 문제를 모른 채 지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우리 교회 공동체도 그런 경우가 많은데 이것은 참된 의미의 공동체라 하기 어렵다. 그런데 이런 소식을 알게 된 후 펜들힐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나는 존과 아냐를 위한 기도를 했다. 기도를 하면서 나는 공동체의 의미를 새삼 실감하곤 했다. 공동체는 그냥 모여 사는 것이 아니다. 서로 깊이 연관된 삶을 자각하면서 사는 것, 그것이 공동체의 삶이다. 신앙 공동체는 영적으로 서로 깊이 연관되어 있음을 자각하는 공동체이다. 퀘이커 공동체 영성이 추구하는 것이 그것이다. 나는 펜들힐에서의 작은 경험을 통해 서로 돕고 기도하고 격려하는 공동체의 의미를 새삼스레 깨우칠 수 있었다.
퀘이커 공동체 영성은 자기들만의 자족적인 공동체를 유지 번성하는데 머물지 않고, 지역사회와 세계 공동체를 위한 봉사와 책임 정신으로 이어진다. 퀘이커 공동체 영성은 하나님의 창조 세계를 서로 의존, 협력하는 공동체로 보며, 공동체에 선을 증진시키는 삶에 관심하는 책임적 영성이다. 예를 들면 퀘이커들은 무기라든지 생명에 해를 끼치는 제품 생산을 하는 회사를 위해서는 일하지 않으며, 그런 회사에 투자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전체 공동체에 유익이 되는 일을 선택한다. 직장 생활에서, 사업 거래에서, 사람들에게 거짓없이 정직한 태도를 지킨다. 그렇게 함으로서 공동체에 유익이 되는 삶을 추구한다. 퀘이커 공동체 영성은 사회적 책임윤리에 민감한 영성이다.
퀘이커 공동체에 대한 오해와 진실
퀘이커(Quaker)라 하면 무슨 특별한 공동체를 이루고 사는 사람들이란 선입견이 있는데, 그것은 오해이다. 내가 아는 한 퀘이커 신앙으로 공동체 생활을 하는 집단은 없다. 퀘이커들은 보통 기독교인들처럼 사회생활을 하며 산다. 그러나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퀘이커’란 이름은 이상한 종교 집단으로 저들만의 공동체 생활을 하는 인상을 준다. 퀘이커는 흔히 ‘퀘이커 교도’라고 불린다. ‘교인’이란 말보다 ‘교도’란 말은 무언가 비정상적인 종교 집단이란 느낌을 풍긴다. 누가 처음 퀘이커 이름 뒤에 ‘교도’란 이름을 붙였는지는 모르지만, 일반 기독교인과는 다른 종교 집단의 신앙인이라고 느꼈던 것임에 틀림없다. 나도 처음 퀘이커 교도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무언가 가까이 가서는 안 될 이단적인 종교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퀘이커리즘을 박사 연구 주제로 삼아 연구한 학자로서 내가 보건대 퀘이커들은 영적인 신앙과 함께 매우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이다. 한 가지 예로서 영국 지식인들의 최고 영예라고 일컬어지는 왕립학회 회원 가운데 퀘이커들이 많다고 한다. 퀘이커는 상당히 품격 있는 기독교 신앙인이다.
퀘이커 공동체에 대한 오해는 세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 퀘이커는 집단적으로 공동체 생활하는 종교 집단이다. 둘째, 공동체 규율이 엄격하고 위반하면 제명된다. 셋째, 일반 사회에 대해 폐쇄적이고 은둔적이다. 이와 같은 오해는 퀘이커리즘의 역사적 배경과 관련되어 있다.
퀘이커들은 초기 운동 당시 기존의 기독교와는 다른 영적 개혁 운동으로 일어났고, 그에 걸맞는 자신들만의 독특한 예배와 삶을 추구했다. 그러나 의도적인 종교 공동체를 형성했던 것은 아니다. 그 후 시간이 흐르고 세대가 바뀌면서 초기의 강력한 카리스마 운동이 점차 희미하게 되는 것에 영적 위기를 직감한 퀘이커들은 자신들의 경험을 형식화시켜 고유한 것으로 보존하고자 하는 노력을 했다. 이것은 일반 사회와 교회 흐름과는 다른 독특한 퀘이커 공동체 문화로 나타났다. 예를 들면, 퀘이커들은 검정색 옷을 입는다든지, 금욕적 생활 윤리를 강조하고 이를 위반할 시에는 퀘이커 공동체로부터 제명하는 엄격한 공동체 생활을 형성했다. 이때 퀘이커는 자기들만의 신앙과 삶의 방식을 고집하는 종파적 신앙공동체의 모습을 가졌다. 이것은 종파적 신앙 공동체들이 보여주는 일반적인 특징이다. 그러나 19세기 이래 퀘이커들은 자신들만의 고유한 신앙 공동체생활에 자족하기보다는 사회개혁과 복음 전파운동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초기 퀘이커리즘의 정신을 회복하는 것이었다. 퀘이커들은 일반 사회와는 떨어져서 형식적으로 구별된 신앙 공동체 생활을 거부한다. 이런 것은 퀘이커 영성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일반 사회생활 속에서 보통 사람들처럼 살면서 하나님 나라의 실현을 삶으로 증거 하는 ‘평범한 혁명가’(ordinary revolutionary), 이것이 퀘이커들이 추구하는 신앙이요 삶이다. 그러므로 퀘이커들만의 종교 공동체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퀘이커를 공동체 생활하는 종교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것은 아마도 아미쉬 공동체(Amish community)와 퀘이커를 혼동하거나 비슷한 부류로 이해했기 때문일 것이다. 메노나이트에 속하는 아미쉬는 지금도 자신들만의 신앙 공동체를 유지하면서 산다. 남녀모두 검은색 복장을 주로 하며, 사치스런 현대 기술 문명을 사용하지 않는다. 미국 펜실바니아 랭카스터 아미쉬 마을에 가면 지금도 마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다. 아주 보수적인 아미쉬들은 전기와 전화도 사용하지 않는다. 자녀 교육은 아미쉬들이 만든 학교에서 한다. 현재 미국 아미쉬들이 많이 사는 곳은 펜실바니아 랭카스터 지방이다. 이곳은 퀘이커들이 먼저 정착했던 땅이며, 종교의 관용 정책을 실행했던 퀘이커 지도자 윌리엄 펜이 유럽에서 박해받던 메노나이트들에게 땅을 주었다. 아미쉬들은 오늘날까지 아주 독특한 종교 공동체 마을을 형성하며 살고 있다. 이들의 독특한 공동체 생활은 텔레비전과 영화로도 종종 소개되어 일반 사람들에게 비교적 잘 알려져 있다. 사람들은 퀘이커와 아미쉬를 종종 같은 부류로 혼동하여 생각한다. 이런 오해가 퀘이커 교도들 역시 종교 공동체 생활을 하는 집단으로 인식되게 만들었을 것이다. 현대 퀘이커들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그런 동류끼리의 공동체 생활을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퀘이커들은 공동체의 영성을 중시한다.
정지석 l 목사는 영국 우드부룩(Woodbrooke)대학원에서 박사학위(Ph. D.)를 받았다. KNCC, 크리스챤 아카데미 사회교육원, UNESCO-APEIU 국제이해교육원에서 평화교육가로 일했으며, 성공회대와 한신대 신학대학원에서 평화윤리와 교육을 강의했다. 한국 YMCA 생명평화센터 소장이며, 작년 펜들힐에서 연수를 마치고 돌아와 현재는 철원에서 국경선 평화학교 설립을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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