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희 시집 - <삶도 사랑도 물들어 가는 것> 중에서
누가 그랬다
-이석희
누가 그랬다
풀잎에도 상처가 있고
꽃잎에도 상처가 있다고
가끔은 이성과 냉정 사이
미숙한 감정이 터질 것 같아
가슴 조일 때도 있고
감추어둔 감성이
하찮은 갈등에
가파른 계단을 오르내리며
가쁜 숨을 쉬기도 한다
특별한 조화의
완벽한 인생
화려한 미래
막연한 동경
누가 그랬다
상처가 없는 사람은 없다
그저
덜 아픈 사람이
더 아픈 사람을 안아주는 거다
-----------
삶도 사랑도 물들어가는 것
이석희
산에 가면 산이 되는 줄 알았다
들에 가면 들이 되고
꽃을 보면 예쁜 꽃이 되는 줄 알았다
아니, 그렇게 되고 싶었다
내가 그들을 만나면
내가 그곳에 가면
내가 그들이 되고
그들이 내가 되는 줄 알았다
비가 오면 젖어들고
바람이 불면 흔들리면서
그렇게 내가 산인 줄 알았고
내가 나무인 줄 알았다
햇살 좋은 날은 너럭바위에
온전히 나를 말리며
풀벌레 소리에
난 숲도 되고 바람도 되고
살아가는 것도 사랑하는 것도
그냥 그 모습 그대로
흙물 들고 꽃물 들면서
서로 닮아가는 줄 알았다
---------
삶도 사랑도 물들어가는 것
눈이 부시게 좋은 날
고개 들어 주위를 돌아다보면
연둣빛은 물론 분홍빛 노랑빛
참으로 어여쁜 꽃들이 반긴다.
모두가 바쁘게 살아가는 세상이지만
그래도 문득 누군가에게
안부를 물을 수 있다는 것은
아니, 안부를 전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일이지
꽃이 피어도 그만
해가 바뀌어도 그만
살았는지 죽었는지
그냥 서로 나 몰라라 잊혀져가는 세상
그래도 문득
안부를 묻고 싶은 사람
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이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지
그런 사람이 있다는 게
얼마나 기쁘고 행복한 일인지
'삶의 이야기 > 시·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Nancy Wood-Today is a very good day to die. 오늘은 죽기 좋은 날... (0) | 2013.10.16 |
---|---|
뒤에야(然後) / 陳繼儒 (0) | 2013.10.02 |
[시] 나무처럼 /오세영 (0) | 2013.03.02 |
[스크랩] 첫차 - 나태주 (0) | 2013.03.02 |
미움도 괴롭고 사랑도 괴롭다 /법정스님 (0) | 2013.02.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