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2013.09.12 19:11
http://www.hani.co.kr/arti/opinion/because/603213.html
[왜냐면] 적대적 공생관계'라니?
장정일
일러스트레이션 김선웅 |
고대 희랍에서는 수색자가 도둑질을 한 용의자의 집에 들어갈 때, 옷을 몽땅 벗고 벌거벗은 채로라야 가택수색을 할 수 있었다. 수색자가 용의자에게 누명을 씌우거나, 반대로 수색을 빌미로 삼아 물건을 훔쳐 나올 여지를 원천차단하기 위한 지혜였다. 이번에 통합진보당 내란음모 사건을 터뜨린 국가정보원은 그런 원칙에 충실하지 못했다.
국정원이 집권 여당의 정적이나 민주화 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내란음모와 반국가단체를 조작하고 날조한 사건은 부지기수다. 인혁당(1974),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1980), 오송회 사건(1982), 왕재산 사건(2011) 등 국정원이 시나리오를 쓴 굵직굵직한 공안 사건은 모두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그럼에도 국정원은 피해자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하거나 국민에게 변변한 재발 방지책을 내놓지 않았다.
대선이 한창이던 2012년 12월, 간첩과 내란음모 사건을 조작해온 국정원의 업무에 또 다른 업무가 추가됐다. 대선을 일주일 앞두고 발각된 국정원 여직원의 인터넷 댓글 공작은 여직원 개인의 사적 활동이나 과잉충성이 아니었다. 국정원장의 지휘 아래 심리전 부서가 일사불란하게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에 나섰던 것이다. 정치 개입이 금지된 국정원이 어느 한편을 당선시키기 위해 적극적인 활동을 벌였으니 해체되어 마땅했다. 그러자 국정원장은 2007년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 전문을 무단 공개하며 조직 지키기에 나섰다. 발가벗기는커녕 온갖 오물을 덕지덕지 묻힌 채, 동네방네에 용의자의 피의사실을 퍼뜨리며 가택수사를 하겠다고 나선 국정원의 뻔뻔함이라니!
자신의 죄는 벗지도 못한 채 남의 허물을 캐고자 가택수색을 강행한 국정원도 그렇지만, 국정원과 통진당을 가리켜 ‘적대적 공생관계’라고 질타하는 좌파 지식인과 진보적 논객은 더 구역질난다. 통진당이 ‘장난감 총을 개조하자’느니 어쩌느니 하는 ‘뻘짓’을 하는 통에 국정원이 구원을 받은 것은 맞지만, 국정원 덕에 통진당이 반사이익을 얻거나 혜택을 받은 게 어디 있다는 말인가? 국정원이 낸 보도 자료가 맞다면, 통진당은 몇년째 국정원의 사찰을 당하고 있었던 피해자이지 국정원과 적대적 공생관계라는 인과관계는 성립하지 않는다.
전 남성연대 대표였던 성재기의 무모한 해프닝은 똑같이 무모한 그 주변의 ‘듣보잡’ 논객을 상대적으로 합리적인 인사로 만들어주었다. 이런 걸 ‘성재기 효과’라고 할 수 있다면, 통진당과 국정원이라는 양극단을 등가로 놓고 비난하는 진보 지식인의 행태도 쉽게 이해가 된다. 이들은 이 기회를 빌려 자신을 불편부당하고 합리적인 지식인으로 내세운다. 뿐만 아니라 이런 분식에는 자신의 합리적 이미지를 강화하는 것 이상의 허위의식과, 통진당 사태로부터 건져내야 할 소중한 자산을 보지 못하는 좌파·진보 논객의 무능력마저 내재되어 있다.
최근에 나온 어느 대담집에서 윤여준은 한국 정치를 떠받치고 있는 네 개의 낡고 썩어빠진 기둥이 있다면서, 이데올로기를 제일 먼저 뽑아야 할 낡고 썩은 기둥으로 꼽았다. 서구에서는 이데올로기정치 시대가 끝나고 생활정치 시대가 도래한 지 오랜데 우리는 아직도 이데올로기정치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한국 정치만 아니라 세계는 이런 ‘탈이데올로기 장사꾼’에게 정치 고유의 적대와 이데올로기를 팔아먹은 지 오래다. 이데올로기가 사라진 빈자리를 비당파적 실용주의와 초당적 협력이 대신 채우고 있다.
적대적 공생관계는 이런 경우에나 써야 한다. 이석기 의원의 체포동의안을 놓고 새누리당과 민주당이 과시한 ‘찰떡 공조’는, 그들이 무엇을 옹호하고 두려워하는지를 잘 가르쳐준다. 자본주의는 아주 오랫동안 자신을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누구도 이 체계를 떠나서는 살 수 없는 자연(自然)인 양 스스로를 신화화해왔다. 전 세계에 번진 비당파적 실용주의와 초당파적 협력이라는 탈이데올로기 정치는 그 오랜 노력이 거둔 승전물이다. 딱히 내란 음모가 아니더라도, 통진당은 새누리당과 민주당이 지우고 봉합한 탈이데올로기의 속임수를 드러내기 때문에 반드시 제거되어야 하는 눈엣가시다. 탈이데올로기(자본주의)가 무성한 오늘날, 통진당의 실패는 ‘다시 실패하라, 더 낫게 실패하라’는 사뮈엘 베케트의 교훈을 떠올려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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