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금 명인 원장현 선생의 음반 <유인일기>에 수록된 정상일 시인의 詩
幽人日記
정상일
정신차리고 살기가 싫구나
눈 똑바로 뜨고 세상 이치 헤아리며
분명한 얼굴로 이승 살기는
저승보다 싫구나
나
아무런 욕심 없이
몽유(夢遊)의 그늘에서
한 오백년 떠 가는 구름처럼
그냥 흐르고 싶은데
그 때 점잖은 소나무 아래
너는 가만히 웃고 있고
오라고 오라고 손짓하면
허리 구부리고 깔깔대며 너는 슬프게 웃고
나른한 피로에 젖어 나는
버들가지나 꺾어 호드기 물고
세상 일은 다 잊은 척 눈둑 길에 누워
흘러가는 구름이나 불러보다가
어느 사이 꽃구름 아래
깜빡 잠든 너를 안고
돌개울에 내려가 발이나 씻기다가
해 저물면 한 그릇 밥을 찾아
욕심없이 누운 오두막을 돌아 오는데
너는
세상이 너무 적막하다고
당신은 그렇지 않느냐고
짐짓 투정도 부리다가
청솔가지 분질러 아궁이 타는 불
무릎 모아 쥐고 앉아 어깨를 기대면
세상은 멀어 산 속은 고요하고
저녁 연기는 낮은 목청으로 세상을 뜨리라
밤 내려 등불 밝히면
봄나물도 향기로워 너는 다듬고
비스듬히 누워 발장단이나 치다가
하도 심심하여 네 발가락이나 만지다가
만지다가 까르르 웃고 너도 따라 누워
까마득히 먼 곳에 말을 달리고
스스로 외로워 아무도 말이 없을 때
가끔은 세상 생각도 날 것인데
세상 그리워 가끔은
너도 울고 나도 울어서
밤새 눈물 닦아주다 발도 닦아주고
살아온 날이 저 혼자 예쁘고 딱하여 또 울다가
그것이 사실은 설움이라고
가만가만 귀 대어오는 네 말을
나는 또 몰래몰래 마음에 심어둘텐데
흙 냄새 자욱한 방은 삼 칸 방,
심어둔 마음이 애틋하여
쓸쓸한 몸을 다시 만지고
우우 밤바람은 불어
문풍지 울리면
그제서 두고 온 세상 생각날까
누구도 먼저 말하지 못하고
더듬고 만지며
외로움 쓰다듬다가
잠이나 들까
잠이나 들까
그 때도 몽유(夢遊)의 슬픔으로
잠이나 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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