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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선녀 이야기/마리선녀 철학

보편성의 독점, ‘국가’라는 야누스 /부르디외(르몽드 디플로마티크40호)

by 마리산인1324 2012. 2. 11.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40호] 2012년 01월 06일 (금) 15:23:06

http://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1603

 

 

보편성의 독점, ‘국가’라는 야누스

부르디외식 국가의 우화

 

 

피에르 부르디외

 

각국이, 특히 유럽 국가들이 초국적 기구들에 재정 주권을 넘겨주고 있는 이때, 역사사회학은 통합의 과정이란 곧 폭력과 박탈의 과정임을 보여준다.

 

국가의 형성 과정을 묘사하는 일은 하나의 사회적 장(場·champs), 혹은 전체 사회-세계의 내부에서 상대적으로 자율성을 갖는 소우주의 형성 과정을 묘사하는 것과 같다. 이 장 안에서는 ‘합법적 정치 게임’이라는 특별한 게임이 펼쳐진다. 의회의 발명을 예로 들어보자. 이곳에서는 이익 집단들을 대립시키는 문제들에 대해 일정한 형식과 규칙 속에서 공식 토론을 벌인다. 마르크스는 무대 뒤에서 벌어지는 일에 주목했다. 의회는 극장이라는 메타포, 합의의 연극화를 통해 무대 뒤에서 배우들을 조정하는 사람들을 은폐한다. 본래의 목적, 실질적 권력은 다른 곳에 있다. 국가의 기원을 밝히는 일은 정치가 일정한 형식 속에서 수행되고, 상징되고, 연출되는 장의 기원을 밝히는 것과 같다.

 

   
<이상한 가면들>, 1892-제임스 앙소르

적절하고 합법적인 정치 게임 속에 들어간다는 것은 보편적 언설 속에서, 그리고 한 그룹, 만인, 전체(Universum)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허용하는 보편적 입장에서 점진적으로 축적된 자원, 즉 ‘보편적인 것’(Universel)을 획득하는 것을 의미한다. 공공의 이익을 대변하고 공공의 선에 대해 말하는 이들은 동시에 그것을 자기 것으로 전유할 수도 있다. 이것이 보편적인 것의 ‘야누스 효과’다. 보편적인 것에 대한 독점 없이는 보편적인 것을 대변하는 특권을 획득할 수 없다. 보편적인 것은 자본이다. 보편적인 것의 관리 기구가 형성되는 과정은 보편적인 것을 전유하는 일을 담당하는 특정 주체들이 형성되는 과정과 분리될 수 없다.

 

문화적 장을 예로 들어보자. 국가의 형성 과정은 다양한 형태의 자원, 즉 정보 자원(조사·보고 등을 통해 축적되는 통계수치), 언어 자본(특정 언어 형태를 지배 언어로 규정함으로써 다른 모든 언어들은 표준에서 이탈한 열등한 언어로 전락한다) 등이 한곳으로 집중되는 일련의 과정으로 설명할 수 있다. 집중의 과정은 항상 박탈의 과정을 동반한다. 한 도시를 모든 형태의 자본(le capital)이 집중되는 수도(la capitale)로 지정하는 것은 동시에 지방의 자본을 박탈하는 것과 같다.(1) 하나의 언어가 표준어가 되면 다른 모든 언어는 방언이 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2)

 

합법적 문화는 국가에 의해 보증된다. 국가기구는 문화적 직함을 보증한다. 보증된 문화에 대한 소유는 학위 수여에 의해 보장된다. 교육 프로그램을 짜는 것도 국가의 몫이다. 교육 프로그램의 변경은 자본 분배 구조의 변경을 의미하는 동시에, 특정 자본 형태의 가치 박탈을 의미한다. 예컨대 교육 과정에서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제외하는 것은 일군의 언어 자본 소유자 집단을 ‘푸자드주의자’(Poujadiste·편협한 권리 주장을 하는 사람들)로 전락시킨다. 나 역시 학교에 관한 예전의 연구에서 ‘합법적 문화는 곧 국가의 문화’라는 사실을 완전히 망각했었다.  이런 집중은 통합과 보편화의 과정이다. 다양성, 산만함, 지역성이 존재하는 곳에 독특함이 존재한다.

 

제르멘 티용과 함께 알제리 카빌리 지역 30km 반경에 있는 마을에서 사용하는 계량 단위를 비교해본 적이 있는데, 거의 모든 마을마다 다른 단위를 사용했다. 민족 혹은 국가 단위의 계량 표준 도입은 보편화의 관점에서 일종의 진보라고 볼 수 있다. ‘미터법’은 합의와 동의를 요하는 보편적 척도다. 이런 집중·통일·동화의 과정은 동시에 박탈의 과정이다. 미터법 도입으로 각 지역의 계량 단위가 쓸모없는 것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하면, 보편성을 획득하는 과정 자체가 보편성의 집중을 동반하는 것이다. 한쪽에는 미터법 도입을 원하는 사람들(수학자들)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주변화되는 사람들이 있다. 공동 자원을 형성하는 과정 자체는 공동 자원을 자본으로 구성하는 과정이다. 이 자본은 보편적인 것의 독점을 위한 투쟁을 하는 이들에 의해 독점된다. 한 영역의 구축, 여타의 필요성에 대한 이 영역의 자율성 확보, 경제적·가족적 필요와 구분되는 특수한 필요성 획득, 가족의 재생산과 구분되는 특수한 관료적 재생산 구조 수립, 종교적 필요와 구분되는 특수한 필요성 획득 등. 이 모든 과정은 보편적인 것으로 간주되는 새로운 형태의 자원, 즉 기존에 존재했던 것보다 더 보편적이라 간주되는 자원을 구성하는 과정, 집중화 과정과 불가분적 관계가 있다.

 

미터법이 금지한 계량 단위들

 

이는 경제적 측면뿐 아니라 상징적 측면에서 지역 시장이 국가 시장에 편입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국가의 형성 과정은 보편적인 것에 대한 독점 과정과 분리되지 않는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문화다.

 

이전 연구에서 내가 발견한 사실들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하나의 문화는 그것이 보편적인 것, 모든 이들에게 제공되는 것으로 제시되는 한에서 합법적이다. 보편성을 소유하지 못한 자들은 보편성 이름으로 간단히 배제된다. 겉으로는 통합을 수행하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분리를 수행하는 문화는, 그것을 독점하는 이들에게 중요한 지배수단이 된다. 이 문화의 특수성에 대한 비판 자체가 차단된 끔찍한 독점이다. 심지어 과학에도 이런 모순은 존재한다. 과학적 보편성을 구성하고 축적하기 위한 조건은 하나의 특권계급(Caste), 국가 귀족, 보편적인 것의 ‘독점자’(Monopolisateur)를 구성하기 위한 조건과 밀접하게 연결된다. 이상의 분석에서 우리는 보편적인 것에 대한 접근 조건을 보편화하는 프로젝트를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독점자’들의 특권을 박탈해야 할까? 관건은 다른 곳에 있다.

 

방법론과 내용에 관한 말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한 우화 장면을 소개한다. 지금으로부터 30여 년 전 크리스마스 저녁, 베아른 지역 깊숙한 곳에 위치한 한 마을의 시골 축제를 구경하러 간 적이 있다.(3) 어떤 사람들은 춤을 추고, 어떤 사람들은 춤을 추지 않았다. 농부 차림인 노인들은 춤을 추는 대신 그들끼리 얘기를 나눴다. 그들은 춤은 추지 않으면서 자리는 지키고 있는 어색함을 감추기 위해 짐짓 태연한 척했다. 그들은 분명 결혼했을 것이다. 결혼한 사람은 더 이상 춤을 추지 않는다. 축제는 결혼을 위한 교환이 이루어지는 공간 중 하나다. 결혼과 관련된 상징적 재화들이 거래되는 시장인 셈이다. 축제에 참가한 미혼자 비율은 매우 높았다. 참가자 절반이 25~35살가량의 젊은이들이었다.

 

   
<가면들에 둘러싸인 자화상>, 1899-제임스 앙소르

통합 위한 배제, 배제 위한 통합

 

이 현상을 설명할 방법론을 모색했다. 예전에는 통일되지 않고 분산된 상태로 보호받는 지역시장이 존재했다. 그런데 이른바 ‘국가’라는 것이 들어서면서 국가 주도 정책에 의한 경제시장 통합과, 예절·품행·옷차림·개성·정체성·태도 등과 관련된 상징 교환 시장의 통합이 이루어졌다. 지역민들을 보호하는 지역시장에 대한 통제권을 행사하던 그때는 가족 단위로 조직된 일종의 동족결혼(Endogamie)이 가능했다. 농촌의 재생산 방식 속에서 생산된 상징은 지역시장 안에서 교환되었다. 남성들은 이 시장에 나가 자신을 상품으로 내놓고 결혼할 여성을 찾았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시골 축제에서 관찰한 장면은 상징 교환 시장이 통합된 결과라고 말할 수 있다. 인근 마을에서 와서 으스대며 돌아다니는 낙하산 부대원들은 이를테면 자신들의 경쟁자인 농부들의 가치를 박탈하는 존재다. 일종의 진보로 간주할 수 있는 시장 통합은 농촌을 등지고 떠나는 이들, 즉 여성 혹은 피지배자들에게는 해방으로 경험될 수도 있다. 학교에서도 몸가짐이나 옷차림에 대한 교육을 한다. 새롭게 통합된 시장 안에서 학생은 농부보다 결혼 배우자로서 더 큰 가치를 갖게 된다. 이 속에 보편화 과정의 모든 모호함이 숨어 있다. 도시로 떠나는 시골 처녀로서는 집배원과의 결혼이 보편적인 것으로의 편입을 의미할 수 있다.

 

보편의 독점·관리 주체는 국가

 

그러나 좀더 높은 단계의 보편화는 지배 효과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나는 최근 베아른 지역의 미혼자들에 대한 분석을 재검토한 글을 발표했다. ‘금지된 재생산’(4)이라는 재미있는 제목을 붙인 글에서 이런 시장 통합이 사실상 한 인간 범주에 대해 생물학적·사회적 재생산을 금지하는 효과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보여주려 했다. 우연히 프랑스혁명 때의 한 조그만 마을 공동 회의록을 발견했다. 이 지역 사람들은 만장일치로 투표를 했다. 다수결로 투표해야 한다는 명령이 떨어지자 그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 고심했다. 다수결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사람들 사이에 편이 갈렸다. 조금씩 다수결이 자리를 잡아갔다. 보편적인 것이 다수결의 배후에 있었기 때문이다.

 

사회적 재생산의 금지

 

토크빌이 프랑스혁명의 연속성·비연속성이라는 논리 속에서 제기한 이 문제를 둘러싸고 큰 논쟁이 벌어진 적이 있다. 그는 진정한 역사적 문제를 제기했다. 보편적인 것의 특수한 힘은 무엇일까? 수천 년 동안 일관적 전통으로 형성된 농부들의 정치적 의사결정 방식은 보편적인 것의 힘에 의해 제거되었다. 그들은 마치 도시에서 온, 명료하고 체계적인 그러나 비실용적인 방식으로 담론화된, 논리적으로 더 강한 무엇인가에 굴복한 것처럼 보인다. 그들은 이제 시골 사람, 지방 사람이 됐다. 그들의 회의록에는 ‘이제 도청의 결정에 따라…’, ‘시의회가 소집되어…’ 등과 같은 문구들이 등장한다. 이처럼 보편화의 이면에는 박탈과 독점이 있다.

 

국가의 형성 과정은 곧 보편적인 것을 관리하는 공간, 보편적인 것의 독점, 사실상 독점의 다른 이름인 보편적인 것을 관리하는 주체 전체의 형성 과정이다.

 

/ 피에르 부르디외 Pierre Bourdieu 사회학자 (1930~2002)

 

번역 / 정기헌 guyheony@gmail.com

 


(1) 부르디외는 나중에 ‘자본(le capital)과 수도(la capitale)의 관계’에 대해 심화된 연구를 한다. <세계의 비참·1>(피에르 부르디외 저, 김주경 역, 동문선, 2000) 2장 ‘장소의 효과’(‘Effets de lieu’, <La Misère du monde>, Seuil, Paris, 1993, pp.159~167) 참조.

(2) 합법적 언어 지정과 그에 따른 박탈 과정에 대해서는 <상징폭력과 문화재생산>(피에르 부르디외 저, 장일준 역, 새물결, 1997)의 전반부와 <Language et pouvoir symbolique>(pp.59~131,  Seuil, Paris, 2001) 참조.

(3) 부르디외가 이 장면에 대해 처음 묘사한 글은 <미혼자들의 축제: 베아른 농촌사회의 위기>(pp.7~14, Seuil, 파리, 2002)  참조.

(4) 피에르 부르디외, ‘금지된 재생산: 경제적 지배의 상징적 차원’, <Etudes rurales>(n°113~114, pp.15~36, 1989),  <미혼자들의 축제…>(op. cit., pp.211~247)에 재수록.


   
피에르 부르디외 (사회학자, 2002년 작고)
피에르 부르디외는 누구인가

피에르 부르디외는 1975년 <사회과학연구학보>를 창간하고, 1981~2001년 콜레주 드 프랑스 사회학 교수를 지냈다. 당대의 사회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한 실천적 지식인인 피에르 부르디외는 전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학문적 업적을 남겼다.

 

부르디외가 1989~92년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 강의한 ‘국가에 대하여’(Sur l’Etat)(1)가 곧 책으로 출판된다. 그 교정필 인쇄본에서 발췌한 두 편의 글을 본지에 독점 소개한다. 이 글에서 우리는 10년 전 작고한 사회학자 부르디외의 새로운 면을 발견한다. 문외한과 전문가가 뒤섞인 청중 앞에서 부르디외는 교육자·연구자로서 분석의 엄격함과 구두 강의에서만 가능한 익살을 함께 보여준다.

 

국가에 대한 질문은 알제리 사회학에서 문화와 교육, 지배구조에 대한 분석에 이르기까지 부르디외의 저작을 모두 관통하는 주제였다. 그러나 그 질문이 이론적으로 형식화된 적은 없다. 그런 만큼 모든 이익 투쟁이 집중되는 국가의 형성 과정을 추적한 이 강의는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부르디외는 기존 역사학적 접근방식을 비판하면서 유럽·일본·중국 사회에 대한 다양한 예를 통해 권력 형식의 집중 과정을 묘사한다. 이어서 그는 왕족과 그 논리의 바깥에서 법률가·전문가·관료들이 자신의 출신보다는 학벌을 통해 권위를 구축하는 과정, 즉 ‘관료적 영역’이 형성되는 과정을 묘사한다.

 

부르디외가 시도한 국가 기원으로의 회귀는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겨온 것들을 다시 돌아보게 만든다. “역사는 가능한 것들을 제거한다. 가능한 것들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잊게 하고 그 가능성을 생각조차 할 수 없게 만들어버린다.”

 

(1) <국가에 대하여: 콜레주 드 프랑스 강의 1989~92>, Raisons d’Agir-Le Seuil, 파리, 2012년 1월 5일 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