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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선녀 이야기/마리선녀 철학

Communista Social Club /Philosophie Magazine n°31 Juillet 2009

by 마리산인1324 2012. 3. 12.

naver 블로그 <물질문명>에서 퍼왔습니다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jjwesp&logNo=150116627353&parentCategoryNo=&categoryNo=&viewDate=&isShowPopularPosts=false&from=postView

 

원문 : n°31 Juillet 2009

http://www.philomag.com/lepoque/reportage/communista-social-club-3597

 

 

프랑스의 철학 월간지 필로조피 매거진(Philosophie Magazine) 31호에 실려 있는 코뮤니스타 소셜 클럽(Communista Social Club)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번역해 보았다.



 

  2009년 7월에 실린 기사인데, 같은 해 봄에 런던 버벡 대학에서 있었던 좌파 철학자들의 학술회의에 대한 보고서이다. 기사 작성자는 폴란드 출신의 젊은 철학도 이언 소바(Jan Sowa). 읽어보면 알겠지만, 이 학술회의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곱지 않다.  현실 공산주의 하에서 자라난 동구권 지식인의 눈에 '공산주의의 재발명'을 말하는 서유럽 정치철학자들이 어떻게 비치고 있는지를 한 번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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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타 소셜 클럽(Communista Social Club)

 

 

지난 봄, 런던의 버벡(Birbeck) 대학에서 코뮤니즘의 이념에 대하여라는 국제 학술회의가 열렸다. 알랭 바디우(Alain Badiou), 슬라보예 지젝(Slavoj Zizek), 자크 랑시에르(Jacques Ranciere), 토니 네그리(Toni Negri) 등이 연단에 올랐다. 학술회의장에는 전 세계의 연구자들과 투사들이 몰려 들었다. 급진적 좌파이지만 어린 시절 소비에트 체제를 겪었던 폴란드의 젊은 지식인, 이안 소바(Jan Sowa)가 필로조피 매거진(Philosophie magazine)을 위해 이 토론들을 추적했다. 전반화 된 경제 위기의 맥락 속에서, “코뮤니즘적 가설은 전체주의의 씨앗을 내포하고 있는가, 아니면 신자유주의에 대한 유효한 대안을 표상하는가?

 

우리는 이제 막 미래의 종말을 경험했다.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를 강타했던 금융 위기는 우리 사회들에 활기를 불어넣었던 마지막 유토피아를 끝장냈다 : G.D.P의 무한한 성장이라는 길을 따라 우리를 풍요의 천국으로 이끌어주리라 여겨졌던 시장의 유토피아, 보이지 않는 손의 유토피아, 그 곳에서는 가난한 이들 역시도 사회의 가장 상층부에서 굴러 떨어지는 부 속에 잠기게 되리라 여겨졌던 유토피아... 하지만 그 누구도 미래를 향한 기획 없이 살아나갈 수는 없다. 유토피아가 히드라의 머리와 같은 이유가 거기에 있다 : 머리를 하나 자르자 마자, 거기서 다른 머리가 나타나는 것이다.

 

십년 전이었다면 이와 같은 행사는 상상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 런던, 국제 금융의 수도인 이 도시의 중심부에서 유럽과 미국에서 온 십수명의 철학자들이 코뮤니즘적 유토피아의 장점들을 찬양하기 위해 모였다. 풀 타임으로 심지어 토요일과 일요일에도- 오전 열시부터 모여든 천명 가량의 청중을 앞에 두고 말이다. 이 행사는 2008년에 기획되었으나, 금융 위기는 이 학술회의에 이례적인 중요성을 부여하였다. 점점 늘어나는 학술회의의 청중들을 맞아들이기 위해 강당을 세 번이나 변경했어야 할 정도로 말이다. 100 파운드 스털링(당시 110유로 가량)이라는 입장료가 열정을 좀 식히긴 했지만.

 

제국에 대한 지치지 않는 비판자인 토니 네그리, 그의 길동무인 문학비평가 마이클 하트(Michael Hardt), 포스트모던 기독교의 선구자인 지안니 바티모(Gianni Vattimo), “팝 철학의 슬로베니아 출신 슈퍼스타 슬라보예 지젝  뿐 아니라,  루이 알튀세르의 옛 제자인 자크 랑시에르(Jacques Ranciere)와 주디스 발소(Judith Balso), 알베르토 토스카노(Alberto Toscano), 테리 이글턴(Terry Eagleton) 등등의 이들이 마이크 앞에 섰다. 학술회의 자체는 유명한 프랑스의 마오주의자 알랭 바디우의 저서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이러한 모임에서 일종의 혁명적 페티시즘의 분출이 나타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청중들은 그들의 아이돌을 라이브로보기 원하는 열광적 팬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비판적 성찰보다 경탄이 앞섰다.

 

청중들은 미리 경탄을 보낼 준비가 되어 있었다 치더라도, 더 놀라운 일은 철학자 그 자신들도 서로에 대해 전혀 논쟁적이지 않았다는 것, 저항적 태도로 유명한 이 지식인들 중 누구도 그들의 동료들의 작업에 대해 단 한마디의 비판적 언사도 감히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러한 합의가 이미 오래 전부터 준비되어 왔다는 것은 사실이다. , 이 학술회의에 끼기 위해서는, 코뮤니즘의 긍정적 측면들을 변호하기 위해 이 회의에 참여하는 것이라는 조건을 미리 받아들여야만 했던 것이다.

 

이에 더해, 알랭 바디우는 여기 참여한 사상가들이 스스로를 대표할 뿐이며, 이 학술회의는 단독성(singularite)들의 모임이라는 것을 명확히 했다. “꼬뮨(commun, 즉 단독성이 아닌 공동성 :역자)”을 예찬하기 위한 모임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그 자체로 놀라운 말이긴 하지만, 그들의 발언들이 서로 서로 병치되었을 뿐 거의 대화적이지 못했다는 사실을 설명해주는 말이기도 하다.

 

<플라톤과 레닌 사이의 관계>

 

이 회의에서 알랭 바디우에 의해 제시된 발표는 그의 책 코뮤니즘적 가설 : 상황들 V (L’Hypothese communiste : Circonstance V)”을 반복한 것이었다. 알랭 바디우가 칼 마르크스로부터 멀어졌다는 것, 마찬가지로 토니 네그리 바디우에 비해 사회적 동력들에 대한 믿음이 더욱 강한- 로부터도 멀어졌다는 것을 지적해 두자. 바로 다음과 같은 결정적인 점에서 그렇다 : 바디우에 따르면, 코뮤니즘은 자본주의의 귀결도 아니며 계급투쟁의 역사적 지평도 아니다. 코뮤니즘이 현 상황에 -잠재적으로조차- 속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렇다. 정 반대로, 코뮤니즘은 그 예측할 수 없는 본성 상 사건 가능성들을 열고, 역사의 흐름을 폭력적으로 중단시키는- 으로써 돌출한다.



 

 


실제로 바디우는 전혀 다른 두 가지의 질서를 대립시킨다 : 한 편으로는 사실들(faits)”이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가능한 것들(possibles)”이 있는 것이다. “나는 가능한 것들(les possibles)의 가능성(la possibilite)을 제한하는 구속들의 시스템을 상태(Etat)” 혹은 상황의 상태(etat de la situation)” 라고 부릅니다”.  이 철학자에게 있어,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조직, 즉 정부, 경찰, 은행들, 사유재산 등등의 유일한 기능은 가능한 것들(les possibles)을 차단하는 것이며, (따라서) 상황(Etat)의 발현이자 연장으로 간주될 수 있다. 자본주의는 사실들(les faits)이 엄청난 축적에 지나지 않는다... 반면 코뮤니즘은 전혀 다른 본질의 것이다. 왜냐하면 코뮤니즘은 사실들의 편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건들의 편에 있기 때문이다. “나는 특정한 상황에 대해 존재하는 신체들(corps)과 언어들의 일반적인 배치 속에서 발생하는 단절을 사건이라고 부른다고 바디우는 단언한다. 그리고 또한 사건은 새로운 가능성들의 창조이다”.

 

행간을 통해, 바디우가 레닌을 마르크스에 맞서게 한다는 점을 이해해야만 한다. 국가(L’Etat)와 혁명 : 이는 레닌이 쓴 책의 제목이며 바디우는 이 제목을 자신의 방식대로 재해석한다. 왜냐하면 국가와 혁명이라는 제목은 문제를 완전하게 지적한다는 장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한쪽에는 상태(혹은 국가, 프랑스어에서 Etat국가상태양자 모두를 지시할 수 있다 : 역자), 사실들의 질서, 다시 말해 자본주의가 있다. 다른 쪽에는 혁명, 다시 말해 사건 그것으로부터 진리의 공정(une procedure de verite)이 개시되는-, , 경제적, 사회적 재조직이 있다. 그것의 예들? 바디우는 1792-94년에 존재했던 공포정치 하에서의 프랑스 혁명, 1902-17년에 러시아에 존재했던 볼셰비즘을 내세운다. 하지만 그가 볼 때 이 두 가지 진리의 공정 1965-68년 사이에 중국에서 있었던 프롤레타리아 문화 대혁명의 필적할 수 없는 미덕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단순해 보이는 외관 밑에서, 알랭 바디우가 코뮤니즘의 이념을 사건에 대한 자신의 고유한 철학에 엮는 방식은 대단한 효율적인 수사학적 장치를 창조해내고 있다.

 

실제로 바디우에게 있어, 코뮤니스트가 된다는 것은 어떤 정당이나 특정한 정치체제에 가담하는 것이 아니라, “집단적 해방을 향한 인류의 행진에 참여한다는 것을 뜻한다. 다시 말해, 코뮤니즘은  -그것이 구체적인 역사적 결과들을 가질 수 있긴 하지만- 결코 사실들로 환원될 수 없다. 또한 코뮤니즘은 그것이 참인지 거짓인지를 결정하기 위해 우리가 평가해볼 수 있는 단순한 이론 역시 아닌 것이다.

 

그 복잡다단한 성격 상, (바디우의: 역자) 코뮤니즘은 이론적 측면에서든 실천적 측면에서든 모든 비판의 시도들에서 빠져나간다. 이러한 점이 바디우로 하여금 -놀랄만큼 가벼운 방식으로- 진리의 이름으로 역사를 수정하는 것을, 로베스피에르를 예찬하는 것을, 또한 다음과 같은 말들 그것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할지, 아니면 부르주아들을 놀래키기 위한 것으로 여겨야 할지 알 수 없는-을 풀어놓는 것을 가능케 한다. “다음과 같은 사실을 말하는데 주저하지 맙시다. 흐루시초프가 행했던 개인 숭배” –스탈린과 관련한- 에 대한 규탄은 잘못된 것이며, 그 규탄은 민주주의라는 허울 아래 우리가 이후 몇 십년간 목도해 온 코뮤니즘 이념의 약화를 공표했다고 말입니다.”

 

마지막으로, 바디우의 코뮤니즘이 갖는 독창성은 그가 마르크스만큼이나 플라톤을 차용한다는 데 있다. (바디우는 플라톤의 국가(la Republique)”를 재번역하고 있으며, 이 책은 2010년에 꼬뮨(Du Commun(isme))”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될 것이다.) 바디우는 플라톤을 따라, “진정한 삶은 이념(l’Idee, 물론 플라톤의 이데아를 가리키기도 한다 : 역자)에 따른 삶이다라고 여긴다. 다른 측면에서, 바디우가 자본-의회주의혹은 현대의 민주주의적 유물론이라고 부르는 것의 특징은 우리에게 이념 없는 삶을 강요한다는 데에 있다. 이러한 점으로 인해 우리는 두 가지 진영 사이에 분할선을 그을 수 있게 된다 : 한편에는 우리의 민주주의적 시대의 유순한 소비자들 그들은 또한 지적 뼈대가 없는 상대주의자, 냉소주의자들이다이 있다. 다른 편에는 플라톤적인 철학자들과 코뮤니즘적 투사들 이념들을 위해 사는 법을 가르쳐주는- 이 있다.

 

<재활용과 자기모순>

 

바디우와 함께, 런던의 청중들이 대단히 기대했던 강연은 슬라보예 지젝의 강연이었다. 하지만, 코뮤니즘에 대한 지젝의 정치적 입장은 꽤 모호한 상태로 남아있다. 그 특유의 능숙한 솜씨로, 지젝은 그의 두 가지 주된 글쓰기 방식에 따라 그의 강연을 구성했다 : 첫째로, 재활용. 지젝은 그의 글 어째서 냉소주의자들은 오류를 범하는가와 그의 책 잃어버린 대의를 위하여의 아홉번째 장에서 그가 쓴 내용들을 대부분 반복했다. 둘째로, 자신의 앞선 저작들에서 정식화되었던 진술들을 부정하기. 이는 지젝이 갖고 있는, 놀랄만한 지적 진보의 재능을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그가 레닌에 대한 그의 책에서 코뮤니즘은 대안의 구상을 생각하기 이전에- 우선 혁명적 폭력의 분출을 통해 지배적 시스템과 그 상징적 질서에 대한 파괴를 수행해야 한다고 단언했다면, 런던에서의 지젝은 완전히 다른 전략을 그려 보였다. 자본주의는 자신에 대한 비판을 흡수하고 심지어 그것으로부터 양분을 얻기까지 한다는 판단에서 출발하여, 지젝은 체제를 내부로부터 좀먹으며 결국 체제를 내파시키게 될 전복적 관념들을 퍼뜨리는 것 이 방법은 공포정치의 과잉을 피할 수 있다는 데 있다을 제안한다.

 

불행하게도, 테르미도르 8일에 있었던 로베스피에르의 유명한 연설처럼, 이 슬로베니아 철학자의 발표는 구체적인 세부사항들을 다루지 않았으며, 따라서 그와 같은 전복적 방법들이 어떻게 고안될 수 있는지, 어떻게 그것들이 자본주의의 모순을 자본주의의 파괴로까지 이끌 수 있을지를 이해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이 사흘 간 제시된 모든 주제들을 하나의 기사에 요약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자크 랑시에르의 강연은 다른 이들과 거리가 있는 접근방식으로 인해 뚜렷이 구별되었다는 점은 말할 수 있다. 랑시에르는 먼저 그가 코뮤니즘의 이념에 대해 두 가지 긍정적인 측면을 고려하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 강연을 시작했다. 하나는 평등과 관련된 가치들, 다른 하나는 해방과 관련한 가치들이 그것이다. 뒤이어 랑시에르는 역사적 코뮤니즘, 즉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진정으로 이와 같은 가치들을 촉진하는 최상의 방법이었는지를 자문했다. 랑시에르에 따르면, 코뮤니즘의 역사는 우리에게 어떻게 강력한 당과 국가 제도들을 건설하는 것이 가능한지를 가르쳐 주었지만, 그 본래의 약속은 거의 지키지 못했다. 평등과 해방은 아직도 달성해야 할 목표들로 남아있다는 것이다.




 

 

<어떻게 과거로부터 벗어날 것인가?> 


공산주의(코뮤니즘)가 보편적으로 숭배되는 이념으로서 현존했고, 자본주의가 궁극적 악으로 통하던 나라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삶의 반절을 보낸 (나 같은) 사람에게 있어, 이 학술회의의 가장 큰 불충분함은 실제로 존재했던 정치체제로서의 코뮤니즘에 대한 심화된 분석이 부재한다는 것이었다.

 

이와 같은 결점은, 슬라보예 지젝이 토론의 시작을 알리면서 했던 말 -“극좌는 보수주의자들이나 자유쥬의자들보다 공산주의 정당들의 역사적 실패에 대한 더 나은 설명을 전개할 수 있어야 한다” – 을 생각해 볼 때 더욱 심각해 보인다. 하지만 이 강연들과 토론들은, 1917 10월 혁명과 1990년의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승리 사이의 기간 동안 어떤 중요한 일도 없었던 것 같은 인상을 주었다.

 

물론 가슴을 치며 고해성사를 하라거나, 스탈린주의의 죄들을 뉘우치라는 것이 아니다. 이 콜로키엄의 참여자들 중 그 시기의 공산주의 권력 기구들에 참여했던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연구자들과 이론가들이 20세기의 한복판에 존재했던 프롤레타리아의 해방을 위한 실제적 정치들의 실패보다, 루소가 마르크스에게 끼친 영향이나, 1791년의 아이티 혁명 또는 공산주의 혁명에서 볼 수 있는 자코뱅적 요소들의 존재 등에 더 많은 관심을 쏟았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소비에트 연합에서 벌어졌던 일들이 마르크스적 전제들과 거리가 먼 캐리커쳐에 불과했다 하더라도, 그 재앙은 현재까지도 모든 정치적 유토피아에 대항하여 내세워지는 주요 논거로 남아 있다. 마찬가지로, 지난 세기에 러시아와 중국에서 있었던 거대한 비극들을 해명하는 일은 미래의 코뮤니즘을 위한 필수불가결한 서론일 것이다. 런던에서는 이러한 것들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세계를 변화시키기 위한 구체적인 방책이 전혀 없는...>

 

콜로키엄의 마지막에, 철학자들은 그들 모두가 동의한 두 가지 결론을 제출했다. 첫째,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은 없지 않다. 둘째, 코뮤니즘적 프로젝트는 그 단어의 나쁜 의미에서- 유토피아적이지 않다, , 불가능하지 않다. 자본주의가 반드시 위기를 겪으며 그 위기에서 코뮤니즘이 발생한다고 보았던 마르크스와 달리, 이 학술회의의 참여자들은 코뮤니즘을 하나의 선택으로, 여러 사회들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하나의 선택으로 간주하는 것 같았다.

 

슬라보예 지젝은 심지어 다음과 같은 생각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 역사는 코뮤니즘적 투쟁에 대해 적대적이었으며, 역사의 자연적 운동은 우리를 권위주의적 자본주의 전 싱가포르 총리인 리콴유에 의해 이루어진 것과 같은- 로 이끌어갈 위험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결론은 약간 실망스러운 것으로 보이는데, 왜냐하면 런던에 모인 위대한 지성들이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라는 슬로건 이상의 개념적 중요성을 가진 최종적 선언을 정식화하는 데 성공하지 못한 것 같아 보이기 때문이다.

현대의 철학적 지성들의 정상회담 자리에서 위와 같은 슬로건이 표명되었다는 것은 분명히 상징적 중요성을 갖는다. 특히 런던의 금융 중심지에 위치한 몇몇 지하철 역에서는 그랬다. 하지만 현재의 위기를 사고하기 위한,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 더 구체적인 방법들을 찾기 위해서는 어떠한 노력도 전개되지 않았다.

 

이는 마르크스 학술회의장에서 멀지 않은, 런던의 하이게이트 묘지에 묻혀 있는- 의 유명한 언급과 어긋나지 않는다. “철학자들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세계를 해석해왔을 뿐이다.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 이언 소바 (Jan Sow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