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 인화리 가는 길
- 2016년 벌초여행 -
강화도에 벌초하러 갔습니다.
여러개의 고속도로를 차에 떠밀려서 갑니다.
김포에서 48번 국도로 들어섰어도 길은 이미 차에 갇혀있습니다.
강화읍을 지나서야 좀 한가해졌고
송해면을 거쳐 하점에 들어서니 두어대의 차량만 달립니다.
그러다가 민통선을 지나 배우개를 넘어서는 길에서는 나 혼자 달립니다.
인화리의 국회연수원길을 올라가면 외할머니가 흙 속에 홀로 묻혀계십니다.
보통은 외손자로서 외가댁 산소를 벌초하진 않지만
나주 나씨 집안의 맏이인 어머니 때문에라도 올해에도 제가 하기로 생각해서 그리 했을 뿐입니다.
잠시 북한땅을 바라보곤 인화리 끝자락에 계신 본가 벌초대열에 합류합니다.
산소 주변은 택지개발로 인해 어수선한데 묘지 위의 돌이 무너져내려서 그들이 대충 정리한 상태였습니다.
우리 할아버지 아버지 작은할아버지 작은 할머니 네 분이 계신 곳이어서 우리에게는 매우 특별한 곳이죠...
묘지 건너편에는 여전히 산을 갉아먹는 석산이 흉뮬스럽게 자리하고 있고, 교동으로 넘어가는 다리가 이젠 새로운 풍광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벌초 뒤 친척들과 이른 점심을 먹은 후에 다시 집으로 가는 길을 떠났습니다.
올 때와는 다른 길인 강화도 북쪽 도로로 접어들었습니다.
가다보니 한국 개신교에서 특별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교산교회를 마주하게 되는데,
그 옆쪽인 묵골 마을이 또한 어머니의 고향이어서 이 교회가 매우 각별하게 다가옵니다.
아래 사진이 어머니께서 태어나셔서 시집가기 전까지 살던 집입니다.
너무나 오래 전에 떠난 곳이어서 이렇게 멀리서 사진만 찍었습니다.
그렇게 좀더 가다보면 왼쪽편에는 북한땅을 보며 얼마간 계속 가게 됩니다.
지금껏 숱하게 보던 장면이건만 볼 때마다 마음이 짠하게 남는 걸 느낍니다.
송해면에 도착하고보니 우선 송해초등학교가 보입니다.
제가 2학년 1학기까지 다니던 곳이어서 매우 각별합니다.
이전에는 정문이 남쪽 중앙이었던 것 같은데, 이 사진은 동쪽으로 난 교문을 찍은 것입니다.
송해면에 왔으니 제가 태어난 집을 그냥 지나치질 못하겠더군요.
솔정리의 이 집을 떠난지가 벌써 50년을 지나는 상황인데도 겉으로는 옛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느낌입니다.
정말로 마음이 짠해서 걸음이 떨어지질 않더이다.
아, 그때가 너무 그립습니다...
그리고 고향집 근처의 고모님댁으로 갔더니 그 형제들이 엄청 반기지 뭡니까...?
얼마나 고맙고 기쁘던지요.
주말마다 내려와서 자신들이 농사지은 옥수수를 나눠먹으며 지난 얘기들을 한참이나 풀어냈습니다.
대부분 30년 정도만에 만났으니 그 기쁨은 이루 말할 길이 없었습니다.
이제는 방향을 대산리를 거쳐 강화읍으로 돌리니 모교인 강화중학교가 나나타더군요.
이 또한 아주 오랜만에 보는 거라 감개무량...
그 옆에는 새로 만들어낸 강화 동문이 있는데, 얼마나 제대로 고증을 해서 지었는지 의문이었습니다.
워낙 대충 대충 짓는지라 드는 아쉬움 때문에...
일년에 한번 벌초 할 때만 잠시 다녀가는 고향지만
태어난 집을 가보고, 고모님네 형제들을 만난 올해의 강화도행은 대단히 기쁜 일정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다시 길을 나서야 했습니다.
현재 살고있는 괴산 동막골로 돌아와야 했지요...
그게 또한 저의 본래 삶이니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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