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article.joins.com/article/article.asp?total_id=2344520
`보조금 없앤 뒤 빚 탕감해 줘 농민 8만 명 중 1%만 농사 포기` [중앙일보]
짐 서튼 국무장관
짐 서튼(사진) 뉴질랜드 국무장관은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농업 개혁의 경험을 이같이 설명했다. 서튼 장관은 농민 출신 국회의원. 1963년부터 농사를 지었다. 84년 와이타키 지방에서 출마해 의원이 됐다. 이후 6년간 의회에서 노동당 정부의 농업 개혁을 도왔다. 90년과 99년에는 농업부 장관으로, 2002년에는 임업부 장관으로 농정을 직접 책임지기도 했다. -급진적인 농업개혁을 단행하면서 정치적으로 어려움은 없었나. "84년 집권한 노동당은 중도 좌파 정권이었다. 농업개혁은 정부 지원을 없애고 농업을 시장에 맡긴다는 측면에서 우파적인 정책이었다. 따라서 노동당이 이를 추진하는 걸 우파인 야당이 반대하기 어려웠다. 6년간 개혁에 따른 부담 때문에 90년 노동당은 선거에서 졌다. 이어 집권한 국민당 정부는 노동시장 개혁을 강력히 추진했다. 이로써 개혁은 정파를 초월해 이어졌다." -농민의 반발은 없었나. 정부는 어떻게 설득했나. "물론 대규모 농민 시위가 있었지만 과격하지는 않았다. 총리 전용차의 라디오 안테나를 꺾어 버리는 정도였다. 보조금을 없애는 대신 수입규제도 함께 풀어 농민이 필요로 하는 수입 농기계나 생활필수품 가격을 확 낮췄다. 이 조치가 농민의 불만을 어느 정도 무마했다. 실제로 개혁 이전 뉴질랜드에도 자동차회사가 있었지만 수입 규제가 없어지자 대부분 도산했다. 이를 통해 개혁의 고통을 농민만 겪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농민도 받아들였다." -뉴질랜드 농민도 부채가 많았는데 어떻게 해결했나. "보조금을 없앤 뒤 농가 부채를 구조조정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농사를 지어 빚을 갚을 수 없는 사람의 부채 탕감 조치였다. 물론 부당 지원을 막기 위해 재산을 엄격하게 조사했다. 정부는 애초 농민의 10% 정도는 농업에서 퇴출당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부채 구조조정 후 8만 명의 농민 가운데 1%인 800명 정도만 농사를 포기한 것으로 조사됐다. 그만큼 농민 스스로 뼈를 깎는 자구 노력을 했다." |
2006.07.05 04:44 입력 / 2006.07.05 06:5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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