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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이야기/사회

홉스봄과 격동의 19세기(조용욱)

by 마리산인1324 2007. 1. 10.

 

<진보평론>  제3호

http://jbreview.jinbo.net/

2003-02-16 19:46:14

 

 

주제서평/ 홉스봄과 격동의 19세기


 
조용욱(국민대교수 국사학과)

[서평 대상서적]
E.J. Hobsbawm,
The Age of Revolution, 1789-1848 (New York: Mentor Book, 1962)
The Age of Capital, 1848-1875 (New York: Mentor Book, 1979)
The Age of Empire, 1875-1914 (New York: Pantheon Books, 1987)


I

프랑스혁명의 발발에서 1차세계대전의 시작에 이르는 이른바 ‘긴 19세기’는 서양사에서 흔히 ‘저항의 세기’, ‘혁명의 시대’, ‘자본의 시대’, ‘민족주의의 시대’, ‘자유주의의 시대’ 등으로 불리어 왔다. 이러한 성격규정의 핵심에는 산업자본주의의 등장과 확산이라는 거대한 역사적 변동이 자리잡고 있다. 즉, 19세기를 통하여 서양사회는 자본주의적 산업화를 중심으로 하여 생산과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와 사회, 그리고 과학과 예술에 이르는 삶의 모든 분야에서 급격한 변화를 겪었다. 이 격동의 세기는 또한 ‘근대성’(modernity)을 본격적으로 발현시킨 시점으로 간주되어 왔다. 산업주의, 국민국가, 진보, 합리성 등의 핵심적 개념을 바탕으로 한 ‘근대성’은 이후 20세기를 통하여 서양, 나아가 전 지구적 삶을 규정하고 주도하였다. 더욱이 ‘근대성’과 ‘탈근대성’(post-modernity)을 둘러싼 근래의 논쟁은 우리들로 하여금 ‘근대성’의 발원지인 19세기를 다시 한번 되돌아보고 음미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 서평에서 살펴보게 될 19세기에 대한 홉스봄의 삼부작만큼 이러한 회고의 작업에 적절한 저술은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주)

*주) 이 삼부작은 한국어로도 번역되었다. ꡔ혁명의 시대ꡕ 정도영, 차명수 옮김, 한길사, 1998; ꡔ자본의 시대ꡕ 정도영 옮김, 한길사, 1998; ꡔ제국의 시대ꡕ 김동택 옮김, 한길사, 1998. 이 서평에서 필자는 영어 원본을 참조하였으며, 인용문과 쪽수가 제시될 경우 이것에 근거한 것이다. 그리고 The Age of Capital, 1848-1875은 원래 1975년에 나왔는데, 이 서평에서 사용된 것은 1979년의 “Mentor Book” 판이다.

홉스봄의 저작을 살펴보기 전에 우선 그의 지적 역정을 간략하게나마 살펴보자. 홉스봄은 1917년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출생했다. 그의 어머니는 유복한 오스트리아의 중간계급 출신이었고 그의 아버지는 러시아령 폴란드에서 영국으로 이주한 유태인 집안의 아들이었다. 파시즘과 나찌즘의 대두를 목도하면서 청년기를 보내게 된 그는 일찍부터 급진적 정치의식을 키우면서 영국공산당에 가입하여 진보운동에 투신하였다. 켐브리지 대학에서 역사학을 공부한 그는, 힐(Christopher Hill), 힐튼(Rodney Hilton), 톰슨(Edward Thompson) 등과 함께 영국공산당 내에 ‘역사가 그룹’(Historians' Group)을 만들어 역사연구와 역사서술을 통한 급진운동을 전개하였다. 이들에게 있어 역사란 단순히 지적 호기심의 충족을 위한 작업을 넘어 사회적, 정치적 운동의 성격을 띤 노력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의 역사연구가 조야한 정치선전으로 타락하지는 않았다. 이들이 주축이 되어 1952년에 창간된 Past and Present가 서양 역사학계에서 최고 학술지의 하나로 인정받고 있는 사실은 이들의 역사가적 태도와 탐구가 어떤 수준인가를 단적으로 잘 증명하고 있다. 이들은 80세가 넘은 고령에도 불구하고 활발한 연구활동을 계속하고 있으며, 명실공히 영국을 대표하는 맑스주의 역사가들이다.*주)

*주) 톰슨은 1993년 8월에 69세를 일기로 작고하였다.

그러나, 영국사를 집중적으로 연구한 힐, 힐튼, 톰슨과는 달리,*주) 홉스봄은 근대영국의 노동사를 탐구하면서도 동시에 19, 20세기의 유럽사, 나아가 세계사적 흐름을 폭넓게 파악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왔다. 노동자와 하층민 그리고 저항운동에 대한 그의 관심은 Labour's Turning Point, 1880-1900(1948), “Fabianism and the Fabians, 1884-1914” (켐브리지대학 박사학위 논문, 1950), Primitive Rebels(1958), Labouring Men(1964), The Bandits(1969), Revolutionaries(1973), Worlds of Labour(1984) 등에서 잘 표현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가 제시하거나 연구한 개념들­예를 들어, 노동귀족 (labour aristocracy)의 개념­은 영국노동사에서 중요한 논쟁을 불러 일으키고 핵심적인 연구주제를 설정해주는 선도적 역할을 했다. 이와 더불어, 1950년대에 홉스봄은 이미 19세기 유럽사, 나아가 세계사를 산업자본주의의 대두와 확산을 중심으로 서술하려는 구상을 하였다. 이 계획의 완성에 30여 년이 소요되었고, 그 결과 이 서평이 다룰 ‘기념비적인’ 삼부작이 나오게 되었다. 또한, 소련과 동구권의 몰락에 이은 국제정치의 지각변동이 한 시대의 획을 그었다는 판단 아래, 홉스봄은 1990년대 초에 The Age Extremes, 1914-1991(1994)을 발표하였다. 이 책은 다소 성급하게 구상되고 서술된 것처럼 보이는데, 그럼에도 그의 다른 연구와 마찬가지로 20세기 역사를 세계사적 관점에서 조망한 역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더 최근에 홉스봄은 그의 역사관을 정리한 on History(1997)를 출간하였다.

*주) 힐튼은 중세, 힐은 17세기, 그리고 톰슨은 18세기와 19세기 초를 심층적으로 연구하여 왔다.

II

19세기에 대한 홉스봄의 삼부작을 개별적으로 음미하기 전에 이들 세 책에 공통되는 특징을 간략히 살펴보자. 첫째, 홉스봄은 너무 세분화되고 전문화되는 역사연구의 경향에 우려를 표명하면서 전체적인 비교와 종합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또 전문 역사가가 아닌 교양있는 일반인을 위한 역사서가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홉스봄이 겨냥하는 독자는 “과거에 관심이 있을 뿐만 아니라 세계가 어떻게, 왜 오늘과 같은 상태에 이르게 되었으며 또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이해하고자 하는 지성있고 교육받은 시민”이다(The Age of Revolution, xv). 사실 이러한 종류의 역사서를 서술하는 데는 많은 언어를 자유롭게 구사하고 엄청난 기존 연구서를 소화할 능력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실들 간의 연관성을 추적해내고 설정할 수 있는 역사적 상상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역량은 분명 홉스봄과 같은 소수의 지적 엘리트에게 속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마도 이제까지 이러한 종류의 역사서가 별로 없었을 것이다.
둘째로, 이 삼부작은 서술의 구조와 구성에서 하나의 일관성을 보여주고 있다. 홉스봄은 사회사란 사회 전체를 다룬다는 의미의 ‘사회의 역사’(history of society)이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기술과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와 문화의 여러 분과들을 종합적으로 취급하고 있다. 그런데 그는 이러한 부분들의 서술에 있어 경제적 측면에 우선적 중요성을 부여하고 있다. 세 책은 따라서 경제적 변화를 제일 먼저 취급하고 다음으로 이것이 갖는 정치적 의미를 다루고, 마지막으로 예술과 과학을 포함한 사회문화적 측면을 서술하는 순서를 공통적으로 취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마지막으로, 홉스봄의 삼부작은 맑스주의적 시각에서 서술되었지만, 무미건조한 ‘경제적 결정론’과는 거리가 멀다. 경제적 측면에 중요성이 부여되지만, 이것에 의한 다른 측면의 자동적이고 무조건적인 결정이라는 관계는 설정되어 있지 않다. 즉, 삼부작의 전편에 걸쳐 사회의 각 부분이 갖는 ‘자율성’과 ‘내적 동력’이 상당하게 인정되고 있다. 이와 더불어, 1960년대 이후 유행한 사회사의 성과­예를 들어, 노동과정과 지역공동체의 변모에서부터 가족경제와 성적 관념의 변화에 이르는 다양한 측면에 대한 연구­가 충실히 반영되어 있기 때문에 홉스봄이 제시한 그림은 다양하고 풍부한 색조를 담고 있다.

III

이제 홉스봄이 그린 19세기의 역사적 지형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먼저, The Age of Revolution은 영국의 산업혁명과 프랑스대혁명­근대의 이중혁명(dual revolution)­이 일어나 영향을 미친 1789-1848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중혁명은 신석기시대이래 “인간의 역사에서 일어난 최대의 변화로…전 세계를 변모시켜 왔으며 앞으로 계속 그러할 것이다.” 그런데, “이 혁명은 단순히 산업의 승리가 아닌 ‘자본주의적’ 산업화의 승리였으며, 평등 일반의 승리가 아니라 ‘중간계급’ 또는 ‘부르주아 자유주의’ 사회의 승리”를 의미하였다. 이 두 혁명이 일으킨 격동의 파문은 곧 전 세계로 파급되었으며, 1848년이 되면 “그 무엇도 서양 자본주의의 행진에 제동을 걸 수 없게 되었다”(pp. 17-19).

이렇게 이중혁명의 전반적 성격을 진단한 후, 홉스봄은 이중혁명의 진행과정과 이것이 가져온 영향을 두 부분으로 나누어 고찰하고 있다. 영국의 산업혁명은 영국이 갖고 있던 여러 ‘상대적 이점들’이 합류하여 일어났는데,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진행된 이 산업화가 만들어낸 “역사상 최초의 산업경제는 오늘의 기준에서 보면 소규모적이며 낙후된 것이었고, 이 때문에 영국경제는 오늘날까지도 영향을 받고 있다.” 그러나 “1848년의 기준에서 보면 이 최초의 산업경제는 엄청난 것이었다”(p. 72). 한편, 프랑스혁명은 근대의 혁명들 중에서 가장 큰 영향을 행사한 것으로, 그것의 진행과정에서 평등과 자유 그리고 동포애를 핵심적 화두로 부각시킴으로써 19세기를 풍미한 자유주의와 민족주의 그리고 급진 민주주의의 밑거름을 제공하였다. 그리고 프랑스혁명의 와중에서 일어난 장기간의 전쟁은 참전국들 모두의 경제를 괴롭혔지만, 영국 이외의 국가들에게 상대적으로 더 큰 타격을 줌으로써 결국 종전이 되었을 때, 영국경제는 더 유리한 입지를 확보할 수 있었다(제3, 4장). 프랑스, 독일, 미국 등의 산업화는 여러 상이한 특징을 배경으로 진행되었으나,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후발 산업국으로서 어느 정도 국가간섭에 다같이 의존하였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불균형적인 산업화와 이에 따른 선진국과 미개발국간의 구분만큼 이후의 세계사에서 더 크고 항구적인 영향을 남기게 된 현상은 없었다(p. 217). 토지 또한 산업화에 의해 심대한 영향을 받았는데, 전(前)자본주의적 지주와 농민들이 겪은 변화는 지역에 따라 차이가 많았다. 잉글랜드와 아일랜드 그리고 인도의 농민들이 가장 열악한 상황을 맞이하게 된 반면, 프랑스의 농민과 미국의 농부는 상대적으로 나은 형편에 처하게 되었다(p. 200).

이중혁명은 전통적 귀족에도 적지 않은 충격을 주었고, 새로운 계서적 사회가 ‘형식적 평등’(formal equality)에 기초하여 재편되었으며, ‘능력에 따른 직업 추구’의 개념이 점차 확산되었다. 이러한 변화에서 가장 이득을 본 집단은 부르주아지, 그 중에서도 유럽의 부르주아 유태인들이었고 이들은 당연히 새로운 질서를 가장 적극적으로 환영하였다(제10장). 또한 자본주의적 산업화의 과정에서 노동자들은 집단적 저항운동을 전개하였지만, 1848년까지도 이들은 프랑스혁명기에 ‘부르주아 자코뱅주의’가 보여준 수준의 지도력과 조직력을 갖게 되지는 못하였다(제11장). The Age of Revolution의 마지막 몇 장은 이 시대에 일어난 종교에서의 세속화 경향, 예술에서 특히 고전주의와 낭만주의가 미친 영향, 그리고 과학의 여러 분과들이 겪은 변화들을 날카롭게 분석하고 있다. 끝으로, 홉스봄에 따르면, 1840년대에 이르는 반 세기는 그 당시까지 일어난 변화 중 가장 혁명적 변화를 경험한 시기였으며, 특히 1846-48년의 경기침체로 인해 “1847년이 되면 혁명의 소리는 크고 가깝게 들리게 되었으며, 1848년에 혁명은 [마침내] 폭발하였다”(pp. 361-362).

삼부작의 두번째인 The Age of Capital은 영국에서 발전된 “자본주의의 지구적 지배”가 이루어진 시기인 1848-75년을 다루고 있다. 이 시기는 부르주아의 득세가 거역할 수 없는 대세로 확립되고 “시대의 핵심 단어인 진보”의 드라마가 전개된 때였다. 홉스봄은 “이 시대가 이룬 엄청난 물질적 성취”를 인정하면서도, 이 시대에 대한 자신의 혐오감을 숨길 수 없다면서 자신이 취급할 주제에 대한 편견을 솔직히 토로하고 있다(xiii). 부르주아적 질서의 여러 면모에 대한 이러한 태도와 더불어, 이 책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예를 들어 마찌니(Giuseppe Mazzini)나 프루동(Pierre-Joseph Proudhon) 등­에 대해서도 홉스봄은 비판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이 책의 전편에 걸쳐 저자가 가장 우호적인 평가를 하는 인물은 맑스이다. 이 책의 제목을 맑스의 ꡔ자본ꡕ(Das Kapital)에서 따왔다고 저자 자신이 인정하고 있고, 또 여러 곳에서 저자는 자신의 논거를 강조할 때 “맑스가 늘 통찰력있게 관찰하였듯이”라는 구절을 쓸 정도로 맑스는 이 책에서 거의 유일하게 저자가 신뢰하는 인물처럼 보인다. 그러나, 홉스봄의 우호적 시각이 ‘교조적이고 무미건조한’ 맑스보다는 ‘인간주의적’ 맑스에 집중되어 있는 것도 주목할만한 특징이다.

19세기 중엽의 자본주의적 번영과 안정은 또 하나의 큰 혁명을 전주곡으로 하여 시작되었다. 1848년의 프랑스 2월혁명에 의해 촉발된 ‘민중의 봄’은 단명하였지만, 향후 유럽의 엘리트로 하여금 ‘민중의 정치학’에 관심을 쏟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기존 질서의 수호를 위해 하층민의 요구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 것인가를 지배 엘리트들이 고심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도래하였다. 제1장에서 이 혁명의 과정을 간명하게 서술한 저자는, The Age of Revolution에서와 마찬가지로, 이하의 지면을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 그의 주제를 다루고 있다. 먼저 경제의 발전과 이에 수반된 정치적 변화가 여덟개의 장(제2-9장)에서 취급되고 있으며, 나머지 일곱 장 (제10-16장)에서는 사회계급들의 특성과 관계, 종교와 이념, 과학과 예술이 다루어지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이 시기의 경제가 갖는 가장 큰 특징은 ‘지역적’ 경제에서 ‘지구적’ 경제로의 전환이었다. 1850년대의 유례없는 경제적 호황과 팽창은 재화의 교환체계를 유럽의 중심부에서 전 세계로 확산시켰다­“상호관련된 단일 경제로의 통합이야말로…산업화의…가장 극적인 모습이었다…이제부터 역사는 세계의 역사가 되었다”(pp. 46-47). 경제적 변화와 발맞추어 정치적 변모도 따랐다. 동포애와 민족의 기치 아래 새로운 국민국가의 건설과 지역적 통합이 “부르조아적 자유주의의 틀 내에서” 활발히 추진되었고(제5장), 하층민들의 이익을 반영하기 위한 밑으로부터의 압력이 증대하면서 근대적 급진운동이 여러 갈래의 이념적 조류를 타고 전개되었다. 1871년 봄의 파리코뮌은 이러한 요구의 가장 극적인 표현이었다(제6, 9장). 국제적으로 볼 때, 이러한 경제와 정치의 격동 속에서 패자와 승자의 명암이 분명히 갈렸다. 자본주의적 세력의 희생물이 된 대표적인 예는 이집트, 인도, 중국이었고 미국과 일본은 승자의 대열에 합류할 수 있었다(제7, 8장).

이 시기의 경제와 정치에 대한 저자의 서술은, 여러 곳에서 날카로운 분석력과 통찰력을 보여주지만, 크게 보아 전통적 틀을 벗어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경제와 정치 의외의 영역에서 일어난 변화를 취급한 후반부는, 이 책이 출판된 당시의 기준에서 보면, 새로운 사회사의 연구성과를 잘 정리하면서 매우 흥미로운 읽을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토지가 갖는 사회경제적, 정치적 의미의 변화, 국제적 이민의 형태, 노동계급과 도시공동체의 구조적 변화, 부르주아 가족의 특성, 과학과 예술 그리고 이념체계의 변모와 특징 등이 간결하면서도 생동감 있게 묘사되고 있다. 이 중에서 특히 흥미로운 것은 부르주아 가족의 특성이었다. 홉스봄에 따르면, 부르주아 가족은 매우 이율배반적인 성격을 띠고 있었는데, 왜냐하면 부르주아 가족의 구조와 이것을 떠받치는 가치가 부르주아 사회가 공식적으로 추구하던 것과 정면으로 배치되었기 때문이다. 부르주아 가족이 기초한 ‘가부장적 독재’와 ‘계서적 질서’는 바로 부르주아가 공공연하게 비난하고 제거하려던 속성이었다(제13장). 이와 더불어 저자는 부르주아의 성도덕에 대한 흥미로운 특징뿐만 아니라, 노동자들의 세계, 특히 그들의 일상생활과 가치체계가 갖고 있던 복잡 다기한 성격도 잘 지적하고 있다.

19세기 중엽을 풍미한 산업자본주의의 번창과 승리, 그리고 이에 기초한 진보에 대한 믿음은 ‘대불황’(Great Depression, 1873-96)의 그늘과 함께 심각하게 흔들리게 되었다. 이 경기침체가 일시적 막간극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그 당시에는 물론 가능하였다. 그러나 역사는 이러한 생각이 단지 희망일 뿐이었다는 사실을 증명하였다(p. 342).

삼부작의 완결편에 해당하는 The Age of Empire는 책의 구성에서 보면 이전의 두 권과는 달리 부별(The Age of Revolution은 2부, The Age of Capital은 3부)로 나뉘어져 있지 않다. 그러나 책의 서술이 경제적 변화에서 출발하고 있다는 점은 이전과 동일하다.

The Age of Empire가 다루는 1875-1914년의 기간에는 한편으로 부르주아적 발전이 더 강화되는 경향이 분명히 보였다. 세계인구뿐만 아니라 경제의 외형적 규모는 증대일로에 있었고, 교환과 거래의 체계는 훨씬 더 정교하고 급속히 세계를 통합해 나갔다. 진보에 대한 믿음이 완벽한 현실로 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러한 진보에 심각한 의문이 동시에 제기되었다. 경제적으로 ‘대불황’은, 총 생산량의 전반적 증대에도 불구하고, 이윤율과 취업률, 이자율과 물가의 장기적 정체 내지는 하락을 초래하면서 자본주의의 중심부에 어려움을 주었다. 이와 더불어, 도대체 무엇 때문에 물질적 진보가 추구되어야 하는가라는 의문이 이미 1870년대에 본격적으로 제기되기 시작하였고, 이러한 의문이 비관과 저항으로 발전되는 상황도 도처에서 일어났다. 이러한 의문과 비관은 자신감과 믿음을 압도하면서 결국 1차대전의 포화 속에서 유럽 중심의 ‘아름다운 부르주아 세기’를 결정적으로 변화시켜버렸다(서언, 제1, 2장).

19세기 말과 20세기 초를 휩쓴 제국주의의 열풍은 복합적 요인들의 산물임이 분명하지만, ‘대불황’에 수반된 국제적 경쟁과 보호무역주의의 격화를 빼고서는 이해되기 어렵다(제3장). 이러한 국제정치적 변화와 맞물려 국내정치에서도 대립과 불안이 고조되었다. 영국을 비롯한 중심부 국가들에서 정치적 민주화의 요구는 여러 사회세력들에 의해 다양하게 표출되었지만, 참정권의 확대를 통한 ‘대의 민주주의’가 새로운 정치질서의 기본적 틀로 정착되어 갔다. 그러나, 1930년대의 경험이 보여주었듯이, 이러한 틀의 미래가 완전히 보장된 것은 결코 아니었다(제4장). 또한 제국주의적 경쟁의 와중에서 강화된 호전적 민족주의는, 19세기 전반의 민족주의와는 달리, 자유주의와의 본격적 결별을 의미했고, 국내적 민주화에 큰 걸림돌이 되었다(제6장).

자본주의의 진전이 가속화됨에 따라 사회계급들의 정체성도 더 뚜렷해졌다. 숫적으로 증가한 노동자들은 자본의 힘에 맞서 산업과 정치에서 그들의 조직을 강화하고 투쟁을 확대해 나갔다. 불황의 타개를 위한 자본의 여러 경영정책은 노동으로 하여금 19세기 중엽과는 다른 차원의 노동쟁의와 정치투쟁을 하도록 만들었다. 노동조합의 외형적 증대와 조직상의 성숙, 그리고 노동자정당의 출현과 확산은 당연한 귀결이었고, 이러한 과정에 사회주의 이념의 여러 조류들­맑스주의, 사민주의, 프루동주의, 페이비언주의, 신디칼리즘­이 밀접히 관련되었다. 그러나 이 시기의 노동운동은 사회를 혁명적으로 바꿀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었지만, 동시에 이것을 저해하는 현실적 요인들도 허다하였다(제5장).

한편, 사회의 주도적 세력을 형성한 부르주아도 계급적 정체성을 강화시켰다. 경제와 정치에서 그들의 영향력이 확대되었을 뿐만 아니라, 문화적 동질성도 제고되었다. 부르주아 계급의 충원과 내적 구조가 이 시기에 훨씬 복잡하게 되어 간단하게 설명될 수는 없다. 그렇지만 부르주아가 공통으로 추구하고 집착한 ‘생활양식’은 쉽게 확인될 수 있다. 첫째, 이들은 교양을 강조하는 중등교육과 대학교육을 이수하고, 둘째, 전통귀족과 구별되는 스포츠­골프, 자전거타기, 테니스--를 추구하며, 셋째, 교외 지역에 모여 살면서 그들만의 사회적 연대와 응집력을 증대시키려 하였다. 20세기 초에 부르주아의 사회적 지위와 문화적 정체성이 적어도 서유럽에서는 절정에 이른 것이 분명하였다(제7장). 그러나 이와 동시에 역설적이게도 부르주아는 “새로운…물질적 안락 속에서…그들의 역사적 사명을 상실”하여가고 있었다. 왜냐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그들이 19세기를 통해 줄곧 추구하고 강조하던 ‘이성과 진보, 자유와 민주주의’가 점차 설 땅을 잃어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p. 190).

부르주아의 계급적 특성과 관련하여 일어난 변화로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신여성’과 여권운동의 대두였다. 사무직 고용의 확대로 인한 여성취업의 증대나 피임법의 적용과 같은 기술적 발전은 중간계급 여성이 주도한 여권운동의 등장과 확산에 결정적이었다. 물론 1차대전 이전에는 이 운동의 현실적 성과가 크지는 않았지만, 미래의 초석을 다졌다는 의미에서 그 의의는 분명하였다(제8장).

삼부작의 첫 두권에서와 마찬가지로 홉스봄은 The Age of Empire의 마지막 부분으로 접근하면서(제9-11장) 지적 변화의 흐름을 예술과 가치체계뿐만 아니라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의 발전과 변모를 통해 탁월한 솜씨로 그려내고 있다. 제12장은 부르주아 세계의 중심부가 아닌 곳­러시아, 터어키, 멕시코, 인도, 중국--에 초점을 맞추어, 이들 지역에서 어떻게 사회적 모순이 격화되고 있었던가를 살펴보고 있다. 특히, 러시아의 상황은 ‘제국의 시대’에 표출된 모든 모순의 전형이었고, 러시아 사회의 붕괴와 혁명은 적어도 프랑스혁명에 필적하는 역사적 중요성과 폭발력을 지니고 있었다. 러시아혁명의 발발에 일조를 하고, 부르주아 유럽의 지배에 결정적 타격을 가한 것은 사라예보의 총성에 뒤이은 4년 간의 ‘총력전’이었다(제13장).

IV

홉스봄의 삼부작은 무엇보다 엄청난 분량의 이차적 자료에 기초하고 있다. 이와 같은 종류의 저술에는 사실적 오류와 과도한 일반화가 필연적으로 있게 마련이다. 본 서평에서 이것을 자세히 지적하는 일은 지면도 부족할 뿐만 아니라 바람직하지도 않다. 다만 필자는 홉스봄의 삼부작 중에서 서술과 논증의 미흡함이 두드러진 부분을 대표적으로 하나만 지적하고자 한다. The Age of Capital의 제2-3장은 19세기 중엽의 경제적 팽창과 이에 따른 세계경제의 통합을 추적하고 있는데, 제시된 자료가 저자의 주장을 충분히 뒷받침하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저자는, 1848년 이후의 변화를 설명하기에 앞서, 1848년 당시에 국제경제의 상태가 어떠했던가를 어느 정도 자세히 서술했어야만 했다.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 곧바로 수많은 통계자료가 제시되었기 때문에 이들 숫자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경제의 지구적 단일화와 통합으로 연결되었는지가 충분히 ‘입증’되지 못하였다. 또한, 금융의 기능에 대한 저자의 강조에도 불구하고, 금융시장의 이론과 실제에 대한 묘사와 설명은 매우 소략하다. 더욱이, 경제의 통합과 관련된 홉스봄 자신의 언급은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예를 들어, 제3장의 말미에서 그는 “1875년에도…대부분의 아시아와 아프리카 그리고 라틴 아메리카에는 지역적인 경제만 존재할 뿐”이었다고 주장하였다(pp. 70-1). 그러나 곧 이어 제4장은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시작된다­“1850년대의 대 호황은 역사가에게 지구적 산업경제와 단일한 세계사의 토대를 의미한다”(p. 72).

그러나 이러한 난점이 결코 홉스봄이 이룩한 성과를 퇴색시키지는 않는다. 또한 1960년이래 나온 여러 전문적 연구들이 홉스봄의 주장과 상치한다 하더라도 그의 저술이 갖고 있는 전반적 가치는 여전하다. 과연 어떤 역사가가 이 삼부작에서 다루고 있는 많은 지역과 언어를 홉스봄처럼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구사할 수 있고, 또 엄청난 분량의 정보를 이같이 제한된 지면 위에 그처럼 역동적으로 생동감있게 표현할 수 있을까? 현재에는 그러한 후보자가 없을 뿐만 아니라 가까운 장래에도 그 가능성이 많지 않다고 대답한다면 너무 비관적인 진단일까? 21세기의 문턱을 막 넘어선 지금, 특히 ‘탈근대성’의 논의가 분분한 상황에서, ‘근대성’의 진원지인 ‘긴 19세기’를 이 삼부작을 통해 되돌아보는 일은 분명 의미있는 일이다.
 

2003-02-16 19:46: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