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산, 2002.
1. 글을 시작하며
중국 공산당이 대륙을 통일한 1949년부터 한국과 중국이 수교를 맺은 1992년까지 한국에서 중국식 사회주의에 대한 연구나 평가는 맹목적으로 공산주의를 반대하는 틀 안에서 이루어졌다. 이런 상황은 한중수교 이후에도 계속 이어졌는데, 이철승의 연구는 이런 맥락에서 보면 진일보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철승은 1996년 「왕부지와 애사기 철학에 나타난 인식과 실천의 문제」라는 논문으로 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이번에 학위논문을 수정하고, 새로운 논문들을 덧붙여 『유가사상과 중국식 사회주의 철학』(이하 『중국식 사회주의』라 칭함)이라는 책을 냈다.
이철승은 『중국식 사회주의』에서 “중국인들의 내면에 자리하고 있는 유가 사상과 중국식 사회주의 철학의 관계를 규명할 것이다.”(7쪽)라고 하여, 글의 주제가 중국의 유가사상과 중국식 사회주의 철학의 관계임을 밝히고 있다. ‘중국의 유가 사상’도 오랜 기간 그 양과 질에 있어 만만치 않을 뿐만 아니라, ‘중국식 사회주의 철학’도 수많은 혁명적 실천과 이론적 투쟁을 거친 것이기에 ‘유가 사상과 중국식 사회주의 철학의 관계’를 규명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연구 작업임에 틀림없다.
이 책의 줄거리는 이미 장별로 서문(4-9쪽)에 밝혀져 있다. 여기서 나는 장별 소개 대신 『중국식 사회주의』에서 논의 대상이 될만한 것을 선별하여 다루고, 서평의 과정에서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다른 문헌도 논의의 대상에 포함시킬 것이다. 먼저 ‘문제의식과 방법’을 살펴보고, 논의의 쟁점으로 ‘유가사상과 중국식 사회주의 철학의 관계’를 다루며, 끝으로 ‘중국식 사회주의’의 문제를 간략하게 다루고자 한다.
2. 문제의식과 방법
이철승은 철학과 현실의 거리가 너무 멀다는 것이 심각하다는 문제의식을 지니고 있다. 그는 현실의 요구에 미치지 못하는 철학의 문제, 즉 철학의 무기력한 현상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중국을 실제로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관련 연구서가 많이 나오기를 학계에 기대하고 있다........(중략)...... 하지만 한국의 동양철학계에 종사하는 사람들 중 일부는 지난 수십년 동안 이러한 대중들의 바람과 달리 과거 지향의 연구에 만족하곤 했다.”(4-5쪽) 이렇게 그는 기존 학계, 특히 동양철학계의 문제를 ‘일부’ 동양철학 연구자의 과거 지향의 연구로 완곡하게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동양철학 연구자가 아닌 중국철학 연구자로 논의를 제한하여 말할 때, 중국철학 연구자의 ‘일부’가 아니라 ‘대다수’가 시대적 문제의식이 부족한 상황에서 ‘전근대’ 중국의 철학을 연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그가 한국의 중국철학 연구자들 가운데 어떤 사람이 “중국에 현대 철학이 없고 전통 철학만 있을 뿐”(5쪽)이라는 헛소리를 문제점으로 제기한 것은 정당하다.
그런데 이철승의 문제의식에서 주목할 사실은 ‘철학에 대한 규정’이다. 흔히 철학에 대한 규정 없이 철학의 논리를 전개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은 분명 잘못된 관행이다. 이런 점에서 그는 다른 철학 논의자들과 선명하게 구분된다. 그는 “철학을 시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사유 체계의 확립이자 실천 활동”(6쪽)으로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그는 철학을 좁은 의미의 학문적 연구활동에만 국한하지 않고, 시대적 문제와 긴밀히 연관된 이론적 작업이자 실천 활동으로 규정한다. 이렇게 철학을 규정할 경우, 기존 철학 연구자들의 각종 행태에 대해 비판할 수 있는 논리적 근거가 마련될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대부분 ‘시대적 문제’와는 동떨어진 관념의 유희에 깊이 빠져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대다수인 ‘그들’과 대비되는 ‘이철승’의 문제의식과 생각을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기 위해서는 방법론적 문제를 다룰 필요가 있다. 우선 그는 ‘전통’에 대한 입장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전통을 낡은 것으로 취급하여 무조건적으로 배격하는 행위에 동의하지 않지만, 현대의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통의 부활을 무비판적으로 강조하는 행위에도 동의하지 않는다.”(6쪽) 이것은 그가 ‘전통’을 비판적으로 계승하는 입장에서 전통과 현대를 포괄하려는 문제의식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래서 그는『중국식 사회주의』에 대해 “이 책은 전통 사상과 현대 사상 중 어느 한 부분만 중요하고 다른 부분은 중요하지 않다는 식의 논리에 동의하지 않고, 전통 사상과 현대 사상에 대한 연구가 모두 중요하다는 인식 아래 집필된 것이다.”(6쪽)라고 하여 다시 한번 비판적 계승의 입장에서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려고 한다. 나는 그가 앞에서 전제한 ‘무조건적으로 배격’하거나 ‘무비판적으로 강조’하는 ‘행위’에 대해 당연히 비판적인 입장에 있으며, 이런 전제하에서는 누구라도 그의 비판 계승의 논리를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비판 계승이라는 문제의식의 관건은 단순히 전통에 대한 입장 차이의 문제가 아니라 비판 계승적 방법이 실제로 얼마나 객관적이고 얼마나 논리적으로 전개되는가에 있다.
이철승은 본격적으로 논의를 전개하기 전에 자신의 방법을 좀더 언급하고 있는데, ‘역사의 발전’을 적극적으로 인정하는 상태에서, “필자는 ‘역사는 변화․발전한다’는 관점에서 비교 대상이 되는 내용들을 분석하고 평가할 것이다.”(7쪽)라고 한다. 그런데 방법론적으로 ‘역사의 발전’이란 방법은 ‘역사의 퇴보’라는 방법에 반대되는 것이다. 따라서 두 방법에 대해 반드시 비교하여 언급해야 하는데, 『중국식 사회주의』에는 선행연구들에 대해 여러 ‘경향’이나 ‘관점’들을 언급하고 있지만,(24-27쪽) 방법론적인 비교 고찰을 이론적 수준에서 충분히 다루지 않고 있다. 다시 말해 그는 선행 연구들이 기초하고 있는 방법들에 대해 어떤 방법론적 문제가 있고, 자신의 방법은 어떤 방법론적 문제의식을 지니고 있는지를 이론적 수준에서 철저하게 전개하고 있지 않은 것이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아마도 그는 역사 발전의 ‘관점’으로 ‘방법’의 문제를 대신하고 있는 듯하다. 나는 ‘입장’이나 ‘관점’도 수많은 방법론에 기반한 것이고, 문제의식은 그 방법론을 통해 구체적으로 전개된다고 생각한다. 이런 점에서 그가 ‘느슨한 관점’보다는 ‘팽팽한 방법’으로 문제의식을 구체적으로 전개했다면, 지금의 방법론적 논의가 보다 풍부해 질 수 있었을 것이다.
『중국식 사회주의』의 방법에 대해 이철승은 중요한 언급을 하고 있는데, 그것은 “주제 중심의 비교”(8쪽)다. 기존의 많은 중국 철학적 연구가 한 인물의 생애와 사상을 다루고 있는 현실에 비추어 볼 때, 그의 ‘주제 중심의 비교’ 방법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좀더 그의 방법을 살펴보자.
필자는 이 책의 구성적인 면에서 비교 대상이 되는 사람들을 장별로 분류한 다음, 마지막 장에서 결합시키는 방식을 택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 이유는 이러한 방식을 채택할 경우 비교 대상이 되는 인물을 파악하는 면에서는 일목요연하게 살펴볼 수 있는 장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제를 파악하는 면에서는 도식적이고 나열적이며 단조로워서 생명력이 결여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필자는 관련된 주제에 대해 비교 대상이 되는 이론들을 다각적인 면에서 자유롭게 분석하려고 한다. 왜냐하면 이러한 입체적인 분석 방법은 평면적인 분석 방법보다 주제와 논점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책의 구성을 주제 중심의 장과 절로 편성하고자 한다.(8쪽)
비교적 길게 인용한 이유는 방법론적으로 이 부분이 매우 중요한 고찰인 것에 비해 실제 내용 면에서 ‘주제 중심’의 방법이 철저하게 관철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확실히 글의 구성면에서는 ‘주제 중심’적 방법에 입각한 듯하다. 그러나 방법론적으로 ‘인물 중심’이 아니라 ‘주제 중심’이라고 한 그의 방법적 전제가 무색하게, 실제 내용에서는 매우 ‘인물 중심’적인 논의를 전개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중국식 사회주의』는 주로 ‘왕부지’와 ‘애사기’, ‘모택동’과 ‘등소평’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예를 들면 전체 6개 장 가운데 1장에서 4장까지는 주로 왕부지와 애사기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다루고 있으며, 5장과 6장은 모택동과 등소평을 비교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박사학위논문 자체와 새로운 덧붙이기 작업이 결합하면서 유기적으로 긴밀하게 연관되지 못한 것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가 한다.
3. 유가 사상과 중국식 사회주의 철학의 관계
이철승은 『중국식 사회주의』에서 전체의 개괄적인 내용을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필자는 여기에서 유가 사상 중 세계관의 측면에서 과학적인 관점을 비교적 많이 가진 것으로 평가되는 순자, 왕충, 장재, 왕정상, 왕부지로 이어지는 계열과, 애사기와 모택동을 중심으로 하는 중국식 사회주의 철학을 비교 분석한 후, 철학사적 관점에서 비판․계승․발전의 문제를 살펴보고, 현대의 중국식 마르크스주의자들에 의해 주창된 중국식 사회주의 이론의 허상과 실상을 드러낼 것이다.”(8쪽) 여기서 알 수 있듯이 그가 말하는 ‘유가 사상’은 구체적으로 ‘순자, 왕충, 장재, 왕정상, 왕부지의 사상’이고, ‘중국식 사회주의 철학’은 ‘애사기와 모택동, 등소평의 철학’이다.
우선, 유가 사상의 문제부터 살펴보자. 이철승이 위에서 언급한 유가 사상가들은 한결같이 전근대 중국의 철학들 가운데 유물론적이고 변증법적인 요소를 지닌 철학자들이다. 예를 들어 춘추전국시대의 묵자와 순자, 한대의 왕충, 송대의 장재, 명대의 왕정상, 청대의 왕부지가 그들이다. 이들 유가 사상가들이 중국의 사상계에서 부분적으로 과학적인 의의가 있는 철학자들이란 점을 인정할 수 있지만, 문제는 그들의 사상이 과연 중국의 전근대 사회를 압도적으로 지배했던 사상이나 이념인가 하는 점이다. 그들은 개인적 편차가 있지만, 대부분 근대 이행기를 거치면서 중국에서 새롭게 조명되고 재해석되면서 부각된 철학자들이지 전통적인 철학의 주된 사상가들이 아니다. 나는 오히려 그들보다 춘추전국시대의 공자와 맹자, 한대의 동중서, 송대의 주희, 명대의 왕수인 등이 중국 전통 사상의 형성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친 철학자들이며, 특히 중국의 중세를 지배했던 이념은 성리학이라고 파악한다. 이런 점에서 그가 철학자들 가운데 왕부지를 “이전의 성리학이나 양명학과 구별되는 ‘선산학’의 사상 체계를 형성한 것으로 평가하고자 한다.”(26쪽)고 언급하고, 실제로 본문에서 그것을 논리적으로 증명한 그의 연구는 그 자체로 설득력이 있다. 그렇지만, ‘왕부지’를 대표적인 전통 철학자로 보고 그의 사상을 중국식 사회주의 철학자인 ‘애사기’의 사상과 비교하면서 이 비교 연구를 ‘유가 사상’과 ‘중국식 사회주의 철학’의 일반적 관계로 확대시키는 것에는 상당히 무리가 따른다. 다시 말해, ‘왕부지와 애사기’를 비교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왕부지의 사상’을 ‘유가 사상’ 일반의 대표적인 사상으로 볼 수 없는 것이다.
논의의 중심이 될 ‘유가 사상과 중국식 사회주의 철학의 관계’라는 점에 주목할 때, 이철승이 ‘공자’와 ‘모택동’을 서로 비교한 것은 의미 있는 작업이다. 그는 한국에 널리 소개되지 않은 문헌들을 바탕으로 모택동의 주관능동성을 공자의 사상에서 비롯된 영향으로 파악하고 있다. “1940년 「신민주주의론」에서 모택동이 언급한 전통 문화에 대한 일반적 논의, 즉 비판 계승론을 단초로 필자는 모택동의 편지글을 인용하여 모택동이 부정한 것이 다만 공자의 관념론적 유심주의의 체계일 뿐이고, 주관능동성에 관한 그의 이론이 유가로부터 영향을 받고 있다고 파악한다.”(218-219쪽) 이러한 그의 서술만 보면 중국식 사회주의 철학이 유가 사상의 영향을 크게 받은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신민주의론」에서 모택동이 언급한 전통 문화에 대한 일반적 논의, 즉 비판계승론’은 무엇인가? 이 점에 대해 이철승은 ‘신민주주의의 민족적, 과학적, 대중적 문화’를 염두에 둔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파악은 적어도 「신민주의론」의 내용으로 한정한다면 분명 일면적 이해에 머문 것이다. 왜냐하면 「신민주의론」의 민족적, 과학적, 대중적 문화는 외국 문화의 ‘정수’와 ‘찌꺼기’를 분별하여 수용할 것을 주장하면서 ‘전반적인 서구화’를 비판하고 중국혁명에서 민족적 형식을 중시한 가운데 나온 것이거나, 중국의 고대 문화 가운데 민주적인 ‘정수’와 봉건적인 ‘찌꺼기’를 구분하는 것이었지, 이것을 곧바로 전통문화에 대한 비판 계승론으로만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주1) 오히려 「신민주의론」의 일반적 내용을 살펴보면 중국의 봉건적인 전통 문화를 비판하고 신민주주의 문화를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있으며,*주2) 보다 구체적으로 공자에 대한 모택동의 평가는 비판 계승론의 입장이 아니라 철저히 비판하는 입장임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모택동은 다음과 같이 분명하게 공자의 사상에 대해 비판한다. “중국에는 반(半)봉건문화도 있는데, 이것은 반(半)봉건정치와 반(半)봉건경제를 반영한 것으로 무릇 공자를 존경하고 경전을 읽을 것을 주장하고, 과거의 예교와 과거의 사상을 제창하며, 신문화 신사상을 반대하는 사람은 모두 이러한 류의 문화를 대표한다.”*주3)
*주1) {{ 『모택동선집』, 제 2권 (범우사, 2002), 706-709쪽.}}
*주2) {{ 같은 책, 663-665쪽.}}
*주3) {{ 같은 책, 695쪽.}}
이제 남은 것은 모택동의 편지에 언급되어 있는 ‘주관능동성’과 공자의 ‘영향’ 관계 부분이다. 이철승은 중국의 전통 철학과 중국식 사회주의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마르크스주의를 중국의 실정에 맞게 정착시키려는 중국식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 중국 전통 철학 속에 포함되어 있는 인간의 의지를 중시하는 사상은 그들의 현실적 요구를 채워주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들은 자연스럽게 전통 철학의 ‘주관적인 의지’ 부분을 그들의 현실적인 요구와 접목시킬 수 있었다.”(220쪽) 이러한 설명에 근거를 제공한 것은 그가 번역한 필검횡의 『모택동사상과 중국철학』(예문서원, 2000)이다. 예를 들어 그(필검횡이자 이철승)는 모택동의 편지에 언급된 “관념론 철학은 주관능동성을 강조하는 면에서 하나의 장점이 있다. 공자도 바로 이와 같아서, 인간의 주의와 옹호를 일으킬 수 있다.”는 말에 근거하고 있는데, 필검횡이 공자의 주요 관점에 대한 모택동의 분석을 언급했다면,*주) 이철승은 “주관능동성에 관한 그의 이론이 유가로부터 영향을 받고 있음을 말했다”는 것까지 너무 멀리 나가고 있다. 불필요한 오해와 근거 없는 추측을 피하기 위해 이점에 대해서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주) {{ 『모택동사상과 중국철학』(예문서원, 2000), 39쪽.}}
모택동은 「신민주주의론」을 공표하기 일 년 전인 1939년 2월 20일과 22일에 걸쳐 당시 중공중앙서기처 서기이자 중공선전부 부장인 장문천에게 편지를 두 번 쓰는데 내용은 주로 진백달의 『공자철학』에 관한 비평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편지들 가운데 20일 편지에서 모택동은 우선 공자의 철학 가운데 명분과 실질의 문제, 충효의 상호관계 문제, 중용문제, 공자 도덕론 문제 등을 철저히 비판한다. 예를 들어 모택동은 「『공자의 철학사상』 글에 관해 장문천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공자와 ‘우리’(중국 공산당; 인용자 주)의 차이를 분명히 밝힌다. “공자는 봉건 질서의 명분을 바로 잡고, 우리는 혁명 질서의 명분을 바로 잡으며, 공자는 명분을 주로 하고 우리는 실질을 주로 하니 분별은 곧 여기에 있다.*주1) 이와 같이 공자의 관념론을 비판하고, 기계적 유물론과의 비교를 통해 주관능동성 문제를 언급하는 가운데 공자의 관념론 철학이 지닌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측면을 한 마디 지적하고, 다시 공자의 철학을 철저히 비판하고 있다.*주2) 이런 문맥의 흐름을 충분히 고려할 때, 나는 공자의 유가사상에 대한 모택동의 철저한 비판의식을 우선적으로 다루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철승이 “중국식 마르크스주의의 ‘주관능동성’은 전통 철학과 마르크스주의의 영향을 받아 당면한 중국의 현실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적용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220쪽)고 하여 모택동의 주관능동성에 대해 절충식으로 결론짓고 있는 것은 문제가 있다. 나는 모택동의 주관능동성 문제가 구체적으로 항일전쟁 시기 중국 공산당의 열악한 상황이 반영된 것으로, 이론적으로는 공자가 아니라 오히려 마르크스와 엥겔스 그리고 레닌의 혁명 철학의 영향을 주로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주1) {{ 『모택동 선집』,앞의 책, 161쪽.}}
*주2) {{ 같은 책, 160-161쪽.}}
‘유가 사상과 중국식 사회주의 철학의 관계’에서 이철승의 절충주의적 방법은 계속 전개되어 다음과 같은 언급에까지 이른다. “마르크스주의의 수용 이후, 비교적 짧은 기간에 중국식 마르크스주의로 전환하게 된 원인은 바로 이와 같이 마르크스주의의 이론과 유사한 내용이 중국의 전통 사상 속에 이미 풍부하게 자리잡고 있었을 뿐 아니라, 중국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주체적으로 마르크스주의의 이론과 중국 전통의 사상을 결합시키기 위해 노력했기 때문이다.”(197쪽) 이러한 절충적 논리는 무난한 듯하지만 실제로는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첫째, 중국식 마르크스주의의 형성 과정은 오랜 기간 매우 힘들고 어려운 피의 대가였지, 짧은 기간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1921년 중국 공산당이 성립한 이후 목숨을 건 혁명 투쟁에서 수많은 노동자 농민이 죽어가고 심각한 사상투쟁을 거치면서 중국식 마르크스주의가 형성된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둘째, 마르크스주의의 중국적 수용은 중국의 극단적인 사회 모순에서 비롯된 것이지 중국 사상과 마르크스주의가 유사하기 때문이 아니다. 이러한 절충식 설명방식은 근대 이행기 중국의 완고한 보수론자였던 왜인이 서양의 과학기술과 사상은 중국사상에 이미 있었다고 하는 논리를 연상시키는 것으로 그가 결코 바라지 않을 문화적 보수주의나 국수주의의 함정에 빠질 위험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다고 하기 어렵다.
4. 글을 맺으며
중국식 사회주의에서 주요한 쟁점으로 떠오르는 것은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 문제다. 이철승은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문제에 대한 중국식 사회주의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해하고 있다. “그들(등소평을 위시한 중국 공산당원들 또는 중국 마르크스주의자들; 인용자 주)이 강조하는 중국식 사회주의는 이론적으로 생산 수단의 ‘사유화’가 전제되는 시장 경제를 수용하여 생산력을 향상시킨 후, 착취와 양극화 현상을 소멸시키는 것이다. 그들이 말하는 이론에 의하면 이러한 중국식 사회주의는 현재 ‘사회주의 초급 단계’에 해당하는 중국의 주요한 ‘정체성’이다.”(261쪽) ‘생산 수단의 사적 소유 철폐’가 사회주의의 기본 강령이라면, 그가 언급한 중국식 사회주의는 이미 사회주의가 아닌 자본주의이다. 따라서 그는 중국식 사회주의에 대해 비판하면서 “결국 그들이 말하는 중국식 사회주의는 현재뿐 아니라 그들이 2051년부터 실현할 것으로 예상하는 진정한 의미의 사회주의조차도 실천으로 증명하지 못한다면 ‘사회주의’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라고 한다. 그렇다면 그는 사회주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이철승은 생산력과 생산 관계를 중심으로 ‘진정한 사회주의’에 대해 서술한다. “진정한 사회주의의 실현은 생산력과 생산 관계 문제를 단일적이고 기계적인 사고에 의해 선후 문제로 설정하여 해결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생산력과 생산 관계 문제를 항상 함께 풀어갈 때 가능할 것으로 생각한다.”(257쪽) 그런데 이런 ‘진정한 사회주의’가 절충식 해결방법이 아니기 위해서는 보다 구체적인 논의가 필요한데, 오히려 ‘인간의 기본적인 욕망 가운데 하나인 생산수단의 사유화’(239쪽)라는 전제는 사유화 문제를 어쩔 수 없는 초역사적인 것으로 만드는 결과를 초래한다. 왜냐하면 생산수단의 사유화가 인간의 기본적인 욕망이라면, 사적 소유의 철폐는 인간의 욕망과 어긋나는 것이 되어버리고, 사회주의도 결국 비현실적인 공상으로 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