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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선녀 이야기/에코페미니즘

생명여성주의와 생태여성주의의 동질성, 차별성, 보편성 /이영숙

by 마리산인1324 2007. 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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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여성주의와 생태여성주의의 동질성, 차별성, 보편성
("21세기의 생명운동과 여성"을 성찰하기 위한 새로운 파라다임 모색)


이영숙



21세기의 주요 화두는 생명과 여성문제다. 가부장적 사회에서는 여성이 성차별에 의해 억압당 할 뿐만 아니라, 여성을 바라보는 시각 자체와 생명을 해석하는 관점 자체가 젠더화(gendered) 되어 있다. 생명적 여성은 사회, 경제, 문화, 그리고 영성 면에서 여성이 젠더화된 불평등 구조에 의해 성차별 받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남성을 포함한 생명에 대한 생명적 원리에 어긋나는 보편적 장애와 한계를 극복해 나가는 생명적 감수성이 살아 있는 여성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 연구는 한국 여성생명의 경험과 현실을 반영한 새로운 파라다임의 여성주의 시각인 생명여성주의를 모색하는데 목적이 있다.

생명이란 생물학적 실체이면서 동시에 사회적 힘의 관계가 일어나는 지점이다. 여성주의에서 관건은 생명이 실체라는 점과, 그리고 사회적 관계가 형성되는 장이라는 두 가지 층위 모두에서 성별관계의 불평등으로 젠더화하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 국경을 넘나드는 환경오염, 생명공학의 여성 몸에 대한 자본화, 유전자조작식품의 확산, 일상생활 속의 정체불명의 화학물질들, 그리고 문화산업에 의한 몸의 왜곡, 성폭력, 성매매,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는 재생산과 생산 영역에서 여성의 생명에 위협을 가하고 있다. 사회 속에서 생명의 현실은 중성적이 아니라 남녀사이에 체계적인 성별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성별화된 생명'의 차이는 남녀간에서 차이뿐만 아니라, 서로 다른 사회들의 여성들 사이에도 생명의 조건에 차이가 있다. 특정 사회 여성의 현실과 그들의 운동을 파악하는 데 이 두가지 다른 차이는 중요한 변수가 된다. 서구의 문화산업은 지구화라는 정보 기술의 확산을 통해 서구 상품에 대한 '보편적' 지역의 구매 의욕을 창출하고 있다. 이로써 지역의 독특한 문화는 서구적으로 동질화되어, 지역인의 삶과 공동체에 대한 비젼과는 어긋나는 소비와 의식으로 지역을 서서히 잠식하게 된다. 이러한 어긋나는 '구매' 현상은 학문 세계에서도 가능하며, 여성과 성별화된 생명 관련 지식체계의 경우도 예외일 수는 없다.

서구중심주의의 학문적 폐해는 서구의 지식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우리 사회 여성의 경험에 유리된 서구 여성의 문제의식을 보편적인 것으로 내면화하게 한다. 이로써, 우리 여성에 대한 독자적인 문제의식을 갖지 못하게 하고, 따라서 적합지 않은 이론을 내세우게 되는 문제가 있을 수 있다. 한국여성의 경험에서 세워지지 않은 여성이론은 한국여성이 주체가 되는 것이 아니고, 그들을 보편적 개념의 틀로 재구성하여 대상화하게 되고, 그 결과 우리의 상황과 맞지 않는 서구중심주의의 이론, 시각, 분석 틀에 기반한 여성 정책 수립(예: 여성건강정책)은 한국여성의 특수한 욕구와 필요, 그리고 문화적 조건을 다 포괄하지 못하게 된다. 이러한 한계의 인식에서 출발하여 지구적인 생태여성주의에 대한 대응으로서 한국여성의 경험과 현실을 반영하면서, 동시에 다른 지역의 여성에게도 기여할 수 있는 보편성도 일부 가진 생명여성주의를 제안하고자 하였다.

I. 지구적/지역적 관계와 여성간의 차이의 문제

여성과 생명의 젠더화에 대한 현장의 시각은 여성환경운동에서 나타나는 여성들의 입장을 통해 포착해 볼 수 있다. 특히, 환경운동과 지역의 특수성이 접목되는 교차점에서 나타나는 젠더에 대한 논의는 한국적 특성을 부각시킬 수 있는 지점이 된다.

여성간의 차이 논의로 들어가기 전에 우선 배경이 되는 우선 지구적 환경운동의 문제부터 살펴보자.

환경운동 관련 논의에서 일반적으로 지구적인 것과 지역적인 것 사이의 역동성은 첫째, "지구적" 환경주의의 '북쪽' 국가들의 이권 증대를 위한 패권적 담론과, 둘째, '남쪽' 환경주의가 가지는 지구적 환경주의에 대한 저항운동과 연대 사이에서 일어난다. 전자를 성별문제에 대입하면, "지구적" 자본주의가 '보편적 자본주의'라고 특권을 주장할 때 가지는 자본의 성중립적 성격이 성별관계에서 억압적 힘을 휘두르는 것(Sturgeon, 1997)으로 정리된다. 이 글은 후자의 저항의 성격과 동일하지는 않으나, 그 맥에서 지역적 변형를 추구하는 것으로 지역 여성의 주체성의 문제를 함축한다.

. 패권적 환경주의에 대한 여성들의 연대

패권적 환경주의는 경제의 지구화 논리가 세계 시민권을 위한 초국가적 정책인 것처럼 보이는 것으로서 초국적 지구적 자본주의의 조직이 가진 강력한 힘을 통해 강압적 환경주의의 보편성을 지역에 적용하는 문제를 가지고 있다. 즉 이슈는 환경보호이지만 실제 내용은 북쪽 국가들이 환경문제를 거론하여 남쪽 국가들을 대상으로 세계의 자본을 장악하려는 지구적 의도를 은폐하는 것이다 (앞글, 1997).

환경과 개발의 문제 사이에서 일어나는 패권적 환경주의에 대응하여 여성들이 조직적으로 그들의 목소리를 전달할 기구로 WEDO(Women's Environment and Development Organization, 뉴욕 소재)를 발족시켰다. 일반적으로 생태여성주의의 경향을 가진 이들은 1980년대 말부터 패권적인 환경 논의에 연관된 지배적인 개발담론에 정치적으로 간섭하기 시작하고, 이로써 남북 국가들의 여성 사이에 연대가 형성되었다(앞글: 135-136). WEDO의 입장들(WEDO, 2000a; 2000b; 2000c; 2000d; 2000e)은 자본을 앞세워 자국의 이익을 도모하는 패권주의적 담론에 대한 페미니스트들의 도전의 표현이며, 지구적 자본주의와 성별관계에서 보편주의를 해체하는 것이다. 생태여성주의는 지역의 생태적 특성을 중시하므로 보편적 하나의 체제로 해결하려는 환경주의의 지구화 자체에 반대한다. 때문에, 북쪽과 남쪽의 생태여성주의자들 사이의 연대에서도 남쪽 국가들이 스스로 자기의 목소리를 지역에서 찾도록 열어 두게 된다. 그리고 남쪽은 북쪽 생태여성주의자들의 여성과 환경 사이의 관계, 경험, 이슈를 오롯이 보편적인 담론으로 수용하지 않는다.

이러한 배경이 한국 여성 환경운동에 주는 시사성은 이중적이다. 하나는 지구적 패권주의에 대한 지역과 남쪽국가들의 특수성 부각의 중요성이며, 다른 하나는 각 지역의 여성들 사이의 경험의 차이를 토대로 지역의 여성이 세계환경운동에서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지구적 환경주의에 대해서 남북 여성이 연대하여 남성적 보편주의의 해체를 촉구하는 것과 동일한 논리로 지역사회의 특수성을 살린 환경보존, 그리고 지역여성의 문화와 특수성을 살린 환경보존 지식과 이념을 한국 여성 환경운동은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II. 생명여성주의의 모색

1. 생태여성주의의 지역화로서 생명여성주의

여성의 생명에 대한 시각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자연과 여성 사이의 유사한 억압적 상황을 논하는 생태여성주의를 우선 소개할 필요가 있다. 생태여성주의는 1990년대 초부터 한국에 소개되기 시작하였다. 생태여성주의는 서구에서 최근까지 남성이 주류가 되어 진행시켜온 역사의 행보가 어떤 방식으로 자연을 비롯해서 지구를 파괴시키면서 진행되어 왔는가에 대한 성찰적인 저항운동으로서 지구를 구하려는 여성들의 노력과, 여성과 자연에 대한 새로운 관점의 여성주의적 시각이 맞물려 형성되고 있다,

에코페미니즘이라고 칭하는 생태여성주의의 핵심은 남성이 여성을 억압하는 가부장제적 성차별주의와 사람의 무차별 개발에 의한 자연파괴 사이에 연관성이 있다는 체계적 논의에 있다. 서구 생태여성주의자들과 인도의 쉬바와 같은 학자들은 서구 과학을 "모든 제도적 폭력을 정당화시키는 궁극적인 원천으로서, 그리고 오늘날의 지배-피지배 관계의 기본적인 모델"이라고 지적하여 적극적으로 피지배 여성들의 자연과의 관계 방식에 특별한 관심을 보여 왔다(브라이도티 외, 1995: 186-187).

생태여성주의에서 서구중심주의를 극복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탈식민은 구체적 역사성 속에서 출현하는 것이므로 생태여성주의에 대한 한국여성환경인의 반응을 소개해 볼 필요가 있다. 이영숙(2001)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한국여성환경인들이 생태여성주의 이론에 대해 선뜻 수용하지 않는 입장들이 드러나고 있다. 성별관계에 대해 확실한 의식을 가진 성인지적 한국여성환경인도 "과거엔 생태여성주의 이론이 너무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했다. 현재도 잘 모른다. 생태여성주의가 무엇인지 너무 추상적으로 들렸다. 한국의 현실과 좀 다르다. 여성 환경운동가들이 생태여성주의에 대해 공부는 좀 했으나, 나는 생태여성주의에 별로 관심이 없다"고 이야기를 한다.

여성적 시각은 생태여성주의적 관점과 동일한 것은 아님을 명백히 언어화하고 있다. 생태여성주의에 대한 이질감의 표명에서 여성과 자연의 연관성이 서구중심의 공통의 언어로 균질화 되기를 거부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음을 관찰할 수 있었다. 분명한 것은 아주 적극적인 한국 여성환경인일지라도 서구적 관념에 자신의 경험이 잘 맞추어지지 않기에 거부감을 가지는 것으로 보인다. 서구의 여성과 환경 관계의 이론이 우리의 언어로 거르지 않은 채 서구 여성의 일상 및 자연과의 관계가 바로 적용될 때 지역과 가지는 사회문화적 차이로 인하여 생경감이 있었다. 이러한 사례는 한국여성환경인들에게서 여성과 자연의 억압들 사이에 존재하는 연관성의 근원에 대한 서구 주도의 이론에 쉽게 공감하지 않는 목소리를 들려주고 있다. 이것은 우리들 자신의 환경관련 경험의 목소리들을 바탕으로 개념화하여야 할 것을 제시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전 지구적 페미니즘은 지역여성들 간의 "차이 속에서, 차이를 통해서, 차이에도 불구하고"(통, 2000: 462) 다양성 속에서 지구적으로 통일성을 가지고 연대해 나가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사실, 생태여성주의 이론의 형성은 대부분의 거시이론이 고도의 지적 추상성으로 이론의 틀을 짜는 것과는 달리 지역의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사례들의 상황을 반영하여 이루어진다. 자연혐오와 여성혐오에 대한 상호연관된 사회적 지배의 뿌리를 밝히는 구체적 분석 없이는 생태학은 추상성으로 남게 된다(King, 1989: 23-24). 구체성을 지닌 사회적 지배의 뿌리란 두말할 것 없이 그 지역 사회의 역사, 문화, 사회적 배경을 의미하는 것이다. 워렌(Warren, 1994)은 생태여성주의의 이론형성 과정을 퀼트(조각이불)만들기에 비유하여 설명하고 있다. 그 조각 하나 하나는 퀼트 조각을 만드는 여성의 개인적인 삶의 자리와 삶의 여정에 대해 말해주는 데, 이와 마찬가지로 각 생태여성주의자는 각자의 문화적, 사회적, 역사적, 지역적, 인종적, 국가적 배경에 따라 각자의 독특한 입장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까, 커다란 조각이불 퀼트를 일반명사인 '소문자 생태여성주의'라고 지칭할 때, 이 조각이불은 지역 여성의 경험에서 만든 고유명사 퀼트 조각하나인 '대문자 생태여성주의'들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조각이불은 많은 조각이 모여 차츰 새로운 모양의 이불을 만들어 갈 수 있다. 이것이 개별 조각 퀼트 하나 하나 사이의 동질성, 차별성, 보편성이 형성되는 맥락이다.

이 조각이불 만들기와 같은 생태여성주의 이론의 형성과정은 조각이불을 만드는 작업 자체에서 연상될 수 있다(앞글: 187-188). 첫째, 워렌이 언급한 바와 같이 생태여성주의에서 이론은 항상 형성 과정에 있는 것이므로 역사적, 사회경제적, 문화적 상황을 반영하여 이론이 형성되어야 한다. 둘째, 한 지역에서 생태학적으로 가능한 것을 지구 보편적으로 가능한 것으로 일반화하지 않는다. 오로지 생태학적인지 아닌지는 그 지역에서 그것이 지배와 종속의 상황과 구조의 유지에 호의적인가 아닌가에 따라 결정하는 것이다. 셋째, 구조적으로 환원주의거나 단일적인 것이 아니라 다원주의적이다. 따라서 포괄성 속의 차이이며, 이 차이는 지배하거나, 다른 것을 열등시하지 않는다.

이러한 생태여성주의 이론의 특성에 따라 한국 여성은 우리의 개념과 언어로 생태여성주의를 재구성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서구의 여성학 이론과 생태여성주의는 여성문제를 파악하는데 강력한 분석틀을 제공해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서구여성의 경험과 비서구 여성의 경험이 구체적인 부분에 들어가서는 다른 면이 있는데 이것을 동일한 개념으로 언어화하는 것은 문제다. 서구 여성의 경험이 비서구 여성의 경험과 역사에 반하여 보편적인 경험으로 수용되거나, 또는 비서구 여성들의 경험을 생태여성론에 따라 서구적 감각으로 해석하거나, 서구적으로 '의식화' 하는 것은 문제다. 물론 서구의 과학기술에 대해 비판하는 서구의 페미니즘은 서구식 개발을 비판하여 비서구여성의 삶과 만나는 담론의 장을 펼쳐왔음을 상기한다.

이 논의는 페미니즘 내에서 여성간의 차이와 탈식민적 주체성의 문제 영역에 있는 것이다. 여기서 아주 적절한 인용을 해보자: "저항 정치학으로서 생태여성주의는 힘의 관계로서 이론 자체의 사용과 남용에 대해서 많은 것을 일깨워 주고 있다. .... 사실상 생태여성주의 안의 우리가 권력에 반대함에 있어서 가장 두려운 것은 우리가 우리 자신의 전제들에 도전할 때이다"(퀸비, 1996: 197). 이내용은 가부장적 사회에 대해 여성이 주장하는 외적 주체성과 구별하여 여성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내적 주체성의 문제라고 이름지을 수 있다. 생태여성주의는 이론의 남용을 경계하고, 그들 자신의 전제들에도 내적 차별이 없도록 스스로 항상 도전해야 하는 이론이다. 쉬바(1996: 286)는 생명 파괴적이고 자원 낭비적인 악발전을 가져오는 서구적 발전모델을 제 3세계에 적용하여 발전이 서구적 경제체제(악발전)들과 동일시되었다고 통렬히 고발하고 있는데, 이 서구식 발전 모델에 문제를 제기하고, 대항하는 한국의 여성환경운동이 서구적 생태여성주의와 동일시 될 필요도 없는 것이다. 비서구 중에서도 한국 여성의 자연과 여성관계는 한국 여성의 경험에서 도출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여성의 삶의 현장인 환경 관련 이야기에서 사회구조 문제를 스스로 끌어내도록 하자. 여성은 사회적으로 구성되었는데, 우리와 상이한 서구 현장의 개념, 용어, 문화들이 "보편적 추상성"으로 우리 옆을 스쳐지나가고 있다. 한국에서 생태여성주의에, 그리고 페미니즘에 대해 일반 주부들이 별로 공감하지 않는 이유는 생활이 보장된 가정이라는 공간을 잃지 않으려는 현실적 이유에 더하여 방금 언급한 우리 자신의 경험을 통한 개념화 작업의 부족과 결여에 있다. 한국 여성의 여성과 자연의 관계에서 한국 여성의 삶에 대한 분석틀을 모색하려면 한국 여성 자신들의 이야기를 듣고, 거기서부터 이론화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따라서, 한국의 생태여성주의의 퀼트 조각은 한국 여성의 경험이 갖는 특수성--자연과의 관계, 몸, 가부장제의 특수성, 산업화 과정의 특수성, 최근 기술사회의 특성, 이슈 등--이 반영된 이론으로 생태여성주의를 재구성하는 작업이 필요한 것으로 자료가 말해주고 있었다.

2. 생태여성주의와 생명여성주의의 관계

생명여성주의의 모색은 생태여성주의와의 관계에서 서로 대립된다기 보다는 상호보완하면서 발전되어야 할 것으로 접근하면서 동시에 생태여성주의와 일정 부분 차별화 전략으로 이루어진다. 차별화 전략은 사실상 기존 서구중심 생태여성학의 주요 전제들을 수용하면서도 여성사이의 차이점에 착안하여 한국여성의 경험과 현실, 문화의 생명적 가치들과 의미를 재조명하는 것이다.

3. 생명여성주의의 관점을 형성하는 주요소들

생명여성주의란 무엇인가? 생명여성주의는 생명의 특성 및 사회·문화적 조건에 대한 이해를 양성평등 가치에 접목한 여성주의적 시각이다. 생명은 사회구조에 의해 젠더화 되어 있다. 어느 사회든 산업화, 기술, 자연, 생명이 맺는 상관관계는 있는데, 한국이라는 특정 현장에서는 어떻게 맞물려 있는지를 파악하고, 또한 여성이라는 집단이 한국사회에서 어떻게 생명을 중심으로 젠더관계를 가지는가를 생명여성주의는 포착해야 한다.

생명여성주의적 시각에서 논의의 중심 틀은 생명적 원리와 양성평등의 원리의 두 개의 축으로 구성된다. 이 두 축이 만나는 교차점에서 '성별관계로 층화된 생명'의 이해, 즉, 여성과 생명에 대한 '젠더화 된 생명에 대한 관점'이 이루어 진다.

생명적 원리는 생물학적인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여성의 성별관계를 위치 짓는 생명의 조건은 자연만이 아니기 때문에 생명의 사회적 환경을 보는 것이다. 생명적 원리에는 생명의 사회, 경제, 역사, 문화적인 것이 포함되고 있다. 생명여성주의는 생명의 이러한 사회적 제조건을 중시한다.

생명여성주의의 시각에서 여성의 생명은 두 가지 층위에서 논의될 수 있다. 그 하나는 사회 속에서 '성별화된 생명'에 대한 이해이며, 다른 하나는 '성별화된 여성의 몸'에 대한 이해의 층위들이다. 전자의 경우는 메타포 차원에서 생명이 논의되는 부분으로 왜 생명이 차별받고, 억압되고 있는가와 같은 생명이 위치한 사회적 구조를, 그리고 그 구조가 성별화된 점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후자의 경우는 여성 몸의 현실을 생물학적으로 분석하기보다는 생명의 구체적 실현으로서 몸을 보는 것이며, 따라서 우리의 사회문화 안에서 억압의 장소로서 몸을 보는 것이다. 예컨대, 환경오염에 의한 여성의 피해, 생명공학 기술이 여성의 몸에 개입해서 어떻게 자본화시키는가, 사회문화가 요구하는 여성의 몸 이미지가 여성에 가하는 반생명적 몸 만들기 등을 말하는 것이다. 이때 몸 자체도 '물질적 실체로서의 몸'과 '문화가 실현되는 장으로서의 몸'이 있다.

4. 생태여성주의와 생명여성주의가 분리되고, 차별화 되는 지점

4-1. '생태'와 '생명'

그러면, 한국 여성 환경활동가들이 생태여성주의에 도전해야 하는 요인들은 무엇일까? 생태여성주의는 자연과 여성의 관계를 여성주의적으로 이해하였는데, 우리는 어떻게 자연과 여성의 관계를 이해해야 우리의 문제와 생명에 대한 비젼을 가장 적절하게 담을 수 있을까?

한국 여성의 삶에 대한 고찰은 한국 여성 경험의 특성이 반영되어야하는데, 서구여성의 경험과 비서구여성의 경험이 다르며 산업화 정도라든가 사회구조에 따라 여성 문제의 성격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각 사회의 산업, 경제구조, 문화에 따라 환경운동의 내용과 저항방식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생태여성주의자들의 제 3 세계 여성에 대한 논의는 주로 개도국 여성들이 직면하는 개발, 자연문제, 일상생활(연료, 식수, 식품 등)과의 연관성에서 여성의 주변화와 억압을 말하고 있다. 서구에 대한 생태여성주의자들의 연구는 자연과 여성의 관계를 기초로 핵문제, 화학약품, 유전자 조작 식품, 생명공학의 복제 문제 등을 주제로 다루고 있다. 이 서구 여성에 대한 생태여성주의자들의 이해는 주로 기술적 접근(descriptive approach)의 성격을 가진다. 그 이유는 자연을 중심으로 한 '생태'가 직접적으로 여성의 삶을 구성하지 않으므로 자연과 여성의 관계를 심층적으로 적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제 3세계 여성의 문제를 생명여성주의적으로 접근할 경우 다음과 같이 풀어 쓸 수 있다:

제 3세계는 농업사회에서 산업화로 이행하는 자본주의의 팽창 과정에서 한편으로는 여성의 생계부양 활동과 직결된 농업에 주는 문제와 개발이 여성의 역할과 지위를 박탈하거나 악화시켜 여성의 공적 경제활동을 '젠더화하는' 문제, 즉, '생명 억압의 장소로서 여성의 몸' 문제가 있고, 다른 한편으로 환경 악화가 여성의 재생산 노동과 생물학적 몸, 즉, 실질적 실체로서의 몸에 주는 젠더화 문제가 있다.

이러한 접근은 여성문제의 실체와 문제의 사회적 위치, 그리고 성별관계가 접합하여 하나의 통합적 차원에서 여성의 현실을 보여줄 수 있는 장점을 가진다.

생명여성주의는 생태여성주의적 인식을 보완하는 인식 틀로 한국 문화의 생명에 대한 통찰과 인식을 수용한다. 생명여성주의의 출발점은 생태와 생명의 차이가 어디에 있는지 그 구체적 한국적 맥락 속에서 한국적 가능성을 모색할 필요가 보인다. 여성주의 심리학자 길리건(1997)에 의하면 여성의 도덕성의 근거는 책임과 관계의 연결망에 대한 이해를 중심으로 하고 있다. 이 책임과 관계는 사실 "생태"에 대한 책임보다는 "생명"에 대한 책임이 아닐까?

여성은 생명살리기에 민감한 생명적 감수성을 가지고 있다. 생명에 초점을 맞추면, 그 속에서 여성에 대한 반생명적인 사회구조 문제, 그리고, 환경에 대한 억압이 함께 보인다. 생태(Eco)에 초점을 맞추면 한국에서는 억압받는 여성이 덜 부각된다. 우리말의 생명은 생태보다 훨씬 강력한 의미를 함축한다. 생명이라고 말할 때 숨쉬고, 고뇌하는, 그리고 살려고 발버둥치는, 그러나 현실 속에 갇혀 헤어날 수도 움직일 수도 없는 여성의 한을 듣게 된다. 거기에는 기, 에너지, 세포의 율동, 운명 , 적나라하게 먹고사는 정치경제학적 관계, 건강, 사랑과 출산, 억울한 한, 가장 중요한 핵심이라는 의미까지도 함축하는 동태적 개념이 있다. 묘하게도 '생태'라고 하면, 우리말에서는 역동적인 동학이 사라진 정태적인 물리적 의미로 다가온다. 영어에서는 Ecology가 역동성을 가지는 말인지 모르겠다. 우리말에서 생명이라고 했을 때 거기에는 빈부의 관계, 남녀의 관계, 자연과 사람의 관계까지 담아 들이는 사회 동학적 관계의 개념이 된다.

4-2. 생명여성주의의 인식론적 전제

생명여성주의에서 생명을 소중히 여긴다는 것은 무슨 의미를 가지는가 그리고 생명여성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은 생명여성주의적 인식에 대한 논의를 통해서 부분적으로 찾아 볼 수 있다.

참고로 생태여성주의자들의 주요 인식체계를 먼저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 생태여성주의에서 말하는 자연과 여성의 관계는 두 가지 다른 입장으로 나뉘어진다. 하나는 여성이 본래적으로 자연에 더 가깝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사회역사적 구성물로서 체화된 여성을 말한다.

2. 전자에서는 보살핌과 같은 여성적 가치에 의미를 부여한다.

3. 모든 생명의 상호연관성을 강조한다.

4. 모든 억압적 이념들이 가부장제에 의해 유지·강화되는 지배의 논리를 말하고 있다.

5. 생태계의 다양성 유지의 중요성과 그에 따른 힘의 분산을 생태여성주의에서 추구하면서, 소비산업을 통해 유사한 욕구와 욕망이 전지구적으로 통용되는 문화의 단순획일화의 문제를 지적한다.

6. 자연, 문화, 사람 사이의 이분법적 인식체계의 철폐를 강조한다.

생명여성주의적 인식은 생명과 관련된 한국적 전제, 속성, 이해를 포함한다. 한국 문화에서 "생명"이 가지는 특수성을 먼저 검토하고 그것을 기저로 생명여성주의적 인식론적 전제를 모색하여 보았다.

4-2-1. 생명여성주의에서 생명은 주체다:

생명에서 자기해방적 힘을 본다. 이것을 잘못 해석하여 여성은 두들겨 맞아도 아무렇지도 않고, 다시 일어난다는 식으로 해석하면 안된다. 여기서 의미하는 바는 생명의 자율성, 생명의 내적 자기해방적 힘을 전제한다. 생명은 정태적 '생태'와 달리 스스로 내면에 가지고 있는 성장하는 힘 자체이다. 여성의 경우 자기 자신을 다시 태어나게 하는 여자. 자기의 생명력이 스스로 자신을 끌어내는 힘을 내장하고 있는 여성을 말할 수 있다. 이는 여성 안에 있는 힘, 즉, 여성이 자생력과 자율성을 가지고 삶의 주체가 됨을 말하는 관점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생명여성주의는 여성은 희생자이면서 동시에 극복할 힘을 가진 자, 사회변동의 주체로 부각될 수 있다.

생명여성주의에서 생명은 주체라는 전제는 생명이 사람의 대상이 아니다라는 의미도 가진다. 이 의미는 양성평등 사회의 구현을 위한 운동 차원에서, 그리고 연구의 방법론 차원에서 중요한 함의를 가진다. 생태여성주의는 자연과 여성이 서로 다른 종류로서 동등한 관계를 가지는 것으로 상정한다. 자연이 주체, 여성도 주체, 생명이 그 자체로서 주체다. 인간 행위의 대상인 목적격으로서 자연과 여성의 관계가 논의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자연과 여성 주체 사이의 관계는 여성이 자연을 닮았는가 아닌가를 가지고 여성주의자들 사이에서 분화되고 있다. 생명여성주의에서는 남성 속의 생명도 주체므로 남녀 사이의 보편적 생명이 전제된다. 이로써 생태여성주의에서 쟁점의 하나인 자연과 여성이 닮았느냐, 아니냐라는 본질주의 논쟁을 생명여성주의에서는 근원적으로 묻지 않게 되고, 여성과의 생명과 남성의 생명이 보편적으로 만날 수 있는 양성 해방운동의 이론적 장치가 될 수 있다.

여성을 포함한 사람과 함께 있는 생명이 주체인 것이다. 생명과 여성(사람) 사이는 자연과 여성사이의 논의에서 그 둘이 분리되는 것과 같은 분리가 불가능하다. 이로써 생명여성주의에서는 생명, 여성을 함께 묶어 하나의 단위로서 성찰해야 하며, 따라서 연구 방법에서 생명은 파편화해서 그 성격을 포착할 수 없으므로, 생명여성주의적 접근의 여성 연구(다른 생명학적 연구에서도)는 통합적인 접근을 요하게 된다.

4-2-2. 생명여성주의는 상호영향성을 중시한다:

생명은 에너지이기도 하므로 상호영향을 주고 상호작용한다. 따라서 생명을 상호관계적으로 인식한다. 생태여성주의에서도 사람과 자연, 사람과 사람 사이의 상호연관성을 중시한다. 그러나, 생태여성주의의 '상호연관성'에 비해 생명여성주의에서 의미하는 바는 적극적으로 상호 영향력을 줄 수 있는 관계를 말한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생명"은 역동적 성격을 가진다. 한국에서 기는 흐르는 에너지로 이해되고 있으며, 사물과의 관계는 일방적이지 아닌 것으로 이해된다. 동양에서 생명이라고 할 때 생명은 실체, 근원적 에너지, 사회적 장, 역사성과 운명까지를 포함하는 다차원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 그 자체가 주체다. 생태여성주의에서 자연이 살아 있다고 할 때조차도 생물학적 차원에 주로 머무르고 있다.

'생태'는 정태적으로 다른 종들 사이의, 사람과 자연과의 관계에서 물리적 현상을 중심으로 말할 수 있는 틀이 된다. 그러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같은 종 내의 힘의 관계를 분석하기보다는 자연 환경과 여성의 관계를 자연현상을 축으로 해서 분석 가능하다. "생명" 개념은 한 종 내의 성별, 인종, 힘, 계층, 계급의 관계 모두의 역학을 경제, 사회, 정치학적으로 접근 가능한 동적 개념이다. 생태여성주의에서도 남녀관계에서 힘의 관계를 보나, 일반적으로 이것은 분석에서 부차적이 된다. 이로써, 생태여성주의의 상호연관성은 생명여성주의의 상호영향성에 비해 소극적으로 보인다.

4-2-3. 생명의 연속성을 강조한다:

'몸과 마음, 그리고 정신과 물질의 이원론 극복'의 인식은 이미 기존 페미니즘에서 수용하고 있다. 남녀의 연속성 전제는 여성과 남성이 크게 다르지도 같지도 않다는 의미를 내포하며, 이 인식에는 젠더라는 사회적으로 구조된 성불평등의 정치학을 극복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물론 젠더의 극복을 위해서 남녀의 차이에서 출발해야 하지만, 남녀가 크게 다르지도 않다는 진제에서 여성과 남성 각각에 대해 가부장적 성역할 분리로 이러지는 여성성과 남성성을 극복하고 양성성(androgyny) 촉구를 가능케 한다.

이원화되지 않은 몸과 정신이 함께 조화를 이룰 때 생명적 상태로 가는 조건의 하나가 된다. 이때 실체로서의 생명, 생명의 실체로서 몸 강조을 강조할 수 있게 된다. 관념적이 아니라 실체로 만나서 체험하는 것이다. 동아시아에서 영향력을 가진 도교는 '생명을 존중하고(귀생)', '생명을 기르는 (양생)' 문화이기 때문에 신체성을 강조해 왔다. 생태여성주의는 "모든 것이 변화 속에 있다"고 전제하므로 고정된 실체를 거부한다. 때문에 '생명의 실체로서 몸 강조'는 근대적 사유의 실체론이 된다고 반박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생명여성주의에서 말하는 실체는 정신과 몸이 분리되지 않은 실체, 그리고, 여성학에서 말하는 담론 속에서 만들어지기만 한 여성(구조물로서의 여성)이 아니라는 의미에서 실체를 말한다.

4-2-4. 생명의 치유적 관계를 중시한다:

역할, 기능, 조직 체계, 노동과정에 치유적 성격을 중시한다. 생명의 온전성은 사회적 관계에서 항상 상하고 있으므로, 생명적 관계에는 늘 치유적 기제가 요청된다. 생명개체의 자기 충족, 자기완성 과정에서 다른 개체와 다른 집단에 발생시키는 모순, 갈등이 있게 마련이다. 그런데, 현대인들은 기술문명과 이미지의 세계 속에서 생명에 대한 감수성이 무디어 지고 있으므로, 생명과 생명 사이에서 생물학적, 사회적, 관계적, 존재적 차원이 다치게 된다. 따라서 모든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는 치유하면서 나가야 한다. 생명적 감수성은 생명의 치유적 관계를 위해 역할하는 중요한 감성이다.

4-2-5. 시간을 곡선으로 이해한다:

삶의 곡선적, 동시적 흐름을 시계가 조형하는 일직선상의 시간의 틀에 넣어 왜곡시키지 않겠다는 의지다. 한 생명의 시작과 끝을 분리하지 않고 그 생명의 현재, 과거, 미래의 모든 시간이 함께 만나는 지금 이 순간을 생명에 추동력을 붙이는 공생의 시간의 덩어리로 전제한다.

시간을 일직선상으로 놓을 때 (전제할 때) 이항대립적 사고가 시작된다. 미개/발전, 과거/현재, 나/너 등으로.

생명의 힘을 열어두기 위해서는 시간에 대한 우리의 분절적, 직선적 인식을 바꾸어야 한다. 그때 직선적 시간에 의해 과거/현재로 분열된 자기 자신과 화해 가능하게 된다. 또한 나 혼자의 파편화된 시간을 포월하는 "공생의 시간대"로 들어갈 수 있으리라 상정한다.

시간을 곡선적, 동시적으로 놓을 때 생명에 대한 직선적 이해와 함께 가는 합리적 인식을 극복하고 역설적 인식까지 포함 가능하게 된다. 비우면 비울수록 줄 것이 더 채워진다는 생명의 역설이 있다. 생명의 패러독스와 아이로니의 '역설'을 언급하는 이유는 서구적 합리성에 입각한 여성과 남성 사이의 등가원칙에 의한 상호성(mutuality)의 한계를 극복하자는 것이다. 여성주의는 남녀사이의 상호성을 중심으로 분석하는데 여성주의의 궁극적 목적은 상호성이 아님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이 상호성은 양성간의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분석의 과정에서 우리들이 사회 운동을 펴는 내용들이지 그것이 궁극적 목표는 아니다. 양성평등적 논의의 장으로 남성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남녀 사이의 상호성의 한계를 넘어서는, 양성 모두가 함께 해방될 수 있는, 양성 모두에 해당되는 보편성이 함께 제시되어야 하리라 본다.

4-3. 양성평등 원리와 생명적 원리가 결합되는 방식

생명적 원리와 양성평등적 원리가 어떤 식으로 결합되는가? 이 생명원리와 양성평등원리의 결합방식은 생태여성주의에서 여성과 자연의 유사한 상황이 유비(類比) 접목되는 방식과 같은 가?

4-3-1. 생명여성주의는 자연을 매개로 할 필요가 없으므로 현대사회의 반생명적 현상을 분석하기에 용이하다.

생태여성주의는 자연억압 받는 방식과 여성이 억압받는 방식이 유사 내지 동일하다고 한다. 이 점은 생명여성운동에서도 공감한다. 그런데 생태여성주의는 자연을 매개변수(혹은 맥락)로 하여 생명을 말한다. 자연을 매개로 하면서 그 분석은 자연에 대한 억압관계가 결국 인간 사회에서의 억압관계와 동형적이라는 것이다. 생태여성주의는 자연과 사람의 관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피력한다. 그러나, 사회적 관계라고 하는 사람과 사람의 내적 관계, 힘의 관계에 대해서는 충분한 논의가 없었다. 생태여성주의에서 자연을 매개로 해서 제1, 제2 세계 분석을 시도할 경우, 개념상 들르고 올 곳이 많다보니, 현대사회의 주제에 대해서는 분석력이 떨어진다. 사실 사회의 특성에 따라 젠더화된 생명의 현실이 다르므로 현대사회에서 반드시 자연을 거쳐서 반생명적 현상을 논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생명여성주의는 반드시 자연을 매개로 우회하지 않더라도 생명의 성별관계 문제의 사회적 조건을 바로 논의할 수 있다. 생명여성주의는 인간의 자연억압의 동형구조가 재생산된다는 점의 부각에 치중하여 자연을 매개로 하면서 사회적 문제로서 여성문제를 논의하기보다는 여성문제 자체에서 바로 반생명적이고, 젠더화된 생명의 문제를 보고자 한다. 여성과 남성 사이에, 가진 자와 없는 자 사이에, 권력이 있는 자와 없는 자 사이에 그 동형구조가 같이 내려오는 점에 주목하고, 생태여성주의에서 자연 논의를 관통하는 핵심이 생명담론임을 지각한다.

한국의 경우는 산업화된 도시에서 여성의 생명이 어떻게 고통받는지가 논의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생명이 젠더화된 현상을 생명적 원리와 양성평등 원리가 만나는 접합점에서 "생명의 젠더화로서 여성 몸의 자본화"와 같이 개념화하고, 그에 따라 구체적 한국여성의 경험에서 반생명적 "성형수술의 유행은 여성의 몸에 '재현된' 남성중심 노동의 조건과 상관관계를 가진다"라는 식으로 조작적 정의를 내릴 수 있다.

이러한 접근은 사회주의 생태여성주의의가 사회적 구성물로서의 여성이라는 점에 착안한 접근과 유사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생명여성주의는 사회주의적 생태여성주의와 문제의식이 유사함에도 불구하고 가부장제를 공격하고자 하는 방식이 다르다. 생명여성주의는 첫째, 한국적 생명의 젠더 경험에 토대를 두고 있고, 둘째, 자연을 매개로 하지 않으므로 현대사회의 중층적인 젠더화 현상을 분석하기에 용이하고, 셋째, 생명을 주체로 전제하기에 여성과 생명이 분열되지 않으므로 젠더화 된 생명에 대해 통합적으로 접근하도록 된 장치다. 다음 항에서 이를 좀더 상세히 논의한다.

4-3-2. 통합적 접근

생명여성주의는 자연과 사람을 별개이면서 동등한 것으로 보는 생태여성주의와 달리 생명 자체가 주체이면서 그것은 사람을 만드는 핵심 개념이다. 앞에서 논의한 바와 같이 생명여성주의는 자연을 매개로 하지 않으므로 특히 현대사회의 중층적인 현상을 분석하기에 적합하다. 또한 생명은 중층적으로 이루어진 특성에 의해, 통합적으로 접근해야 만이 생명의 젠더화 문제가 드러나게 되어 있는 경우들이 많으므로 생명여성주의는 통합적 방법을 강조한다.

성별화된 생명의 현상은 사회의 특징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고, 또한 생명적 현상은 복합적 조건에 의해 이루어지므로, 일반적으로 생태여성주의는 여성이 사회구조에 의해 젠더화됐다는 점을 기초로 하나, 사회적 생명에 대한 논의를 오히려 부차화시키면서 자연이 받는 억압상태와 여성의 상황에 연민을 가지고 접근한다. 이때 실제로 사회의 특성이나, 문제에 따라 생명의 젠더화의 현상이 다양하게 나타나는데, 젠더화된 생명을 조건 지우는 중층적 요인들을 분석하기엔 생태여성주의의 관점의 틀 자체부터 방향이 맞지 않는다. 통합적 접근을 하기보다는 이론의 분파에 따라 접근의 주안점이 다르고, 분파에 따라 사회구조, 문화, 영성 등으로 분절되거나, 편향된 분석을 종종하게 된다.

예컨데, 사회주의적 생태여성주의는 여성과 자연이 자본을 중심으로 맺는 관계에 초점을 맞춘다. 이 논의는 여성의 몸이 성별화된 생명의 장이라는 사실을 소홀히 한다. 급진적 생태여성주의는 영성을 중시하면서 사회적 구조물로서 젠더화된 생명을 소홀히 한다. 이와 달리 생명여성주의는 생명을 조건 지우는 사회, 경제, 문화적 관계의 중층적 현상에 대하여 통합적인 접근으로 생명의 성별화를 파악하려한다.

5. 생명적 감수성

여성과 생명을 연결하는 고리가 무엇일까? 생명여성주의는 생명적 감수성이 그 답이라고 제안한다. 이 제안이 나오기까지의 배경에는 생명여성주의의 인식체계에서 언급했던 "생명은 상호영향성"을 가진다는 전제가 생태여성주의의 전제 "상호의존성"에 비해 훨씬 강도 높은 사회, 심리, 물리적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인식에 토대를 두고 있다.

생명적 감수성은 자기의 생명, 그리고 다른 생명의 욕구와 필요, 고통을 느끼고, 생명이 가진 자생력을 펼치도록 판을 벌려주고, 지켜주고, 도와 주기 위해 성찰적으로, 그리고 연민을 가지고 사물과 관계를 맺는 감수성을 의미한다. 늘 감성이 깨어 있고 가슴을 열어 두어야 가능한 감성이다. 이 감성은 감각적인 것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고 사유적, 행동적인 것을 포함하여 거의 인성의 차원에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길리건(1997)과 같은 페미니스트 학자가 말하는 여성주의적 윤리의 주요한 특성인 여성적 원리와 유사한 면은 생명여성주의가 배려, 보살핌의 성격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명적 감수성의 지평이 논리적으로 여성적 원리보다 훨씬 더 넓다. 생명적 감수성은 무성적으로 양성에 모두 쓰일 수 있는 보편성을 가진 용어이며, 개념이다. 생명여성주의는 '생명적 감수성'을 여성주의의 윤리로서 제안한다.

이 제안의 배경에는 본질주의에 대한 여성주의자들의 거부감이 자리하고 있다. 여성주의자들 가운데, 그리고 생태여성주의자들 가운데 여성적 원리(feminine principle)를 여성주의의 윤리로서 강조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여성주의자 일반과 생태여성주의자 가운데는 여성적 원리가 가부장제로부터 양성이 모두 해방되기 위한 가장 의미있는 가치관이라는 주장에 반대하고 있다. 이 반대 논의는 '재생산하는 자연의 성격과 닮은 여성이 양육하고, 살림하는 "여성 특유의 보살핌과 배려의 본질이 있다"는 본질주의(essentialism)에 대한 맹렬한 비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여성적 원리를 본질화 시키는 것에 거부감을 가지는 여성주의자들은 여성이 자연과 닮았다거나 여성적 원리라는 선험적 특성을 지니고 있다는 접근에 반대하는 것이다.

생명여성주의는 전략적으로 여성주의적 원리(양성평등)와 생명적 감수성을 서로 접목시킨다.

"여성적 원리"(배려 등)는 본질주의 논쟁 때문만이 아니라, 용어의 외연적 틀에 의하면 여성에게만 있는 것으로 상정하는 문제가 있다. 남성이 가사노동, 양육, 살림에 참여할래야 할 수 없도록 성분리적으로 개념화되어, 남녀의 성역할에 경계선을 그은 결과가 된다.

이렇게 되면, 남성이 "배려" 역할에 동참하려면 여성적 역할로 젠더(사회적 성별)의 변화가 와야하는 것으로 전제되어 있다. 그런데, 생물학적으로도 여성이라는 성별이 있다. 그러니, 남성이 생물학적으로 여성이 될 수 없는 불가능한 조건과 용어가 겹치므로 "배려"할 수 없는 논리적 상황에 처해 있다.

생명적 감수성이 양성평등을 원칙으로 하는 여성주의적 원리에 의해 거듭날 때, 양성관계와 사람과 생명의 관계가 바로 서고 살릴 촉매 역할을 할 수 있다. 이때 생명적 감수성은 성차별을 철폐하고, 또한 남성의 성역할에 대해서도 해당되는 보편성을 가진 변화의 촉매가 될 것이다.

III. 맺는 말: 생명여성주의 지구/지역의 관계, 동질성, 차별성, 보편성의 의미

생명여성주의 논의를 통해 글은 생태여성주의와의 동질성과 차별성, 그리고 그 과정에서 소문자 생태여성주의에도 해당하는 보편성과 남성을 포함한 양성 모두에 해당하는 보편성을 추구해 보았다.

생태여성주의에서 우회적으로 접근한 "생명"의 성격과 생명의 성격에 근거한 인식체계를 부각시켰다. 이 과정에서 생태여성주의가 지금까지 직접적으로 다루지 않고 자연을 매개로 한 여성문제를 생명여성주의가 "젠더화된 생명"의 문제로 부각시킨 긍정적 측면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층위를 지나치게 강조하여, 생태여성주의가 가진 강점인 사람과 자연과의 관계를 사장시키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접근해야겠다.

생명여성주의는 우리가 여성의 현실을 파악하고, 사회과학적 의미를 해석할 때 여성이 위치하고 있는 공간의 지역성의 중요함을 지적하고, 젠더화된 생명에 반하여 생명적 인식을 바탕으로 생명여성주의적 접근의 틀을 제시하려 하였다. 우리의 갯벌할머니에서 시작한 생태여성주의를 해야지, 생태여성주의에서 시작한 갯벌할머니는 지역여성을 서구적 이론으로써 대상화하는 것이다. 갯벌여성의 삶 자체가 우리에게 중요하지 생태여성주의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생명여성주의의 얼개의 모색은 이제부터 한국여성의 경험에서 개념화하는 작업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 한국 문화와 지역, 여성의 삶에 대해 더욱 활발히 논의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생명여성주의의 모색에는 한국적 특수성의 의미뿐만 아니라, 보편성의 의미도 가진다. 이 보편성의 의미는 이중적이다. 지구/지역의 관계의 차원에서 볼 때, 생명여성주의가 지역에서 가지는 의미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생태여성주의에 보편성으로 접목될 수 있는 요소들이 있다. 예를 들어 "생명이 주체다", "생명이 역동적으로 상호영향력을 가지는 에너지다", "시간에 대한 곡선적 이해와 상호성의 극복", "생명적 감수성이 생명적 원리와 양성평등의 원리를 연결하는 고리"라는 원칙들은 소문자 생태여성주의에 대한 보편성과, 남성까지 포함한 양성 모두에 해당하는 생명적 삶을 위한 접근법으로서 보편성을 가진다.

참고로, 생명여성주의의 실천은 환경운동, 여성 몸 연구, 생명공동체 운동, 생명여성적 문화 운동, 생명여성주의적 상담, 생명적 감수성 훈련 등에서 가능하다.

끝으로, 보다 입체적인 생명 여성의 상을 가지기 위해서는 핵심 개념들의 여성학적, 생명적, 한국적 성격을 적절히 채용했어야 하는데 아직 미진하다. 현재 생명여성주의는 개념화하면서 재개념화 하는 단계에 있다. 생명여성주의는 '구성물'이므로, 이것이 생명 여성의 성찰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앞으로 생명학과의 대화를 통해, 그리고 구체적으로 연구에 활용한 후 결과물들을 통해 논의를 수정 보완하면서 현상과 이해 사이의 접근 틀을 바로 잡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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