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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kwdi.re.kr/data/thesis/2004-NO1-4.pdf

 

 

                                생태여성주의와 생태여성주의 문학비평
                                           - 문제점과 전망 -


                                                                                                                                                               황 선 애(한신대학교 학술원 연구원)


초 록


본 논문에서는 서구에서 1970년대에 형성된 생태여성주의 이론을 개괄하고 특히 문화생태여성주의로 분류되는 이론의 입장에 초점을 맞추어 그 문제점과 발전 가능성을 타진한다. 이때 특히 문화 생태여성주의의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본질주의적 입장을 ‘여성성-모성’에 대한 논의를 통해 비판적으로 재고한다. 한편 서구 담론에서 사용되어온 여성과 자연의 은유에 대한 문화 생태여성주의자들의 분석은 문화비평의 새로운 장을 연 중요한 업적으로 평가될 수 있다. 이같은 문화비평의 시도를 보다 발전적으로 지속할 수 있는 논의의 장으로서 북미를 중심으로 새롭게 형성되고 있는 생태여성주의 문학비평을 소개하고 문화비판적 차원에서 여성과 환경의 문제에 접근할 수 있는 가능성을 타진한다.



1. 서 론


서구에서 1960년대에 환경문제가 이슈로 등장하면서 페미니즘의 새로운 방향으로서 70년대에 형성되어 발전된 생태 여성주의 운동은 지난 30여년 동안 다양한 형태로 분화되어 전개되어왔다1). 60년대 페미니즘 운동은 여성과 남성의 동등권을 주장하면서 여성의 지위향상을 위해 투쟁하였고, 교육의 균등한 기회와 고용에서의 차별을 타파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데에 크게 기여한다. 자유주의 페미니즘이라고 분류되는 이들의 노력과 결과는 여성운동에 있어서 중요한 업적으로 평가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부장적 사회체계에 대한 근본적 비판 없이 이에 편입되고자 함으로써 그 한계점을 드러낸다. 이들의 환경문제에 대한 시각 역시기존의 자연지배 구조 내에서 새로운 법과 규제를 만듦으로써 환경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환경 개량주의적 입장을 따른다 (머천트,2001: 254-256). 환경문제에 대한 개량주의적 입장의 한계점은 인간과 자연의 문제를 보다 근본적으로 성찰해야 한다는 심층생태주의자들에 의해 비판받는다 (머천트, 2001: 125-153). 심층생태주의와 맥을 같이 하면서 자유주의 페미니즘에 대해 비판적인 새로운 페미니스트 운동이 이와 함께 전개되는데, 급진적 페미니즘으로 분류되는 이들은 여성과 남성의 차 이를 강조하고 전통적으로 비하되어온 여성성의 가치들을 보다 우월한 것으로 평가하고자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자연의 오용과 파괴가 남성 주도적 사회 체계 속에서 억압되어 온 여성의 위치와 상이하지 않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환경문제와 여성문제를 연계시키는 생태여성주의가 탄생한다. 이들은 자연과 대지가 여성과 어머니에 비유되는 오래된 이미지를 기반으로 하여 여성의 생물학적 특징과 자연의 생명력을 연관시키고 여성성의 가치(생명의 탄생, 양육, 보호 등)를 환경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잠재력으로 평가한다. 즉 서구 문화사에서 가부장제에 의해 여성적 원리가 규정되고 비하되어온 것이 자연의 억압과 파괴의 역사와 무관하지 않다고 보면서 이 둘의 연관성을 강조하는 한편, 이러한 여성과 자연의 연관관계를 환경문제 해결을 위한 추동력으로 제시하는 것이다.


본 논문에서는 생태여성주의 이론을 재고하면서 특히 초기 생태여성주의를 주도한 문화 생태여성주의에 초점을 맞추어 그것의 문제점을 논의하고 동시에 문화 생태여성주의가 발전적 형태로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하고자 한다. 특히 문화 생태여성주의에서 논의되는 ‘여성성’에 대한 담론을 ‘모성’ 논쟁과 연결하여 재고하고 이를 통해 ‘여성성’, ‘모성’이 생태주의 운동의 맥락에서 갖는 의미를 타진할 것이다. 그리고 여성과 자연의 은유적 연관성을 역사적으로 다양한 담론의 분석을 통해 밝혀내고 있는 문화 생태여성주의의 논의가 어떻게 발전적 형태로 지속될 수 있는 가를 살펴볼 것이다. 이때 생태여성주의 문학비평은 문화 생태여성주의의 발전적 형태로서 문화비평의 장으로 제시될 수 있다.

 

 

2. 생태여성주의 담론의 전개

 

문화 생태여성주의로 분류되는 급진적 페미니즘 내부에서도 여성의 생물학적 특징을 강조하고 여성과 자연을 동일시하는 본질주의적 입장의 부류와 여성과 자연의 동일성에 대한 주장을 비판하는, 소위 문화구성주의 입장의 부류가 대별된다 (문순홍, 1996: 41-42). 후자는 전자가 여성운동이 극복하고자 하는, 서구문화의 남성과 여성, 문화와 자연이라는 이분법적 사고의 틀 속에 다시 갇혀버리게 된다는 이유로 이를 비판한다.


문화구성주의 입장에서 볼 때 자연 자체는 여성적 원리로 칭해지는 속성과 남성적 원리라는 두 가지 속성을 모두 포함하고 있는데, 이러한 속성이 가부장적 문화체계 속에서 서로 대립되는 가치로 평가되고 위계적으로 규정되었을 뿐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문순홍, 1996: 42-43). 이 같은 입장에서 여성과 자연의 연관성을 역사적으로 추적한 일부의 생태여성주의자들은 서구 문화사에서 학문적, 사상적 담론을 통해 여성과 자연의 은유가 억압과 지배의 기제로 사용되어 왔음을 밝혀낸다.2)


사회 생태여성주의 혹은 사회주의 생태여성주의자들은 이 같은 문화생태여성주의의 입장이 - 그것이 본질주의든 문화구성주의 입장이든 -환경문제에 접근하는 데에 있어서 한계가 있음을 비판하면서 환경과 여성의 문제를 보다 넓은 맥락에서 다루어야 한다고 주장한다.3) 이들은 자연과 여성의 억압을 자본주의적, 가부장적 경제체제와 사회체제의 문제로서 파악하며, 또한 탈식민주의 이론과의 연계 속에서 제 3세계의 여성문제와 환경문제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서구적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대안적 정치를 모색한다.4) 예를 들어, 사회생태주의 진영에 속하는 자네트 빌 (Biehl, J. 1991: 9-25)은 본질주의적 입장에서이든, 역사적 구성주의 입장에서이든 여성과 자연의 연계를 강조하는 것은 또 다시 ‘여성성의 신화’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잘못을 범하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생태여성주의는 이처럼 지난 30년간 다양한 입장에서 환경문제와 여성문제를 논의하고 있는데, 관심의 초점에 따라 크게 문화 생태여성주의와 사회 생태여성주의로 대별할 수 있다.5) 둘 다 자연과 여성이 가부장제 서구문화사에서 피지배적 위치에 있어 왔다고 보지만 이 둘의 연관성을 논의하는 방식에 있어서는 차이를 보인다. 생물학적, 심리적 관점에 근거하여 여성을 자연과 본질적으로 닮았다고 보든, 아니면 특정한 여성적 성향이 여성의 역할에 의해 역사적으로 구성되었다고 보든, 전자는 여성과 자연의 연관성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고 특히 문화적 영역에서 생태주의 운동을 이끌어가는 반면에, 후자는 자연과 여성의 연관성을 사회・경제적맥락에서 분석하고자 한다.


문화 생태여성주의로 분류되는 페미니스트들의 활동은 위에서 이미 언급하였지만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상당히 다양한 면모를 보인다. 여성의 생물학적 구조에 근거하여 자연과의 연관성을 강조하고, ‘여성성’의 가치를 재평가하고 극단적인 경우에는 우월한 것으로 주장하는가 하면, 영성적 페미니스트들은 자연숭배의 전통에서 ‘여신’의 부활을 꿈꾸거나 ‘영성’의 회복을 위해 노력한다. 그런가 하면 자연과 여성의 지배가 서구역사에서 어떻게 다양한 담론 속에서 구성되고 해석되면서 재활용되어 왔는지를 담론의 분석을 통해 밝히기도 한다. 이 같은 다양한 문화 생태여성주의의 입장들은 사회 생태여성주의의 입장에서 볼 때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초기의 생태여성운동이 형성되고 발전하는 과정에서 이를 이끌고 나가는 추진력을 행사하면서 주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또한 여성의 삶과 자연 파괴의 연관성을 보다 실제적 차원인 정치・경제・사회구조 속에서 밝혀내는 사회 생태여성주의와는 달리 여성과 자연의 연관성을 문화적 상징체계를 대상으로 하여 논의하는 문화 생태여성주의는 문화비평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고 볼 수 있다.

 


3. 문화 생태여성주의에 대한 비판과 ‘여성성,모성’에 대한 담론


생태 여성주의는 여성과 자연이 서구의 가부장적 역사 속에서 억압되고 지배되어 왔다는 인식에서 출발하였고 이는 페미니즘 운동과 환경운동의 연결고리가 되어 초기 생태여성주의 운동의 중요한 추진력이 되었다. 하지만 여성이 생물적, 심리적 차원에서 본질적으로 자연에 보다 가깝다는 일부 생태여성주의자들의 주장은 많은 비판을 받게 된다. 초기 생태여성주의 운동에 큰 영향을 미친 수잔 그리핀은 60년대의 페미니즘 운동에서 수확한 가장 중요한 성과가 여성에 대한 차별이 가부장제 역사의 구성물이라는 인식이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여성과 자연에 대한 본질주의를 답습하고 있다고 믿는 생태여성주의에 대한 오해를 풀고자 한다.6)


하지만 일부 생태여성주의자들이 본질주의적 입장을 고수하지는 않더라도 여성의 역할이 실제 오랜 기간에 걸쳐 출산과 육아를 담당하고 가사를 돌보는 것으로 규정되어 왔기 때문에, 사회화로 인해 여성이 남성보다 더 모성적 자연과 가깝다는 입장을 견지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 같은 입장에 있는 생태여성주의자들은 모성적 여성성이야말로 환경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있어서 절대적 가치로서 작용할 수 있다고 보며 이러한 여성성을 보다 적극적으로 개발할 것을 지향한다. 생물학적 본질주의이든 문화구성적 생태여성주의의 입장이든 이들은 ‘여성성’과 ‘여성적 원리’를 강조하면서 여성이 자연과 맺는 특별한 관계를 강조하는 경향을 보이는 것이다. 이러한 논의에서 중요한 것은 이들이 말하는 자연을 닮은 ‘여성성’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특히 ‘어머니 대지’와 같은 비유에서 보듯 생명력과 보호, 양육의 의미가 강조되는 모성으로서의 여성성을 얘기한다면, 이러한 모성이 여성의 생리적 구조에 근거해서 ‘여성성’의 가치로 규정되고 실제로 여성에게만 존재하는 특성으로 볼 수 있는 것인지를 물을 수 있을 것이다.


1) ‘모성-여성성’과 환경운동
원시신앙에 나타나는 여신숭배는 모성적 원리7)에 기반한 것으로 원시적 삶의 형태에서 여성의 출산, 양육이 차지하는 중요한 역할이 반영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여성의 역할이 오랜 기간 동안 자녀의 출산과 양육에 제한되어 왔던 이유로 여성성은 당연히 모성으로 대표되었다.8) 특히18-19세기 서구 산업화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면서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이 분리되고 이때 모성으로서의 여성성이 보다 강조된 사실은 이미 잘 알려진 바다.9) 하지만 20세기를 거쳐 21세기를 사는 현재, 여성의 사회진출은 보다 활발해지고 있고 이제 여성의 역할은 더 이상 출산과 양육에 머물고 있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여성성’은 과연 어떤 식으로 정의될 수 있을까? 도대체 모성적 의미의 ‘여성성’이란 개념을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 한 것인가? 무엇보다 생태계 위기를 살고 있는 현재 상황에서 ‘모성성’을 생태위기의 극복을 위한 전략으로 사용할 경우 문제점은 없는가 물을 수 있다.

 

독일의 사회학자이며 생태여성주의자 마리아 미스 (Maria Mies)는 “생태여성론이 무엇이고, 생태학적 기반을 유지하는 노력이 왜 여성들에 의해 이루어지는지를 아는 데는 ‘여성과 자연’의 유사성에 대한 그 어떤 담론도, 그 어떤 논쟁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라고 잘라 말한다 (미스, 1996:14). 그녀는 제 3세계의 여성들에게 있어서 자연의 문제는 ‘여성과 자연’의 유사성에 대한 추상적 담론을 통해서가 아니라 구체적 삶의 문제로 나타난다고 환기시키고 있다.


빌 역시 문화 생태여성주의자들의 ‘여성성’의 가치에 대한 논의를 비판하면서 자신이 이러한 경향으로 대표되는 ‘생태여성주의자’로 불리는 것을 거부하는 태도까지 보인다. 빌은 70년대 급진적 여성주의자들이 여성의 섹슈얼리티의 해방을 부르짖고 이를 위해 여성의 생물학적 차이를 강조한 것은 중요한 업적으로 평가하지만 이 맥락에서 여성의 생물학적 구조를 ‘여성성’으로 규정하는 잘못을 저질렀다고 비판한다. 왜냐하면 여성의 생물학적 구조 (woman’s biology)는 ‘여성성’ (woman’s nature)을 시인하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로 봐야 하기 때문이다 (빌, 1991: 11). 여성이 남성과 다른 생물학적 차이로 인해 선천적으로 ‘돌봄’, ‘양육’의 자질을 타고난다는 것은 하나의 편견이며 실제 역사적으로 가부장제의 억압 기제로 이용되어 온 허구일 뿐이라고 강조한다. 빌은 특히 생태여성주의 초기에 영향력을 행사한 그리핀이나 스프레트낙이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자연의 체화로 신비화하면서 여성의 생물학적 본질을 생태적 존재로 규정하는 것을 비판한다. 빌은 생태주의 운동에서 여성이 이로 인해 또 다시 수동적이고 감성적인 역할에 제한되는 문제점이 있다고 지적한다. 빌은 여성과 자연의 연계가 가부장적 사회의 문화적 구성물임을 인식하는 생태여성주의자들조차도 여성적 가치, 즉 생명의 담당자라는 의미의 ‘여성성’을 강조하는 모순을 보인다고 지적한다.10)


미스와 빌의 입장은 ‘여성과 자연’의 연관 관계에 대한 논의가 추상적으로 머무는 것을 비판하고 ‘여성과 자연’의 연관관계를 실제 여성의 삶과 자연・환경의 연관 속에서, 그리고 보다 넓게 정치・경제 구조의 맥락에서 파악할 것을 요구한다. 그리고 그것이 여성 환경운동의 실천으로 이어져야 함을 강조한다. 실제로 여성 환경운동의 방향은 보다 실천적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여성 환경운동이 실천되는 과정에서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것은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여성의 역할이다. 즉 사회적으로 여전히 여성의 역할에서 중요한 것으로 여겨지는 것은 출산과 양육,가사노동이고 이는 결국 환경운동에서도 여성의 역할을 가정생활 영역에 제한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로 인해 환경운동에서 여성이 담당할 수 있는 다양한 역할이 제한될 뿐 아니라 모성을 강조한 환경운동은 역으로성별 분업을 고착화하는 데에 일조하게 된다 (강수영 외, 1996: 76-77).


즉 ‘모성-여성성’의 강조는 환경운동에 걸림돌이 될 뿐 아니라 이미 여성운동에서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는 성별 분업을 고착화함으로써 여성운동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못하다. 이런 맥락에서 여성적 가치로 대변되는 ‘모성-여성성’에 대한 논의는 환경・생태운동에 있어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70년대 서구에서 여성운동이 전개되면서 ‘모성’에 대한 논쟁 역시 활발히 이루어진다 (이연정, 1995: 163-164). 이때 여성의 생물적 모성이 억압의 원인이 된다고 보는 입장이 있는가 하면 재생산을 여성해방의 원천으로 보면서 생물적 모성을 옹호하기도 한다. 미국의 시인이자 비평가인 아드리엔느 리치는 이미 1977년에 발표한 모성의 신화 에서 여성의 생물적 특징으로서의 ‘모성’과 이데올로기적 담론체계로서의 ‘모성’을 구분한다. 전자는 모든 여성이 잠재적으로 출산능력이 있고 자녀에 대한 관계를 가질 수 있다는 의미에서이고 후자는 이 잠재성을 남성 통제 하에 안전하게 남겨두는 것을 목표로 하는 제도로서의 의미를 갖는다 (리치,1995: 9). ‘모성’을 얘기할 때 이 같은 생물적 모성과 제도로서의 모성 구분은 상당히 중요하다. ‘모성’을 부정하는 입장은 모성이 가부장제에 의해 규정되면서 여성의 억압기제로 사용되었다고 보는 반면, ‘모성’을 찬양하는 입장은 모성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가부장제가 문제라는 입장에서 모성을 ‘자연스러운’것으로 보고 옹호한다. 전자가 제도로서의 모성을 부정함으로써 모성의 성취적 요소를 간과하였다면, 후자는 모성을 ‘자연스러운’것으로 봄으로써 제도적 모성의 억압적 측면을 간과하는 위험에 빠질 수 있다 (이연정, 1995: 165). 이러한 극단적 입장들은 사실 여성의 생물적 모성에 대한 부정이라고 하기보다 둘 다 이데올로기로서의 ‘모성’이 갖는 상징적 의미에 대한 입장의 차이로 이해할 수 있다. 이 같은 맥락에서 생물적 모성을 부정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이를 ‘자연스러운’것으로 규정하지 않는 입장이 가능한지, 다시 말해서 여성이 어머니가 될 수 있는 잠재성이나 모성을 통한 성취감을 부인하지 않으면서도 여성은 당연히 모성으로 대표될 수 있다고 보지 않는 입장이 가능한지, 그리고 그것이 여성의 환경운동과 관련해서도 견지될 수 있는가를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2) ‘모성’ 강조의 문제점과 ‘생태적 감수성’
환경문제 해결을 위한 논의에서 여성과 환경의 특별한 관련성이 얘기되고 있는 이유는 자연과 여성이 모두 가부장제의 이분법적 논리에 의해 지배되어 왔다는 생태여성주의자들의 인식이외에도, 보다 현실적으로는 환경문제가 사회적으로 여성에게 더욱 큰 부담과 피해를 가져오기 때문이기도 하다.11) 또 다른 한편, 여성들은 모성의 역할로 인해 환경문제에 보다 민감하게 대응하고 따라서 환경운동에 있어서 여성의 역할은 중요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진아, 1996: 23-24). 하지만 환경문제의 영향과 대응에 있어서 여성이 생물적 특성과 모성적 역할 때문에 특별한 위치에 있다 하더라도 환경・생태운동에서 ‘모성적 여성성’을 강조하는 것은 여러면에서 문제가 있고 또한 바람직하지 못하다.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여성의 ‘모성’ 강조는 여성이 출산의 능력으로 인해 양육과 돌봄의 자질을 자연적으로 타고 난다는 허구를 생산한다. 실제로 출산과 양육은 여성에게 많은 내면적 갈등과 육체적 부담을 수반한다. 그리고 양육은 어머니이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잘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라 끊임없는 시행착오와 의식적 교육방법을 동원하는 노동행위이다.


따라서 미화된 ‘모성’의 의미는 여성의 관점에서 볼 때 비현실적이고 강요된 이데올로기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모성’을 강조함으로써 환경운동에 있어서도 여성은 가정이라는 사적 영역에 제한적으로 머물게 하는 위험이 있다. 이로 인해 여성이 보다 다양한 영역에서 환경운동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이 제한된다. 이와 관련해서 ‘모성’ 강조의 또 다른 근본적 문제점을 언급할 수 있다. 즉 페미니즘의 발전 과정에서 우리는 ‘여성’이 단수로 사용될 수 없고 인종, 계급, 나이, 성적 경향 등에 따라 다양한 ‘여성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다. 따라서 ‘모성’을 강조하면서 ‘여성’을 하나의 그룹으로 규정하는 것은 다양한 여성들의 삶의 형태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 될 뿐 아니라 환경운동에서도 이들이 다양한 삶의 영역에서 함께 참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처음부터 배제하는 것이 된다. 여성의 ‘모성’ 역할 규정은 또한 환경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있어서 소극적이고 피상적으로 대응하도록 만든다. 이는 환경문제가 현실적으로 는 경제・사회 구조적 문제이며 또한 가부장제와 연관되어 있음을 인식하는 데 장애가 될 수 있다. 또한 ‘모성’ 강조는 생태주의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바에 역행하는 효과를 낼 수 있다. 왜냐하면 생명과 돌봄의 가치는 여성 고유의 가치가 아니라 인간 모두가 함께 개발해야 할 가치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보살핌의 태도는 타고나기보다 교육에 의해 길러지는 것이고 인식을 통해 가능한 것이다. 인식은 인간의 직접적 경험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고 이런 의미에서 근본적으로 생명의 가치를 깨닫고 돌봄의 태도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여성에게 전가된 자녀 양육의 몫을 남성이 함께 나누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 지점에서 환경문제는 이미 언급한 성별분업의 타파라는 여성운동의 중요한 관건과 다시 연결된다. 여성운동이 추구하는 성별분업의 타파는 이처럼 환경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있어서도 근본적인 중요성을 갖는 것이다. 남성과 여성이 동등하게 육아와 가사를 담당하게 될 때 환경문제는 보다 근본적 차원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성에 얽매이지 않는 역할 분담은 다양성과 평등성을 지향하는 생태주의를 실천하는 기초가 될 수 있다. 후기산업사회를 사는 오늘날 여성의 역할이 보다 다양해진 만큼, 남성의 역할에도 변화가 있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의식의 변화가 필요하고, 이러한 맥락에서 ‘모성’에 대한 논의는 이제 ‘부성’에 대한 논의와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모성-여성성’을 강조하기보다는 남녀를 불문하고 ‘생태적 감수성’을 개발하는 교육을 통한 의식의 변화를 강구해야 할 것이다. 여전히 모성 이데올로기, 현모양처 이데올로기가 엄존하고 있는 한국사회에서 그 동안 법과 제도적으로 여성의 위치가 많이 개선되었긴 해도 남녀 역할에 대한 고정 관념은 쉽게 변화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모성’은 여전히 강조되고 있고12) 이는 대지, 고향, 생명과 같은 은유의 사용을 통해서도 드러난다.13) 이 같은 모성이데올로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여성 홀로 책임져온 모성 역할을 남성 및 사회, 국가가 공유하며, 보살핌의 가치를 사회적으로 규범화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가족의 민주화를 통한 성별분업 지양과 모성 개념의 재정의에 의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14)


4. 문화 생태여성주의의 문화비평


문화 생태여성주의자들이 추구하는 바가 본질주의를 토대로 하는 경우 문제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이 이루고자 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남녀가 평등하고 인간과 자연이 공생하는 생태적 사회이다. 문화 생태여성주의자들은 이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인간의 의식이 변해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이들은 인간의 의식을 지배하는 문화적 상징체계를 비판적으로 분석한다. 이들의 문화비평은 문화적 상징체계가 역사적으로 생성・소멸되면서 인간의 행동을 결정짓고 사회적 영향을 끼친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자연과 여성의 은유적 연계성을 역사적으로 이루어진 담론을 분석함으로써 밝혀낸다.


환경문제의 근본적 뿌리를 밝혀내기 위해서 서구 문화사에서 자연에 대한 인식의 패러다임을 천착한 머천트는 자연의 죽음 에서 근대 과학의 발전을 통해 자연 인식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이 이루어지고 이를 계기로 자연에 대한 지배가 정당화되는 인식의 변화가 일어난다고 본다 (머천트, 1980). 머천트는 또한 여기서 ‘자연’과 ‘여성’이 역사적으로 지배담론에 의해 서로 연관되어 비유되고 규정되어 온 것을 다양한 자료들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고대 그리스로부터 르네상스기까지 자연과 여성의 은유가 긍정적・부정적 형태로 나타나긴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유럽인들은 여전히 우주를 육체와 영혼과 정신을 가진 살아있는 유기체로, 그리고 대지를 숨쉬고 순환하며 생식하고 배설하는, 만물을 기르는 어머니로 이해하는 것이 지배적이었다 (머천트, 1980: 99-126). 하지만 서구의 근대 과학 혁명은 이러한 우주에 대한 애니미즘적이고 유기체적인 가정들을 제거함으로써 ‘자연의 죽음’을 가져왔다. 이후 자연과학과 기술의 발전을 통해 자연의 지배가 확대되고 산업화의 결과로 자연의 개발과 파괴는 걷잡을 수 없이 진행된다. 머천트는 이처럼 서구의 근대적 과학이 발전되는 과정에서 기계적 세계관에 의해 자연이 지배의 대상이 되고, 이때 자연과 여성이 이러한 기계적 세계관의 은유를 통해 개념화되는 것을 밝히고 있다.

 

수잔 그리핀 역시 여성과 자연 에서 서구 문화사를 통해 여성과 자연이 은유로서 서로 관련되어 비유된 사례들을 다양한 출처를 통해 밝히고 있다. 그녀는 서구문화사에서 이성과 물질의 이분법이 인간/남성과 자연/여성의 이분법과 연관되어 전개된 다양한 담론들을 추적하여 분석한다. 그녀는 여성과 자연의 연관은 역사적으로 이 둘을 폄하하고 지배하기 위한 이데올로기로 작용하였다고 보면서 여성이 자연과 가깝다면 그것은 담론을 통한 사회문화적 구성의 결과라고 주장한다 (그리핀, 1978: x-xi).


생태여성주의의 한 부류인 문화적 생태여성주의자들이 내놓은 이 같은 문화사적 담론 분석은 흥미로운 문화비평의 장을 열어주었다고 평가될 수 있다. 자연과 여성의 은유가 문학, 예술, 의학, 정치, 심리학 등 제반 학문적 담론에서 나타나는 양상을 역사적으로 추적하고 있는 이들의 업적은 자연과 여성에 대한 이미지가 어떻게 권력의 담론을 통해 생산되고 이용되는지를 보여준다. 이러한 이들의 업적은 현대사회에서 여전히 나타나는 이 같은 은유의 양상에 대해 (예를 들어 영화, 광고, 드라마에서) 보다 비판적인 태도로 접근할 수 있는 인식의 방향을 제공하고 이를 통해 인간의 사고의 틀을 재조정하는 데에 간접적으로 기여할 수 있다. 새로운 인식과 함께 의식의 변화를 가능하게 한다는 면에서 생태여성주의가 문화비평을 통해 생태주의운동에 끼칠 수 있는 영향은 적지 않다. 따라서 이들의 업적은 계속해서 발전적 형태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이때 문화생태여성주의의 발전적 형태의 하나로서 생태여성주의 문학비평은 생태주의 담론과 의식변화에 기여할 수 있는 논의의 장으로서 많은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5. 문화비평의 장으로서의 생태여성주의 문학비평


생태 문학비평 내에서 여성주의 시각에서 생태주의를 논하는 생태여성주의 문학비평 (Ecofeminist Literary Criticism)은 생태여성주의에서 이루어진 다양한 논의들을 이론적 배경으로 새로운 시각에서 문학비평을 시도한다. 생태문학 비평의 역사가 그리 길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로 생태여성주의 문학비평 역시 현재 새롭게 형성되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여성의 문제를 자연과 연관시켜 논의한 개별적 연구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15) 본격적으로 생태여성주의 문학비평이라는 이름을 건 연구들은 1990년대 후반 이후 본격적으로 발표되고 있다.16) 문학과 환경 학회에 소속된학회지 ISLE (Interdisciplinary Studies in Literature and Enviroenment)의 편집장이기도 한 패트릭 머피 (Murphy, P.)는 생태여성주의 문학비평을 주도하는 사람 중의 한 사람으로서 생태여성주의 문학비평의 방법을 이론적으로 천착하면서 동시에 문학비평을 실천하고 있는 경우이다. 그는 생태주의 논의들을 이론적 성찰을 통해 비판적으로 수용하면서 이를 문학비평에 적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심층생태주의자들의 가이아이론을 비판적으로 재고하면서 생태주의적 사회를 이루고자 하는 과정에 있어서 이미지의 잘못된 사용으로 인해 생태주의가 극복하고자 하는 남성과 여성, 인간과 자연, 이성과 몸과 같은 이분법적 구도를 재반복하는 오류를 범할 수 있음을 경고 한다 (머피, 1995: 59-69). 머피는 어머니 대지의 은유나 여신 개념이 가부장제 이전에 존재하였더라도 가이아 여신의 이미지는 가부장제 사회인 그리스 로마시대를 거치면서 이미 이분법적 구도에 의해 해석된 이미지로 전해져 왔다고 본다. 그리고 심층생태주의자들이 가이아 이미지를 사용함에 있어서 역시 이러한 이분법적 구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들은 지구를 가이아로 지칭함으로써 지구의 신성을 강조하고자 한 의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인간(남성)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따라서 가이아의 여성적, 수동적 이미지를 반복하고 있다는 것이다 (머피, 1995: 61-62). 이러한 비판은 가이아와 여신숭배를 통해 여성성의 회복을 꾀하고, 여성성을 보다 우월한 것으로 주장하는 일부 페미니스트들의 경우에도 적용될 수 있는데, 이들 역시 이분법적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머피는 소위 생태주의 시인으로 분류되는 작가들조차 이러한 이분법적 이미지의 사용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작품 분석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머피,1995: 64-66). 그는 가이아라는 이미지의 사용은 그것이 지구의 신성을 환기시킴으로서 생태계에 대한 의식전환을 유도하려는 의도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생태주의를 위해서는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결론짓고 있다. 그러면서 우리는 더 이상 인간의 정체성을 성적으로 규정하지 말아야 하며,복합적이면서 개별성을 인정하는 새로운 인간상에 대한 신화와 이미지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머피, 1995: 69).


머피의 문학비평의 예에서 보듯이 생태주의의 이론들은 문학비평에 수용되는 과정에서 다양한 관점을 제시하면서 분석의 틀로 이용될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생태주의 이론들의 다양한 입장들만큼이나 이론의 문제점 역시 함께 지적될 수 있다. 머피는 무엇보다 생태주의자들조차 여성과 남성의 이분법을 무의식적으로 사용하며 여성과 자연의 은유적 사용을 통해 이를 재현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이처럼 생태 문학비평에 있어서 우리는 생태주의적 담론에서 극복하고자 하는 인간중심적, 남성중심적 사고체계를 무의식적으로 재현하고 있는지를 비판적으로 검토해야 할 것이며 남성과 여성의 대립적 구도를 반복하는 오류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야할 것이다.


이 같은 대립적 구도와 ‘여성성-모성’과 관련해서 한국의 생태여성주의 문학비평에 나타나는 몇 가지 경향은 상당히 시사적이다. 여성주의 관점에서 가부장제를 비판하고 생태적 삶을 추구하는 여성작가들의 작품을 분석하는 비평에서 여성성과 남성성의 대립구도를 이론의 틀로 하여 여성성의 우위를 보여주고자 하는 경우가 눈에 띈다. 이덕화는 「여성문학과 생명주의」에서 생명주의 문학을 추구하는 몇몇 여성작가의 작품을 분석하고 있는데, 생명의 특성인 “끊임없는 변화의 영속성, 흐름”을 “포착하기 위한 감각성, 세심한 주의력, 끊임없는 변화의 영속성은 바로 권위주의적 남성의 속성과 다른 여성의 속성이며 그렇기에 여성들은 자연친화적이다” (이덕화, 2000: 177)라고 말하면서 여성성과 남성성의 대립을 재현하고 있다. 또한 남성적 세계관을 광물성, 여성적 세계관을 식물성에 비유하고 있고, “물질성, 이성, 형체, 경계, 소유, 단단함의 특징을 근간으로 하는 남성의 이성중심적 사고와는 달리, 부드러움, 흐름, 무소유,상호침투, 무정형, 감각성, 자연성의 특징을 근간으로 하는 여성의 직관주의적 사고는 사물과 정신, 모든 현상들이 별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생명 현상 속에 어우러져 있다는 유기체적 세계관을 형성한다”라고 결론에 쓰고 있다 (이덕화, 2000: 195-196). 여기서는 남성성과 여성성의 상투적이고 유형화된 대립구도를 비평의 이론적 틀로 사용함으로써 문학비평 역시 추구해야 할 생태주의적 인식, 즉 이분법적 대립이 아니라 다양성과 복합성의 인정이라는 인식 방향에 거스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여성과 환경의 문제를 여성작가의 작품을 통해 조명하고 있는 한기욱의 「우리 시대의 사랑・성・환경 이야기」(한기욱, 2003: 68-99)는 또 다른 면에서 시사적이다. 그는 90년대 대표적 여성작가인 신경숙과 공선옥의 작품을 생태주의적 시각에서 해석하면서 전자의 경우 관능적인 것과 생태적인 것의 분열과 대립이 형상화되고 있고, 후자의 경우는 ‘생태적인 기획’이 보다 표면적으로 드러나면서 이것이 무엇보다 모성적・생태적 열망의 구현을 통해 나타난다고 해석한다. 특히 공선옥의 경우 본질론적인 여성주의와 ‘모계제’를 정당화하는 경향이 보임을 지적하기도 한다 (한기욱, 2003: 91). 한기욱의 비평에서 흥미로운 점은 무엇보다 그가 결론에서 던지고 있는 물음이다. 즉 그는 두 작가의 소설에서 “제대로 된 성인남자가 부재한다”고 하면서 이러한 “남자 부재의 현상이 우리 현실의 반영인지 아니면 여성작가의 열망이 낳은 결과인지 애매하다”고 묻고 있다.


그는 그것이 시대의 반영이라면 ‘남자다운 남자’가 필요한 때이고 이때 ‘남자’가 무엇인지 생각해볼 일이라고 끝을 맺고 있다. 한기욱은 자신의 물음의 반쪽만을 답하고 있는데 여기서 답하지 않은 다른 반쪽의 물음은 생태여성주의 비평의 관점에서 중요한 물음이라고 할 수 있다. 남성의 부재가 여성작가의 열망이 낳은 결과일 경우 생태여성주의 비평의 관점에서 다양하게 평가되고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한기욱이 이미 지적한 바대로 여성작가들의 생태적 시각이 모성의 세계, 모계제의 추구에 있다면 그것은 또 다시 남성성과 여성성을 대치시키고 모성적 여성성을 생태주의적 삶의 원동력으로 삶고자 하는 상투성을 보여줌으로써 ‘본질주의’의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생태여성주의 문학비평은 다양한 대립적 입장이 논의되고 있는 생태여성주의 담론을 그대로 반영하듯이 다양한 이론적 틀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 일부 생태여성주의 비평가들은 여성과 자연의 이미지 연구뿐 아니라 보다 포괄적으로 자연의 문제를 계급, 인종, 섹슈얼리티의 문제와 연계해서 분석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인다. 2000년에 출간된 『생태여성주의 문학비평 논문집』(New Essays in Ecofeminist Literary Criticism)에서 편집자 글리니스 카아 (Carr, G., 2000: 15)는 여기에 실린 문학비평들이 사회 생태주의 이론을 배경으로 한다고 밝히고 있다. 그녀는 문학비평에 있어서 전범 (canon)에 여성작가들을 포함시키는 것에 만족하는 자유주의 여성주의자들의 한계를 넘어서는 반면, 문화 생태여성주의자들의 노력이 가치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추구하는 ‘여성성’의 가치에 대한 본질주의적 경향은 거절한다고 밝히고 있다. 대신에 사회 생태여성주의 비평은 ‘인간성’이 사회적으로 구성되고 역사적으로 변화된다는 이해를 바탕으로 하면서 보다 폭 넓은 관점에서 비평을 시도하고자 한다 (카아, 2000: 17). 생태문학 비평은 1990년대 중반 이후 보다 심화되고 있고 연구의 범위 역시 확장되고 있다. 초기 생태비평이 북미의 중산층, 백인문학 작품을 중심으로, 그리고 ‘자연 문학 (nature writing)'이라는 장르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면, 1990년대 후반 이후로 생태 문학비평은 학제간 연구, 다문화적 연구 및 국가간의 연구를 지향하면서 연구대상을 확장시키고 있다(카아, 2000: 19). 여기에는 다문화주의 (multiculturalism), 인종과 계급의 문제를 환경문제와 연계하는 ‘환경정의 (environmental justice)’, 남성성 (masculinity)이 사회적 문화적으로 구성되는 양태와 이성애 (heterosexuality)의 신화, 저항적 공동체 형성 등의 문제를 포함시킨다 (카아, 2000: 20). 카아가 편집한 논문집에는 다문화주의와 환경정의를 지향한다는 취지에 걸맞게 오랫동안 무시되어 온 유색인종의 문학을 다룬 글들이 전체 글의 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미국의 문화적 현실에서 다양한 인종과 문화의 문제는 환경문제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고 이러한 문제들을 형상화한 문학들을 보다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연구 대상으로 삼는 일은 생태비평이 해야할 중요한 과제임을 강조하고 있다.


생태여성주의 문학비평은 또한 여성작가들의 작품을 연구 분석하는 것을 넘어서서 남성작가들의 연구 역시 중요함을 강조한다. 예를 들어 남성작가들의 작품 속에서 ‘남성성 masculinity'이 어떻게 구성되는가를 분석하는 일은 의미가 있다. 1920년대 소련 작가인 이삭 바벨 (Isaak Babel)의 작품 『나의 첫 거위』(My First Goose)를 분석하는 글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남성 작가들 작품에서 여성은 동물과 함께 폭력의 대상이 되며 이때 폭력성은 남성이 일종의 통과의례를 거쳐 남성으로 인정되는 ‘남성성'으로 발현된다.(Carr, 2000: 102-107).


생태여성주의 문학비평은 위의 몇가지 비평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다양한 관점에서 문학작품을 분석한다. 자연, 동물, 그리고 여성이 상호 연관되어 남성주체의 지배대상으로 형상화될 뿐 아니라, 자본지배의 사회에서 계급과 성, 이민자들의 문제가 여성의 위치와 환경의 문제와 연결되는 다층적 연관성을 조명하고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것이 생태여성주의 문학비평의 새로운 관점으로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생태여성주의 문학비평은 또한 어떻게 문학이 언어적 재현을 통해 생태적 감수성을 계발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고민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시점의 해체와 같은 미학적 실험은 생태적 의식을 표현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간주될 수 있으며 (Carr, 23), 생태 비평은 문학이 치유의 힘과 인간의 의식을 보다 생태적으로 변화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논의할 수 있을 것이다.17)


글로트펠티 (Glotfelty, C. 1996: xviii)가 생태문학비평은 인간과 물리적 환경간의 관계를 연구하는 것이라고 간단하게 정의한 것만큼이나 연구영역은 광범위하다. 이는 연구대상에 있어서도 다양한 장르를 포함시킬 뿐만 아니라 새로운 장르까지 수용한다.18) 생태여성주의 문학비평은 자연과 성 (gender)의 문제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지만 동시에 계급, 인종,나이 등등의 문제들과 복합적으로 연관되어 있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한다. 따라서 자연과 여성이 연계되어 있는 중층적 연관성을 조명하고 이를 생태주의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성찰한다. 그리고 동시에 새로운 비전의 형상화를 담론화함으로써 생태주의 사회에 대한 논의를 활성화 할 수 있다. 짐머만 (Zimmermann, M. E. 2000: 252-253)의 말대로 가부장제가 사라진 생태주의 사회에서의 남녀관계의 모습과 인간과 자연이 관계하는 모습은 여전히 모색되어야 할 상황이며 이때 문학이 할 수 있는 것이야말로 대안사회를 꿈꾸는 일이고 그것을 새로운 비전으로 제시하는 것이다. 생태여성주의 문학비평은 대안사회를 꿈꾸는 문학을 새로운 관점에서 비판하고 이를 담론화시켜 생태주의적 성찰을 시도하는 것과 함께 새로운 사회에 대한 비전을 그려내는 데에 한몫을 할 수 있을 것이다.

 

 

6. 결 론


본 논문에서는 생태 여성주의가 다양한 영역에서, 그리고 다양한 철학적 입장에서 여성과 자연, 환경의 문제를 논의하는 것을 개괄하면서 무엇보다 여성과 자연의 연관성을 보다 집중적으로 다루는 문화 생태여성주의의 입장을 살펴보았다. 여성과 자연이 생명탄생의 기능을 담당한다는 의미에서 여성의 ‘모성’을 강조하는 일부 문화 생태여성주의자들의 입장이 안고 있는 여러 문제점을 지적하고 대안으로서 ‘생태적 감수성’의 계발을 강조하였다. 한편 문화 생태여성주의의 중요한 업적으로 평가될 수 있는 문화비평적 작업은 계속해서 발전되어야 하며 이를 위한 공론의 장으로서 생태여성주의 문학비평을 소개하였다. 생태여성주의 문학비평은 생태여성주의에서 논의되는 다양한 입장들을 모두 포괄하면서 여성과 자연의 은유에 대한 담론 분석 뿐 아니라, 인종, 성, 계급의 문제가 환경문제와 연계되는 중층적 구도를 분석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즉 생태여성주의 문학비평은 문화적 생태여성주의가 관심을 두는 여성과 자연의 은유와 이에 대한 담론의 형상화를 다루는 것에 제한하지 않는다

이 뿐만 아니라 사회 생태여성주의 이론이 자본주의 사회체제내에서 자연, 환경 그리고 젠더 문제가 서로 연관되는 중층적 구도를 강조하고 있는 것을 반영하여 문학비평에 있어서도 계급, 성, 인종 등의 복합적인 문제를 비판적으로 분석 조명한다. 인간의 문제를 총체적으로 다루는 문학이라는 문화적 상징체계를 분석하는 생태여성주의 문학비평은 생태주의의 다양한 관점들을 통합적으로 다루어야 할 것이다. 그럼으로써 생태적 삶과 문화를 이루어 가는데에 기여할 수 있는 문화비평의 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미주>

 

1) 생태여성주의에 대한 개괄은 머천트 (Merchant, C.), 2001: 249-281; 통 (Tong, R.),2000: 470-526; 문순홍, 1996: 스털전 (Sturgeon, N), 1997: 23-58을 참고.


2) 머천트 (1980)와 수전 그리핀 (Griffin, S.) (1978)이 대표적이다.


3) 사회 생태여성주의와 사회주의 생태여성주의의 입장은 구별되지만 문화 생태여성주의에 대비했을 때 둘 다 경제・정치적 관점을 중심에 둔다는 의미에서 함께 묶을 수있다. 문순홍 (1996), 44-50쪽 참고. 머천트는 아나키스트 사회 생태론 (SocialEcology)과 사회주의 생태론 (Marxist/Socialist Ecology)을 구분 설명하면서 포괄적 틀로서 둘 다 사회 생태론 (Social Ecology)에 포함시킨다. 머천트 (2001), 185-212쪽 참고.


4) 대표적 인물로서 한국에도 잘 알려진 반다나 시바 (Shiva, V.)를 들 수 있다. 시바(1998).


5) 생태여성주의 내에서의 다양한 입장은 분류의 기준에 따라 다양하게 분류되기도 한다. 이에 대해서는 문순홍 (1996), 39쪽 각주 3); 스털전 (1997), 178-186쪽 참고.


6) 그리핀은 1977년에 출간한 『여성과 자연』(Woman and Nature)의 2판인 1999년의 서문에서 이를 강조하고 있다. 스털전은 생태여성주의 운동이 본질주의 논쟁으로 인해 불필요하게 분열되고 있다고 하면서 에코페미니즘 비판의 논의에서 핵심이 되는 본질주의적 성향에 대해 면밀한 분석을 시도한다. 그녀는 ‘여성과 자연’의 연계는 일부에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한 “전략적 본질주의”로서의 경향이 다분하다고 본다. 스털전 (1997), 9-10, 59-75쪽.


7) 모성은 두 가지 의미로 이해되어야 한다. ‘모성보호’와 같이 단순히 여성의 생리적 구조에 기인한 출산행위를 의미하는 경우와 다층적 의미를 지닌 은유로서의 ‘모성’의 경우이다. 여기서는 전자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8) 생물학을 토대로 한 인류학자 피셔는 여성이 오랜 기간 맡아온 역할로 인해 생물학적으로 남성과 다른 성향을 띠고 태어난다는 입장을 갖는다. 피셔 (2000).


9) 바렛은 ‘모성’이 19세기 ‘가족’ 이데올로기의 맥락 속에서 강조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바렛 (1995), 357-36쪽.


10) 빌 (1991), 17쪽. 빌의 에코페미니즘에 대한 비판은 부분적으로 중요한 지적을 하고 있긴 하지만 일부 에코페미니스트들의 경향을 에코페미니즘 전체로 확대하여 공격하고 있다고 비판받기도 한다. 스털전 (1997), 38쪽.


11) 인도의 칩코운동은 환경문제로 인한 여성의 삶이 파괴되는 것에 항거한 예로 유명하다.


12) 조성숙은 ‘어머니’라는 이데올로기 에서 모성이데올로기가 여성을 억압해온 구조였음을 여러 구체적 사례를 들어 분석하고 있다. 조성숙 (2002), 114쪽 이하. 조한혜정은 한국사회의 ‘모성의 위기’를 얘기하면서 잘못된 ‘모성’ 이데올로기로 인한 ‘도구적 모성’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조한혜정 (1998), 141-176쪽.


13) 조성숙은 김지하를 비롯한 여러 시인들의 글을 분석하면서 대지에 비유되는 모성은 자기의 실존을 부정하고 타인(자식)을 위해 봉사함으로써 자기부정을 통한 존재확인이라는 역설을 보여주면서 여성의 다양한 삶의 선택을 부인하고 성별분업을 강화하는 근거가 된다고 비판한다. 조성숙 (2002), 105쪽.


14) 조성숙 (2002), 114쪽 이하. ‘사회적 모성’이란 말이 제안되기도 하지만 (김재희,2000, 221-223쪽) 여전히 ‘모성’이란 개념을 써야 할지 의문이다.

 

15) 예를 들어 아네트 콜로드니 (Annette Kolodny)의 『대지의 지형: 미국의 삶과 글에 나타나난 경험과 역사로서의 은유』(The Lay of the Land: Metaphor asExperience and History in American Life and Letters), (1975)은 땅이 인간에 의해 지배되고 약탈되는 것을 주제로 한 문학적 담론 속에 여성이 땅에 비유된 것을분석함으로써 생태여성주의 미국문학비평의 선구적 연구로 평가된다.


16) 예를 들어 머피 (Murphy, 1995); 카아 (Carr, 2000)를 들 수 있다.


17) 생태여성주의 문학비평에 관한 보다 자세하고 체계적인 논의는 이 논문의 범위를 넘어선다. 여기서는 생태여성주의 비평의 관점들을 소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으며 보다 자세한 논의와 작품해석, 그리고 한국문학에서의 생태여성주의 비평은 다음 기회에 이루어 질 것이다.


18) 생태여성주의 관점에서 과학・기술과 젠더와의 관계에 대한 이론적 성찰을 배경으로 문학비평에서도 다양한 사이언스 픽션이나 유토피아 소설들의 분석이 가능할 것이다. 이에 관해서는 과학・기술과 젠더와의 관계에 대한 이론적 논의를 정리한 와츠맨 (2001)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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