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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이야기/세상 여행

[스크랩] 전등사 대웅보전

by 마리산인1324 2007. 2. 26.

                              전등사 대웅보전 

 

전등사는 고구려 소수림왕 11년(381) 아도화상이 세웠다고 전하지만 고려 중기까지의 역사는 확실히 알 수 없다. 조선 선조 38년(1605)과 광해군 6년(1614)에 큰 불이 일어나 절이 모두 타버려, 그 이듬해 다시 짓기 시작하여 광해군 13년(1621)에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다고 한다.

석가여래삼존불을 모시고 있는 대웅전은 광해군 13년(1621)에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규모는 앞면 3칸·옆면 3칸이며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한 장식구조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이다.

대웅전의 기단은 지형에 따라 동측은 높고 서측은 낮은 자연석허튼층쌓기를 하였는데, 초석은 부근의 산석(山石)을 이용하여 기둥이 놓이는 자리만 평평하게 다듬어서 사용하였다.

 

기둥은 배흘림을 가지고 있고, 정면에는 모두 3분합빗살문을 달아 들어열개로 하여 부연평고대에서 내려온 들쇠로 걸리도록 하였다. 나머지는 빗살문과 판문 및 내사벽으로 창호와 마감하였다.

 

 내부는 고주가 없는 공간으로 마루는 보방향의 장귀틀과 도리방향으로 동귀틀을 짜맞춘 우물마루이고, 중앙후벽쪽으로는 불단을 조성하여 석가삼존을 봉안하였다.

 

 천장은 내목도리사이에 우물천장을 하고 이를 경계로 기둥쪽으로 빗반자를 짜아 여기에 봉황, 물고기 등을 조각하여 조선 중·후기의 건축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대들보는 어칸의 기둥위 주포에 결구되어 귀접이한 직사각형의 부재로 되어있는데 대들보와 직각방향으로 충량(衝樑)이 걸쳐서 주심도리와 중도리를 떠받아 지붕과 박공의 하중을 대들보로 전달하여 기둥으로 갈 수 있게끔 해주는 부재이다. 충량의 끝부분은 용머리 장식으로 하였다.

 

포작은 다포계 형식으로 내4출목, 외2출목으로 4면에의 주심사이에는 2개의 공간포가 있는데, 특징은 동서의 측면의 공포배열이 다른 건물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수법으로 전체적인 공포의 간격을 유지하기 위해 등분포로 위치해 있기 때문에 기둥 위에 주심포가 올라가지 않은 것이다.

 

살미의 세부적인 수법을 보면 외부의 2출목은 앙서형이고 최상단의 살미는 수서형으로 반곡점(反曲點)이 심한 초형(草形)으로 하였다. 보뺄목 끝의 장식은 귀면으로 하였고, 공간포의 위에는 보뺄목자리에 당초각을 한 받침재가 있어 처마도리를 받치고 있다.

 

내부살미의 끝은 대들보와 충량에서만 초화문이 조각된 살미이고, 나머지는 모두 교두형으로 하였으며, 첨차의 마구리는 거의 직절(直切)을 하였고 밑을 둥그스름하게 깍았고, 상부는 수평으로 하여 W자의 매우 강한 공안을 조각하였다.

 

귀기둥위의 평방을 받치고 있는 창방뺄목은 기존의 쌍S자형에서 발달한 연봉형초화문양(蓮峯形草花紋樣)으로 조각하였고 상부의 외목도리의 뺄목이 겹치는 부분에서 조상(彫像)이 추녀를 받치고 있는 이 건물에서만 보이는 특이한 모습을 하고 있다. 이는 인물상으로 방탕한 나부상(裸婦像)이라고 하여 설화와 내력이 있는데, 이는 도편수의 순정을 배반하고 맡긴 돈을 챙겨 달아난 주모가 벌받는 형상이라고도 하여 무거운 지붕의 하중을 받는 모습을 조각하였다.

 

건물의 귀솟음과 안쏠림이 모두 존재하여 기둥의 배흘림과 함께 목조건축의 조형요소가 돋보이는 건축물이다.

 

대웅전의 건축은 실제로 1621년의 17세기 초반의 건축물이지만 공안이 약한 음각으로 조각, 연봉의 출현과 귀면의 조각, 화려한 닫집, 빗천장의 모습 등은 1700년대에 들어서 중수하여 변화를 보이게 된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최근의 보수공사는 1971년 보수공사, 1990년 기단부 공사와 지붕부의 부식재를 교체하고 단청하는 공사를 하였다. (글,도면 :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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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나무과자
글쓴이 : 순돌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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