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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이야기/생활

노 대통령을 대놓고 그린 영화 ‘이장과 군수’ (데일리서프라이즈 070405)

by 마리산인1324 2007. 4. 5.

 

<데일리서프라이즈>

http://www.dailyseop.com/section/article_view.aspx?at_id=55337

 

 

노 대통령을 대놓고 그린 영화 ‘이장과 군수’

[칼럼] 영화 예술은 시대를 반영한 진보의 마지막 보루다
입력 :2007-04-05 09:40:00     |  최택용 칼럼니스트 e-mail
‘예술은 시대의 반영이고 그 예술에 영향을 받는 대중에 의해서 사회의 진보(進步)가 촉진된다.’

이 명제가 진실로 통용되기 위해서는 다양한 분야에서 시대정신에 민감한 예술가들이 활동하는 사회여야 한다. 이런 예술가들이 많이 배출되고 이들이 마음껏 활동할 수 있는 토양이 제대로 조성되어 있다면 문화강국의 자격을 갖추었다고 할 것이다.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예술가가 예술품을 매개로 사회에 발언하고 대중과 소통하는 풍경을 목격하는 것이 쉽지 않은 21세기의 우리 사회다. 냉전이라는 세계사적 조류와 권위적 권력을 향한 민중의 저항에 근거한 거대 담론이 해체된 이후의 시대를 세정(細情)하고 진일보하려는 지식인과 예술가들의 출몰이 횡횡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이유일 듯싶다.

민주주의를 배우기 위해서는 대한민국 국회를 절대로 견학하면 안 되듯이,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대중 예술품인 한국영화 중에서 정치적 현실을 제대로 그린 영화가 드물었다는 점이 아쉬웠었다.

▲ 영화 '이장과 군수'의 스틸컷 ⓒ싸이더스 FNH 

그런 면에서 이번에 개봉한 장규성 감독의 ‘이장과 군수’라는 영화는 적절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작품의 완성도라는 측면에서는 장규성 감독의 전작인 ‘선생 김봉두’를 능가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는 이 영화에서 사회에 대한 그의 진심을 날것으로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시대를 반영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 시간에도 살아서 움직이고 있는 괴물 같은 현실을 아예 사냥해서 스크린 위에다가 방목(放牧)해 버렸다. 유쾌하지 못한 우리의 자화상을 참고 보게 만들기 위해서 다량의 코미디를 첨가한 것만이 스크린 안과 밖의 차이었다.

다큐멘터리 영화도 아니고 전기영화도 아닌 상업영화에서 이렇게 노골적으로 현재의 정치적 상황을 직언(直言)하는 감독의 뱃심이 대단하다. 그러나 그런 연유로 어쩌면 ‘작품성’에서는 점수를 얻기 힘들 것 같다. 스스로 욕심내지도 않았겠지만.

아마도 장규성 감독에게는 이런 욕구가 있었나 보다.(이것은 나의 짐작이다.)

‘이 시대의 자칭 지식인들이여, 이 시대의 자칭 예술가들이여! 이런 현실 속에서 당신들은 도대체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만 하고 있는가?’

영화 속의 노대규 군수가 노무현 대통령을 연상시킨다는 표현은 온전하지 못하다. 노대(통령)규 군수는 노무현 대통령을 직접적인 모델로 만든 캐릭터이다.

감독은 영화가 끝나고 자막이 올라가는 순간에도 관객들이 혹시라도 눈치 채지 못했을까봐, 어린 시절 노대규의 대사를 다시금 반복함으로서 노골적으로 강조한다. “난 대통령이 될 거야!” 이건 노대규 군수가 바로 노 대통령이라는 감독의 해설에 다름 아니다.

▲ 영화 '이장과 군수'의 스틸컷 ⓒ싸이더스 FNH 

자 이야기 속으로 잠깐 들어가 보자. 아니 현실의 압축판 모델하우스 속으로 들어가 보자.

크게 내세울 것도 없고 촌스러운 인상의 청렴한 젊은 정치인이 파란색으로 상징되는 정당의 나이든 후보를 박빙의 차이로 꺾고 군수에 당선된다. 당선된 노대규 군수는 파란색 정당의 후보와 결탁했었던 노회한 지역 업자의 새로운 파트너가 되기를 단호하게 거절한다.

무사안일과 복지부동에 젖어있던 공무원들에게 지역발전을 위해서 발상의 전환과 혁신을 요구하고 스스로도 모범적으로 실천을 한다. 관용차를 버리고 지프차를 타고, 정장을 벗어던지고 잠바 차림으로 탈권위적인 일하는 군수상을 추구한다.

하지만 간부급 공무원들은 이런 젊은 노 군수가 불편하다. 부군수는 낮에는 노대규 군수에게 고개를 숙이는 시늉을 하지만 밤에는 노회한 지역 업자와 파란 정당의 전 군수에게 충성한다.

준비된 성장동력이 없는 군의 획기적 발전을 위해서 중저위 핵폐기장을 유치할 것을 노 군수는 결심한다. 군수는 안전문제에 대한 주민 설득에 나서려고 한다.

그러나 지역유지, 파란 정당, 고위 공무원은 끈끈한 패거리가 되어서 풍부한 자금으로 주민들의 대규모 반대시위를 사주한다. 더 나아가서 군수를 탄핵하기 위한 모함과 공격을 시도한다. 특히 이들과 결탁한 지역 언론의 반복적이고 악의적인 보도는 노 군수가 여론전에서 일방적으로 몰릴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든다.

노 군수의 중저위 핵폐기장 유치를 반대하는 세력들은 합리적인 토론과 타협 자체를 거부한다. 오로지 상대를 규탄하는 시위와 물리력만이 난무한다. 어차피 그들이 원하는 것은 핵폐기장 건립 저지가 아니고 권력이기 때문이다.

노 군수는 마지막으로 민주적 승부수를 준비한다.

이러한 얼개 속에 공동 주연으로 소개되었지만 영화에서는 구조상 조연일 수밖에 없는 군수의 한심한 옛 친구 차승원이 보여주는 코믹한 좌충우돌이 스며들어 있다.

한국영화의 주류(스타)인 ‘미남’ 차승원이 조연으로 전락하고 비주류인 ‘추남(?)’ 유해진이 일약 영화의 주연으로 자리매김한 것도 노무현 대통령의 등극 스토리를 연상케 한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이야기 속의 조춘삼(차승원)은 과거에는 자기보다 못했던 노대규(유해진)가 군수가 된 현실을 인정하지 못하고 시기하면서 괴로워한다. 그리고 기득권 패밀리에 이용당한다.(물론 영화이므로 참회하고 옛 친구에게 돌아온다.)

▲ 영화 '이장과 군수'의 스틸컷 ⓒ싸이더스 FNH 

사족이 필요 없을 정도로 ‘이장과 군수’는 대한민국을 (강덕)군으로 축소했을 뿐 한국의 현실을 리얼리티하게 직화(直畵)한다. 현실에 대한 묘사가 너무 노골적이면 재미가 없고 식상할 수도 있지만, 다행히 이 영화는 식상하지 않다.

낡은 이념 대결의 구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합리적인 대화와 타협의 문제해결 방식을 거부하는 극단적인 세력들이 판을 치는 한국의 현실이다.

사회 통합을 위한 미래 의제를 대중에게 환기해야 할 거대 언론은 오히려 사회 갈등의 첨병으로서 언론방종(言論放縱)이라는 칼을 휘두르고 있다. 거대 정치 언론사가 오히려 정부를 탄압하고 있다. 야당의 인물 중에서 마음에 드는 사람을 선택해서 대통령으로 만들려는 노골적인 정치단체가 언론사로 행세하고 있는 대한민국이다.

▲ 최택용 칼럼니스트 

횡횡하는 한국 거대 언론사의 부조리에 눈 감고 시장의 70% 이상을 장악하고 있는 그들의 지면을 이용해서 자신의 명성을 높이려는 자칭 지식인, 예술인은 넘쳐난다. 하지만 대중을 향해서 이런 본질적 병폐를 말하는 지성인은 찾기 힘들다.

이런 답답한 한국적 현실에서 ‘정치 언론사’가 특권과 기득권을 지키려는 세력과 결탁되어서 군수(정부)를 탄압하는 모습을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시도만으로도 ‘이장과 군수’는 신선하다.

왜?? 다른 언론도, 지식인과 예술가도 현존하는 이러한 진실을 대중에게 온전하게 고발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과 맞설 수 있는 정도로 영향력 있는 언론의 존재 자체가 부재하기도 하다.

다시 한 번 절감한다.

예술에서 표현의 자유는 소중하다. 그리고 내가 좋아 하는 배우 문성근을 자신의 품으로 안은 영화의 대중적 힘은 위대하다. 그러므로 다시 예술은 시대를 반영하고 시대의 진보를 포기하지 않는 마지막 보루(堡壘)이기를 나는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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