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롭고 인격적인 삶을 살기 위한 가냘픈 시도
- 괴산지역의 지방자치와 지역언론을 어떻게 볼 것인가 -
후보는 불가능한 공약을 할 수도 있다?
지난 2006년 지방선거에서 임각수 괴산군수 후보는 놀라운 공약을 제시하였습니다. 30만 평의 부지에 3000억 원을 들여 '세계적인 발효식품 산업단지'를 만들어 20여 개의 기업체 및 연구소를 유치하고 2000여 개의 신규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약속입니다. 나아가 그는 방송토론회에서 이에 대한 자금조달방법을 묻자, 정부에 100조의 돈이 대기하고 있으니 그 중에서 끌어다 쓰면 된다고 아주 태연히 답변했습니다. 이런 공약이 선거에서 얼마나 효과를 발휘했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지역경제가 침체 국면으로만 치닫던 상황에서 일부 주민들에게는 일말의 희망을 느끼게 하는 것일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어쨌거나 그는 당선이 되었고, 그의 발효산업단지 조성 공약은 괴산지역 주민들의 기대와 관심을 끌기에 충분한 사안이었습니다. 투자 규모면에서도 엄청날 뿐 아니라 침체된 괴산경제를 회생시킬 수 있는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주민들의 여론은 군수의 기대만큼 낙관적이지도, 긍정적이지도 않았습니다.
언론이 군의회를 길들인다?
여기에 괴산군의회마저 군청의 사전 계획이 허술하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는 이유로 타당성검토 용역비를 전액 삭감하면서 발효식품단지 논란은 점차 가열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이런 저런 지역 언론에서 의회를 공격하는 기사들이 나오기 시작하였습니다. 들어보시죠.
“괴산군과 괴산군의회가 지역발전을 위한 군정추진 및 승인, 집행과정 등에서 상호 의견일치를 이루지 못할 뿐 아니라 군민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손·발이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이처럼 군과 군의회는 각종 군정 사업 및 국책사업 추진과 관련해 사전 논의는 물론 주민의견을 대변하는 협의도 이루어지지 않고 각각 다른 논리만 앞세울 뿐, '한 지붕 두 가족' 형태의 군정 살림을 이끌고 있는 형국이다.”
“지역 발전에 쏟아부어야 할 양 기관의 일원화된 의견과 리더십이 더욱 부족하다는 우려감도 거론되고 있다.”
일부 언론은 어느 주민의 말인 것처럼 하여 “군민 검증을 받은 선거 공약을 송두리째 묵살시킨 처사”라고 지적하면서 “군정 발전에 발목”을 잡는다고 비난하기도 하였습니다.
일부일지언정 언론의 비판보도가 터지고, 그러한 언론에 길들여진 주민들이 군의원들에게 항의를 하게 되자 군의원들의 마음도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더구나 자신들의 역할로 인해 정말로 군수의 발목을 잡는 건 아닌지 하는 의문을 품기조차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얼마 뒤에 군수는 자신의 공약을 철회축소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즉 당초 공약과는 달리 괴산군이 임기동안 추진 관리하기 위해 확정한 공약사업은 3000억원이 아닌 960억원이 실현성이 있다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의회에서의 간략한 사과 표명만 한 채, 자신의 발효산업단지 조성 공약이 선거를 의식해 충분한 타당성 검토도 없이 급조한 공약(空約)이었음을 인정한 것입니다.
자신의 공약만 믿고 밀어준 수많은 주민들의 희망을 걷어찬 군수는 그나마 다행일까요? 군수의 발목을 잡는다고 의회를 공격하던 언론은 어떠한 사과의 말도 하지 않았으니까 말입니다.
자유롭고 인격적인 삶을 위한 방책은 무엇인가?
이 사례는 우리에게 지방자치와 지역언론의 참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나아가 이를 통해 우리가 통절히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군의원들이 분명한 ‘의회관’을 지녀야 할 뿐 아니라, 군수 등이 책임있는 비젼과 소양이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지방정부와 지방의회를 제어할 수 있는 책임적 ‘시스템’의 구성입니다. 그 ‘시스템’이 언론을 말하는 것일 수도 있고, 주민들에게 여론을 고취시키고 주도해갈 수 있는 단체일 수도 있습니다.
괴산이라는 지역으로 한정시켜놓고 보자면 제 역할을 하는 언론이나 단체는 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관행적으로야 무수한 관변단체들이 존재하지만 주민들의 마음을 읽어내지 못하는게 현실이고, 괴산신문이라는 지역신문이 존재한다지만 구경이라도 좀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그 이외에도 충북 전 지역을 포괄하면서 이곳에 주재기자를 두는 언론들이 있지만 지역 주민들의 정서와 무관하게 관청의 얘기만 나열하고 있습니다. 그곳에는 지역주민이 없고, 지역문화가 실종되어 있습니다.
결국 이 상황에서 생명과 평화를 갈구하는 우리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영역이 책임있는 ‘지역언론’과 내실있는 ‘시민단체’의 구성일 것입니다. 그러한 구성을 통하여 정책과 사실을 주민들에게 바르게 알리고, 지역문화를 함께 향유하며, 여론을 수렴함으로써 공통의 정서를 바탕으로 군정/의정을 제대로 견제해가야 합니다. 물론 말처럼 쉬운 일이겠습니까만, 무엇보다도 자유롭고 인격적인 삶을 영위하려는 작은 소망을 이루어 가는데 있어서 최소한의 방책이 아닌가 감히 생각해봅니다.
2007년 4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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