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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이야기/생태환경

청원군 문의면 소전리 벌랏 한지마을 한국화가 이종국(동양일보 070702)

by 마리산인1324 2007. 7. 3.

 

<동양일보>

http://www.dy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87293

     
【신자연주의 삶터】야생의 법칙에 따라 몸을 자연에 맡기다
청원군 문의면 소전리 벌랏 한지마을 한국화가 이 종 국
2007년 07월 02일 (월) 21:09:08 김정애 kanjas@dynews.co.kr

   
 
 

아들 선우의 여름 놀이터 원두막에서 이종국씨와 그의 아내 이경옥씨.                                                <사진/김정애>

 
 
강파리한 외모, 머리에 삼베두건, 천연 염색한 개량한복, 긴 머리카락과 턱수염, 트럭 등이 그의 트랜드인 것처럼 한결같은 모습을 하고 다니는 이가 있다. 하늘만 뻐끔하게 보이는 첩첩산중 오지, 몇 굽이의 고개를 넘어야 겨우 발아래 마을이 비밀스러운 공간처럼 앉아 있는 청원군 문의면 소전리에서 마을 주민들과 공동체 삶을 꿈꾸는 한국화가 이종국씨(45). 그가 소전리로 입성한지가 어느덧 열두 해가 되었다. 몇몇 도회지 사람들이 그의 삶을 좇아 소전리로 들어가 새로운 삶을 시도해보았으나 대부분 손을 들고 다시 도회지로 나가기를 여러 명. 자연에서 명상적인 삶을 꿈꾸던 이경옥씨(46)가 5년 전 서울에서 와 잠시 머물다 이씨를 만나 가족이 된 것은 그의 소전리 삶에 찾아온 행운이었다. 아내 이경옥씨, 아들 선우(3)와 함께 진정한 자연주의 삶을 실천하고 있는 그의 집을 방문했다.

 

   
 
 

산양 젖을 직접 짜 아들 선우의 우유를 대고 있는 이종국씨.

 
 
나무로 우거져있고 개울 위로 놓인 다리 진입로조차 좁아 언뜻 그의 집인가 할 정도로 설핏한 흙집이다. 한지에 먹물로 그림을 그렸던 그가 요즘 하는 일이 무엇인지 짐작 할 만큼 대문 입구서부터 나무들이 잔뜩 쌓여있다. 이들 나무는 건축자재로 사용할 수 있는 잘 다듬어진 나무가 아니라 누군가 사용하고 버린 나무들로 휘거나 달아졌거나 가늘고 작은 조각이다. 그는 이 나무들로 아들 선우의 그네를 만들고 유모차, 식탁의자, 침대, 장난감 블록들을 손수 만들어준다. 그리고 그의 빼어난 솜씨가 재주를 조금 부리면 새의 부리가 되거나 변형된 장승이나 솟대가 되어 집안 구석구석에 널려있게 된다. 집안의 모든 물건이 그의 손을 거쳐 만들어지지 않은 것이 없을 만큼 그의 손재주는 타고난 것처럼 보인다. 그가 산골오지서 가족과 함께 살아남는 비법인지 모르겠다.

 

   
 
 

이종국씨가 만든 유모차에 선우를 태워 마당에서 놀고 있는 부자.

 

 
 
물건뿐 아니라 쌀을 제외한 모든 먹거리는 자급자족한다. 산양을 키우며 아침저녁으로 젖을 직접 짜 가족들의 단백질을 보충하고 닭을 키워 달걀을 공급받기도 한다. 집 주변 몇 평 안되는 텃밭에는 치커리, 상추, 쑥갓, 콩, 고추, 마늘 등 수 십 가지의 채소를 심어 무공해 채소를 먹고 있으며 아들 선우는 모기와 파리, 지네 같은 곤충이나 벌레에 노출되어 이들과 함께 일상을 사는 것은 보통이다.

 

이런 척박한 농촌에서 견딜 수 있는 힘을 그는 자연에서 얻는다고 말한다. “자연 속에 나를 내던져 놓고 온 몸으로 부딪치며 경험하고 몸으로 얻어지는 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가를 늘 새롭게 느낍니다. 작품 활동은 삶의 한 부분을 표현하는 부수적인 것일 뿐이지요. 그것 자체가 목표가 될 수는 없습니다.”

 

자연 속에서 삶의 가치를 발견했고 살아가야할 길이 구체화 되었다는 그 역시 소전리에서의 생활이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 외지인의 유입은 곧 다른 문화의 유입인 셈이기 때문에 주민들과의 갈등이 없을 수 없었다. 그라나 이 모든 갈등의 요소도 시간과 자연이 해결해준다는 원칙을 터득하면서, 동물이 살아남는 야생의 법칙처럼 소전리의 환경을 몸으로 받아들여 이들의 영역에 자신의 몸을 맞추어 나가기 시작했다.

 

도시에서 뒤늦게 합류한 아내 이경옥씨 역시 닮은꼴이다. 생활은 불편하지만 그 불편을 감수한 후에 얻는 것이 더 가치 있는 일이어서 동행이 가능하단다. 그녀가 얻을 수 있는 가치는 자연과 평화다. 다음은 지역사회다. 그리고 자신에게 마을 주민으로서 소속감을 갖게 해준 가족이다.

 

   
 
 

이종국씨 가족이 살고있는 흙집.

 
 
“이방인인 자신에 대한 배려가 많았던 마을사람과 지역사회에 감사합니다. 기회가 되면 지역사회를 위해 기여하는 일을 하고 싶어요. 아쉬운 게 있다면 마을사람들 스스로 물질적인 풍요에 대한 결핍감을 갖고 있습니다. 현금이 없지만 자연을 통해 물질적인 빈곤과 결핍을 극복하고 자연이 주는 풍요로움을 제대로 누려가기를 바랍니다.”

 

이들 부부의 공통된 생각은 농촌의 물질적인 결핍이 결코 정신적인 결핍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주민들의 의식을 바꿔줄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한데, 그것이 바로 농촌에 문화를 되찾는 것이다.

 

이종국씨는 이를 위한 방법으로 소전리 옛 사람들이 생계수단으로 삼았던 한지제작을 복원해 새로운 농촌의 공동체 문화를 만들어 나갔다. 수년간 그의 노력 끝에 소전리가 농촌 전통 테마 마을로 지정됐고 마을 입구에는 ‘벌랏 한지마을’이라는 이정표가 세워지고 한지 체험장이 들어서게 됐다.

 

마을 주변은 산비탈 밭이 전부여서 논농사를 지을 수 없는 소전리 주민들에게 한지의 복원은 새로운 희망이다. 현재는 초기단계여서 큰 소득을 얻을 수 없지만 옛 문화가 미래의 자산이라는 것을 일찌감치 터득하고 한지 복원을 시작한 이씨의 생각은 적중했다. 우선 체험마을로 선정돼 청원군의 지원으로 마을에 여러 가지 혜택이 부여됐으며 점점 수익이 없어 생계가 막연해 소전리를 떠나려는 사람들의 발길을 잡을 수 있는 명분이 되기도 했다.

 

“도시속의 풍요로움을 꿈꾸는 소전리 주민들이 상대적인 상실감에서 벗어나고 욕구를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은 한지체험마당을 성공적으로 운영하는 것입니다.”

 

결국은 한지 체험마당이란 공간만 덜렁 지어놓고 한지원료인 닥나무 재배나 운영요원에 대한 지원과 여타의 농촌체험과 연계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개발이 아쉽다는 이씨의 생각이다.

 

최근에는 농림부에서 추진하는 농어촌종합소득개발사업 선정에 도전하기 위해 마을주민들이 의기투합하고 있다. 소전리는 대청호 상수원 보호구역이어서 자연 보래의 모습을 유지하면서 특화시킬 수 있다. 한지체험마당을 활성화시키고 주민들의 소득증대에도 한 몫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 시도해 보려는 것이다. 농촌이 더 이상 떠나는 곳이 아닌 남아 있는 농촌이기를 희망하는 이씨의 바람에서 비롯됐다.

 

뽕나무 열매에서 나는 오디를 발효해 와인을 만들어 마시고 방금 텃밭에서 뜯어온 상추로 밥을 싸 먹는 이들 가족의 삶이 화려한 도시 속에서 고급음식을 먹는 이들과 비교해 결코 불행할 수 없는 이유는 소전리 환경만큼 청정한 그들의 속내가 자연을 닮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