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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이야기/아나키즘

신채호의 '동양전통과 근대화, 세계화'(이승환, 동아일보 000214)

by 마리산인1324 2007. 7. 17.

<동아일보> 2000.02.14 07:30

http://www.donga.com/fbin/output?sfrm=2&n=200002140022

 

 

신채호의 '동양전통과 근대화, 세계화'

단재 선생님,
 
선생께서는 1928년에 쓴 ‘선언문’에서 이렇게 피를 쏟듯 절규하셨습니다. “우리의 세계 무산대중, 더욱이 우리 동방 각 식민지 무산민중의 피와 가죽과 살과 뼈를 빨고, 짜고, 씹고, 물고, 깨물어 먹어 온 자본주의 강도제국 야수 군들은 지금 그 창자가 꿰어지려 한다. 배가 터지려 한다!”

저는 신년 초에 한달 동안 서양 고대문명 답사여행을 다녀오며 선생의 이 말씀에 확신을 더하게 되었습니다. 이집트와 그리스 등지에 널려 있던 고대문명의 찬란했던 유물들은 모두 영국 프랑스 독일 등지의 박물관에 보관돼 있고, 현지에 남아 있는 것은 모두 모조품 아니면 보잘 것 없는 부스러기들뿐이었습니다. 지금 서양인들이 누리고 있는 부와 풍요로움은 과연 누구의 피와 땀에 의해 이뤄진 것인지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선생께서는 저희보다 한 세기 먼저 살다 가셨습니다. 그러나 선생이 당면했던 현실과 문제의식은 오늘의 그것과 많은 유사점을 가지고 있으며, 선생의 진단과 처방은 오늘날에도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습니다. 자본주의의 모순이 심화되어 제국주의적 침략의 형태로 전개되던 시기에, 선생께서는 민족의 독립과 주체성의 확립, 그리고 개인의 자유와 민중의 연대를 위해 노력하다 옥사하셨습니다.

▼옷만 갈아입은 신자유주의▼

비록 오늘의 상황이 선생의 시대와 많이 달라지기는 했지만 한반도의 위상을 표상해주는 커다란 밑그림의 구도는 달라진 것이 별로 없습니다. 자본 열강에 의한 정치 경제 군사적 제국주의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금융제국주의의 형태로 겉모습을 달리했고, 일본 청국 노서아의 틈에 끼었던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상은 일본 중국 미국의 삼자구도로 대상을 달리했을 따름입니다.

약육강식과 자연도태를 표방했던 사회진화론은 이제 신자유주의라는 세련된 형태로 이름을 바꾸어 지배욕을 관철시켜 나가고 있으며, 체제 안에서의 계급격차와 불평등의 심화는 ‘인류’라는 보편명사를 무의미한 개념으로 만들어버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정치 경제적 지배력의 관철 과정에서, 갈수록 심화되어가는 주체성의 상실과 문화적 식민 상태는 선생의 시대보다 오히려 심각해지는 상황입니다. 여기에 바로 선생의 사상을 새롭게 인식하고 선생의 문제의식을 더욱 발전시켜 나가야 할 역사적 소명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선생께서는 전기의 민족주의에서 후기의 아나키즘에 이르기까지 순차적인 사상적 변화와 발전의 양상을 보여주셨습니다. 평등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우파와 자유를 귀중하게 여기지 않는 좌파의 양극단에서 선생은 제3의 길인 아나키즘을 대안으로 채택하셨습니다. 자유와 평등, 그리고 민족모순과 계급모순, 그 어느 쪽도 소홀히 취급할 수 없다는 선생의 생각은 사회주의가 몰락하고 자유주의가 파국으로 치닫는 오늘의 현실에서 더욱 빛을 발합니다.

선생의 사상적 변화 속에서 일관되게 변하지 않는 한 가지 특징은 강인한 독립사상과 주체의식입니다. 선생께서는 “조선에 무슨 ‘주의’가 들어와도 ‘조선’의 주의가 되지 않고 ‘주의’의 조선”이 되는 현실을 비판하고, “‘주의’를 위하는 조선은 있지만 ‘조선’을 위하는 주의는 없다”고 개탄하셨습니다.

▼모방적 근대화 탈피할때▼

선생의 말씀은 오늘의 지식인 사회에도 그대로 들어맞는 지적입니다. 서구에서 유행하는 이론이라면 이 땅에서의 효력과 적실성을 따지지 않고 무조건 수입해다 숭앙하는 식민지 지식인의 습성은 선생의 시대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선생께서는 외국의 문물에 맹종부화하는 지식인들을 “나는 없고 남만 있는 노예근성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힐난하셨습니다.

개항 이래 저희는 한 세기 동안 모방적 근대화의 일로를 걸어왔습니다. 이 과정에서 저희는 비록 물질적 근대화는 성취했지만 정신적 도덕적 황폐화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책임윤리의 실종과 자율의식의 미비, 그리고 성숙된 인격의 부재와 자아정체성의 상실이 그것입니다. 진정한 진보는 물질적 성취만으로 이뤄질 수 없습니다. 선생의 말씀처럼 주체성과 자아정체성이 결여된 외형만의 근대화는 결국 우리를 화폐의 노예로 전락시키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선생의 사상 중 미래사회의 건설과 관련하여 가장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부분은 역시 아나키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간 저희는 일제-미군정-반공독재를 거치면서 아나키즘이라고 하면 일단 불온한 사상으로 치부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세계화의 덫과 신자유주의의 질곡에서 헤어나는 하나의 돌파구로서 선생의 아나키즘을 새롭게 조명해야 할 필요를 느끼고 있습니다.

선생께서는 ‘자본주의 강도 제국들이 약소국의 무산대중을 착취하는 야수적 상태’에 대항하기 위해서 독점적인 권력질서와 지배제도를 타파할 것을 주장하셨습니다. 선생께서는 제국주의 세력뿐 아니라, 제국주의 지배의 도구인 강권적 법률과 제도 그리고 언론과 학문, 나아가서는 예술과 문학에 내재된 권력의지를 분쇄하고자 했습니다. 저희가 몸담고 있는 시대는 그 속성상 선생의 시대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전지구적 신자유주의의 물결 아래서 빈부의 격차는 벌어져가고 복지와 의료, 그리고 환경과 교육문제는 날로 심각해져 가고 있습니다.

▼자유와 평등이 조화이룬 사회▼

이러한 부조리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거대자본을 잘게 나누고 중앙집권적인 권력을 잘게 분할하여, 지역과 공동체 그리고 시민연합과 민중들에게 하향 재분배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거대자본이 분쇄되지 않는 한 빈부의 격차와 환경문제는 해결되기 어려우며, 거대권력이 분쇄되지 않는 한 참여민주주의와 자치 공동체의 건설은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국가’나 ‘정부’ 역시 권력이 한곳으로 집중되는 일극적 독점체제가 아니라, 분권화되고 소규모화된 다양한 자치 공동체들의 연합으로 새롭게 이해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 길만이 바로 선생께서 고민하던 자유와 평등의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책이라고 생각합니다.

21세기에는 정치 경제 언론 학문 등 권력질서가 다극화되고 분권화되어 다양한 지역 민중 공동체들이 자치적 자발적으로 자신의 삶의 방향을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 일이 선생님의 숭고한 뜻을 살리는 올바른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승환(고려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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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아나키즘▼

아나키는 원래 그리스어의 아나르키야혹은 아나르코스(αυαρχοζ)()에서 유래한 개념으로 ‘지배자가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아나키즘은 18세기말 프랑스혁명을 거치면서 자유와 평등을 지향하는 민중의식의 성장과 함께 전개됐다. 아나키즘에는 여러 형태가 있지만, 소유재산의 자발적 공유에 입각해 권력과 강압을 최소화하고 주민의 자치를 최대한으로 요구하는 점에서 일치한다.

단재 신채호(丹齋 申采浩·1880∼1936)는 일제하에서 구국독립운동을 펼치던 중 1923년경 아나키즘을 수용하게 된다. 그는 상해 임정의 활동에서 민족간의 반목과 질시를 목격하고, 좌-우의 이념적 편향을 지양하는 과정에서 아나키즘을 새로운 대안으로 채택하게 된 것이다. 그가 1923년 작성한 ‘조선혁명선언’에서는 비타협적인 항일투쟁을 통해 일체의 강권적 지배질서를 파괴하고 민중에 의해 직접혁명을 이룰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가 파괴하려는 강권적 지배질서는 구체적으로 ①이민족에 의한 통치 ②특권계급 ③경제적 약탈제도 ④사회적 불평등, 그리고 ⑤노예적인 문화와 사상 등이다. 이 다섯가지 지배질서의 파괴를 통해 신채호가 도달하고자 했던 이상사회는 이민족의 억압에서 벗어난 ‘고유적 조선’ 안에서 민중의 자유와 평등이 실현되는 자치공동체의 사회다.

▼아나키즘의 전개▼
아나키즘은 자유와 평등을 추구하는 인간의 유적(類的) 보편성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지만, 영국의 고드윈이 쓴 ‘정치적 정의에 관한 탐구’(1793)에서 처음 체계적인 이론으로 제시됐다. 이후 프루동, 푸리에, 슈티르너, 바쿠닌, 크로포트킨, 톨스토이 등에 의해 19세기 자본주의의 발달과정에서 억압받는 피지배계급의 자유와 평등을 주장하는 사상으로 정립됐다. 이들 사상가들의 공통된 특징은 일체의 무력과 권위, 그리고 권력과 강제를 거부하고 모든 사람이 자유롭고 평등하게 공동체적 연대를 이루며 살아가는 자치공동체를 이상으로 삼는다는 점이다.

동양에서는 20세기초 일본인 게무리야마 센타로(煙山專太郞)이 쓴 ‘근대 무정부주의’라는 저술 이래 아나키즘을 무정부주의로 잘못 이해해 왔다. 그러나 ‘무정부주의’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쉬운 번역이다. 아나키즘은 일반적인 인식과 달리 무질서나 혼란의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고도의 자율적인 질서를 목표로 삼는다. 아나키즘은 일극(一極) 중심적인 거대 권력과 제도를 거부하고 주민의 자발성과 평등에 기초를 둔 자발적 공동체 사회를 이상으로 여긴다.

신채호는 1923년 의열단원 김원봉의 요청에 의해 ‘조선혁명선언’을 집필하게 됐고 이 시기를 전환점으로 아나키스트 대열에 합류하게 된다. 당시 중국에 있던 한국 독립운동가의 일부는 이회영을 원로로 하고 유자명을 이론가로 해, 그리고 중국의 아나키스트 이석중과 연계하면서 아나키즘을 연구하고 있었다.
 
1924년 이회영 유자명 이을규 등 아나키스트들은 북경에서 ‘재중국 조선 무정부주의자 연맹’을 조직하고 기관지로 ‘정의공보(正義公報)’를 발행하기 시작했다. 신채호는 1926년 이 연맹에 정식 가입하고, 1927년에는 중국의 텐진(天津)에서 열린 ‘아나키스트 동방연맹’에 조선대표로 참가해 활동했다. 그리고 1928년 4월에는 스스로 주동이 되어 한국인들을 중심으로 ‘무정부주의 동방연맹 북경회의’를 개최하기도 했다.

   
아나키즘은 해방 이래 좌-우 양대 진영으로부터 배척 당하면서 그 맥이 단절됐다. 그러나 자본의 시대, 혁명의 시대, 국가의 시대가 퇴락하고 민중과 시민의 직접적인 정치참여와 공동체적 자치사회의 건설이 시급하게 요구되는 현 상황에서 아나키즘은 미래사회를 향한 대안적 사고로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