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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이야기/아나키즘

생디칼리슴 [Syndicalisme]

by 마리산인1324 2006. 12. 11.

 

생디칼리슴 [Syndicalisme]

 

동의어 : 아나르코 생디칼리슴

(영)Syndicalism. Anarcho-Syndicalism이라고도 함.

 

국가를 포함한 자본주의 사회질서를 철폐하고, 생산단위로 조직된 노동자 조직에 바탕을 두고 사회질서를 수립하기 위해 노동계급의 직접행동을 주장하는 운동.

 

생디칼리슴은 주로 1900~14년 프랑스에서 활발하게 전개되었으며 스페인, 이탈리아, 영국, 라틴 아메리카의 여러 나라, 그밖의 다른 여러 지역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제1차 세계대전 후 이전의 강력하고 역동적인 힘은 잃었으나 유럽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까지 잔류 세력이 남아 있었다.

 

생디칼리슴은 프랑스 노동계급의 철저한 무정부주의와 반(反)의회적 전통에서 발전했다. 무정부주의자 피에르 조제프 프루동과 사회주의자 오귀스트 블랑키에게서 큰 영향을 받았으며, 19세기말 프랑스 노동조합운동을 주도했던 일부 지도자들을 통해 하나의 이념으로 발전했다. 이 운동을 프랑스에서는 '혁명적 생디칼리슴'이라고 하는데 여기서 생디칼리슴이라는 말은 단지 '노동조합주의'를 뜻한다. 생디칼리슴적 경향은 1890년대 프랑스의 두 주요노동단체인 노동총동맹(CGT)과 노동조합사무소연맹의 세력이 커짐에 따라 나타났다. 노동조합사무소연맹 서기 페르낭 펠루티에는 생디칼리슴 이론의 특성들을 구체화시키고 노동자들에게 전파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1902년 두 단체가 힘을 합치자 노동조합주의, 특히 생디칼리슴은 막강한 힘을 얻었다. 생디칼리스트는 마르크스주의자처럼 자본주의에 반대하고, 마침내 노동계급이 승리하게 될 계급투쟁이 일어나기를 기대했다. 또 이들은 국가를 본질적으로 자본주의 사회의 억압 도구라고 규정하고 어떤 경우에도 관료주의적 구조로 인해 반드시 비효율적이고 독재적인 체제가 되기 마련이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자본주의 질서의 부속물인 국가는 마땅히 철폐되어야 했다.

 

생디칼리슴이 지배하는 이상적인 사회구조는 대체로 다음과 같이 상상할 수 있다. 조직단위는 지역조합이며, 지역조합은 지역 직업소개소(bourse du travail)를 통해 다른 조직과 접촉하게 된다. 직업소개소는 일종의 직업알선기관이자 조합활동의 중심지 역할을 하게 된다. 따라서 모든 생산자가 직업소개소를 통해 연결되면 그곳의 관리자들은 지역의 생산능력과 수요를 추산하고 생산을 조절할 수 있게 되며, 다른 직업소개소를 통해 전체 산업체계와 접촉을 유지함으로써 필요한 원료와 상품의 구입·출고를 미리 계획할 수 있게 된다. 자본주의 사회의 억압 도구라는 국가관 때문에 생디칼리스트들은 자기들의 목적을 이루는 데 정치적인 수단을 배제시켰다. 이처럼 직접적인 쟁의행위에 의존하는 것은 현실적인 고려에서 비롯되었는데, 광산 또는 공장 밖에서 노동자들 사이의 정치적인 견해차이가 집단행동에 영향을 미치거나 방해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생디칼리스트들이 깨달았기 때문이다. 공장 안에서는 비슷한 직업이 노동자들에게 연대감을 갖게 했다. 탁월한 생디칼리슴의 이론가 조르주 소렐은 '사회적 신화'라는 개념을 만들어, 노동자들을 선동해서 혁명적인 행동을 불러일으키는 데 이용했다. 대표적인 생디칼리슴적 수단인 총파업도 이 용어에서 고안되었다. 총파업이 성공하면 노동자들에게 자신감을 갖게 할 것이고, 실패하면 운명에 굴종한다는 생각을 주입함으로써 더 나은 조직과 폭넓은 목표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갖게 하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세계산업노동자연맹(IWW)에서 생디칼리슴의 한 유형을 받아들였으나, 지역조직보다 규모가 크고 중앙집권적인 노동조합에 바탕을 둔 체제를 목표로 삼았다. 이탈리아의 베니토 무솔리니가 이끈 파시스트 정권은 법인형 국가에 대한 지지를 얻어내기 위해 생디칼리슴의 취지를 이용하려 했는데, 법인형 국가는 실제로 강력한 국가를 강조한다는 점에서 생디칼리슴과 크게 달랐다. 제1차 세계대전 후 생디칼리스트들은 소비에트형(型) 공산주의에 이끌리거나 서구 사회의 노동조합주의와 의회주의가 노동계급에 이득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전망에 이끌려 생디칼리슴 운동에서 이탈하는 경우가 많았다. 소비에트 권력 초기인 1920~21년 유사한 생디칼리슴이 노동조합 공산주의자들이 저항운동을 벌이던 중 유행했는데, 이 운동은 후에 '노동자 저항운동'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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