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폭력평화물결
2005년 7월 15일
http://peacewave.net
삼보일무(三步一舞) 춤사위 행진:
평화운동의 문턱을 낮추기
박성준
(성공회대학교 NGO대학원 평화학교수/비폭력평화물결 상임공동대표)
(1) “전쟁은 없다!”
50년 전에 한국전쟁의 처절한 비극을 몸소 겪은 바 있는 우리 겨레는, 남이냐 북이냐를 떠나서 그 어느 누구도, 다시는 한반도에서 미국이 관여하는 전쟁에 휘말려들기를 원치 않습니다.
“한반도에서는 그 어떤 일이 있어도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
한반도의 조밀한 인구밀도와 휴전선에서 불과 3, 40분 거리에 2천만의 인구가 밀집해 살고 있는 수도권의 현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우리가, 온 겨레를 지옥 불에 던져 넣을 참혹한 전쟁을, 문자 그대로 남과 북의 공멸(共滅)을 가져올 파괴와 살륙을, 어찌 꿈엔들 상상할 수 있을까요.
‘설마, 설마’ 하다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한반도 전체가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남북한의 민중이 떼죽음을 당하는 일이 만에 하나라도 있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 온 국민은 사력을 다해 전쟁을 막아내야 합니다.
"전쟁은 없다"라는 결론(결정)을 앞에 놓고
그 결정을 현실로 만들 방도를 ‘반드시!’ 찾아내야 합니다.
이 경우에 잊어서는 안 될 가장 중요한 점은
"이 일에 실패는 용납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반드시 우리는 ‘다시는 전쟁 없는 한반도’의 역사를 만들어내야 합니다.
이 일이야말로 우리 온 국민에게 맡겨진
참으로 뜻깊고도 중대한 창조적 과업입니다.
우리 한사람 한사람은 이 과업에서 자신의 몫을 짊어집시다.
(2) 삼보일무(三步一舞) 춤사위 행진: 평화운동의 문턱을 낮추기
( 2003년6월6일자 [문화일보]에 실렸던 평화 에세이입니다.)
‘다시는 전쟁 없는 한반도’를 염원하며 나는 저 새만금 갯벌 살리기 삼보일배 수행만큼이나 창조적인 새롭고 참신한 평화운동의 탄생을 꿈꾸어 봅니다. 이름하여 “연둣빛 평화의 물결” 입니다.
이 구상은 이른바 운동권이라는 울타리 밖에 있는 풀뿌리 대중을 이루는 ‘개인’ 한사람 한 사람 의 존재와 그들이 일상의 삶 속에서 올망졸망 꾸려 엮어 놓은 크고 작은 모임들의 존재에 주목합니다.
꽃꽂이모임, 영화감상모임, 노래모임, 달리기모임, 글짓기모임, 계모임, 생협모임, 등산모임, ....교회 성당 사찰 등 수많은 종교 단체와 그 모임들........
저 헤아릴 수 없이 많고 많은 모임들과 거기에 참여하는 수십만 수백만의 사람들이 개인 또는 모임의 이름으로 누구나 부담 없이 기꺼이 참여할 수 있는 방법으로 ‘넘실대는 평화의 큰 물결’을 이루어 보자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이러한 일이 가능할까요?
‘삼보일무(三步一舞)’ 세 걸음 걷고 한번 두 팔을 들었다 놓는, 나비의 날개짓처럼 부드럽고 쉬운 춤사위로 평화의 행진을 해보면 어떨까요.
이 평화의 물결 행진에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누구나 참가할 수 있습니다. 장애를 가진 이들이 참가 할 수 있고 젊은 엄마 아빠는 아기를 유모차에 태워 참가할 수 있습니다. 어린이들은 제일 좋은 옷을 입고 머리에 꽃을 꽂으면 좋겠어요. 어떤 이들은 쉽게 다룰 수 있는 악기를 들고 나와 즐겁고 경쾌한 곡을 연주하며 걸어도 좋겠지요.
참가하는 작은 단체들과 모임들은 저마다 개성있는 차림새와 자기네만의 고유한 ‘로고’가 들어있는 깃발이나 상징물을 들고 나와 자랑할 수 있습니다. 즐거운 소풍이나 축제 같은 분위기의 이 평화의 물결은 ‘녹색’ 환경운동 보다도 더 문턱이 낮고 부드럽고 평화로운, 그래서 ‘연둣빛’입니다.
연둣빛 물결에 참여하는 그 한분 한분의 개인과 하나하나의 모임을 ‘구슬’에 비유한다면 ‘평화’라는 ‘실’로 그 무수한 구슬을 꿰어 영롱한 ‘평화의 구슬 목걸이’를 만들어 보자는 것입니다. 그 하나하나의 모임이 그물처럼 엮어져서 연둣빛 평화의 넘실대는 물결이 되어 그 누구도 그 어떤 강대국도 폭탄 따위를 던지지 못하도록 한반도를 감싸 안자는 것입니다.
풀뿌리 대중이 주인으로 참여하는 이러한 평화의 큰 물결을 창조하는 데는 운동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합니다. 그 요체(要諦)는, 이른바 운동권 밖에 있는 수많은 풀뿌리 대중이, 그리고 그 대중을 구성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내가 이 물결의 주인공이다”라는 느낌과 생각을 가지고 자율적으로 참여해 들어올 수 있는 방법과 길을 여는 데 있습니다.
이러한 시도는 현 단계 한국 시민 사회 운동에 새 지평을 여는 일이 될 것이며, 이 새로운 양식과 문화의 창조는 오늘 ‘한반도 평화 지키기’의 성패를 가름하는 결정적 열쇠가 될 것이라고 나는 확신합니다.
여기서 나는 “연둣빛 평화의 물결로 한반도를 감싸자”고 제안하며 여러분의 적극적인 참여를 호소합니다.
(3) 이 ‘평화의 물결’을 형성하는 몇 가지 원리를 다음과 같이 생각해 봅니다.
1) 이름 없는 풀뿌리 대중(시민, 민중)을 중심에 모신다.
2) 참여자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이 이 평화물결의 주인공임을 자각하고 기쁜 마음으로 참여한다.[자발성, 자율성, 주인의식]
3) 피라밋식 조직을 하지 않는다.
4) 권위주의적 위계질서를 갖지 않는다.
5) 모임과 모임은 서로 대등한 자격으로 물결에 참여하며 수많은 모임들이 그물코엮음(networking) 방식으로 서로 엮인다.
6) 작은 모임들은 자기 비용으로, 저 나름의 개성/방법/전통/독창성을 발휘해 모임을 꾸린다.
7) 인터넷을 적극 활용하여 의사소통과 의사결정을 하며 일체의 정보는 투명/공개를 원칙으로 한다.
8) 각 지역, 각 도시의 거주자들은 그들이 살고 있는 지역에서 지역의 문화적 특성과 개성에 맞는 축제적인 평화의 물결 이벤트를 자립적, 자주적으로 만들어낸다.
9) 연 1, 2회 정도 날을 잡아, 각 지역과 도시의 모임들과 사람들이 각각자기의 모임을 나타내는 상징물(예: 깃발)을 들고 미리 약속한 구역이나 지역에 집결하여 ‘평화의 물결’에 합류하고, 이렇게 하여 전국적인 아름답고 다채로운 ‘거대한 평화의 물결‘을 창조한다.
10) 만에 하나, 한반도에 전쟁의 먹구름이 몰려온다면, 우리는 평소에 준비해 둔 역량을 유감없이 발휘해 휴전선 일대에 ‘평화의 천막’을 치고 평화로운 이벤트를 벌인다. 평화 음악회, 평화 단식, 농성 등등 행사를 벌이며 인류의 보편적 양심과 평화 감수성에 호소하는 감동적 ‘평화의 메시지’를 전 세계에 발신하며, 한반도가 결코 전쟁을 허용하지 않는 평화로운 땅임을 선포한다.
11) 집회에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누구나 참여하게 하며, 노인과 장애를 가진 이들이 참가할 수 있고, 언제 어디서나 젊은 어머니는 유모차를 끌고 나올 수 있고, 언제 어디서나 엄마 아빠는 아이들을 데리고 나올 수 있고 때로는 온 가족이 함께 참가할 수 있는 따뜻하고 평화로운 분위기와 내용의 모임이 되도록 한다. 모임은 즐거운 소풍과도 같고, 때론 아기들의 웃음소리, 울음소리가 자연의 음악처럼 들리는 분위기여야 한다.
12) ‘주석단’을 설치하는 대신에 ‘물결형 무대’를 만든다. ‘주석단 구조’의 무대에서는 사회단체의 지도자들은 단상에, 대중은 단 아래에 앉는다. 이와 대조적으로 ‘물결형 무대 구조에서는 무대의 좌우 양쪽이 가파르지 않은 비탈로 형성되어 있어 행사에 참가하는 수많은 단체의 회원들이 물결치듯 차례차례 단상에 올라갔다가 내려가게 되어 있다.
13) 참가자들은 무대에 올라 자기 모임이나 단체의 고유한 [로고]가 들어있는 깃발이나 상징물을 사용한 표현과 몸짓을 할 수 있고 [평화의 구호]와 함께 자기 모임이나 단체의 이름을 큰 소리로 소개할 수 있다.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휠체어를, 젊은 어머니들은 유모차를 밀고 무대 위에 올라갈 수 있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힘차게 일렁이는 거대한 [평화의 물결]을 연출한다. ‘물결형 무대’야 말로 진정한 의미의 ‘주석단’이 아닐까.
14) 참가하는 단체와 모임은 자신의 아이덴터티를 확고히 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네의 준비와 계획에 따라 자기네 비용과 책임으로, 자율적으로 행사에 참여한다.
15) 집회에 참가하는 회원에게 주어지는 글이나 전단은 간결명료하여 누구나 읽고 내용의 핵심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만든다.
16) [평화의 물결]은 신앙과 생각과 문화의 차이와 다양성을 인정하고 나(또는 우리)와 다름에 대해 관용하며, 동의하고 공유해야 하는 공통부분은 최소화한다.
17) 각 지역 단위로 평화의 물결을 만들고, 그것을 전국적 규모로 연결 확대하여, 3.1운동 때처럼 평화의 물결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물결이 삼천리 방방곡곡에 넘실대게 한다.
18) [연두빛 평화의 물결]로 한반도를 감싸 안는다.
(4) ‘정전’ 협정을 ‘평화’ 협정으로 바꾸고 한반도에 안정적인 평화의 구조를 정착시키자
우리들은 사태의 작은 변화에 일희일비 하지 말고
한반도에 안정적인 평화의 구조가 확고히 뿌리내릴 때까지
이 ‘연둣빛 평화의 물결’ 운동을 줄기차게 밀고 나갑시다.
‘평화의 물결’은 “전쟁반대-평화”라는 오직 한 마음, 한 의지로 온 겨레가 떨쳐 일어나는 ‘21세기의 새로운 3.1운동’이 될 수 있다.
정전 50주년 기념일을 눈앞에 둔 오늘, 한반도 전쟁 위기의 현실에 직면하여 ‘정전’을 ‘평화’로 바꾸어 놓는 ‘2003년 새로운 희년 선포’를 함과 동시에, 한반도를 끌어안고 이 땅에 몸 붙이고 사는 내 이웃들을 뜨겁게 껴안아 줄 ‘2003년 한반도 평화의 거대한 물결’을 만들어내자.
그리하여 전 세계의 반전평화 운동가들과 그 단체들의 이목이 한반도에 쏠리게 하자.
그들의 마음과 발길이 한반도를 향하게 하자. 전 인류적인 평화운동과 연대하고 우리도 그들의 운동에 참여하자. 전 인류적인 평화운동이 반평화세력의 흐름보다 더 거대하고 도도한 물결로 일어나야 인류가 폭력의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다. 어떻게 하면 거대한 전 인류적인 평화운동이 가능할까 ? 이런 물음 앞에서 간디옹의 저 놀라운 통찰에 깊이 귀를 기울이게 된다.
“예전에는 꿈도 못 꿨던 일들이 매일 같이 일어나고 있고 불가능했던 일들이 가능해지고 있다. 오늘날 우리는 ꡐ폭력ꡑ의 영역에서 이뤄지는 새 발견들에 끊임없이 놀라고 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ꡐ비폭력ꡑ의 영역에서 이루어질 더 놀라운 발견들, 예전에는 꿈조차 꿀 수 없었고 그런 일이 가능하리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었던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평화를 위한 꿈을 꿔야 하고, 새로운 발견을 해내야 한다. 그것은 차가운 현실주의적인 분석과 논리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여기에는 믿음을 가진 자들과 꿈꾸는 자들의 ‘창조적 역할과 참여’가 절실히 요청된다.
오직 한 가지 목표, 이 땅 한반도에서 다시는 전쟁이 없게 하고 평화를 정착시키는 일에 온 겨레, 온 국민이 한마음 한뜻 되어 떨쳐 일어나 평화의 물결을 이룩하는 일에 밑거름이 되자.
우리사회의 고질인 이른바 남남갈등의 골짜기를 메우고 사랑과 화해의 꽃을 피우자.
그리하여 온 국민의 하나된 힘과 평화의 의지로 우리정부를 움직여 정전 50주년이 되는 올해 남과 북이 ‘평화협정’을 맺게 하자. 우리정부로 하여금 당당히 관련당사국들에게, 특별히 미국을 향해, “우리는 전쟁하지 않겠습니다. 남과 북은 평화를 약속했습니다. 그러니 미국이나 그 어떤 나라도 한반도에서 전쟁을 할 생각을 버리시요”라고 어깨를 펴고 떳떳한 목소리로 말하게 하자. 그렇게 힘차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도록 우리 정부에게 큰 힘을 실어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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