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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선녀 이야기/에코페미니즘

에코페미니즘 /김기선미

by 마리산인1324 2006. 12. 14.

<여성환경연대>

http://www.ecofem.or.kr/bbs/board.php?bo_table=pds_1&wr_id=4

출처: 고대 석순 15호 1998

                                 에코페미니즘(Ecofeminism): 
                                        -  유물론적 생태여성해방론을 중심으로
-

                                                                                                                                                                                                    김기선미 
                                                                                                                                          (한국여성단체연합 사회개발간사, 한국여성연구소 연구원)


최근들어 여성학을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들 사이에 생태여성해방론(Ecofeminism)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고 있다. 그러나 생태여성해방론에 대한 큰 관심에도 불구하고, 생태여성해방론이 과연 무엇이며, 여성해방론과 그 운동에 어떠한 의미를 던져주고 있는가에 대한 논의는 아직 미약한 수준이다. 따라서 우리는 생태여성해방론에 대해서 갖고 있는 몇가지 지식을 전제로 생태여성해방론에 대한 평가를 내리기 전에 생태여성해방론안에 존재하고 있는 여러 입장에 대한 이해 단계를 거칠 필요가 있다.

생태여성해방론의 문제의식

그럼 먼저, 생태여성해방론(Ecofeminism)이 어떤 문제의식으로부터 발생한 이론인가를 짚어보는 것에서 시작하자. 생태여성해방론은 그 단어 그대로 생태학(Ecology)와 여성해방론(Feminism)의 문제의식을 결합시킨 이론이며 생태학보다는 여성해방론의 이론적, 실천적 확장과정에 의해서 탄생했다고 볼 수 있다. 생태여성해방론은 1970년대 초반, 급진적 문화적 여성해방론의 한 부류로부터 출발하였으며, 이후 사회주의 여성해방론자들의 참여로 그 안에 다원화된 입장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생태여성해방론으로 흘러들어갔던 이들 여성해방론자들의 공통된 문제의식을 짚어보면 첫째, 생산중심의 여성해방론에 대한 비판의식 둘째, 지배의 다원성에 대한 인식의 증대를 들 수 있다.

생산중심의 여성해방론에 대한 비판은 맑스주의 여성해방론에 대한 비판과 그 맥을 같이 한다고 할 수 있다. 생산영역의 우월성을 상정하는 맑스주의 여성해방론의 논리는 결국 출산, 육아, 가사노동과 같은 재생산영역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가치를 무시하는 오류룰 초래했다는 것이다. 또한 이미 자연에 대한 착취를 통해 지탱되어 온 생산영역에 대한 비판없이 생산영역으로의 진출을 통한 평등을 주장한다는 것은 무비판적 평등개념을 따르는 것이라는 점을 이들은 분명히 하였다.

결국 이들은 생산영역 자체가 가지고 있는 모순성(재생산을 배제하고, 자연을 배제해 온)을 지적하기 시작했고, 지금의 모순적인 생산영역에 여성이 평등하게 참여하는 것이 아닌, 생산영역 자체를 뒤흔들 수 있는 여성해방론의 필요성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다음으로 생태여성해방론자들의 두 번째 문제의식인 \'지배의 다원성에 대한 인식의 증대\'를 살펴보도록 하자. 지배의 다원성에 대한 발견은 먼저 급진적 여성해방론자들의 \'자연과 여성과의 관계\'에 대한 분석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급진적 여성해방론자들은 역사적으로 여성과 자연이 동일한 존재로 여겨져 왔다는 점(가령 고대에서는 지구가 어머니 지구로 불렸으며 여성은 대지나 산 등의 자연적 존재로 은유되어 왔다. 현대사회에서도 우리는 여성의 신체를 자연물로 은유하는 단어를 많이 접할 수 있다.)을 발견하게 되었다. 또한 이들은 이와 같은 동일시를 통해 양자가 서로 열등한 존재로 비하되어 왔다는 사실을 발견하기에 이르렀다. 급진적 여성해방론자들의 이러한 발견은 여성해방론내에 서로 상반되는 두가지 입장을 형성하게 된다. 즉 여성과 자연의 연결고리를 해체하려는 급진적 여성해방론과 오히려 여성과 자연의 연결을 찬양하고 여성-자연-감성의 우월성을 주장하는 급진적 문화적 여성해방론의 흐름이 그것이다. 이 두 흐름 중 급진적 문화적 여성해방론의 입장이 생태여성해방론의 초기 흐름인 본질주의적 생태여성해방론의 입장으로 이어지게 된다.

또한 70년대 후반부터 본격화되었던 생태사회주의와 사회주의 여성해방론의 논의 또한 \'지배의 다원성\'이라는 문제의식을 일련의 여성해방론자들에게 심어놓았다. 즉 자연에 대한 억압과 인간에 대한 억압이 연결되어 있다는 생태사회주의의 문제의식과 계급지배와 여성에 대한 지배를 연결된 것으로 제시하는 사회주의 여성해방론자들의 문제의식은 자연-여성-노동자계급 등에 대한 지배가 상호 연결된 것이며 공통의 해방전략을 추구하지 않으면 이러한 지배구조를 해체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깨닫게 해주었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그동안 서로 공통점을 찾지 못했던 여성운동과 환경운동, 여성해방론과 생태론의 결합이 필요하다는 주장으로까지 발전되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바로 생태여성해방론(Ecofeminism)이라는 새로운 복합어의 탄생으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생태여성해방론의 주요 이론적 특징

이제 이러한 과정을 통해 탄생하게 된 생태여성해방론의 주된 이론적 특징을 살펴보도록 하자.

첫째, 생태여성해방론자들은 역사적으로 여성과 자연이 동일한 속성을 가진 존재로 여겨졌다는 것을 인정하는 한편, 여기서 더 나아가 여성과 자연의 속성이 본질적으로 동일하다고 더욱 적극적으로 주장하거나, 적어도 남성보다 여성이 자연과 더 친화적인 존재라는 점을 제시하고 있다. 생태여성해방론자들은 \'여성과 재생산활동과의 연관성\'에서 그 근거를 찾는다. 이들은 여성의 생물학적 재생산활동과 이를 가능케 하는 여성의 본질적인 생물학적 특성이 자연의 속성과 일치한다고 주장하거나(Daly, Griffin), 가사노동, 양육과 같은 자연과 깊은 관련속에서 진행되는 사회적 형태의 재생산노동을 여성이 수행함으로써 여성이 자연에 대한 특별한 친화성을 획득한다고 주장한다. (Mies, Agawel, Mellor)

둘째, 생태여성해방론자들은 위와 같이 여성과 자연의 친화성을 인정하는 기반위에서 여성과 자연이 역사적으로 평가 절하되어 온 원인을 탐색하는데, 이들은 그 원인이 가부장제적 구조와 밀접한 관련을 가진다고 지적한다. 이들은 가부장제적 개념구조 아래서 여성과 자연의 속성으로 여겨지는 보살핌과 돌봄, 부드러움, 감성등의 속성이 남성, 문화의 속성으로 여겨지는 것에 비해 열등한 것으로 치부되는 과정을 탐색한다. (Daly, Griffin, Plumwood, King, Warren) 또한 가부장제의 물적구조를 강조하는 입장은 현재의 생산영역이 자본, 남성, 인간 중심적 이해관계에 의해 작동됨을 밝히고, 이러한 생산영역의 논리에 의해 여성의 출산, 양육, 가사노동과 같은 재생산활동과 자연이 수행하는 역할이 가치평가 대상에서 체계적으로 배제되어 열등시됨을 규명하려 한다. (Mies, Mellor, Agawel, Shiva)

셋째, 생태여성해방론자들은 가부장제적 구조 속에서 평가절하당해 온 여성과 자연의 속성, 역할에 대한 재평가를 시도하고, 이를 통해 현재의 가부장제적 의미 구조에 대항할 수 있는 대항논리를 발전시키려 한다. 구체적으로 이들 중 일부는 여성과 자연이 담당하고 있는, 생명을 창조하고 유지시키는 역할과 여성의 월경, 수유, 생식을 가능케 하는 육체적 특징을 특별한 능력으로 재평가하고 더 나아가 이를 남성, 문화의 속성과 역할보다 더 우월한 것으로 찬양하는 단계까지 나아간다. (Daly, Griffin) 또한 다른 입장은 보다 사회적인 형태의 재생산활동에 주목하여 현 사회에서 여성이 수행하는 양육, 가사노동 등의 보살핌과 양육의 활동 그리고 생태계의 생존을 위한 자원을 제공하는 자연의 역할이 가장 본질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음을 밝히고, 이를 가치평가하지 않는 남성적, 인간 중심적인 생산영역의 모순성을 규명한다. (Mies, Mellor, Shiva) 즉 생태여성해방론자들은 여성과 자연의 속성, 역할을 가부장제적 해석틀 속에서 떼어 내어 \'생존의 관점\'이라는 새로운 가치평가의 기준에서 재해석하고 그 긍정적 의미를 적극적으로 인정하려 한다.

넷째, 생태여성해방론자들은 여성과 자연을 평가절하한 가부장제적 구조에 대한 저항의 지점으로 재생산영역과 이를 담당하는 여성을 설정한다. 이는 여성이 담당하고 있는 출산, 양육, 가사노동 등의 재생산 활동과 자연이 담당하고 있는 역할이야말로 진정한 가치를 창출하는 영역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은 여성과 자연이 담당하는 역할로 인정되는 \'보살핌과 양육\'의 특성을 남성중심적, 인간 중심적인 현재의 생산영역으로 확대해 나갈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여기서 재생산활동을 주로 담당함으로써 자연과의 친화성을 획득하고 있는 여성은 능동적인 변동의 주체로서 인정된다. 또한 여성의 재생산활동이 주로 이루어지는 가정, 지역은 저항의 구체적인 지점으로 주목된다.

여성과 자연의 친화성의 근거: 생태여성해방론의 갈래들

그러면 이와 같은 이론적 특성을 지니는 생태여성해방론의 구체적인 갈래를 살펴보기로 하자.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여성의 재상산활동과의 연관성을 근거로 여성과 자연의 친화성을 설명하는 생태여성해방론은 여성과 재생산활동간의 관계에 대한 분석의 차이에 따라 여러 갈래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생태여성해방론의 갈래는 분류기준에 따라 세분화될 수 있으나, 본 글에서는 논의 전개의 편의상 본질주의적 생태여성해방론과 사회주의 생태여성해방론에 대해서만 다루도록 하겠다.

본질주의적 생태여성해방론

먼저, 본질주의적 생태여성해방론은 특별히 여성의 생물학적 재생산능력과 이와 관련된 성적인 특징들로 인해 여성과 자연의 친화성이 형성된다고 주장한다. 생명을 잉태하고 보살피는 여성의 생물학적 능력은 자연과의 공통점이며 자연의 재생성, 순환성, 상호연결성 등의 특징과 일치한다는 것이다.

본질주의적 생태여성해방론에서 여성의 생물학적 재생산활동은 여성과 자연을 연결시켜주는 근본적인 매개체이다. 콜라드(Collard)는 이를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자연과 인간을 여성의 생물학적 재생산체계(reproductive system)만큼 명확하게 연결시키는 것은 없다. 생물학적 재생산체계는 생명을 낳고, 살아있는 세계(the living world)의 여분(rest)을 가지고 생명을 기르는 경험을 여성에게 안겨준다.」

이러한 생명을 낳는 여성의 경험은 생명을 탄생시키고 유지시키는 자연의 속성과 공통적인 것으로 제시된다. 여기서 여성의 경험은 선험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즉 여성이 실제로 출산을 경험했건 하지 않았건 간에, 여성은 그들의 생물적 특징으로 인해 자연과 통합적인 존재가 된다. (Collard, 1988 : 102)

여성의 생물학적 재생산활동과 함께 여성의 몸 또한 여성과 자연의 친화성의 근거가 된다. 본질주의적 생태여성해방론자들은 월경, 수유 등의 여성의 생물학적 특징을 자연과의 합일을 경험케 하는 \'능력(capabillity)\'으로 해석한다. 이는 시적인 언어로 표현되고 있는데, 달과의 리듬에서 피를 흘리는 능력(the capabillity to bleed in rhythm with the moon), 어린아이를 위해서 먹은 음식을 젖으로 전환시키는 능력, 육체의 살로부터 남성과 여성 모두를 길러내는 능력 등으로 표현된다. 이러한 여성의 육체적 특징은 자연의 \'상호연관성\'과 \'순환성\'에 독특하게 조응하는 것으로 제시된다. (Spretnak, 1994 : 271)

본질주의적 생태여성해방론자들은 이와 같이 여성과 자연의 동일시를 행한 후 여성과 자연의 우월성을 주장하고, 이를 적극적인 정치적 지점으로 삼으려 한다. 이들은 여신에 대한 찬양을 오늘에 되살리거나 자연과 여성의 특징을 찬양하는 퍼포먼스 등과 같은 문화적인 행사를 통해 그동안 평가절하되어 온 여성과 자연의 위치를 재교정하고자 한다.

여성과 자연이 동일한 존재라는 이러한 주장은 그동안 활발히 전개되었던 여성들의 환경운동에 많은 영감을 준 것이 사실이었다. 80년대 반핵운동에 참여한, 생태여성해방론에 감명받은 일련의 서구 여성들은 자신의 몸으로 인식된 자연을 지키기 위한 사명감 속에서 목숨을 건 투쟁을 진행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여성의 생물학적 특수성에 기반한 자연과의 동일시는 몇가지 결정적인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본질주의적 생태여성해방론에서 자연과의 특별한 친화성을 구성하는 여성의 생물학적 재생산능력과 육체적 특징은 서구의 이원론적, 가부장적 문화에 대한 새로운 대안으로 찬양되는데, 여기서 여성-자연의 영역은 남성-문화의 영역보다 우월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 (Gaard 1996 : 306) 이는 여성, 자연 대 남성, 문화라는 서구의 가부장적 이원론을 강화함과 함께 단지 여성, 자연에 대한 남성, 문화의 우월성을 거꾸로 함으로써 이원론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이원론적인 설명틀 내에서는 남성이 자연과의 친화성, \'지구에 기반한 의식\'을 획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찾을 수 없으며, 여성들간의 차이를 설명할 수 없다. 여성과 자연의 친화성, \'지구에 기반한 의식\'이 여성의 생물학적 재생산활동, 육체적 특징에서 비롯되는 것이라면, 여성 생물학을 획득할 수 없는 남성은 자연과 \'지구에 기반한 의식\'으로부터 소외될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나는 존재이다. 이는 여성, 자연과 남성, 문화의 영원한 적대를 상정하는 꼴이 된다. 그러나 과연 본질주의적 생태여성해방론의 주장처럼 남성은 \'지구에 기반한 의식\'을 획득할 수 없는 선천적 불구자인가? 남성은 지구를 구하기 위한 운동에 동참할 수 없는 영원한 적대자인가? 현실적 상황에서 남성들이 환경운동에 동참하거나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이에 대한 반론의 여지를 제공한다. 또한 거꾸로 모든 여성이 자연에 대한 보호자의 역할을 자청하고 있는가? 소수의 특권적 여성들은 자연 파괴적인 상품을 생산하는 기업의 계획, 국가의 군사적 전략에 동참해 왔으며 다비온(Davion)의 주장처럼 많은 여성들은 자의건 타의건 지구의 오존층을 파괴하고, 자연을 파괴하는 화학약품을 사용하는 미용산업의 주된 지지자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Davion 1994 : 18-19) 또한 이미 유색 여성해방론자들이 지적한 바와 같이, 백인, 특권적 계급의 여성들은 그들에게 부과된 특권을 이용하여 유색여성, 피지배 계급의 여성들에게 가부장제의 \'지배하는 권력(dominating power over)\'을 행사해 왔다. 이러한 점은 모든 여성을 \'재생에 기반한 의식(regeneration-based awareness)\', \'에로틱의 권력\'을 표헌하는 \'지구에 기반한 영성\'의 소유자로 찬양할 수 없는 역사적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즉 이들의 논의는 여성 또한 사회화의 형태에 의해서 구성되는 문화적 존재라는 점, 따라서 생물학적 특징에 의해 모든 여성을 동질화 할 수 없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이들은 이미 사회주의 여성해방론자에 의해서 지적된 바와 같이 여성의 생물학적 재생산활동마저도 사회적, 역사적 배경에 따라서 다른 형태, 다른 의미를 지니는 문화적 의미를 지니는 활동이라는 점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사회주의 생태여성해방론

생태여성해방론에 참여하기 시작한 일련의 사회주의 여성해방론자들은 본질주의적 생태여성해방론이 갖고 있는 이러한 문제점을지적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여성과 자연의 친화성은 여성의 생물학적 재생산능력으로부터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가부장적 사회구조 속에서 여성이 가사노동, 양육, 보살핌 노동과 같은 재생산노동을 담당함으로써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은 두 가지 사실에 기반하고 있다.

첫째, 현재 재생산영역의 성격상, 재생산활동을 담당하는 여성은 그 경험으로 인해 자연에 대한 특별한 친화성을 얻는다는 것이다. 유물론적 경향의 생태여성해방론자로 분류되는 이들은 이러한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가부장적 자본주의하에서의 재생산영역의 성격, 여성의 재생산활동의 경험, 이로 인해 형성되는 여성들의 책임감과 가치관 등의 특수성이 어떻게 여성과 자연의 친화성, 환경문제에 대한 여성의 높은 관심을 발생시키는지를 보이려 한다. 둘째, 가부장적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성과 재생산, 자연은 동일한 지배구조 아래 같은 방식으로 억압을 경험하고 있다는 것이다. 유물런적 경향의 생태여성해방론자들은 현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가부장적 성격을 규명하고 구체적으로 여성, 재생산, 자연을 지배하는 방식을 설명함으로써 주장의 근거를 마련하려 한다.

먼저, 여성과 자연의 친화성이 실제한다는 이들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첫 번째 사실을 살펴보도록 하자.

유물론적 경향의 생태여성해방론자들은 재생산영역에서의 여성경험의 성격을 규명하기 위한 전 단계로 가부장적 자본주의 아래서 재생산영역이 담당하는 역할과 성격을 규명하려 한다. 이들은 재생산영역의 주된 특징은 사회구성원의 생명유지, 일상생활의 지속을 위한 기본적인 물질적, 감정적 \'필요\'를 공급하는 노동으로 구성된다는 것에 있다고 본다. 이러한 성격은 이윤극대화를 목적으로 하며, 능률(effciency)과 이윤의 최저선(the bottom line)에 의해 구성되는 생산영역의 작동원리와 대비된다.

또한 재생산영역은 어린 아이, 의존자, 희생자들을 보살피는 노동으로 구성된다. 이는 생산영역에서 배제된, 이윤으로 전환되지 않는 노동을 재생산영역이 담당함을 말한다. 생산영역에서 야기된 문제와 상처는 가족, 공동체의 영역으로 넘겨지며, 재생산 영역은 생산영역에서 발생한 충격을 흡수하고, 생산 영역에서의 파괴적인 활동에 의해 야기된 상처를 치료하려는 역할을 담당한다.

멜러(Mellor)는 재생산노동의 이러한 특징을 \'보살핌\'과 \'양육\'노동으로 설명하고, 재생산노동이 기본적으로 \'이타적·감정적\'노동의 성격을 지닌다고 주장한다. (Mellor 1992 : 251-254) 따라서 현재의 성별 분업구조에 의해 재생산노동을 담당하고 있는 여성들은 \'이타적·감정적\'성격을 지니는 \'보살핌\'과 \'양육\'노동의 주담당자라는 것이다. 여성이 담당하는 재생산노동이 \'보살핌\'과 \'양육\'노동으로 특징지워진다는 점은 유물론적 경향의 생태여성해방론에서 여성과 자연의 친화성을 설명하는 주된 근거가 된다.

먼저, 재생산영역에서의 \'보살핌\'과 \'양육\'노동의 경험을 통해 여성들은 자연환경에 대한 특별한 책임감을 획득하는 것으로 설명된다. 구체적으로, 세계 대부분의 여성들은 가족의 기본적인 생존을 위해 음식, 물, 의복 등과 같은 필요를 공급하고, 일상생활의 지속을 위해서 빨래, 청소를 담당하며, 아이들을 양육하는 일에 대한 책임을 져왔다. (Rocheleau edts, 1996 : 8) 이러한 노동의 구체적 형태는 그 사회의 산업화의 정도, 여성들이 처한 계급, 인종 등의 사회적 위치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으로 설명된다. 제 3세계 농촌 여성들의 경우, 이러한 활동은 자연과의 보다 직접적인 접촉에 의해서 진행되며, 자연으로부터 보다 큰 영향을 받는다. 전통적으로 이들 지역의 여성들은 생계농업에 종사함과 함께 기본적 필수품인 연료, 음식, 물, 사료, 약초 등을 숲으로부터 모아오는 책임을 담당하며 공동체의 숲을 보전하는 책임을 진다.

산업화된 사회의 경우, 여성들은 자연과의 직접적인 접촉을 통해 가족의 생존을 위한 필수품을 구하는 것은 아니지만, 가족의 사회적·노동력 재생산을 책임지는 자로서 가족들을 위해 해야 할 것, 사야할 것을 기억하고, 아이의 물리적, 사회적, 감정적 필요를 걱정한다. 유물론적 경향의 생태여성해방론자들은 바로 이러한 책임은 건강, 삶 그리고 생명유지에 필요한 생계자원을 위협하는 자연환경의 파괴에 반대하는 위치로 여성들을 몰아넣는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책임으로 인해, 여성은 경제적 동기에 상관없이 자연환경과 관련된 이슈를 가족의 건강의 관점으로부터 본다는 것이다.

둘째, 재생산영역에서의 \'보살핌\'과 \'양육\'노동의 경험은 또한 여성들로 하여금 자연환경에 대한 특별한 태도, 지식을 획득하게 하는 것으로 설명된다. 생존의 자원을 숲으로부터 얻는 제 3세계 농촌여성들은 숲을 가내적인 필요를 충족시켜주는 \'자원\'으로 인식한다. 이들에게 자연은 착취나 개발의 대상이 아니라, 생존을 지속시켜주는 보존해야 하는 \'자원\'이다. (Rodda edts, 1994 : 47-49) 또한 숲에서 자원을 얻는 활동을 통해 여성들은 흙과 나무의 다른 조건들, 종의 다양성, 자연의 재생의 과정 등의 자연에 대한 특별한 지식을 얻는다. 전통적으로 이들 여성들은 가족을 위한 생계농업에 우선적인 책임을 지고 있었기 때문에, 땅을 위한 유기적 비료를 만드는 지식과 같은, 자연을 파괴하지 않는 농업 지식을 습득하고 있다는 것이다. (Mellor, 1992 : 136)

셋째, 재생산 영역의 주담당자로서 여성은 자연의 파괴에 의해서 특수한 방식으로 영향을 받는 것으로 설명된다. 특별히 제 3세계 농촌지역 여성들은 개발과 자연파괴로 인해 자연적 자원이 고갈될 경우 가장 큰 영향을 입는다. 개발로 인한 산림벌채와 환경파괴로 인한 사막화, 물의 오염 등으로 인해 여성들은 기본적 필요를 얻기 위해 더 멀리 걸어야 한다. 이는 가족을 위해 기본적으로 투자해야 하는 시간 이외에 여성들이 담당해야 하는 노동시간이 더 길어짐을 의미한다. (Kirk, 1994 : 71) 제 3세계의 경우, 여성들은 개발과정에서 전통적으로 인정받아온 여성들의 생계농업을 위한 땅을 빼앗기게 되었는데, 이는 여성들이 덜 비옥한 땅을 일구기 위해 더욱 많은 노력을 들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자연의 파괴는 여성들에게는 살아남기(staying alive) 위한 필수적 자원을 파괴하는 것이다. (Agawal, 1992 : 124)

자연의 파괴는 산업화된 사회에서의 여성의 일상적 삶에 또한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설명된다. 여성들은 오염되지 않은 음식, 물 등을 가족들에게 공급하기 위해서 더 많은 관심과 시간을 소비에 투자해야 한다.

또한 자연환경의 오염은 특별히 생물학적 재생산자로서의 여성의 몸에 큰 영향을 미친다. 자연환경의 오염으로 인한 여성의 몸의 오염, 그 결과 발생하는 유산, 기형아 출산 등의 문제는 여성들에게 자연환경의 파괴를 여성자신의 문제로 느끼게 한다. (Merchant, 1996 : 194) 유물론적 경향의 생태여성해방론자들은 본질주의적 생태여성해방론자들과 달리 여성의 생물학적 재생산을 역사적, 사회적인 맥락에서 해석하려 한다. 이들은 여성의 생물학적 특수성 그 자체가 여성과 자연의 친화성을 구성하는 것이 아닐, 자연파괴로 인해 여성의 몸이 피해를 입는 특별한 방식이 여성과 자연의 친화성을 발생시킨다고 주장한다. 이들에게 여성의 생물학적 재생산활동은 다양한 사회적 의미구조 아래 놓여 있는, 여성 삶의 물적 조건으로 해석된다.

이와 같이, 유물론적 경향의 생태여성해방론자들은 \'보살핌\'과 \'양육\'노동을 특징으로 하는 재생산영역에서의 여성노동의 경험으로 인해 여성과 자연의 친화성이 형성되는 것으로 설명한다. 유물론적 경향의 생태여성해방론자들은 재생산영역에서의 경험을 통해 구성되는 자연에 대한 이해와 지식을 통해 여성은 환경적 재생의 과정에 대한 특별한 인식을 제공할 수 있고, 개발에 대한 여성의 대안적인 접근방식을 제공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다음으로 여성과 재생산, 자연에 대한 지배형태가 동일하다는 이유로 여성과 자연의 친화성을 상정하는 이들의 주장하는 바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유물론적 경향의 생태여성해방론자들은 현 가부장적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산\'영역은 여성, 재생산, 자연을 식민지화하고 이를 무료로 사용함으로써 이윤을 얻는다고 주장한다. 가부장적 자본주의 는 생산과정을 가치창출과정으로만 등치시키고 소비과정은 배제시켰으며(Mies, 1993 : 298), 자원으로 사용되는 자연의 가치를 잉여생산과정에서 배제시켜왔다. (Mellor, 1992 : 195) 또한 가부장적 자본주의 시장생산체계는 상품으로 전환될 수 없는 재생산노동을 생산영역으로부터 배제시켰으며 이를 여성에게 담당하게 함으로써 여성의 재생산노동을 무상으로 이용하여 왔다. (Merchant, 1996 : 16) 이와 같이 유물론적 경향의 생태여성해방론자들은 가부장적 자본주의의 시장생산체계가 자연, 재생산영역, 여성에 대한 초과착취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을 설명함으로써 자연, 재생산영역, 여성에 대한 지배형태가 동일하다는 결론을 이끌어낸다.

이들의 분석에 따르면, 생산, 남성과 재생산, 자연, 여성을 분리시키고 착취의 관계를 유발시키는 가부장적 자본주의의 시장생산경제를 파괴하지 않는 한 여성과 자연에 대한 지배를 근절시킬 수 있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를 위해서는 시장생산경제의 물적 자원과 의미에 대한 전면적인 투쟁이 요구되는데, 아가웰은 이는 바로 교육, 미디어, 종교적, 법적 기구를 통해 자원을 통제하는 부, 권력, 특권을 가진 지배적 집단과의 접전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Agawel, 1992 : 127) 이와 같이 유물론적 경향의 생태여성해방론자들은 자연, 재생산, 여성에게 공통적으로 작용하는 물적 지배형태를 밝힘을 통해 이들 영역의 억압이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증명하였다. 결국 유물론적 경향의 생태여성해방론자들은 자연, 재생산, 여성을 해방시키기 위한 전략은 함께 모색되어야 한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저항의 지점으로서의 여성과 자연의 친화성

본질주의적 생태여성해방론과 유물론적 경향의 생태여성해방론자들은 여성과 재생산활동과의 연관성으로 인해 여성은 \'보살핌의 윤리(Ethics of Care)\'라는 특수한 가치체계를 담지하고 있다고 본다. 본질주의적 생태여성해방론자들은 여성과 생물학적 재생산의 연관성의 결과로, 유물론적 경향은 \'보살핌\' \'양육\'으로 구성되는 재생산영역에서의 노동의 결과로 인해 여성들은 보살핌의 윤리를 체화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여성이 체화하고 있는 \'보살핌의 윤리\'는 가부장적 패러다임을 넘어서는 새로운 인간성의 모델, 자연과 인간의 새로운 관계를 구성하기 위한 저항과 대안의 지점으로써 채택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본질주의적 생태여성해방론은 여성의 생물학적 재생산력에 기반한 \'보살핌의 윤리\'를 정치화시키기 위해 고대의 여신을 오늘날 다시 상징화시키고자 한다. 이러한 시도는 여성의 생물학적 재생산활동, 육체의 특성과 자연의 특성, 양자의 연관성을 가부장제의 위계적 이원론의 해석적 틀에서 떼어내어 새로운 의미를 안에 집어 넣기 위한 것이다. 이를 통해 이들은 가부장제의 위계적 이원론으로부터 생물학적 재생산활동과 육체적 특성을 해방시킴과 함께, 현재의 관계를 역전시켜 여성의 생물학 자체가 여성과 자연의 해방을 위한 정치적 지점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탐색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위에서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생물학적 결정론이라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유물론적 경향의 생태여성해방론자들은 본질주의적 생태여성해방론자들과 달리 사회적 형태의 재생산노동의 경험에 의해서 여성들이 \'보살핌의 윤리\'를 담지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유물론적 경향의 생태여성해방론자들은 \'보살핌의 윤리\'를 가부장적 자본주의의 해체를 위한 정치적 전략으로 삼고 새로운 사회의 구성원리로 삼아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는 곧 \'보살핌의 윤리\'를 여성의 영역으로부터 해방시켜 남성, 생산의 영역까지 확대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전략을 모색하기 위해 유물론적 경향의 생태여성해방론자들은 먼저 \'보살핌의 윤리\'를 평가절하하고 배제하는 시장생산체계의 모순점을 탐색하고 있다. 시장생산체계의 가장 큰 모순점은 화폐적 형태로 전환될 수 없는 자연과 인간의 활동들, 즉 보살핌과 양육노동을 무가치한 것으로 배제하는 것으로 설명된다. (Mellor, 1992 : 183, 195) 시장생산체계에서는 사람들과 행동, 자원이 그들의 본질적인 가치에 의해서 평가되지 않으며 시장 가치에 의해서 평가받는다. 우리의 삶을 지속시키는 많은 것들이-깨끗한 공기, 신선한 물, 평화, 사랑, 보살핌 등-시장 가치로 평가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시장생산체계는 우리의 삶을 위해 본질적인 가치를 지니는 것들을 배제하고 오직 시장에서 이윤을 생산할 수 있는 사람, 돈을 소유한 사람에게만 자원, 상품,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약자, 가난한 자들을 체계적으로 배제한다. 결과적으로 유물론적 경향의 생태여성해방론자들에게 시장생산체계는 인간의 삶에 필수적인 자연적 자원과 보살핌의 활동들이 화폐로 전환되지 않는 이유로 이를 배제하는 모순덩어리로 인식된다. 이와 같이, 시장생산체계의 모순점을 지적함으로써 이들은 진정한 가치를 낳는 영역은 인간의 삶의 필수적 조건을 창출하는 재생산영역이라고 결론짓는다.

또한 유물론적 경향의 생태여성해방론자들은 가부장적 자본주의 아래서 시장경제체계는 시장경제체계안에 남성의 일을 놓으며, 가치평가를 받지 못하는 재생산 영역에 여성의 일을 범주화한다고 설명한다. 재생산영역을 담당하는 여성들은 자신의 노동이 시장에서 평가될 수 없기 때문에 물적 자원을 획득할 수 있는 가능성에서 체계적으로 배제되며 시장생산영역에 참여할 경우, 이중의 노동을 수행함으로써 초과착취를 경험하게 된다.

유물론적 경향의 생태여성해방론자들은 이러한 시장생산체계의 모순점을 기소(indictment)할 수 있는 가능성은 바로 여성으로부터 나온다고 주장한다. (Mellor, 1992 : 195-203) 왜냐하면 여성은 인간의 삶에 필수적인 가치를 가지나 시장생산체계하에서 지불되지 못하는 재생산노동의 주 담장자이며, 생산영역에 진입할 경우에도 이로 인해 이중의 초과착취를 경험해야 하는 시장생산체계의 희생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의 삶에 필수적인 보살핌을 수용하지 않는 시장생산체계를 해체하기 위한 작업은 남성의 이익과 경험으로 건설된 사회로부터 여성의 경험에 의해서 구성된 사회로 옮겨가는 것이다. 인간의 기본적 삶의 자연을 배제하는 생산과 재생산, 생산과 자연, 유급과 무급, 남성과 여성의 이분법적 범주는 거짓된 것으로 보인다. 유물론적 경향의 생태여성해방론자들이 주장하는 여성의 경험에 기초한 사회는 이분화된 생산과 재생산, 생산과 자연의 재통합을 지향하는데, 이는 재생산의 필요, 생태학적 관점으로 생산을 재조직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는 또한 보살핌과 양육의 일에 남성을 참여시키고 남성 또한 보살핌의 윤리를 획득할 수 있는 삶의 조건을 창출하는 것이며, 여성 또한 다른 삶의 가능성을 배제시켰던 부과된 보살핌의 역할로부터 해방되어 생산노동에 참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결국 유물론적 경향의 생태여성해방론자들은 \'보살핌의 일\'과 \'보살핌의 윤리\'가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긍정적일 수 있는 사회적 조건은 생산과 재생산, 생산과 자연, 남성과 여성으로 이분화된 범주와 작동원리를 해체시킴으로서만 성취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Merchant, 1996 : 16-17)

필자는 유물론적 경향의 생태여성해방론자들의 이러한 전략을 \'재생산의 정치학(politics of reproduction)\'으로 개념화하고자 한다. 필자는 \'재생산의 정치학\'을 재생산영역에서의 경험으로 인해 획득한 \'재생산의 가치\'를 새로운 사회구조의 재구성을 위한 저항과 대안의 지점으로 삼는 정치적 입장을 지칭하는 개념으로 사용하고자 한다. \'유물론적 경향의 생태여성해방론\'은 생산영역과의 관계에서 여성경험으로 인해 여성들이 발전시킨 특별한 태도, 가치관을 생산과 남성 영역으로 확장시키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재생산의 정치학\'으로 개념화될 수 있다.

\'재생산의 정치학\'으로서의 생태여성해방론의 정치적 지향점: 유물론적 생태여성해방론을 중심으로

유물론적 경향의 생태여성해방론자들이 추구하는 \'재생산의 정치학\'은 재생산의 필요와 자연의 생산, 재생산과정을 고려하여 인간의 생산을 재조직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들의 주장은 〈표1〉과 같이 상징화 될 수 있다. 〈표1〉에서 생산영역은 재생산영역의 기반위에서 존재하며, 더 광범위한 범주인 재생산영역에 의해 둘러싸여 있다.

〈표1〉 유물론적 경향의 생태여성해방론의 \'생산과 재생산관계\' \'생산과 자연관계\'에 대한 대안적 모델

이 모델에서 인간의 생산은 재생산영역과 자연의 생산, 재생산과정을 포함하는 대안적 경제체제에 의해서 재구성된다. 대안적 경제는 생태적 지속성, 재생산의 필요(특별히 여성과 아이들의 필요)에 의해서 구성되며, 시장의 이윤 축적에 기초하기 보다 \'보살핌의 윤리\'에 기초한 경제체계라는 특징을 갖는다. 미즈는 이를 \'도덕적 경제(moral economy)\'로 개념화 하고 그 구체적 지향점을 밝히고 있다. (Mies 1993 : 257) 미즈는 먼저, 도덕적 경제활동의 목적은 시장에서 상품생산을 통한 이윤추구가 아닌 삶의 창조와 재창조에 있다고 주장한다. 이는 자연의 가치와 다양상을 존중하는 자연과의 새로운 관계성에 기반하여 구성되는데, 여기서 자연과 인간의 관계는 경외, 협동, 호혜성에 기반하는 관계로 재구성된다. 또한 여기서 국가 관료제로부터의 탈집중화, 지역성(regionality)은 주요한 원칙인데, 이를 통해 지역적 자원은 착취되지 않으며 시장은 종속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것으로 제시된다. (Mies 1993 : 319)

미즈, 쉬바, 멜러 등의 유물론적 경향의 생태여성해방론자들은 생산과 재생산, 생산과 자연에 대한 이와 같은 새로운 미래상은 \'재생산영역에서의 여성 경험\'으로부터 도출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Mies 1993 : 297, Mellor 1992 : 249) 미즈는 구체적으로 이를 \'생계시각(subsistence perspective)\' 또는 \'생존적 관점(survival perspective)\'으로 개념화하고 있다. 여성이 \'생계시각\' 또는 \'생존적 관점\'을 획득할 수 있는 이유는 여성들은 삶을 만들어내고 이를 보전하는 \'생존적 일(subsistence work)\'인 재생산노동의 주책임자였기 때문이다. 미즈는 생계시각, 생존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자본의 축적을 위해서 생존의 기반인 자연환경을 파괴하며, 보살핌과 양육의 가치를 평가절하하고, 남성과 여성을 생산, 유급노동과 재생산, 무급노동으로 분리하는 생산의 논리는 모순적인 것임이 드러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미즈는 생계시각, 생존적 관점으로부터 그리고 중요하게는 이를 획득하고 있는 여성으로부터 사회의 전면적인 재구조화가 진행되어야 함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 구조화의 방향은 생산과 재생산, 생산과 자연, 남성과 여성간에 존재하는 거짓된 이분법적 구성을 해체하는 것을 지향하고 있다.

유물론적 경향의 생태여성해방론자들이 대안으로 제시하는 \'시장경제의 극소화\', \'필요에 의한 생산\'개념들은 필연적으로 사회주의적 전망과 연결된다. 그러나 이들의 논의는 사회주의적 전망을 제시하였던 맑스주의 그리고 현실 사회주의 국가형태와 큰 차이가 있다.

먼저, 맑스주의가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으로 역사를 설명하고 생산자인 노동자를 변혁의 담지자로 설정하고 있다면, 유물론적 경향의 생태여성해방론자들은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만이 아니라 생산과 재생산간의 모순, 생산과 자연간의 모순, 남성과 여성간의 성적 모순으로 역사를 설명하며, 변혁의 주체로서 여성을 상정하고 있는 차이를 보이고 있다. 따라서 생산영역은 자본의 이해관계만이 아닌 남성의 이해관계이며, 재생산과 자연, 여성에 대한 지배관계에 기초해 있는 것으로 설명된다. 그러므로 유물론적 경향의 생태여성해방론자들이 보았을 대, 생산영역에서 자본의 이해관계만을 고려하고, 역사발전에서 재생산 자연 여성의 범주를 무시한, 맑스주의 생산영역은 여성과 자연에 대한 지배를 간과하거나 이를 자본의 이해관계로 환원시키는 모순을 범하고 있다.

유물론적 경향의 생태여성해방론자들은 현실 사회주의체제내에서 이러한 맑스주의의 오류가 되풀이됨을 주장하고 있다. 멜러(Mellor), 쿨즈(Kurz)는 현실 사회주의 국가에서 여성, 자연에 대한 식민지에 기초한 경제적 모델이 되풀이되고 있음을 비판하고 이를 \'남성 사회주의\'로 개념화한다. (Mies 1993 : 298, Mellor 1992 : 10) 이는 바로 현실 사회주의 국가가 여성과 자연의 착취에 여전히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현실 사회주의는 자본주의 사회와 마찬가지로 여성억압, 생태파괴를 야기시켰다는 것이다.

맑스주의, 현실 사회주의에 대한 비판을 통해서 이들은 새로운 형태의 사회주의적 전망을 내세우고 있다. 이는 곧 생존을 위한 필수적 가치를 지니는 재생산, 자연의 영역에 생산을 종속시키고, 생산과 재생산의 이분법적 틀과 연합되어 존재하는 남녀간의 성별분업을 해체하는 것을 지향한다. 멜러는 이를 여성해방론의 생태 사회주의(Feminist Green Socialism)로 개념화하고 있다. (Mellor 1992 : 14)

생산이 재생산과 자연의 과정에 종속되는 여성해방론적 생태 사회주의체제는 바로 \'보살핌\'의 활동, 가치를 사회의 구성원리로 한다. 즉 여성과 자연, 재생산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사회주의를 통해 유물론적 경향의 생태여성해방론자들은 \'보살핌\'의 활동, 가치가 더 이상 특정인들에게 부과됨으로써 삶의 기회를 제한하지 않는, 사회 전체가 \'보살핌\'을 지향하는 사회적 구조를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둘째, 맑스주의가 생산영역에서의 혁명을 통해 재생산영역의 재구조화가 가능할 수 있었다고 본 반면, 유물론적 경향의 생태여성해방론자들은 재생산영역을 변동의 중심영역으로 설정하고, 재생산영역에서의 정치운동으로부터 생산영역을 재구조화하는 길을 모색하고 있다.

먼저 유물론적 경향의 생태여성해방론자들은 재생산영역의 중심인 가정과 지역(community)의 경제적, 정치적 의미를 회복하려 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 이들은 경제의 어원인 \'Oikos\'가 가계의 돌봄이란 뜻을 어원으로 가지고 있어 가정의 어원도 되며, 나아가 정치는 이 가계의 분배, 관리라는 함의를 상당부분 수용하면서 등장하였다는 점을 분석한다. 즉 가정영역은 역사적으로 현재와 같은 팔기 위한 상품이 생산되고 이것이 교환되는 경제영역의 모체이고 나아가 사회 전체를 돌보고 관리하는 정치영역인 폴리스의 모체로 재평가된다. (Biehl 1991 : 140-149) 따라서 가부장적 생산패러다임에 의해서 박탈당한 가정과 지역의 경제적, 정치적 의미를 회복하기 위해서, 이들은 가정과 지역을 중심으로 한 소비자해방운동, 풀뿌리 차원의 생존투쟁 등의 운동을 지향하고 있다. (Mies 1993 : 253-262, 297) 이러한 과정은 생산에 대한 도전임과 동시에 여성의 정치세력화의 과정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와 같이 유물론적 경향의 생태여성해방론자들은 현재의 이분법적 구조에서 재생산, 자연, 여성이 가지고 있는 특성을 생산영역에까지 확장시키며, 결과적으로 재생산, 자연, 여성의 필요에 생산영역이 종속되는 새로운 사회체제를 모색하고 있다. 이는 바로 재생산, 자연영역과 깊은 상호관련 속에서 여성들이 행하고 있는 \'보살핌의 활동과 가치\'를 중심으로한 새로운 형태의 사회주의체제의 건설을 의미한다.

\'재생산의 정치학\'으로서의 생태여성해방론의 함의: 유물론적 생태여성해방론을 중심으로

필자가 \'재생산의 정치학\'으로 제시한 유물론적 경향의 생태여성해방론자들의 정치전략은 기존의 자유주의, 맑스주의, 급진주의, 사회주의 여성해방론에 입각한 여성해방운동에 새로운 도전을 가하고 있다. 필자는 생산과정에서 남성과 동등한 참여를 이루려는 여성해방운동의 평등의 정치전략의 필요성을 긍정한다. 그러나 평등의 정치가 가부장적 생산영역의 모순 자체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 단지 평등한 참여만을 주장하는데 그친다면 이는 일부 엘리트 여성의 해방을 가져올 수 있을지는 모르나 전체 여성을 해방시키는 전략은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재생산, 자연을 식민지화함으로 존재하는 생산의 모순성이 해체되지 않는 한 여성억압의 구조적 문제는 해결될 수 없기 때문이다. 평등의 정치는 재생산영역에서의 경험으로 인해 여성들이 획득하고 있는 \'재생산의 가치\'를 생산영역에 주입하는 전략이 되어야 한다. (필자는 재생산영역에서의 여성경험으로 인해 구성된 특질을 \'여성성\'으로 개념화하는 것에 반대한다. 왜냐하면 여성이 획득하고 있는 특별한 특성은 여성의 생물학적 존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여성이 담당하고 있는 영역의 성격, 여기서의 노동경험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의 성별분업구조상 이를 획득하는 것이 주로 여성에게 한정되나, 만일 다른 맥락에서 남성이 재생산영역의 주노동담당자가 되거나 여성과 양과 질 모두에서 이를 분담한다면 남성 또한 이러한 가치체계를 획득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이를 여성성으로 개념화하는 것은 남성의 참여, 남성의 변화가능성을 수용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성성\'은 \'재생산의 가치\'로 재개념화되어야 한다.) 이것이 이루어질 때 생산영역이 자연과 친화적인 방식으로, 보살핌과 양육의 노동과 가치를 고려하는 방식으로 재구조화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유물론적 경향의 생태여성해방론자들의 \'재생산의 정치학\'은 생산영역에서 비록 여성이 남성과 평등한 기회를 성취한다하더라도, 생산영역이 자연과 재생산에 대한 착취에 기반하는 한 이러한 평등의 성취는 해방으로 이어질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생산영역에서 남성과 평등을 이루는 것보다 이들에게 더 중요한 것은 생태계의 지속성, 우리의 삶의 지속성을 불가능하게 하는 현재의 생산의 작동원리를 바꾸는 것이다. 현재의 가부장적 생산체제에 있어서 공통적으로 억압을 경험하고 있는 여성, 재생산, 자연에서 여성만을 빼내어 생산영역에 편입시키는 것은 여성해방의 전략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여성, 재생산, 자연의 억압은 서로 상호연관되어 있으며, 이를 식민지화함으로써만 성장할 수 있는 현재의 생산패러다임을 전면적으로 전환시키지 않는 한 어느 한부분만의 해방은 가능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물론적 경향의 생태여성해방론은 여성해방운동이 더 이상 재생산, 자연과의 연관성을 부인하려 하지 말고 역사적으로 존재한 여성과 재생산, 자연과의 연관성을 인정할 것을 요구한다. 그리고 이를 현재의 가부장적 생산체제에 대한 저항과 대안의 지점으로 삼을 것을 주장한다.

멜러(Mellor), 미즈(Mies), 쉬바(Shiva)로 대표되는 이 입장의 생태여성해방론자들은 제 3세계 여성들의 투쟁에 실제로 함께 하면서 이론을 실천으로 연결시키고 있다. 제국주의에 맞서 자신들의 생계수단인 숲을 지키고, 보살핌의 윤리에 기반한 새로운 공동체와 생산방식을 만들어내고 있는 인도의 칩코(Chipco)여성들의 투쟁은 이미 이들 생태여성해방론자들의 주장점이 현실적 가능성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새로운 시도가 얼마나 영향력을 가진 변혁이론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이지만, 유물론적 생태여성해방론은 지금까지의 여성해방론을 질적으로 성숙시킬 수 있는 새로운 장을 열고 있음은 틀림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