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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이야기/역사

단군신화, 그리고 북방이야기 (뉴스메이커 747호)

by 마리산인1324 2007. 10. 28.

 

<뉴스메이커 747호> 2007 10/30

http://newsmaker.khan.co.kr/khnm.html?mode=view&code=116&artid=15791

 

 

 

[특별기획] 단군신화, 그리고 북방이야기

   

코리안루트 1만㎞ 대장정
단일종족 신화 논리는 역사를 축소… ‘단군-게세르 계열’로 안목을 넓혀야


 

부리야트인들이 게세르가 알려진 후 1000년이 지난 것으로 추정되는 해인 1991년 이를 기념하여 셀렝게 강변 언덕에서 기념전을 열었다. <신동호 기자>

“우사, 풍백, 운사, 세오가 환웅을 보필하는 사신(四神)으로 설정되고, 태초의 혼돈 속에 벌어지는 선과 악의 투쟁이 현무, 백호, 청룡, 주작의 전투 장면으로 묘사된다. 농경사회의 상징으로 알려진 우사와 풍백이 실제로는 전쟁의 신이었고, 현무, 백호로 변신하여 지상의 악을 제거하는 전쟁을 벌이는 것이다.”

이 얼마나 재기발랄한 연출인가? 드라마 ‘태왕사신기’에서 단군신화를 보는 시각의 일부다. 물론 ‘태왕사신기’에서 단군신화를 족조신화로 축소하며, 단일 종족신화를 강조하는 것은 신화를 통한 역사 왜곡으로 비난받을 수 있고, 고조선에서 분화한 다양한 종족들의 존재를 부정하는 심각한 문제점이 될 수 있다. 다만, 필자가 주목하는 점은 단군조선의 경제적 기초가 농경이라는 상식화된 추론이 실제로는 막연한 추정일 수 있음을 보여줄 수 있는 대목이다. 이와 유사한 얼개를 가진 북방신화인 ‘게세르’의 내용을 염두에 두고 단군신화의 얼개를 비교해보면 이러한 해석이 단순히 연출자 개인의 상상력에 불과하다고 폄훼하기 어렵다.

단군조선 사회체제 접근 신중해야

프롤로그와 제1, 2부를 비교해보자. 게세르 신화에서는 신화 텍스트가 지상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하늘 세계의 회의, 하늘신 게세르의 지상 파견, 지상의 조화 복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단군신화에서도, 지상세계의 문제와 백성들의 도탄을 목격한 환웅이 환인의 허락을 얻은 뒤 우사, 풍백, 운사를 비롯한 전쟁신 혹은 최첨단 신무기를 갖추고 하늘용사 3000명과 함께 지상강림한다. 이후 신시로 불리는 하늘 신의 직접 통치구역을 설정하고, 지상에서 인간들을 괴롭히는 악의 무리들을 제압한 뒤 지상과 우주의 조화를 복원한다. 이렇게 보면 두 신화가 닮은꼴이 아닌가? ‘불함문화론’에서 단군신화와 몽골계 부리야트인의 게세르 서사시를 유사한 내용이라고 한 육당 최남선의 말이 허언이 아니다.

‘주곡’이라는 표현을 농경사회의 유력한 증거로 내세울 수 있으나 단군신화가 유목에 가까운 북방 종족들의 신화와 밀접한 관련성을 갖고 있다면, 조금 더 조심스러운 시각으로 단군조선의 사회경제 체제를 논할 필요가 있다. 단군신화에 농경을 상징하는 요소가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사회 전체가 농업경제를 기반으로 성립했다는 증거를 제시하기는 쉽지 않다.

단군 초상. 일연이 채록한 단군신화는 게세르 계열의 이야기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다.
어쩌면, 단군신화를 농경사회의 흔적으로 해석하는 입장이 정주민 이데올로기가 첨가된 편견일 수 있다. 유목세계에 존재하는 닮은꼴 신화들의 존재를 외면하고, ‘바람’이나 ‘비’, ‘주곡’의 요소를 농경사회의 모티프로 추론하는 데는 위험이 따른다. 단군조선의 경제 기반을 농경에 연결하는 시도는 중심에서 주변부로 밀려난 한반도의 거주자들이 스스로를 합리화하는 장치였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이웃을 범하지 않는 평화 지향의 정주민, 백의민족 이데올로기의 강화를 위한 무의식적인 선택이었을 수 있다.

단군신화를 농경사회의 정착 과정으로 설명하는 통설과 함께 여인으로 변한 웅녀를 두고서 곰족을 부각시키며 단군조선을 곰족의 국가로 해석하는 주장 역시 절반쯤 상식으로 통한다. 하지만 정말일까? 서울대 강정원 교수는 ‘북아시아 곰 관련 의례와 관념 체계’(비교민속학회 발표문, 2007)라는 논문에서 이 같은 상식의 우상을 부분적으로 허문다. 곰 관련 샤머니즘 제의를 시베리아에서 찾기 어렵고, 곰 제의와 샤머니즘과의 관련성이 의문스러워서 단군신화와 샤머니즘의 관계를 숙고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강 교수의 주장이다. 이 말은 역으로 샤머니즘과 곰 토템 사이에 역사적인 관련성이 크지 않음을 인정하면 단군신화를 샤머니즘 신화로 이해하는 데 무리가 없다로 해석될 수 있다. 실제로 시베리아 곰 의례 관련 대표적인 연구자라 할 수 있는 한스-요하힘 파프로트의 저서 ‘퉁구스족의 곰 의례‘(태학사, 2007)에는 샤머니즘과 곰을 직접 연결시키는 요소를 찾아보기 어렵다.

그렇다면, 조금 다른 시각에서 생각해보자. 웅녀는 자신의 의지로 삼칠일간의 혹독한 수련을 통해 자신이 속했던 곰족의 행태와 문화에서 벗어나 새로운 존재가 되었다고 상정할 수 있다. 야만에서 문명으로, 곰족의 종족 이데올로기에서 홍익인간과 제세이화를 이념으로 하는 하늘세계의 보편적인 이념을 수용하는 존재로 전이한 것으로 말이다. 웅녀는 하늘 세계 이념을 공유하고 개별 종족이 아닌 보편적인 인간을 지향하는 존재로 다시 태어났다. 인간이 된 웅녀에게 곰족이나 호족은 자랑스러운 혈통이 아니라 제세이화와 홍익인간의 교화 대상이다. 단군신화가 단일종족의 족조신화라는 좁은 범주가 아니라 고대의 제국 형성과 소멸 과정을 담은 보편적인 이데올로기를 지향하고 있는 증거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다종족 복합사회 성격 간과 말아야

신화 텍스트를 살펴보면, 단군조선의 백성들이 모두 다 웅녀의 자식이거나 혹은 단군의 직접적인 후손인 것도 아니다. 단군은 이미 존재하고 있던 곰족, 호족을 비롯해서 인간이면서도 인간이 되지 못한 무리들을 인간으로 교화시켜 보편과 인간을 지향하는 다종족 이념사회인 고대 조선제국으로 나아간 것으로 보인다. 고대 한반도와 북방 거주자들은 단군조선 시대에 이미 순혈 이데올로기로 사물을 판단하지 않았음이 신화 속에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는 셈이다.

단군신화를 한민족 혹은 단일민족의 족조신화 혹은 건국신화로 보는 시각은 단군신화가 다종족 복합사회의 성격을 가진 제국의 신화인 점을 간과하게 만들고 결과적으로 단군조선에 대한 기억을 해체하며 조선의 영역과 범위를 축소하는 왜소한 접근이다. 단군을 단일종족의 족조신화나 건국신화로 주장하는 논리는 자신의 역사를 축소하는 논리를 생산해온 것이다. 신화 텍스트 속의 조선은 다종족, 다문화를 인정하고 이들을 포괄하는 새로운 이념을 공동가치로 지향하는 동아시아 고대 제국의 원형적인 성격을 드러내는데도 말이다. 신화 연구는 문학 텍스트의 세밀한 연구에서 출발해야 하고, 있는 그대로를 드러내는 객관적인 시각을 견지할 필요가 있다.

지난 호에서 언급한 바대로 바이칼 샤먼 발렌친은 게세르 신화와 닮은꼴인 단군신화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이제 단군과 게세르의 닮은꼴 이야기가 탄생된 경위를 따져봐야 한다. 바이칼 샤먼인 발렌친뿐 아니라 다수의 몽골계 연구자들이 게세르 계열 이야기의 몽골 기원설을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표 2〉는 게세르 계열의 이야기에 대한 일반적인 분류의 예다. 담딩수렝은 동북아시아의 특이한 영웅 서사시인 게세르 계열 이야기의 모티프가 ‘티베트→몽골→바이칼 지역 부리야트’의 방향으로 전파가 이루어졌다는 전파론을 주장했고, 발렌친을 비롯한 일단의 연구자들은 몽골인들의 게세르 이야기가 주변 지역 거주자들의 장가르 서사시, 마아다이카라, 단군신화와 같은 유사한 신화의 형성에 영향을 미쳤다는 영향설을 펴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신화세계에서 기원설과 전파의 방향을 논하는 것은 그다지 생산적이지 않다. 비교 연구를 통해 게세르 계열 이야기들의 기원을 밝히기가 어려울 뿐 아니라 전파의 방향을 논하는 것조차 객관적이기 어렵기 때문이다.

단군신화 채록이 500여 년 앞서

‘게세르 판본 연구’(비교민속학, 2007)에서 필자가 언급한 바와 같이 전파설의 말단에 있는 부리야트 게세르 신화가 내용상으로는 오히려 신화 공간을 간직하고 있는 고본이고, 육당이 몽골이나 티베트가 아닌 부리야트 게세르 신화를 단군신화와 연결했던 사실을 보면 전파의 경로 추적은 지난한 작업이 아닐 수 없다.

부리야트역사발물관에 전시된 출판 연도로는 가장 오래된 부리야트어 게세르 판본. <신동호 기자>
게세르 계열 이야기의 발생을 해명하는 실마리를 찾기 위해서 이야기 채록 시기를 비교해보는 것은 무척 흥미로운 일이다. 문헌에 의한 고증은 이야기의 존재 시기에 대한 객관적인 근거기 때문이다.

북방민족들에게서 전해오는 게세르 신화들 가운데 가장 이른 채록본으로는 ‘1716년 베이징 판본’을 손꼽을 수 있다. 만주족의 족조신화를 강조하는 사회 분위기를 타고 몽골의 게세르 서사시가 베이징에서 1716년 목판 출간된 것으로 추정된다. ‘1716년 베이징 판본’ 채록 이전에 티베트 지역에서 이미 1600년대 초에 게세르 계열의 서사시가 존재했고, 채록되었다는 보고가 있지만, 실제로 티베트 고본은 모두 소실되어 남아 있는 판본을 찾을 길이 없다. 1830년대에 몽골어로 기록된 ‘링 게세르(Geser of Ling) 판본’을 티베트 고본의 몽골어 번역본으로 추정하는 학자들이 있어 티베트 고본의 내용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신화적인 시공을 고스란히 갖고 있는 부리야트 게세르 판본들 역시 그 각본들의 수가 100여 개가 넘지만 대부분이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반에 채록된 것이다. 알타이의 ‘마아다이카라’와 칼묵인들의 ‘장가르’ 역시 18세기 이후 채록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13세기에 일연선사가 기록한 ‘단군신화’는 단군-게세르 이야기 계열에서 가장 오래된 채록본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단군신화를 채록한 이후 무려 500여 년이 지난 뒤에야 이와 유사한 얼개를 가진 게세르 신화와 서사시들이 몽골 등지에서 채록되기 시작한 것을 보면, 단군을 게세르 계열 이야기로 설명하기보다, 게세르 이야기들을 단군신화 계열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자연스러워 보인다. 한반도에서 발견되는 역사적·고고학적인 사실뿐 아니라 신화적인 내용까지 북방을 비롯한 다른 지역의 유사한 사례와 비교해서 전파론과 영향설의 잣대로 해석하는 방법론이 과연 옳은가? 게세르 계열의 이야기를 ‘단군-게세르 계열’로 부르는 것이 마땅해보인다.

13세기는 몽골제국이 성립하는 단계이며 한반도가 몽골에 무릎을 꿇고, 몽골과 고려의 연합군의 일본열도 공략 시도가 있던 격변의 시기였고, 이를 감안하여 단군신화를 일연선사에 의한 위작일 수 있다는 주장이 있다. 국난에 직면해서 민족주의에 호소하는 신화 활용 전략이 구사된다는 설명인데, 국난을 초래한 몽골에 대항하기 위해 몽골계 신화를 모방해서 한반도의 신화를 창작했다는 주장에는 어폐가 있어 보인다.

일연선사는 단군신화가 본인의 창작이 아니라 일반 백성들 사이에서 구전되는 이야기의 채록이라고 분명하게 밝혔다. 오늘날 단군신화와 유사한 얼개를 가진 신화적인 서사들이 동북아시아의 각 지역에서 서로 다른 명칭을 가지고 발견되는 것을 보면, 유사한 이야기들이 일연 이전에도 지역과 종족에 따라 독특한 판본 형태로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야기의 전파 방향이야 확인할 길이 없으나, 단군신화는 ‘단군-게세르 계열 이야기’들의 존재를 13세기 이전으로 추정할 수 있는 문헌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양민종/ 부산대 러시아어문학과 교수·신화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