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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사상 이야기/함석헌

함석헌의 비폭력 평화 사상과 그 실천전략(김영호)

by 마리산인1324 2006. 12. 17.

 

사단법인 함석헌기념사업회

http://www.ssialsori.net/data/ssial_main.htm

 

<우원사상논총> 제 10집(2001년), 강남대학교

 

 

함석헌의 비폭력 평화 사상과

그 실천 전략

                                 

김 영 호

인하대 교수

♠ 차 례 ♠

들어가는 말

Ⅰ. 비폭력 사상             Ⅱ. 비폭력 평화 세상을 위한 운동 전략


들어가는 말



   세계가 폭력의 전형인 테러와 전쟁으로 다시 몰입하고 있는 현 시점에서 비폭력 평화 사상을 말하는 것은 의미가 깊다고 할 수 있다. 함석헌과 간디가 모두 이 원리를 세계 무대에 적용하기보다는 일차적으로 한국과 인도라는 특수환경에서 실험하고 적용하려고 한 것은 사실이지만 보편적 진리의 차원에서 내세웠기 때문에 국제환경에 적용하는 것은 당연하다. 함석헌은 세계가 하나로 되어간다는 것을 누구보다 먼저 내다본 사회진화론자였다. 그의 탄생 백주년을 기념하여 그가 험난했던 60년대에 비폭력사상을 펼치면서 강의하던 중앙신학교의 후신인 이 대학에서 이러한 기념 모임이 있는 것 또한 의미 깊은 일로 보여진다. 같은 주제에 대하여 다른 연구도 없지 않다.1) 보는 시각과 시점이 다르므로 이 중요한 주제는 얼마든지 많이 다루어져도 좋다. 비폭력 같은 구원의 사상은 시대마다 다시 반추하고 실천할 가치가 있다. 비폭력사상이 마르틴 루터 킹에게까지 전승된 것은 이것을 말해준다.

   비폭력사상의 의미는 대강 알려져 있다고 보면, 이제 필요한 것은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는 것보다는 이 시점에서 그 의의를 찾아보고 간디와 함석헌이 이것을 다만 말과 글로 주장한 것만이 아니고 지행합일(知行合一)하는 자세로 비폭력을 실천했다는 사실을 되돌아보고2) 현재의 맥락에서 실천의 전략과 프로그램이 제시되어야한다고 생각된다. 역사상 한국의 대표적인 사상가로 꼽히는 원효도 단순한 학승만은 아니고 저자거리에서 보살행을 실천했기 때문에 더욱 위대했던 것이다.

   여기서 함석헌을 왜 다시 꺼내야하는가 한번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그냥 100주년이니까 기념하자든지, 어떤 식으로 이용하던지 심지어 팔아먹자고 하는 동기에서 하는 거라면 그의 뜻과 사상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짓일 터이다. 그는 미래에는 전쟁과 돈이 없어질 것이고 천국이 있다면 돈이 없는 곳일 거라고 낙관적인 예언을 했다.3) 그런데 아직도 세상은 전쟁과 돈이 판치고 있다. 전쟁이 아닌 평화와 비폭력, 돈이 지배하는 모듬살이가 아닌 전체가 같이 살기와 무위자연을 내세운 함석헌의 정신을 살리는 프로그램이 필요한 때이다.

그가 돌아간지 12년이 되었지만 아직도 그와 같은 선지자나 나라의 어른이라고 할만한 분을  찾기가 힘들다. 이제는 그가 노상 강조했듯이 개인주의, 영웅주의 시대가 아니고 전체가 함께 가고 같이 생각하는 시대라는 것은 세계화라는 오늘의 키워드에 의하여 잘 드러나고 있다. 아직 그것조차 못 깨닫는 사람들을 계도할만한 사람이 우리 주변에 있다면, 끝에 가서 도를 물어볼 분이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대답이 그저 “글쎄”라고 하더라도, 참 좋지 않을까 하는 점에서 함석헌선생이 그리워지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우리가 나라안팎에서 돌아가는 일들을 생각하다가 보면 결국 함선생이 말해 놓은 테두리를 못 벗어난다는 것을 알게 된다. 말하자면, 그가 “하나님 발길에 차였다”지만, “함석헌 발길에 차일” 수밖에 없다. 지금 그의 글을 다시 읽어도 이런 말씀을 했나 할 정도로 예지가 번뜩이는 감탄스러운 생각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확실히 우리보다 선각자였으며, “우리 옆에 있던 부처”였다. 그런 의미에서 이 주제를 의탁하여 그의 생각을 다시 한번 들춰볼 기회를 갖게된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그의 생각을 다 이해했다고 치부하기에는 너무 이른지 모른다.

   이 에세이에서는 주제 개념에 대한 기본적인 내용을 정리하고, 왜 비폭력이 아직도 이 ‘시대의 말’로 강조되어야하는가, 아직 설득 당하지 않은 이들에게 어떤 식으로 설명해야 이해될 수 있는가 궁리해보고, 간디의 사상과 비교하여 어떤 차이라도 있는가 살피면서 비폭력사상의 둥치를 좀 더 드러내보려고 시도하고자 한다. 단순하게 비폭력을 다 이해한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있지만 깊이 깨달아야할 측면이 아직도 남아있을 만큼 비폭력은 다면적이고 심층적인 개념이다. 그때그때 여러 가지 방편과 도구를 통해서 다시 드러낼 만한 원리요 진리이다. 



Ⅰ.  비폭력 사상

  

   비폭력이란 개념은 고전적인 연원을 갖지만 근대에 와서 헨리 데이빗 도로우(Henry David Thoreau 1817-62)의 시민 불복종 운동 (civil disobedience), 레오 톨스토이(Leo Tolstoy 1828-1910)의 성서해석을 통한 발견에서 새 발단을 찾을 수 있다. 함석헌이 먼저 접한 것은 마하트마 간디(Mahatma Gandhi 1869-1948)를 통해서였다. 그가 번역하기도한 간디 자서전과 로망 롤랑의 간디 전기가 함석헌이 비폭력사상에 몰입하게 한 결정적인 계기를 주었다. 하지만 함석헌은 시대마다 감옥을 들락거린 파격적인 인생을 살아간 올곧은 종교인이었으므로 그 안에서 독자적으로 비폭력사상의 싹이 움트고 있었을 법하다. 비폭력은 종교의 근본이 아닌가. 자기 속에서 자라난 생각이 간디를 읽고 마주침이 일어나서 신념이 되었을 것이다. 함석헌이 비폭력을 추켜든 것은 간디에게서 큰 영향을 받은 결과인 것은 분명하지만 나름대로 생각한 점이 있었을 것이다. 한 가지는, 역사가의 시각에서 개인에 의한 모든 혁명은 무력적이었고 그 혁명은 모두 실패한 것을 상기했다. 나폴레옹, 이성계, 박정희, 레닌, 모택동까지가 다 그렇다는 것이다. 그는 학생들이 모택동 사상에 대해서 한창 심취할 때도 비판했다.4) 현실적으로 작은 폭력으로 큰 폭력을 당할 수도 없다는 점도 지적한다. 그가 도가 노장 사상을 좋아한 이유도 비폭력을 함의한 무위 자연 사상이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비폭력처럼 도는 목표요 목표에 이르는 길이었다. 비폭력이라는 “올바른 수단이 목표로 이끌어가듯이” 바른 길이 진리로 이끈다.

   비폭력이 몇 선각자의 독창적인 특수한 사상이라는 뜻은 아니다. 간디와 함석헌이 파악한대로 사람이 예부터 걸어오던 길(古道)이다. 이들은 다만 술이부작(述而不作)한 것이다. 비폭력은 모든 종교와 문화에서 강조하는 가장 기본적인 도덕률이다. 비폭력은 다른 것이 아니고 “죽이지 말라”는 계명 바로 그것이다. 힌두교는 물론, 기독교에도, 불교에도,  한민족의 옛 윤리인 팔조금법에도 나오는 기본 계율이다. 다만 죽임의 대상이 인간 만이냐 다른 생물까지냐가 다를 뿐이다. 인간중심주의인 기독교와 모든 중생까지 포함하는 인도 기원 종교의 차이가 드러난다. 어원적으로 ahimsa는 “不(傷)害” (non-injury)이지만 그 연장선상에서 不殺로 테두리가 압축되고 좁아진 셈이다. 사실은 불살계만 실천해도 인류문화가 꽤 진전했다하겠지만, 엄격하게 말하면 불상해, 즉 비폭력이라야 될 것이다. 폭력을 쓰다 죽이는 경우가 있고 어떤 폭력이든 폭력은 악이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경우에 따라서는 필요악이 될 수도 있다는 주장도 성립되지 않는다. 일찍이 신라 시대 한 불교법사(원광)는 화랑도라는 청년군사조직을 유지하기 위하여 세속오계라는 상황윤리를 만들어 불살생을 살생유택으로 바꾸는 지혜를 보여주었다. 신라불국토설과 호국불교를 내세워 왕권을 유지해야하는 입장에서 현실타협의 소산이지만 간디와 함석헌의 종교적 진리관과 윤리관의 입장에서는 허용될 수 없는 어중간한 입장이다. 불살생은 타협 대상이 아닌 절대윤리요 진리자체이기 때문이다. 비폭력이 이미 종교윤리의 근간을 이루고 있음에도 그 원리를 왜 다시 강조해야되었는가. 함석헌은 시대마다 새로운 말이 있어야 한다고 되뇐다. “각 시대는 제 시대의 말씀을 가진다.”5) 비폭력은 이 시대의 말이다. 예수가 ‘하나님 아버지’, ‘사랑’이라는 말을 새로 썼다. 아직도 통용이 되고 있지만 ‘사랑’은 너무 진부하고 천박한 말로 추락해서 아가페적인 참다운 뜻을 잃어버렸다. 더 이상 약발이 서지 않는 말로 떨어졌다. 마치, people을 뜻하는 백성, 인민, 국민이 그 뜻이 제한 당하여,  ‘씨’이란 말을 쓰는 것이 좋은 것처럼, 사랑, 자비, 인을 수 천년 사용하는 과정에서 본질적인 초점을 잃어버린 막연한 말이 되어버린 시점에서 주의를 이끌만한 새 말이 필요하다. 성경의 “사랑은....” 정의는 얼마나 포괄적인가. 하지만 현대인들에게 그 다양한 실천요목들이 얼마나 호소력을 갖고 있는가 의문이다. 물론 인도에서는 ahimsa도 전통 속에서 계속 통용되고 실천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채식주의 전통도 이런 맥락에서 볼 수 있다. 그러나 간디는 남아프리카에서 겪은 인종 차별과 영국의 인도 식민지배의 환경 속에서 현실 변혁의 전략으로서 새로운 도구를 찾아냈어야 했다. 단순한 도구만이 아니고 진리에 어긋나지 않는 도구가 바로 비폭력이었던 것이다. 개인윤리의 차원에 머물러있던 것을 간디가 사회적 차원으로 끌어 올렸다. 모든 사회적 문제를 궁극적으로는 종교적 차원에서만 풀어갈 수 있다는 신념을 갖고있는 함석헌에게 비폭력이 강한 공명을 일으킨 것은 당연하다.

   함석헌은 「간디의 길」에서 “나는 이제 우리의 나갈 길은 간디를 배우는 것밖에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하고 그 이유를 세 가지로 제시했다.6) 첫째, “우리와 인도의 사정이 비슷한 점이 많기 때문이다.” 외세 때문에 가난과 무지와 타락이 심한 인도와 우리나라의 불행을 극복하는 일은 “간디가 인도 민중에게서 한 것 같은 깊은 속의 혼을 불러내는 진리운동이 아니고는 될 수 없을 것이다.”

   둘째, 간디에게 있어서 “정치와 종교가 잘 하나로 조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간디는 “정치문제를 종교적으로 해결했다.” 함석헌의 관점에서는 “인류가 오늘에 당하는 고민은 종교를 무시하고 모든 문제를 정치적으로만 해결하려 했던 결과로 오는 것이다.” 정치와 종교는 “유기적인 통일”과 균형, 상호견제가 필요하다는 것이 역사가 가르친 위대한 교훈이다. 정치와 종교가 분리된 것은 “자아의 분열을 일으킨” 상태를 가져왔다. 왜 종교인인 그가 모든 시대에 감옥을 들락거리면서 현실정치에 대해서 비판을 서슴치 않았는가 하는 이유를 여기서 찾을 수 있다. 함석헌이 잘 관찰한 대로, 간디는 “종교를 여읜 정치는 갖다 버려야 할 쓰레기더미일 뿐이다”라고 말했다. 또한 이렇게 밝혔다: “나는 내가 스스로를 인류 전체와 같이 보지 않고서는 종교적인 삶을 살아갈 수 없을 것이며, 정치에 참여하지 않고는 그렇게 할 수 없을 것이다.”7) “내 허리에 구렁이처럼 정치가 감겨 있으니까” 이걸 떼버리려고 한다든지 어떻게 해야 한다고 하는 간디의 주장을 함석헌은 받아들인다.8) 

   셋째, “앞날의 세계를 위한 평화운동에 있다.” 함석헌은 “이제 나와 너의 구별이 없는 하나의 세계가 되어가고 있다”고 내다 봤다. 그래서 더욱 더  “세계의 하수도”요 쓰레기통인 “우리야말로 불의의 값을 내 등에 짐으로서 나와 저를 살리자는 간디의 정신이 필요하게 되었다.” 국가간에도, 특히 강대국들이 “간디가 열어 논 길을 택하는 수밖에 별다른 길이 없을 것이다”.

   비폭력의 사회적 적용은 함석헌의 존재론과 잘 부합한다. 그는 나와 너의 관계를 일원론적, 전체론적으로 이해하고 있다. 칼릴 지브란의 말로, “내 이웃”이란 “내 또 다른 자아”(my another self)이다.9) 누구에게나 정신이 있다는 점에서 “네 정신, 내 정신을 따로 가를 수가” 없다.10) “여러분과 내가 서로 남이 아니고” “남의 일을 내 일로 알아서 하나가 될 줄 아는 것이 곧 나라”이다.11) “사람은 다 불쌍한거야. 다 그 속에 내가 들어가 있어. 내 속에 그것들이 다 외 있어. 우리 다 형제지. 다 하나님의 모습을 가졌으니까. 그 사람 욕하진 마시오,”12)  이 관점은 간디가 뿌리를 둔 인도전통의 카르마 사상과 윤회관에는 닿지 않더라도 부분적으로 연기론적 세계관과 접촉한다. 여기서 함석헌이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같이 살기 운동’이 나온다. 이 슬로간은 근대 한국 종교들이 강조하는 상생(相生) 사상과 정통으로 일치한다. 그 안에서 민족정신이 표출된 것이다. 그 정신이 비폭력 사상으로 더 강화된다. 원융회통(圓融會通), 조화, 상생은 한국정신의 독특한 모습으로 지적되어 왔다. 같이살기, 상생의 원리는 다름 아닌 그가 내세운 ‘씨’ 이란 말에서 아래 ‘‘ 에 들어 있다. ’‘ 속에서 ’너‘와 ’나‘가 만나고 ’‘ 속에서 ’몸‘과 ’맘‘이 만나기 때문이다. 녀아동근(汝我同根)과 영육쌍전(靈肉雙全)의 구조가 담지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함석헌은 비폭력이란 말조차 낡아지고 있다고 생각했던지 나중에 가서 한걸음 더 나아가 ‘씨’ 개념을 개발하여 사상을 세워갔다. 한국의 역사와 현실 속에서 잠재된 변혁의 도구를 나타내는  새 말, 자기 말을 찾아낸 것이다. 이 말은 비폭력을 안으면서 다른 차원을 제시하고자 한 것이다. “씨은 비폭력을 그 사상과 행동의 원리로 삼습니다.” (〈우리가 내세우는 것〉) 그렇다고 비폭력이 낡거나 퇴화한 말이 아니다. 이를 한국 현실에서 보완하기 위하여 다른 말을 내세운 것일 뿐이다. 간디가 아슈람을 세우고 잡지(Young India)를 내면서 진리파지(satyagraha) 운동을 펴나간 식으로 함석헌도 『씨의 소리』를 내면서 “같이 살기 운동”을 펴나가려고 한 것이다. 그러나 간디가 인도의 독립을 성취하듯 함석헌이 분단종식 같은 일을 일궈내지 못한 것은 여러 가지 조건이 서로 달랐기 때문이지만, 가장 큰 요소는 비폭력을 이해하고 채택하는 데 있어서 문화적 차이가 있었던 것이다. 운동권은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고 (김민석의 『타임』지 회견) 하는 입장에 있어서 함석헌의 주장은 설득될 수 없었다. 화염병과 자살이 이를 증명한다. 비폭력보다는 “방어적 폭력,” “사랑의 폭력”의 당위성이 주장되었다.

   그러나 전체적인 흐름으로 봐서 한국의 민주화는, 6.29선언에서 나타났듯, 결국 비폭력 운동이 가져온 결과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의 민주화에서 함석헌의 공로는 개인으로서는 누구에게 못지 않을 것이다. 서남동이 짚어냈듯이 전태일의 분신을 민중운동의 하나의 기점으로 삼은 것은 함석헌의 공이다. 그는 이름을 “옹근 큰 하나”로 풀이, 전체론(전일사상)과 연결시키며 전태일을 기렸다. 이것이 간디의 투쟁에 맞먹는 결과를 가져온 것은 아니라도 오늘의 민주화가 이런 비폭력 민중투쟁의 결과가 아닐까. 물론 화염병이 상징하는 투쟁방식이 동원되었지만, 크게 봐서는 비폭력적인 운동의 승리로 봐야한다. 만약 화염병이 사용되지 않고 6.29 같은 대중운동으로 진행되었다면 더 효과적이었을 법하다. 전태일에서 보듯 비폭력의 원칙인 자기희생 요소가 뚜렷했다. 또 하나의 비폭력투쟁 이유인 작은 폭력이 큰 폭력을 이길 수 없다는 사실도 증명되었다. 결국 민중, 더 깊은 뜻에서 씨의 승리가 아니었을까.

   비폭력의 문제는 비폭력이 폭력만 안 쓰면 된다는 식의 소극적 자세로 보인다는 점일 것이다. 그러나 간디나 함석헌이나 평화, 비폭력을 말하면서 가만히 앉아서 있었는가. 누구보다 더 투쟁, 감옥살이의 연속이었다. 무저항이라니까 오해를 일으키기 쉽다. 함석헌도 이것을 지적하면서 생명의 본질을 저항에 두었다. 심리학자 에릭슨(Erikson)은 『간디의 진리』(Gandhi's Truth)라는 책의 부제에서 “전투적 비폭력”(militant nonviolence)이라고 수식한다.13) 일견 모순되게 들리지만 그만큼 적극적이란 말이다.  간디처럼 함석헌도 “싸우는 평화주의자”이며 “수줍은 투사”였다.14) 그 자신도 “사상의 게릴라전”을 벌이자고 주장했다. 그만큼 비폭력 평화 운동은 적극적인 행동을 수반한다.  비폭력은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방식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적극적인 실천을 가리키는 개념들, 즉 사랑, 인, 자비, 무위 등과 같이 도덕윤리의 핵심 개념이 될 자격이 있는 말이다. 이중 어느 하나만 실천해도 다른 덕목들도 실천한 결과가 된다. 불가에서는 팔정도가 있지만 선이나 지혜 하나만 강조하는 종파가 생겨나게 되었다. 12 가지 연기의 사슬에서 어느 하나만 끊으면 윤회의 굴레가 끊기고 해탈이 성취될 수 있다. 예를 들면, 무명(無明), 집착(取) 등은 더욱 그렇다. 마찬가지로 비폭력만 완전히 실천한다면 진리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간디는 “모든 집착에서 벗어나는 것이 신을 진리로서 깨닫는 것이고, 철저히 저기를 버리지 않고는 비폭력을 이룰 수 없으며, 비폭력은 곧 보편적 사랑“ 임을 밝힌다.15)

   ‘보편적 사랑’이지만 구체적 실천 대상은 자기 이웃인 민족이 된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민족보다 진리가 우선한다는 점에서 간디와 함석헌은 일치한다. 함석헌에게 민족은 한 세계로 가는 길목에 있는 집단형태이다. 그는 스스로가 결코 민족주의자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리고 민족주의를 넘어서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민족주의는 반댑니다. 그걸로는 안돼요.... 젊은이들과 만나면.... 말합니다. 민족주의는 지나간지 오래다. 따라서 우리의 운명도 세계적 관련 위에서 파악해야 된다고요. 그런데 학생들은 안 그렇습니다. 생각이 뒤졌어요. 민족주의는 우리를 속이려고 내세우는 것입니다.... 민족주의 자체만으로는 안됩니다.”16) 다만 지금까지 고난 속에서 같이 살아온 역사가 있기 때문에 버릴 수 없다. “지킬 수 있는 데까지는” 지켜가야 하는 것이 민족이다.17) 이런 점에서는 세계주의자, 전체주의자 함석헌보다는 간디가 좀 더 민족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고 할 수 있다. 인도전통의 가치에 대한 자부심이 개입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Ⅱ. 비폭력 평화 세상을 위한 운동전략


    함석헌과 간디가 주장하고 실천한 비폭력은 단순한 행동지침이나 도구가 아니라 인류의 문화전통을 관통하는 생존원리로서 종교적 진리를 드러내는 개념이다. 진리가 진리란 말로 들어낼 수 없듯이 상징성을 넘어선 구체적인 실천덕목으로 그때그때 표상 되고 구상화할 필요가 있다면 정신적 혁명을 주장한 함석헌과 간디가 산 두 시대환경이 변혁의 도구로 비폭력을 내세운 것은 시의 적절한 것이었다. 다른 실천 덕목이 많이 있지만 가장 실천적이면서 포괄적인 덕목은 비폭력을 따를 수 없다. 기독교의 사랑, 불교의 자비, 유교의 인 같은 종교의 핵심적 덕목이 있지만 오랜 시대를 경과하면서 너무 일반적이고 추상적인 개념으로 인식되게 되었다. 무언가 새로운 접근이 필요했다. 그때그때 새 종교, 새 철학이 등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비폭력은 이 필요성을 채워주는 개념이다. 어느 윤리덕목이나 계율보다 그 한가지만 잘 실천하면 가장 효과적일 수 있는 실천덕목이 될 자격을 갖추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비폭력을 신체(身)적인 것만 아니고, 불교에서 말하는 삼업(三業)이 포함하듯, 원래의 뜻대로 언어(口)와 마음(意)의 영역으로 삼는다면  도둑질, 거짓말, 음행 등 다른 기본 계율까지 다 포함하는 공동축이 된다. 다른 두 영역은 일단 제쳐두고라도 신체적 폭력에 대한 비폭력주의만 실천되더라도 훨씬 더 평화로운 사회가 될 법하다. 전쟁 하나만 지구상에서 영원히 없앤다면, 그리하여 전쟁무기가 없는 세계가 된다면, 장족의 진보를 이룬 셈일 터이다.  

   어떤 사상이고 일단 던져지면 여러 가지 시각에서 그 시대의 말로 다시 해석되고 그 의미가 반추되기 마련이다. 비폭력이 진리라 하더라도 아직도 이해와 납득의 단계가 걸려있긴 하지만 그 과정을 진행하면서 실천적 차원에서 프로그램의 수립과 운동이 병행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세상에 아직도 폭력이 난무하고 있다고 볼 때 비폭력운동은 아직도 유효한 전략이다. 비폭력사회가 정착된다면 그때 가서 또 다른 덕목을 내세우고 한 단계 더 진보할 수 있겠지만 그때는 까마득할 것이고 인류가 인간의 탈을 쓰고 있는 한 영원한 과제로 남을 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 원리를 어떻게 파급, 실천하느냐가 우리에게 던져진 과제이다.

   비폭력은 사상이기 전에 운동의 도구로 출발하였다. 간디와 함석헌은 책상머리에서 이론을 수립하는 학자가 아니고 자기가 처한 사회상황 속에서 진리를 증거하며 행동한 종교인이요 사회운동가였다. 그 바통을 받은 후대사람들에게 변화된 상황 속에서 두 선각자가 각기 건져낸 만고의 진리를 어떻게 파급시키고 실현하느냐가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이다. 원불교의 창시자 소태산이 새 시대에 맞는 원리를 찾아내고 2대종사(정산)가 그 정신을 이어 실천의 프로그램으로 삼동윤리(三同倫理: 同源道理, 同氣連契, 同拓事業)를 수립한 것 같이 ‘진리의 바통’을 받은 이들이라면 이 시대, 이 시점, 이 상황에서 무엇이 필요한가 깊이 생각을 내야할 것이다.

   함석헌은 역사발전을 믿는 사회진화론자로 진리의 연속성과 진리를 토대로 한 사회발전을 강조했다. 여기서 ‘진리의 바통’론이 제기된다. “인생의 역사는 릴레이 경주와 같다. 날 때는 바통을 받아들고 달리기 시작하는 것이고, 갈 때는 다음 사람에게 넘겨주어야 한다.”18) 동양의 순환(circular)사관에서이던 서양의 선형(linear)사관이나 발전사관에서이던, ‘진리의 바통’을 받은 사람들이 더 나아가야 할텐데, 아직도 바통을 받기만 했지 달릴 생각을 못하고 멈춰서있는 주자와 같지 않은지 모른다. 달리지는 못하고 몇 걸음 걸은 정도일까. 오히려 거꾸로 안 갔다면 다행이다. 또한 함석헌이 말하기도 한 ‘뒤로 돌아 앞으로가’ 거꾸로 일등 하는 기회를 엿보고 있는 것 같지도 않다.

   그와 같은 의구심은 세상을 둘러보면 생겨난다. 아직도 비폭력 원리의 인식과 실천은 요원하다는 걸 느낄 수 있다. 테러와 그에 대항하는 전쟁의 쳇바퀴가 지금 지구전체를 불안하게 하고 있다. 그 대응하는 방식은 기독교 정신은 어디 가고 “이에는 이로, 눈에는 눈으로” 식으로 배타주의적이고 폭력적인 것이다. 두 사람이 그렇게도 강조한 개인윤리와 사회윤리의 분리가 그대로 남아있는 셈이다.

   안으로 눈을 돌려보면 한국사회처럼 폭력적인 사회도 드물다고 할 것이다. 분단과 지역갈등, 종교갈등, 계층간의 갈등이 다 폭력적 원인과 구조를 담고 있으면서 언제라도 폭력화할 소지를 안고 있다. 정치 행태는 가히 조직폭력과 다를 바 없다. 국회의원은 그 집단의 하수인처럼 행동한다. 집단폭력행사의 극치인 군사혁명 때부터 여태까지 살아남은 정치인들이 지역감정의 줄을 타고 묘수를 두면서 나라의 운명을 아직도 좌지우지한다. 다가올 선거도 이런 갈등구조를 이용한 어부지리로 끝날 것이다. 국민은 오직 그네들의 정치적 야심 추구를 위한 볼모로 남을 뿐이다.

   종교계를 보면 어떤가. 종교집단은 천당과 극락정토를 미끼와 볼모로 신도를 오도하고 현실 밖으로 내몰고 있다. 함석헌이 뭐라고 진단했던가.


아마 과거에 언제나 그랬던 것같이 기성종교는 그대로 화석이 되어 역사의 지층 속에 남고 말 것이다. 그들은 돌같이 굳어진 신조만을 주장하고 경전의 해석은 기계적으로 되어 생명을 자라나게는 못하고 도리어 얽매는 줄이 된다. 돌같은지라 생활경험이 들어갈 수가 없고, 기계적인지라 전체적 생장적인 역사파악을 하지 못하고 도리어 그것을 이단시하여 버린다.

본래 종교 경전이란 것은 개조적인 율법서가 아니요, 자라는 힘을 가진 원리를 보여준 것이다. 석가요 예수요 하는 위대한 종교의 스승은 하나도 빠짐없이 그 때의 제도를 전적으로 깨뜨리고 나서는 혁명가들이다. 그들이 고정된 율법서를 만들 리가 없다. 그것은 그들의 정신에는 정반대되는 것이다. 그런 것을 만든 것은 그들이 아니요, 그들에게 생동하는 인격성을 빼고 우상화하여 숭배하기를 좋아하는 추종자들이다.19)

   우상, 우상 하지만 그 참 뜻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날뛰는 ‘개조적인’ 율법주의자들, 역사인식과 사회의식은 전혀 없이 교조적이고 소승적인 불법(佛法)수행논자들이 알아야할 뜻이 여기 담겨있다. 이렇게 이 시대의 종교상황을 진단한 함석헌이 그 대안으로 무엇을 제시하였는가. 새로운 종교개혁이다.


새 프로테스탄트가 나와야 한다. 종교개혁이 다시 나와야 한다. 어느 종교나 종파만 아니라 통히 종교 그것이 새로워져야 한다. 먼저 왔던 것이 다 제때에는 저 할 일을 했지만 제 때가 지나간 다음에도 그냥 서 있으면 이제는 도둑이요 강도다. 그러므로 그들을 내쫓고 새 말씀을 외쳐야 한다. 그러기 위하여 새 역사 이해를 가져야 한다. 그들의 사명은 진리를 현대 속에 살리는 데 있다. 시대착오의 낡은 제도 속에서 질식되려는 진리를 구하는 것이 그들의 일이다.20)


   종교 측면에서 바통을 받아 나아가는 길이 무엇인가 여기에 제시되어 있다. 한 사회의 변화는 무엇보다 정치개혁을 통해서 오지만, 이것은 참다운 종교적 가치와 진리가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이 함석헌의 주장이다. 그래서 우선 종교가 바로 서야 한다. 사회개혁은 바른 종교와 도덕성을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시대마다 종교개혁이 필요하다. 그는 “시대의 앞장을 서는 것이어야만 참 종교”라고 단안을 내렸다. 그런데 기성 종교는 “격변하는 역사에 앞장을 서서 인류를 구원하는 그 사명을 능히 다하지 못할 것”이라고 보았다.  

   정치와 종교의 유기적 관련에 대해서 함석헌은 간디와 일치한다. 다양한 종교에 대한 다원주의적인 종교관도 일치한다.21) 그러나 조직종교의 한계와 종교개혁에 있어서는 다르다. 간디는 이를 특별히 강조하지 않은 반면에 함석헌은 조직화된  종교가 종교의 원래 목표를 상실하고 있다고 비판한다.22) 모든 종교는 조직이 아니고 운동으로서 출발했다는 종교학자 윌프레드 캔트웰 스미스 교수의 견해에 전적으로 동의할 것이다.23) 그는 인도를 보고 와서 이렇게 말했다:


벵골 주에 가보았는데 힌두교 사원에 예배를 가는 사람이 많았어요. 나는 그들을 보고 힌두교 사원이 서 있는 한 민중은 일어서지 못한다고 했어요. 사원이란 기관이 민중을 꽉 쥐고 있어서 해방이 될 수가 없어요. 사원은 민중의 착취기관이고 중류 이상 사람들의 마음을 마비시키는 기관이에요. 잘못을 저질렀어도 사원에 가서 빌면 다 용서되는 줄 아니까 소위 안이한 양심을 가지고 반성하고 아프게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칩니다. 이것은 종교의 큰 죄악입니다.24)  


   이러한 부정적인 현실의 대안은 물론 비조직적이거나 소집단적인 종교 운동이 된다. 무교회신앙을 거쳐서 나중에 퀘이커 모임에 참여하게 된 것은 현실적으로 단체수행과 평화운동 네트워크가 필요하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러한 정신의 타당성을 인정한다면 이 방향으로 새로운 종교운동이 필요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세계와 한국사회를 돌아보면 일부 교파의 근본주의자들이 일으키는 종교간의 갈등이 심각하다.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이 다미안의 석불을 파괴한 일은 타산지석이 아니다. 정도는 다르지만 나라 안에서 그대로 일어난다. 그로 인해 귀중한 민족문화재가 훼손되고 단군 상 같은 민족과 종교의 상징이 파괴되어도 지식인들은 침묵을 지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조계종 종단에서는 종교편향 대책위원회까지 구성하고 있다.25) 

   언론의 폭력은 또 어떤가. 20세기 내내 시대마다 국민을 오도해온 신문들이 21세기에도 국민의 눈과 귀를 막고 있다. 절대권력을 쥔 권부처럼 행세하고, 그 비판을 못 견뎌 발악하고 있는 장면을 연줄하고 있다. 언론 폭력의 극치를 보여준다. 조폭, 조폭 하는데, 언론이야말로 조직폭력이 아니고 무엇인가. 폭력의 세 가지 통로(三業) 가운데 언론은 두 가지, 즉 입(口業)과 생각(意業)을 통제한다. 함석헌은 이런 언론에 서슴없이 원색적인 독설을 퍼붓는다: “저 신문장이들을 몰아내라, 잡지장이 연극장이, 라디오 텔레비장이들을 모두 몰아내라. 그놈들 우리 울음 울어달라고 내세웠더니 도리어 우리 입 틀어막고 우리 눈에 독약 넣고 우리 팔다리에 마취약 놔버렸다.”26) 물론 오늘의 현실은 70년대 당시와는 전체적으로 크게 달라졌다. 그러나 국민의 여론을 좌지우지하고 있는 보수족벌언론은 교묘하게 주어진 언론자유를 자기보호에만 사용하고 있다. 정부, 재벌, 관료들, 강대국의 폭력적 행태를 지적하고 비판해야할 언론이 조폭이 되어 권력과 상업주의에 넘어가 민중을 미혹시키고 기만하고 있다. 함석헌은 언론에 대해서 지금 우리에게 취할 행동을 이미 제시한 적이 있다:


그리고 신문 광고를 해서 돈을 벌기 때문에 우리를 업수이 여겨요. 만약 신문 광고가 없다면 신문이 시시할 때, 거기 하나님의 뜻을 표시한 말이 없을 때 우리가 불매 동맹을 하면 하루에 없어지고 말아요.... 독자가 마음에 없어 안 본다 그러면 하루에 없어질 가능성이 있어요. 그렇게 돼야 세상에 바른 의견이 서는데, 여론이라는 게 있게 되는데, 이 나라는 여론이 없는 나라야... 이 신문이 우리를 저버리는 신문이야. 민중을 당초 저버리는 신문이야.27)


   시점이 다르지만 오늘의 보수족벌언론에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28) 여기에 간디가 내세운 비협조 운동의 원리가 들어있다. 그러나 이러한 운동이 인도와는 달리 우리 사회에서 현실적으로 얼마나 힘든지 지금 벌어지고 있는 신문불매운동을 보면 알 수 있다. 다소의 효과가 있다고 하지만 강제투입, 선물공세의 폭력 앞에서 씨은 아직도 무기력하다.

   인식론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언론만이 아니라 한국인은 지금 진리와 사실 인식을 방해하고 자유와 평등의 가치를 실현할 수 없게 막고있는 이런저런 그물 망에 갇혀있다. 지연, 학연, 혈연, 재벌, 종교가 엮어내는 연고와 연줄에 얽혀있다. 누구도 열등감과 우월감 같은 각종 콤플렉스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는 진리, 사실, 실체에 대한 접근을 가로막는 장막이 된다. 학연에 관해서, 함석헌의 눈에도 “[소위 일류대학] 다니는 놈들 평생 사람 못되는 불리한 위치”에 있다.29) 어느 쪽에든지 줄을 서야 살 수 있는 것처럼 살아간다. 거미줄을 치는 거미줄처럼 연줄을 타고 곡예를 버리는 모습이다. 이 네트워크를 벗어나지 않고는 진실을 바로 볼 수도 진리를 깨달을 수도 없다는 사실을 모른다. 개인과 집단이 그물 망에서 해탈하지 않고는 사회구원은 불가능하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비폭력운동가, 사치아그라히는 무엇을 해야할까. 함석헌의 같이 살기 운동을 펴가야 한다. 새마을 운동처럼 관주도식 조직적인 대규모운동이 아니고 작은 집단으로 출발하는 형식이 바람직하다. 함석헌은 개인주의와 국가주의를 모두 배격했다. 전체가 같이 살아간다는 전체주의라고 천명했지만 그 실천은 작은 모임에서 되어질 수 있다. 정신적 종교운동이 된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모든 종교는 종파로 조직되기 이전에 하나의 운동으로 출발했다. 추종자들이 오해해서 그 운동성을 잃어버리고 제도와 조직으로 고착되어버린 것이다. 한국 근대종교들이 주장한 대로 이제 원시반본 해야할 때다. 원래 인간의 살림은 평화적인“소박한 공동체”였다.30) 개인들이 따로따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보다 소수의 민주적이고 평등주의적인 그룹으로 같이 모여 행동하면 조직의 부담 없이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악과 싸우려면 개인 플레이를 해서는 안 됩니다”고 함석헌은 말했다.  “유기적인 하나의 공동체가 생겨야 한다는” 것이다.31) 그 공동체는 『씨의 소리』로 상징된다. 이 모든 문제의 원흉인 자기욕심 버리는 훈련을 해가야 한다. 자기변혁, 사회변혁을 위해서 ‘사상의 게릴라전’을 펴나가는 아슈람이 되어야 한다. 함석헌은 비폭력 운동을 ”무슨 아슈람, 도장 없이 시작한 거 큰 잘못“이라고 후회하고 뒤늦게나마 『씨의 소리』를 ‘사상의 게릴라전’ 하자고 시작한 것이다.32)

   지금의 사회구조에서는 책임소재가 불투명하다. 예로 교육문제를 들면, 누구도 책임질 수 없고, 책임을 물어도 다른 데로 책임을 전가하기 일쑤이다. 작은 수가 모여 같이 의논하고 사회변혁의 길을 찾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다. 함석헌은 한 강연에서 광주에서 일어난 사건을 이야기하는 가운데 이 길을 제시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공동체 훈련 안 하면 안 된다는 겁니다. 우리가 새 역사를 짓는 씨 노릇을 하려면 하나가 되기 전에 자기 부근의 가능한 한도 안에서, 크게 욕심 부리지 말고 공동체 훈련을 해야 돼요. 사랑을 하는 것, 대적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 우리가 악을 대적하기는 하지만 그 사람을 미워해서는 안 된다는 것, 그런 것을, 하기는 어렵지만 힘닿는 데까지 해요. 한 급우끼리, 한 가족으로, 또 다른 사람들하고 하면 더 좋고.33)


   이런 종류의 사회공동체 재조직 운동이 없이는 몇 년 가도 이웃에 누가 사는 지도 모르는 아파트 속에 갇혀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언제 질식할 지 모른다. 개인의 경쟁은 무자비하지만 소규모집단끼리의 경쟁은 인간적이다. 조직이 커질수록 폭력도구화하기 쉽다. 소규모집단은 폭력화할 수 없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고 한 경제학자 슈마허도 간디의 사상을 토대로 새 경제구조를 제창했다. 초강대국 미국이나, 부상하는 강국 중국의 문제도 여기에 있다. 주나 성의 독립성이 축소되어 연방국가는 유물이 되어가고 대국주의는 실속이 없는 낡은 틀이 되어갈 것이다. 함석헌은 세계와 강국이 나갈 방향을 오래 전에(1978)에 전망했다:


만일 세계가 하나로 된다면 그건 주권이 하나가 될 터이니까, 대국의 세력이 분산되어야 하겠지. 그렇다면 중공도 미국도 다 갈라져야 한다고 봐. 그땐 지방자치제가 늘어갈 거니까 주가 각각 독립해야지. 그래야 커뮤니티가 형성되지 않겠어요? 대국주의란 아주 나빠요. 그게 우상 노릇을 해서 작은 민족이 못살게 되는데, 그래 작은 민족이 살려면 대국은 무너져야 한다고 봐요.... 우리가 물리쳐야 할 것은 집단주의(collectivism)야. 대국이란 것도 실은 이 집단주의지.34) 


   나라가 클수록 집단적으로 더 큰 악을 범하기 쉽다. 그래서 간디와 함석헌은 비폭력을 집단에도 적용하자는 것이다. 미합중국보다는 유럽의 연합 체제가 훨씬 이상적이다. 유럽은 작은 나라일수록 더 높은 사회안정과 삶의 질을 향유한다.35)

   한국도 삼국시대부터 내려온 지역감정을 억지로 없애거나 무시하려하지 말고 지역자치를 기초로 한 연방형태로 가는 것이 분단과 갈등의 장기적인 해결책이 될 것이다. 이는 통일을 앞당기는 장치도 될 수 있다. 북한에서 말하는 “낮은 단계의 연방”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중간단계가 아니고 항구적인 제도가 되어야 한다. 서울 중심의 중앙집권 형태로는 당면한 남북, 동서 갈등상태를 헤쳐가기 힘들다. 문화적으로도 지방문화의 발전 없이 서울문화만 발전해서는 균형 있는 한국문화의 발전은 불가능하다. 통일과 문화발전을 위해서 지방자치, 지방분권화가 가속되어야 한다. 최근 학계에서 이러한 운동이 일고있는 것은 다행이다. 대의정치면에서 양원제 같은 장치가 고려될 수 있을 것이다. 미국 상원처럼 인구비례로 뽑는 하원과는 달리 각 시도에서 같은 수의 대의원이 상원을 구성해서 지방의 평등성이 확보되는 제도가 필요하다. 자치의 단위가 적을수록 책임소재가 분명하고 자발성을 쉽게 유도할 수 있으며 여러 가지 면에서 인간적인 생활단위가 된다. 함석헌이 꿈꾸는 노자의 ‘소국과민(小國寡民)’의 이상이 실현될 수 있다. 

   통치권력과 행정단위가 크면 클수록 오류의 한계도 커지게 된다. 미국, 소련, 중국 같은 큰 나라에서는 한번 크게 잘못하면 것 잡을 수 없이 되어갈 수 있다. 함석헌은 소국과민이 다른 나라를 억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하면서 대국주의가 세상을 망쳐 놓는다고 경고한다.36) 그는 미국 같은 큰 나라가 큰 일을 저지를 것을 걱정했다. 조직화된 이슬람도 정권과 관련되면 근본주의자로 변화하고 만다. 중앙집권 구조에서는 부패의 고리와 규모가 그만큼 커진다. 검찰, 경찰, 법조계, 교육관리, 세무관리의 비리가 어떠한가를 보면 알 수 있다. 교육제도도 중앙정부에서 대학입시 관리까지 모든 것을 다 하려는 데서 문제가 생겨난 것이다. 각급 학교의 운영과 감독권을 지방, 지역으로 이양하고 자율성을 부여해야 한다. 또한 사립학교는 공공성, 공교육 구조 확립이 필요하다. 중앙집권화만큼 교육기관의 사유화도 배제되어야 한다. 경제단위도 공룡 같은 재벌 위주의 정책보다 인간의 얼굴을 한 중소기업 단위가 중심이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어느 나라에서보다도 경제, 정치, 언론, 교육 등 사회 각 분야가 재벌의 영향을 받고 있다.

   이것이 비폭력주의의 입장에서 정치의 큰 틀에서 일어나야 할 변혁의 방향이라면, 비폭력 평화 사회를 이루기 위하여 바꿔야할 작은 일들이 있다. 그 가운데 사형제도, 종교적인 이유에 의한 병역(집총)거부 등 현안 문제가 있다. 이는 기본 인권과도 관련이 있다, 선진국들이 폐지하고 인정하는 정책을 채택하는 사항임을 인식하고 이에 맞추어 가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이다. 이 문제들은 서양 기독교 전통이 대표하는 인간중심주의적인 발상의 틀 속에서 해결될 수 것들이라면 환경파괴 문제 같은 것은 인본주의보다 확대된 중생(衆生)의 생명관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다. 환경보호에 대하여 함석헌은 합리주의적 사유 속에서 기독교 인본주의의 연장선상에서 해답을 찾으려 하고 간디는 인도전통에 충실하게 중생 평등주의를 적용한다는 점에서 접근방식에 다소 차이가 있다. 

   또 근간 문제가 되고있는 중국교포에 대한 차별과 비인간적 대접도 근본적으로 시정되어야 한다. 간디의 민족중심자치주의에도 함석헌의 전체주의, 보편주의에도 어긋나는 인식이요 폭행이다. 같은 동포에 대한 대접이 이러한데 통일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인가 의아심을 일으킨다. 연변은 통일의 교두보가 될 수 있는 곳이다. 민족의 울타리를 열고 확대해야 한다. 학생운동도 이런 맥락에서 평화 운동, 비협조 운동, 소비자 보호운동 같은 포괄적인 범위로 확대되어야 한다.

   대강 이와 같이 진리의 바통을 이어받은 후세가 함석헌 사상을 실천하는 전략과 프로그램에 대해서 접근해볼 수 있다. 비폭력 평화 사상을 실천전략과 프로그램 없이 반추하기만 하는 것은 이 땅의 지식인이 보여온 행동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함석헌은 ‘지식인은 기회주의자“라고 바로 보았다.37) 지식을 팔아먹고 사는 지식인들이 함석헌도 팔아먹고 있는 것 밖에 안 된다. 그는 어느 지식인보다도 지행합일 속에서 ‘행동하는 양심’이었다. 그가 산 모든 시대와 정권에서 감옥살이했다는 사실이 이를 말해준다. 그가 인도의 고전 바가밧 기타를 특별히 좋아한 것도 이 책이 간디가 좋아한 종교경전으로서 행동의 철학, 카르마 요가를 내세우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의 우상 예수와 간디도 행동의 사람이었다. 그에게서 진리의 바통을 받고 싶다면, 그가 주장하듯, 무언가 “꿈틀거리고” 저항하는 몸부림을 해야 한다. 비폭력운동은 가만히 앉아서 아무 짓도 안하고 바라다만 보는 것이 아니다. 간디가 말했다: “어디에서건 사회부정에 대하여 저항하지 않으면서 비폭력을 실천하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다.”38) 

   이것은 바로 함석헌이 던진 씨이 지향하는 바이기도 하다. “씨은 스스로가 역사의 주체인 것을 믿고, 그 자람과 활동을 방해하는 모든 악과 싸우는 것을 제 사명으로 압니다”라고 내세우면서 “비폭력을 그 사상과 행동의 원리로 삼습니다”고 말했다. 〈우리가 내세우는 것〉에서 그는 이와 함께 “같이 살기 운동을 펴나가려고 힘씁니다”고 덧붙임으로서 사명, 원리, 운동방향을 종합적으로 제시했다. 함석헌은 “여러분도 이 순간은 말을 들으셔야지요. 그렇지만 속에서는 그 듣는 말보다 그걸 더 힘을 쓰셔야 할 겁니다”고 우리를 조용히 경책한다.39) 함석헌은 간디가 벌인 비폭력, 비협조, 진리파지 등 기본 원리를 수용하면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적극적으로 ‘같이 살기 운동’을 제창하고 있다. 왜 같이 살기 운동을 해야 하는가. 그 이유는 뒤따라오는 해설에 들어 있다: “씨은 선(善)을 혼자서 하려 하지 않습니다. 씨은 너 나가 있으면서도 너 나가 없습니다. 네 마음 따로 내 마음 따로가 아닌 것이 참 마음입니다. 우리는 전체 안에 있고 전체는 우리 하나하나 속에 다 있습니다.”

   그 바통을 받아서 어떻게 무엇을 더 구체적으로 이 시대에 실천해야 하느냐 하는 전략은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