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 2008-01-03 오전 11:04:09
http://www.pressian.com/Scripts/section/article.asp?article_num=40080103110319
[시론] 이처럼 막무가내로 밀어붙여도 괜찮단 말인가
우려했던 바가 현실로 나타났다. 제발 그렇게 하지 말기를 바랐는데…. 큰일이다. '한반도 대운하' 건설 강행이라니! 누구 맘대로? 대통령 당선자 맘대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맘대로? 50% 가까운 지지를 받았다고 이처럼 막무가내로 밀어붙여도 괜찮단 말인가!
勝者의 오만?
한국리서치와 서울경제신문이 1일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대운하 건설에 찬성한다'는 응답은 26.1%에 불과했고, '재검토 후 결정해야'와 '추진 반대' 의견이 각각 59.0%, 12.5%였다. 국민 10명 중 7명 꼴로 대운하 건설에 '사실상 반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인수위는 대운하 건설을 기정사실화하고 발 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인수위 한반도대운하 태스크포스(TF)팀장인 장석효 전 서울시 부시장은 어제 "대운하 사업은 최대한 빨리 시작해 임기 내 완공하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TF 상임고문인 이재오 의원도 "(이명박 대통령) 취임 즉시 시작할 것이라며 내년 2월쯤 첫 삽을 뜰 것"이라고 말했다.
인수위 측이 대운하 프로젝트를 서두르는 기미는 세밑부터 포착됐다. 지난달 28일 장석효 팀장은 대우건설 삼성물산 등 5대 건설사 사장단과 모임을 갖고 한반도 대운하 프로젝트 내용을 설명했다. 인수위가 당선자의 공약을 발 빠르게 추진하는 것은 당연한 것처럼 보이지만 독선 내지 과잉충성의 몸짓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한나라당 내부에서도 대운하 프로젝트에 이의를 제기하는 측이 있기 때문이다.
한나라 내부서도 찬반 첨예
이한구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은 "(차기)정부가 의지가 있다고 해서 굉장히 큰 파급 영향이 있는 것을 그냥 마음대로 하겠다고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며 대운하 조기 착공을 주장하는 인수위 측에 제동을 걸었다. 이 의장은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제시해서 걱정하시는 부분이 보완되는 것을 확인받고 추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인수위 측이 최근 국내 5대 건설업체 대표와의 조찬 모임을 갖고 한반도 대운하 프로젝트 사업 내용을 설명한 것을 두고도 "너무 앞서간 것"이라며 "어쨌든 국민적인 동의를 못 얻으면 못 한다"고 강조했다. "대운하 건설은 이미 결정된 사실이어서 운하 자체를 반대한다는 의견은 수렴할 수 없다"는 이재오 의원의 입장과는 배치되는 것이다.
말로만 의견 수렴?
당과 국민 등 내외의 반대에 직면한 인수위는 5년 전 청계천 복원 때처럼 충분한 의견수렴을 거친 뒤, 공사를 시작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실무팀과 지원팀, 여론수렴팀이 중심이 돼서 의견을 수렴하겠다는 것이다.
인수위 측은 2월 초 한반도 대운하 토론회에 이어 올 한해 공청회와 교통·환경영향평가, 대국민 홍보 등의 준비 작업을 거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이다. 이미 기정사실화해놓고 교통·환경영향평가를 한다는 것은 운하 프로젝트의 면죄부를 주기 위한 요식행위임을 스스로 시인한 것이다. 청계천 복원 프로젝트와 대운하 프로젝트를 동일시하는 단순무식적 과단성도 걱정이다.
더욱이 강승규 인수위 부대변인은 "지역경쟁이나 국가경쟁력에 큰, 얼마나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는지를 의견 수렴을 거치고 전문가 의견을 반영하겠다"고 까지 밝혔다. 재고의 여지가 없음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그런 점에선 "차기 정부가 구체적인 대운하 계획을 내놓고 공론화 과정을 거쳐 국민투표로 결정하자"는 환경단체의 주장에 더 수긍이 간다.
허점투성이 프로젝트
대운하가 건설될 경우 야기될 환경 파괴와 지속가능한 발전의 저해라는 원론적 반대 요소는 일단 제쳐두고, 공약이 내세우는 대운하의 효율성과 관련해 몇 가지 따져 보자.
우선 ,운하를 통한 물류 속도의 비효율성이 불 보듯 뻔하다는 것이다. 운하의 높낮이 편차의 경우, 영국 템즈강은 연중 8m, 독일 라인강은 18m, 중국 양쯔강은 22m인 데 비해, 우리나라는 산이 많고 강수량이 들쑥날쑥해 운하가 들어설 한강의 편차는 90m, 낙동강은 무려 260m나 된다고 한다. 그만큼 갑문의 수가 많아지니 선박의 이동이 느려질 것은 자명한 이치다. 유속이 느려서 생기는 수질 악화에 의한 생태계 파괴는 별개다.
다음, 대운하의 핵심 구간인, 한강과 낙동강을 잇는 충주~문경 간 조령운하 터널 또한 애물단지가 될 것이 뻔하다. 길이가 무려 25km나 되기 때문에 안전문제와 함께 통과 시간 또한 만만치 않게 소요될 것이다. 대운하로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 데 결리는 시간 산정에서 인수위 측은 24시간을 내세우고 있지만, 반대 측은 60시간으로 추정하고 있다.
인수위 측은 온실가스가 육로의 5분의 1 이하로 줄어들 수 있고, 수송료도 육로의 3분의 1밖에 안 든다고 하지만, 이 역시 설득력이 떨어지는 이상론에 불과하다.
사업비용 15조원은 골재채취 매각대금 8조원과 민자 조달 7조원으로 충당한다는 계획이라지만, 결국 정부 보조가 불가피하고 비용도 30조원 이상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운송비 절감, 대기환경 개선, 70만 개 일자리 창출, 수질 개선, 관광레저 산업 활성화 등의 기대 효과가 과연 현실화될 수 있을 지 지극히 의심스럽다.
일부 환경 학자의 변절?
환경 학계의 태도 역시 문제가 있다. 공약일 때야 그렇다 치자. 하지만 이제 공약을 낸 쪽이 선거에 이겨 공약을 밀어붙이려는 시점이다. 환경 학계로선 당연히 사전환경영향평가, 또는 전략영향평가 측면에서 냉정한 접근을 시작해야 한다. 더욱이 우리는 이미 제도적으로는 상당히 우수한 환경영향평가시스템을 갖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도 작금, 평소의 소신마저 180도 바꾼 채 '대운하 지당론'을 설파하며 새 정권에 줄을 대는 일부 학자의 사례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평소 국토개발 프로젝트에 주도면밀한 환경영향평가의 잣대를 들이대야 한다고 역설해 왔던 분들조차 태도를 바꾸는 데 대해선 연민의 정마저 느낀다.
공약(空約) 버리는 것도 용기
우리 국민이 이명박 씨를 대통령으로 선택했다고 해서 그의 모든 공약까지 찬성하는 건 아니라는 결코 아니라는 점을 인수위는 생각해야 한다. 특히 대운하 건설처럼 논란이 증폭되고, 지속가능한 발전에 심대한 폐해를 끼칠 것이 자명한 공약에 대해서는 스스로 심사숙고해야 한다.
아울러 반대론자들의 견해를 경청하는 도량을 갖고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기보다 해당 전문가들의 철저한 검증을 거쳐 국민을 설득하는 등 절차의 투명성에 각별히 유념해야 한다.
다른 이슈도 숙고를
기왕에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대운하 프로젝트 외에 새만금 프로젝트와 기후변화 및 에너지대책 역시 차기정부가 심사숙고해야 할 사안이다. 새만금을 동북아의 두바이로 만들겠다는 발상은 두바이의 성공사례를 겉보기만으로 닮아보겠다는 유치한(naive) 발상,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두바이가 중동의 금융·관광·IT·비즈니스 허브로 부상할 수 있었던 지리·인프라·투자·제도 등 수다한 조건이 새만금에도 적용될 수 있는 것인지, 특히 새만금 특구(?)의 조성으로 야기될 국토 운용상의 불균형과 환경 문제는 어찌할 것인지.
이 당선자의 주요 경제공약인 '대한민국 747' 역시 환경 분야에서 짚어주어야 할 사안이다. '연간 7% 경제성장, 10년 내 국민소득 4만달러, 10년 내 선진 7대강국'이란 캐치프레이즈야 얼마나 감동적이고 희망적인 것인가. 하지만 연간 경제성장 7%란 환경을 제쳐놓은 개발지상주의적 발상에서 나올 수 있는 개도국형 공약이다. 이미 선진국 문턱에 진압한 우리 경제는 연간 5% 성장도 힘에 부친다.
이 역시 밀어붙이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수치보다 내용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7% 성장을 고집한다면 나무가 자라기를 기다리지 못하고 손으로 뽑아 올리는 거나 마찬가지다.
다른 공약도 마찬가지지만 환경에 영향을 미칠 공약은 '제로 베이스'에서 재고하길 바란다. 대운하 프로젝트 등이 진시황의 대운하처럼 통치자의 야심을 충족시키기 위한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시애틀 원주민 추장의 고언(苦言), 유념하길
문득 1854년 미 연방정부가 아메리카 원주민에게 오늘날의 워싱턴주 일원을 강제 매입하겠다고 했을 때, 시애틀 추장이 프랭클린 피어스 대통령에게 보낸 서신 내용이 떠오른다.
"당신들은 이 땅에 와서, 이 대지 위에 무엇을 세우고자 하는가? 어떤 꿈을 당신들의 아이들에게 들려주는가? 땅을 파헤치고 나무들을 쓰러뜨리는 것이 행복한가? 연어 떼를 바라보며 다가올 겨울의 행복을 짐작하는 우리만큼 (당신들은) 행복한가?"
부디 차기정부가 훗날 '후손으로부터 잠시 빌린 환경을 당대에 거덜 낸 정권'이라는 오명에서 자유롭기를 바란다면 지나친 희망사항일까?
윤재석/언론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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