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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사상 이야기/함석헌

노자12

by 마리산인1324 2006. 12. 19.

 

사단법인 함석헌기념사업회

http://www.ssialsori.net/data/ssial_main.htm

 

<씨알의 소리> 1989년 11,12

 

노자12장

 

다섯 빛깔이 눈을 멀게 한다
 五色令人目盲

 
12. 五色令人目盲, 五音令人耳聾, 五味令人口爽,  
     馳騁전獵 令人心發狂, 難得之貨 令人行妨,  
     是以聖人爲腹不爲目, 故去彼取此

 

다섯 빛깔이 사람의 눈을 멀고 하고,
다섯 소리가 사람의 귀를 먹게 하며,
다섯 맛이 사람의 입을 틀리게 하고,
몰아쳐 달리는 사냥질이 사람의 마음을 미치게 하며,
얻기 어려운 물건이 사람으로 하여금 틀린 짓을 하게 한다.
그러기 때문에 거룩한 사람은 배를 위하지 눈을 위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저것을 버리고 이것을 집는다.

 

오색영인목맹(五色令人目盲) 오색영(五色令), 영(令)자는 사(使)자와 같아. "하여금" 그러니까 사(使)자와 같은거.  사인(使人), 다섯가지 빛깔이 사람의 눈을 멀게 하고,
오음영인이농(五音令人耳聾) 다섯 소리가 사람 귀를 먹게 하며,
오미영인구상(五味令人口爽) 다섯 맛이 사람 입을 틀리게 하고, 상(爽)은 보통은 다 상쾌하다, 아주 시원하다, 그런 의미로 쓰는 상(爽)인데, 뭐 이렇게 틀리게 하는, 틀어지게 어긋나게 하는, 입이 이렇게 찌그러지게 되는, 맛을 모른다든지 그런거를 상(爽)
치빙전렵(馳騁전獵) 치빙(馳騁)은 말달린다는 말이고, 치빙전렵, 말달려하는 사냥질이, 전렵(전獵)이라는거는 사냥질이라는 말이고, 말달려 하는 사냥질이
영인심발광(令人心發狂) 사람 마음을 미치게 하며, 또
난득지화( 難得之貨)는, 얻기 어려운, 화(貨)는 값진 물건, 사람에게 소용이 되는 물건, 유선생님은 쓸몬이라 하셨어요. 무엇에 쓰여지는 물건.  보통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값진 물건.
영인행방(令人行妨) 사람 길을 잘못들게 한다.  행(行)은 행동하는거, 사람 가는 것을 방(妨)은 방해한다는 방인데, 잘못들게 된다.
시이성인위복불위목(是以聖人爲腹不爲目)이라.  그러므로 거룩한 이가 배를 위하지 눈을 위하지 않는다.  그 위(爲)는 배생각, 배 때문에.  배(腹)를 위하지 눈을 위하지 않는다.
고거피취차(故去彼取此)니라.  그러므로 저를 버리고 이를 취하느니라.  저(彼)라는 거는 위의 눈(目).  이(此)라는 거는 배(腹)를 말하는고.
  다섯 빛깔이 사람 눈을 멀게 하고(목맹 : 눈을 어둡게 하고)
  다섯 소리가 사람 귀를 먹게 하고(우리말로는 귀가 먹는다고 그러지, 귀머거리, 농은 귀머거리들이라고)
  다섯 맛이 사람의 입을 틀어지게 한다.(잘못되게 틀리게 하고)
  말달려서 하는 사냥질이
  사람마음을 미치게 하며
  얻기어려운 값진 물건이
  사람 길을 잘못들게 한다.
  이러므로 거룩한 이는 배를 위하고 눈을 위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저를 버리고 이를 취한다.

 

오색(五色)이란 이건 다 본래 노자는 다는 아니지만 대개 재미있게 하느라고 운(韻)을 둬요.  그러니까 영인목맹(令人目盲) 영인이농(令人耳聾) 영인구상(令人口爽) 영인심발광(令人心發狂) 영인행방(令人行妨) 그러니까 글자가 똑 요자가 아니면 아니되는 것 아니야.  이왕이면 자기말 하고 싶은데 운(韻)자를 그렇게 하느라고 하니까 맹, 농, 상, 광, 방(盲, 聾, 爽,  狂, 妨)그랬지요.

오색(五色)은 다 잘 아는대로 청황적백흑(靑黃赤白黑), 왜 이런 글자를 쓰냐 그러면 동양에선 본래 근본생각이 음양오행(陰陽五行), 나무(木) 불(火) 토(土) 금(金) 물(水)를 엘레멘트(element : 원소), 지금은 엘레멘트의 수가 많아져서 100도 넘고 그렇지요.  이것보다 더 간단한거는 사대원소(四大原素), 지(地) 수(水) 화(火) 풍(風), 요것 보다 더 올라오면 양음(陽陰), 이위, 또 거기 더 올라가면 하나.  하나인 태극(太極).
일생이(一生二) 이생삼(二生三)하고 삼생만물(三生萬物)이라.  그러기도 하지만, 고게 또 달라지면 목화토금수(木火土金水), 서양에서도 마찬가지야요.  옛날에는 네 원소라고 하는거.  지수화풍(地水火風), 지수화풍에 하나를 더하면 공(空), 공까지를 넣으면 지수화풍공(地水火風空), 공은 공기가 아니고 사람이 마취할 때 뿌리는거 뭐지요? 에델, 그것과 음이 같잖아요.  지수화풍공이라고 그러는거는 그걸 가리키는 일이 많이 있어요.
하여간 옛날사람 생각에 숫자를 좋아해서 천지의 다섯 원소로 됐다.  그러니까 사람에게도 기관이 몇이 있냐? 다섯이다.  그렇게 안할 수도 있지만 될 수록 맞춰서 설명을 하려고하는, 그래 오장육부(五臟六腑)라 장부를 다섯으로 심장, 폐장, 간장, 비장, 신장, 그것도 오행사상에 맞추는 거예요.  그러니까 어느 것은 목(木)에서 오고 또 어느것은 화토금수(火土金水)에서, 그건 다 그런 생각이야요.
오색(五色)은 잘알잖아요.  청황적백픅(靑黃赤白黑)그건 다 아는거.  그다음

오음(五音)은 궁상각치우(宮商角徵羽) 그것도 알지요.  다만 치(徵) 자만 주의해서 발음해요.  보통은 징하고 발음하는데, 왜 이렇게 했나? 그건 설명할 수없어요.  지금으로 말하면 도레미파솔라시도, 옛날 사람들은 다섯으로 궁상각치우. 또 그다음
오미(五色), 맛에 산함신감고(酸鹹辛甘苦)
오색(五色)이라는건 다섯 가지 빛깔을 보는데, 그 빛깔이라는건, 빛이 좋다고 보는 다섯 빛깔이 사람으로 하여금 그 눈이 소경이 되게, 멀게 하고 또
다섯 음, 음악이, 음악소리가 사람의 귀를 도리어 귀먹게 만들고,
다섯 맛이, 사람 다 맛이 있다고 먹지만 다섯 맛이 사람의 입을 도리어 비틀어지게 어긋나게 잘못되게 만들고.
또 좋아서 좋아서 하는 사냥질이,
지금은 이런걸 안하고 골프라든지 크리케트라든지 학키라든지 하는 소위 요새의 스포츠라는거.  그때 스포츠가 이거니까.
처빙전렵(馳騁전獵), 전(전)자 쓰는거.  치빙전렵이라, 산으로 달리는거 그거 좋아서 하면 미치잖아요.  너무 좋아서 하면,
영인심발광(令人心發狂)이라, 사람으로 하여금 발광해 미치게 해.
난득지화(難得之貨)는, 금이니 은이니 다이아몬드, 보석, 진주, 그런거 난득지화, 얻기어려운 값진 물건.
영인행방(令人行妨)이라, 사람으로 하여금 가는데 길을 잘못들게 만들어.  나쁜데로 가게 만든다.  그러니까 이건 무슨 소린고하니 한마디로 하면 사람은 감각을 따라 살 것이 아니라 속에 무슨 정신생활해야 된다, 그걸 강조하기 위해서 이런거야.  감각이 없을 수는 없지.  살아가려면 그걸 알아야하지 않아요.  허지만 그걸로 잘못되니까 그럴게 아니고 속에 무슨 정신생활해야 된다, 그걸 강조하기 위해서 한 말.
 
시이성인위복불위목(是以聖人爲腹不爲目)이라.  다 다섯 가지씩 아니요?  우리기관이 그것도 아니요? 안(眼) 이(耳) 비(鼻) 설(舌) 신(腎), 그럴 때는 오관(五官)이라고 그러지 않아요.  관(官)자는 뭘 일을 맡아소 차지해서 하는 걸 관이라 그래.  다섯가지가 있어서 이걸 해.  이 기관이 밖에서 들어오는걸 대해서 그걸 감관(感官)이라.  센스(sense)
사람이 센스가 없으면 못써.  보지도 못하고, 보아야 어떻게 생겼는지 알지.  어딜 갈지 아는거.  또 들어야 말을 듣고 사람이 서로 알고, 또 코를 냄새맡는거, 또 맛이 있다 없다 맛을 모르고 살 수 없으니까 반드시 필요한 건데, 여기 왜 그럼 이랬냐 그러면,
그럭하면 그 결과가 쉬운 말로 하면 그만 감각에 취해버리면, 감각 그 자체 좋은건 좋지만, 그 본위로 생각을 깊이 못하고 사람은 그것밖에 . . . . 사람인 다음에는 감각이 없는 사람은 없어요.  정신이 이상이 들었다고 하는 사람도 보고 듣고 말하고, 그건 다 하지 않아요? 하는데 그럼 왜 미쳤다고 그러나. 그 사람 이성(理性)에 무엇이 잘못됐어.  이성보다 더 올라가면 그 다음은 도덕적인 것 정신적인 것 그건 또 다른 계층이야.  그건 모르잖아요.  그런데 사람이 높은 정신운동을 하려면 감각(感覺)이 토대가 돼.  감각없이는 안돼.  그렇지만 감각 그것만 있으면, 그럴 때 잘못이 어디있는고하니 감각의 대상이 저기 있어서 여기 뭐이 들어오면 내가 여기 뭐 빛이 어떻다든지.  둥글게 생겼다든지, 알잖아요? 그러면 감각은 그렇게 하기 때문에 여기 자체가 뭐 있는 줄 그렇게 알아.  그렇지만 조금 생각을 하는 사람에게는 그게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어요.  꽃이 있어서 꽃을 본다.  꽃은 이쁜거다.  그러니가 그럼 꽃이 있어야지.  물론 꽃이 있어야 꽃이 이쁜 줄을 알긴 알지만, 사실은 내속에 꽃을 꽃으로 알아보는 뭐이 있잖아요.

또 소리를 다 들어도 소리 속에 기쁜소리라든지 슬프다든지 소리를 소리로 듣는 무엇이 이 속에 있어요.  그래서 인도사람의 생각하는데는 동양의 유교에서도 그 얘기야 물론 알지만 그걸 보면 좀더 깊은거 밝아져요.  그런데 보통사람은 그것도 모르니까 그것만 제일이다.  사람이 돈이 필요 하다, 돈이 필요하지. 돈이 필요하지만 "돈이 필요하니까 돈 벌어야지. 돈있어야지." 돈에 그만 미쳐놓니까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럴라고하니까 심지어는 살인강도 하는데까지 간단말이야.
오색영인목맹(五色令人目盲) 다섯가지 빛이 좋은거지만 그게 보여야 뭔자 본다는걸 알 수가 있지만 그게 도리어 사람의 눈을 어둡게 한다.  왜? 보면 보는 본래 목적을 잃어버려.  그만 생각없이 감각에 들어오는 그것만, 그거는 본능적으로 하지 않아요.  생각이 하는 거 아니라.  턱 벌써 이렇게 보면 무슨 아는거는 감각적으로 아니까 본능이 하는데, 그러면 그담에 생각하는 사람은 그걸 요렇게 해서 내가 그걸 어떡할까 한다든지 그럼 차차 높이 올라가는데가 있는데, 그러지 않고 보통은 그것만 있으면 되는걸로. 그러다보면 욕심이라는거는 한이 없으니까 원인은 욕심이 한이 없는 것이기 때문에, 그 욕심대로 하면 도리어 그 참볼걸 못보니까 그러니 소경됐다 그말이야.
소리도 그렇고, 맛도 그렇고, 우리 다 경험해 아는거.
치빙전렵(馳騁전獵), 그거보다도 그 담엔 정말 이젠 아주 신체운동을 하면서 까지 짐승을 잡고하는, 사람이 스포츠에 얼마나 취하는가 우리가 잘 알지 않아요.  그러게 되면.
영인심발광(令人心發狂)이라.  사람의 마음이 미치게 돼.
난득지화( 難得之貨) 또 좋은 물건도 귀한지 모르는 건 아니지만, 그걸 생각을 하게 되면, 그걸 미치게 되면 그담에 잘못하게 되니까 그래선 안된다.
그 다음에 이제 배(腹)와 눈(目)으로

성인위복불위목(是以聖人爲腹不爲目)이라,  배를 위하지 눈을 위하지 않는다.  그건 왜 그러냐그러면 이 아래 내려가 설명을 보면 알아요.
배(腹)는 속에 있고, 눈(目)은 겉에 나와 있어.  제일 겉에.  제일 사람의 감각중에 아주 높은데 있어서 눈이 아주 중요한거 아니예요? 그러니까 예수님도"눈은 사람의 몸의 등불이다" 그러니까 "눈이 없으면 어두워서 못다니지." 그러고는 "육신의 눈도 그렇지만 마음의 눈이 어두우면 그 얼마나 어두움이 더하겠냐?"
 다른 동물도 다 눈만은, 본다고하는 거는 다른 오관(五官) 중에서도 본다는건 특별한, 오관 중에 하나일 뿐만 아니라 본다는건 특별한 의미가 있어.  그러니까 샤르뎅의 "인간현상" 이라고 하는데 거기보면 씨(see), 영어로도 봤다는 말을 "I see" 안다는 말도 "I see" 안다는걸 눈으로 대표하리 만큼 "I see"그러리만큼 중요해.  그런데 이놈이 사람을 참 못쓰게 만들어.  그렇기 때문에 성인은 배를 위하지 않는다.  배는 속에 있고 눈은 겉에 있어.  배는 들어가리만치 들어간 다음에는 못들어가 안먹을래."  세상없는걸 줘도 그만두잖아요.  그런데.
눈은 그만둘 줄을 몰라.  그저 하루종일 여기보고 여기보고 그래도 또 부족해서 또 뭣이 있나? 또 뭣이 있나? 그러기 때문에 이런 설명이예요.  그 아래 주(註)를 읽어가는데 제일 빨라요.

  鳩摩羅什曰 不知卽色之空與聲相空與聾盲何異
  爲腹猶易艮其背之意 不爲目猶陰符機在目之意
  李約云目無厭聖人不爲 腹知足 聖人爲之
  目視外 故云彼 腹實內 故云此

구마라십(鳩摩羅什), 옛날 인도에서 왔던 중이 있지요.  구마라십의 무슨 말인데, 어디 나왔는지 몰라.  불경보다가 해석하면서 한 말이지요.  구마라십이 왈부지즉색지공여성상공(不知卽色之空與聲相空)이면.......... 반야심경(般若心經)읽어본 사람 있소? 반야심경 본사람 몇이나 돼? 하나도 없을까? 그건 얼마길지도 않은건데, 반야심경을 가서 찾아보세요.  거기서 나온걸로 하는데 공(空)과 색(色), 색은 이자 얘기대로 보이는 현상계야.  공(空)이라.  그러면 부정한데, 형이상학적(形而上學的)인 세계.  그 공인데, 그렇게 두고, 그걸 아는걸로 알고, 보통 누구든지 아는거니까, 공즉시색(空卽是色)이요 색즉시공(色卽是空)이라.

 공과색이 따로 있는거 아니라 공이 곧 색, 절대계와 상대계가 따로 있는거 아니야.  상대(相對)가 곧 절대(絶對)요 절대가 곧 상대라.  상대를 나타내지 않는 절대없고 절대 아닌 상대도 없고, 그래 지금 말로 하면 그 비슷한건데, 그러니까 공과 색을 갈라 얘기를 하면서도 공과 색이 전연 다른 물건이 아니라, 공(空)이 곧 색(色)이요.  색이 곧 공이라, 상대계가 곧 절대계.  상대를 통해서 절대를 보는거.  절대를 통해서 상대를 보게 돼.  즉색지공(卽色之空) 색(色)에 즉(卽)한 공(空)과 또 성(聲)소리에 상(相), 상은 모양.  그거 다 빈 것, 색을 통해 붙어있는 공이나 성이나 그 모양이 다 공(空)이야.  다 빈자리.  색에 있지만 그대로가 빈거다.  이제 그거를 모르는 사람은  여농맹하이(與聾盲何異)리요.  귀머리나 소경과 더불어 무엇이 다르리요.  보기는 봐도 못보는 사람이라 그말이야.  보기야 눈으로 봐서 저건 하늘이고 저건 땅이고 이건 사람이고 알지만.......... 그러니까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그러는데 그걸 못알아들으니까 그건 무슨 소리입니까? 그러고하니까 그런 때는 대답 안해준단 말이야.  그렇게 무식하게.  그걸 묻고 그러면 말해줘도 그걸 들을 자격이 없으니까 그때는 욕밖에 얻어먹을게 없어요(웃음)

질문하는 것도 질문하는 걸 보면 그사람 정도를 알잖아요.  그래도 그런다고해서 선생한테가서 "묻다가 또 망신만하면 어떡하지" 그럭하면 안돼.  망신할 각오를 하고라도......... 정말 내가 생각을 하다가, 생각도 없이 그저 뭘하나 물어볼까? 그래서는 안되고.
서양사람들 가서 유명한 사람찾아가 면회하자고 그러면 첫마디가 "뭘 묻습니까?(Have you any question?)" 그럴 때 미리 생각이라도 해갔으면 모르지만, 갔을 때 "뭐 여기 학생이 몇 사람이 됩니까" 하면 그럼 벌써 저거는............. 갈 때는 저사람이 무슨 종교가라든가 과학자라든지 내가 그 사람 만나면 뭘 물을 건지 생각이 있어야하겠는데, 덮어놓고 "그 사람 한 번 만나볼까?" 그럼 뭘하는거야.  그러면 가야 망신만 하는건데, 그러니까 묻는거 어리석게 뵈잖아요.
여기 구마라십의 말이 왜 오색영인목맹(五色令人目盲) 오색이 도리어 소경을 만들고, 오음이 도리어 귀머거리를 만들고, 오미가 도리어 맛을 모르게 입을 찌그러지게 만들고 왜 이러냐? 그건 왜 그런고하니 나타나는 거라도 나타나지 않는 거를 통해서 그 뒤에 있는 그게 뵈야지.  그게 보이는 사람한테는 풀잎새마다 하나님이 나타난거군.  부처님이로군, 그걸 거기서 본다 그말이야.  또 그런 사람에게는 돌인데 돌만 아니야.  거기서 영원을 보는거야.  그러질 못하는 사람은 보긴 봤지만 장님 아니냐, 서울 갔다와서 "서울가서 뭐 있습니까?" "아이 큰집 많더라" 한다든지 "뭔지 알 수 없는 물건이 참 많더라" 한다든지 그런 사람은 정도가 그밖에 못되니까 그런 사람은 눈이 있어도 먼 사람이야.  귀가 있어도 못들어.
농맹( 聾盲)과 다른 것이 있겠냐? 그런 의미에서 정신적인 의미에서 볼 때에 오색이 도리어 사람을 눈이 어둡게 만드는 거고 오음이 도리어 그런다.  그 객관에 나쁜 성격이 있는건 아니야.  내가 모르고 보니까 모르고 아름다움이라는거가 이 자체 속에 여기 있는 줄 알지.  그러니까 될 수록 꽃을 많이 사오면 아름다운줄 알지만, 꽃을 아무리 아무리 많이 사와도 미(美)를 감상할 힘이 없으면........  돈많은 사람이 화분을 모처럼 갔다 줬어도 물도 안줘서 시들어 마르게만 해. 그게 무슨 그 사람이 꽃볼 줄 아는 사람이요?
그러니까 그런 정도를 이제 눈멀었다, 귀먹었다, 맛모른다, 그렇게 말한거야.
그건 그렇고

성인은 위복불위목(爲腹不爲目)이라할 때 위복은 배를 위한다는 말은 유역간기배지의(猶易艮其背之意)라.  유는 같다. 이것과 같다.  주역에 간기배(艮其背)라고 하는 말이 있어.  그거는 주역에 간괘(艮卦)라고하는, 이담에 주역을 보시면 알지만 간괘라고 하는 괘가 나와있어.  간괘에 있는 말이 재미있어요.
간기배불획기신 행기정불견기인(艮其背不獲其身 行其庭不見其人)이런걸 자주하면 그담엔 주역에 미쳐버린다고 그래. 그것도 미쳐선 걱정이요.  정말(웃음) 그러니까 참 어렵지.  이런걸 설명안해주고는 알 수가 없지요.

한문자가 얼마나 재미있나 보시오.  간(艮)은 본래 눈목(目)이예요.  눈 목(目)아래에다''이럭한거래. ''는 뭐냐 그러면 본래는 비길 비(비)자, 비길 비자는 뭐냐 그러면 나란히 섰다 그말이야.  눈(目)에다 ''는 무슨 소리냐 그러면 눈을 빤다고 하는, 그래서 그거 설명을 하려면 이 간(艮)이라고 하는 자는 멎을 지(止)자로, 거기 멎는다는, 그래서 그거 재미있으니까 여기 붙은 글자로보면 눈이라고 할 때는 눈 안자가 '眼' 이렇게 됐지.  마음이 남을 원망할 때 한한다고 할 때 '恨' 이렇게 쓰지.  일이 어렵다고 할 때 '한' 이렇지.  요런게 이 간(艮)자의 독특한 뜻에서 나오는데, 그게 어디 있는고하니 눈목(目) 아래다가 ''.  여기 눈을 빤다는 데서 .......... 멎어라, 어렵다. 그런 따위 여러 가지가 나온거예요.

그 간(艮)자를 설명하는데 간기배불획기신(艮其背不獲其身)이라.  사람이 멎으면 그사람은 그 사람인데도 그 사람을 볼 수가 없어.  더 쉽게 말하면 뭔고하니 사람이 몸둥이 중에서 제일 제자리에 가만있는 게 뭐냐? 잔등이 제일 가만 있는 거.  눈도 이럴 수가 있고 귀도 이럴 수가 있지만 잔등은............ 잔등에 가 멎어.  그 사람의 생각이 다른데 있다 그런다면 사람이 그 사람이 있기는 있어도 없는거나 마찬가지라 그말이야.

행기정불견기인(行其庭不見其人) 그 사람이 있는 집에 뜰에 들어가서도 그사람을 못봐.  사람이란 어딜 나가 움직이고 이러는건데 집뜰에 거길 들어있어.  멎는다.  저 있을 자리에 턱 가 있으면 있어도 없는거나 마찬가지야.  봐도 보질 못하는, 그러니 주역이 많이 아니까 여기있는 이 위복불위목(爲腹不爲目)이라는게 무슨 소린고하니 사람의 몸 중에서 제일 가만있는거.  뭘 이렇게 욕심을 내고 그러지않는거, 눈은 그저 두리번두리번 여기저기 왔다갔다 그러는거지만 배는 주역에서 등(背)이라 했던 모양으로 이게 제일 속에 들어있어서 가만있는 것이고, 또 저 들어가리만치 들어간 다음에는 더먹겠다는 소리도 안하는거고 그저 만족할줄 알고 문제없는, 그런 의미로 여기 썼다고 한 거예요.

간기배지의(艮其背之意)라.  주역에서 간기배라 할 때에 간기배불획기신행기정불견기인 이라 했던 그런걸로 위복(爲腹) 이라는거 그렇게 사람의 내 생각이 배에 가 있어.  배가 뭐 밥먹을 생각만 한다는 말아니라, 안에 있어서 뭘 바깥으로 요구하지도 않고 한없이 뭐했으면 뭐했으면 그러지도 않고 먹으리만큼 먹은 다음에는 그다음에는 아무 소리하지 않고 가만있는거.  눈은 보리만큼 봤어도 좀더보자.  귀도 조금 한마디만 더 들었으면, 더 만져봤으면, 다 그러는데 배만은 그러지 않는다, 그러니까 그래도 ........눈이라고 할 때에는 모든 기관을 다 표시하는거야.  보자, 먹자, 듣자, 그저 한없이 그러는, 그거 안한다.  위복불위목(爲腹不爲目)이라.

고거피취차(故去彼取此) 고로 바깥 것을 버리고 취차(取此)라, 이(此)는 가까운거니까 속에 있는 내배, 속은 지킨다.  사람이 제속에 마음의 주인이 있어야지.  그 주인을 내가 딱 붙잡고 마음이 깨있어야지.  소리만 들리면 귀있는 그쪽으로가고, 무슨 냄새가 나면 그쪽으로 가려고 그러고, 그래서는 잡은걸 잃어버려.  나를 잃어버려.  그래 소경됐다, 귀먹었다.  그러니까 사람이 감각만 아는 사람은 살았어도 자기를 잃어버린 사람이야 그말이야.  자기 몸뜽아리를 가지고 있더라도 자기는 잃어버린 사람.
또 불위목(不爲目)은 눈을 위하지 않는다는거는 유음부기재목지의(猶陰符機在目之意)라.  내가 음부경을 못봐서 모르지만 기(機)하는거는 생명의 우주의 신비로운 무슨 활동이예요.  의미라고 해도 좋고 신비로운 작용.  말로 할 수 없는 그런 거.  그런 기(機)가눈에 있어.  기가 눈에 있으니까 이건 안됐지.  잃어버린거아니요.  기가 속에 있어야지 겉에 나와 있어가지고 되겠어요.  그건 음부경에 있는 말을 알아야 내가 거기 대해 설명을 하겠지만 내가 못봤으니까 모르나 뜻으로는 틀림없이 그럴꺼요.
이약운(李約云) 이약이라는 사람이 목무염(目無厭), 눈은 싫어할 줄을 몰라.  싫어함이 없어.  끝이 없어.  그저 봐도 또 보고 봐도 또 보고, 성인불위(聖人不爲)라, 그러니까 성인은 그걸 안해.  감각대로 안한다, 그말이야.  눈만이 아니라, 감각중에 제일 가만 안있는게 눈이니까 그래서 심한거야.  또 복지족(腹知足)이라 배는 족한줄 알아.  먹으리만큼 먹은 다음에는 "아이 난 싫어요" 먹을 생각안한다 그말이야.  성인위지(聖人爲之)라, 그러니까 성인이 한다.  목시외(目視外)요, 눈은 외계를 보는거야.  고운피(故云彼)라 고로 저거라 그랬고, 복실내(腹實內)라.  배는 안에 뭘 가득차게 하는거니가 고운차(故云此) 이것이라, 그래서 성인은 속살림을 하지 겉에 감각살림하는 사람 아니다, 그런 뜻이요.

  

 사단법인 함석헌 기념사업회 ssialsori.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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