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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사상 이야기/함석헌

노자47

by 마리산인1324 2006. 12. 19.

 

사단법인 함석헌기념사업회

http://www.ssialsori.net/data/ssial_main.htm

 

<씨알의 소리> 1990년 4월호

 

노자 47장

 

 

지게문 나가지 않고 천하를 안다
 不出戶, 知天下


47. 不出戶, 知天下, 不窺爽, 見天道,
      其出彌遠, 其知彌少,  
      是以聖人不行而知, 不見而名, 不爲而成.

 

  지게문을 나가지 않고 천하를 알고
  창문 내가보지 않고 하늘길을 보나니
  그 나감이 멀면 멀수록
  그 앎 더욱 더 적은 것이니라
  그러므로 거룩한 이는 가지 않고 알고
  보지 않고 이름하며
  하지 않고 이루느니라.

 

불출호 지천하 불규유(不出戶, 知天下, 不窺爽) 유(爽)는 지금은 잘 모르지요.  이것도 창(窓)이라는 글자인데 옛말로 하면 '바라지'예요.  유(爽)라고 그러면 보통은 담에다가 구멍을 뚫고 채광을 할 때 그러고 방안에서 벽을 뚫고 들어올 때는 창(窓), 창도 옛날에는 ''지금 창(窓)자는 달라진 거지.  본래는 이렇게 ()쓰던건데 대까치로 요렇게 엮어대고 종이를 발랐던 그것대로 그린거예요.

불출호 지천하(不出戶, 知天下), 불규유 견천도(不窺爽, 見天道) 기출미원(其出彌遠) 미(彌)는 더욱, 또는 가깝다기도하고 여러 가지 의미로 쓰는 글자인데, 본래는 활을 느꿔서 활줄이 켕기워야되는데 그걸 느꿔주는 거야.  쓸때는 켕기지만 쓰지않을 때는 느꾸는데 그런 뜻으로 쓰는 수도 있는데, 여기서는 더욱더욱, 점점더, 그런 뜻으로 써요.
견천도 기출미원 기지미소(見天道, 其出彌遠, 其知彌少) 시이로 성인이 불행이지(是以聖人不行而知)하며, 불견미명(不見而名)하고 불위이성(不爲而成.)이라.
불견이명(不見而名)의 명(名)이라 하는 문자는 이름이라 새기는 사람도 있고, 또 음이 같은 밝을 명(名)자의 뜻으로 새기기도 해요.

불출호 지천하 불규유 견천도( 不出戶, 知天下, 不窺爽, 見天道), 호(戶)는 지게에, '지게를' 해도 좋고, 지게를 나가지 않고 천하를 알며, 바라지 밖으로 내다보지 않고, 규(窺)는 "엿본다"는 규자인데 "눈짓하다"와 같은 뜻이예요.  불규유(不窺爽) 창문으로 내다보지 않고, 불규유, 바라지를 엿보지 않고 하늘 길은 본다.  그렇게 말을 해놓고는, 거기서 따라 나오는 대로 설명을 하는 거예요.
기출미원(其出彌遠) 기지미소(其知彌少)라.  멀리 나갈수록, 나가기를 멀리 나갈수록 아는 것은 더욱 적다.
시이(是以)로, 그러므로 그래서
성인(聖人), 거룩한 분은
불행이지(不行而知)하고
불견이명(不見而名)하고
불위이성(不爲而成)이라, 세 가지로.
가지않고 알며, 가도 가지않고 알며.
불견이명(不見而名)이라, 이름은 기독교 구약에 보면 천지창조를 하고 하나님이 아담에게다가 모든 만물을 갖다가 보여놓고 이름을 불러보라고 그랬다고 그러잖아요.  이름이라는거는 벌써 그렇다는걸 알기 때문에 불견이명(不見而名)이라 보지않고도 이름할 수 있다, 하는 거예요.
불위이성(不爲而成)이라, 하지않고 이루느니라.
요새 세상은 이것과 아주 정반대의 경향으로 나가고 있으니까 이 문명이 본래 그러는건데 지금와서 아주 더 심해져요 그래서 지금은 깊은 사색을 아니하는 사람이라도 그 폐단을 다 느끼고 있어요.  그러니까 많이 생각해야 될 그런 구절이예요.

불출호 지천하(不出戶, 知天下,)하고,
본래 동네가 있으면 동리에 두루 돌아가면서 이렇게 옛날에는 울타리를 했어요.  그리고 거기 나가다가 일반이 그 동네에 들어오는 문을 세운 것이 오래예요. 문.  그래 오래 밖이라 오래 안이라.  지금 말하는 동리 밖, 동리 한, 호(戶)는 문의 절반, 짝문, 하나만 있는 것.  고 글자대로. 고거 하나만일 때는 지게라고 그랬어.  문인데, 사립문이라, 불출호(不出戶) 문을 나가지 않고도 지천하(知天下), 천하를 알고, 천하란 이 자연, 물질의 세계, 물질적인 자연계를 말해요, 천하로 아는.  보통은 다 나가서 보고야 아는거지만 그렇지 않아, 나가지 않고 천하를 알아.  이건 자연의 현상계를 말해요.
불규유(不窺爽) 견천도(見天道)라, 또 창문으로 내다보아야 하늘의 별을 보고 이 우주를 알겠는데, 천도(天道)라는 하늘 길, 옛날 모든 별이 다 제길이 있어 다니는걸로 알았으니까 우주적인 그런거를 말하는 거예요.  창문열고 바라지 밖으로 바라보지 않고도 하늘 길을 안다, 나가지 않고도 아는거 아니라, 그래야한다, 도리어 그쪽을 강조하는 편이야요.
기출미원(其出彌遠)에, 나가는 것이 멀면 멀수록, 보통 생각으로는 천하를 알려면 될 수록은 한번가 구경을 해야지, 그러야 하는줄 알아도 안그렇다, 나가는 것이 멀면 멀수록,
기지미소(其知彌少)라 그 아는 것이 더욱 적다, 요새는 세계를 옆집처럼 다니잖아요.  그래야 세계를 많이 알 것 같으나 안그렇다, 왜 그럴까?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요.
시이(是以)로.
성인(聖人)이, 성인이란 보통사람보다 훨씬 뛰어나게, 타고나기를 본래 아주 그렇게 타고난거.  유선생님은 성인을 "씻어난 이"라고 그렇게 번역을 했어요.  이건 주역에서 온 말인데, 성인은 세심(洗心), 마음을 씻는다고.

나는 지난 해부터 아침부터 세심천(洗心泉)엘 가요.  산에 올라가면 거기 샘물이 나는데 그 샘물먹으러 사람이 많이 와요. 나도 요새 좀 일찍 가느라고 여섯시 반에 가는데, 벌써 사람들이 많이와 있어요.
세심(洗心)이라 마음을 씻는다고 그랬는데, 주역에 성인은 마음을 씻는다, 사람이 살아가노라면 어린애 때는 그런 줄을 모르는데 차차차차 나이들어가면 세상 물이 든단 말이야.  물이 든다고 그러지 않아요? 요새말로 오염이 돼.  어릴 때 일수록 천진난만한, 천지난만이란 말은 보통말로 다 그러지요.  실지로는 많이 과장된 말이죠.  천진이란 어디있어.  노자는 어린애를 좋아하지만 천진한 어린애라도 벌써 천진이 못돼.

그거는 인도사람들의 카르마라는 얘기가 그럴 듯 해요.  카르마학설에 그대로 따르고 안따르고는 각자 맘대로 하지만, 그 사람들은 사람의 혼은 고정된거  돼서 죽으면 몸은 물질로 다 돌아가고 혼은 썩어지지 않는 거니까 고거는 또 다른 어느 사람에게 가 태어난다.  태어나는데 그 전생에 살았던 것을, 그 천성(天性)을 가지고 가요.  그런데 또 다시 새사람으로 가는거 아니라, 가긴 가면서도 그전에 한번 와서 살던 것을, 말하자면 성적표를 가지고 가는 셈이야.  그걸 따라서 그 다음 살림이 있고, 인도사람들의 생각대로라면 그럼 목적하는건 뭐냐 그러면, 될 수록은 또 태어나지 않는거 이상이예요.  오늘 저녁 이 말과는 직접은 관계없는 말이지만, 요새는 인생관이 왼통 망가진, 사람은 물론 제각기 나는 인생을 이렇게 본다. 그건 제각기 가지고 있어야하는거.  될 수록은 일찍부터, 젊어서 그런 말하기 어렵지만, 그래도 될 수록은 일찍부터 나는 나로소 인생을 이렇게 본다하는걸, 그게 돼있어야지.
 
이세상을 다 나이 늙어 죽어가면서도, "인생을 살아보니 어떻소?" 하면 아무 대답을 못하는 사람은 잘못이예요.  내가 보기엔 인생은 뭐라고던지 대답을 해야지.  가령 어떤 사람이 "인생은 아침 이슬 같더라" 그런다면 인생이 저와 같다.  아침이슬. 아침이슬이 나가면 아주 빤짝빤짝 그러지만 해가 올라오면 얼마 못있어.  어디로 간지 없어져.  그런 모양으로 아주 인생이 덧없는, 마음에는 사는 것처럼 귀한거 없는 것 같은데 얼마못가서 다 그러니까 인생의 덧없는 그 면을 보고, 사람의 사는 것이 아침이슬 같다............

각 사람이 다 다르면서도 사람이 다 여럿이 이렇게 있으니까 서로 내 생각하는 것이 말을 통해서 물론, 또 글을 쓰는 걸 통해 될 수 있지만, 말하지 않아도 남이 나에 대해서 생각한 것이 있으면 그것이 서로 작용을 해.  이 방안에 이렇게 있으면 모르는 사이에 우리가 다 서로 영향을 입어.  우선 공기부터가 마셨다가 토하고, 한편에서 새로 공기가 어느 틈으로 들어오고, 또 저리로 빠져나가기도 하고, 상당히 시간을 있으니까 내가 마셨던 숨을 토하면 네가 또 마시고 네가 토한거 이사람이 마시고, 그렇지 않아요? 그러니까 아지못하는 동안에 다 서로 영향은 받고 있어.  그건 생리적으로도 영향을 받지만, 생각은 가만히 말도 안하고 있어도 그래.  그런 경험 더러 해봤어요?
 
근래 오다가 한 경험인데 다 이렇게 잘알던 사람인데, 나이 이렇게 들면 잘알던 사람도 이름 잊어버리는 때가 많이 있어요.  이름은 잊어버렸는데 그 사람은 이렇게 알거든.  젊었을 때가 많이 있어요.  이름은 잊어버렸는데 그 사람은 이렇게 알거든.  젊었을 때는 그런줄을 모르지만 이것 역시 기계니까 쓰면 쓸수록 이젠 낡아진단 말이야.  그러니까 얼굴도 보면 알겠고, 그 사람 뭘하는지 그걸 다 알겠는데, 이름이 생각이 안나요.  그럴 때는 아주 안타까와요.  기계가 낡아지면 그런단 말이야.
  
이렇게 얘기를 하면 정말 그럴까 그럴는지 몰라요.  거짓말 아니야.  내집에는 직계라고는 손녀가 고등학교 3학년 다니는 애가 있는데, 어느 때 한번은, 한 번 두 번 그래봤어.  그애 이름이 생각이 안난단 말이야.  거짓말이라고 그러지 않겠어요? 그런 일도 있어요.  그런걸 들어놓으면 여러분이 자연히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될꺼야요.
그런데 이자 하고싶은 얘기는 이거야.  이름이 생각이 안나는데, 이모임에 나왔던지 몰라.  잊어버려 모르겠소만 잘아는 사람인데, 그동안 몇 달동안 잘 몰랐는데, 웬일인지 하루는 "그 사람이 오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괜히 난단 말이야.  하루만은 아니지만 하루 이틀 틀림없이 올 것 같다 그랬는데 정말 와.  그러니까 나도 생각하기를 신기하게 생각이 들어가고.
그런 일이 종종 있어.  또 혹은 자노라면 그런거는 나도 여러 사람한테서 경험 했어.  나를 이제 만나게 될라면 그 며칠 전이든지 꿈에 본다는거야.  꿈에 종종 보는데, 그럼 뭐 그 사람들만이 특별히 누구보다도 가까운가 그러면 그렇지도 않아요.  그런 일도 있어요.  그러니까 그런거는 알 수가 없어.  어째서 그런지. 이렇게 말이 없어도 이 방안에 무슨 공기라할까 뭐이 있단 말이야.  또 다른 사람이 모이면 말하지 않아도 또 다른 뭐이 있을꺼야요.  그걸 알고 서로 자기를 소개를 하고, 그래 좋아요.  소개를 하면 별거 아니라도 소개를 그렇게 하노라면, 나는 이름은 아무개고 어디서 났고 무슨 학교에 다니고 뭐 어쨌다고 그렇게 했어도, 이제 말한 그 내용이 반드시 중요한게 아니라, 그것도 중요하지, 하지만 그것만이 아니고 그거를 통해서 잠깐 이렇게 채돌려가면서 얘기를 했는데, 그말 한마디씩 하는 것과 안하는 것이, 이 안에 공기가 달라져. 정신적인 공기가 달라지지 않아요? 사람이라는게 그렇다고 하는거, 많이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있어.

불출호 지천하(不出戶, 知天下)라고 하는건 이 천하는 겉에 뵈는 자연의 천하, 감관을 가지고 보는 천하인데, 그걸 알려면 다 나가서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보고 그러야 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지게 밖을 나가지 않고 천하를 알 수 있는거.  천하가 어떻게 됐다고 하는 그것만이 천하를 아는 것이 아니라, 천지의 이 하늘이 있는건 무슨 뜻이냐? 땅이 있는건 무슨 뜻이냐? 바위라는건 무슨 뜻으로 있으며 동물은 왜 있고 식물은 왜 있냐? 꽃은 왜 있고 나무가 있게 됐으며 그건 다 무슨 뜻이냐? 그걸 아는게 정말 참 아는 거겠는데.
불출호 지천하(不出戶, 知天下)요, 문밖을 나가지않고 천하를 안다, 왜? 내적으로 겉에 있는걸 아니라 내적인 의미를 찾으니까
불규유 견천도(不窺爽, 見天道)라 바라지로, 물론 천문 봐야 알지만 그걸 보지 않고도 하늘 도리를 안다.  이 우주가 뭘 별의 운행이 어떻게 되는지 안다.  왜? 그건 역시 속에 있는 진리를 찾는거니까, 그거는 아는 것이 감관으로만 되는 것이 아니고 속의 세계니까 그래.
기출미원(其出彌遠)이요.  기지미소(其知彌少)라, 멀리 나가기만 하면 될 수록은 세계만방을 찾아다녀.  세계를 알려면 세계를 다 봐야지.  아무리 돈이 많은 사람이고 아무리 시간이 많은 사람이라도 세계를 다 보고나서, 우주를 다 우주선도 타보고 해서 샅샅히 별마다 가본 다음에야만 그걸 알겠다, 하다가는 아무 것도 못할꺼야요.  기출미원(其出彌遠)이요 기지미소(其知彌少)라,  멀리 나가면 나갈수록 아는 것이 적어.  왜 그런고 하니 겉만 알지.  간 곳만 알지.  가지 않은건 몰라.가지않고도 알게 되는 그런 것이 있어야 하는데, 그건 내적 세계인데.
  
시이(是以)로 성인불행이지(聖人不行而知)하고, 가지않고 아는, 가봐야 이는 그런 것이 있지요.  그렇지만 이 상대세계에선 늘 둘이 반대되는건 있으니까 한 짝을 잊어버리고 없다고 하는 말은 아니야요.  그러니까 아까 얘기대로 "골방에 들어가 기도해라" 그런다고 골방만 있으면 되냐하면 그렇지 않아.  골방에도 들어가지만 또 골방에 들어가 기도하고 나와서는 세상을 허락이 되는대로 또 구경해봐야지.  사람들 접촉해 봐야지.  골방에 들어간 것은 사람 접촉 피하는 것이고, 나와서 접촉한 것은, 또 그 다음에 골방에 들어가서, 골방에 들어가서야 아까 알았던 사람을 내가 생각하고 기도하고 하는 동안에 그 사람을 좀더 깊이 알아질 수 있을 것이고 그런건데, 그게 둘이 하나이지 딴거 아닌데, 감관의 것만을 봐서 그럴라고 하는 사람은 모른ㄷ, 열심은 열심인데 그것 가지고 안된다고 하는 거를 알려주는 거야.  성인(聖人)은 불행이지(不行而知)하고, 가지 않고도 아는거.
불견이명(不見而名), 내 눈으로 봐야 산이라든지 사람이라든지 잘났대든지 못났대든지 그러겠지만 불견이명(不見而名)이라 보지 않고도 이름한다, 이름을 지었다, 이것은 진리로군! 이것은 악이로군! 도덕판단을 내눈으로 보지 않고도 아는 것이 있어.
  불위이성(不爲而成)이라, 해야만 되지만 하지 않고도 이루어지는 점이 있어.
  반복해 자주 읽어보세요.             (1984년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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