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머리 진술서
제출처 : 김 진 동 재판장님(형사단독과 형사14 단독) 사건번호 : 2005고단7068 국가보안법 위반(찬양·고무 등) 일자 : 2006년 2월 03일
피고 성명 : 강 정 구 주민등록번호 : 450318-OOOOOOO 현주소 : 서울 중구 OOOOOOOOOOOOO 본적 : 경남 OOOOOOOOOOOOOO
1. 냉전성역 허물기라는 학문좌표
1) 냉전성역 허물기라는 학문좌표의 설정 2) 냉전성역 허물기의 학문적 특성 3) 자유민주주의와 냉전성역 허물기
2. 학문적 다양성과 과학적 규범-공약성의 훼손
1) 학문적 다양성의 훼손 2) 방법론적 공약성의 부인 3) 상관관계와 인과관계의 등치 4) 찬양-고무나 이적행위라는 학문외적 잣대 5) 배타성과 양립성의 혼돈 6) 진실균형과 억지균형의 혼돈
3. 북한과 미국에 대한 올바른 접근
1) 반일-반중-반 프랑스는 괜찮고 왜 미국비판과 반미만은 안 되는가? 2) 주한미군 불가피론의 검증 북한전쟁위협론 남한군열세론 주한미군 동북아세력균형론 3) 가공적 상상체로서의 북한-미국과 객관적 실체로서 있는 그대로의 북한과 미국
4. 탈냉전 통일시대의 역사관과 거시적 민족사 행로
1) 발생적 결정론과 몰역사적 결과론의 극복을 2) 자주-평화-통일-번영의 장기적 민족사와 동북아 상생구조를 3) 옥동녀 탄생을 위한 마지막 진통으로 마무리를
첫 머 리 진 술 존경하는 재판장님,
저 강정구는‘만경대 필화사건’에 이어 6-25통일내전 필화사건으로 또다시 기소되어 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는 자유스런 연구, 이에 대한 비판과 역비판 등 논쟁을 기본으로 하는 인문사회과학의 토양을 위축시켜 한국사회의 자기성찰, 창조성, 미래지향성, 진일보한 대안모색 등에 걸림돌이 되어 우리 사회와 역사 발전의 장애물로 작동하지 않을 까 심히 우려스럽습니다.
이 필화사건은 제 자신의 개인적 차원의 문제이기도 하거니와 한국 학문공동체 전체의 문제이고, 더 나아가 평화와 통일로 나아가야 하는 우리 민족사와 직결되어 있고, 기본적으로는 한 사회의 이성과 정상의 길과 관련 된 일인 것 같습니다.
해방 이후 외세에 의해 주조된 냉전에 휘말려 이러한 파행을 겪을 수밖에 없는 역사와 구조 속에 내몰린 우리 민족사에 대해 저를 비롯한 우리 모두는 겸허히 반성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를 계기로 우리 사회가 민족사의 장기 구도 속에서 이성화 되고 정상화 되어 올바른 역사의 궤도로 나아갈 것을 소망하면서 이 필화사건과 관련된 저의 소회와 소신을 주로 저의 학문 좌표, 기본적인 학문관, 미국과 북한에 대한 접근법, 장기 구도적 민족사에 대한 청사진 등을 중심으로 개진하겠습니다.
이는 기소의 대상이 된 저의 학문연구 결과물인 텍스트(text)를 텍스트 차원에 국한시키지 않고 이를 넘어서 이러한 학문적 연구결과인 텍스트가 나올 수밖에 없는 학문적-역사적-사회적 맥락, 곧 콘텍스트(context) 속에 위치 지움으로써 심층적이고 올바른 이해를 돕기 위함입니다.
1. 냉전성역 허물기라는 학문좌표
1) 냉전성역 허물기라는 학문좌표의 설정
저의 학문적 기본은 민족-민중-비판 학문입니다. 앞의 둘은 학문적 지향과 주제에 따른 분류이고, 뒤의 비판학문은 방법론에 따른 분류입니다. 비판학문의 방법론적 특성을 독재와 민주주의의 사회적 기원이라는 책의 저자인 미국 역사사회학자 베링톤 무어(Barrington Moore)가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어느 사회든 그 사회를 지배하는 집단은 사회가 운용되어 가는 방식에 대해 숨겨야 할 것이 가장 많은 집단이므로... 진실한 분석은 비판적이기 마련이며, 객관적 진술처럼 보이기보다 폭로의 글처럼 보이기 마련이다.”
특히 한국사회는 이런 숨겨야 할 것이 너무나 많을 수밖에 없는 역사적 특성을 가졌다고 봅니다. 이를 저의 책은 이미 아래와 같이 지적하고 있습니다.
“50년 만에야 비로소 평화적 정권교체가 여야 간 이루어지고 금강산 관광이 이뤄질 정도로 금기와 제약이 많았기 때문에 자유와 민주주의가 제대로 성장할 수 없었다. 그래서 너무나도 많은 사회현상이 왜곡되고 진실이 장막에 가려져 왔다. 일본 식민지 지배, 친일파에 대한 역사청산을 이루지 못한 해방공간, 미국지배의 종속체제에서 타율적인 역사의 강요, 박정희에서 전두환에 이르는 30년 군부독재, 분단으로 인해 북한 것은 무조건 다 악과 부정으로 보아야 하는 극단적 반공·냉전 이데올로기의 압도 등 때문에 우리 역사는 언제나 왜곡을 강요당해 왔고, 진실은 은폐되어 왔던 것이다. 이런 사회일수록 인문사회과학의 주요 소임인 ‘脫신비화’와 ‘가면 벗겨 폭로하기’가 절실히 요구되기 마련이다. 따라서 우리 학문은 민족·민중지향성과 더불어 비판적 성향이 요구되고 있다‘(강정구, 2000. <현대 한국사회의 이해와 전망>, 23쪽).
이 지적처럼 우리 사회는 극단적인 냉전 분단체제 아래 남북이 서로를 원천적으로 적대 및 부정(否定)하여 상대방에 극단적인 덫 칠을 가해 악마로 몰고 자기 것은 절대적인 선(善)으로 미화하거나 신성시 해왔습니다. 이 과정에서 누구도 감히 손댈 수 없는 성역, 곧 금기영역인 냉전성역이 형성되어 왔던 것입니다.
이 금기영역을 함부로 이야기하거나 학문주제로 삼았다가는 옥살이나 죽음을 강요당할 정도로 시련 또한 가혹했습니다. 비록 이러한 극단적 상황은 개선되긴 했지만 아직도 여전히 지속되고 있습니다. 이들 성역의 전형은 6-25와 한국전쟁, 친일파청산, 정통성, 전쟁위기, 민간인학살, 주한미군, 한미관계, 연방제, 주체사상, 김일성, 김정일, 민족자주, 평화협정, 서해교전, 북방한계선(NLL) 등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렇게 숨겨야 할 것이 절대적으로 많은 영역인 현대사, 북한, 평화와 통일, 한미관계, 주한미군, 한반도 전쟁위기 등을 소재로 학술활동을 해 왔습니다. 이 때문에 저는 필연적으로 냉전성역 허물기를 저의 학문적 좌표로 설정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더구나 세계사적으로는 탈냉전을, 민족사적으로는 평화-통일시대를 맞은 21세기의 시대 상황이 더욱더 냉전성역 허물기에 박차를 가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왜냐면 냉전성역은 구체적인 경험적 사실에 의해 검증이라는 절차를 밟은 과학적 지식에 기초한 것이 아니고, 맹목적인 냉전-반공이데올로기에 기반 한 거짓이기 때문입니다. 냉전성역은 반(反)과학적이기에 반(反)합리적이고, 맹목적이기에 극단적이고 폭력적이며, 이분법이기에 내편 아니면 적으로 삼고 있습니다. 이 냉전성역에는 공식적인 단일 표준 정답과 해석만 허용되는 파시즘이 지배합니다. 이 결과 통일시대에 접어들었으면서도 남북 간의 진정한 화해, 협력, 평화와 통일이 원천적으로 가로막히게 되고 학문사상의 자유 등 일반 민주주의의 기본마저 침해받게 됩니다.
2) 냉전성역 허물기의 학문적 특성
이 같이 저의 학문이 비판학문을 철저히 지향하고, 민족학문을 올바르게 또 용기 있게 지향하고, 세부적으로 냉전성역 허물기를 그 학문적 소명으로 삼는 한 배링턴 무어의 지적과 같이 객관적 진술처럼 보이기보다 폭로와 선동의 글처럼 보이기 마련입니다.
이 냉전성역 허물기라는 역사성과 학문적 특성을 이해한다면 저의 학술 논문과 소논문들이 균형감각을 상실한 것이 아니라 이제까지 지나치게 반 객관적이고 불균형적으로 왜곡되어 왔던 것을 바로 잡고, 이 결과 기계적 균형이 아니라 올바른 균형을 회복시켜 오히려 참된 객관성을 복원하고 있다고 판단할 것입니다. 저는 이런 점에서 제 나름대로 이들 원칙에 비교적 충실했고, 학문적 기여도 또한 적지 않았다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물론 냉전성역 허물기라는 학문적 소명에 지나치게 몰입해 균형을 상실할 위험성이 저에게 있다는 것을 시인합니다. 이러한 저의 오류는 국가보안법이라는 법적 심판에 의해 단죄될 것이 아니라 학문의 장에서 자유스럽고 냉혹한 비판과 논쟁을 통해 수정되고 재 발전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로써 냉전성역의 참모습이 제대로 밝혀지고 진실이 규명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3) 자유민주주의와 냉전성역 허물기
저의 냉전성역 허물기 연구는 남한사회가 통상적으로 갖고 있는 일반적인 신념에 대해 심각한 도전을 제기하는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도전은 자유민주주주의를 지향하는 우리 사회에 도움이 되었으면 되었지 결코 해가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봅니다.
조선대 철학과 염수균 교수가‘자유주의 관점에서 본 강정구 교수 문제’라는 칼럼에서 정곡을 찔렀듯이 만일 전통적인 견해로서 냉전성역이 옳고 저의 냉전성역 허물기라는 학문적 연구결과가 그릇된 것으로 판명된다면, 저의 도발적 냉전성역 허물기 덕분에 ‘죽은 도그마’(dead dogma)였던 전통적 견해가 살아 있는 진리가(living truth)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와는 달리 저의 학문적 연구결과가 옳거나 적어도 옳은 측면이 있어서 논의를 통해서 그것이 재확인 된다면, 우리 사회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는 허위가 아니라 진실이라는 더욱더 견고한 바탕 위에 세워질 수 있을 것입니다.
이미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은 소수의견 존중이 민주주의의 관건임을 아래와 같이 역설했습니다.
“어떤 의견이 강제적으로 침묵될 경우, 그 의견은 진실일 수 있다. … 이를 부정하는 것은 우리 자신의 무오류성을 가정하는 것이다.”“다수자의 사상이 완전한 진리이고 소수자의 그것이 틀린 것이라 하더라도 그 다수자의 사상에 생명을 불어 넣어 주며 힘을 심어주려면 항상 그것은 소수자의 반대설에 의해서 비판되어야 한다.”
이처럼 자유민주주의 사회는“어떻게 국민정서에 반대하는 통일전쟁론을 감히 주장하느냐”식으로 다수핑계를 대면서 저의 6-25통일전쟁론을 사법처리 할 것이 아니라, 국민다수나 권력이 뭐라 하든 학문적 귀결이나 사상이 이에 구애될 필요가 없는 구도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주장합니다. 국민다수의 정서에 맞는 학문만이 허용될 때 천동설에서 지동설로 바뀌는 코페르니쿠스 과학혁명도 불가능 했을 테고, 불법적인 미국의 이라크침략전쟁도 미국 국내에서는 정당화 되고 말 것입니다.
자유민주주의가 추구하는 사회의 안정성은 냉전성역을 설정하고 여론몰이, 색깔몰이, 폭력몰이, 국가보안법 등으로 맹목적 믿음을 강요하는 억압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오히려 도전과 응전, 비판과 역비판, 논쟁과 성찰 등의 합리적인 소통과 공론화 과정을 통해 자율적이고 창조적인 공통의 합의나 서로 간의 차이를 인정하는 똘레랑스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2. 학문적 다양성과 과학적 규범-공약성의 훼손
저는 학문을 전문으로 하는 학자입니다. 학문마당이란 거짓이 아닌 참을 밝히고 진실과 보편적 진리를 발견하는 곳입니다. 여기에는 오직 사실을 바탕으로 한 논의와 과학적 규범만이 허용되는 곳입니다. 이데올로기나 여론, 이해관계, 감정이나 정실, 선입관과 편견, 폭력몰이, 국가공권력과 공안당국 등이 개입되면 학문마당은 곧 그 존립근거를 훼손당하고 말 것입니다.
이러한 보편적인 과학 규범과 공약성(co-measurability), 그리고 학문에 생명력을 불러일으키는 다양성 등에 재갈을 물리는 것이 바로 이번 저의 필화사건이라고 생각하고 이는 시정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1) 학문적 다양성의 훼손
“맥아더를 알기나 하나요?”라는 저의 소논문 칼럼에서 문제가 되었던 ‘6-25 통일전쟁론’이라는 전쟁성격 규정은 아주 복잡한 내용을 담고 있어 공안당국에서 단정하듯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6-25나 한국전쟁에 대한 저의 학문적 성격규정은 그 기본골격이 1993년 <역사비평> 여름호에 “미국과 한국전쟁”이란 논문으로 발표되었습니다. 이후 이 전쟁성격론은 수정·보완 작업이 연속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중입니다.
곧, 아래와 같은 일련의 논문에서 전쟁성격 규정도 수정-변화-발전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수정 변화는 치열한 학문논쟁의 결과라기보다 제 자신의 성찰과 재조명에 의한 결과입니다. 왜냐면 한국전쟁은 이 사회에서 너무나 예민한 분야여서 누구도 감히 자유스럽게 토론이나 논쟁을 할 수 없는 성역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의 수정-변화 는 학문적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정말 학문의 자유가 제대로 보장되었다면 저를 비롯한 현대사 전공자들이 보다 훌륭한 학문업적을 남길 수 있었고 이는 우리 사회와 민족사에 자양분이 될 수도 있다고 봅니다.
학문은 언제나 새로운 자료, 다른 학문동료에 의한 비판, 새로운 방법론이나 추론 등에 의해 변화-발전되기 마련입니다. 또한 학문적 결론은 언제나 붙박이식으로 고착되어 있는 불변의 존재는 아닙니다. 이렇기 때문에 다양성은 학문의 장에서는 필수적으로 요구되고 이 다양성 때문에 학문은 생명력을 가지게 됩니다.
: “미국과 한국전쟁” 역사비평 1993년 여름호 계간21호,(195쪽 표2) : “미국과 한국전쟁” 분단과 전쟁의 한국현대사 역사비평사, 1996. (205쪽 표2) : “한미관계사:38선에서 IMF까지” 강치원 엮음, 미국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백의, 2000. : “한국전쟁과 민족통일: 전쟁의 통일을 넘어 평화와 화해의 통일로” <경제와 사회> 48호 2000년 겨울호(233쪽 표1.) : “통일과 한국전쟁” 강정구, 『민족의 생명권과 통일』당대, 2002,(98쪽 표1.) : “6·15평화통일시대 한국전쟁의 역사적 재조명”(인천통일연대주최 토론회 발표문, 2005.6.30)
이번 필화사건에서 문제되고 있는 전쟁성격 규정은 전쟁 주체가 설정하는 전쟁 목표에 따른 성격 분류 개념입니다. 마치 우리가 6월항쟁의 주체가 항쟁의 목표로 삼고 추구한 것이 바로 한국사회의 민주화였기 때문에 이를 민주항쟁으로 성격 규정해 온 것처럼 말입니다.
이 전쟁성격 규정에서 유의할 점은 한국전쟁 또는 6-25전쟁은 다양한 성격규정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전쟁주체자의 전쟁목적에 따른 개념규정이기 때문에 주체에 따라, 또 전쟁 진행시기와 단계에 따라 주체자의 전쟁목표는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전쟁주체는 1948년의 작은전쟁의 경우 남한좌익과 미군정이었고, 6-25내란의 초기 경우 북한과 남한이었고, 미국의 개입 이후는 미국-남한-북한이었으며, 중국 개입이후는 중국-미국-남한-북한 등으로 중심 주체가 바꿔졌습니다. 이에 따라 응당 전쟁성격도 통일전쟁, 계급전쟁, 민족해방전쟁, 혁명전쟁, 분단고착화전쟁, 체제전쟁, 진영전쟁 등으로 다양하게 재규정되고 변해 왔습니다.
저의 전쟁성격 규정 또한 전쟁단계별로 전쟁 주체들의 전쟁목적을 기준으로 다양하게 이뤄졌습니다. 비록 단계별로 또는 전쟁주체별로 전쟁성격 규정이 달라지긴 하지만 민족 중심적으로 또 총체적으로 평가할 때 한국전쟁은 통일전쟁이라는 성격규정이 가장 지배적이었고 각 단계를 관통하는 전쟁성격이라고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이런데도 북한이 규정하는 조국해방전쟁에만 초점을 맞춰 마치 저의 전쟁성격 규정이 북한의 것과 유사한 민족해방전쟁 외에 다른 성격규정은 없는 것처럼 취급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또한 한국전쟁의 총체적 성격규정인 통일전쟁은 너무나 자명한 것임에도 우리 사회는 이를 문제 삼고 있습니다. 지난 60년 동안 극단적인 냉전분단체제 속에 살아온 우리였기에 이럴 수도 있다고 봅니다만 탈냉전통일시대를 맞은 오늘의 시점에서 이러한 과거 지향적 접근은 기본적인 방향전환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지난 12월 27일 저의 필화사건을 주제로 한 어떤 토론회에서 보수진영의 대표주자의 하나인 양동안 교수는 한국전쟁을 통일전쟁이라는 강 교수의 주장에 문제를 거는 쪽은 ‘바보멍청이’라고 하면서 도대체 한국전쟁이 분단을 위한 전쟁이냐고 반문하였습니다.
이처럼 학문의 장에서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논쟁, 비판, 역비판, 수정, 재규정과 재조명 등을 허용하지 않는 파시즘적 지배를 부추기는 짓이고 학문의 생명력을 위축-고갈시켜 학문발전과 사회발전의 저해 요소로 작용하게 될 것이기에 정말 우려스럽습니다.
2) 방법론적 공약성의 부인
이 사회의 기성 주류 보수주의자들은 6-25 전쟁성격 규정에서 6-25는 김일성에 의해 시도되고, 무력이라는 방식에 의해 통일이 시도됐고, 미국이 개입하지 않았다면 사회주의식 통일로 귀결되었을 것이기 때문에 통일전쟁론은 성립될 수 없다고 야단법석을 떨었습니다.
이러한 인식에 바탕 해 제가 기소된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이들의 ‘논거’는 과학적 방법론의 최소한 공약성마저 지키지 않는 반 과학적 접근이라고 봅니다. 물론 평화적 방식이 아닌 무력에 의한 방식은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지만, 이는 통일수단에 대한 가치의 문제이지 사실을 바탕으로 한 전쟁석경 규정에 끼어들 요소는 아닙니다.
통일전쟁론이라는 전쟁성격 규정은 앞에서도 지적했지만 전쟁주체의 전쟁목적에 따른 성격규정을 의미합니다. 또 통일은 사전적으로 두 개로 나눠진 것이 하나로 결합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학문적 기준에 따르면 우리의 가치관으로 좋아하든 싫어하든 상관없이 또 무력이든 평화든, 사회주의든 자본주의든, 남이든 북이든, 견훤이든 궁예든 상관없이 전쟁주체가 통일을 지향한 전쟁목표를 가졌다면 그 전쟁은 통일전쟁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통일에 이르는 수단, 통일이후 경제체제, 통일 주체의 성격 등 통일이라는 개념 구성 요소 밖의 요인을 잣대로 들이대어, 곧 개념구상과 상관없는 외적 요소를 잣대로 삼아 통일이라는 개념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방법론의 공약성 기초조차 지키지 못하는 것으로 비판받아야 한다고 봅니다.
하나로 합치면 통일이지 누가하면 통일이 되고 다른 누가 하면 통일이 안 된다는 것은 억지 주장으로 귀결됩니다. ‘독일만 통일이고 베트남과 예맨은 아직도 분단되어 있단 말인가?’ 라는 단순한 질문에 그 모순을 노정하고 맙니다.
과일이면 과일이지 자기가 좋아하는 사과만 과일이고 싫어하는 감과 배는 과일이 아닐 수는 없습니다. 곧 선호도가 과일을 규정하는 개념 구성요소가 아니기 때문에 이 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최소한의 의사소통 기준이나 공약수마저 지키지 않는 치외법권적 규정입니다.
같은 논리로 사람이면 사람이지 백인만 사람이고 우리 같은 황인종과 아프리카의 흑인은 사람이 아니라고 할 수 없습니다. 또 신문이면 신문이지 마음에 드는 것만 신문이고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신문이 아니라고 주장하면 그것은 결코 정당화 될 수 없습니다. 이 같은 치외법권적 규정은 학문적 공약성을 허무는 문제일 뿐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담론과 소통의 기초 공약도 지키지 않는 것으로 지탄받아야 한다고 봅니다.
이 때문에 김대중 대통령과 극우진영의 대표 가운데 하나인 조갑제도, 심지어 5공 군부독재의 허문도 통일원 장관조차 6·25를 신라통일이나 고려통일과 같이 통일시도로 볼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가치지향과는 무관하게 공약성을 기준으로 평가했기 때문에 내려질 수밖에 없는 당연한 귀결입니다.
또한 필자의 학문적 귀결인 통일전쟁론이 틀렸다면 학문규범인 반증의 공약에 따라 실증적 차원에서 전쟁 주체인 남과 북의 지도부나 참전한 유엔이 전쟁의 목표에 통일을 배제하고 있다는 객관적 자료를 제시하면 될 것입니다. 곧, 북한의 국토완정론, 남한의 북진통일론, 1950년 10월 7일자 유엔총회 결의안 376호 등이 통일을 목적으로 삼지 않았다는 것을 사실적으로 입증하면 됩니다.
통일전쟁론을 학문적 규범이고 공약인 경험적 사실에 의한 검증이라는 방식으로 반증할 수 없으니까 지난 60년간 전가의 보도로 써먹던 이념논쟁이 재 작동된 것 같습니다. 제가 맥아더 소논문 칼럼에서 이런 반과학적인 이념몰이를 질타하고 냉정한 이성적 대응을 촉구했는데도 불구하고 폭력몰이와 색깔몰이가 횡행하였고, 사법처리 운운하면서 재판에 이르기 까지 되어 심히 유감스럽습니다.
사실논쟁이나 반증이라는 과학적 규범에 따른 합리적 절차를 외면한 이념몰이로 판결을 내려는 중세의 마녀사냥과 같은 광기가 더 이상 21세기 한국사회에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3) 상관관계와 인과관계의 등치
국가보안법 수사는 종종 우연의 일치에서 비롯되는 상관관계를 마치 필연적인 인과관계인 것처럼 등치시켜 북한을 찬양-고무-동조하는 것으로 규정짓는 방법론상의 중대 오류를 범하고 있습니다. 오비이락(烏飛梨落)의 경우 까마귀가 배를 땅으로 떨어뜨렸다고만 볼 수는 없습니다. 곧 인과관계 성립의 충분조건이 될 수 없습니다. 왜냐면 까마귀가 날지 않아도 자연적으로 배가 땅에 떨어질 수 있는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배제하기 때문입니다.
그 보기를 들면 2005년 신년사에서 북한은 해방과 분단 60주년인 2005년을 주한미군 철수의 원년으로 삼자고 주장했습니다. 저 역시 분단 60년을 맞는 올해를 통일과 주한미군 철수 원년으로 자리매김하자고 역설해 왔습니다. 이렇게 주한미군 철수 원년으로 삼자는 동일한 주장을 두고 제가 마치 북한의 사주를 받거나 북한을 찬양-고무했기에 이런 주장을 한 것으로 간주돼 왔습니다. 곧 상관관계를 인과관계로 잘못 연결-등치시켜 비약하는 오류를 범한 것입니다.
그러나 저의 주한미군 철수론은 북한의 사주나 동조에 의해서가 아니라 저의 학문적 연구결과에 따라서 내려진 당연한 귀결입니다. 곧 미국과 주한미군이 한반도 전쟁위기를 주도하고 있고, 나라와 민족의 자주권을 침해하고 있고, 중국을 봉쇄하고 필요하면 공격하려는 전초기지와 전초군대로 미군을 한반도에 주둔시키므로 1895년의 청일전쟁의 재판을 가져올 불씨가 되고, 우리의 환경권-통일권-생활권 등등을 침해하는 핵심요소 등이기 때문에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미군철수당위론이 귀결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90년대부터 줄곧 미군철수당위론을 학문적으로 주장해 왔고, 2005년을 철군원년으로 삼자는 주장을 북한보다 훨씬 앞선 2004년 초부터 개진해 왔던 것입니다.
당연히 저의 학문적 결론은 북한의 주장과 같을 수도 있고 다를 수도 있습니다. 우연의 일치로 북한의 것과 같거나 비슷한 결과가 나타나(곧 상관관계가 있으면), 이를 근거로 북한에 대한 찬양-고무-동조나 이적행위라고 간주-등치하는 것은(인과관계가 있다고 해석한다면) 대학 초 학년에서 학습하는 방법론의 초보조차 위배하는 것으로 질타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방법론 교과서에서는 두 요소 사이에 인과관계가(causality) 성립되려면 첫째 둘 사이 상관관계가(co-relation) 성립돼야 하고, 둘째 원인요소가 결과요소보다 시간적으로 먼저 일어나야 하고(time precedence), 셋째 둘 사이의 관계가 거짓 관계가 아닌(non-spurious relation) 참 관계이어야 한다고 기술되어 있습니다. 저는 교수로서 대학 1학년생에게 언제나 이 초보적 방법론을 학습시켜 학생들이 충분한 논거도 없이 섣불리 단정적인 결론을 내리는 반 학문적 접근을 하는 것을 경계해 왔습니다.
박사논문 때부터 지금까지 매달아 온 이런 주제에 관한 저의 연구결과물을 단순히 북한의 사주나 동조 또는 표절로 간주하는 것은 학문과 학자에 대한 모욕이라고 생각합니다.
4) 찬양-고무나 이적행위라는 학문외적 잣대
저는 맥아더 소논문 칼럼에서 6-25를 ‘북한지도부가 시도한 통일전쟁’이라고 서술했습니다. 이는 국가보안법의 규정에 의하면 남침이라는 남한의 공식적 입장을 ‘고무-찬양-동조’한 셈입니다. 동시에 북침이라는 북의 공식기조를 완전히 허무는, 곧 북의 입장에선 ‘이적행위’를 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런데도 북을 찬양-고무-동조하고 이적행위 했다고 저를 법적 심판의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이런 학문외적 기준을 적용한다면 남침이라는 남한의 공식적 입장을 찬양-고무-동조한 부분에 대해서는 저에게 응당 포상을 내려야 하는 것 아닙니까?
이런 모순처럼 학문적 결론은 어떤 이해당사자에게 때로는 득이나 실도 되고, ‘찬양-동조’도 되고 ‘이적’도 될 수밖에 없습니다. 학문적 결론은 사실과 논리, 추론과 방법론, 학자의 양심 등이 어우러져 총체적으로 귀결되는 것이지 어떤 집단과 조직의 이해득실이나 국민정서와 같은 여론에 따라 좌우될 수는 없습니다. 바로 이 때문에 국보법상의 이적이나 찬양-동조라는 사법적 잣대는 원천적으로 학문세계에 감히 끼어들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학문적 논쟁은 오직 객관적 자료와 타당한 방법론 등을 기반으로 한 논쟁과 설명력이라는 공론의 장에서만 가려질 수 있습니다. 어떤 학문외적 강제인 폭력과 이념 몰이, 또는 국보법이라는 국가폭력에 의해 강요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들 학문외적 강제는 자유민주주의를 지향한다는 사회가 자유의 이름으로 자유를 부정하는 자기기만과 자기부정을 스스로 저지르는 것입니다.
이제 탈냉전평화통일시대를 맞은 우리 사회도 친북, 반북, 친미, 반미 등의 학문외적 잣대에서 벗어나 학문내적 규범이나 공약성, 민족과 인류사회의 보편적 규범이나 가치에 그 평가기준을 둬야 합니다. 언제까지 냉전의 유령에 홀려 현재와 미래의 민족사가 발목 잡힐 수만은 없다고 봅니다.
5) 배타성과 양립성의 혼돈
6·25는 ‘불법 침략전쟁’이기에 제가 결론지은 통일전쟁론은 성립될 수 없다면서 사법적 잣대를 들이대고 있습니다. 이만큼 모순과 무지의 극치를 이루는 주장도 드물 것입니다.
앞에서 밝힌 대로 통일전쟁론은 전쟁주체자의 전쟁목표를 기준으로 한 전쟁성격 규정입니다. 이에는 민족해방, 계급해방, 단순한 권력야욕(왕위쟁탈 전쟁이나 왕위계승전쟁), 민족통일, 지역통합, 종교 전파, 분단고착화, 징기스칸처럼 정복이나 영토 확장 등의 전쟁성격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에 따른 6·25의 전쟁성격은 1950년 10월 7일자 유엔총회 결의 376호처럼 통일전쟁, 북한의 규정처럼 조국해방전쟁, 남한의 북진통일론처럼 통일전쟁 등 다양하게 논의-규정될 수 있습니다.
대조적으로 침략전쟁은 국제법적 기준에 의한 전쟁성격 규정입니다. 이에는 1950년 6월 25일과 27일 유엔안보리 결의 82호와 83호와 같이 평화파괴나 또 평화위협, 침략전쟁, 테러 등의 성격규정이 있을 수 있습니다. 위의 유엔 안보리 결의안은 6·25를 별개의 주권국가 간의 전면적 군사행위인 침략전쟁으로 규정하지 않고 평화파괴(breach of peace)로 규정했습니다.
왜냐면 6·25는 한반도 내의 5·10선거가 실시된 지역에 한정해 합법성을 유엔총회로부터 1949년 10월 21일 인정받은 대한민국과 아직 별개의 주권국가로 유엔으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한 북한이라는 실체(국제법적으로는 반도단체) 사이의 내란, 곧 집안싸움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국제법 차원에서 내란은 무력행위 주체를 반도단체 수준에 한정할 때의 규정이고, 이 반도단체를 교전단체로 인정할 때는 내전이 됩니다.
6·25의 경우 초기에 ‘동란’이나 ‘사변’으로 지칭했던 것은 동학란이나 농민반란 등과 같은 수준의 내란으로 규정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당일 유엔안보리 결의안 82호에서 북한을 평화파괴자로 규정하면서 교전단체가 되어 내전으로 전환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6·25가 침략전쟁이냐 아니냐는 논쟁의 여지가 있습니다. 유엔의 승인이라는 국제적 기준에 의하면 이는 내전이지 침략전쟁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소련이나 중국 등 사회주의권의 외교적 승인을 기준으로 하면 북한은 별개의 주권국가가 되므로 국제법적 기준으로 침략전쟁도 될 수 있습니다.
남한은 뚜렷한 논거를 제시하지 않은 채 침략전쟁으로 자의적인 규정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냉전성역에 매몰된 남한사회에서는 이 침략전쟁 규정이 논거가 필요 없을 정도로 명명백백할지 몰라도 지구촌 보편의 규범인 국제법상으로나 학문적 논거 상으로는 억지 주장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습니다.
유엔을 중심으로 한 국제법과 북한을 주권국가가 아닌 반국가단체로 규정하고 있는 국가보안법을 엄밀하게 적용하면 6-25는 침략전쟁이 아닌 내전이고 동시에 통일전쟁입니다. 이처럼 국제법적으로 성립되지 않는 것을 일방적으로 또 이데올로기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보편주의 원칙과 요즘 금과옥조처럼 들먹이는 ‘글로벌 스탠더드’에도 맞지 않습니다. 설사 냉전기간에는 그랬다하더라도 이제 탈냉전-글로벌시대에는 이런 구각의 굴레에서 응당 벗어나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봅니다.
어쨌든 전쟁목표를 기준으로 한 통일전쟁 성격규정과 국제법을 기준으로 한 침략전쟁 규정은 서로 배타적이 아니라 양립가능 합니다. 곧 침략전쟁이면서 통일전쟁이 될 수 있습니다. 독일이 오스트리아를 독일민족의 통일을 위해 침략했을 경우 이는 통일전쟁이면서 동시에 침략전쟁입니다.
이처럼 6·25를 남한의 공식 규정인 침략전쟁이라 하드라도 여전히 통일전쟁이나 민족해방전쟁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침략전쟁을 통일전쟁으로 성격규정 했기 때문에 정체성을 위배했다는 등의 주장은 배타성과 양립성을 분간조차 못하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물론 이를 잘 알면서도 이 같은 억지 주장을 펼치는 사람이나 집단이 비일비재한 것도 엄연한 우리의 현실인 것 같습니다.
6) 진실균형과 억지균형의 혼돈
공소장은 서해교전에 관한 저의 논문이“북방한계선은 북한의 영해에 불법적으로 설정된 것이고, 북한의 서해 5도 통항질서 선포는 정당하며, 서해교전은 불법적인 북방한계선에서 비롯된 것으로 한국 측에서 밀어붙이기식 선제공격을 가하여 발생한 것이라는 등”으로 북한에 동조했다면서,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고 결론지었고, 마치 제가 균형감각을 상실한 것처럼 보고 있습니다.
물론 학문에서 균형을 취하는 것은 매우 필요하고 중요하지만 사실을 왜곡하면서까지 억지로 추구할 수는 없습니다. 사실은 사실대로 말해져야 합니다. 김영삼 정권 당시 이양호 국방장관이 국회에서 증언한 것처럼 북방한계선은 정전협정과 같은 남북 간 합의나 국제협정에 의하지 않고 유엔군사령부의 내부적 필요에 따라 일방적으로 그어진 임의의 선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북한 배의 월선은 영해침범도 아니고 불법도 아닙니다.
이 한계선은 오히려 상대지역 봉쇄를 금하는 정전협정 위배이고, 12해리 영해규정인 유엔 해양법 위배입니다. 제가 이 한계선을 불법으로 규정한 것은 사실차원의 문제로 균형 문제가 끼어들 여지가 없습니다. 따라서 북한의 북방한계선 철폐 요구와 서해5도 통항질서는 관련 협정과 국제법인 정전협정, 12해리 유엔해양법, 서베를린 국제관례 등의 기준에서 보면 정당한 것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냉전성역에 기초한 북방한계선에 대해 사실차원에서 진실을 밝히는 작업은 북한보다 남한에 대한 비판이 훨씬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함에도 국가보안법을 의식해 잘 못 없는 북한에 마치 잘못이 있는 것처럼 기계적으로 서술하는 것은 ‘억지균형’입니다. 균형은 오로지 사실과 진실을 바탕으로 한 ‘진실균형’이어야 하고, 단지 해결책 등에서 서로의 양보와 타협을 요구해 참된 균형을 추구해야 한다고 봅니다. 저의 논문은 북한에 대한 양보와 타협을 요구하는 히딩크식의 해법을 제안함으로써 해결책에서 참된 균형을 취했습니다.
이 진실균형을 추구한 결과 저는 2차 서해교전이 북한의 ‘치밀하고도 계획된 도발’ ‘계획적 선제공격론’ 에 의해 발생했다는 정부의 발표에 의문을 제기하고 ‘우발적 충돌에 의한 선제 포격론’을 추론했습니다. 이러한 저의 추론은 합참의 비밀문건을 분석해 국방부와 청와대가 공모해 조작했음을 2003년 5월28일자 <한국일보>가 폭로함으로써 진실임이 밝혀졌습니다. 북한의 ‘계획된 선제공격론’이 공모-조작된 것임이 밝혀지자 민언련 등이 특별성명을 발표하고, 민주노동당은 국방부의 서해교전 원인 왜곡 발표에 대해 감사원에 국민감사까지 청구했습니다.
이처럼 공안당국이 찬양-고무-동조로 의심을 품고 사법적 잣대를 들이대는 논문이 역사의 진실을 밝히는 귀중한 단서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학문의 자유와 억지균형이 아닌 진실균형이 얼마나 귀중한 자산인지를 잘 말해 준다고 볼 수 있습니다.
3. 북한과 미국에 대한 올바른 접근
이번 저의 필화사건에서 공안당국의 조사와 공소장은 맹목적 친미를 거부하면서 미국에 대한 비판을 담은 연구, 맹목적 반북을 하지 않고서 객관적 평가를 시도하는 북한연구 등을 사법적 심판의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단순-비약적으로 서술하자면 친미와 반북을 하지 않으면 죄가 되고 허위사실까지 유포해 친미와 반북을 하지 않으면 죄가 되는 듯합니다. 이를 좀 더 세부적으로 검토하면서 북한과 미국에 대한 올바르고 객관적인 접근을 고민해 보겠습니다.
1) 반일-반중-반 프랑스는 괜찮고 왜 미국비판과 반미만은 안 되는가?
저의 학문연구 가운데 주한미군 철수, 미국비판, 반미 등이 북한에 대한 찬양-고무-동조로 간주되고 있습니다. 곧, 미국에 대한 비판과 이에 따른 합리적인 반미 서술이나 언술이 마치 죄가 된다는 식이었습니다.
이렇게 어이없는 현상에 저는 역사학자로서 심한 자괴감에 빠졌고 의기소침해 견디기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애용하던 책 <한반도의 외국군 주둔사>(중심, 2001)를 다시 훑어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 책은 우리 역사에서 외국군의 침략-주둔-지배 등을 연대기적으로 서술한 것으로 삼국시기 당나라군, 고려시대의 몽골군,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군, 정묘-병자호란 당시 청나라군, 개항기 청나라군, 개화기 일본군, 식민시대의 일본군, 해방이후 북한에서의 소련군, 남한에서의 미군 등을 민족 주체적 패러다임(paradigm)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저는 통일신라 이후 전개된 이 치욕의 역사와 일부 지배집단의 반민족행위를 개탄하면서 아래와 같은 책 서문과 결론을 몇 번이나 되풀이해 읽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위의 책 7쪽).
“한반도의 외국군 주둔사를 점검하면서 얻는 교훈은 어떤 명분으로도 외국군대를 이 땅에 들여놓고 진정으로 자주와 독립, 국가적 자존을 운위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 땅을 거쳐 간 수많은 외국군 가운데 상당수는 극소수 지배집단이 그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애걸해서 불러들인 반민족적 사리사욕의 결과였다는 것도 확인되었다. 그때도 그들은 외국군을 끌어들인 명분으로 ‘안보’를 내세웠다. 그러나 그 ‘안보’가 나라와 민족의 안보가 아니라 한줌도 안 되는 그들의 부도덕한 특권을 유지하기 위한 ‘안보’였다는 것을 역사는 증언하고 있다... 흔히 역사는 반복된다고 하지만 우리의 경우 이 말만큼 정확한 표현도 없는 것 같다.”
외세란 그것이 미국이든 일본이든 언제나 우리가 경계해야할 대상임을 이 책은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또한 저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의 지론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이나 신사참배에 대해 우리는 반일을 외치고, 정부나 언론이 은근히 이를 부추겨 왔습니다. 또 프랑스의 고문서 강탈과 같은 제국주의 약탈과 이를 반성하지 않는 그들의 뻔뻔함이나 중국의 동북공정 등 대국주의에 대해 우리는 응당 반(反)프랑스나 반중(反中)을 외치고, 이를 당연지사로 받아들입니다. 물론 사법당국에서 이 반일, 반중, 반프랑스 등을 문제 삼지도 않습니다.
그렇지만 한반도 전쟁위기를 수시로 몰고 오고, 어린 여중생을 죽이고도 발뺌하고, 천문학적 비용이 드는 미국산 무기 구매를 강요하고, 제2의 청일전쟁을 몰고 올 수 있는 망국적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강요하고, 또 통일 가로막기를 자행하는 미국에 대해서만 비판이나 반미는 사법처리까지 강요될 정도입니다.
최근 일본재단이 미 CIA 극비자료를 토대로 작성한 연구 보고서에서 밝힌 바와 같이, 미국은 겉으로는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원한다하면서 실제로는 지난 2003년 중반부터 북한체제 붕괴를 목표로 한 내부 교란 작전인 작계 5030을 수립, 실행 중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이 북한붕괴작전의 주요 내용은 북한군의 식량 등 전시 비축물을 고갈시키는 지속적인 한미 군사훈련 실시, 북한 항공기 연료를 소진시키기 위해 북한 항공기의 잦은 긴급발진을 유도하는 불시 정찰비행, 전단 살포 등으로 내부혼란 조장, 정권 핵심인사와 그 자녀들의 망명 지원, 김 위원장의 자금원을 막기 위한 외화 유입경로 차단 등이 포함돼 있다고 합니다.
최근 미국이 확실한 근거도 제시하지 않은 채 제기한 북한 ‘위조화폐’문제나 ‘위조담배’사건, 오극렬 대장의 장남가족 망명유도 사건, 북한인권법과 이를 지원하기 위한 연간 2400만 달러 책정, 광주비행장에 배치된 F-117A 나이트호크 스텔스 전폭기 15대를 김정일 위원장을 겨냥한 위협 출격과 급강하와 급상승 등 노골적 군사행위, 북한 내 반정부 전단 살포, 북한에 대한 금융-무역 봉쇄조치 강화, 남함의 대북지원에 대한 제동, 지속적으로 강화되고 빈발하는 군사훈련 등이 바로 이 미국의 북한붕괴작전계획인 5030의 일환으로 펼쳐지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 작전은 자칫 잘 못하면 제2의 6-25라는 상상할 수 없는 민족적 참극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합리성을 가진 한국인이라면 이러한 미국에 대한 반미나 비판은 응당 분출될 수밖에 없는 자연스럽고 필연적인 귀결일 것입니다. 또한 2000년 10월12일, 조명록 북한 국방부위원장이 미국을 방문해 한반도 전쟁위기를 해소하고 평화체제를 확약한 10-12북미공동성명을 발표했을 때 저를 포함하여 많은 한국의 평화-통일운동가들은 미국을 칭찬, 곧 친미를 했습니다. 당시 저는 강연할 때마다 클린턴과 올브라이트를 칭찬하는 친미주의자였습니다. 이처럼 한국사회에서 반미나 친미는 고정불변체가 아니라 미국의 정책이나 행위, 또 이들이 한반도나 우리 민족의 평화-통일-국익 등에 미치는 영향에 따라 달리 나타나고 변화될 수밖에 없는 가변적 존재입니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이 땅에서는 반미만큼은 절대 허용될 수 없는 금기로 치부되어 왔습니다. 마치 이 땅이 미국 땅인지 한국 땅인지 구분하기 힘들 정도입니다.
저는 2003년 초 미국의 Boston Glove 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에 대한 한국인의 시각을 몇 가지로 분류해 설명한 적이 있습니다. 맹목적 숭미 또는 대미 자발적 노예주의, 합리적 친미, 합리-비판적 반미, 맹목적 반미(반미주의 또는 반미이데올로기) 등입니다. 맹목적 숭미는 주로 기성주류와 일부 이에 부화뇌동하는 일반인이고, 맹목적 반미는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고, 저를 포함해 대부분 한국 사람은 합리적 친미와 합리-비판적 반미라고 말했습니다.
미국의 대한반도 정책이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에 방해가 되지 않고, 수직적이 아닌 수평적 한미관계를 추구하다면 한국에서의 반미는 생기지도 않고 생긴다 하더라도 별로 염려할 필요가 없지만, 부시 행정부처럼 평화통일 가로막기와 지배-예속의 한미관계를 계속 추진한다면, 합리적 친미나 합리-비판적 반미가 맹목적 반미 또는 반미주의(반미이데올로기)로 악화될 수 있음을 경고했습니다.
동일한 행위라 하더라도 일본이나 중국이 하면 반일과 반중으로 대응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것이 되고, 미국이 하면 면죄부가 되는 것이 오늘날 한국사회의 모습입니다. 이러한 이중 삼중 잣대는 보편성을 거절하는 상식 이하의 억지 기준이면서 민족의 자존을 자진해서 폐기시키는 일입니다. 응당 동일 행위는 동일 기준 적용이라는 보편적 원칙이 지켜져야 합니다. 미국이라고 해서 치외법권을 누리는 예외적 특권이 주어지는 일은 결코 용납될 수 없습니다.
세계사적으로는 탈냉전을, 민족사적으로는 통일시대를 맞이한 이 시점에서까지 반미나 미국비판이 죄가 된다고 보는 이런 자아 상실의 부끄러운 자화상에 종지부를 찍어야 할 때입니다. 이런 자발적 노예주의 정신 상태 하에서는 민족의 숙원인 자주와 자존의 역사행로 구축은 요원한 신기루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식할 것을 간절히 바랍니다.
2) 주한미군 불가피론의 검증
저는 한국사회에서 불문가지의 당위로 자리 잡고 있는 주한미군불가피론을 검증하여 이의 오류를 밝혀내고, 그 결론으로 주한미군철군당위론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저의 이런 미군철군당위론이 반미나 미국비판으로 간주되어 오늘과 같은 사법적 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앞에서도 밝혔지만 저는 미국의 정책에 따라 때로는 반미를 부러 짓고 때로는 친미를 부러 짖어 왔습니다. 반미에 대해 사법적 잣대를 들이대면 응당 친미에 대해서는 포상을 내리야 공정하고 균형적인 대처일 것입니다.
어쨌든 냉전성역 허물기를 학문적 소명으로 삼고 있는 저로서는 사법처리 여부와 상관없이 이 주한미군불가피론을 검증해 볼 수밖에 없었고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이 연구 작업을 펼쳐 나갈 것입니다.
주한미군불가피론은 미군 주둔이 없으면 북한이 전쟁을 일으킨다는 북한전쟁위협론, 북한군에 비해 남한군이 열세이므로 전쟁억지력을 위해 주한미군과 한미군사동맹이 불가피하다는 남한군열세론, 동북아에 세력균형을 위해 한미동맹과 주한미군이 통일이후까지 불가피하다는 동북아세력균형론, 미국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경제적 실리를 위해서 불가피하다는 경제실리론 등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이들 각 구성요소에 대해 경험적 사실에 의한 검증이라는 과학적 절차를 밟은 후 이 결과에 따라 철군당위론이 제창되었던 것입니다. 제가 단순히 원한다거나 희망하기 때문에 내린 결론이 결코 아닙니다. 여기서는 앞의 세 가지만 소개해 주한미군불가피론이 얼마나 설득력이 없는 억지 주장인지 입증하고, 이런데도 주한미군철군당위론을 법적 심판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얼마나 반 과학적인가를 밝히겠습니다.
북한전쟁위협론
북한전쟁위협론을 검증하기 위해서는 정전협정 이후 지금까지 있었던 한반도 전쟁위기를 모두 점검하고 그 주도자가 과연 북한이었는지 구체적으로 가리는 검증작업이 요구되었습니다.
이를 검증한 결과 제가 발견한 것은 한국전쟁 이후 1989년까지의 냉전기간에는 세 번의 큰 전쟁위기가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곧 1968년 미국의 간첩선 푸에볼로호사건, EC-121 스파이 정찰기 사건, 1976년의 미루나무 사건이었습니다. 이들 사건에서 전쟁위협을 자행하고 전쟁위기란 긴박한 사태로 몰고 온 측은 북한이 아니라 바로 미국임이 판명되었습니다.
또 탈냉전시대라는 1990년대 이후를 살펴보면, 한반도는 무려 여덟 번의 전쟁위기를 겪었습니다. 1991~92년 120일 전투시나리오와 이종구 국방장관의 '엔테베작전' 언급 등 '제2의 한국전쟁위기', 1994년 6월 한 두 시간만 늦었더라도 전쟁이 발발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렸던 영변핵위기, 엉터리 미국의 인공위성 사진으로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한다고 단정 짓고 모의 핵폭탄 BDU-38로 핵전쟁 실전연습까지 벌였던 98~99년 금창리핵위기, 98년 여름 대포동 미사일(인공위성) 발사를 계기로 발발한 98-99년 미사일위기, 휴전이후 최초의 정규군에 의한 무력충돌이라는 99년의 1차 서해교전, 2002년 부시의 '악의 축' 전쟁위협, 2002년 2차 서해교전, 또 2003년 이후 지난 해 4-6월까지 지속되는 현금의 전쟁위기 등 무려 여덟 번입니다.
이 가운데 미국이 전쟁위기를 주도한 것은 서해교전을 제외한 아홉 번으로 미국의 한반도 전쟁위기 주도율은 9/11이고 북한주도율은 1/11이였습니다. 이는 이제까지 추호도 의심하지 않아 왔던 (북한이 전쟁위기를 주도한다는) ‘북한전쟁위협론’은 허구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로써 한반도전쟁위기의 주도자는 북한이 아닌 미국이라는 결론에 이른 것입니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한·미동맹만 강화되고 주한미군만 유지되면 한반도의 평화와 국익은 보장될 것이라는 검증받지 않은 믿음이 얼마나 허구이고 또 이 허구를 철저히 신봉해 왔던 한국사회가 얼마나 맹목적이고 이성을 상실한 것인지를 말해 줍니다. 이성적이고 과학적인 기준에서 판단하면 주한미군불가피론은 폐지되고 주한미군철군당위론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을 맹목적으로 찬양하기 위해 미국 전쟁위협론은 허구이고 북한전쟁 위협론이 진실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이는 허위사실 유포에 해당되는 것으로 학문을 전업으로 하는 학자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미국에 관한한 이러한 과학적 검증조차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이 이번 필화사건으로 입증된 셈이 아닌지 의구심이 듭니다. 바로 이 때문에 미국과 주한미군에 관련된 냉전성역 허물기라는 학문적 소명은 우리 한국사회에서 더욱 절실한 것 같습니다.
남한군열세론
주한미군불가피론의 또 다른 구성요소의 하나는 남이 북에 비해 군사력에서 열세이기에 대북전쟁억지력을 위해 주한미군에 안보를 의존해야 한다는 남한군열세론입니다. 이 믿음과는 정 반대로 전쟁억지력은 실재 남측 군사력만으로도 충분하고 오히려 남측 군사력이 북의 군사력을 총체적 수준에서 압도적으로 능가한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군사력 또는 전쟁능력은 총력전을 전제해야 하므로 경제력과 군사비에 의해 좌우됩니다. 2005년 북한 군사비는 17-8억 달러 수준이지만 남한은 무려 200억 달러로 북한의 10배가 넘습니다. 2006년도 북한의 군사비는 거의 동일하지만 남한의 국방예산은 무려 22조 9천억으로 약 230억 달러나 되어 그 격차는 더욱 증가하고 있습니다.
또한 총체적 전쟁능력은 경제력에 비례하는데 2004년 6월 8일 한국은행 발표에 의하면 북한의 명목 국민총소득(GNI)은 2003년 184억 달러로 남한 6,061억 달러의 3%에 자나지 않습니다. 예산 또한 100억 달러 안팎 수준입니다. 대외무역은 23억9천만 달러로 남한의 156분의 1(0.6%)에 불과합니다. 2004년 명목 국민총소득(GNI)은 208억, 한 사람당 소득은 914달러로 남한의 약 16분의 1, 대외무역 규모(상품기준)는 28억6천으로 남한(4,783억달러)과의 격차는 전년의 156배에서 167배로 확대됐습니다(<한겨레> 2005년 6월 1일).
북한 전체 경제규모가 200억 달러 정도로 남한 군사비와 비슷하거나 적고 북한 전체 예산이 100억 달러 정도로 남한군사비의 2분의 1 수준입니다. 북한의 전체 경제규모가 개인 회사인 삼성전자의 1/2도 되지 못하는 실정입니다. 다른 온갖 이야기를 들먹일 필요도 없이 이것만으로도 남한군열세론은 허구임이 충분히 입증됩니다.
북한의 군사력 열세는 남한군부도 명백히 인정하고 있습니다. 1999년 육군본부가 만든 ‘정훈교재’에서는 “북한군이 국군을 두려워하는 5가지 이유”를 들고 있습니다(<동아일보>1999. 4. 25). 첫째와 셋째만 들면, 북한군은 만성적 영양실조상태이며 체격도 매우 작다는 것입니다. “국군은 평균신장 171㎝에 체중 66㎏, 북한군은 162㎝에 47-49㎏ 수준으로 이는 복싱 웰터급과 플라이급 선수의 차이에 해당한다.” 셋째, “북한군의 무기와 장비는 양적으로 국군보다 1.6배 많지만 육군무기의 40%, 해군함정의 70%, 공군전투기의 65%가 폐기처분 직전의 노후장비”라는 것입니다.
남한군의 대북전쟁억지력 충분성이나 과잉성은 최근에 진행되고 있는 주한미군 재편과 재배치에서도 여실히 드러납니다. 지난 2003년 6월 12일 한미관계협의회에서 미 국방정보국(DIA) 동아시아국장 아리고니가 “미국의 계획은 한반도의 방위만이 아니라 더 광범위한 지역적, 지구적 긴급 상황에서 한반도에 있는 부대를 원활하게 이동·배치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밝힌 것은, 주한미군의 성격을 대북억지 임무에서 동북아지역군인 신속기동군으로 전환하고, 한국군이 한반도를 ‘전담’하는 역할 재조정을 의미합니다. 이를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이라는 사실 은폐적 개념을 쓰고 있습니다만 이런 역할분담은 한국군의 대북억지력이 충분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럼스펠드 미 국방장관은 2003년 3월 16일 국방부에서 군부 인사들과 가진 정례 회동에서“우리는 여전히 많은 병력을 매우 앞쪽에 배치해두고 있다. 한국의 국내총생산 규모는 북의 25~35배에 이른다. 필요한 만큼의 억지력을 부담할 수 있는 모든 역량을 갖고 있다(한겨레 2003. 3. 16)고 밝혔습니다. 또 미국 의회조사국(CRS)의 래리 릭시(Larry Liksch)는 지난 2000년 1월 자유아시아방송(RFA)과 가진 대담에서 “지난 5년간 북한은 재래식 전력이 상당히 약화되었으며, 남침할 수 있는 공격능력을 상실했다”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이로써 대북전쟁억지력은 주한미군 없이 남한군사력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이 입증된 셈입니다. 북은 오히려 남한의 군사력에 위협을 느낄 수밖에 없으며, 실제 남한의 흡수통일 기도를 두려워하면서 끊임없는 경계태세를 갖추고 있습니다. 김영삼 정권 때까지만 하더라도, 북이 주한미군을 남한의 무력도발에 대한 방패막이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은 이제 공공연한 사실입니다(Harrison, 2003, 28~31쪽).
실재 남한의 군사력은 북한과 비교할 수준을 초과해 세계적 수준에 이릅니다. 2005년 3월 8일 노 대통령은 공군사관학교 졸업식에서 “누구도 감히 넘볼 수 없는 막강 국군을 가지고 있습니다...이제 우리 군은 한반도뿐만 아니라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지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동북아시아의 세력 균형자로서 이 지역의 평화를 굳건히 지켜낼 것입니다‘라는 폭탄선언을 해 많은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결코 놀랄 일이 아닙니다. 노 대통령은 엄연한 진실을 말한 것입니다. 먼저 군사비를 보면, 남한 군사비는 2005년 약 200억 달러로 북한의 10배가 넘으면서 미국, 일본, 프랑스, 영국, 중국, 독일, 러시아 다음으로 세계에서 8번째입니다. 경제규모도 북한의 33배를 넘으면서 세계 10~11위 정도입니다.
육군에 비해 언제나 푸대접을 받는다는 해군력을 보겠습니다. 이지스함 도입 이전인 지금도 현대전의 필수조건인 1천t 이상 전투함 숫자로는 이탈리아, 스페인, 독일을 능가하고 한 때 해양제국이었던 영국, 프랑스와 맞먹는 수준입니다. 밀리터리 밸런스 2003~2004에 의하면 이탈리아 18, 스페인 16, 독일 13, 영국 34, 프랑스 34, 한국 39(최근 완공된 4천 5백톤 문무왕 구축함과 1만9천톤에 이르는 경항공모함 수준인 독도함을 포함하면 41척)입니다. 여기에 해양경찰대 소속 16척의 함정은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푸대접 받는 해군이 이 정도면 육군이나 공군의 군사력은 더 말할 나위없습니다. 북한의 겨우 3척에 불과합니다.
또 국방중기계획은 자주국방이란 명목으로 2005-09년 5년 동안 무려 99조를 들여 조기경보통제기(AWACS), 공중급유기, 이지스함, 차세대 미사일 등 온갖 첨단무기를 도입합니다. 이렇게 되면 군사력은 세계에서 6-7위권 안에까지 들 수 있을 정도입니다.
이로써 남한군열세론은 사실이 아니라 맹목적이고 근거 없는 믿음과 허구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판명된 것입니다. 응당 이에 논거를 두고 있는 주한미군불가피론 역시 허구로서 폐기돼야하고 주한미군 철수당위론으로 대체돼야 하는 것으로 귀결됩니다.
주한미군 동북아세력균형론
동북아 세력균형과 평화조정자로서 역할 때문에 현재뿐 아니라 통일 이후에도 주한미군과 한·미군사동맹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조의 주한미군불기피론과 한미동맹옹호론이 얼마나 反 경험적인지 간략히 검증해보겠습니다.
미국은 21세기 미국 패권에 도전할 잠재력을 가진 어떠한 국가나 지역의 출현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세계전략 하에 도전 잠재국으로 중국을 상정하여, 대중 포위·봉쇄·전쟁불사전략을 중심으로 한 동북아패권전략을 세워 놓고 있습니다. 중국 포위와 대만사태 개입을 노골화하고 있고 중국겨냥 평택 미군기지와 서해안 MD벨트의 추진 등으로 대변되는 주한미군의 재편과 재조정, 역할분담 등은 중국 봉쇄와 포위를 위한 동북아패권전략의 일환입니다. 최근에 합의한 전략적 유연성은 이를 위한 가장 핵심적인 전제입니다.
동북아세력균형론은 이러한 미국의 동북아패권전략을 마치 동북아균형자 역할인 것처럼 왜곡하는 것이고 미국의 패권전략으로 머지않아 야기될 수 있는 엄청난 한반도와 동북아 전쟁위협을 방기하는 것입니다.
객관적으로도 주한미군과 주일미군이 동북아균형자가 아니라 패권자임이 명확합니다. 주한미군 동북아세력균형론은 해양세력군인 한·미·일과 대륙세력군인 중·러·북 간에 존재하는 엄연한 힘의 압도적 불균형을 고려하지 않는 반(反) 사실적 평가입니다. 해양세력군인 한·미·일의 군사비는 미국 4,100억(2005년) 일본 450~500억, 한국 200억으로 총 4,700억 달러 수준입니다. 그러나 대륙세력군인 북-중-러 연대의 군사비는 중국 299억(2005년 기준), 러시아 200~250억, 북한 17-18억 정도로 총 600억 달러 정도에 불과하여 전형적인 불균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산술적으로 동북아 세력균형은 동북아에서 미국이 배제되어야만 이루어질 수 있음을 이 간단한 숫자에서 쉽사리 확인할 수 있습니다.
미국의 ‘동북아신냉전패권전략’과 일본의 ‘아류 패권주의전략’이 한반도 뿐 아니라 동북아의 군사적 긴장과 평화위협 요소입니다. 그럼으로, 응당 주한미군은 동북아 평화와 세력균형을 위해서도 철군되어야 하고 한·미, 미·일 군사동맹은 해체되어야 합니다. 대신 남과 북 또는 통일조국이 동북아 평화조정과 균형자 역할 확대로 한반도와 동북아의 협력체와 평화공동체로 나아가도록 해야 하고 또 충분히 해나갈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노대통령이 제시한 ‘동북아균형자전략’을 추진해 미국의 대북침략이나 ‘제2의 청일전쟁’ 등을 미연에 방지해 한반도의 안위를 지키고 동북아가 평화공동체로 나아가게 하는 장기적 전략이 요구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19세기 말 허약한 대한제국이 아닙니다. 세계적 수준에서는 경제력이나 군사력에서 5%내에 드는 강력한 힘을 가졌지만 동북아에서는 오히려 크지도 작지도 않은 적정규모의 위상을 가진 것이 남과 북 또는 통일조국입니다. 바로 이 적정규모만이 동북아의 탈미(脫美)비동맹중립의 위치에서 평화조정자나 균형자 역할을 해야 하고 또 할 수 있습니다.
왜냐면 주변 강대국이 이런 역할을 하려면 이는 절대적 안보를 추구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되어 근원적으로 긴장과 위기의 연속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오히려 패권추구와 거리가 먼 ‘크지도 작지도 않은’ 우리 남과 북이 이런 역할을 자임할 경우 강대국들의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1차적으로는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구도를 정착시키고, 2차적으로는 동북아경제평화협력체를 형성해 세계평화에 기여하는 동북아균형자전략의 추구로 한반도의 새로운 위상을 정립해야 할 것입니다.
이상과 같이 한미동맹과 주한미군을 통한 동북아세력균형론은 동북아의 세력균형과 평화를 가져오기보다는 세력불균형, 군사적 긴장, 전쟁위협, 군비경쟁 등을 가져옵니다. 오히려 동북아수준에서 크지도 작지도 않은 남과 북이 동북아균형자 역할을 할 때 진정한 한반도 평화와 동북아 평화협력구도를 가져오기에 이에 배치되는 미국주도의 동북아세력균형론에 입각한 주한미군불가피론은 폐기돼야 합니다.
3) 가공적 상상체로서의 북한-미국과 객관적 실체로서 있는 그대로의 북한과 미국
앞의 논의에서 주한미군불가피론의 구성요소인 ‘북한전쟁위협론’과 ‘주한미군평화지킴이론’은 진실이 아닌 가공적 상상체에 불과하고 ‘미국전쟁위협론’과 ‘한반도전쟁위기 미국주도론’이 객관적 실체임이 입증되었습니다. 또 남한군열세론은 허구이고 남한군과잉우세론이 실재여서 노대통령의 동북아균형자전략과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이 이에 기반하고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동시에 주한미군 동북아균형자론은 상상의 세계에서만 존재하는 가공체에 불과하고 미·일 동북아패권론과 이에 따른 제2의청일전쟁론이 근본 속성임이 밝혀졌습니다.
이 결과 주한미군불가피론의 근간은 무너져 이 이론은 과학적으로 반증되었습니다. 이로써 이론적으로는 주한미군불가피론이 주한미군철군당위론에 의해 대체될 수밖에 없습니다. 과학적 방법론을 기반으로 한 냉전성역 허물기에 의해 쉽게 무너질 수밖에 없는 취약점을 가진 것이 바로 미국이나 주한미군, 북한이나 북한군사력에 관한 냉전성역입니다. 왜냐면 이들 냉전성역은 맹목적 믿음이라는 허구에 바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 사회는 북한과 미국의 인식에서 그들을 객관적 실체로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가공적 상상체로 줄곧 인식해 왔던 것입니다. 곧, 미국과 소련 중심의 외세가 강요한 냉전, 이에 야합한 기성 주류, 또 이를 그대로 수용해 냉전이라는 주술에 홀려버린 일반인 등, 이들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져 한국사회는 미국과 북한에 관한 한 보아도 보지 못하고(視而不見) 먹어도 그 맛을 모르는(食而不知其味) 반이성적 상태에 빠져 허우적거려 왔습니다.
더 나아가 저의 경우와 같이 제대로 보고, 제대로 쓴맛-단맛을 이야기 하면 반미와 미국비판, 친북과 매국의 올가미로 엮어 눈을 멀게 하고 귀를 막고 침묵을 강요해 왔습니다. 때로는 북한의 얼굴을 그리고 싶어 북한 얼굴을 그린 화가에게 왜 주체사상이나 개인독재 같은 발바닥 모양을 얼굴그림 속에 넣는 반북행위를 하지 않았느냐고 욱박지르면서 북에 대한 찬양-고무-동조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이 같은 어불성설로 미국을 비판하거나 반미하면, 또 북한을 매도하지 않으면 곧바로 친북-반미로 매도되고 치부되기도 합니다. 온갖 여론몰이, 색깔몰이, 폭력몰이, 보안법몰이 등으로 말입니다. 여기에는 객관적 자료, 합당한 방법론, 논리적 추론, 반증 절차 등의 과학적 규범에 의해 반론을 관철시키는 학문적이고 이성적인 접근일랑 아예 발붙일 수 없습니다.
이제 21세기 탈냉전과 평화통일 시대를 맞은 시점에서, 북한이나 미국을 보고 지록위마(指鹿爲馬) 할 것이 아니라 사슴을 가리키면 사슴이라고 말할 수 있는, 곧 가공의 상상체로서 북한이나 미국이 아닌 객관적 실체로서 있는 그대로의 북한과 미국을, 보고-말하고-그릴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응당 이런 반이성과 허구를 강요하는 국가보안법이 이 냉전성역허물기라는 진실규명의 마당에 끼어드는 일은 역사 속으로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4. 탈냉전 통일시대의 역사관과 거시적 민족사 행로
1) 발생적 결정론과 몰역사적 결과론의 극복을
2005년 10월 10일 ‘미국의 소리’(Voice of America)와 국가보안법 문제에 관한 인터뷰에서 저의 개인적 위상은 아마 사회주의 통일한국에서 보다 지금 자본주의하 남한에서 더 나았을 것이라고 추론할 수 있다고 실토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이 개인적 이해득실에 따라 해방공간의 우리 민족사가 내재적 역사흐름에 반하는 자본주의로 가야했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고 분명히 밝힌 적이 있습니다.
이처럼 개인의 이해관계, 오늘날의 여론이나 이념이란 기준에서 과거의 역사평가를 복속시키고(몰역사적 결과론) 가치를 개입시키면 객관적 역사평가는 불가능해지고 학문은 학문으로서 자격을 상실하게 된다고 봅니다. 역사는 역사 그 자체여야 합니다.
저는 현대사를 보는 역사관에 관한 한 남과 북이 함께 큰 문제점을 갖고 있다고 곧, 북은 ‘발생적 결정론’에(genesis determinism) 빠져있고 남은 '몰역사적 결과론'에 빠져 있다고 비판해 왔습니다.
북한의 발생적 결정론 역사관은 “북한의 처음이 좋았으니까 지금도 좋고 남한은 옛날이나 처음이 좋지 않았기에 지금도 좋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초기의 친일파 청산 등과 같은 대남 우위성이 지금까지 지속되는 것으로 역사를 평가하는 문제점을 북한의 역사관은 가지고 있습니다.
남한의 몰역사적 결과론은 “지금 현재가 좋고 대북 우위에 있으니까 과거도 좋았고 대북 우위에 있었다” 면서 과거를 미화하고 정당화 하여 역사를 왜곡시키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몰역사적 결과론은 현재의 기준을 역사평가의 잣대로 삼기 때문에 현재를 언제로 삼느냐에 따라 역사평가가 들쑥날쑥 춤을 추게 되는 문제점을 갖고 있습니다. 이 몰역사적 결과론은 오늘날 남한이 거의 모든 면에서 북쪽에 비해 우세하므로 오늘의 남쪽 기준에서 해방공간을 평가해 역시 분단이 사회주의식 통일보다 잘 됐다는 평가를 내리게 됩니다. 그러나 1950년대 중반에서 1970년 초반까지 북한은 남한에 비해 경제역량이 높았고 자주성도 앞섰습니다. 이 때문에 4-19 당시 경제적 요인 때문에도 ‘통일만이 살길이다’라고 외쳤습니다.
몰역사적 결과론에 의하면 1960년 당시는 북한이 남한보다 잘 살고 자주성이 높았기 때문에 해방공간에서 사회주의식 통일을 했어야 한다는 평가가 내려집니다. 이처럼 역사를 남과 북이 각기 몰역사적 결과론과 발생적 결정론에 빠져 제각기 자의적으로 해석하거나 평가해서는 안 됩니다.
남북을 아울러 우리 모두는 우리의 역사 앞에서 겸허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할 때 과거사에 대한 올바르고 정당한 평가가 내려지고. 이를 바탕으로 과거를 반성하고, 이를 거울삼아 미래의 역사를 설계해 나갈 수 있다고 봅니다.
2) 자주-평화-통일-번영의 장기적 민족사와 동북아 상생구조를
현재 한반도는 세 종류의 전쟁위협에 직면해 있다고 봅니다. 미국이 조장한 이른바 ‘북핵위기’나 인권 등에서 비롯된 대북 단기적 전쟁위협과 작전계획 5030과 같은 장기적 저강도전쟁, 미·일의 동북아신냉전패권전략과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서 비롯될 수 있는 ‘제2의청일전쟁’ 위협입니다.
비록 단기적인 전쟁위기가 극복된다하더라도 미국의 동북아신냉전패권전략구도와 주한미군, 또 최근 한미 간에 합의한 망국적인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은 한반도와 동북아를 지속적인 전쟁위기와 제2의 냉전으로 회귀시킬 것으로 보입니다. 만일 대만사태와 결부된 중국과 미국 사이에 무력충돌이 발생하면 바로 주한미군과 그 전략적 유연성 때문에 한반도는 미국의 최전방 전쟁터가 되어 중국 공격의 전초기지가 됩니다. 동시에 이는 중국의 대미공격의 최우선 타격목표가 되어 그야말로 한반도는 1895년의 청일전쟁과 같이 강대국의 전쟁터가 되어 지구상에 종말을 맞을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민족의 생명권과 평화권이 백척간두에 서게 되고, 통일권은 원천적으로 봉쇄되는 장기적 구도에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파국적인 반민족적 행보는 아직은 초기 단계입니다. 이 시점에서 이를 막지 않으면 시기를 놓치게 되어 우리 민족은 또 다시 미국에 의해 ‘제2의 분단’과 ‘제2의 냉전과 열전’을 강요당하고 자주권은 영구적으로 상실될지 모릅니다.
이 땅에 미군이 주둔하여 그 예속 하에 놓인 지가 일본식민지 전 기간의 두 배에 가깝습니다. 또 분열된 후삼국시대의 두 배를 넘습니다. 이렇게 오랜 동안 미국의 예속 하에 있으면서 남한 사회 기성주류는 숭미 자발적 노예주의와 공미 자폐주의에 빠져 미국이야말로 한반도 전쟁위기와 통일가로막기의 주도자란 사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으며 또 이를 알면서도 그들의 기성권력이 와해될 것을 우려해 외면하고 있습니다.
용산기지를 평택기지로 옮기는 계획 속에는 한미 간의 역할 분담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곧 한국군이 한반도 문제를 전담하고, 주한미군은 대 중국 봉쇄·포위·침략 등을 위한 동북아신속기동군이나 전 지구적 신속기동군 역할을 하게 됩니다. 이 역할분담 자체가 더 이상 주한미군이 한반도를 위해 주둔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미국의 21세기 세계제패와 동북아패권적지배를 위해, 곧 미국의 자기 국익 일변도를 위해 이 땅에 주둔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도 이 주한미군에게 대중국 침략기지가 될 평택 땅 8백만 평을 진상하고, 10조 가까이 되는 기지 이전비용까지 부담하면서 미국의 전쟁기지를 자초하는 전략적 유연성을 보장해 주려고 합니다. 이는 장기적으로 제2의 청일전쟁 유발을 자초하는 자살정책으로 귀결될 수도 있는 위험천만한 역사행보입니다.
이제는 한·미동맹관계를 근본적으로 재편하고 주한미군을 철군하는 한미관계의 새판짜기로 탈냉전-평화·통일시대에 걸 맞는 민족사 행보를 개척해야 합니다. 더불어서 우리 스스로가 동북아 균형자와 평화조정·주조자 전략을 구사해 ‘동북아 경제평화협력체’를 형성하고 그 구도 속에서 한반도의 평화, 자주, 번영, 통일을 모색하고, 이와 더불어 동북아의 장기적 상생구조를 창출해야 한다고 봅니다.
저의 냉전성역 허물기는 단순히 성역 허물기에 머무는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장기적 민족사 구도를 나름대로 설계하고 이를 구현하기 위한 밑알 역할을 하고자 합니다. 이러한 민족사적 책무는 저에 관한 사법적 심판이 어떻게 결말이 되든지 상관없이 제 자신이나 이 땅의 평화-통일일꾼들이 흔들림 없이 나아가야 할 올바른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3) 옥동녀 탄생을 위한 마지막 진통으로 마무리를
지난 해 우리는 해방과 분단 60년 환갑의 해를 맞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저 또한 작년에 인생의 환갑을 맞았습니다. 환갑은 지난 일생을 성찰하고 새로운 삶을 모색하는 전환의 출발을 의미합니다. 분단과 분열로 얼룩진 통한의 60주년에 즈음해 이번 필화사건을 마지막 소모적인 진통으로 마무리하고, 이제 민족의 옥동녀 탄생을 위한 산통으로 탈바꿈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 자신이나 재판장님을 비롯한 우리 남북 모두가 잘못된 지난날을 겸허히 반성하고, 시야를 남북 한 쪽에 고착시키는 외눈박이가 아니라 전 민족 차원으로 넓히고, 외세가 강제한 분단과 적대를 직시하고, 19세기 말의 각축전이 재연되고 있는 엄중한 오늘의 동북아정세를 남북이 함께 대처하고, 평화와 통일을 이루고, 인류 보편의 이성이 관철되는 정상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실천의 마당에 함께 하기를 염원하고 촉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