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2008년 04월 14일 02:33:21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mode=view&code=210000&artid=200804140233215
[기후변화 현장을 가다]운하 건설뒤 폭풍해일 ‘人災’ 급증 | |||||
ㆍ제5부-1. 뉴올리언스의 허리케인 악몽 “바람이 세졌다. 뭔가 벌어지고 있다.” 지난 1월18일 미국 루이지애나 주 뉴올리언스.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할퀴고 지나간 지 3년이 돼가지만 주민들은 여전히 악몽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뉴올리언스는 미시시피 강의 민물과 멕시코만의 바닷물이 몸을 섞는 습지대에 건설됐다. ‘물과 바람의 도시’다. 주민들에게 허리케인은 공포의 대상이 아니다. 삶의 일부분이다. 럼주에 오렌지주스 등을 혼합한 이곳 특유의 칵테일을 ‘허리케인’으로 부르기도 한다. 뉴올리언스의 한 해는 축제와 크고 작은 허리케인들이 갈마들면서 저문다. 2월 사육제(mardi gras)로 시작한 축제는 5월 말까지 계속되며, 7월부터 12월까지는 핼러윈과 크리스마스 축제 등으로 한 해를 닫는다. 그중 6~11월이 허리케인 시즌이다. 주민들은 태어나 노인이 될 때까지 평생 여러 개의 허리케인을 기억에 담고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익숙했던 허리케인이 언젠가부터 끝모를 두려움의 원천이 된 것은 비단 카트리나 탓만은 아니다.
# 카트리나 보다 큰 허리케인 빈발 뉴올리언스 토박이 팻 뒤퓌(64·여행가이드)는 “수십 년 동안 크고 작은 허리케인을 경험했지만 앞으로는 카트리나보다 더 큰 허리케인이 자주 찾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2005년 8월29일 오전 10시 카트리나가 덮쳤던 로 나인스워드 지역은 유령마을로 변했다. 정든 집터를 종종 찾아온다는 에드나 스미스 할머니(76)는 “갈수록 바람이 거세진다.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미시시피 강과 석유·가스업계의 로비로 1965년 건설된 미시시피 강 출구운하(MRGO) 사이에 위치한 이곳에는 고등학교 건물의 형태만 남아 있을 뿐 가옥들은 흔적도 없다. 전파 또는 반파된 가옥 200~300채를 철거했기 때문이다. 스미스 할머니의 집터는 집 앞 도로 위에 페인트로 적어놓은 ‘테네시가 2608번지’라는 주소에만 남아 있었다. 보통 사람들에게는 이산화탄소 증가 수치와 복잡한 기상도로 설명되는 지구 온난화의 위협이 막연한 느낌을 주는 게 사실이다. 어퍼 나인스워드에서 도로 표지작업을 하고 있던 제임스 알바레스(38)는 “지구 온난화와 관련성에 대해 이야기들을 하지만 말보다 행동이 필요한 시점인 것 같다”면서 식자층 사이에서 오가는 지구 온난화 논란에 반감을 표시했다. 그러면서 “(지구 온난화에 대한) 앨 고어 전 부통령의 경고가 맞는 것 같지만, 문제는 워싱턴의 정치인들이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라고 뼈 있는 한 마디를 던졌다. 허리케인의 발생 빈도가 잦아지고 강해졌으며, 이에 동반되는 폭풍해일(storm surge)이 높아졌다는 주민들의 전언은 과학적으로 입증된 사실이기도 하다. 지구 온난화로 인한 해수면의 온도 상승 탓이다. 지난해 대서양에서 발생한 15개의 폭풍 가운데 6개가 허리케인 급으로 발전했으며 그중 2개가 강력한 규모였다. 콜로라도 주립대 기상관측팀에 따르면 올해는 17개의 돌풍 가운데 9개가 허리케인으로 발전하고, 그중 4개가 강력한 규모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불행은 혼자 오지 않았다. 뉴올리언스 주민들이 카트리나를 지구 온난화와 직접 연결시키지 못하는 이유는 상당부분 인간의 탐욕 탓에 수마(水魔)를 초대한 인재(人災)였기 때문이다. 루이지애나 주립대학 하산 마시리키 교수(해안복원공학)는 인공운하(MRGO)와 역시 석유업계의 강력한 요청으로 1949년 건설된 걸프 해안선 수로(GIWW)를 원흉으로 지목했다. 뉴올리언스 동쪽 습지를 가로지르는 122㎞의 MRGO와 플로리다주 캐러벨에서 뉴올리언스를 지나 텍사스주 브라운스빌까지 이어지는 전장 1700㎞의 수로가 해안가 습지대를 갉아먹었다는 것이다.
# 해일 완충지대 습지 급속 사라져 뉴올리언스에서 내륙 쪽으로 200㎞ 정도 떨어진 주도 배턴루지의 연구실에서 만난 그는 “두 개의 물길로 바닷물이 유입되면서 폭풍해일의 완충역할을 하던 해안가 습지대가 급속도로 소실됐다”면서 “특히 MRGO는 유속을 3배 이상 증가시켜 폭풍해일의 고속도로 역할을 했다”고 지적했다. 카트리나 발생 몇 달 전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정확하게 피해를 경고했던 마시리키 교수는 “바닷물로 인한 침식으로 당초 198였던 운하의 폭이 최대 1219로 넓어져 원상 회복이 불가능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배의 운항이 늦어질 것을 우려한 선주들의 의견을 감안해 수문을 적게 만들어 들어온 물이 빠져나갈 길도 충분치 않았다. 같은 대학 허리케인센터 연구조교로 있는 양영석씨는 “MRGO로 인한 습지 훼손이 없었다면 최고 4.7에 달했던 해일을 1.3 정도 낮출 수 있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인류가 화석연료를 지펴 발생한 온실가스가 해수면의 온도를 높여 허리케인을 키웠다면, ‘비즈니스 마인드’로 건설된 인공운하는 폭풍해일을 높인 것이다. 양씨는 카트리나의 경험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한반도 대운하 건설을 막아야 한다는 주장을 블로그(blog.daum.net/serahabba) 등을 통해 설파하고 있다. 뉴올리언스는 힘겹게 되살아나는 노력을 하고 있었다. 카트리나 피해지역 답사 버스의 가이드를 하고 있는 뒤피는 “자연의 이치대로 재건해야 한다는 인식이 높아지며 환경친화적인 그린하우스를 짓는 프로그램이 시작됐다”면서 “기후변화에 대한 주민들의 경각심도 다소 높아졌다”고 말했다. 주 의회는 “MRGO는 없어져야 한다(MRGO must go)”는 여론에 밀려 인공운하를 내년 중 폐쇄키로 결정했다. 하지만 한번 인간의 곁을 떠난 자연은 쉽게 돌아오지 않는다. 더불어 인간의 삶 역시 쉽게 돌아오지 않는다. # 주민들 요구로 MRGO 폐쇄키로 미시시피 강이 뉴올리언스의 해안선을 만드는 데 필요했던 세월은 6000년이었지만 그 중 3분의 1을 잃어버리는 데는 최근 75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카트리나 난민’으로 전락해 고향을 떠난 주민 80여만명의 30%가량은 아직도 타향을 배회하고 있다. 돌아온 사람들도 마음이 편치는 않다. 지역신문 더타임스 피커윤의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27%는 “아직도 물에 잠겨 있는 느낌”이라고 답했다. 카트리나가 인류에 던진 경고다. 〈 뉴올리언스·배턴루지 | 글·사진 김진호특파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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