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삽질'은 시작됐다. 국민 80%의 반대여론에 밀려 사실상 포기했던 한반도대운하 사업. 이명박 대통령의 제 1공약이었으나, 고치고 수정하고…. 사실상 누더기가 된 채 기억의 저편으로 밀려났던 대운하 사업이 '4대강 정비'라는 허울을 뒤집어쓴 채 다시 거리에서 활보하고 있다.
정부가 추진하는 4대강 정비사업은 한반도대운하일까? 이는 철지난 논쟁이다. 지금에 와서 4대강 정비사업이 한반도대운하가 아니라고 안하무인격으로 우기는 것 또한 뻔뻔스러운 일이다. 청와대와 정부의 다분히 의도된 '기억상실증'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멀리도 아니고 6개월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된다.
김이태 박사 "4대강 정비사업은 한반도대운하다"
지난 5월 국토해양부의 연구과제를 수행하고 있던 한국건설기술연구원 김이태 박사(43). 그는 "4대강 정비계획의 실체는 한반도대운하다"라고 양심선언해 파문을 일으켰다. 그는 당시 포털사이트 다음 아고라에 쓴 글을 통해 "머리를 쥐어짜도 반대논리를 뒤집을 대안이 없다"면서 "도대체 이명박 정부는 영혼 없는 과학자가 되라고 몰아치는 것 같다"는 자괴감을 피력하기도 했다.
그 뒤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이명박 대통령은 특별기자회견을 통해 "대선공약이었던 대운하 사업도 국민이 반대한다면 추진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국토해양부도 이어 운하건설을 위한 연구용역을 중단하고 운하준비사업단도 해체키로 결정했다. 김이태 박사가 수행했던 '한반도 물길잇기 및 4대강 정비계획'을 접은 것이다.
그런데도 4대강 정비사업이 한반도대운하가 아니라고 주장한다면 최근 <오마이뉴스>가 단독 보도했던 국토부의 '4대강 정비계획' 문건 속에서 숨은그림 찾기를 할 수밖에 없다. 우선 여기 세 장의 단면도를 유심히 보아주기 바란다. 한 장은 환경부가 발간한 2008년 환경백서에 나와 있는 생태하천 제방의 모습이고, 나머지 두 장은 이번에 공개된 국토부의 문건 속에 들어 있는 하천 제방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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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경백서에 제시된 복원된 생태하전. |
ⓒ 유성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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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토부의 문건에 제시된 '하도정비를 통해 홍수소통 단면 확대 및 주수로 정비' 계획 |
ⓒ 유성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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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토부의 문건에 제시된 슈퍼제방 축조 계획 |
ⓒ 유성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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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 하천의 제방과 운하용 제방은 그 형태부터 다르다
국토부는 4대강 정비사업을 통해 생태하천을 만들겠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환경부가 제시하고 있는 제방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형태다. 슈퍼제방을 쌓아 강과 뭍의 생태계를 단절시키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두 번째 단면도 하단에는 수심 확보를 위한 준설 작업도 표시되어 있다.
무슨 이유 때문에? 배가 다닐 수 있도록 물을 채우기 위해서다. 제방을 높이고 강바닥을 준설하면 언제든 배가 다닐 수 있는 수심을 확보할 수 있다. 물을 가둘 수 있는 댐과 배가 다닐 수 있는 갑문만 만들면 된다. 국토부가 하천정비 사업에서 추진하고 있는 자연형 보를 설계 변경하는 일만 남은 셈이다.
이번에 공개된 문건에서 또 주목할 만한 점은 천변저류소 설치와 방식이다. 국토부는 하천변의 폐천부지 및 농경지를 활용한 천변저류지를 낙동강 지역에 17개소 설치하겠다는 계획이다. 4500억 원의 민자사업으로 이곳을 생태공간으로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우연의 일치일까? 낙동강 유역 천변저류소의 개수가 당초 한반도대운하 조감도에서 밝힌 터미널의 숫자와 비슷하다.
게다가 민자사업이라는 게 무엇인가? 민간기업들이 투자한 만큼 이윤을 뽑아낼 수 있을 때 뛰어들 수 있는 사업이다. 홍수 때 물을 채워놓는 역할을 하고 평상시에는 생물의 서식 공간이어야 할 천변 저류소에서 이윤을 뽑아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결국 민자사업자는 천변저류소의 일부를 택지로 개발해 수익사업을 벌일 수밖에 없다. 개발권을 미끼로 민간업자들을 참여시키고, 이후 운하가 완공된다면 터미널 등을 설치토록 해 이윤을 보존해주려는 의도가 드러난다.
"한강은 운하다" = "한강종합개발 수준으로 정비하겠다"
이밖에도 4대강 정비사업은 많은 부분 운하를 빼닮았다. 가령 향후 3년간 총 사업비 14조 원을 쓰겠다고 한다. 이는 이명박 대통령이 주장해왔던 한반도대운하의 공기와 사업비가 거의 일치한다.
또 국토부 문건에는 4대강 정비사업의 사업 효과로 ▲ 홍수 방어능력의 획기적 향상 ▲ 막대한 고용 유발 효과 ▲ 하천 CO2 저감 등 녹색성장 중심축으로 활용 등을 꼽고 있다. 이 역시 그간의 논쟁 과정에서 무익한 것으로 판명됐지만, 한반도대운하 찬성론자들이 운하사업 효과로 선전해온 것들이다.
천변에 자전거도로를 건설하겠다는 것도 한반도대운하의 장밋빛 조감도에서 따온 것으로 볼 수 있고, 마시는 물의 대안으로 강변여과수를 개발하겠다는 방안도 지난 1년반 동안 이명박 대통령이 운하건설의 당위성을 말하면서 끊임없이 반복해온 주장이다. 사실상 강변여과수는 한국적 토양에서는 한계가 있다는 사실이 여러 차례 판명됐음에도 말이다.
또 문건에는 "도심 구간은 한강종합개발 수준으로 정비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그간 운하 찬성론자들은 "한강은 운하다"라고 말해온 것을 감안하면 사실상 운하를 만들겠다고 실토한 것과 다를 바 없다.
4대강 정비사업이 한반도대운하의 기초공사라는 것은 이명박 대통령뿐만 아니라 정부 관계자들도 부인하지 않고 있다.
"4대강 정비사업이면 어떻고 운하면 어떠냐."(이명박 대통령 청와대 확대비서관 회의 발언. 11월 28일)
"4대강 수질개선사업을 다해놓고 대다수 사람들이 (운하를) 연결하자고 하면 하지 말자고 할 수는 없다." (박병원 청와대 경제수석 관훈토론회 발언. 12월 3일)
"탄소로만 따진다면 운하를 검토할 수 있다고 본다." (이만의 환경부장관. 12월 4일)
"4대강 정비사업은 일자리 창출을 위한 한국판 뉴딜정책." (박재완 청와대 국정기획 수석. 12월 10일)
"한반도대운하는 이명박 대통령의 제1공약이기 때문에 포기할 수 없을 것이다. 지금은 촛불 때문에 반대 여론이 많지만, 여론은 또 바뀐다. 포기라기보다는 장기기획으로 가고 있다고 봐도 된다." (이명박 대통령부국환경포럼 대표 박승환 전 한나라당 의원. 12월 10일 필자와 한 인터뷰에서)
세금 한 푼 들이지 않고 운하 건설하겠다더니...
한반도대운하사업이 4대강 정비사업으로 간판을 바꿔달면서 비롯된 가장 큰 문제는 사업비 조달 주체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그간 "세금 한 푼 들이지 않고 운하를 건설하겠다"고 호언장담해왔다. 민자유치 방식으로 운하를 건설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상황은 역전됐다.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여건에서 14조 원이라는 막대한 혈세를 투입해 대운하 기반공사를 벌이겠다는 것이다. 물론 민자로 운하를 건설하는 것에 대해 그간 난색을 표명해왔던 건설업체들에게는 4대강 하천부지야말로 건설경기를 되살릴 '기회의 땅'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게다가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는 15일 당 최고위원회에서 "(4대강 정비사업을) 전광석화와 같이 착수하고 질풍노도처럼 몰아붙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 70%가 강물을 취수원 삼아 식수를 조달하는 상황에서 전 구간에 걸쳐 동시에 포클레인이 투입된다면? 서민들이 자신의 주머니 돈을 털어가면서 생명수를 위협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도래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덧붙이자면, 정부가 내세우는 19만명의 일자리 창출 효과. 경제학 용어로는 '고용유발 계수'에 따른 분석이다. 그러니까 한국은행에서 제시한 '투입산출 모형'에 14조 원이라는 숫자를 적용하면 철도공사를 하든, 항만을 건설하든 토목공사의 경우 공사기간인 3년 동안 매년 약 6만명씩의 일자리가 나온다는 얘기다. 사실 고용유발 계수는 복지와 교육 등 서비스산업이 더 크다.
여기서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이 있다. 만약 당신에게 14조 원이라는 돈이 있다면, 어디에 투자할 것인가. 선진국 박물관의 전시용으로 폐기 처분된 '고물 운하'에 쓸 것인가, 아니면 고효율 저비용의 미래산업에 투자할 것인가.
1970년대식 토목 경제 부활을 꿈꾸는 이명박 정부의 한계는 바로 이 지점이다. 국민의 쌈짓돈을 모아 흘러간 과거에 투자하겠다는 것. 토목건설업자의 배를 불리는 데 쏟아붓겠다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죽음의 정치, 부활하다
이명박 대통령은 15일 국가균형발정위원회에서 "(4대강 정비사업이) 바로 착수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독려했다고 한다. 이름을 바꾸더라도 이미 폐기 처분됐던 자신의 제 1공약인 경부운하를 살리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이날 국토부는 '4대강 살리기 프로젝트'를 본격 추진하겠다면서 겨우 5쪽짜리 브리핑 자료를 기자들에게 돌렸다. 그나마 두 장은 한반도대운하에 대한 화려한 조감도에서 본 듯한 '4대강 살리기 프로젝트 개념도'다. SOC 사업으로는 건국 이래 최대 규모인 사업에 대한 설명자료치고는 너무 부실한 것이 아닌가. '4대강 정비사업=한반도대운하'라는 사실을 숨기려는 의도다.
이제 강바닥을 긁어 하천 생태계를 망치고, 강물을 가둬 국민의 생명수를 위협하며, 막대한 혈세를 개발업자에게 바치는 '광란의 질주'는 시작됐다. 촛불에 밀려 잠시 고개를 숙였던 대통령의 오만도 되살아났다. 모든 국민이 힘을 합쳐 경제난국을 극복해야 할 엄중한 시기에 국민들의 갈등을 부추기는 죽음의 정치가 화려하게 부활했다.
덧붙이는 글 | 칼럼을 쓰는 데 도움을 준 분들 : 박진섭 생태지평연구소 부소장, 박창근 관동대 토목학과 교수, 홍종호 한양대 금융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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