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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이야기/생태환경

[일본의 그린투어리즘]①농촌관광의 교과서 유후인(경남도민일보070531)

by 마리산인1324 2009. 5. 11.

 

<경남도민일보>

http://www.idomin.com/news/articleView.html?idxno=220360

 

 

깡촌에서 연간 370만명 찾는 관광지로
[일본의 그린투어리즘]①농촌관광의 교과서 유후인(由布院)
2007년 05월 31일 (목) 김종현 기자 kimjh@idomin.com

일본의 그린투어리즘의 선두주자로 손꼽히는 오이타현 유후인(由布院)시에 내리는 순간 농촌마을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사람이 북적거렸다. 일본의 농촌 팜스테이를 취재할 것이란 기대를 갖고 버스에서 내리면서 당연히 외진 농촌이나 산촌 쯤으로 생각했는데 기대와는 너무 다른 분위기에 잘못 온 것이 아닌가라는 의심이 들 정도였다. 우리나라의 농촌관광(일명 팜스테이)이 마을 단위로 이뤄지고 있는 반면 일본은 우리나라의 읍면 정도의 단위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라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됐다.

<글 싣는 순서>
1.농촌관광의 교과서 유후인
2.다랑논을 상품화한 우키하
3.회원제 민박 성공한 아지무
4.유기농업의 아야초와 규슈투어리즘 대학
5.일본과 경남의 비교

유후인에서 처음 접한 곳이 유후인 역이다. 취재단의 안내를 맡은 에토(유후인 시청 상공과장보좌역)씨는 유후인 역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유후인 역사는 지난 1991년 세계적인 건축가이자 오이타현 출신의 이소자키 아라타씨가 설계한 것으로 시와 철도회에서 1억엔씩 투입했다. 역사의 양식은 중세시대의 유럽 예배당을 형상화했으며 건물 전체를 검은색으로 채색함으로써 세련되고 깔끔한 맛을 느끼도록 했다. 역사내에는 족욕까지 할 수 있는 시설이 있고, 미술관까지 있어 세계적인 미술가들의 작품 전시회와 주민들의 전시회가 열린다고 자랑했다.

   
 
  ▲유후인 역사에 있는 온천수 족욕시설. 부부가 기차를 기다리면서 족욕을 하고 있다.  
 
이어 미술관 '아르테지오(Artegio)'에 도착했다. 아르테지오가 위치한 유후인 산의 언덕배기에는 30개나 되는 다양한 종류의 미술관이 모여 있어 예술촌을 연상케했다. 이 곳에 있는 미술관은 전부 개인이 만든 것이라고 에토씨가 전했다. 또 아르테지오 미술관에서는 30년이 넘도록 음악제가 열리고 있는데 이제는 세계적인 수준에 도달했다고 했다. 작은 마을에 미술관이 30개나 되고 알아주는 음악제가 열린다니 믿기지 않았다.

   
 
  옛날 호수의 물고기가 석양에 금빛으로 보인다는 데서 유래된 호수인 긴린코. 보잘것없는 작은 호수에 그럴 듯한 이름을 붙이고 전설로 만든 유후인 사람들의 지혜가 돋보였다.  
 
마을로 내려와 민예촌과 긴린코(金鱗湖·옛날 호수의 물고기가 석양에 금빛으로 보인다는데서 유래된 호수)를 둘러봤다. 유후인에 온 사람들은 반드시 들른다는 긴린코는 온천수와 산에서 내려오는 물이 모여 만든 작은 호수에 불과했다. 온천수로 인해 새벽 안개가 장관이라고 하지만 보잘 것 없는 호수에 그럴 듯한 이름을 붙이고 전설로 만든 유후인 사람들의 지혜가 돋보였다.

점심식사를 한 고도원은 미술관을 겸한 식당으로 한국과 중국 도자기 수천 점을 소장하고 있었다. 긴린코 근처에 기념품 가게와 식당, 여관을 배치해 자연스럽게 농산물 등을 구입해 갈 수 있도록 유도했다.

   
 
  ▲여관 '카시장'은 100년 이상된 옛집으로 일본 민박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고옥의 멋을 그대로 간직하고 노천탕까지 갖춰 꽤 비싼 가격에도 손님들로 붐볐다.  
 
일행이 하룻밤을 묵은 여관 '카시장'은 100년 이상된 고옥으로 일본 민박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카시'라는 장군의 별장이었는데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집이다. 민박이라고 하지만 노천탕이 있어 웬만한 호텔보다 비싼 곳이라고 가이드가 덧붙였다. 지금은 카시의 손녀가 건물을 약간 개조해 민박집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전통민박을 배우기 위해 연수생이 있을 정도로 유명하다.

인근의 플라워하우스라는 민박집에도 들렀다. 온천 열을 이용해 꽃을 키우는 안도 마사코(여·62)씨의 민박집은 꽃과 온천이 어우러진 곳으로 꽤 유명세를 타고 있다. 마사코씨는 손님들이 무조건 푹 쉴 수 있도록 배려했다. 자기의 농사일에 방해가 된다면서 저녁식사는 제공하지 않는다. 집안에 작은 온천이 있고 장애인용 리프트까지 설치해 누구라도 아주 편안하게 쉴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온천에 몸을 담그거나 온실을 돌아보고 방에서 잠을 자는 등 그냥 푹 쉬려는 사람들이 주를 이루며 혹 체험을 하고 싶다면 체험도 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고 있다고 그녀가 밝혔다.

에토씨는 "일행이 견학한 곳은 몇 곳에 불과하지만 유후인 주변에는 많은 온천과 미술관, 민박집이 있다"고 전했다. 에토씨의 말처럼 유후인은 일본에서 두번째로 많은 온천수가 나오는 곳이지만 몇 십 년 전만해도 벳푸에 밀려 낙후된 농촌에 불과했다.

   
 
  ▲유후인의 중심거리. 농촌지역인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낙후를 면치 못하던 유후인이 도-농 교류의 모범이 된 것은 유후인이 가지고 있는 온천과 잘 보존된 자연, 농촌의 특성 보전, 적절한 문화공간, 다양한 이벤트를 만들어 유후인만의 차별화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벳푸에 온 관광객들이 40분 거리인 유후인에 들러서 가벼운 산책을 하고 이벤트도 즐길 수 있는 농촌공간으로 지역을 특화하면서 연간 370만명이나 되는 관광객을 불러들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유후인이 최고의 그린투어리즘의 현장이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50년간 주민들이 함께 힘을 쏟아 마을 만들기에 나섰고 지도자의 결단과 지역의 특색을 살리는 철학이 주효했다.

유후인시는 1960년대까지 농업이 주요산업이었지만 분지형의 지역적 특성과 온천수 등 조건이 좋지 않아 수확량이 다른 지역의 절반에 불과했다. 이 때문에 1950년대에 댐 건설 계획이 추진됐다. 이후 젊은 댐 건설 반대운동가 이와우 히데카시(당시 36세)가 유후인 정청장(시장)이 되면서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그는 '산업, 온천, 자연을 다이내믹하게 활용하자'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었고, 그 후 3명의 정청장이 같은 정책을 폈다. 댐 건설을 반대하는 운동이 전개되면서 자연환경과 관광을 연계하는 발전 방안이 마련됐다. 이런 유후인 만들기 철학은 1973년 유후다케 주변 아프리카 사파리 조성 계획에 대한 주민 반대, 1970년 이노세 골프장 건설 반대 운동 등으로 이어졌다.

유후인의 지도자들은 독일을 견학하고 본격적인 유후인 만들기에 들어갔다. 유후인 만들기는 크게 다섯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자연이 주는 편안함과 천천히 즐기면서 편하게 쉴 수 있는 관광지에 주력했다. 자연의 미를 충분히 살리면서도 소박한 동네 만들기에 주력하고 옛 것을 버리지 않고 살리고 충분히 쉬면서 즐기는 관광에 초점을 두었다.

둘째 안전하고 안심할 수 있는 관광지에도 주력했다. 1970년 야쿠자 실력자 출소 기념 파티를 유후인에서 개최하려고 하자 유후인 주민들이 이에 항의하는 뜻으로 기념파티가 있는 날 모든 상점이 문을 닫는 철시 운동을 전개했다. 이 운동이 전국 뉴스로 방영되면서 젊은 여자가 혼자 돌아다니고, 머물러도 안전한 곳으로 부각됐다.

셋째 경관을 만드는데 가슴 속에 깊이 남고, 철학이 있는 경관을 만드는 운동을 전개했다. 유후인은 환경친화적인 소도시로 느낄 수 있도록 골목길을 살리고 담장은 가급적 살아있는 나무 울타리나 대나무로 처리했다. 집마다 마을마다 독특한 담과 나무, 꽃을 가꾸고 사람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넷째 관광수입을 지역 주민에게 환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후인은 대부분의 여관이 소규모이다. 규모가 작기 때문에 지역민 누구나 여관을 열 수 있는 기회가 있고, 이것이 소득으로 이어지고 있다.

다섯째 유후인만의 관점에서 옛 것을 되살리는 것에 총력을 기울이고 이를 유후인 만들기의 철학으로 삼았다. 일본 최고의 온천도시인 벳푸와 같은 관광아이템으로서는 성공할 수 없다는 인식을 가지고 유후인만의 독특함, 유후인의 옛 것과 소박한 것에 대한 이미지 홍보에 집중했다. 윤택한 마을 만들기 조례도 만들어 건물의 크기와 높이도 제한했다.

특히 1975년 오이타현 중부지방에 지진이 발생했을때 큰 호텔이 무너지면서 유후인은 이제 끝났다는 인식이 팽배했다. 그러나 위기를 기회로 삼고 유후인만이 할 수 있는 음악제, 영화제, 문학제, 쇠고기 먹고 소리 지르기 대회 등 끊임없이 이벤트와 행사를 창조해 냈다. 큰 호텔의 빈자리를 작은 여관으로 대신했다.

유후인도 일본의 장기침체로 내수 관광객들이 줄어들고 있지만 유후인 사람들은 큰 걱정을 하지 않는다. 앞으로 관광 형태의 변화에 맞춰 준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관광형태가 버스 관광에서 승용차 시대로 변하고 맞춤형 관광으로 변화될 것을 염두에 두고 시니세(아주 오래된 백화점, 회사, 음식점, 집)처럼 지역민이 공동 협력해 유후인을 지켜가고 있다.

더욱이 유후인은 다른 지역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공동체 문화를 가지고 있다. 대개 호텔이나 여관은 독창적인 음식을 외부에 알려주지 않지만 유후인은 유명한 요리사가 주변 작은 여관의 요리사를 불러서 가르치고 있다. 배운 사람들이 '감사합니다'라고 말할 때, 요리사가 '저야 말로 전수할 수 있어서 기쁩니다'라고 말한다. 이런 정신으로 난제를 극복하고 있었다.

※이 기획취재는 경남도민일보가 지역신문발전지원특별법에 따른 '우선지원대상'으로 선정됨으로써 문화관광부 지역신문발전위원회(위원장 김영호)의 기금 지원을 받아 공동취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