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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선녀 이야기/마리선녀 철학

실천적 지식인에게 주는 마르크스의 교훈 (충북대 안상헌)

by 마리산인1324 2009. 6. 20.

 

<안상헌교수님 홈피에서 퍼왔습니다>

http://web.chungbuk.ac.kr/~ahnsah/tnboard/main.cgi?board=essay_board

 

이 글은 소련이 붕괴되고 동구권이 무너지던 90년대 초반 상황에서 '마르크스가 우리에게 남긴 교훈'에 대해 서울대신문의 청탁을 받아 쓴 글인 듯 한데, 이 글에는 마르크스를 해석하는 저의 관점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은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으나, 이 글에는 90년대 이후의 변화를 반영하고 있지는 못합니다. 관심이 있으신 분은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안상헌 -

 

 

서울대 인문대 원고(1992. 10. 11)

 

실천적 지식인에게 주는 마르크스의 교훈

 

안 상 헌 (충북대 교수, 철학)

 

신문지상에서 보듯이, 우리 사회의 실천적 지식인들 사이에서 고조되었던 마르크스주의적 관심이 현존 사회주의 국가의 붕괴 이후 상당히 퇴조한 것으로 보이며, 그 한 예로 마르크스주의와 관련된 철학서적이나 사회과학서적을 취급하던 출판사와 서점들이 심각한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한 때는 인류사회를 구원할 수 있는 유일사상으로까지 여겨졌던 마르크스주의가 왜 갑자기 회의와 청산 또는 폐기의 대상이 되는 사태에 이르게 되었는가?

 

일반적으로 제시되는 이유들로는, 현존 사회주의 국가의 붕괴를 통해 마르크스주의 이론의 허구성이 역사적으로 검증되었다거나, 자본주의 체제의 역사적 전개과정에서 계급모순이 첨예화되기는커녕 오히려 상당한 정도 완화되어 마르크스주의가 주장하는 계급혁명의 현실적 토대가 사라졌다거나, 또는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은 심화되었지만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노동자계급의 일상적 삶과 의식이 심각하게 왜곡되어 있어 계급혁명의 현실적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주장들이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현실적 토양에서 제기되고 논의되어 온 마르크스주의적 이론과 실천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는, 일반론적 이유들보다는 그 전반적 퇴조현상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이해가 요구된다. 왜냐하면 우리 사회에서의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관심의 급속한 고조와 퇴조는 우연한 현상이 아니라, 그 수용과정의 역사적 맥락에서만 이해될 수 있는 중대한 하나의 역사적 현상이기 때문이다.

 

우리 역사에서의 마르크스주의의 수용은 일제 하 민족해방운동과 해방공간에서의 좌우합작 및 대립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으나, 적어도 남한에서는 철저한 반공정책에 의해 종말을 고했다고 할 수 있다. 오랫동안 단절되어 있었던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새로운 관심은 80년대에 들면서 다시 고조되기 시작하였다가 90년대에 들면서 퇴조현상을 보이고 있다. 따라서 요즈음 거론되고 있는 마르크스주의에 관련된 문제들에 대한 해명은 이 시기의 현실에 대한 분석에서 출발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돌이켜 볼 때,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새로운 관심의 태동은 우리 사회의 정치적, 경제적 현실의 제모순에 대한 자각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60년대 이후의 독재형 경제개발정책은 급속한 사회경제적 변화를 가져왔다. 농촌의 이농현상이 두드러지고 도시빈민이 급속히 양산되었으며, 저임금정책 하에서 산업노동자들의 전반적인 삶은 매우 열악한 상태로 방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재건합시다’, ‘올해는 일하는 해’라는 구호 아래 강행되었던 경제개발정책이 68년 무장간첩단의 청와대습격사건 이후 예비군 창설과 함께 ‘싸우면서 일하자’는 구호로 대체되면서, 모든 형태의 사회운동을 이적행위로 규정하는 ‘유신’정권이 등장하였고 이는 80년대의 5공과 6공으로 이어져 왔다.

 

이러한 역사적 현실은 실천적 지식인들의 관심방향과 수용태도에 그대로 반영되어 나타났다. 마르크스-레닌주의와 스탈린주의에서 출발하여 점차 서구 자본주의적 현실에 상응하는 서구식 마르크스주의로 진보적 사상이 진행된 서구 사회와는 달리, 우리 사회에서 마르크스주의 수용은 서구 자본주의 현실에서 자생한 네오-마르크스주의와 남미현실에서 자생한 종속이론의 수용에서 출발하여 80년대 후반 레드-콤플렉스가 이완되면서 정통적 마르크스주의로 급속하게 관심방향이 변화되어 왔다. 이러한 수용과정의 특징을 요약하면, 첫째는 우리 사회의 산업화과정에서 드러나기 시작한 현실적 모순의 첨예화과정에서 진보적 사상에 대한 요구와 관심이 급격하게 높아졌고, 둘째는 철저한 반공정책과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말미암아 진보적 사상이 점차 우편향에서 좌편향으로 이동하였으며, 셋째는 진보적 사상의 수용이 학문적 관심으로부터 점차 실천적 관심으로 전이되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역사적 과정을 거치면서 실천운동은 이른바 사상투쟁, 노선투쟁이라는 이름으로 과학적 운동이론을 표방하면서 우리 현실에 대한 이론적 분석틀을 정립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처럼 우리 사회에서는 이제 막 진보적 이론과 실천의 결합이 가시화되기 시작한 같은 시점에, 소련을 비롯한 동구권에서 개혁과 개방의 바람이 일기 시작하여 마침내 현존사회주의 국가의 붕괴라는 뜻밖의 사태가 나타나자, 서구의 진보적 지식인들 사이에서도 이론적 혼란과 수정 또는 청산작업이 노정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세계사적 변화를 목도한 우리 사회에서도 일반대중의 의식변화는 물론이고 실천적 지식인들의 사상과 태도에도 엄청난 파문을 몰고 왔다.

 

이러한 역사과정에 대한 이해를 통해 우리 사회의 진보적 사상의 수용과정에서의 제기되는 문제점을 어느 정도 가늠해 볼 수 있다. 우선 지적되어야 할 것은 우리 사회의 철저한 반공주의로 말미암아 진보적 사상이 우회적으로 수용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충분한 이론적 검토와 실천적 검증의 기회가 없었던 가운데 현존 사회주의 국가의 붕괴라는 세계사적 경험을 했다는 점이다. 그리하여 우리 사회의 진보적 이론과 실천은 우에서 좌로 스펙트럼을 확대해 가는 과정에 있었고 따라서 확대된 스펙트럼의 전 영역에 대한 성찰의 기회를 충분히 가지지 못했다. 이로 말미암아 학문적 관념성과 미숙성이 채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소련의 붕괴와 함께 청산주의와 폐기론이 등장하면서 이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사실상 중단되었다고 할 수 있다.

 

둘째로는 이 결과 마르크스주의의 창시자라 할 수 있는 마르크스 사상 자체에 대한 진지한 연구와 검토조차 제대로 수행되지 못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마르크스 사상에 대한 연구가 금기시 되어있는 가운데 먼저 체계화된 정통마르크스주의 이론이 소개되기 시작했으며, 따라서 마르크스 사상은 주로 변증법적 유물론, 역사적 유물론, 과학적 사회주의 및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정치경제학과 같은 체계화된 이론을 통해 우회적으로 이해되었다. 마르크스 사상에 대한 이러한 접근은 무엇보다도 마르크스 자신의 사상적, 실천적 입지점을 간과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마르크스는 자신의 사상체계를 정립하는 이론적 작업보다는, 구체적 현실에서 제기되는 현실적 문제들을 실천적으로 지양해 나간다는 원칙에 매우 충실했던 인물이었다. 청년시절부터 마르크스의 실천적 문제의식은 당시 대중들의 궁핍한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대중들의 삶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 원인을 정확히 파악하는 중요한 과제로 대두되었다. 왜냐하면 그 원인을 정확히 파악하지 않고는 어떠한 구체적인 해결방도도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다른 실천적 지식인들도 동일한 문제의식을 지니고 있었으나, 그들은 헤겔의 철학에 의존하여 당시의 국가이념이었던 종교적 이념이 그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무신론적 종교비판을 통해 특권층의 권력기반을 개혁하고자 했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현실문제의 본질적 원인은 종교적 이념에 있는 것이 아니라 특권층의 물질적 이해관계에 있기 때문에 종교비판을 통한 현실개혁론은 허구적인 관념이라고 비판했다. 왜냐하면 그는 당시의 법과 제도의 실제적 운용에 대한 구체적인 비판적 분석을 통해 특권층의 이해관계가 법과 제도를 좌지우지한다는 사실을 간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시기에는 독일의 실천적 지식인들 사이에서도 프랑스에서 직수입된 공산주의 사상이 유포되기 시작했으며 이들은 사유재산제도가 모든 사회악의 근원이라는 견해를 같이 했다. 그러나 이들은 사유재산을 ‘절도’로 규정하여 이에 대한 도덕적 비판을 통해 이를 제거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실천적 태도에 대해서도 마르크스는 사적소유에 대한 비판적 태도에는 대체로 수긍하면서도 사유재산에 대한 도덕적 비판을 통해 현실변혁을 꾀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왜냐하면 이 또한 그 자체가 관념에 불과하기 때문에 어떠한 실질적 변화도 가져올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에 있어 중요한 것은 비판을 위한 비판이 아니라 언제나 문제의 실질적인 해결이었으며, 이를 위해서는 물리적 실천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그는 특권계급의 물질적 이해관계를 반영하고 있는 시민사회에 대한 정치경제학적 분석을 통해 계급혁명의 역사적 필연성을 구명해 내는 작업을 시도하게 된다. 바로 이러한 것들이 그의 유물론적 현실인식의 핵심적인 관점들이다.

 

이러한 관점이 제대로 이해된다면, 시민사회의 물질적 토대에 대한 분석 그 자체가 마르크스의 본래적 관심이 아니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즉 마르크스에 있어 본래적 관심은 언제나 구체적인 현실에서 살아가는 대중들의 삶의 문제를 실천적으로 해결하는 것이었다. 삶의 현실의 모순을 정확히 파악하는 일은 이러한 실천적 관점 하에서만 중요하게 생각되었던 것이다. 문제의 본질을 정확히 파악한다는 것은 주관적 선의지나 선입견에 의존하지 않고 사태의 본질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기만 한다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당시 실천적 지식인들의 주관적 관념론이 혼란을 야기하였기 때문에, 마르크스는 이들의 관념적 허구성을 밝히는데 주력했으며, 그의 사상의 발전은 주로 이에 대한 비판적 저술을 통해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역사적 유물론이란 바로 이러한 비판적 노력의 흔적들을 나중에 체계화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점에 비추어 볼 때, 우리 사회의 실천적 지식인들의 정신적 방황과 혼란의 원인은 구체적 현실에서 제기되는 민중들의 삶의 문제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수입된 이론과 사상적 정향 또는 근본주의적 원리로부터 출발하는데서 기인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마르크스는 어떠한 일종의 원리나 신념으로부터 출발하여 현실문제에 접근하는 것을 매우 혐오했으며, 언제나 ‘현실적 전제’를 특별히 강조해 왔다. 구체적인 현실이 존재하고 그 안에서 제기되는 문제들이 있는 한 실천적 과제는 항시 존재하기 마련이다. 결론적으로 말해, 실천적 지식인의 입지점은 ‘현실적 전제’인 구체적인 현실에서 제기되는 민중들의 구체적인 삶의 문제에 있는 것이지, 일정한 관점에서 제기되는 원리 그 자체에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민중들의 삶의 문제에 대한 정확한 해명이 요구되거나 아니면 대안적 비판이 요구되는 때 비로소 원리와 원칙의 문제가 제기되고 또한 그 안에서 형성되는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하면 현실 안에서 이론이 형성되는 것이지 이론 안에서 현실이 구성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우리의 현실에서 매일같이 직면하는 삶의 문제들을 떠나서는 어떠한 이론도 공허한 것일 수밖에 없다. 자신이 발을 붙이고 살아가는 삶의 현장이 누구에게나 언제나 중요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이러한 태도가 유물론적 관점의 알파이자 오메가이자, 마르크스가 실천적 지식인들에게 주는 가장 값진 교훈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