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이러면 안되지요...
제 날짜에 보곤 묵살했었습니다.
노대통령 서거를 전후로 글이 180도 바뀌는 걸 보면서 이미 제게는 '낙인'이 찍힌 대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경향 사이트에 들어올 때마다 계속 눈에 거슬리지 뭐예요.
별것도 아니지만 이런 자들이 진보라는 우산 아래에서 잘 살고 있는게 기분이 나빴습니다.
그 사이트에도 걸려있겠지만 제 블로그가 존속하는 한 그 증거로 남겨야 하겠기에 이렇게 이 글을 다시 올립니다.
볼수록 얍살한 그의 내면을 보는 느낌입니다.
나쁜 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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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2009-06-14 18:06:06
[이대근칼럼]노무현의 마지막 선물
노무현이 영웅으로 다시 태어나자 모두 어리둥절해 한다. 참여정부에 좌절하고 그 실패가 불러들인 이명박 정부의 실정에 또 다시 절망하고, 이제는 삶의 위기로까지 내몰린 서민들로서는 혼란스럽다. 노무현이 이명박의 안티테제가 되면서 노무현 사랑이 깊을수록 이명박에 대한 미움은 배가된다. 노무현과 관련한 모든 것을 사랑해 버리는 것이 이명박에게 복수하는 길이라도 되는 양 노무현에게 몰입한다. 노무현의 정신, 치적은 물론 그의 과거, 가족, 측근까지 사랑한다. 그들 가운데는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 노무현 비판자를 공격하는 것으로 사랑의 정을 표현하는 이들도 있다. 그래서 “국정실패, 도덕적 파탄으로 비판할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칭송으로 180도 바꾸느냐”고 시비하며, 노무현 비판사실을 스스로 부정할 것을 요구하는 풍경이 빚어진다. 이 ‘과거 사냥’ 대열에는 노무현 열기를 식혀 이명박을 위기에서 구출하려는 다른 목적을 품고 끼어든 세력도 있다. 차분히 노무현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할 계제가 아니다.
누구의 노무현 비판은 애정 어린 충고였고, 누구의 비판은 정당했고, 누구의 비판은 지나쳤고, 누구의 것은 비판 아닌 저주였는지 그 차이와 정도를 따지려면 따질 수 있다.
한국 사회에 남긴 성찰의 기회
가령 유시민은 노무현 정부가 정치적으로 성공하지 못했다고 평가한 바 있다. 사람에 따라 유시민보다 더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도 있고, 더 부정적으로 평가할 수도 있다. 비판하는 주체에 따라 관점과 기준이 다를 테고, 그만큼 비판의 내용도 다양할 수밖에 없다. 그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노무현의 삶과 죽음이 갈라놓은 차이를 무시하고 추모 분위기에 맞춰 심판한다면 그 시비에서 자유로울 사람은 별로 없다. 노무현의 잘잘못과 상관없이 시종일관 사랑했거나 미워했던 사람만이 무죄를 받을 것이다. 그러나 노무현 안에는 서로를 배반하는 두 개의 노무현이 있어 시민들이 어떤 노무현에는 열광했지만, 어떤 노무현에는 낙담했다. 노무현에 대한 사랑과 미움은 서로 다른 것이아니다. 그러므로 과거 사냥은 공연히 흠잡기 위해서는 쓸모가 있어도, 노무현 정신의 구현에는 별 효용성이 없다.
대통령 당선은 그의 삶의 단층을 드러냈다. 그는 대통령이 되자 가난한 자를 위해 써야 할 권력을 시장에 넘기려 했다. 이때 이미 노무현은 죽기 시작했다. 못 가진 자의 권리·정의를 위해 싸우던 그가 권력을 행사하면서 점차 무기력증에 빠지고, 권력을 내놓자마자 주변의 도덕적 문제로 추락한 데 대한 세상의 실망과 배신감 역시 그를 죽였다. 비판적 지식인의 날카로운 혀도 그를 죽였을 것이다. 이명박은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가난한 자를 모독하고 있는데, 민주주의·서민을 지키겠다던 노무현은 손발이 묶인 채 자유주의 세력은 물론 진보세력과 뒤엉켜 추락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는 반대세력이 조직될 수도, 대안적 정치세력이 자랄 수도 없다. 그러기에는 이 사회에 퍼진 환멸이 너무 깊었다. 그래서 그걸 다 거두어 가야겠다고 그는 생각했을지 모른다.
이제 누가 노무현을 죽였는지 더 이상 묻지 말자. 민주주의를 살려내려는 우리의 열정 또한 그를 죽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시대의 역설이자 당대의 비극이다. 그러나 그 역설은 그의 심장의 고동이 멈추는 순간 희망의 싹이 자라면서 끝났다. 죽음으로써 그는 서민의 벗으로 돌아왔고, 500만명의 노무현으로 부활했다. 그리고 전차에 치인 듯 비틀거리던 야당을 일으켜세우고, 시민들을 각성시키고, 정치적으로 무장하게 했다. 위대한 노무현 정신의 재현이다.
‘성공의 옷’ 입혀 우상화는 말자
그러나 노무현의 과거를 제거하거나 혹은 실패에 성공의 옷을 입혀 새 우상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허구로 구축한, 실재하지 않는 노무현으로 기념물 혹은 신화를 만들 수는 있다. 하지만, 그렇게 금박 입힌 노무현은 현실의 가랑잎 한 잎도 흔들 수 없는 의식(儀式) 그 자체로 남을 것이다. 그의 죽음은 그렇게 박제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일부의 과도한 미화는 그를 살리는 게 아니라 다시 죽이는 일이다. 지금 그를 기념할 때가 아니라, 기억해야 할 때이다. 그는 한국 정치, 사회에 성찰할 기회를 주었다. 그의 고뇌, 그의 이루지 못한 꿈과 가치가 소중한 것처럼 실패 역시 그의 위대한 일부를 구성한다. 그 모두 우리에게 올바로 배울 수 있게 해준다. 그것이 노무현이 이 세상에 남긴 선물이다.
<이대근|정치·국제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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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근의 글에 대한 네티즌들의 댓글을 모았습니다.
이런 인식과 문장력에 놀라면서 이 아래에 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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