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2009-02-18 17:5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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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기업이 희망이다](1)왜 사회적기업인가
안치용 | 지속가능사회를 위한 경제연구소(ERISS) 소장
존 우드는 ‘사회적 기업가’를 얘기할 때 반드시 거론되는 인물이다. 우드는 아시아의 개발도상국가에 책을 기증하고 도서관과 학교를 지어주는 자선단체 ‘룸투리드(Room to Read)’의 설립자이다. 수많은 유명 사회적 기업가들 가운데 그가 특별히 주목을 받는 이유는 창업과정에서의 극적인 인생전환 때문이다.
세계적 사회적 기업가 존 우드가 네팔 안나푸르나산 산록마을에서 소를 이용해 책을 운반하고 있다. 우드는 1998년부터 아시아의 개발도상국에 책을 기증하고 도서관·학교를 지어주는 자선단체 ‘룸투리드’를 설립, 운영하고 있다. | 세종서적 제공
우드는 1998년 네팔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당시 그는 기업제국인 마이크로소프트(MS) 중국지사의 2인자로 전도가 유망한 30대 임원이었다. 격무에 지친 심신을 히말라야 산맥에서 달랠 요량으로 베이징을 떠났던 것이다. 네팔에서 우드는 중년의 네팔인과 우연찮게 대화를 나누게 된다. 네팔 교육부 공무원인 그 사람을 따라 우드는 낯선 땅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모든 여행객들이 가보는 곳이 아닌, 진짜 네팔을 보고 싶다는 희망에서였다.
그곳에서 우드는 ‘진짜 네팔’은 물론 ‘진짜 자신’을 발견한다. 쓰러져가는 교실에서 책 없이 공부하는 네팔 어린이들을 보며 자신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알게 된 것이다. 곧바로 MS를 떠난 그는 ‘룸투리드’의 최고경영자(CEO)로 네팔,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스리랑카 등에서 약 4000개의 도서관과 약 300개의 학교를 세웠다. ‘룸투리드’에 의해 이곳들에 기증된 책이 150만권이 넘는다. 제3세계 어린이 130만명 이상이 책을 읽으며 공부할 기회를 우드를 통해 얻었다.
우드는 이 방대한 일을 추진하는 데 필요한 돈을 ‘기부의 기업화’로 확보할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세계를 무대로 모금활동을 하느라 MS에 있을 때보다 훨씬 더 바빠졌다. 막대한 스톡옵션 등 금전적 이익을 한 번에 날려버렸고 여전히 바쁜 일상에 시달리고 있지만, 그는 과거처럼 심신이 소진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지 않는다. 오히려 노동과 그로 인한 피로가 기쁨으로 고양돼 ‘진짜 자신’을 가득 채우는 전혀 새로운 경험을 하곤 한다. 사회적 기업가들만이 체험할 수 있는 보람이다. 남들과 경쟁해 이겼다거나, 남들보다 더 많은 돈을 벌었다는지 하는 유의 ‘자본주의 감성’과는 판이한 ‘공감과 공유의 정서’다.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사회적 기업가 존 우드는 그러나 ‘전형적’인 의미에서의 사회적 기업가는 아니다. 크게 보아 ‘룸투리드’는 자선의 조직화·효율화의 성격이 강한 반면 시장에서 이뤄지는 기업활동이 약하기 때문이다. 통상 사회적 기업은 경제적·사회적 가치의 두 가지를 동시에 추구하는 DBL(Double Bottom Line) 기업으로 정의된다. 시장과 사회의 경계에 위치하며, 두 영역에 모두 발을 넣은 ‘기업’이란 뜻이다. 굳이 분류하자면 ‘룸투리드’는 사회 쪽에 많이 편중된 사회적 기업인 셈이다.
■DBL기업과 CSR=2007년 7월1일부터 시행되고 있는 ‘사회적 기업 육성법’에서 규정한 사회적 기업은 두 가지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먼저 사회적 목적을 우선적으로 추구해야 하고, 다음으로 재화와 서비스의 생산, 판매 등 영업활동을 수행하는 기업(또는 조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노동부 나영돈 사회적기업과장은 “장애인들을 고용해 쿠키를 생산하는 사회적 기업인 ‘위캔’처럼 사회적 목적을 수행한다는 의미는 사회취약계층에게 일자리 또는 사회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지역사회의 공익실현을 염두에 두고 회사를 설립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이윤이 생겼을 때 3분의 2 이상을 당초 설정한 기업의 사회적 목적에 재투자하도록 법에 명시돼 있다. 그러나 형태가 꼭 기업일 필요는 없으며 비영리법인이나 조합 등 다양한 조직이 사회적 기업으로 인정된다. 단 월급을 받는 노동자가 근무하고, 지속적으로 영업활동이 이뤄져야 한다. 국내에서 법에 따라 인증을 받은 사회적 기업은 현재 218개이다. 노동부 인증을 받지 않았지만 사실상 사회적 기업을 지향하며 운영되는 기업이나 조직도 다수 존재한다.
실제로 사회적 기업의 전통이 오래된 이탈리아 등 유럽에서는 협동조합 형태의 사회적 기업이 많이 목격된다. 사회적·경제적 가치를 모두 추구하면서 시장과 사회를 포괄하는 조직(기업)이란 사회적 기업의 개념은 나라마다 여건에 따라 조금은 다르게 발전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제 막 씨앗이 뿌려져 싹이 나는 단계라고 볼 수 있겠다.
흔히 사회적 기업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과 혼동을 일으킨다. 두 가지 모두 따뜻한 자본주의를 표방하며 돈이 아닌 인간과 사회를 존중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는 것에서는 동일하다. 그러나 CSR에서 상정하는 기업은 ‘자본주의 기업’이란 점에서 다르다. 이 기업은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하며 다소 논란이 있기는 하지만 이윤 또한 주주들에게 귀속된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이윤을 추구하는 것”이란 신자유주의의 대부인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이 생각하는 기업과 본질적으로 같다. 대신 기업을 경영하는 과정에서 기업과 영향을 주고받는 이해관계자들을 배려하고, 경영성과를 낼 때 경제적인 성과뿐 아니라 사회·환경 성과를 함께 내도록 노력하는 게 CSR다. 경제·사회·환경이란 세 가지 성과를 함께 추구하는 경영을 TBL(Triple Bottom Line) 경영이라고 한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시장의 매정함을 완화하려는 움직임이다.
반면 사회적 기업은 앞서 살펴봤듯 이윤추구보다는 사회적 목적을 우선한다. 즉 이윤추구가 사회적 책임인 프리드먼 유의 기업과 달리 사회적 책임을 위해 이윤을 추구한다. 사회적 목적을 추진하기 위해 시장기능을 도입한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시장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CSR에서 한 걸음 더 나가 시장을 재편하고 자본주의를 상당 부분 개선하려고 노력한다.
사회투자지원재단 김홍일 상임이사는 “이러한 태생 때문에 사회적 기업은 취약계층 보호나 복지에 많은 관심을 기울인다”고 설명했다. 그동안 주로 정부의 사업영역이었던 부문이다. 물론 보완적으로 종교가 있었고, 사회 차원에서는 비정부기구(NGO)나 기부 시스템 가동을 통한 개인들의 참여가 있었다. 사회적 기업의 등장은 이제 취약계층 보호 대열에 시장을 동참시킨 것을 뜻한다.
주로 복지부문을 대상으로 하는 사회적 기업의 등장은 그 긍정적인 지향과 성취와 무관하게 철학적인 논쟁을 야기하고 있다. 우선 시장가치에 대한 비(非)시장가치의 완패라는 시각이다. 사회적 목적을 구현할 때조차 시장의 도움을 받아야 할 만큼 사회적 가치가 허약해졌다는 징표로도 읽히기 때문이다. 물론 같은 현상이 정반대로 해석되기도 한다. 자본주의 사회가 시장에 사회적 가치를 도입해야 할 정도로 자정과 완결의 순환구조를 확보하지 못했다는, 즉 치명적인 결함을 드러냈다는 것이다.
■사회적 기업의 미래=취약계층 보호라는 측면 말고도 사회적 기업은 고용시장에서 상당한 촉매로 작용하고 있다.
고용없는 성장의 반복과 청년실업이 만연한 상황에서 새로운 돌파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사회적 기업이 만들어내는 일자리는 낮은 보수에도 불구하고 고급 인력이 선호하는 ‘우아한 일자리’로 인식된다.
함께일하는재단 이은애 사무국장은 “사회적 기업에서 일하고 있거나 일하려는 사람들은 정신적으로 높은 보수를 받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금전적으로 낮은 보수를 얼마든지 감수한다”고 분석했다.
사회적 기업의 또 다른 의의로는 사회 서비스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정부 주도의 복지정책은 집행기구의 비효율 때문에 천문학적 자금을 투입하고도 성과는 그에 못 미치는 양상을 되풀이한다. 탁상행정으로 적재적소에 자금을 투입하지 못하는 것이다. 반면 꼭 필요한 곳을 찾아 복지재정을 투입하려다 보면 디자인과 수요 조사 등 집행비용이 너무 커진다는 단점이 생긴다.
이에 따라 그동안 NGO들이 정부를 대신해 말단의 모세혈관 역을 수행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문제점을 노출시켰다. 기본적으로 NGO들이 비영리조직이다 보니 이들 또한 다른 의미로 구제대상이 되기도 한다. 또는 독일의 가톨릭계 비영리단체에서 드러났듯 모세혈관이 너무 비대해져 또 다른 관료제의 폐해를 낳았다. 사회서비스 대행조직의 관료화는 ‘독일병’을 구성하는 한 항목으로까지 지탄을 받았다.
사회서비스 영역에서 사회적 기업이 활성화하면 사회적 목적을 달성하면서 그동안 거론된 집행과정의 비효율을 없앨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1회적 복지, 배분형 복지를 대신해 순환적이고 사회생태적인 복지를 가능하게 할 수 있다는 희망이다. 물론 에너지 시장에서 신·재생에너지가 여전히 고전하는 것처럼, 사회생태적 순환을 목적으로 하는 사회적 기업은 아직까지 시장에서 완전하게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이 부분은 우리 사회에 희망의 근거로 남아 있다.
사회적 기업의 활성화는 어느 사회에나 그 결을 풍부하게 하는 소중한 일보이지만, 그 한계도 분명하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은 그 희망의 싹을 찾아내고 물과 햇볕을 주며 소중하며 키워야 할 때이다. 효율이 떨어진다고 석유를 대신할 차세대 자동차 엔진 개발을 미룰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항상 진검승부가 이뤄지는 시장이지만, 사회적 기업에는 당분간 보호장구를 착용하는 것을 용인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또 아는가, 진검승부에서도 승리하는 사회적 기업이 대거 출현할지….
<안치용 | 지속가능사회를 위한 경제연구소(ERISS)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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