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호에서는 농산물 유통의 해외사례로 일본의 농산물 판매장 쇼이가고와 와고엔농사조합법인을 소개한다. 두 곳 모두 치바현에 자리잡고 있으며 일본의 관문이라 불리는 나리타공항을 기준으로 쇼이가고는 남서쪽으로, 와고엔은 동쪽으로 각기 20킬로미터쯤 떨어져 있다. 치바현은 동경과 인근하고 있어 한국으로 치면 경기도에 비유할 수 있다. 대도시 근교라는 특성상 쌀농사보다는 다양한 품목의 채소가 재배된다.
농협경제연구소에서 2006년도에 발행한 보고서에 의하면 일본의 2005년도 농가인구는 전체인구의 6.6% 정도였다. 한국은 같은 해에 전체인구의 7.3%가 농가인구로 조사됐다. 호당 경지면적은 한국과 일본이 각각 1.43헥타르, 1.65헥타르로 비슷한 수준이다. 보고서마다 조금씩 다른 수치를 내놓기는 하지만 한국과 일본의 농업이 외형적으로는 꽤 닮았다는 것에는 큰 이견이 없다. 하지만 한국은 일본에 비해 쌀에 대한 집중도가 매우 높고, 전업농가의 비율이 높아 등 세부적인 내용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편집자 주>
1. 부안군 농산물, 어떻게 유통되나 2. 국내의 농산물 유통 실험들 ① 3. 국내의 농산물 유통 실험들 ② 4. 일본 농산물 유통, 무엇을 참고할 것인가 - 미라이농협 농산물직판장 쇼이가고 - 와고엔 농사조합법인 5. 부안이 직접 말하는 농산물 유통과 대안 -좌담회: 생산자(농민), 유통인, 행정가, 전문가 6. 새로운 농산물 유통 모델을 그려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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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오전임에도 불구하고 꽤 많은 소비자들이 쇼이가고 매장을 찾아 농산물을 고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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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이가고 매장 외부 모습. | 신선함이 최고의 경쟁력이다 농산물직판장 쇼이가고
오구라다이읍에 사는 주부 오오바 씨는 쇼이가고가 생긴 이래 매주마다 이 곳을 찾는다. 다른 곳에서 구입한 농산물은 2~3일이면 시드는 것에 비해 쇼이가고에서 구입한 농산물은 일주일을 둬도 선도가 유지되기 때문이다.
쇼이가고는 미라이농협에서 운영하는 농산물직판장이다. 미라이농협은 치바시와 나라시노시, 두 지역의 농민 9천여명이 회원으로 가입되어 있고, 쇼이가고 외에 농산물판매장 세 곳을 더 운영하고 있다. 농협에서 운영하지만 한국의 하나로마트와는 매우 다르다. 생산자들이 매일 직접 야채를 다듬고, 포장하고, 가격을 정해 개인별 바코드를 부착해 직접 판매장에 진열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일에 팔리지 않은 품목은 생산자가 그날그날 저녁에 수거해가는 것이 원칙이다.
농축산물 외에 집에서 가공한 반찬, 간단한 도시락, 수공품 등 품목은 다양하다. 농협에서는 수수료로 판매금액의 15%를 받는다. 소량의 농산물을 생산하는 고령농가와 여성농가들의 지속적인 영농을 보장하기 위해 십여년부터 이런 판매형태가 전국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같은 농산물 직매기능에 식당 등의 휴게기능까지 더해진 미찌노에키(국도변 휴게소)도 전국적으로 800여개가 분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631명의 생산자가 465개 품목을 출하
2005년 12월에 문을 연 쇼이가고는 미라이농협의 직판사업부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생산이력과 가공품 검사 등을 담당하는 직원 5명과 물건을 직접 판매하는 비정규직원 45명이 근무하고 있다.
2006년에 589명의 생산자가 349개의 품목을 출하했고, 작년에는 그보다 더 증가해 631명의 생산자가 채소(227), 과일(109), 가공품(70), 꽃(8) 등 465개의 품목을 출하했다. 올해 10월까지만 해도 작년에 비해 49명의 생산자가 더 늘어났다. 2007년에는 6억7천5백만엔의 매출을 올려 전년보다 약 46% 증가했다. 올해는 하루 평균 2천2백여명의 소비자가 매장을 찾고 있다.
매출액은 채소류가 40%로 가장 비중이 높고, 농가에서 보건소의 검증을 받고 직접 생산한 절임류, 도시락 등 농산물가공품이 29%를 차지했다. 꽃, 쌀, 과일, 축산물 등이 그 뒤를 잇고 있다. 쌀은 소비자가 주문을 하면 그 자리에서 도정을 해 최고의 선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정보공개를 통한 자율적인 품목조정
직매장이나 농협 차원에서 생산품목을 강제로 조정하지는 않는다. 다만 매월 과다공급된 농산물 다섯 품목과 물량이 부족한 농산물 다섯 품목, 소비자들이 많이 찾는 시간대 등을 자료로 정리해 배포한다. 또한 연초에는 전년도에 부족했던 품목 50개를 월별로 정리해서 공개한다. 생산자들은 이 자료를 바탕으로 어느 품목을 얼마나 생산할 것인지, 어느 시간대에 진열할 것인지를 스스로 결정한다. 직원들은 판매추이를 지켜보며 수시로 생산자들에게 공급이 부족한 품목을 알려 출하를 유도한다.
2007년도를 기준으로 보면 전체 판매액의 67%가 농가에서 직접 위탁받은 품목이었다. 부족한 품목은 ‘사시사철 운영’이라는 원칙을 지키기 위해 일반 시장에서 공급받았다.
소농들을 위한, 소농들에 의한
소농들의 판매처를 확보한다는 의미에서 시작되었지만 지난 해에 천만엔 이상의 매출자도 8명(1%)이 되었다. 하지만 100만엔 미만의 수입을 올리는 생산자가 전체의 73%를 차지했다. 전체 출하자의 25%는 여성이고, 52%가 60대 이상의 농업인이었다. 고령화된 소농들은 예전에는 판매처가 없어 상품화하지 못했던 소량의 농산물들을 쇼이가고를 통해 판매하면서 어느 정도 경제적인 안정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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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고엔 농사조합법인의 절단센터와 물류센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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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래처의 주문에 따라 각기 다른 방식으로 절단하고 포장한다(작은 사진). |
농업도 제조업이다 농사조합법인 와고엔
1991년에 서른 살의 히로카즈 키우치는 뜻이 맞는 동네 친구 5명과 산지직송을 하는 생산자모임을 만들었다. 첫해에는 6백만엔의 매출을 올렸다. 시작한지 16년째 되는 지난 해에는 40억엔의 매출을 올렸다. 조직도 훨씬 더 세분화되었다. 와고엔 농사조합법인(이하 와고엔), 주식회사 와고, 냉동가공센터, 포장센터, 절단센터, 농가 레스토랑, 미니 슈퍼마켓, 꽃가게, 제과점, 리사이클센터, 해외사업부가 농산물의 생산, 가공, 소매, 물류, 음식점 등 다양한 부문에 걸쳐있다.
구성원도 많이 늘어났다. 전업농만 회원 자격이 주어지는데 정회원 41명, 준회원 51명으로 모두 92명의 생산자가 가입되어 있다. 생산자 또한 폭넓게 분포되어 있다. 사무실이 자리잡고 있는 치바현 나토리시 니사토를 기준으로 반경 30킬로미터의 원을 그리면 치바현 북동부와 나리타시, 이바라키현의 일부가 포함된다. 이 지역에서 치바현에서 생산되는 채소류의 70%가 재배된다.
선주문 후생산
와고엔에서는 농업도 제조업이다. 보통의 농산물은 소비자로부터 주문이 없어도 생산자의 판단으로 일단 생산하고 시장에 내다 팔지만 와고엔에서는 다르다. 현재 와고엔은 내년 7월까지 출하할 농산물을 주문을 받아둔 상태다. 생협, 외식업체, 슈퍼마켓 등의 거래처와 일년동안 출하할 농산물의 수량이나 가격을 미리 정하기 때문이다. 이를 토대로 농가와 생산할 품목과 가격을 조정한다.
철저한 토질 검사를 통해 어느 땅에서 생산할 것인지도 계약내용에 포함된다. 일단 계약이 이뤄지면 날씨와 상관없이 계약된 가격에 해당 품목이 출하되어야 하기 때문에 농가입장에서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런 계약생산과 계약판매는 농업경영의 안정화에 밑거름이 되었다. 회원농가의 평균수입이 1년에 3천만엔 정도로 규모에 따라 2억엔의 매출을 올리기도 한다. 현재 니사또와 아사히에 있는 물류센터에서 외식업체(20곳), 생협(11곳), 슈퍼마켓(15곳) 등 총 51개의 거래처로 제품을 출하한다.
채소 냉동, 절단 공장
와고엔에서는 생산한 채소류를 거래처의 주문에 따라 절단하고 포장한다. 같은 호박이라도 거래처의 수요에 따라 절단 크기, 절단 방법, 포장 방법 등이 달라진다. 45종류의 채소가 두께, 크기, 중량, 같이 포장되는 채소 등에 따라 3백 가지 이상의 방법으로 포장된다.
채소의 냉동가공과 절단포장을 시작한 이유는 농산물의 상품화율을 높이기 위해서다. 생산물 중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시금치의 40% 이상이 품질과는 별개로 크기 때문에 규격외 상품으로 분류되어 상품으로 출하할 수 없었다. 하지만 냉동가공해 출하하면서 재배한 시금치 전량을 상품화할 수 있게 되었다. 이어서 다른 채소들도 냉공가공품목에 추가했고, 다음해인 2004년부터는 거래처의 요구에 따라 다양한 방법으로 절단해 판매하게 되었다.
지구를 생각하는 농업
와고엔 회원농가에서는 지난 2004년에 일본의 채소농장단위에서는 처음으로 GAP 인증을 취득했다. 또 28개의 품목이 치바현 농정국에서 인증하는 치바에코인증을 받았다. 회원농가는 토질 개선을 위해 씨뿌리기 전과 수확 전에 반드시 토양분석을 받아야 한다. 저농약, 저화학비료를 지향하기 때문이다. 리사이클센터에서는 우분과 채소 잔량을 발효시켜 메탄가스와 액비, 고형퇴비를 만들어낸다. 생산된 액비와 고형퇴비는 다시 농업에 이용되고, 메탄가스는 플랜트 내의 경트럭, 오토바이 등의 연료로 사용된다. 현재는 축산농가 한 곳과 채소 전처리 과정에서 발생되는 음식물 쓰레기만을 활용하고 있지만 내년부터는 슈퍼마켓이나 식당에서 나오는 것도 모아 자원화할 계획이다.
글·사진=정봉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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