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살림'을 어떻게 봐야 하나?
농사만 지으며 살겠다는 마음으로 시골에 온지 벌써 10년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았고, 결국 농사만으로 사는 건 분명 '어림없는 일'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할수없이 저는 저대로 농사를 짓지만 아내가 다시 자신의 일을 시작했습니다.
도시에서 하던 광고기획사를 다시 시작한 겁니다.
사실 이것도 작은 시골에서 하는게 그리 수월한 게 아니었으니, 학연 지연으로 연결된 사슬을 비집고 들어가야만 했으니까요.
게다가 이런 일은 관청에 잘 보이면서 해야 하는데, 제가 골프장 등등에 대해 인터넷에 군청을 비판하는 글을 써버리니 아내의 가게는 곧 블랙리스트에 올라가더군요...
안그래도 속좁은 군수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공무원들이 아내의 가게를 외면하는 건 당연지사...
여하간 본의아니게 two job을 갖고 살고 있지만 저는 처음 생각대로 계속 농사를 지으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마을에서는 아무도 하지 않는 친환경농업을 하면서 생산방법은 물론 판로도 지속적으로 고민해야 할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생산자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생협'보다 '한살림'에 대해 호감을 가질 수 밖에 없었고 그곳으로 출하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기도 하였습니다.
게다가 저에게 있어서는 사상적인 면에 대한 장일순 선생님의 영향도 있고 하니 당연히 '한살림'이라는 단체에 친밀감을 가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며칠전(2월9일)에 매우 당혹스런 일을 하나 겪었습니다.
그날은 아내 대신 제가 가게를 보고 있었는데, 일을 처리하는 와중에 '한살림'의 로고가 최근에 바뀐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역 한살림 관련 농산물의 출하를 함에 있어서나 직원들의 명함 등에 '한살림'의 로고가 필요한 경우가 많은 저희로서는 당연히 그 로고를 확보해야만 합니다.
그런데 '한살림' 홈페이지에는 그 로고가 올라와있지 않아서 '한살림' 기획홍보부로 전화를 했습니다.
보통 많은 단체의 홈페이지에는 자신들의 로고AI 등을 인터넷에 올려놓고 자유로이 받아서 쓸 수 있도록 해놓았기에 한살림은 안그런가 싶어서 전화를 한 것이지요.
사실 우리는 그렇게 해서 필요한 로고들을 많이 확보해놓고 있구요...
처음에는 앳된 여직원이 전화를 받다가 잠시후 다른 여자분으로 전화를 바꿔주더군요.
그분에게 제 소개를 하면서 통화를 시작했는데, 이를 대화체로 구성해보겠습니다.
- 저는 괴산에서 광고기획사를 하는 사람으로서, '한살림'의 로고가 필요한데 홈페이지에 올려놓질 않으셨네요. 그걸 좀 구할 수 없겠습니까?
*** "우리 한살림 로고는 한살림 업무와 관련된 일이 아니면 아무에게나 주지 않습니다. 그리고 시골의 광고업자가 그런게 왜 필요합니까?"
- 이 지역에서 명함이나 스티커 등을 제작할 때 로고를 넣어야 할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로고가 필요합니다.
*** "그런건 우리가 직접 만들어주면 되는데, 당신네 광고업자가 왜 달라고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 보통 대부분의 기관 단체에서는 자신들의 로고AI를 홈페이지에 올려놓는데 한살림은 그런 서비스를 하지 않는군요?
*** "그런 데가 어디 있습니까? 어디 대보세요."
- 대부분 그렇게 하는데요... 그리고 저도 '한살림' 회원이기도 하구요...
*** "됐습니다. 전화 끊습니다..."
얼마나 당혹스럽던지요.
대화의 내용도 그렇지만 말투조차도 얼마나 쌀쌀맞게 단정적으로 표현하는지...
제 말을 들으려고 하기는커녕 저를 무시하는 태도가 짧은 대화에서 역력히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 생각해봤습니다.
아, 내가 그동안 잘못 생각해오고 있었구나...
영리를 추구하는 '회사'인데 '운동조직'으로 착각하고 있었구나...
장일순과 박재일로 이어질 때의 환상을 여전히 갖고 있었구나....
그런데 문제는 설령 영리추구 회사라 하더라도 이렇게까지 고객을 무시하지는 않는다는 점입니다.
도리어 현실의 회사들은 얼마나 친절합니까?
그렇다면 '한살림'은 뭔지 모르겠네요...
그 이후 며칠을 불편한 마음으로 지냈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한살림운동의 지향>이라는 글이 생각났습니다.
보통 '한살림' 사람들은 <한살림운동의 지향>이라는 걸 금과옥조처럼 여깁니다.
자신들의 보고서 등의 책자를 만들 때에도 그것만은 꼭 앞쪽에 싣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가장 첫번째에 다음과 같이 적혀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안에 모셔진 거룩한 생명을 느끼고 그것을 실현합니다.
사람은 자기 안에 모셔진 거룩한 생명을 공경할 때 자기다움을 실현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나를 모시고 공경하듯 다른 사람의 거룩한 생명도 공경합니다.
http://www.hansalim.or.kr/%ed%95%9c%ec%82%b4%eb%a6%bc%ec%9a%b4%eb%8f%99%ec%9d%98-%ec%a7%80%ed%96%a5/
참 훌륭한 글입니다.
가끔 이 글을 대하면 '한살림'이라는 단체가 그렇게 존경스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글을 대할 때에는 더더욱 존숭의 마음이 들어 제 가슴에 담아놓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아마도 장일순 선생님의 사상적 영향을 받아서 작성된 글이 아닌가 싶습니다만 이 거룩한 의미를 그 '한살림' 직원은 모르는 모양입니다.
그 거룩한 전통의 맥이 단절된 것인 듯...
서글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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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사람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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