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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사상 이야기/퀘이커

퀘이커리즘에서 배운다(6) /기독교사상2011년11월호

by 마리산인1324 2013. 2. 14.

<기독교사상> 2011년 11월호

http://www.clsk.org/gisang/gisang_view.asp?tab=sasang_theologry&flag=01&board_idx=693&page=3&block=0&theologry_sec=&set_year=2013&set_month=01&view_year=2011&view_month=11

 

 

 

퀘이커리즘에서 배운다(6)
퀘이커리즘의 다섯 가지 영성 원리(1)

반골의 영성
내가 보기에 퀘이커는 반골(反骨·叛骨)이다. 사전을 보면 반골은 세상의 풍조나 권세, 권위 따위를 무작정 좇지 않고 저항하는 기질 또는 그런 사람이라고 설명한다. 퀘이커는 세상의 풍조를 무작정 좇지 않고, 저항하는 기질을 가진 영성을 지닌 기독교인임에는 틀림없다. 퀘이커 학자들도 초기 퀘이커들을 표현하기를 반도(叛徒 rebel) 또는 일반적 사회 규범을 따르지 않는 사람(nonconformist)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왜 퀘이커들은 이렇게 저항적인 사회적 태도를 취하고 불온한 평판을 받게 된 것인가. 한마디로 말하자면 그들은 비타협적인 신앙 실천의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사실 반골 영성의 원조는 예수 그리스도이다. 그는 세상 풍조를 따르지 않고 하나님 나라로 바꾸려고 한 원조 반골이었다. 그러나 반골이란 말이 풍기는 이미지는 뭔가 고집 세고, 무작정 반대하는 부정 일변도의 것이어서 예수의 영성을 반골로 표현하기에는 부적절한 느낌이 없는 것은 아니다. 퀘이커들의 영성도 마찬가지이다. 이들은 반대하기를 즐겨하거나 주력하는 사람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의 진리를 믿고 실천하는 삶을 살려고 애쓰는 사람들이라고 봐야 한다. 이 신앙 진리를 세상 풍조와 적절히 타협하지 않고 철저히 살려고 하면 할수록 그 모습이 반골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퀘이커들의 반골의 영성은 하나님의 진리를 올곧게 따르려는 영성이며, 기독교 신앙의 사회적 저항성을 회복시키는 영성이라고 나는 본다. 나는 퀘이커들로 하여금 반골로 보이게끔 한 대표적인 요인들을 퀘이커리즘의 다섯 가지 영성 원리들을 중심으로 소개하고자 한다. 이른바 퀘이커리즘의 다섯 가지 반골 영성 원리이다.


퀘이커리즘의 다섯 가지 영성 원리(Spiritual Principles)는 단순성(Simplicity), 평등(Equality), 정직(Honesty), 공동체(Community), 평화(Peace)이다. 퀘이커들은 이 다섯 가지 영성 원리를 하나님의 진리를 체험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당연하게 지켜야 할 삶의 길이라 믿는다. 사실 이런 내용은 기독교인들에게 특별한 것이 아니다.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나 이해하고 인정할 수 있는 신앙의 가치요 성서의 가르침이다. 문제는 이것을 삶에서 얼마나 실천하느냐이다. 퀘이커들이 일반 기독교인들과 다른 인상을 갖게 된 것은 이런 신앙 가치를 초기 퀘이커 운동 이래 꾸준히 믿고 실천하는 삶을 살아왔기 때문이라고 나는 본다. 그래서 현대 퀘이커들은 이 다섯 가지 영성 원리들을 현대 퀘이커리즘의 특징으로 설명하기를 좋아한다. 초기 퀘이커들은 이 다섯 가지 영성을 실천하며 살면서 당시 사회에서 반골로 불렸다. 오늘날 사회는 많이 바뀌었다. 현대 퀘이커들은 이 다섯 가지 영성 원리를 사회적으로 뿐만 아니라 자신의 영적 삶의 갱신의 지침으로 삼는다. 퀘이커들의 삶은 초기 퀘이커 운동기와는 달리 사회적 존경과 인정을 받고 있다. 퀘이커는 더 이상 사회적 반도가 아닌 것이다. 그러나 다섯 가지 영성 원리는 여전히 사회적으로 반골의 요소를 갖고 있으며, 퀘이커들이 이 영성 원리를 철저히 지키며 살면 살수록 반골의 영성은 돋보일 수밖에 없다. 나는 이와 같은 반골의 영성이 오늘 우리 기독교인들 자신과 교회에도 필요한 것이라 믿으며 퀘이커리즘의 다섯 가지 영성 원리들을 두 차례에 걸쳐 소개한다. 신앙의 진리를 철저히 살고자 하는 퀘이커들의 이야기가 오늘날 너무 쉽게 사회 논리와 타협하고 신앙의 짠 맛을 읽어버린 오늘 우리 자신과 한국교회에게 자극이 되길 기대해 본다.

단순 소박한 삶의 영성(Simplicity)
단순성이란 퀘이커 영성 생활에서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영적 원리이다. 퀘이커들은 일상 생활에서 사치하고 요란한 삶을 피하고 단순한 살림살이를 추구하며, 영적인 면에서도 단순한 영성 생활을 좋아한다. 이들은 하나님과의 만남은 모든 형식이 단순할수록 좋다는 체험을 가졌고, 마찬가지로 단순하고 소박한 삶일수록 하나님과 가까운 삶을 살 수 있음을 알았다. 단순한 삶과 영성은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오늘날 물질적 풍요 속에서 오히려 영성의 빈곤을 느끼는 우리에게 퀘이커의 단순한 삶의 영성은 의미 있는 성찰 자료를 제공한다.


나는 펜들힐에서 지내는 동안 단순 소박한 퀘이커들의 삶을 많이 체험하곤 했다. 소위 말하자면 퀘이커풍의 삶(Quakerly life)의 모습이다. 이들은 때로는 빠르게 발전하는 시대 문물과는 상관없다는 듯이 살아간다. 이런 이들의 태도가 시대에 뒤떨어진 삶의 모습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지만, 사실 삶의 행복과 마음의 평안은 현대식 문물에서보다는 보다 근원적인 다른 것에 있는 것임을 이들의 단순한 삶은 보여준다. 잃어버리지 않고 살아야 할 것은 잃어버리지 않고 살려고 하는 단순 소박한 이들 ‘퀘이커리 라이프’에서 나는 기독교인의 삶의 모습이란 이런 것이여야 하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너무 쉽고 빨리 현대의 화려한 소비 물질문명에 동화되어 외형으로는 화려해진 대신 내적으로는 빈곤해져, 기독교 신앙의 좋은 가치들을 너무 많이 쉽게 잃어버린 것은 아닌가 생각하곤 했다. 여러 가지 많은 경험들이 있었지만 나는 여기서 단순 소박한 퀘이커리 라이프 사례 두 가지를 소개하려 한다. 하나는 소박한 생활을 사는 퀘이커 가정생활 경험이고, 다른 하나는 퀘이커 결혼식이다.


나는 펜들힐 옆에 있는 조용한 마을인 스와스모어에 살고 있는 한 퀘이커 노부부의 집에서 여름을 지낸 적이 있다. 노부부가 여름휴가를 떠난 집을 봐 주면서 나는 가까운 스와스모어 대학의 평화 도서관을 다닐 수 있었다. 집 주인은 대학의 물리학 교수로서 비교적 중산층의 넉넉한 경제생활을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집안의 살림살이는 매우 검소하고 단순했다. 전화는 지금 우리나라에서도 1970년대에 쓰였던 검정색의 수동식 다이얼 전화였고, 텔레비전도 70년대 대형의 흑백 텔레비전이었다. 집안 가구들도 마찬가지였다. 오래되어 낡은 것이었지만 깨끗이 닦고, 손질하면서 산 흔적이 있는 것들이었다. 오래된 가구들이라고 하여 요즘 부자들이 애호하는 고풍스런 ‘앤틱’(antique) 가구들이 아니다. 평범하면서 오래되어 낡은 것이지만 사용하는 데는 문제가 없는 것들이었다. 나는 한눈에 이 집 주인이 참으로 오랫동안 검소하게 살아 온 사람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 나온 갖고 싶을만한 가구나 생활 용품들이 얼마나 많은 것인가. 이 집 안주인이 생활에 무신경한 사람이거나 아니면 구두쇠가 아닐까? 경제력도 있는 사람이 왜 이렇게 옛스럽게 사는 걸까 궁금했던 나는 휴가에서 돌아 온 노부부에게 물어보았다. 최신 전화나 텔레비전이 편리하고 좋은데 왜 이런 걸 아직도 쓰느냐고. 그들의 대답은 간단했다. 아직 쓸 만하여 쓰고 있다는 것이다. 전화는 걸고 받는데 아무 문제가 없고, 텔레비전은 별로 보지 않지만 가끔 자신들이 보고 싶은 프로그램을 보는데 아무 지장이 없어 구태여 새것으로 바꿀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은퇴한 이 노 교수 부부는 펜들힐 학교의 이사로서 기부금을 내는 사람들이다.

퀘이커리 결혼식(Quakerly Marriage)
내가 펜들힐에 처음 머물렀던 2000년 봄에 아주 특별한 결혼식이 있었다. 그 소박하고 단순함이 나에게는 전혀 뜻밖인 장면이어서 내심 말할 수 없는 충격이었기에 특별하다고 표현한 것이지만 사실 퀘이커들에게는 평범하고 일상적인 결혼식이었다. 신랑은 드루 대학에서 초기 퀘이커리즘 연구로 박사(Ph. D.) 학위를 한 퀘이커 학자이면서, 인디애나 주 퀘이커 교회의 목사이기도 한 덕 귄(Doug Gwyn)이었고, 신부는 영국에서 펜들힐에 공부하러 왔던 캐롤(Caroline)이었다. 두 사람과는 전부터 친분이 있었기에 나는 아내와 함께 결혼식에 참석했다. 결혼식은 펜들힐 예배실인 반(Barn)에서 열렸다. 평소 40-50명 정도 앉을 수 있는 반에는 접이식 의자가 십여 개 더 배치되었다. 그뿐이었다. 결혼식 화환 같은 것은 물론 예식 순서지도 없었다. 우리식대로 축의금 봉투를 준비해 갔던 나는 아무런 접수처도 없어 이게 무슨 결혼식장인가 의아했다.


결혼 예배는 신랑과 신부가 한쪽 자리에 앉아 조용히 침묵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평소 펜들힐 안에서 함께 지내던 친구들과 가족들, 그리고 신랑 신부의 부모님과 가족, 친한 친구들 몇몇 등 참석자들은 평소 아침 침묵 예배와 다름없이 조용히 앉아 있었다. 신랑은 평소 입던 양복을 입었고, 신부 역시 소박한 복장이었다. 신부는 화장도 안하고 화려한 결혼 드레스도 안 입었다. 역시 평범한 복장이었다. 아무런 장식도 없고 주례자도 없어서 모르는 사람이 보면 결혼식을 올리는 것인지 알 수 없는 평범한 퀘이커 예배 모습이었다. 그해 일년 전 결혼한 나와 아내도 예배 참석자들 사이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나로서는 참으로 의아하고 신기한 광경이었다. 그렇게 한동안 침묵 가운데 시간이 흘렀고, 누군가 일어나서 신랑 신부에 대한 자기 소감을 말하고 앉았다. 그리고 또 몇 사람이 그렇게 일어서서 말했고, 참석자들은 이야기를 들으면서 웃기도 하고 다시 조용히 침묵하곤 했다. 그리고 한동안 조용한 시간이 흐른 뒤에 신랑과 신부가 일어나 마주 보았다. 그리고 서로 짧게 무언가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아마도 서로 신의를 지키며 사랑을 지킬 수 있어서 오늘 결혼까지 할 수 있게 됨을 감사하게 생각한다는 말이었다고 기억된다. 퀘이커 신랑 신부는 보석과 패물이 아닌 사랑의 약속을 교환한다. 그리고 다시 앉아 잠시 동안 침묵시간을 가진 뒤에 결혼 예배는 끝났다.


퀘이커 침묵 예배는 늘 그렇듯이 옆 사람과 악수하고 인사하면서 침묵이 깨지면서 끝난다. 아마도 1시간 정도 지났을 것이다. 나는 이 결혼 예배 내내 ‘아, 이런 식의 결혼 예배도 있구나’ 생각했다. 처음에는 너무나 낯선 풍경이었기에 이게 뭔가 하는 심정이었지만 점차 조용한 가운데 흐르는 어떤 경건하고 감동적인 물결이 가슴속에 느껴졌고 ‘아, 이런 것이 진정 성스러운 결혼식일 수 있겠다’하는 느낌을 받았다. 이 단순함 속에서 나는 무언가 잡티가 깨끗이 제거된 결혼의 정수를 만나는 느낌이었다. 결혼식은 요란하고 특별한 예식이 아니라 우리 일상의 자연스런 일이며, 자연스런 우리 일상의 삶 속에 이렇게 조용한 신비가 있는 것임을 발견하는 순간이었다. 친구의 결혼 예배에 참여하여 나는 내 안의 삶의 신비를 발견하는 시간을 가진 것이었다. 왜 퀘이커들은 이렇게 아무런 예식이 없는 단순한 결혼식을 하는가? 이것은 퀘이커들의 단순한 믿음 때문이다. 그들은 믿는다. “하나님만이 두 사람을 결혼시킬 수 있다”고. 하나님이 결혼의 주례자이며 결혼하는 사람은 오직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데 집중하면 되는 것이다. 화려하고 요란한 예식이나 겉치레는 주의를 산만하게 할 뿐이다. 외적 겉치레는 단순하면 단순할수록 좋다. 이것은 퀘이커 침묵 예배의 단순성과도 맥이 통하는 것이다. 예배에서 퀘이커들은 예배의 본래 목적인 하나님과의 만남을 추구하듯이 결혼하는 사람들은 결혼의 본래 목적을 체험하기를 원한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퀘이커들은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한 결혼식이 아닌 자기 자신들을 위한 결혼식을 하고 있는 것임을 느꼈다. 퀘이커들의 단순성의 영성은 무엇이든 하는 일의 본질을 실현하는 길인 것이다. 초기 퀘이커들은 1681년까지 영국에서 이런 결혼이 법으로 인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불법적으로 남편과 아내로 함께 사는 것으로 핍박당했다. 핍박당하면서도 퀘이커들은 단순한 영성을 통해 체험하는 진리의 본질을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이리라.

마음의 단순성
퀘이커들에게 단순한 영성의 추구는 단순한 삶으로 표현되며, 또 단순한 삶의 추구는 영적 체험의 결과이다. 이 둘 사이에는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 영적 체험에 기반 하지 않은 단순한 삶의 추구는 자칫 기쁨이 없는 형식적인 삶의 의무처럼 되어버릴 수 있다. 퀘이커들에게 단순한 삶은 금욕적 삶과는 다른 것이다. 그러므로 단순한 삶을 추구한다고 해서 퀘이커들의 삶이 무미건조하고 재미없을 것이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들은 화려하고 소비적인 삶, 과시하는 삶, 그리고 세속적 오락에 취하여 사는 삶을 경계하고 멀리한다. 펜들힐에서 만난 퀘이커들은 보통 미국인들처럼 야구나 농구 등 스포츠 경기를 시청하거나 직접 하는 것을 즐기고, 노래 부르며 함께 어울리는 것을 좋아했다. 저녁 식사 후에는 재즈 피아노를 치는 사람 주변에 여럿이 모이곤 했다. 특히 유머가 풍부한 사람들이 앉은 식탁에서는 웃음소리가 터져 나오곤 했다. 즐겁게 사는 일은 퀘이커들이 흠모하는 삶이다. 내가 보기에 그들은 결코 금욕적이거나 규범적인 삶을 추구하지 않는다. 단순성의 영성은 세상의 복잡다단한 삶으로부터 마음과 몸이 단순해지는 삶을 추구하는 것이다.


단순한 삶의 원리는 경제적인 풍요에도 불구하고 더욱 소유하려고 하고, 소비하는 데서 삶의 만족을 찾으려는 사람들에게 영적 지침이 된다. 단순할수록 마음은 풍요로워지고, 하나님 체험이 원초적으로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퀘이커의 단순성의 영성은 단순히 경제적 삶의 원리로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보다 중요한 것은 마음의 단순성이다. 마음이 복잡한 것을 단순하게 할 때 하나님과의 만남이 쉬워진다는 것을 퀘이커들은 알고 있었다.


퀘이커 단순성의 영성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은 하나님과 직접 만남에서 다른 외적인 것들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나 자신의 신실성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경건한 예식보다도, 화려한 성전보다도, 명예와 권력과 재물보다도, 중요한 것은 나의 마음, 하나님을 구하는 단순한 마음이라는 것이다. 누가 대신 그 만남을 중개해 주는 것도 아니다. 성화와 성물, 경건한 종교 음악이 하나님을 만나는데 중요하지 않다. 하나님을 만나는 데는 나 자신이 조용히 갈망하는 마음이 있으면 되는 것이다. 그래서 퀘이커 예배는 사람들이 모여 앉아 단순히 침묵만 한다. 교회 치장도 없고, 음악도 없고, 예배 순서도 없다.


퀘이커의 단순 소박한 삶의 영성은 사회 정의와도 밀접하게 연관된 것으로 강조되었다. 미국의 퀘이커 예언자인 존 울만은 특히 이점을 강조했는데, 그는 탐욕과 사치한 삶이 다른 사람의 빈곤과 억압을 대가로 이뤄지는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고 말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대로 가난한 사람을 사랑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단순하고 소박한 삶을 살아가야 한다. 그러므로 퀘이커들에게 단순한 삶의 영성은 사회정의를 실천하는 삶의 방식으로 이해되고 받아들여졌다. 특히 퀘이커의 단순한 삶의 영성은 오늘날 지구 온난화로 대변되는 전지구적 생태계 위기에 대한 퀘이커 생명영성 윤리로 많이 강조된다. 퀘이커들에게 과도한 소비의 탐욕적 삶은 반 생태적인 삶일 뿐 아니라 반영성적인 삶이다. 퀘이커의 단순한 삶의 영성은 현대 소비 만능 사회 상황에서 기독교회가 제시할 수 있는 복음 메시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외형으로 신앙의 위력을 증명하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퀘이커의 단순성의 영성은 설득력이 없을 것이다. 사람이 많이 소유하고 외적으로 번창하는 것은 거기에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기 때문이라고, 외적 성장은 그런 능력의 증거라고 믿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소박한 영성은 관심 밖의 일일 수 있겠다. 교회도 무슨 일을 하려면 사람과 돈이 있어야 하고, 그게 현실인데, 우선 크게 성장시켜 놓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주장하는 사람에게는 퀘이커의 단순 소박한 삶의 영성은 무익할 것이다. 기독교가 타종교보다 우월한 종교임을, 예수를 믿어야 번창할 수 있다는 것을 선전하려는 사람에게는, 번영 신앙에 사로잡힌 신자들과 단순성의 영성은 어울리지 않는다.
퀘이커리즘의 단순한 삶의 영성은 외형적으로 번영을 추구하는 사람보다는 내적으로 충만한 신앙생활을 갈망하는 사람에게 어울리는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참으로 예수의 영성을 만나고 체험하고자 하는 사람은 퀘이커들이 오래 추구해 오는 단순 소박한 삶의 영성에서 도움이 되는 길을 볼 것이다.

평등의 영성(Equality)
아마도 인간 평등을 신앙의 중심 문제로 삼고 실천하는데 가장 예민한 민감성을 가진 종교는 퀘이커리즘일 것이다. 퀘이커들은 초기 퀘이커 운동 때부터 남성 여성의 차별을 두지 않으며, 흑백 인종 차별을 하지 않고, 연령과 국적, 지식 유무, 신분과 경제적 차이에 무관하게 모든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평등하다는 믿음을 그대로 실천하는데 앞장서 왔다. 왜 퀘이커들은 이렇게 철저한 인간평등주의를 신앙의 중심 문제로 삼고 실천해 온 것일까? 그것은 ‘모든 사람 안에는 하나님의 무엇이 있다’(that of God in everyone)는 퀘이커 신앙 때문이다. 퀘이커 운동의 선구자인 조지 폭스는 이 보편적 인간 평등 신앙을 강조했고, 이 신앙의 실천은 자연스레 퀘이커리즘을 인간평등의 영성으로 자리매김했다. 퀘이커들은 어떤 조건과 이유에서든 간에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 사람을 차별한다면 그것은 그 사람 안에 계신 하나님을 차별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신분과 계급의 차이가 굳어진 사회 속에서 인간 평등의 신앙을 실천하며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퀘이커들은 이 평등의 영성을 실천으로 옮겼고 그 대가를 치르는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17세기 중엽 초기 퀘이커들은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똑 같은 지위를 가진다고 믿었기에 당시 귀족에게 가난한 농부들이 모자를 벗어 경의를 표하는 관습을 거부했고, 누구 앞에서도 모자를 벗지 않았다. 퀘이커들이 모자를 벗을 때는 오직 하나님 앞에서 뿐이었다. 그래서 속 좁은 지방 관리들 중에는 이런 퀘이커 농부들의 오만한 무례를 고깝게 여겼고 감옥에 넣는 이들도 있었다. 함석헌 선생이 퀘이커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커다랗고 둥그런 모자를 쓰고 있는 기이한 기독교인의 모습을 연상했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이것은 초기 퀘이커들의 고집스런 평등 영성의 실천 면모를 상징적으로 말한 것이라 여겨진다.


퀘이커 평등 영성에서 우리가 눈 여겨 볼 수 있는 대목은 여성평등의 실천이다. 퀘이커 모임에서 여성들은 아무런 차별을 받지 않았다. 여성들은 예배에서 증언했고, 회의에서 자신의 의견을 자유로이 발표했다. 영국에서 여성이 참정권을 얻은 때가 1928년인데, 이미 17세기 중반의 초기 퀘이커 모임에서부터 퀘이커 여성은 남자와 평등한 위치를 가졌으니 약 270년 앞서 여성평등주의를 실천한 셈이다. 예나 지금이나 일반 사회는 물론 교회 안에서 여성은 종속적인 역할을 하고, 사회적 활동이 어렵다. 그러나 퀘이커 모임에서는 달랐다. 이것은 역시 ‘모든 사람 안에 하나님의 무엇이 있다’는 퀘이커 믿음을 철저하게 실천한 결과이다. 초기 퀘이커 모임(교회)에서부터 여성과 남성은 평등하게 목사(목사 제도가 있는 퀘이커 교회의 경우)와 장로로 일할 수 있었다. 사실 오늘날도 여성 목사 안수나 장로가 되는 것이 여전히 어려운 상황을 미뤄볼 때, 퀘이커들의 인간평등 영성은 매우 급진적인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퀘이커들의 평등주의 영성은 그 후 사회에 많은 여성 지도력을 배출하는데 기여했다. 나의 펜들힐 경험을 통해서 보더라도 많은 여성 리더십이 펜들힐을 이끌어 가고 있다. 현재 펜들힐의 원장은 여성 퀘이커이며, 이번에 새로 온 학장도 여성이다. 펜들힐의 아침 침묵 예배 중에 나는 여성들의 활발한 영적 증언을 듣곤 했다. 퀘이커리즘 안에서 성차별이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역사 속에서 퀘이커 인간 평등 영성은 퀘이커들로 하여금 인권운동의 전위대로 나서게 했다. 퀘이커들은 서구 인권운동사에서 어린이, 노약자,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와 고난 받는 자를 위한 인권 운동을 선구적으로 실천했다. 미국에서는 인디언과 평등한 관계로 살면서 평화조약을 맺고, 흑인 노예 해방 운동을 전개했다. 남부의 흑인 노예를 북쪽으로 탈출시키는 퀘이커의 지하철도(Underground Railroad) 운동은 유명한 이야기로 남아있다. 퀘이커의 철저한 인간평등 정신은 감옥에 갇힌 죄수의 인권도 동등하게 존중받아야 한다는 감옥인권 운동을 일으켜 엠네스티 인터내셔널 운동의 시작을 만들었다. 지금은 세계 인권운동의 대명사처럼 되어있는 엠네스티 인터내셔널이 퀘이커들의 운동으로 시작된 것임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지난 해 펜들힐에 있을 때 성전환자(트랜스젠더)인 학생이 들어왔다. 그는 유대인 출신의 퀘이커였다. 그가 퀘이커가 된 것은 유대인 공동체에서는 환영받지 못했지만 퀘이커 모임에서는 다른 이와 똑같은 인간 존재로 존중되고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그는 아침 예배 모임에서 종종 동성애자 모임을 광고하고, 동성애자로서 또는 성전환자로서 자살하거나 고통 받는 이를 위한 중보기도를 요청하곤 했다. 펜들힐의 친구들은 그와 격의 없이 어울렸다. 그 역시 펜들힐에서 평화로운 시간을 보냈다. 나도 처음에는 그를 특별히 의식하며 지냈지만 점차 자연스레 어울리게 되었다. 그 역시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며, 모든 인간이 각기 자기 나름의 고민과 문제를 안고 살아가듯이 그는 그대로의 문제를 고민하며 살아가는 사람일 뿐이었다. 아직도 미국 기독교에서는 동성애자 문제가 신앙의 논쟁거리이다. 그러나 퀘이커 모임 안에서는 그들도 다 같은 형제요 자매로 받아들여지고 교제를 나눈다. 나는 1년 전 새길교회에서 동성애자 인권을 다루는 포럼을 하고 두 명의 동성애자를 교회로 초청한 적이 있다. 비교적 인권에 대한 열린 신앙을 가진 교회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때 참석한 한 동성애자의 항변을 나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우리도 똑같은 인간으로서 교회에 나가 하나님을 예배하고 싶지만 교회는 우리를 내 쫓는다.” 나는 이 순간 예수님은 동성애자들을 쫓아냈을까,라고 나 자신에게 물어보았다. 복잡한 논쟁을 할 것도 없이 예수의 영성은 모든 사람을 아무런 조건 없이 평등하게 사랑하는 영성이다. 그렇다면 퀘이커들이 실천하는 평등의 영성은 예수의 영성을 그대로 따르는 것임에 틀림없다. 사람의 눈으로는 차별이 존재하지만 예수 영성의 눈으로는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평등한 것이다. 퀘이커 평등의 영성에서 내가 체험하고 배운 것이다.


정지석 l 목사는 영국 우드부록(Woodbrooke) 대학원에서 ‘퀘이커리즘과 함석헌의 평화 사상 비교 연구’로 박사(Ph. D.)학위를 받았다. KNCC, 크리스챤 아카데미 사회교육원, UNESCO-APEIU 국제이해교육원에서 평화교육가로 일했으며 성공회 대학과 한신대 신학대학원에서 평화윤리와 교육을 강의하였다. 한국 YMCA 생명평화센터 소장이며 현재 미국 펜들힐에서 연수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