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물음들에 답함>
- 송경동 -
어느날
한 자칭 맑스주의자가
새로운 조직 결성에 함께하지 않겠냐고 찾아왔다
얘기 끝에 그가 물었다.
그런데 송동지는 어느 대학 출신이오?
웃으며 나는 고졸이며, 소년원 출신에
노동자출신이라고 이야기 해주었다.
순간 열정적이던 그의 두 눈동자 위로
싸늘하고 비릿한 막 하나가 쳐지는 것을 보았다.
허둥대며 그가 말했다.
조국해방 전선에 함께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라고
미안하지만 난 그 영광과 함께 하지 않았다.
십수년이 지난 요즈음
다시 또 한 부류의 사람들이 자꾸
어느 조직에 가입되어 있냐고 묻는다.
나는 다시 숨김없이 대답한다.
나는 저들에 가입되어 있다고
저 바닷물결에 밀리고 있고
저 꽃잎 앞에서 날마다 흔들리고
이 푸르른 나무에 물들어 있으며
저 바람에 선동당하고 있다고
가진 것 없는 이들의 무너진 담벼락
걷어차인 좌판과 목 잘린 구두,
아직 태어나지 못해 아메바처럼 기고 있는
비천한 모든 이들의 말속에 소속되어 있다고
대답한다 수많은 파문을 자신 안에 새기고도
말없는 저강물에 지도 받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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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3월 16일, 진보신당 연대회의가 창당했을 때 시인 송경동이 낭독한 창당축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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