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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사상 이야기/종교

토마스 머튼, 명상하는 사회 비평가

by 마리산인1324 2007. 1. 25.

 

http://blog.theple.com/krjohn316/folder/52.html?uid=244

 

 

명상하는 사회 비평가

 

당신이 잊혀지고 당신의 이름이 불리지 않으며
당신의 법이 조롱받고 당신의 현존이 무시되는,
이 소란스럽고 절망적인 세계에서
당신께 올리는 이 기도를 자비로이 들으소서.
우리가 당신을 모르기 때문에 우리에게 평화가 없습니다.
“평화를 위한 기도” (1962년 4월 12일 성주간 수요일에 미국 하원에서 드린 기도문 중에서 발췌)


지난 1941년에 머턴이 수도원에 입회했을 때, 그는 영성에 대해 다소 분리주의적 이해를 갖고 있었다. 그 시기에 머턴은 세속을 떠나 평생 하나님만을 추구하는 삶을 살고자 계획했다. “이것이 내가 고독을 바라는 유일한 이유입니다. 피조물들은 당신과의 거리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나는 모든 피조물들과 아울러 온갖 피조물에 관한 지식에 대해 죽은 자가 되려는 것입니다. … 내가 그것들을 떠나야만 비로소 당신께로 갈 수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시기에 머턴은 세상으로부터 어떤 것도 구하지 않았고 그 속에 속한다고 느끼지도 않았다. 그의 삶을 추진하는 원동력은 오로지 순수한 마음으로 하나님만을 추구하는 것이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이었다.

세상을 등지는 금욕주의자

우리는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추구하는 명상과 세상에서 행동적인 삶에 대해 분리적인 견해를 지녔던 머턴이 조금씩 변해 가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명상과 활동의 일치가 머턴 안에서 이뤄진 것이다.
전적으로 하나님만을 찾기 위해 세상을 떠났던 머턴이 수도원 안에서 새롭게 깨달은 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이 세상을 떠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이었다. 수도자들도 수도원 밖의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것과 동일한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들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그들도 세상에 책임을 지닌 존재들인 것이다.

1961년에 쓴 “전쟁의 뿌리”에서 지금 인류가 당면한 전쟁의 위기는 전적으로 우리를 위해 우리 자신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임을 지적하면서 전쟁으로 인해 전 인류가 파멸을 향해 치닫고 있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머턴은 질문한다. “이 모든 상황에서 그리스도인의 자리는 무엇인가? 그리스도인은 단순히 팔짱을 끼고 최악의 경우에 자신을 내맡기는 것을 피할 수 없는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천국에 들어갈 준비만 하는 자인가?” 머턴은 하나님만을 추구하는 명상의 삶에서 정치적 참여를 포함하는 포괄적 영성의 삶을 주장한다. “이 위기에서 그리스도인의 의무는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의 모든 힘, 지성, 믿음, 소망, 하나님과 인류를 위한 사랑을 가지고 하나님이 세상에서 우리에게 부여하신 한 가지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분투하는 겁니다. 그것은 전쟁을 완전히 종식시키기 위한 일입니다.”

머턴은 교회로 하여금 비록 확정적이고 분명한 해결을 볼 수 없을지라도, 어려운 난제의 비폭력적 해결과 점진적 전쟁의 종식을 향해 나아갈 것을 촉구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전쟁에 대항해 싸우는데 필요한 모든 자원을 활용하고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야 한다. 머턴은 전쟁에 대항해 싸우는 것을 우리 시대 그리스도인들의 중대한 사명이라고 부른다. 무엇이 머턴으로 하여금 세상을 부인하는 금욕주의자에서 세상을 포용하는 사회 비평가로 변화시켰는가?

머턴이 처음에 트라피스트수도회에 입회했을 때, 그는 하나님과 연합해 살아가는 삶을 진정한 행복을 위한 유일한 조건으로 보았다. “한 가지 유일한 행복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일입니다. 한 가지 유일한 슬픔은 하나님을 슬프게 하는 일인데, 이는 가장 작은 것이나 생각조차도 하나님을 거부하고 그분으로부터 돌아서는 겁니다.” 수도자로서 머턴은 불타는 열망으로 의지와 사랑 안에서 하나님과의 연합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수도원 안에서 만난 또 다른 세상

오래지 않아 머턴은 수도원 담장 안과 밖의 삶이 유사함을 발견하게 되었다. 수도원 안에서 전적으로 하나님과 하나 되는 삶을 추구하던 머턴은 동료 수도자들의 삶과 행동에 놀라게 된다. 머턴은 수도원 안에서도 사소한 질투와 작은 갈등, 종종 수도자들 간의 성격들이 부딪혀 어려움을 겪기도 하는 것을 보았다. 머턴은 수도원 안에서 또 다른 세상이 존재함을 경험하기 시작한 것이다.

머턴이 침묵 안에서 하나님을 발견하기 위해 들어간 곳은 엄격한 트라피스트수도회 소속의 겟세마니수도원이었다. 하지만 당시에 겟세마니수도원은 다소 산만한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었다. 70명이 거주하도록 지어진 수도원 건물에 고독과 침묵을 사랑하는 270명의 수도자들이 모여 생활하고 있었다. 이로 인해 새로운 공사가 시작되었고 새로운 훈련 과목들과 많은 대화, 토론, 강의들이 생겨났다. 요란한 소리를 내는 트랙터와 불도저들이 분주한 수도자들 사이를 지나다녔다.

머턴은 과연 겟세마니수도원에서 자신의 소명을 성취할 수 있을까 하고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그는 더욱 깊은 고독과 침묵이 절박하게 필요함을 느꼈다. 머턴은 세상과 세상의 문제들로부터 자신을 분리할 수 있는 더욱 엄격한 수도원으로 가는 것을 심각하게 고려했다. 자신이 속한 수도원에선 더 이상 진보하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카르투시오회나 은수자의 삶을 염원했다. 그러나 수도원장은 겟세마니수도회가 머턴이 속한 곳이라고 설득했다.

진정한 고독의 자리, 마음

오래지 않아 머턴도 겟세마니수도회가 자신이 뿌리내려야 할 장소이며 다른 곳으로 가는 것은 자신과 하나님으로부터 도망치는 일임을 깨달았다. 이 상황에서 머턴은 홀로 있기를 바라는 열망이 자신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닌지 질문하기 시작했다. 명백하게 진리를 깨달은 순간에 머턴은 다음과 기록하고 있다. “명상을 위해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제 머턴은 자신의 동기들을 질문하기 시작했다. 그런 반추를 통해 머턴은 평범하던 일상에 대해 참된 가치를 보게 되었다. 그리고 기쁨의 감정과 영적 만족에 대해 그것들이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지 않음을 깨달았다.

고독은 단순한 일상적 삶에서 얼마든지 구하고 발견할 수 있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머턴은 말한다. “이 사막은 반드시 지형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마음의 고독입니다. 그 안에서 피조된 기쁨들은 불타버리고 하나님 안에서 새롭게 태어납니다.” 그 기간에 명상은 명상 대해 배우는 게 아니며, 침묵은 생각이나 배움 혹은 침묵에 대해 말하는 게 아님을 머턴은 깨닫게 되었다. 고독은 하나님과 홀로 있는 것에 대한 아름다운 생각들로 가득 채워진 마음을 의미하지 않음을 더욱 마음에 새기게 되었다.
자신에게 솔직한 자세는 영적 탐구의 과정 중에 나타난 지성주의와 이성화하는 경향에 대면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래서 머턴은 말한다. “여기에 당신이 더욱 더 필요로 하는 것이 있습니다. 단순하고 가난해 지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어떤 평화도 갖지 못할 것입니다.”

1949년 12월에 머턴은 몸이 아프고 마음은 침체돼 있었다. 그는 삶의 리듬과 균형을 모두 잃어버리고 자신으로부터 완전히 소외된 것을 느꼈다. “나를 고독으로 내몰고 있는 것은 두려움입니다.” 갑자기 사물들에 대한 그의 비전들이 깨어지고 한 때 깊이 소중하게 간직했던 이상들이 하나도 자신 안에 남아 있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나는 두려움으로 완전히 소진되었습니다.”

머턴은 수도원에 온 지 8년이 지나 자신에 대해 참으로 죄인이며 불행하고 위축돼 있음을 느꼈다. 이제 고독은 거칠고 고통스러우며 부담스럽게만 느껴졌다. 고독은 의미를 상실한 공허만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모든 것이 소망 없는 것처럼 보였을 때, 머턴은 하나님의 고독 안에서 자신을 발견했다. 1950년 겨울에 머턴은 자신의 일기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진정한 고독은 하나님의 고독함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분의 고독은 장소적 부재가 아니라 형이상학적 초월입니다.”

고독과 연대감

머턴은 자신의 고독 안에서 다른 사람들과의 연대감을 느꼈다. 머턴은 자신이 인류 종족에 속함을 알고 쉽게 인정하게 되었다. 1951년 3월 어느 목요일에 머턴은 겟세마니수도원에 입회한 지 10년이 되었을 때, 고독 안에서 자신의 삶에 대해 반추했다. “이제 나는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빚을 지고 있습니다. 처음으로 생애의 첫 의무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이 인류 종족의 구성원으로서 삶을 살기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나의 첫 인간적 행위는 내가 모든 사람들에게 얼마나 빚을 지고 있는지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해 5월에 머턴은 수도원의 수련장이 되었다. 그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묘사하는 상징으로 요나의 이야기를 들고 있다. 하나님은 요나를 부르셔서 니느웨로 가라고 명하셨지만, 하나님이 다시 그를 이끄실 때까지 반대 방향으로 도망을 갔다. 머턴은 자신을 요나와 같은 인물로 경험한 것이다. 자신은 고독과 침묵 속에서 하나님만을 추구하기를 원했지만, 하나님은 자신을 세상으로 이끌어내신 것이다.

머턴이 그의 수련생들 앞에 섰을 때, 어떤 이상한 일이 자신에게서 일어나는 것을 발견했다. 침묵과 고독이 그의 마음을 감싸주는 것이었다. 그래서 머턴은 다른 사람들과 더 깊고 진정한 관계를 취할 수 있도록 준비할 수 있었다. 그 시기에 머턴의 내면을 표현하고 있는 「요나의 표적」에서 가장 감동스러운 것은 바로 고독 안에서 긍휼의 마음이 생겨난 것이다. 다시 말해 침묵의 심연에서 머턴은 다른 사람들에게 뻗어나갈 수 있도록 준비된 자신을 발견했다. 고독은 우선 마음의 문제이며 이 고독의 사회적 차원을 깨닫게 된 것이다.

세상의 재발견

머턴의 루이빌 방문도 그의 변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1948년 8월에 머턴은 루이빌을 방문했다. 비록 6시간의 짧은 경험이었지만, 그것은 머턴의 생을 극적으로 변화시켰다.

그는 그때의 경험과 느낌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나는 세상을 다시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더 이상 악하지 않음을 발견했습니다. 아마 내가 세상에 대해 증오했던 것들은 내가 투사한 자신의 결함들이었습니다. 이제 반대로, 깊고 성숙하며 말없는 긍휼로 모든 것들을 향해 나의 마음이 움직이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생애에서 나는 처음으로 세상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얼마나 좋으며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그들이 얼마나 귀한 보화들을 가진 존재들인지를 깨달으며 도시를 통과해 걸었습니다.” 머턴은 루이빌 방문을 통해 결코 부도덕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아름다운 세상을 발견한 것이다.

1949년 1월에 두 번째 루이빌 방문에서 머턴은 도시의 한 부분에 존재하는 참혹한 가난의 현실을 목격하게 되었다. 그 외출에서 머턴은 공장 가까운 곳의 움막집 사람들, 누더기를 걸친 채 떨고 서있는 여인 등 많은 도시민들의 처참한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토록 가난한 사람들이 굶주림과 추위에 떨며 인생의 절망감을 느끼고 있는데 자신은 수도원 안에서 어떻게 생활했으며 무엇을 추구했는지를 돌아보았다. 이 경험은 자신이 무엇 때문에 수도자가 되었으며, 자신이 진정으로 포기한 것이 무엇인가를 진지하게 묻게 했다. 그리고 자신이 세상 안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진지하게 고민하게 만들었다.
머턴은 20세기 현대 문명이 주는 삶의 환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세상을 떠났다. 그는 몇 년간의 수도원적 삶을 지낸 후에 수도자들의 삶에서도 환상이 있으며, 수도원이 현실로부터 도피한 도망자의 항구가 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그는 7년 동안 바깥 세상과의 모든 연대를 단절했다. 하지만 그 외출은 머턴으로 하여금 도피한 세상을 직면케 해 주었다. 1949년에서 1950년까지 건강 문제로 머턴은 여러 차례 병원에 입원해야 했다. 그런 동안 머턴은 수도원에서 허용되지 않은 신문을 읽게 되었다. 이런 경험들을 통해 그는 수도원 담장 뒤에서 세상으로부터 분리된 채로 남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명상과 행동의 일치

머턴의 세상에 대한 마음의 변화는 수도원주의에 대한 그의 견해도 바뀌게 했다. 이것은 그가 수도원적 소명을 버렸음을 뜻하는 게 아니다. 머턴은 말한다. “명상과 행동은 모든 종교 규율에서 각각의 역할을 갖고 있습니다. 그 둘은 항상 같이 갑니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인의 완전함은 자선의 완전함 외에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선의 완전함은 바로 하나님과 사람에 대한 자선의 완전함을 의미합니다. … 이것은 오직 하나의 사랑입니다. … 그러므로 하나님을 향하는 명상과 인간을 위한 행동은 결코 둘로 나눌 수 없는 것입니다.”

머턴은 이에 대한 견해를 확장한다. “명상은 모든 인간의 다른 관심들로부터 단절되거나 그것들을 폐지하는 삶의 분리된 부분이 아닙니다. 그것은 온전히 통합된 삶의 충만함입니다. 그것은 인생의 왕관이며 삶의 모든 활동들의 왕관입니다.” 비로소 머턴은 자신만을 위해 수도원으로 피해 갈 수 없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는 ‘모든 사람들은 함께 구원을 찾아 가는 것이다’라는 진리를 깨달았다. 이제 머턴은 명상적 생활이란 하나님뿐 아니라 세상 사람들과도 연결돼 있음을 깨달은 것이다.

머턴은 수도원 안에서 자신의 내면 안으로 들어가 하나님 안에서 참된 자신을 발견했다. 그리고 이런 명상적 삶은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파악하는 수단으로 되었다. 더욱이 머턴은 자신의 명상 경험의 열매들은 세상과 나눠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의 저술 활동은 수도원 담장 밖으로 명상의 체험을 나누는 한 방법이며, 또 명상으로부터 솟아나오는 행동의 한 형태가 된 것이다.

머턴의 세상으로 회귀가 명상이냐, 행동이냐의 양자택일을 정당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삶은 명상과 활동의 이분법적 분리로 축소될 수 없다. 마침내 머턴은 수도원적 삶은 명상과 활동의 두 요소를 포함해야 하는 것임을 인정했다. 머턴의 명상은 피조물로부터 분리된 존재로서 하나님을 발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그에게 가르쳐 주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세상, 특히 사람은 하나님과 구별될지라도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될 수는 없는 것이다. 하나님은 만물 안에서 숨겨진 사랑의 근원이시다.

여기서 머턴은 하나님을 다른 존재들 가운데 현존하는 또 하나의 존재로서 하나님으로 보지 않고 있다. 그는 만물의 근원으로서 하나님을 보았다. 그리고 바로 그 하나님은 사랑의 근원이시다. 따라서 하나님 안에서 모든 것은 자신의 정체성과 독특성을 발견한다.

그래서 머턴은 사람들을 피하기 위해 수도원 안에 있는 게 아니라 ‘그들을 위해 거기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머턴은 남은 생애 동안 많은 부분을 ‘그들을 위해 거기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며 보냈다. 비록 충분하게 만족할 만큼의 답을 얻진 못했지만, 자신에게 그 질문이 옮았음을 깨달았다.

이와 같이 우리는 명상 안에서 하나님께 진정으로 귀를 기울일 때 사람들의 다양성을 분별할 수 있다. 머턴은 자신의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만일 사람이 명상 생활 안에서 하나님에게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명상 생활이 무슨 의미를 갖겠는가? 만일 사람이 세상과 교회 안에서 사람들의 권리와 하나님의 진리를 망각한다면 명상 생활이 무슨 의미를 갖겠는가?”

이후로 명상과 행동에 대한 일치의 자각은 머턴의 생애에 머물면서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루이빌의 비전

1958년 3월 1일에 머턴은 수도회의 용무를 위해 루이빌 가에 있었다. 사람들의 왕래로 분주한 포쓰와 윌넛 가의 모퉁이에 서있을 때 놀라운 영적 경험을 했다. 머턴은 갑자기 자신이 그들 모두를 사랑하고 그들이 자신과 낯설거나 분리돼 있지 않다는 깨달음에 압도되었다.

“나는 갑자기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그들은 나의 사람들이며, 나는 그들의 것이라는 깨달음에 압도되었습니다. … 그것은 분리의 꿈, 특별한 세계에서 위조된 자기 고립의 꿈, 부정(renunciation)과 가장된 거룩의 세계에서 깨어나는 것과 같았습니다. 분리된 거룩한 존재에 대한 모든 환상이 꿈이었습니다.” 그는 계속해 이렇게 말한다. “환영적 구별로부터 해방감은 거의 큰 웃음을 터뜨릴 만한 깊은 안도감과 기쁨의 경험이었습니다. 나는 나의 행복이 다음의 이 말들 속에 표현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내가 다른 남자나 (여자와) 같은 사람이라는 데 대해 하나님께 감사합니다다.”

이 경험에 대한 반추는 머턴으로 하여금 다소 신비스러운 방식으로, 그의 수도원적 고독이 모든 사람들에게 속해 있음을 볼 수 있게 해주었다. 머턴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단지 자신뿐 아니라 그들을 위해 그렇게 해야 할 책임을 갖습니다. 내가 홀로 있는 것이 그들 덕분인 것은 바로 내가 그들과 하나이고, 내가 홀로 있을 때 그들은 ‘그들’이 아닌 바로 나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누구도 낯선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이 경이로움에 관해 계속 반추한다. “갑자기 나는 그들 마음의 비밀스러운 아름다움, 그들 마음의 깊이 즉 죄나 욕망이나 자기-지식(self-knowledge)이 다다를 수 없는 곳, 그들의 실제 핵심, 하나님의 눈으로 보는 개개인의 참된 인격체를 본 것 같았습니다. 그들이 오로지 스스로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다면, 우리만이라도 서로를 순간마다 그런 식으로 볼 수 있다면, 그곳엔 더 이상의 전쟁이나 증오나 탐욕도 없을 것입니다.”

행동하는 수도자

이 절정의 경험을 한 후에 머턴은 “나는 명상가로서 자신을 고독에 가둬 둘 필요가 없고, 다른 세상과 모든 접촉을 잃어버릴 필요가 없는 것 같습니다.” 이어서 “이 가난한 세상은 나의 고독안에 위치할 권리를 갖고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수도자의 기도와 참회가 사도적인 가치를 갖고 있음을 보는 것만으로 충분치 않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는 일종의 ‘사명 진술서’ 쓴다. “나는 명상가의 관점에서 이 세상에 있는 정치적, 지성적, 예술적 사회 운동들에 대해 생각해야만 합니다. 그것은 세계 도처에 있는 지성인들의 정직한 열망과 그들이 직면해야만 하는 곤란한 문제들에 대한 동정심을 의미합니다. 나는 그들을 진실로 이해하는 수도자의 입장에서, 내가 수도원을 떠나지 않은 상황에서도 나의 친구가 되어준 예술가들, 작가들, 출판업자들, 시인들 사이에서 이런 종류의 이해와 친근한 동정심이 놀라운 효과를 일으키는 것을 경험해 오고 있습니다.” 머턴은 단순히 세상을 위해 기도하는 차원을 넘어서 ‘명상적 시각’으로 세상의 문제를 진단하고 그것을 나누는 방식으로 세상의 문제에 참여하기 시작한 것이다.

1960년대에 이르러 머턴의 사명은 확장되었다. 그것은 당시에 가장 심각한 갈등을 초래한 사회에서의 폭력 특히 냉전의 문제를 다루는 것이었다. 또한 머턴은 인종 갈등, 베트남 전쟁, 핵무기 사용, 과학 기술 등 사회의 첨예한 문제에 대해 ‘명상적 시각’을 나눠주었다.

머턴의 사회 참여의 구체적인 내용과 관점에 대해 여기서 다룰 수가 없다. 하지만 오늘날 난제를 안고 기도하면서 예언자적 사명을 감당하고자 하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명상적 시각으로 사회 비평을 했던 20세기의 예언자 머턴의 말을 마음에 담아 새겨둘 필요가 있다. “수도자는 만물의 내적 차원에 조율돼 있다고 가정되는 사람입니다. 만일 수도자가 아무것도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한다면 전체의 쇄신은 위험에 처하게 될 것이고 완전히 쓸모없게 될지도 모릅니다.”

오방식 | 2006. 9.